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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8주년 현도기념일을 맞이하여 합동시일 및 강도회 개최포덕 164년 12월3일(일) 오전 11시 부산시교구(교구장: 정신당 박차귀) 3층 성화실에서 부산연합회의 주최, 부산시교구의 주관으로 달암 공진성 동덕이 집례를 맡아 합동시일식을 봉행하였다. 합동시일식 후 12시부터는 1층 인내천실에서 부산시교구 여성회원들과 대동교구 여성회원들의 정성과 봉사로 점심을 나누며 함께 먹었다. 식사 후에는 2층 카페에서 따끈한 차를 나누며 오랜만에 120여 명의 동덕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황을 이루는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매주 시일식마다 각 교구에서 동덕들이 가득 한자리에 모여 기쁘고 즐거운 시일식을 봉행하기를 심고해 본다. 어린이들 10여 명은 유소년실에서 따로 시일식을 보며 합창단석에는 부산연합 합창단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논학문과 동학의 마음공부 이번 합동설교과 강도회는 송탄교구 중암 라명제 교구장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설교 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논학문은 수운 대신사께서 포덕 3년(1862) 1월 남원 은적암에서 지으셨고, 당시에는 ‘동학론’이란 제목으로 동학의 핵심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동학의 공부법이 주문수행과 심고법 등 논학문에는 동학의 공부방법이 잘 나와 있다. 먼저 대신사는 한울님께, 제자들은 스승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먹고 싶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먹일 수도 없고, 그러면 체한다. 진리에 대한 갈증과 의문을 가져야 한다. 구해야 주신다. 두 번째는 내게 모신 한울 마음, 그 참 마음이 무엇인지, 꾸준히 그리고 깊이 수행해야한다. 그렇게 내유신령을 찾아 모심을 알게 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마음이 믿음에 흔들리지 않으면 고요함에 들 수 있고, 고요함으로 지혜에 들면 내면에서 한울의 빛이 스스로 올라와 형체 없는 한울을 보며 형체 있는 한울도 보게 된다고 했다. 이것이 시정지이다. 세 번째는 그렇게 변화된 마음으로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내유신령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한울님 덕에 합하여 무위이화가 되지만,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거기서 성쇠가 갈린다는 내용의 설교였다. 이번 합동시일식과 강도회를 함께 준비한 여러 동덕님들과 한울님 말씀에 감응하는 시간에 감사하며, 같은 마음으로 모심으로 하나되기를 심고한다. 글, 정신당 박차귀(부산시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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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서 동학영령을 달래는 진혼제 열려지난 12월 3일 일요일 오전 11시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동학기념공원에서 동학농민혁명군 진혼제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20여년전부터 해마다 옥천민예총, 옥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열리고 있다. 이곳 문바위골은 해월 최시형 신사께서 동학농민혁명 당시 포덕활동을 하며 기거 하였고 1894년 7월 일본이 경복궁 침탈로 조선이 도탄에 빠지자 음력 9월 18일에 동학도 총기포령을 내려 전국 동학접주들이 모여 문바위에 접주들 이름을 새긴 흔적이 있다. 한편, 문바위골 인근 저수지 위에 해월 신사의 아들 최덕기(봉주) 묘소가 있으며 이곳 옥천 청산은 해월 신사의 외손자 동요작곡가 정순철이 태여난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28일 토요일에는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원들이 2차 총기포일 9월18일 기념행사를 하였고, 추후 전국행사로 추진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지역 기념사업회와 시민단체에서 동학의 발자취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행사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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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개벽하자!희망으로 개벽하자!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동덕님들을 모신 대교당에서 설교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모심으로 하나 되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새 집행부가 출범한 지 벌써 석 달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종무원장을 비롯한 중앙총부 임직원들이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치러온 몇 가지의 행사를 보니,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좋은 결과물로 남아 교단의 통리자로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모든 종단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종교계는 많은 것을 잃었고,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현재 사정도 안팎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막상 들여다보니 개선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참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단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도의 기운으로 극복해 내고, 교단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새롭게 설계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단 전체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중앙총부의 성찰이 필요하고, 동덕 개개인의 성찰도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이루어온 교회의 대 내·외적 성장과 신앙생활의 모습들이 한울님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지 검토해 보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심고합니다. 저는 교령에 당선되면서 동덕 여러분께 지난날을 거울삼아, 새롭게 맞이할 3년은 교단 혁신을 위한 방향성을 올곧고 바르게 열어가겠으며, 특히 지방 교구 활성화 방안과 지원 대책을 마련하여 중앙총부와 지방 교구가 소통하는 교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총부에 대한 믿음이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믿음을 통한 헌신과 봉사 정신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역량을 결집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함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동덕 여러분! 이제, 우리는 확 달라져야 합니다. 다 함께 떨쳐 일어나 교단 중흥을 위해 하나가 되어 각자위심各自爲心을 버리고 한울이 사람된 근본을 투철히 깨달아서 천덕사은을 염념불망 해야 합니다. 저는 교단의 통리자로서, 이번 임기 3년을 봉사하는 자세로 교인이 개벽의 주인이 되는 교단으로 일궈 나가며, 미래를 향해 기초를 다지는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혹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머뭇거리거나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고비를 잘 넘겨 멈추지만 않으면, 조금은 늦더라도 분명 여러 동덕님들 스스로 희망으로 개벽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덕 여러분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개벽의 꼭대기에 이르기를 응원합니다. 구름 뒤에는 항상 빛이 존재합니다. 우리 동덕들은 모두 분명 자신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꿈을 활짝 펼치는 희망찬 포덕 163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설교를 “희망으로 개벽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희망이란 다가올 앞일에 대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희망이란 촛불이 아니라 성냥이다.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이 아니라, 꺼진 불을 다시 붙이는 성냥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희망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하고,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겁니다. 나를 신뢰하듯이 남을 신뢰한다면, 이 세상은 아주 평화롭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질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남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불안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알 수 없으므로,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기대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찾아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간다면 끝내는 만족스러운 개벽의 웃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계획을 잘 세우고 이를 잘 실천해 나가는 겁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 거시적 안목도 중요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미시적 안목 또한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동덕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동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내일로 미루는 습성이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의지를 굳건히 하는 훈련을 자주 해야 할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현재 가지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괴테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된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꿈은 희망을 낳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들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습니까? 가슴을 열고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며 살아간다면, 작은 것이지만 조금씩 서로 나누며 산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가끔 한 번씩 행복한 나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짧은 순간이지만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될 겁니다. 이처럼 행복한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항상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부족한 것만 보이지만,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본다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눔이란 큰 것을 주어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일부를 주는 기쁨이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포덕布德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정 포덕이 으뜸이고. 또한 그동안 교당에 나오지 않던 휴면 교인들도 만나면 포덕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과거 천도교가 탄압받던 때에도 포덕은 계속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이때, 어째서 포덕이 안 되는지 우리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입니다. 포덕이란 이 세상 사람들을 한울님과 스승님의 품 안으로 모이게 하는 것인데도 그저 서로 눈치만 볼 뿐입니다. 해월신사께서 때를 말씀하시길, “산이 검게 변하고, 길에다 비단을 펼 때, 만국 병마가 왔다가 물러갈 때, 숲속에서 시천주 소리가 날 때, 손바닥에다 삼칠자 주문을 써달라고 아우성칠 때, 중원부터 포덕이 되고 난 후, 만천하가 포덕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마당 포덕이 되는 시운時運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 정성을 다해 수도 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냥 때가 오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가며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 포덕은 물론이요, 휴면 교인들을 찾아가 그동안 손 놓았던 시천주 신앙을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합심해서 좋은 방안들을 모색하고 실천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의암성사 기념관 건립입니다. 올해가 의암성사 순도·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동학혁명을 이끄시고, 3·1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함양시키신 민족 지도자 의암성사에 대한 뚜렷한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민족혼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총부에서는 이에 대한 자료를 하나씩 수집하고 정리해서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동덕 여러분께서는 우리의 소망을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방 교구에서도 교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주시고, 총부와 소통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를 유지하여, 교단이 모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아 주시기를 심고합니다. ‘작은 행동하나가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은 좌절, 실패, 슬픔, 불행, 고통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태양과 같은 것이고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스승님께서 펼쳐 놓으신 경전의 말씀 속에서 찾아 나갔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삶 속에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살다가 환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희망과 좌절의 끝은 반드시 절대적 희망 즉, 개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한울님을 굳게 믿고 희망을 찾아 한울님의 사랑이 담긴 행복 주머니를 품속에 가득 안고 가시기를 심고합니다. 행복과 희망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꿈꾸면서 개벽의 길로 향했으면 합니다. 의암성사께서 「인여물개벽설」에서 “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함을 말함이다. 천지 만물의 개벽은 공기로써 하고 인생 만사의 개벽은 정신으로써 하나니, 너의 정신이 곧 천지의 공기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개벽의 시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우선 각자의 정신부터 개벽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각자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 실천해 나가는 것이 개벽의 시작이라 생각하기에, 희망을 꿈꾸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주어서 천도교인은 역시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천도교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바탕에는 사인여천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즉, 사인여천을 바르게 실천하여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도원에 가면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거나, 화장실을 솔선해서 청소하는 모습, 그리고 교구에 일찍 나와 교당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 등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이런 모습들이 바로 작은 개벽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내에서 누구든지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서로 인사하는 사인여천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면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극진히 존중하는 생활 태도를 보여 천도교인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일반인보다도 더 못한 언행을 하고 다툼만 일삼는다면 어떻게 일반 국민들을 포덕·교화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과 태도, 행동에서 오만함을 풍기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인여천을 실천하는 천도교인이 되기를 심고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삶의 기준이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생각과 판단의 기준을 한울님께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한울님의 기준에서 우리의 바람이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한울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경전에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요, 구미산에 봄이 오니 온 세상이 꽃이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천도교의 진리는 반드시 차차 온 세계를 바꾸고 천도교의 땅인 이 나라에 큰 운수가 찾아와 한 시대의 아름다운 성배聖杯의 꽃이 가득히 필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분명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함께 미래를 향해, 희망의 배를 타고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성찰로 우리 교단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점검해 보면서 화합과 상생의 시대로 새롭게 시작하는 천도 교단의 발전을 도모해 나아가야 합니다. 존경하는 동덕여러분! 진리와 화합의 등불. 그 주체는 바로 동덕 여러분이십니다. 교단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조언도 아끼지 않으셔야 합니다. 동덕 여러분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사심 없이 바로 보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의지대로 행동하는 자신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심고합니다. 포덕 163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믿으시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울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매매사사 간섭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모든 도가마다 한울님의 감응으로 희망이 솟아오르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설교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광암 박상종_ 교령 - 포덕 163년 7월호 신인간 지상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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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행복나눔재단, 시각장애 아동·가족과 ‘점자로 만나는 세상’ 페스티벌 열어SK그룹 사회공헌재단인 SK행복나눔재단(이사장 최기원)이 12월 2일 시각장애 아동과 가족을 위한 ‘점자로 만나는 세상’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 페스티벌은 재단 세상파일팀이 2020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시각장애 아동 점자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의 하나로 마련됐다. 야외 활동 기회가 적은 시각장애 아동들이 가족과 또래와 함께 ‘점자’를 테마로 한 놀이를 하며 점자 학습에 흥미를 느끼도록 마련됐다. 2021년 첫 개최 이후 올해 3회 차를 맞았다.이날 모인 시각장애 아동·가족 50여 명은 △점자 글짓기 대회 △점자 퀴즈 대회 △골볼 게임 △보행 놀이 △입체 편지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점자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점자 글짓기 대회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쓴 ‘흰 지팡이’ 사행시와 ‘나의 꿈’ 주제의 동시를 낭독해 부모와 관계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시각장애 아동 점자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는 6~13세 시각장애 아동을 위해 점자 학습 교재와 교구를 개발하고 체계적인 점자 교육을 제공, 점자 문해력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상파일 팀의 사회변화 프로젝트다. 올해 프로젝트 시즌2를 시작하며 새로운 솔루션으로 점자 일일 학습지 ‘점프 jump’를 개발해 아동의 점자 수준에 따른 ‘단계별 점자 교육’ 및 ‘가정 내 교육’을 지원할 예정이다.페스티벌에 참여한 저시력 10살 아동의 학부모는 평소 아이가 참여할 수 있는 행사나 활동이 많지 않았는데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며, 특히 시각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는 좋은 기회였다는 소감을 전했다.행사를 준비한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 팀 여혜진 매니저는 “점자는 시각장애 아동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문자이자 성장의 시작점이 된다”며 “시각장애 아동 점자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점자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꾸준히 체계적으로 점자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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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탄신 200주년 앞두고 학술대회 개최동학학회(회장 임형진)이 주관하고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대비 학술대회가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와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12월 1일 오후 1시부터 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학술발표에 앞서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심고, 청수봉전의 의식이 있었다. 본 학술발표는 김영진 동학학회 총무이사(경희대)의 사회로 박상종 교령의 대회사와 임형진 동학학회 회장의 개회사로 문을 열었다. 박상종 교령은 대회사를 통해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서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의 삶과 생애가 재조명되고 나아가 그가 창도한 동학 천도교가 왜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왜 오늘날 세계는 평화보다는 갈등을 조장하며, 자연 생태보다 개발 과 발전의 노예가 되었는지, 여전히 물신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왜 중요한지를 헤아릴 수 있어야만 동학 천도교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동귀일체하는 이론적 규명이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서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진 동학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오늘 천도교 중앙총부가 주최하고 동학학회에서 주관하는 수운 최제우의 탄생 200주년을 준비하는 학술대회는 말 그대로 내년을 준비하는 학술대회이다. 오늘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운 최제우의 학문적 세계를 재조명하고 나아가 본격적인 동학 천도교 연구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혀 내년 대신사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개최한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를 말했다. 최민자 전 동학학회장의 「수운 최제우 탄신 200주년의 세계사적 의미와 한국학」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이 있었으며, 계속해서 성강현 동의대 교수의 수운 최제우의 탄생과 조선사회의 대내외적 모순구조」, 성해영 교수(서울대)의 「수운 최제우 창명의 종교사적 의미」, 우수영 교수(경북대)의 「일제강점기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을 통해본 수운주의 예술론의 실천」, 김용휘 교수(대구대)의 「수운 최제우 사상의 발전 계승과 의미」, 임상옥 교수(숙명여대)의 「수운 최제우, 연구 현황과 과제」 등의 다섯 개의 주제로 발표되었다. 학술발표에 대한 토론에는 김영철(동국대), 조성환(원광대), 조극훈(경기대), 석영기(선문대), 성주현(청암대) 교수가 각각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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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할머니’ 활약 빛났다…전국 순회공연·이야기 구연활동 ‘인기’올 한 해 ‘이야기할머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넘어 텔레비전 예능 방송과 전국 공연 무대, 초등학교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6월 13일부터 7월 18일까지 6회에 걸쳐 방송된 이야기 구연 경연 프로그램 ‘오늘도 주인공’ 에 출연한 이야기 할머니 16명이 전국에서 총 10회의 순회 공연을 통해 2000여명의 관객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야기할머니’ 16명은 대구(10. 28.)를 시작으로 광주(11. 4.)와 대전(11. 8.), 서울(11. 24.~25.) 전국 주요 4개 지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 순회공연을 총 10회 선보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보따리’는 국악, 뮤지컬, 논버벌 퍼포먼스(마술), 라이브 음악극 등 4개의 예술적 요소를 전통이야기 4편과 결합한 융·복합 이야기 공연이다. ‘오늘도 주인공’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극 4개를 실제 공연용으로 각색해 ‘이야기할머니’ 16명이 밴드, 무용수 등 예술인 12명과 협업, 옴니버스 형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어린이와 학부모 관객 2000명이 공연을 관람했으며, “할머니들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장르가 전래동화에 녹아 있어서 보기 좋았다” 등 기존에 없던 융·복합 이야기극에 대해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문체부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교육부의 ‘늘봄학교’ 사업과 연계해 ‘이야기할머니’의 활동 무대를 초등학교로 확대했다. 문체부는 늘봄학교 시범운영 지역인 5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해 지난 8월부터 시범적으로 초등학교에도 ‘이야기할머니’를 파견했다. 하반기 기준 32개 학교에서 ‘이야기할머니’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이야기 구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문체부는 교육부와 협의해 내년에도 이야기할머니 활동 지역과 학교 수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는 전국 유아 교육기관에 노년층을 파견해 유아들에게 옛이야기와 선현 미담을 들려줌으로써 미래세대의 창의력을 함양하고 세대 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2009년 제1기 30명 선발을 시작으로 매년 활동 규모를 확대해 올해에는 3100여 명이 8700여 개 유아 교육기관에서 유아 52만 명에게 우리의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정향미 문체부 문화정책관은 “이야기할머니가 15년째에 접어든 지금, 기존 유아 교육기관에서의 활동을 내실화하고, 더 나아가 전통 이야기를 케이(K)-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어르신 세대가 적극적으로 창작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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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여성회본부, 제6차 상임위원회 개최천도교여성회본부(회장 박징재)는 12월 6일 오전 11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제6차 상임위원회를 개최하여 포덕 165년도 사업계획 및 여성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 등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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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땅에 적정 인구 수는?인구문제로 시끄럽다.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난리다. 엊그제는 북한이 남침한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 무슨 또 안보 장사꾼이 설치나 했더니 현재의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이를 틈타서 북에서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악할 상상력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했다가 “하나씩 낳더라도 한반도는 초만원”이라더니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 못 면한다”라고 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 온 남성들을 거의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는 4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을 때였다. 1983년이다. 1925년도에 남북한 다해서 인구가 1,900만이었다. 지금은 남한만 5,140만 명이다. 그런데 인구 절벽, 지역 소멸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출산 장려가 도를 넘고 있다. 4천만도 많다고 난리더니 5천만이 넘는 지금은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단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 땅은 11만 제곱킬로미터가 좀 안 된다. 이 땅에서 5천1백만의 인구는 1983년 4천만의 인구보다 모르긴 몰라도 두 배나 세 배는 더 쓰고 더 버리고 더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을 것이다. 소득과 지출과 생산이 인구 배수보다 몇 배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 땅에 적정 인구수는 몇 명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과시적인 소비와 지저분한 욕망과 맹목적인 경쟁을 줄이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더 챙기고 더 쌓고 더 소비하는 데에 홀라당 정신이 빠져 있다. 남한의 현재 인구는 모든 측면에서 과잉이다.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2023년 현재의 5,140만 명이 먹고, 쓰고, 입고 살 수가 없다.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끼치는 부담을 ‘생태발자국’이라는 개념으로 수치화하여 표시하는데, 1인 기준으로 한국은 기준치의 3.3배다. 그만큼 인구 과밀현상과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80억 지구인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발표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나오는 얘기다. 결론은 쉽게 나온다. 인구를 1/3.3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국민 1인당 소비(또는 온실가스 배출량)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북한 동포나 다른 가난한 나라 등골을 빼 먹는 ‘기후 악당’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에너지 사용량을 국가별로 그린 지도가 있다. 남한보다 땅이 더 넓은 북한이 에너지 지도는 한국의 1/5쯤 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은 가난한 나라들에 더 치명적이다.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게 지구 현실이다. 오늘은 AI나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소란을 피우고 내일은 출산율 저하로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떠든다. 앞뒤 안 맞는 주장이다. 일은 기계가 하게 하고 기계세, 자동화세, 부유세를 도입해서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을 대폭 늘이면 된다. 최저임금제처럼 소득 상한제를 도입하면 빈부격차도 줄이고 사회적 갈등도 해소된다. 소득 상한제는 미국이 대 공항을 앞두고 1920년대에 도입하여 성과를 본 제도이기도 하다. 끝내 소득재분배에 실패하여 1929년 대공항을 맞았다. 한국 인구. 더 줄어야 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나 괴질로 고통스럽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출산율 저하로 줄어드는 게 천만다행이다. 목암 전희식('밥은 하늘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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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교구에서 일어나는 포덕의 바람대동교구에서 포덕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린 포덕의 바람이었다고 전했다. 포덕164년 10월 29일 대동교구에서는 복교인 1인, 입교인 3인이, 12월 1일 현도기념일에는 입교인 1인이 입교식을 가졌다. 대동교구는 스승님의 무극대도를 널리 펴서 온 세상이 한울세상이 되도록 정성을 들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화로운 한울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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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도가모임, 시흥교구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은 지방교구 지원사업중 하나인 '즐거운 도가모임'을 통해 각 교구 활성화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힘쓰고 있다. 시흥교구는 1세부터 7세까지 미취학 어린이가 8명이기 때문에, 추운날 외부로 나가서 행사를 하기 어려워 실내에서 고기파티를 하기로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순도순 한솥밥을 먹으며 두터운 정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어른들은 도란도란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이었다. 천도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즐거운 도가모임이 교인 간 특별한 교류와 만남의 장으로 더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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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개벽하자!희망으로 개벽하자!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동덕님들을 모신 대교당에서 설교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모심으로 하나 되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새 집행부가 출범한 지 벌써 석 달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종무원장을 비롯한 중앙총부 임직원들이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치러온 몇 가지의 행사를 보니,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좋은 결과물로 남아 교단의 통리자로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모든 종단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종교계는 많은 것을 잃었고,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현재 사정도 안팎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막상 들여다보니 개선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참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단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도의 기운으로 극복해 내고, 교단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새롭게 설계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단 전체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중앙총부의 성찰이 필요하고, 동덕 개개인의 성찰도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이루어온 교회의 대 내·외적 성장과 신앙생활의 모습들이 한울님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는지 검토해 보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심고합니다. 저는 교령에 당선되면서 동덕 여러분께 지난날을 거울삼아, 새롭게 맞이할 3년은 교단 혁신을 위한 방향성을 올곧고 바르게 열어가겠으며, 특히 지방 교구 활성화 방안과 지원 대책을 마련하여 중앙총부와 지방 교구가 소통하는 교단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총부에 대한 믿음이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믿음을 통한 헌신과 봉사 정신으로 올바르게 나아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역량을 결집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함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동덕 여러분! 이제, 우리는 확 달라져야 합니다. 다 함께 떨쳐 일어나 교단 중흥을 위해 하나가 되어 각자위심各自爲心을 버리고 한울이 사람된 근본을 투철히 깨달아서 천덕사은을 염념불망 해야 합니다. 저는 교단의 통리자로서, 이번 임기 3년을 봉사하는 자세로 교인이 개벽의 주인이 되는 교단으로 일궈 나가며, 미래를 향해 기초를 다지는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혹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머뭇거리거나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고비를 잘 넘겨 멈추지만 않으면, 조금은 늦더라도 분명 여러 동덕님들 스스로 희망으로 개벽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덕 여러분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개벽의 꼭대기에 이르기를 응원합니다. 구름 뒤에는 항상 빛이 존재합니다. 우리 동덕들은 모두 분명 자신만의 아름다운 색깔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을 믿고 꿈을 활짝 펼치는 희망찬 포덕 163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설교를 “희망으로 개벽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희망이란 다가올 앞일에 대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희망이란 촛불이 아니라 성냥이다.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이 아니라, 꺼진 불을 다시 붙이는 성냥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희망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하고, 꿈꾸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희망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겁니다. 나를 신뢰하듯이 남을 신뢰한다면, 이 세상은 아주 평화롭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질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남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불안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알 수 없으므로, 더 궁금해지기도 하고, 기대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평정심을 찾아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간다면 끝내는 만족스러운 개벽의 웃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먼저, 계획을 잘 세우고 이를 잘 실천해 나가는 겁니다.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 거시적 안목도 중요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하는 미시적 안목 또한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동덕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동덕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내일로 미루는 습성이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는 의지를 굳건히 하는 훈련을 자주 해야 할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현재 가지고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괴테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현된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꿈은 희망을 낳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들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습니까? 가슴을 열고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며 살아간다면, 작은 것이지만 조금씩 서로 나누며 산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가끔 한 번씩 행복한 나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짧은 순간이지만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될 겁니다. 이처럼 행복한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항상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부족한 것만 보이지만, 넉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본다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눔이란 큰 것을 주어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일부를 주는 기쁨이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포덕布德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정 포덕이 으뜸이고. 또한 그동안 교당에 나오지 않던 휴면 교인들도 만나면 포덕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과거 천도교가 탄압받던 때에도 포덕은 계속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이때, 어째서 포덕이 안 되는지 우리 다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입니다. 포덕이란 이 세상 사람들을 한울님과 스승님의 품 안으로 모이게 하는 것인데도 그저 서로 눈치만 볼 뿐입니다. 해월신사께서 때를 말씀하시길, “산이 검게 변하고, 길에다 비단을 펼 때, 만국 병마가 왔다가 물러갈 때, 숲속에서 시천주 소리가 날 때, 손바닥에다 삼칠자 주문을 써달라고 아우성칠 때, 중원부터 포덕이 되고 난 후, 만천하가 포덕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마당 포덕이 되는 시운時運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 정성을 다해 수도 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냥 때가 오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가며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 포덕은 물론이요, 휴면 교인들을 찾아가 그동안 손 놓았던 시천주 신앙을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합심해서 좋은 방안들을 모색하고 실천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자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의암성사 기념관 건립입니다. 올해가 의암성사 순도·순국 10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동학혁명을 이끄시고, 3·1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정신을 함양시키신 민족 지도자 의암성사에 대한 뚜렷한 기념관 하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민족혼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총부에서는 이에 대한 자료를 하나씩 수집하고 정리해서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동덕 여러분께서는 우리의 소망을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방 교구에서도 교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주시고, 총부와 소통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를 유지하여, 교단이 모심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아 주시기를 심고합니다. ‘작은 행동하나가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희망은 좌절, 실패, 슬픔, 불행, 고통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태양과 같은 것이고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스승님께서 펼쳐 놓으신 경전의 말씀 속에서 찾아 나갔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삶 속에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살다가 환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희망과 좌절의 끝은 반드시 절대적 희망 즉, 개벽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한울님을 굳게 믿고 희망을 찾아 한울님의 사랑이 담긴 행복 주머니를 품속에 가득 안고 가시기를 심고합니다. 행복과 희망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꿈꾸면서 개벽의 길로 향했으면 합니다. 의암성사께서 「인여물개벽설」에서 “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함을 말함이다. 천지 만물의 개벽은 공기로써 하고 인생 만사의 개벽은 정신으로써 하나니, 너의 정신이 곧 천지의 공기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개벽의 시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우선 각자의 정신부터 개벽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각자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 실천해 나가는 것이 개벽의 시작이라 생각하기에, 희망을 꿈꾸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주어서 천도교인은 역시 다르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천도교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바탕에는 사인여천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즉, 사인여천을 바르게 실천하여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도원에 가면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거나, 화장실을 솔선해서 청소하는 모습, 그리고 교구에 일찍 나와 교당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 등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이런 모습들이 바로 작은 개벽의 시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내에서 누구든지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서로 인사하는 사인여천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면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극진히 존중하는 생활 태도를 보여 천도교인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일반인보다도 더 못한 언행을 하고 다툼만 일삼는다면 어떻게 일반 국민들을 포덕·교화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과 태도, 행동에서 오만함을 풍기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인여천을 실천하는 천도교인이 되기를 심고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삶의 기준이 나에게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생각과 판단의 기준을 한울님께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준이 아닌 한울님의 기준에서 우리의 바람이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한울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경전에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요, 구미산에 봄이 오니 온 세상이 꽃이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천도교의 진리는 반드시 차차 온 세계를 바꾸고 천도교의 땅인 이 나라에 큰 운수가 찾아와 한 시대의 아름다운 성배聖杯의 꽃이 가득히 필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분명 올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함께 미래를 향해, 희망의 배를 타고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성찰로 우리 교단의 현주소와 개선점을 점검해 보면서 화합과 상생의 시대로 새롭게 시작하는 천도 교단의 발전을 도모해 나아가야 합니다. 존경하는 동덕여러분! 진리와 화합의 등불. 그 주체는 바로 동덕 여러분이십니다. 교단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조언도 아끼지 않으셔야 합니다. 동덕 여러분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사심 없이 바로 보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의지대로 행동하는 자신 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심고합니다. 포덕 163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 믿으시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울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매매사사 간섭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모든 도가마다 한울님의 감응으로 희망이 솟아오르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라면서 오늘 설교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광암 박상종_ 교령 - 포덕 163년 7월호 신인간 지상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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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한민국 땅에 적정 인구 수는?인구문제로 시끄럽다.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난리다. 엊그제는 북한이 남침한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다. 무슨 또 안보 장사꾼이 설치나 했더니 현재의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이를 틈타서 북에서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악할 상상력이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했다가 “하나씩 낳더라도 한반도는 초만원”이라더니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 못 면한다”라고 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 온 남성들을 거의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는 4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을 때였다. 1983년이다. 1925년도에 남북한 다해서 인구가 1,900만이었다. 지금은 남한만 5,140만 명이다. 그런데 인구 절벽, 지역 소멸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출산 장려가 도를 넘고 있다. 4천만도 많다고 난리더니 5천만이 넘는 지금은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단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대한민국 땅은 11만 제곱킬로미터가 좀 안 된다. 이 땅에서 5천1백만의 인구는 1983년 4천만의 인구보다 모르긴 몰라도 두 배나 세 배는 더 쓰고 더 버리고 더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을 것이다. 소득과 지출과 생산이 인구 배수보다 몇 배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 땅에 적정 인구수는 몇 명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과시적인 소비와 지저분한 욕망과 맹목적인 경쟁을 줄이자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더 챙기고 더 쌓고 더 소비하는 데에 홀라당 정신이 빠져 있다. 남한의 현재 인구는 모든 측면에서 과잉이다. 이 땅에서 나는 것으로 2023년 현재의 5,140만 명이 먹고, 쓰고, 입고 살 수가 없다. 다른 나라의 자원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은 언젠가 한계에 직면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 생태계에 끼치는 부담을 ‘생태발자국’이라는 개념으로 수치화하여 표시하는데, 1인 기준으로 한국은 기준치의 3.3배다. 그만큼 인구 과밀현상과 과소비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80억 지구인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이다.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가 발표한 <한국 생태발자국 보고서 2016>에 나오는 얘기다. 결론은 쉽게 나온다. 인구를 1/3.3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국민 1인당 소비(또는 온실가스 배출량)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북한 동포나 다른 가난한 나라 등골을 빼 먹는 ‘기후 악당’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에너지 사용량을 국가별로 그린 지도가 있다. 남한보다 땅이 더 넓은 북한이 에너지 지도는 한국의 1/5쯤 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난은 가난한 나라들에 더 치명적이다. 똥 싸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는 게 지구 현실이다. 오늘은 AI나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소란을 피우고 내일은 출산율 저하로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떠든다. 앞뒤 안 맞는 주장이다. 일은 기계가 하게 하고 기계세, 자동화세, 부유세를 도입해서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을 대폭 늘이면 된다. 최저임금제처럼 소득 상한제를 도입하면 빈부격차도 줄이고 사회적 갈등도 해소된다. 소득 상한제는 미국이 대 공항을 앞두고 1920년대에 도입하여 성과를 본 제도이기도 하다. 끝내 소득재분배에 실패하여 1929년 대공항을 맞았다. 한국 인구. 더 줄어야 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나 괴질로 고통스럽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출산율 저하로 줄어드는 게 천만다행이다. 목암 전희식('밥은 하늘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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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간을 닮은 고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2022년 TV 인기드라마였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예상 외의 좋은 반응으로 각종 매체에서 많은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던져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변호사는 강점과 약점을 한 몸에 지닌 캐릭터로서 강점은 대부분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지만, 약점은 우리들 대부분이 깜짝 놀랄 만큼 취약하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우영우변호사와 함께 등장하는 고래에 필자는 더욱 관심을 가졌다. 필자는 지난 울산시교구 시일 설교시간에 우리 천도교에 ‘우영우 변호사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교단의 문제를 정확이 이해하고 해법을 찾아 교단에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있다면 교단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래는 새로운 발상을 하게하는 아이디어의 매개체이다. 집중하고 머리를 싸매어도 나오지 않는 해답이 고래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고래로부터 한울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혜성처럼 나타나서 해법을 주는 고래는 우리에게 한울님의 영감이라 생각된다. 고래가 던져주는 문제 해법의 지혜를 한울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인간을 닮은 고래도 역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이 지혜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으니 항상 준비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고래의 유유한 모습을 보며 평온함을 느끼는 그 마음이 곧 한울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다 깊은 곳에서 늘 따뜻하게 바라보는 고래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는 없을까? 필자는 2017년 6월부터 2023년 5월까지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이공계연구기초사업으로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 지속가능한 고래 콘텐츠개발 연구를 6년간 수행한 적이 있다. 대학에서 정년 은퇴 후에 시작된 야심찬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다. 울산에 소재한 고래박물관에 6년 간의 연구결과물을 금년 4월에 6일 간 전시했는데 4천여 명 이상의 방문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3D 고래콘텐츠가 담긴 AR글래스(Nreal Light)는 어린이들에게 관심도가 매우 높았고 인기를 끌었다. 고래의 진화과정 역시 흥미롭다. 고래는 약 6천만 년 전에 육상 포유류로부터 진화하면서 강으로 바다로 생활공간을 옮겨 왔다는 정설이 있다. 고대 화석, 해부학적 유사성, 지리적 분포, 유전적 변화 등으로부터 진화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고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인도휴스(Indohyus)는 6천만 년 전 인도의 카스미르(Kashmir) 지역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앞다리는 지느러미로, 퇴화된 뒷다리는 몸속에 남아 있고, 폐호흡을 하고 자궁 내에서 태아가 자라는 등 포유동물의 특징을 그대로 몸속에 지니고 있다. 고래의 특징 중에서 10개월 이상을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은 후 출산을 하고 새끼는 다시 어미젖을 먹고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모성애와 닮은 데가 많이 있다. 우리나라 근해에서 발견되는 돌고래들의 몸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는데, 어류나 갑각류 등 돌고래들의 먹이에 미세플라스틱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래가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는데 해양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해월신사님이 말씀하신 생태환경 보호와 모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고래도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니 우리는 고래 생태 보호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월신사님 법설 수심정기편에서 수심정기하는 법은 ‘효제온공(孝悌溫恭)’이라 하셨는데 이를 필자가 고래와 관련지어 표현한 시(하늘의 고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청명한 하늘에 아기 고래가 보인다 행복한 하늘은 저 만큼 있는데 다른 곳에도 하늘이 있음을 효도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공손한 마음이 머무는 곳 그 곳에 하늘이 있다 글, 울산교구 이암 정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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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천도교의 보국안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한가?지금으로부터 129전 전(前) 1894년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이하 동학혁명) 당시 동학이 내세웠던 첫 번째 실천이념이자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갑오동학혁명 때나 오늘 날 행해지는 기념식과 재현행사에서도 가장 선두에 펄럭이는 깃발과 선창구호가 보국안민이다. 그 다음으로 제폭구민(除暴救民)·광제창생(廣濟蒼生)·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등이 줄을 잇는다. 이처럼 동학혁명에서 상징적 이념, 캐치프레이즈의 깃발이 된 보국안민의 어원을 먼저 살펴보고 무슨 뜻이 담겨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보국안민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129년 전의 시대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또한 현재의 위기상황을 역사에서 지혜를 찾아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것에 있다. 보국안민의 어원은 수운 대신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동학(東學)의 상징이념인 보국안민의 어원(語源)은 수운 대신사 최제우(水雲 大神師 崔濟愚, 이하 , 수운 대신사)로부터 시작된다. 동학·천도교 제1세 교조 수운 대신사는 포덕 1년(1860) 경상도 경주 용담정(龍潭亭)에서 동학을 창도하였으며, 이듬해 1861년에 지은 동경대전(東經大全)_포덕문(布德文) 내용 중에 [輔國安民計將安出_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를 한탄하며 거론하였다. 그 후 수운 대신사께서 관과 지배층들의 탄압에 의해 전라도 남원에 오시게 된다. 당시 조선왕조사회는 왕이 천자(天子)라 하여 하늘을 대행한다는 절대 권력으로 백성을 통치하였으며,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별이 완고하였다. 그런데 수운 대신사께서 시천주(侍天主,사람에게는 한울님이 모셔져 있다.)하여, 사람과 하늘이 둘 아닌 하나라는 인즉천(人卽天,사람이 곧 하늘)이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하라는 인권(人權)을 천권(天權)으로 선언, 반만년 역사에서 신분차별이 무너지는 인간존중의 평등시대를 열었다. 이는 개벽(開闢)이요 혁명(革命)과 같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관리와 지배층의 탄압은 불 보듯 빤한 상황이었다. 수운 대신사께서 보수성이 강한 경상도 경주를 떠나 개혁성이 강한 전라도 남원 땅에 오신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수운 대신사께서 1861년 12월(음력) 중순에 남원에 도착하여 12월 말부터 1862년 5월 중순까지 교룡산성 선국사 암자인 덕밀암(德密庵)을 은적암(隱蹟庵)이라 고쳐 부르고 은거하신다. 이때 지은 경서들은 권학가(勸學歌), 도수사(道修詞) 동학론(東學論,논학문_論學文) 등 동학경전의 핵심을 이룬다. 은적암에서 1월초에 지은 권학가 내용 중에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할꼬’라는 말씀이 나온다. 당시 안으로는 조선왕조체제와 국교인 유교(儒敎)의 지배이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밖으로는 서양세력과 일본(日本)의 침략에 대한 절박한 위기상황이었다. 권학가에 보국안민을 재차 강조한 다음 바로 전주에 오셔서 동학을 포덕(布德)하신다. 수운 대신사께서 남원을 중심으로 전주 등 호남지역을 순회하면서, 그 유명한 동학혁명군의 군가와 훈련 때 쓰인 칼노래를 지어 칼춤을 행하셨다. 이는 1894년 동학혁명이 전라도에서 기포한 역사적인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늘날 보국안민은 자주적 평화통일에서 찾을 수 있다. 국어사전에는‘보국안민(輔國安民,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으로 되어 있다. 이런 해석은 넓은 의미로서 많은 해석 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진정한 의미의 보국안민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으로 나라를 돕고,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모든 제도를 없앤다. 둘째-외적들의 침략에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의 피해가 없도록 보살핀다. 셋째-세계 각 나라들은 자주적으로 나라를 보전하고, 인류평등에 입각하여 각자 백성들을 편안하게 모신다. 이런 의미를 부여해야 진정한 보국안민을 설명할 수 있다. 현재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진정 보국안민의 계책이 코앞에 닥쳐왔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총부리를 마주하고 있으며, 북한은 핵무장으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이란 이유로 한국 등 주변 국가들의 반대에도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의 법률개정을 묵인하였다. 일본은 헌법을 개정하여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한반도를 바라보는 눈들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최근에 한·미·일 동맹으로 나아가는 것과, 북·중·러의 동맹으로 나아가는 쌍방 삼각동맹은 분단된 우리나라에 있어 다시 신(新) 냉전시대(冷戰時代)에 본격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북은 물론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밀착된 외교관계는 앞으로 군사훈련 등 일본의 과거사 반성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것에, 바로 129년 전 동학혁명 당시의 국제정세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보국안민을 논한다면 남북의 자주적·평화적 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된다는 것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한 동학의병은 독립전쟁으로 맞섰다. 동학혁명 2차 기포는 바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 점령 즉 국권침탈에 맞서 척왜(斥倭), 동학·천도교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崔時亨)의 동학군 총기포령에 의한 전봉준(全琫準) 대장과 손병희 통령의 양호의병창의군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대일항쟁 즉 독립전쟁(獨立戰爭)을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일본의 조선 식민지 침략전쟁에 의해 수십만의 동학의병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임진왜란과 갑오왜란의 주범 일본과 군사동맹 운운하는 것은 잘못하다간 망국이라는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오늘 날 다시 보국안민을 외칠 수밖에 없다. 동학·천도교(東學·天道敎) 3세 교조이며, 동학혁명군 대통령과 3.1독립운동 영도자 의암성사(義菴聖師) 손병희(孫秉熙)는 도전(道戰) 즉 진리와 사상전, 재전(財戰) 즉 경제와 무역전, 언전(言戰) 즉 정치와 외교전의 삼전론(三戰論)이 보국안민의 계책이라 말씀하였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지난 역사 속에 지혜를 찾아 보국안민의 현명한 대처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모두 직시해야 한다. 동학·천도교 제4세 대도주 춘암상사(春菴上師) 박인호(朴寅浩)는 ‘참에 살고 거짓에 죽는다.’고 말씀했다. 다시 말씀드려, 보국안민의 참다운 정신에 살고,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거짓에 죽는다는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야 한다. 따라서 동학·천도교의 ‘보국안민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글. 송암 이윤영(천도교 직접도훈, 동학혁명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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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내년이면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는다. 동학농민혁명은 기록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십만 명의 동학혁명군이 희생되었다.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1894년 1월 10일 고부에서 첫 기포한 동학농민혁명은 1895년 초까지 호남을 비롯하여 영남, 호서, 경기, 강원, 해서 등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정부 관군과 동학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병한 일본군의 연합전선으로 각지에서 동학혁명군은 죽임을 당하였다. 일부에서는 이를 제노사이드 즉 대학살이라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앞두고 지난 10월 30일 오전 11시 반경 전남 나주시 나주역사공원 내에서 동학혁명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일본인 동학기행 참가자 30여 명과 한국 측 참가자, 신정훈 국회의원, 윤병태 나주시장 등 한·일 두 나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참석자들은 이날 동학혁명군의 넋을 기리면서 전날 세상을 떠난 고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95) 사죄비 건립 일본 쪽 공동추진위원장(일본 나라대학 명예교수)을 추모하는 묵념을 올렸다. 제막식은 사죄비 제막, 나천수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의 경과보고, 동학농민혁명군의 혼을 부른 시 낭송과 살풀이춤(작시 나천수, 살풀이춤 나금자, 시 낭송 김태정), 이노우에 가츠오(井上勝生)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와 나천수 공동대표의 비문 낭독,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와 박맹수 사죄비건립추진위원장의 각각 인사말, 윤병내 나주시장의 환영사, 신정훈 국회의원·이상만 나주시의회 의장·주영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의 축사, 기념촬영의 순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주영채(주선원) 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은 축사에서 ‘슬픈 가족사’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그는 “나주 동학농민군 희생자 사죄비는 한국과 일본 ‘동학’ 시민들의 노고와 바람의 결실”이며, “사죄비의 현장은 한·일 평화와 화해의 원점이자 동북아·세계 평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죄비 건립 경과보고에 의하면, 2018년 제13차 한일동학기행 방문단이 나주 호남초토영을 답사하면서 비롯되었다. 나주 호남초토영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 의해 동학혁명군의 처형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호남초토영은 동학혁명군의 진압 책임자인 일본군 미나미 고시로(南小次郞) 소좌가 관장하고 있었다. 일본 동학기행 방문단을 이끌던 나카츠카 교수는 “일본군이 가해했던 역사를 덮어 놓는다는 것은 학자적 양심에 위배된다”하고 조그마한 위령비를 세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를 계기로 시작된 위령비 건립은 이듬해 2019년 민간인인 차원에서 건립하기로 하였다. 위령비는 2019년 나주에서 개최된 한일동학학술대회에서 이노우에 교수가 ‘사죄문’을 발표한 후 <사죄비>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22년 일본 측에서 건립 모금운동을 전개하였고, 한국 측에서 뜻있는 시민들의 모금운동이 이어졌으며, 2023년 10월 30일 사죄비를 제막하였다. 한편 이날 사죄비 제막식에는 천도교 측에서는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 관장, 성주현 신인간 주필, 박길수 모시는사람들 대표, 김명재 순천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소 사무국장 등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사진, 글_성주현(신인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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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1운동 기록물을 준비하자8월 29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는 동학혁명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문체부 산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정읍시의 공동주최로 진행된 식에서는 그동안 수고한 각 영역의 전문가와 단체에 대한 공로패 증정과 함께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지켜온 천도교단 등 기관에도 감사패가 전달되었다. 이제 동학혁명의 기록물은 자랑스럽게 전 세계로부터 공인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다봐야만 하는 입장에서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동학혁명의 역사가 천도교단의 소유는 아닌 전 민족의 것에서 이제는 세계적인 유산이 된 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웬지 객으로 전락한 천도교의 모습은 초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도 천도교단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등재 이후에도 거듭 발굴되고 있는 당시의 기록물들은 물론 남은 기록물들을 어떻게 선양하고 후대의 자랑거리로 삼을 것인가는 천도교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의 역사가 혹자에게는 연구의 대상으로 또는 직업의 구실이 될 수 있지만 천도교인들은 그것을 지키고 계승시켜야 하는 일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비록 동학혁명의 유산은 그렇다고 쳐도 우리 역사에 동학혁명 이상으로 크게 각인되어 있는 3.1혁명의 기록들은 어쩔 것인가. 동학혁명 못지않게 우리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 3.1혁명 역시 천도교가 중심이었다. 천도교단은 종단의 명운을 걸고 자금과 조직 그리고 인물들이 총동원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기미년 3월부터 5월까지 참여인원이 200만명이 넘었고 만세 시위 중 희생된 분들만도 7천 5백명 그리고 체포 구금된 분들도 5만명 이상이었다. 대부분이 천도교인들의 참여와 지도급 인사들의 준비와 선도 덕분이었고 그 결과는 오늘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었다. 3.1혁명은 동학혁명보다 더 확실한 기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동학혁명의 최고의 지도자로 유일한 생존자였던 의암 손병희의 기록들과 지방 인재 양성기관 역할을 하였던 봉황각, 인쇄소 보성사의 기록과 전국의 시위 현황들과 증언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록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천도교단이 진정한 주인으로서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 기록들을 살펴내고 정리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남겨질 수 있도록 타 조직을 이끌고 주도해 나가야 한다. 더이상 피할 명분도 또는 누군가 해 주겠지 하는 의식은 통하지 않는다. 물론 천도교단은 여전히 인력과 자금이 부족하다. 그러나 준비는 그것을 느낀 시간부터이다.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무엇을 보충해야 할지를 어떻게 판을 짤 것인지 등을 강구해야 한다.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우리 선배들은 지금보다 더 엄혹한 시절에 동학혁명을 수행하였고 또 3.1혁명을 지도하였다. 과연 후손임을 자부하는 천도교의 위상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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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유적지를 찾아서(2)2022년 11월 20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동면 화암약수터 입구까지 산책하다가 오는 도중에 정선문화원과 정선군 향토사연구소에서 설치한 동학유허지 싸내에는 (동학교조 수운 대신사 부인 박씨 사모님이 말년에 기거하시던 곳이다) 대신사가 1864년 참형을 받아 순도하신 이후 박씨 사모님은 단양접주 민사엽(閔士葉)의 도움으로 정선 문두곡에서 사시다가 민사엽이 환원하자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그후 2세 교조 해월신사(海月神師)가 정선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도접주 유인상(劉寅常) 등의 주선으로 1872년 이곳 싸내(米川)에 정착하시게 되었다. 대신사부인 박씨 사모님은 동학도인(東學道人)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1873년 12월 10일 향년 49세로 환원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 후에는 사시던 터라는 곳은 찾을 길이 없이 싸내에 유허지만 남아 있다. 우리 일행은 유허지 밑에 꽃씨를 뿌리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점심도시락을 각자 받아가지고 숙소 근처에 있는 화암동굴(畵岩洞窟)을 견학하기로 하여 도보로 동굴에 도착, 화암동굴은 금광석과 석회석 자연동굴이 함께 어울러져 있는 세계 유일의 화암동굴은 세계문화 유산이 되었단다. 대자연의 신비 화암동굴은 동양최대 규모의 유석폭포는 높이 28m의 황금색 종류 폭포로 웅장한 규모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6억년 동안 생성된 대석순과 석주(石柱)가 자리잡고 부처상과 성모마리아상은 정교하기가 극치를 이루고 남근(男根)은 천하일품이다. 화암동굴을 관람하고 우리는 해월신사께서 49일 기도를 하신 적조암(寂照庵)으로 자동차 편에 분승하여 태백산 고한으로 출발하였다. 적조암 입구에 고한(古汗) 사랑이라는 서비(石碑)가 있으며 아래쪽에 정선문화원에서 세운 동학유허지에 기록을 보면 적조암은 동학2세 교조 해월신사 최시형(海月神師 崔時亨, 1927-1898년)가 1872년 10월 15일부터 12월 5일까지 49일의 특별기도를 드린 곳이다. 당시 해월신사는 적조암의 老스님 철수좌(哲首座)의 양해를 얻어 강수, 윤인상, 전성문, 김해성 등 동학의 지도자를 대동하고 특별기도를 하였다. 이 특별기도는 이필재의 난(1871년 3월)에 풍비박산이 된 동학교문이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강원도 정선과 영월, 충청도 단양 등 삼남일대로 교세를 넓혀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적조암으로 오르는 길은 산길인데,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 울퉁불퉁하여 잠시도 소홀히 하면 넘어질 수 있어 조심조심 가파른 돌길을 오르는데 힘이 들어 몇 번 쉬었다가 오르니 적조암에 도착하였다. 이정표가 있어 살펴보니 정암사 2.8km 만항재 3.7km 자장율사 순례길이라 기록되었는데 적조암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적조암의 터를 보니 배산(背山)이 병풍을 쳐놓은 듯 좋으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며 안산(案山)이 조화를 이루었는데 개울물이 돌속으로 숨어 흐르니 물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에 기도를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나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적조암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편으로 고한역이 아닌 민둥산역으로 출발하였다. 민둥산역은 옛 지명은 증산역이었다. 증산역은 지명(地名)에서 유래되었는데 동쪽에 고부산 북쪽에 지억산 남쪽에 두위봉이 둘러선 가운데 시루봉이 있다는 증산 떡시루 갔다하여 증산이라 하였는데 석탄생산으로 한때 번창하였지만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새로 2009년 주민들이 민둥산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통하여 관광자원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억세풀축제로 말이다. 우리는 민둥산 역에서 서울 청량리 도착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표가 있어 피곤함을 풀기가 좋았다. 사진, 글_ 허 유 충남 공주 출생. 아호 : 창포(蒼.浦). 서예가. (사)한국비림박물관 관장. 문화예술신지식인. 한국비림박물관서화대전 운영위원장. 중국한원비림 고문. 중국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중국한국명예대사. <한빛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4회 <한빛문학상> 수상.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회원 *본 글은 2023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으로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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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유적지를 찾아서(1)2022년 11월 19일 토요일 오전 7시 34분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동해 -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싣고 박동산 선생님의 인솔 아래 16명이 동행하였다. 정선 민둥산 갈대축제로 기차표가 매진되어 입석으로 가게 되었다. 성강현 교수님, 종무원, 정갑선 현 교무관장, 여성회장 등이 합류하여 정시에 출발하였다. 좌석이 없으니 사람이 없는 자리를 찾아다니면서 기차는 달리고 있다. 벌써 덕소, 양평을 지나 용문 지평을 지나더니, 석불(石佛), 일신 매곡(梅谷) 양동, 삼산을 거처 서원주(西原州)에 도착하니 자리가 많이 남아 우리 일행 모두가 의자에 앉게 되었다. 원주(原州)역에 9시에 도착 제천, 연당, 영월, 예미(禮美)을 지나 자미원역 민둥산 역에 10시45분에 도착하여 남면(별아곡역) 옆 청솔가든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목적지 동면 싸네로 도보행진으로 출발하였다. 정성군 남면은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고려가 망하고 두문동(杜門洞) 72인 중 7인이 정선으로 은거하던 곳으로 매일같이 고려 수도가 있는 송도(松都)에 북향 제배하고 충신불사2군(忠臣不事二君)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절로서의 지조를 지키던 곳이다. 두문동 7인은 전오륜, 김충한, 고천우, 이수생, 황의용, 변귀수, 김한 등 7현(七賢)이 매일같이 산위에 올라 통곡하여 한시(漢詩)로 달래니, 이 시(詩)가 인근에 전하여져 정선아리랑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1978년경에 정선문화원 최문규 원장이 두문동 7인의 도원가곡(桃園歌曲)의 자료를 발견하여 정선역 광장에 도원가곡비를 세우게 되었다. 내가 제호를 쓰게 되어 제막식에 참석하여 그후로 매년 화암약수(畵岩藥水)터 시비(詩碑)를 지은 정공채 시인과 같이 최문규 원장의 초청으로 하계학교 강사로 참석하였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는데, 남면에서 동면으로 넘어오는 길은 초행이며 도보(徒步)로 걷다보니 다리도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길목 작은 동리에 처음 보는 고목이 느릅나무(楡)라고 하는데 730년 되는 수령이며 보호수(保護樹)란다. 그 동네에 군락을 이루는데 3그루가 제일 오래된 보호수다.(정선군 남면 유명리) 고구려 평원왕 공주가 어려서 울기를 좋아하여 왕인 아버지가 자주 울며는 장차 공주는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하였더니 공주가 자라서 아버지 평원왕 호위무사장군한테 정혼하려고 하니 공주 말이 어렸을 때 바보 온달한테 시집보낸다고 하셨으니 바보 온달한테 시집간다니 바보 온달보다 바보 공주가 아닌가. 시녀 한 명과 금은보화를 가지고 산속으로 바보 온달을 찾아가 보니 늙은 어머니는 장님이고 온달은 나무꾼인데 그래도 공주는 어려서 아버지가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패물을 정리하여 말(馬)을 사고 훈련시켜 장군을 만들었는데, 힘이 천하장사라 젊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생계를 하다 보니 그중에 느릅나무로 양식을 하였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중국 집안시(集安市) 그 당시 고구려 수도에 가며는 느릅나무로 녹말을 만들어 국수와 부침도 해먹고 있다. 남면에 있는 730년이나 되는 느릅나무는 대단한 보호수다. 느릅나무 보호수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싸내를 향하여 걷고 또 걸어 화암 약수터에 도착하였다. 나는 몇 차례 약수터에 왔기 때문에 낯설지가 않았는데 화암장(畵岩莊) 숙소가 변하였다. 서울에 계신 김수복(金洙福) 여사가 운영하던 곳으로 정선문화원 최문규 원장과 2박 정도 숙박을 하였었다. 김수복 여사는 5년 전에 고인이 되셨다고 여걸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화암장이 지금은 군청에서 인수하여 화암 콘도를 개조하여 관광객들을 받는다고 하며 화암약수터는 그대로인데 정공채 시인의 시가 나그네를 반기네요. 화암 약수터까지 성강현 교수, 정갑선 교무관장 나와 셋이서 약수 한 잔씩 마시고 탁주일배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 다시 싸내로 출발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서 1시간을 기다리니 동학도들이 도착하기 시작, 꿀맛 같은 만찬으로 시작 기도를 하고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사진, 글_ 허 유 충남 공주 출생. 아호 : 창포(蒼.浦). 서예가. (사)한국비림박물관 관장. 문화예술신지식인. 한국비림박물관서화대전 운영위원장. 중국한원비림 고문. 중국상지비림 명예박물관장. 중국중원공자학회 명예회장. 한국고서연구회 부회장. 세계비림협회 한국대표. 중국한국명예대사. <한빛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등단. 제4회 <한빛문학상> 수상.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 회원 *본 글은 2023 제13회 <시와 창착 문학상> 특별문화대상 수상작으로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본지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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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영웅 최진립 장군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글을 남겼다. “우리 선조 험천 땅에 공덕비를 높이 세워 만고유전 하여보세. 송백 같은 이내 절개 금석으로 세울 줄을 세상 사람 뉘가 알꼬.”, “선조의 충의와 절개는 용산에 남아 있네. 해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우리 임금님 성덕을 다시 돌아보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언급한 ‘선조’는 잠와 최진립 장군으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7대조이다. ‘용산’은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용산서원을 말한다. 유림에서는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학문을 기려 용산서원을 창건하여 공을 제향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숙종 37년에 임금이 친히 ‘숭렬사우崇烈祠宇’로 글을 내린 사액 사당이다. 당시 무신으로 사액 사당을 받은 이는 이순신과 김시민 장군뿐일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용산서원 입구에 공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1568~1636) 장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최진립 장군은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의 17세 후손이며 사성공 최예의 6세 후손이다. 1568년 경주 현곡면 하구리 구미산 아래에서 참판공 최신보와 평해황씨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나 자랐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4월 21일 경주성이 함락됐다. 당시 25세였던 장군은 아우 최계종, 당숙 최신린, 최봉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해 5월 27일 김호, 손엽, 권사악, 이눌 등의 의병장들과 힘을 합해 계연(김유신 장군 묘 아래 경주 서천 일원)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6월 2일에는 언양에서 경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김기 의병장과 함께 열박재(충의당과 울주군 두서면의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7월 27일에는 경주 손엽, 권복시, 권사민 의병장들과 함께 영천성 수복 전투에도 참전해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결사대 100여 명을 이끌고 울산 서생포에 주둔 중인 적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렸다. 장군은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2등을 받았고, 훈련부정, 도총도부사, 마량진 첨사, 경원 부사 등을 역임했다.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 군대는 며칠 지나지도 않은 12월 16일에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까지 포위했다. 최진립 장군은 69세라는 많은 나이에도 군사를 일으켜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했다. 그가 전장으로 달려가기 직전, 충청감사 정세규가 ‘늙어 전장에 나가기 마땅치 않다’고 만류했지만 최진립 장군은 “내가 늙어 싸워서 이길 수 없더라도 한번 죽어 나라에 보답할 수는 있다”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637년 1월 2일, 청나라 장수 양고리(楊古利·양굴리)가 이끄는 적과 대치했다. 열세인 상황에서 최진립, 나성 현감 김홍익, 남포 현감 이경징, 금정 찰방 이상재 등은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이 부족하고 전투력이 미약한 소수 부대지만 잘 통솔하여 적과 대등하게 싸웠고, 하루종일 10여 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아군은 탄약과 화살이 바닥나고 군사도 이미 반이나 잃었다. 최진립 장군은 공주영장으로 군사를 이끌고 용인 험천 전투에 참여하여 용전하다가 장렬히 순절했다. 다음 해에 시체를 수습했는데 ‘그 모양이 살아 있는 듯하고 화살과 총알이 고슴도치처럼 박혀 있었다’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름을 떨쳤던 장수 중 1636년 병자호란 때까지 생존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일본군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한 김충선이 당시 63세의 고령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한 사실이 두드러지는 정도다. 그런 만큼 불과 25세의 나이로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참전했던 최진립 장군의 69세 병자호란 참전과 순절은 특별한 이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진립 장군 묘소는 나라에서 내린 명당 터에 장지를 마련하여 장례를 치르고,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정무貞武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청백리에 녹선하였다. 고향 내남면 이조리에 정려비각을 세워 충절을 만대에 전하도록 하였다. 최진립 장군 묘소 뒤편에는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던 셋째아들 현감공 최동량의 묘소가 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실천하며,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고, 해방 후 대구대학을 설립하여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경주 최부자의 현조이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99호인 충의당은 경주 최씨 종가로 최진립 장군이 살았던 집이다. 본래 당호는 흠흠당欽欽堂이었는데, 1760년 무렵 건물을 고쳐 지으면서 집 이름을 충의당으로 바꾸었다. 충의당 일대는 ‘충의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장군의 기마동상과 유물관인 충의관이 건립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취재진이 충의당 종택을 방문한 날 종손을 만나 집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한씨 사모님 이야기도 있었다. 사당인 충렬사와 닫혀있던 최진립 장군 위패도 열어서 보여주셨다. 사당 들어가는 입구에 200년 된 매실나무가 세월의 인고를 견디며 잘 자라고 있다. 기나긴 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고 꽃 활짝 피는 날 다시 방문하고 싶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탄신하신 비슷한 시기에 심어졌으리라 여겨진다. 동학 3대 교주 의암 손병희는 마지막 경주 최부자인 최준을 나이로는 22살이나 많았지만 늘 존중했다고 한다. 최준에게 수시로 “동학은 경주 최씨와 최부자 가문의 가르침”이라며 예우했다. 경주 최씨, 그중 최진립 장군으로 시작되는 가계도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런 표현을 했을 것이다. 최진립 장군 묘소 아래 사패지賜牌地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건립되니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동학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최진립 장군의 7세손이니 공의 위대한 정신은 자손 대대로 이어졌다. 글 조성갑 사진 최인경 (탐방 팁) 용산서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 충의당과 충의공원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충의당길 15 최진립 장군 정려비 :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513-1 최진립 장군 묘소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산 157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아파트 입구)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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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상대로 최초의 위대한 승리내포 동학, 하나의 세력으로 내포 지역의 동학은 1880년대 초에 전파되고 18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1894년 5월 홍주 목사 이승우李勝宇가 부임하면서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승우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동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관군을 동원하여 체포와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내포의 동학군들은 하나의 세력으로 거대화하려는 자구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는 지역적으로 포별 각개활동을 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국적으로는 이른바 2차 봉기의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포의 동학군들도 그동안 위축되었던 활동을 회복하고,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목적에 동참하기 위하여 여미벌(餘美坪, 현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총집결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여미벌에서는 ‘내포 동학군’이라는 하나의 거대 조직이 탄생하게 되었고, 내포 각지에서 활동하던 동학도들이 여미벌에 총집결하니 그 수가 1만 50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총봉기를 향한 서막-역사적 전투로 이들은 여미벌에서 창의의 뜻을 바로세우고 기세를 올리며, 대오를 엄중히 하고 식량과 무기를 준비하는 등 조직을 재편하면서 조만간 닥쳐올 전쟁에 대해서도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1894년 10월, 여미벌에서는 동학군의 총봉기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경복궁을 불법 점령하고 국왕을 능멸하며 국정을 농단하는 일본군을 일거에 몰아내고, 반민족적 탐관오리들까지 축출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여미벌에서 박인호를 중심으로 한 총봉기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무렵, 내포 동학군들은 한양으로부터 진압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드디어 10월 24일, 내포 동학군들은 경군과 일본군의 연합 부대를 맞아 현재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승전목(勝戰項, 승전곡勝戰谷, 승전우僧田隅)에서 역사적인 전투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승전목 전투’이다. 승전목 전투에서 운명을 걸다 승전목은 당진군 당진읍 구룡리 동쪽과 면천면 사기소리 서쪽에 걸쳐 약 3km 정도의 좁은 계곡을 이룬 곳이다. 계곡의 북쪽에는 이배산(離背山, 220m)이, 남쪽에는 웅산(雄山, 253m)이 솟아 있어 깊고 좁으며 꼬불꼬불하게 난 계곡 길을 굽어보고 있다. 내포 동학군들은 자신들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군과 경군의 이동 경로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일본군과 경군이 면천을 출발해 여미로 향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황급히 용장천을 따라 도동에 도착해서는 이배산 서쪽의 험한 능선과 반대편 검암산 능선에 미리 매복하였다. 승전목은 완벽한 S자형 협곡으로 수십m 높이의 바위들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험한 지형이다. 이 협곡을 따라 나있는 샛길이 바로 면천과 운산을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내포 동학군들은 바로 이 길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압군들은 삼웅리를 지나면서 동학군의 척후병과 맞닥뜨렸으나 간단하게 제압하였고, 승전목 입구에서도 400여 명의 동학군과 재차 교전을 치르고는 곧바로 승전목에 다다랐다. 기록에 남은 승전곡 전투 당시 치열했던 승전곡 전투 상황을 사료를 통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선봉 척후가 관군이 행군해 옴을 보고하니 우리는 승전곡 양 산등으로 올라가 복병하고 있었소, 관군이 골짜기 속으로 몰려들어 왔소. 관군이 골짜기를 들어서자 우리는 곧 전단을 일으켜 교전 1시간여에 관군을 여지없이 대파하니…… 여미로 출병했던 병사들이 승전곡에 이르러 겨우 일진을 돌파하고 검암 후봉에 이르렀으나 수만명이 진을 친 것을 보고 기가 질려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퇴병했다고 한다. 경군과 일본군이 면천의 도동에 이르러 처음으로 적과 부딪혀서 한 번 싸워 이기고 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 경병과 일본군이 지세의 험준함을 알지 못하고 급히 험하고 막힌 곳에 들어가 적에게 포위를 당했는데 군사의 수효가 매우 차이가 나서 탈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혼자 도망쳐 와서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했다. 적은 승전곡의 협애를 끼고 방어했으며 그 수가 400명, 500명 되지만 드디어 격파하고 여미의 고지를 향해 전진했다. 그러나 적은 사방의 고지를 점령하고 사력을 다해 이곳을 지켰다. 그 수가 각처에 5,000여 명씩 있었으며 1개 소대의 병력으로 이를 공격하려 해도 우리를 포위하고 급습하여 끝내 지탱할 수 없어서 홍주로 퇴각하였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당시 전투 상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동학군들은 미리 산 양쪽을 선점하고 매복하였으며 일본군과 경군이 진격해 오자 일차 교전하고 패전하는 척 가장하여 연합군을 골짜기 안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방어전을 펼친 내포 동학군의 숫자는 15,000여 명으로 추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과 경군은 자신들의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승전목 앞까지 다다랐다. 긴박한 순간들, 전투 하지만 이들도 승전목의 험한 지형에 매복한 동학군들을 보자 멈칫거렸고,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과감히 돌파하기로 작전을 변경하고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배산과 검암산의 양쪽 능선을 모두 선점한 동학군들은 열세한 무기와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유리한 지형지물을 십분 활용하면서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방어전을 펼쳤다. 전투 시간이 길어지고 한 시간이 지났지만 동학군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서 일본군과 경군은 조금도 진격할 수가 없었다. 전투가 교착 상태에 빠질 무렵 때마침 불어오는 서풍을 이용하여 동학군들이 화공을 시작하였다. 거센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앞을 가리자 검암산 쪽으로 진격하던 관군들이 먼저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일본군의 기세마저 급격하게 꺾이기 시작하였다. 이를 목도한 동학군들이 용기백배하여 한꺼번에 산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며 압박을 가하자, 일본군과 경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때에 일본군들은 앞다퉈 쫓겨 가면서 개인의 군장까지 모두 팽개치고 달아났다. 그들이 얼마나 다급하게 도망쳤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승전목 전투에서 첫 승을 거머쥔 동학군들은 배낭 78개, 상하 겨울 내의 78벌, 휴대 식량 312인분, 일대 78개, 수첩 78개, 깡통과 소금 각각 78개, 쌀자루 78매, 반합 78개, 구두 78켤레 등 다량의 노획물도 획득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하다 승전목 전투에서 동학군들의 승리는, 연합군을 지휘한 일본군들이 내포 동학군들을 너무 얕본 원인도 있겠지만, 이미 엄청난 수와 조직적인 움직임 그리고 전투력 측면에서 이미 이전의 동학군들과는 월등히 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승전목 전투는 내포 동학군들에게 첫 승리로, 일본군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낼 수 있는 대승이었다. 이날의 전투는 동학군들이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한 단 두 곳 중 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군과 정면 전투에서 승리한 유일무이한 전투로도 알려져 있다. 전승지로서의 승전곡-승전목 승전곡이라는 명칭은 동학 연구자들 사이에 불리는 명칭이고, 당진 지역민들 사이에는 승전곡보다는 승전목으로 불리고 있다. 내포문화숲길에서 ‘내포동학길 1코스’(9.4km, 약 3시간 30분 소요)가 동학군이 무혈입성한 면천읍성을 출발해 승전목 전투지까지 조성되어 있다. 현재 승전목 전승지는 당진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석산 개발과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파괴되어 훼손이 심각한 상태이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승전목 전승지가 개발과 발전 논리에 계속 파괴되고 있다. 향토유적은 비지정 문화재의 범주이기에 온전한 문화재의 보존관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향토유적의 밑바탕에서 시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다. 당진시는 승전목 전승지를 시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노력하고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글 조성갑 (탐방 팁) 승전목(곡) 전투(승)지 : 충남 당진시 면천로 142 (참고문헌) 디지털당진문화대전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양상과 승전목전투 당진지역 농민항쟁 관련 역사자원의 활용 당진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실태와 보존 방안 동학농민혁명 시기 당진 동학농민군 활동과 문화콘텐츠 활용방안 [출처] 승전목 전투, 일본군 상대로 최초의 위대한 승리|작성자 동학집강소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