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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놀러온 디즈니 캐릭터…28일부터 ‘미키 in 덕수궁’ 개최덕수궁 돈덕전에 디즈니 캐릭터들이 방문해 왕실 유산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와 함께 28일부터 10월 20일까지 서울 중구의 덕수궁에서 ‘미키 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 전시를 공동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국가유산의 전통적 가치를 제고하고 국내외에 널리 홍보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디즈니코리아가 지난 6월 체결한 업무협약의 일환이다. 이에 국가유산 홍보대사이기도 한 우나영 작가(필명 흑요석)는 ‘미키와 친구들’이 한국을 여행하며 덕수궁 등의 국가유산을 거닐며 체험하는 모습을 6폭 병풍에 담아냈다. 먼저 덕수궁 연지에서는 새 위에 디즈니 캐릭터가 걸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강재원 현대미술 작가의 풍선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돈덕전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김세동, 우나영, 성립, 부원, 장승진, 박서우 등의 현대미술 작가들과 국가무형유산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 등 여러 예술가들이 디즈니 캐릭터를 주제로 협업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중 우나영 작가는 장수를 기원하는 궁중회화인 십장생도에서 영감을 받아 ‘미키와 친구들’을 6폭 병풍에 그린 ‘미키장생도’를 선보인다. 아울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졸업생인 이문현 도예 작가는 도자 작품을 출품했다. 김세동 작가는 우리 궁궐 앞에서 디즈니 캐릭터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감각적인 디지털 출력 작품으로 만들었다. 성립 작가는 디즈니 캐릭터를 섬세한 선과 여백으로, 부원 작가는 연꽃 위에 서있는 디즈니 캐릭터를 도자기로 재해석해 궁궐유산과 어우러진 디즈니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덕수궁 돈덕전과 회화나무를 배경으로 한 디즈니 캐릭터들을 담은 박서우 작가의 세밀화도 놓치면 아쉬운 작품이다. 이밖에도 미키의 손을 소재로 현대미술 분야의 장승진 작가와 단청장 이수자 안유진이 협업해 전통과 현대의 멋을 같이 느낄 수 있게 제작한 오브제 작품도 공개한다. 특히 전시의 즐거움을 더할 부대행사도 운영하는데, 덕수궁 곳곳에는 디즈니 캐릭터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과 함께 전통문양과 디즈니 캐릭터가 적용된 인생네컷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덕수궁관리소는 그룹 악뮤(AKMU)의 수현이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디즈니 주제곡을 새롭게 재해석해 촬영한 뮤직비디오도 국가유산청 유튜브와 국가유산채널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전시를 기념한 홍보영상도 준비되는 바, 미키와 친구들이 서울을 방문해 덕수궁 돈덕전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전시기간 중에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광판과 서울 중구의 주요지역 옥외전광판에서 상영된다.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이번 전시와 함께 앞으로도 다양한 기관이나 전통·현대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적극행정을 통해 우리의 궁궐유산을 국내외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소개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시는 기간 내 덕수궁 휴궁일(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 가능(입장마감 오후 5시)하며, 연지에 전시된 강재원 작가의 조형물 작품은 덕수궁 관람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감상할 수 있다. 문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02-751-0755)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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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동학혁명기념관 방문지난 9월 28일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이사장: 가명현)는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을 예약 방문하였다. 세종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동학혁명기념관 방문 후 전주동학농민혁명 유적지와 한옥마을, 전주향교, 경기전 등 전주문화역사기행 후, 공주 우금티 동학의병전쟁 최대전적지 역사탐방에 나섰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약 1시간 30분여분 동안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사를 강의 및 해설을 하였다. 이윤영 관장은 동학·천도교 창도주 수운 대신사 최제우 선생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侍天主(시천주)·人卽天(인즉천)·事人如天(사인여천) 등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또 동학 2세 교주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 3세 교주 의암성사 손병희 선생, 4세 대도주 춘암상사 박인호 선생에 대해, 수운 선생의 가르침인 “사람이 곧 한울이다. 사람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실천덕목과 「보국안민·포덕천하·광제창생·척양척왜」의 실천철학에 대해 설명하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장군 등의 혁명사상과 동학혁명전개과정을, 또한 2차 동학농민혁명 즉 항일무장투쟁인 동학의병전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이윤영 관장은 “동학농민혁명은 지금까지의 명예회복과 전국화·세계화·미래화를 실천하는데 있어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특별법제정ㆍ2019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ㆍ2023년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이 이뤄졌다. 앞으로의 과제는 동학농민혁명정신 헌법 전문 수록과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즉 동학의병전쟁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이 남았다. 헌법전문수록과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져야 진정한 동학농민혁명의 명예회복이라 할 수 있으며, 동학순국선열에 대한 후손된 자로서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가명현 이사장, 오수선 상임이사, 황우진 사무처장, 송두범, 이의규 임원 등 동학탐방 임원 및 회원들은 이윤영 관장의 강의와 해설이 끝난 뒤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사업회 임원 및 회원 모두가 역사에 대한 전문가라 질의하는 내용도 전체적인 내용을 아우르면서 핵심을 찌르는 깊이 있는 내용들이었다. 끝으로 가명현 이사장의 동학혁명기념관 역사탐방 정리말씀과 정성원 전 우금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요약된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한 설명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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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여성회, 2024 이웃사랑실천운동천도교여성회는 포덕 165(2024)년 9월 2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중앙대교당에서 쌀, KF94 마스크 등 9종의 생필품을 담아 포장하는 작업을 실시하고 배송을 마쳤다. 더불어 사는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이웃과 상생활동의 일환으로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대표회장 김회인)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사업이다. 천도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독거어르신을 대상으로 삼아 전국에서 114인의 명단을 확보하여 물품 구입 등의 사전 작업을 마친 후 이날을 기해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구)“답게살겠습니다”의 맥을 잇는 “상생나눔운동”도 나눔이라는 가치 아래 모두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도록 7개 종교 평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진행하고 있는 사회 공익 운동이다. 「지구와 상생」 「이웃과 상생」 「종교간 상생」을 주요 키워드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작은 활동이라도 부디 희망의 빛이 되길 바란다. (자료 및 사진 제공 : 천도교여성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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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울분 상태’ 국민의 마음, 천도교가 돌본다한 연구기관에서 성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 절반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있음이 밝혀졌다. 사회적 불안과 고물가 시대, 정치와 경제, 문화의 불균형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자살충동 등의 심각한 수준의 울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답했다. 천도교에서는 이러한 사회돌봄의 실천으로 목요청수회를 진행한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서울교구 성화실에서 열리는 목요청수회는 7시부터 현송, 묵송, 신사주문 105회 합송으로 수련을 진행한다. 이후 8시부터는 경전 공부로 동경대전 <탄도유심급>을 합독한다. 9시부터는 저녁 기도식이 이어지며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서울교구 명암 정윤택 교화부장은 “여러 동덕님들께서 적극적으로 참석하시어 수련도 함께하고, 대신사 출세 200년에 뜻깊은 동경대전 공부는 물론 그 가르침이 실제로 세상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논의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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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날(김병휘 작)꽃이 피는 날 꽃이 피는 듯 물 흐르는 듯 꽃이 피는 날 마음이 화해지기를 심고 드리며... 김병휘(교화홍보분과 위원/서울교구) 이 작품은 작가의 허락을 받아 천도교신문에 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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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슬기로운 천도교 생활사람 팔자는 참 알 수 없다. 나 같은 샌님이 주말마다 인사동에 가서 맛집을 돌아다닐 줄 알았으랴. 고풍스러운 천도교 대교당에서 시일식을 마치고, 바로 옆 인사동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암 김창석 선생님과 ‘디딤돌’ 사람들, 또는 천도교의 연원 모임 서운포 사람들과 함께 한다. 알고 봤더니 천도교가 인사동 상권을 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다른 교회들처럼 자체 식당이 없고, 대신 맛있는 떡을 나눠준다. 교인들은 시일이 끝나면 삼삼오오 인사동으로 몰려가서 함께 밥을 먹는다. 그동안 시일식에서 나눠주는 떡을 받기만 하다가 어제 드디어 사무실에 전화했다. 떡값을 보내겠다고. 천도교에 나온 지 여덟 달쯤 되었고, 입교는 올 1월에 했다. 처음 나온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는 ‘디딤돌’ 프로그램이 있다. 원암 김창석 선생님이, 천도교 ‘동귀일체’ 모임에서 펴낸 책을 바탕으로 친절히 가르쳐주셨다. 아, 천도교가 이런 것이구나! 선생님한테 교리도 배우고 경험담도 듣고 내 의견도 얘기하다 보면, 아침 한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곧바로 시일식에 참석한다. 천도교인으로, 부드럽게 연착륙하고 있다. 시일식을 마친 뒤엔 다 같이 식사도 하고. 음, 분위기 좋다. ‘디딤돌’에서 교재로 쓰는 책, <마음공부, 영원한 행복의 길>은 일반인들이 읽어도 될 만큼 좋은 내용을 알기 쉽게 알려준다. 게다가 2부에선 우리나라라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설거지할 때, 주문을 외워도 되나요? 천도교에선 주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한울님한테 받은 것인 까닭이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주문의 뜻이 참 좋고 마음에 와닿는다. 저녁때 자기에 앞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데, 이때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래서 원암 선생님한테 물어봤던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천도교 신앙생활을 해왔던 원암 선생님은 스승 얘기를 가끔 해주었다. 스승은 또 스승이 있었을 것이고. 이런 전통이 천도교엔 남아 있는 듯하다. 경전이 아니라 스승들을 통해서만 대대로 전해질 수 있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또 워낙 수련과 마음공부에 철저한 분이라서 크게 울림을 준다. 주말 휴식 시간마저 고스란히 천도교에 바치고 있음에랴! 천도교엔 참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좋다. ‘디딤돌’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원암 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혹자는 천도교 교세가 옛날과 견주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이백 해 동안 불어닥쳤던 엄청난 서양 바람을 생각해보라. 온몸을 던져 평생 천도교를 지켜온 여러 선생님과 선배 교인들이 참 훌륭하게 느껴진다. 백배를 드릴만큼 고맙다. 더구나 수많은 분들이 나라와 교를 위하여 피를 흘렸음에랴! 때마침 올해는 수운 최제우 선생 탄신 이 백 돌이다. 지난 시절 천도교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들을 해왔지만, 지금부터 할 일이 더 많지 않을까? 이상우(서울교구) 본 글은 네이버카페 "동귀일체"(https://cafe.naver.com/chonsim)에 게재된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천도교신문에 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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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무인독립운동’ 주도한 성암 김재계 선생 유고집 출판지난 20일 전남 장흥군의 지원으로 고 성암 김재계 선생의 유고집이 출판되었다. 이번 유고집 출간은 위의환 전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위 전 이사장은 <천도교회월보>에 실린 선생의 글 1100장 분량의 원고와 멸왜기도사건을 보도했던 신문 기사, 관련 연구자들의 논문을 모아 유고집을 출간하였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억을 담은 글(천도교회월보 1934년 8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갑오년도 이제로부터 40년 전이다. 내가 일곱 살 먹던 그해다. (…) 어느 날 정착 기포가 되었는데 우리 아버지도 행군 중에 같이 가시게 되었고 삼촌도 가시게 되었다. (…) 식이 끝나자 나팔소리를 따라 대군은 움직인다. (…) 나는 어쩐지 한결같이 가고 싶었다. 오리만큼 따라갔다가 (…) 야단하는 바람에 (…) 집으로 다시 돌아올 적에 퍽 섭섭하였다.” 한편 장흥 회진면 덕도 출신인 성암 선생의 아버지도 ‘농민군’이었다. 부친 김규현은 동생 양현과 농민군으로 참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던 장흥 석대들에서 농민군 2천여명이 희생돼 탐진강이 붉게 흘렀다. 성암 선생이 1902년 4월 동학에 입교한 것도 부친의 영향이 컸다. 장흥 천도교 교구장이었던 성암 선생은 1919년 3월15일 장흥 대덕면 장날 천도교 교인들과 만세운동을 했다. 동료 11명과 함께 나주헌병대에 구속됐던 그는 광주형무소(교도소)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보석으로 석방됐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주선원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은 축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암 김재계 선생께서는 1919년 3·1운동 때 천도교 장흥 교구장으로 계실 때, 천도교 대도주이시자 민족대표이신 손병희 선생의 지시에 따라 독립운동자금 500원을 거둬 서울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3.1독립선언서’를 장흥 전 지역에 전달하시고 장흥의 각 면 단위로 「만세시위운동」을 조직하신 후, 1919년 3월 15일에 장흥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총지휘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3·1운동 후에 천도교 중앙총본부의 금융관장으로 재임하셨으며,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이 국권회복의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시고 천도교 중앙간부들과 함께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누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면서, 일본의 패망을 기원하는 「멸왜기도」를 주도하셨습니다. 『무인멸왜기도운동』 은 당시 300만 전국 천도교인들이 동학경전의 「안심가」의 한 구절인 「개 같은 왜적 놈을 한울님께 조화받아 일야간에 소멸하고 전지무궁하여 놓고 대보단에 맹세하여 한(汗)의 원수 갚아보세.」라는 내용을 기도문으로 만들어서 아침 저녁 기도식 때마다 낭송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김재계 선생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1938년 2월 왜경에 피체되시어 잔혹한 고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일제는 중일전쟁 수행상 이 사건을 더이상 확대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70일 만에 김재계 선생을 기소유예로 석방하였지만,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석방되신지 얼마되지 않아 순국하셨습니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으나, 근년에 친일반민족 부역자들의 후예인 뉴라이트 인사들에 의해 나라의 정체성이 훼손됨으로써 만백성이 울분을 금치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위의환’ 직전의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장』 께서 김재계 선생 항일투쟁의 일생을 청사에 길이 남기기 위해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이 피맺힌 이곳 장흥에서 지난 몇 년동안에 걸쳐 흩어진 자료들을 정리하고 집필하여서 오늘 이 출판기념식을 갖게되니 심심한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면서 축사에 가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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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관광기업 이음주간’에서 ‘새로운 시대의 여행’ 만나세요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체부)는 한국관광공사(사장직무대행 서영충, 이하 관광공사)와 함께 9월 23일(월)부터 27일(금)까지 누디트 익선(서울 종로구) 등에서 디지털 전환, 융합관광 등 ‘새로운 시대의 여행’을 주제로 ‘2024 관광기업 이음주간(Tourism Connect Week)’을 개최한다. 2021년에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관광기업 이음주간’은 관광벤처기업 간 협업을 도모하고 성장을 위한 투자를 유치하는 소통의 장이다. 강연, 관광벤처 기업설명회, 투자 상담, 관광기업 홍보 등 진행 누디트 익선에서는 9월 24일(화)부터 26일(목)까지 관광벤처기업과 협업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강연회를 개최하고 상시적으로 관광기업 홍보부스와 다양한 관광벤처기업 상품을 판매하는 반짝매장을 운영한다. 강연 사이에는 관광벤처 기업설명회를 비롯해 투자 상담, 일대일 사업상담 등을 지원한다. 9월 24일(화)에는 개막식에 이어 ‘새로운 시대의 여행’을 주제로 강연이 열린다. 트립비토즈 정지하 대표, 스테이폴리오 이상묵 창업자 등 우수 관광벤처로 선정된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야놀자 김항기 대외협력실장, 트리플라 황성원 한국대표, ㈜트립스 양박사 대표 등 국내외 유수 기업 관계자들이 발표자로 나선다. 9월 25일(수)에는 ㈜한터글로벌 곽영호 대표이사, ㈜신라철강 송은정 문화이사, 아이비케이(IBK) 기업은행 강경모 문화콘텐츠금융부 팀장 등 관광기업이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 기업의 관계자들이 ‘여행콘텐츠 협업’을 주제로 강연한다. 첨단기술을 융합한 레이싱 시설 ‘9.81파크’로 성공을 거둔 관광벤처 ㈜모노리스 김종석 대표(CEO)와 자전거여행과 관련해 관광기업과 협업사업을 추진한 한국관광공사 임새미 차장 등은 실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9월 26일(목)에는 세계적인 통찰력(글로벌 인사이트)을 주제로 태국·베트남·중동 진출 전략과 국제 전자결제대행사(PG)를 통해 최신 흐름을 살펴본다. 이외에도 ▴관광공사-관광벤처 만남의 날(9. 23. 아트코리아랩),▴전국관광기업지원센터 협의체 회의(9. 24. 누디트 익선), ▴카드사와 관광벤처 간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커넥트 위드 마스터카드’(9. 25. 누디트 익선), ▴관광벤처 여성 기업가 리더십 교육(9. 27. 코엑스) 등 다양한 연계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2024 관광기업 이음주간’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기업 관계자와 예비창업자는 누구나 공식 누리집(www.tourismconnectweek.com)을 통해 등록하면 참가할 수 있다. 문체부 김근호 문체부 관광산업정책관은 “외국인 관광객 2천만 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리 관광기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라며 “이번 ‘관광기업 이음주간’이 관광기업들과 투자자 등에게 새로운 협력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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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수운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혁명 130년 학술대회 개최수운 출세 200주년과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에서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오는 10월 10일 오후 3시부터 노무현재단 부산지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이동문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의 사회, 1부 여는 마당은 이행봉 사단법인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의 기념사, 허채봉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의 기념시 낭송으로 문을 열며 2부 학술마당에서는 김용휘 대구대학교 교수가 <동학운동의 현대사적 의미>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펼친다. 이어 장은주 영산대교수가 좌장을 맡아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주제발표는 <집강소를 통해 본 동학혁명의 풀뿌리 민주주의>(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사람, 한울이 되다">(김동연 작가, 하동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생태주의에 기반한 동학사상 실천론>(구자상 환경운동가) 등이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부산에서 활동중인 시민단체가 함께 협력하고 진행중인 <동학운동과 한국민주주의길>을 성찰하는 행사로 공동기획하였다. 부산인권포럼,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부산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하는 행사로 지난 9월 7일 <동학답사 순례>(1.수운편 -울산.경주/2.해월편 -포항.영해.영양)와 이번 <학술대회>로 마무리된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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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빛극장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 진행성북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꿈빛극장은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의 두 번째 공연 ‘로마: 천재들의 경쟁’을 오는 27일(금) 진행한다고 밝혔다.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은 매회 주옥같은 명화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는 꿈빛극장의 음악 공연 행사다. 총 3부작으로 나뉘어 있으며, 지난 7월 26일 ‘르네상스 미술의 요람’을 주제로 첫 번째 공연이 진행됐다. 이번 두 번째 공연의 주제는 ‘로마: 천재들의 경쟁’으로, 역사와 문명의 도시 로마에서 절정을 이뤘던 르네상스의 미술 작품과 건축을 감상하고 그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아름다운 종교 회화와 교회 교황의 진두지휘 아래 아름다운 회화 작품과 건축물이 도시 곳곳에 채워졌던 로마에는 원숙미와 완성미가 높은 작품이 가득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찬란한 문화의 도시 로마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조각, 건축 등을 감상한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벽화 경쟁 이야기 로마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교황의 부름을 받고 나란히 경쟁했던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이들에게 일을 의뢰한 괴팍한 성미의 교황, 두 천재가 나란히 작업하는 가운데 경쟁을 부추기는 시선들, 두 화가가 서로의 그림을 보며 자극받는 이야기 등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할 수 있다. 도슨트 정우철의 해설과 트리오 ‘빈센트와 마르소’의 연주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의 간판스타 정우철이 이번에도 해설을 맡는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과 JTBC ‘톡파원 25시’에 출연했던 도슨트 정우철은 매회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난해할 수도 있는 명화와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준다. 연주는 ‘트리오 빈센트와 마르소’가 맡아 반도네온, 기타, 콘트라베이스의 이국적인 음색을 들려줄 예정이다. 반도네오시스트 임시내는 프랑스 국립음악원 Edgar Varese에서 수학했고, 베이시스트 송인섭과 기타리스트 박윤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에서 수학했다.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은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며, 8세 이상 관람이 가능하다. 공연 관람료는 전석 1만5000원이며, 공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성북문화재단 또는 꿈빛극장 홈페이지(www.kbt.sbcultur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행사 정보 행사명 : ‘브런치 콘서트 11시 11분’ 행사일시 : 9월 27일(금) 11시 11분 ‘로마: 천재들의 경쟁’ 11월 29일(금) 11시 11분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명암’ 성북문화재단은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여성·구민회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을 운영하며 지역 대표 축제, 생활문화 활성화, 시각예술 활성화 등 여러 프로그램 및 문화 정책 등을 통해 성북구민의 삶과 문화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꿈빛극장 홈페이지: http://www.kbt.sbculture.or.kr 웹사이트: http://www.sbcultu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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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늘 공경하며 살아가기어떤 사람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편한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 화를 잘 안 내는 사람, 말이 무겁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 배려심 있는 사람, 양보하며 베풀기를 잘하는 사람 등을 꼽는다. 그런 사람은 남을 공경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좋아하리라. 나는 매일 새벽 수련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읽는 ‘오늘의 말씀’이 있다. 오늘 말씀에는 자기 자신과 남들을 공경하라는 취지의 말이 있었다. 공경하며 사는 게 쉬울까 어려울까? ‘오늘의 말씀’에서는 많은 사람이 힘들게 산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비통함과 한 맺힌 생각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지를 알면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했다. 근데 그게 좀 어렵다. 또 의문이 든다. 어떻게 하면 늘 사람들의 비통함과 맺힌 한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말이다. 최근에 우리 마을 주민 대상으로 서명을 받을 일이 있었다. 실수로 감옥에 간 마을 사람이 있어서 탄원서를 내려는 것이었다. 탄원서나 진정서, 소장이나 준비서면, 진술서 등을 많이 써 봤기에 무난하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탄원서를 써 들고 집집을 다니며 서명을 받는데 반응이 정말 흥미로웠다. 첫째는 거절하는 사람이다. 자기 이름 석 자를 쓰지 않겠다는 사람이다. 너무 놀랐다. 자기 이름을 저렇게나 고귀하게 간직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 이유로 감옥에 가 있는 사람과의 이런저런 꼬인 일화들을 꺼내 들었다. 대단한 소신파다. 둘째는 “서명을 하기는 하는데요.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지요. 그러니까 감옥 갔지요”라며 훈계를 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무조건 파다. “나오고 봐야지요. 날도 더운데 감옥소에서 무슨 고생이람.”이라는 사람이다. 아주 시원시원하다. “서명하면 나온 뎌? 그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하지 뭐”라고 덧붙인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 사람 됐어.”라고도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무조건 서명하는 사람이다. 이 세 번째 사람에 주목해 보자. 자기 잘못으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비난하거나 훈계하기에 앞서 그런 그의 (잘못된) 선택마저도 공경하며 서명을 하는 사람. 자초지종은 나중에 들어도 된다는 듯 서둘러 서명하는 이 사람. 앞뒤 가리지 않고 남을 공경함으로써 스스로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욕을 하면 욕하는 사람이고 흉을 보면 흉보는 사람인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의 마을 사람은 물에 빠진 사람 일단 건져놓고 본다는 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니까 일단 서명을 해버리는 사람이다. 서명을 한 어느 사람은 감옥에 있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라고까지 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다. 자기가 서명한 사람이니 좋은 사람이라는 식이다. 서명을 안 하고서 “그 사람 좋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절대. 절대로. 물에 빠진 사람에게 보이는 다섯 가지 반응이 있다고 한다. 1. 물에 뛰어들어 건지는 사람. 2. (수영을 못하므로) 소리를 질러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태를 알리는 사람. 3. 왜 빠졌대? 물은 깊어? 한가하게 원인을 따지는 사람. 4. 수영도 못하면서 물엔 왜 들어갔어. 바보 아냐?라며 물 빠진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유형은 이렇다고 한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공경이라는 것이 실천을 말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눈 감고 하는 기도는 섬세하며 직접 연결되는 기도이긴 하다. 효력 역시 섬세하고 은근하다. 이런 기도는 높은 정성과 집중력, 특별한 기도 빨 없이는 어림도 없는 기도 방식이다. 실천(기도)은 좀 거친 면은 있으나 강력한 효과를 낸다. 말과 글의 실천보다 몸뚱이 실천이 더 그렇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반듯한 사람이 아닌, 그냥 보통에도 못 미치는 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높은 공경하는 삶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라 하겠다. 공경하며 살면 더 공경을 베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이 좋아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유형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진리다. 그러니 오늘 우리 공경하며 살자. 아니 내일도 모레도.. 목암 전희식(진주교구. 한울연대 공동대표/ 마음치유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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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동시 - 박씨부인박씨 부인 몰락한 양반의 아내로서 말못할 지질한 고생을 겪어온 박씨 부인 하지만 남편인 수운 최제우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게 세상 사람 같지 않고 처자한테 참으로 지극하게 하는 걸 봐서 한울님이 있다면 좋은 운수를 회복할 줄 알았다 뒤에 수운이 무극대도를 얻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을 때 수많은 사람들 걷어 먹인 건 박씨 부인과 수양딸이었다 이 때가, 힘들었지만 가장 살맛났던 때가 아니었을까 * 4월 5일은 수운 선생이 득도하여 한울님을 만난 날. 천도교에선 천일기념일로 지낸다. 올해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탄생 200주년이다. 이상우(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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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 『동아일보』 1920년 4월 2일“천도교주가 한번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뿌린 후로 별별 가지 파란이 뒤를 이어 일어나 일시는 자못 위태한 지경에 이르겠다는 소문까지 들리던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돌아오는 초닷샛날 아침부터 성대한 천일기념 예식을 집행할 터이므로 각 지방에서 이 예식에 참례코자 올라오는 교도가 자못 연락 부절된다는데, 보실보실 내리는 봄비에 몸 적시며 송현동에 있는 중앙총부 방문한즉 마침 가옥을 수리하노라 벽들이 2층 주위에는 높이 비계를 매고 푸른 옷을 입은 5, 6인이 꿈틀거리고 있더라. 2층으로 올라가 감옥에 가지 아니한 사람으로는 그 교의 최고 간부 중에 첫째인 현기관장 오상준 씨에게 천도교의 근황을 물었더니, 씨는 자못 감개무량한 낯으로 서서히 입을 열며 세상에서는 손병희 씨가 우리 교회의 두목이니까 손병희 씨의 모든 행동을 우리의 교 본지에서 나오기만한 줄로 오해하여 요전 만세사건만 하여도 독립선언은 결코 천도교 주인 손병희가 한 것이 아니라 손병희 개인으로 한 것이거늘, 일부 세상에서는 천도교 전체를 독립당으로 보는 것은 좀 모호한 일이라 하겠으며, 만세를 부르던 한참 통에는 과연 전도 모든 교구가 한 가지 소란하기는 하였었으나 얼마 아니하여 안온하게 된 것은 다툴 수 없는 사실인 것이며, 손병희 씨가 감옥에 들어간 후로는 천도교 교세가 미미하게 쇠약하여졌다고 말하는 어느 일본 신문도 보았으나 사실 통계로 보면 작년보다 교도가 훨씬 많아진 것을 보면 천도교가 결코 쇠약해 가지 않는 것은 명확한 일이라 할 것이라. 잠깐 가까운 실예를 들어 말하더라도 지난 정월 보름날부터 각 지방에 있는 청년 교도들을 소집하여 교리연구회(敎理硏究會)를 약 60일 동안이나 열었는데 강습생이 거의 250인에 이르는 큰 성황이었으며, 전에 성실치 못하던 교도들도 요사이는 어찌된 일인지 하루 두 숟갈의 성미(誠米)는 자기는 굶어도 받치겠다 장담한다는 각 지방 교구장의 기쁜 보고가 자주 들리는 바이며, 해마다 기념제 때이면 적어도 2천 명씩은 지방 교도가 상경하였는데 금년에도 인수가 늘면 늘었지 줄 이유는 없을 터이며, 여러 가지 형편상 재미없는 일이 많을까 싶어 금년에는 특히 아무쪼록 각 굑구에서 몇몇 사람씩만 의논하여 올라오도록 주의를 시키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벌써 상경한 이가 수백 인에 달한 모양이며, 작년 10월부터 기공한 교동 새 교당은 약 2백 평가량에 벽돌 2층으로 예산 15만 원이었으나 그동안 물가가 심히 고등하였졌으므로 다소간 예산에 증가가 있을 줄로 생각하노라. 이상은 천도교회의 최근 상황을 대강 말한 것이어니와 대개 이제까지 위험케 여기던 천도교회는 알고 보면 뜻밖에 청정한 처지에 있으며, 세상에서 위태해 보던 천도교회의 지반은 새교당의 낙성함을 따라 만세영겁에 흔들지 않고 기초를 튼튼히 세울 것은 의심치 못할 사실인가 하노라. ※※※※※ 위의 기사는 1920년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에서 천도교의 동향을 취재한 것이다. 이는 『동아일보』의 최대 관심은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3·1운동 후 처음으로 맞는 천일기념일을 앞두고 송현동에 있는 2층 양옥의 천도교중앙총부를 취재하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의하면, 3·1운동 직후 지방에서는 천도교를 배척하거나 탈교하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 『매일신보』의 기사는 천도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져 있었다. 그렇지만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천도교는 흔들림 없이 여전히 한국사회의 중심에서 그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3·1운동은 교단 전체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의암성사가 개인적 차원에서 주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일제는 천도교를 유사종교로 취급하여 강력하게 감시와 탄압을 하는 상황에서 교단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천도교는 교단적 차원에서 3·1운동을 주도하였음을 많은 연구와 자료로서 확인된다는 점에서 부득이한 것이었다. 둘째는 교인이 증가하여 교세가 크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사회에서는 3·1운동을 천도교가 주도하고 많은 교인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천도교는 ‘독립당’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천도교가 크게 쇠미해졌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지만 천도교는 1919년 9월 2일 조직된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는 60일 동안 개최한 교리연구회에 전국에서 25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리에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방교구에서는 자신은 굶더라도 성미는 반드시 납부하겠다는 교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4월 5일 천일기념일에 지방 교인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각종 기념일에는 2천여 명의 교인들이 참여하였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새 교당 즉 중앙대교당을 건립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원래는 1919년 초에 중앙대교당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3·1운동의 여파로 인해 연기되었다가 1919년 10월에 기공식을 가졌다. 새로 건립되는 중앙대교당은 2층 양옥으로 약 2백 평 규모이고 예산은 15만 원이었지만 물가의 오름에 따라 추가될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 기사는 결론적으로 천도교는 과격하거나 위험하지 않으며 청정한 상황이며, 위태하지 않고 새 교당을 낙성하면 만세영겁의 흔들리지 않는 교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에는 당시 2층 양옥의 중앙총부 건물과 근무하는 임직원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해설 : 희암 성주현(신인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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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산 동학의 길 순례를 다녀와서포덕 165년 06월 08일 오전, 산제당을 찾는 길이 숨이 차다. 헉헉대며 오른다 봉래산 할망을 노하게 하면 불이익 온다는 속설은 들었지만, 찾아보기는 처음이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여동생이 머물렀다는 유래를 알아보려고 동학 순례길에 열세분의 동덕들이 찾아왔다. 팻말을 살펴보니 말에 얽힌 설화로 탐라국과 절영로의 무사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적혀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신사님 여동생의 발자취를 찾고자 왔다. 혜허당의 정돈된 부연 설명이 말한다. 빗방울이 든다. 비옷을 챙겨입고 흰여울길로 들어섰다. 아랫길은 정비를 해서 갈 수가 없다. 윗길에서 보는 바다 풍광이 눈길을 붙든다. 정박한 배들의 한가로움을 보니 마음이 편하다. 시인의 기대는 엇박자를 만들었다. 봉래산 트레킹은 물거품되고 절영로 걷기도 무산이다. 포항물회로 아쉬움을 달래고 이어지는 탐방은 중앙동에 위치한 옛 일본이사청 자리에 놓여진 덩그런한 두 개의 팻말이 을씨년스럽다. 자성대에 들러 빗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더듬었다. 국립일제동원역사관에 모셔진 나인협장군 흉상을 찾았다. 간단한 심고로 예를 갖추었다. 징집된 징용군의 선발과정과 정신대에 끌려간 씁쓰레한 과거사가 켜켜히 계단으로 표현되었는지 유난스레 계단이 많다. 촉촉히 내리는 비를 헤치며 살펴 본 순례길에서 많은 의미를 품고 왔다. 최제우 대신사님의 자취를 봉래산에서 찾았고 나인협 선생의 흉상을 역사관에서 뵈었다. 허채봉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대표의 발빠른 동학사 발굴은 무지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했다. 예산만 된다면 이런 답사길을 자주 만들어 천도교의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열세분의 동덕님들이 빗줄기 속에서 마음을 모아 주심에 감사드린다. 뜨끈한 칼국수로 후줄근한 몸과 마음을 데워준 허채봉 대표의 배려가 하루를 개운하게 마무리했다. 대신사님의 환한 미소가 달려 온 듯 남편이 차로 마중을 나온다. 사진, 글_선혜당 선영숙(수필가. 대동교구)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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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이에 1년 앞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2년 5월 1일을 기억하자. 102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오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19년 3·1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받고 1주일만에 석방된 방정환 선생은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동경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선생은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소춘 김기전 선생은 1921년 4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를 특설해 5월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총재를 역임하며 박내홍, 방정환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옛 기사로 보는 오늘 1922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이 제정된 날이다. 이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1년 5월 1일 창립된 천도교소년회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도교 청년들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조선 소년 운동의 시작으로 금일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는 소용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장래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조선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을 가졌는가. 설령 지난 일과 당장 눈앞의 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 우리는 다만 내일과 내년의 화려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따라서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도 장래를 위하여 사는 것이오, 장래가 곧 우리가 춤출 때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믿는 바이다. 한 나라 한 사회나 한 집안의 장래를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이나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장래에 희망을 두고 어린이에게 장래를 맡기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찌 어린이의 일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아들과 손자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옛날 일은 지나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수년 동안 우리의 학부형은 그 자손을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애를 써왔다. 다시 말하면 그 자제를 가르치기에 열심히 하며 여러 가지로 자손을 인도하는 데 노력한 것은 근래의 교육열과 향학열이 증명하는 바다. 이는 실로 경하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학부형 가운데에는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막아서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완고한 일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을 볼 때 뜻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한숨을 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이에 자극을 받은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를 위한 부모의 도움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네 가지의 인쇄물을 시내에 배포하며 소년회원이 거리마다 늘어서서 취지를 선전했다. 이러한 일은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 응원하여 “조선사람의 10년 후의 일”을 위하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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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생명관: 대생명(大生命) (2)(지난 호에 이어) III 해월이 ‘갓난아기의 마음(赤子之心)’이라고 한 이 마음이 바로 내 안으로 두번째 내려온 ‘신령(神靈)’이다. 외유기화에 의하여 마련된 유기체적 몸에 신령이 내려온 것이 바로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본래 영이라 할 수 있다. 즉, 마음이란 내 몸에 내려온 신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은 ‘심령(心靈)’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으며 의암은 ‘성령(性靈)’이라는 표현을 애용하였다.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영은 오직 하나의 영일 뿐이다. ‘신령’, ‘심령’, ‘성령’으로 표현되는 영성은 근대철학에서는 종교영역에서나 다루는 낯선 개념이었다.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문명에서 영(靈)은 더욱 생경한 개념일 수 있다. 시대정신에 투철한 현대인을 위하여 영성이 무엇인지 조금 풀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천도교에는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개념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풀어서 이해해 보자. “천령(天靈)이 강림하였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가?”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수운은 “무왕불복의 이치를 받은 것”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무왕불복은 수운의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역학(易學)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가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다”고 해석되는데 이에 대한 적지 않은 기존 논의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거울의 비유로 대신하고자 한다. 신령이란 그 앞에 오는 것을 하나도 예외없이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는 것이다. 이 영성의 거울은 어디 특별히 머무는 곳이 없다(無所住). 특정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곳이나 있지만 상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역설적 표현으로 들리는 것은 성령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수운은 도는 ‘보려하나 볼 수 없고 들으려 하나 들을 수 없다(視之不見 廳之不聞)’고 하였고, 의암도 성심본체는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고, 물으려 해도 물을 곳이 없고, 잡으려 해도 잡을 곳이 없다’고 표현하였다. 해월은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않는데 이르러야 가히 도를 이루었다 할 것이요(視之不見 聽之不聞 可謂成道也)”라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을 근거로 하여 ‘무극대도’, ‘천도’, ‘성심본체’, ‘영성’은 세상과 사물과 인간을 떠난 초월성으로 이해되지만 ‘적자지심’으로 불리우는 ‘본래의 나’의 마음으로 내려와 임재(臨在)한다. 그러므로 해월은 “한울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 안에 계신다”고 하였으며, 의암은 성령은 “전부 세간과 합치된 것이요, 세간에 나타난 것(全然合世間的出世間的)”이라고 표현하였다. 수운 또한 ‘여세동귀(與世同歸)’라는 표현으로 천도와 천운은 세상과 더불어 함께 함을 강조하였다. ‘중첩’으로 번역되는 양자역학의 Superposition 개념은 양자뿐만 아니라 영성을 묘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즉 영성은 특정 위상(位相)을 넘어서지만 세상과 만물 그리고 사람을 떠나지 않고 그 한가운데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보려하나 보이지 아니하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도 없는 무형계라 할 수 있다. 도가의 무(無)나 허(虛), 불가의 공(空) 개념들도 세상과 만물 그리고 사람을 떠난 초월적 절대영역이 따로 있지 아니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나 오히려 니힐리즘처럼 오해되곤 한다. 영성은 ‘새는 하늘을 날지만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도인은 강을 건너지만 물에 젖지 아니한다’라는 비유로 묘사되기도 한다. 천도교사에는 수운이 억수로 오는 빗속에 부친 성묘를 다녀왔지만 갓과 도포가 젖지 아니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해월은 ‘땅을 어머님 살처럼 공경하게 되면 빗속에 진흙길을 걸어도 버선이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생기심(應無所住生其心)”은 부처의 마음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소명해주는 유명한 구절이다. 비어 없는 이 경지에 응하여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부처의 집착없는 마음 씀씀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중생은 비고, 고요하고, 없는 마음에 조응(照應)하여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물욕, 감정, 집착, 편협함에 사로잡힌 마음을 쓰는 것이 차이점이다. 의암은 [후경2]에서 나의 성품과 나의 마음을 묘사하는 가운데서 ‘항상 머물러 있는 곳도 없다(常無住處)’는 표현을 하였다. 위상과 시간에 매이지 않으므로 해탈의 마음이 되고 자유로운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의암은 [무체법경]에서 “한울님이 반드시 바르게 보이고 바르게 듣는다(天必正示正聞)”고 하였다. 바르게 보인다는 것은 거울처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며, 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한울님은 높으시나 낮은 소리도 다 듣는다는 천고청비(天高廳卑)’의 뜻이라 하겠다. 보이지도 않는 빈 거울이지만 그 앞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비추어주는 성령을 이렇게 말하였다. 의암은 ‘정시정문’을 누구나 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마음이 흰 것을 구하고자 하면 흰 것으로 보이고, 붉은 것을 구하면 붉은 것으로 보이고, 푸른 것을 구하면 푸른 것으로 보이고, 노란 것을 구하면 노란 것으로 보이고, 검은 것을 구하면 검은 것으로 보이느니라.” 그러므로 아득한 고대로부터 성령을 거울에 비유하였다. 성령은 구하는 그대로 주기 때문에 ‘말없고 소리없는 한울님이 가장 무섭다’고 해월은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성령은 특별히 머무는 곳이 없이 어떻게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며 분명하게 들려주는 것일까? 우주를 ‘혼원일기’로 생각하면 자명해진다. 해월은 동양의 전통에서 말하는 ‘귀신, 기운, 음양, 조화는 오직 하나의 기운(一氣)일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우주는 한 기운의 소사요, 한 신의 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우주만유는 오직 하나의 신, 하나의 기운, 하나의 이치로 꿰뚫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하나의 기운, 하나의 이치, 하나의 몸이므로 어떤 것이 가면 반드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면 어떤 것이 가더라도 되돌아올 수 없다. 길이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생각이든 기운이든 행동이든 일단 촉발된 것은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상대성 우주론이라면 증대되거나 감소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상대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몸과 마음에게는 모든 것들이 상대적일 뿐이다. 중첩과 얽힘이 양자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인 것처럼 정시정문도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개념일 뿐이다. 우주가 하나라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신령(神靈)은 오직 하나(唯一無二)이기에 신령이 곧 내 마음의 영이자 내 성품의 영이다. 타자성과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性靈)’과 ‘심령(心靈)’은 ‘성령(聖靈)’과 다르다. 성령(聖靈)은 개별적 존재이지만 천도교에서 말하는 신령, 심령, 성령은 오직 유일무이하다. 다시 말하자면 한울님의 성령과 수운의 성령, 해월의 성령, 의암의 성령, 역대 조상들의 성령, 인류전체의 성령이 나의 성령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성령출세설]에서 아주 상세하게 개진되어 있다. 의암은 “대신사는 이미 성령으로 출세하셨으니 일체의 물건마다 마음마다 다 이 성령의 출세한 표현이 아님이 없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만유와 만인을 오직 하나의 성령이 관통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나의 본래의 마음을 신령(神靈)의 강림, 제2의 강령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강령이 되지 않은 마음에게는 심령이나 성령(性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첫 호흡을 할 때 예외없이 신령(神靈)이 내려와 내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심령(心靈)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령을 믿지 아니하고 키우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심령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해월은 “오직 한울을 양(養)한 사람에게 한울이 있고, 양치 않는 사람에게는 한울이 없다”고 하였다. 수도를 하여 한울님을 키우는 제3의 강령인 ‘각지불이(各知不移)’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가장 순수한 영을 타고났지만 우주간의 모든 생명체도 모두 다 이 ‘무량광대’하고 ‘청정무구’한 신령계로부터 마음을 받았다. 수운이 [불연기연]에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알아보는데 어찌된 일인지, 가난해도 돌아오는 제비는 주인을 알아보아서 그렇게 하는지, 부모를 되먹이는 까마귀가 효도를 알아서 그러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수운은 [불연기연]의 마지막 구절에서 “조물자에 붙여보면 그렇고 그렇고 그러한 이치”라고 대답하고 있다. 조물자가 곧 성령임을 이해하면 이러한 질문들에 쉽게 답할 수 있다. 갓난아기가 되었던, 제비가 되었던, 아니면 까마귀가 되었던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성령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다면 갓난아기가 방금까지 한 몸이었던 어머니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제비가 자기 집을 찾는 일도 당연한 일이며, 까마귀가 어미를 먹이는 것도 다 큰 자기가(새끼) 쇠약해진 자기를(어미) 먹이는 것이므로 그렇고 그렇고 그러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신령을 잊거나 잃어버렸다면 이와 같은 앎은 있을 수 없다. 성령이 아직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의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자기가 자기를 아는 일에 불과하므로 그렇고 그렇게 알 수 있고 할 수 있게 된다. IV 외유기화라는 제1강령을 통하여 생명체는 우주의 한 기운에 접하여 잉태하여 유기체를 이루고 내유신령이라는 제2강령을 통하여 생명체는 청정무구한 성령의 마음을 온전하게 받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우주기운에 통한 존재이므로 그 우주적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무량광대’하고 ‘청정무구’한 오직 하나의 영성을 자기 마음으로 받았으므로 이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본래의 길이다. 우주적 혼원일기와 본래청정의 영성을 회복하는 길이기에 수운은 ‘천도’라 하였고 내 마음을 통하여 회복하기에 ‘심학(心學)’이라 하였다. 이 본래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는 다음을 기약한다. (끝) *본 글은 2023년 5월 12일/대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생명애콜로키움 [종교와 생태문제] 에서 발표하였으며 저자(오문환)의 허락을 받아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글_오문환(정치학박사, 선도사, 영등포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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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생명관: 대생명(大生命) (1)Ⅰ 「동학의 생명평화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논의한 적이 있기에 논의범위를 좀 더 종교철학적으로 심화시키고자 한다. 수운 최제우는 한울님과의 대화에서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을 받아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았다고 한다.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21자인데 그 가운데 “시천주(侍天主)”에 대한 해월의 해석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생명관을 논하고자 한다. 수운은 모실시(侍)를 “내유신령 외유기화 일세지인 각지불이(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로 풀이하였고 해월은 다음처럼 구체화하였다. “안에 신령이 있다는 것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는 것은 포태할 때에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이니라. 그러므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과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 한 것이 이것이니라.” (“經曰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內有神靈者 落地初赤子之心也 外有氣化者 胞胎時 理氣應質而成體也 故「外有接靈之氣內有降話之敎」「至氣今至願爲大降」是也,” 해월, [영부주문]) 이를 근거로 천도교는 생명체는 두 번의 강령으로 잉태되고 마음을 받아 태어나고 주문수행에 의하여 세 번째 강령으로 영성을 자각하게 된다고 본다. 첫째 강령인 ‘외유기화’에 의하여 포태되고, 둘째 강령인 ‘내유신령’으로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호흡할 때 영이 ‘적자지심’으로 내려온다. 셋째 강령인 ‘각지불이’는 주문수련으로 내 몸과 마음이 영성을 깨달아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난다. 이 세 번의 강령이 이루어지게 되면 사람은 비로소 천주를 자신 안에 온전하게 모신 ‘시천주’ 인간이 된다. 이렇게 한울님을 모신 사람을 천도교에서는 신선(神仙), 신인간(新人間), 신인(神人)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과정으로 대생명이 된다. 이 글은 첫 번째 강령인 ‘외유기화’와 두 번째 강령인 ‘내유신령’을 통하여 천도교의 생명관을 고찰하고자 한다. Ⅱ 생명의 포태가 영(靈)의 강림(降臨)으로 이루어진다는 해월의 설명은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이해되는 의학과는 다른 설명방식이다. 이기(理氣)와 기운(氣運)이 바탕이 되는 질료(質)를 만나서 포태가 된다는 종교철학적 설명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생명의 탄생은 천리(天理)와 천기(天氣)라는 우주적 기운과의 관계맺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만 분명히 하면 될 듯하다. ‘외유기화’는 ‘외유접령지기(外有接靈之氣)’로도 표현되는데 밖으로 영에 접하는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밖에 있다(外有)’는 표현 때문에 영(靈) 또는 지기(至氣)가 마치 시공간적 타자로 보이지만 영과 지기에 열려(開闢) 우주기운이 곧 나의 기운으로 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지기(至氣)’ 또는 ‘혼원일기(混元一氣)’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음양오행과 같은 기운과 달리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과 접함으로써 생명이 잉태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수운은 ‘음양합덕으로 수백천만물이 화해난다’고도 하지만 ‘외유기화’는 한울님의 기운이 유기적 생명체로 나타나는 것을 서술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체의 잉태는 다 한울님 기운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운의 [불연기연]에 나타나는 우주만유의 알 수 없는 불연에 대한 대답도 외유기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자연사물까지 모두 다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로 통해져 잉태되었다는 실상을 통찰한다면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우주생명의 신묘함을 그렇고 그렇게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불연기연]은 황하수가 어찌 성인의 탄생을 알아서 천년에 한번 물이 맑아질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그렇지만 황하수도 하나의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의 산물이고 성인의 마음의 탄생도 똑같은 한울님의 지극한 기운의 소산이라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즉, 성인의 청정무구한 마음기운도 황하수의 진흙탕 물도 한울님의 하나의 기운으로 통해져 있으므로 두 기운이 통하여 같아져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량수의 생명체들은 오직 하나의 기운에서 태어났음을 알게 되면 해월의 표현대로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한 동포이고(人吾同胞) 만물과 내가 또한 한 동포(物吾同胞)’라는 점도 스스로 자명해진다. 천리와 천기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초월적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몸과 내 마음에 내려와 있다고 본다면 왜 해월이 “향아설위(向我設位)’를 시행하였는지도 쉽게 이해된다. 신위(神位)를 마주보는 벽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여 설치하는 이유는 천지정신과 천지기운이 모두 내게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혼원일기, 우주정신, 신령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영의 강림(降臨)이라고 표현하지만 초월적 영이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잉태 순간에 지극한 한울님 기운과 접하여 자신 안에 모시게 된 것이다. 신위를 자신을 향하여 돌릴 수 있는 것은 물론 한울님 모심을(侍天主) 스스로 깨달은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의암 손병희는 [성령출세설]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사께서 사람이 곧 한울인 심법을 받으시고 향아설위의 제법을 정하시니 이것은 우주의 정신이 곧 억조의 정신인 것을 표명하심과 아울러, 다시 억조의 정신이 곧 내 한 개체의 정신인 것을 밝게 정하신 것이니라.” 조금 넓혀 표현하자면 개체정신이 곧 우주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 정신은 나의 정신이면서 동시에 ‘천만년 전 사람이나 천만년 후 사람의 정신과 같은 정신’이라고도 말한다. 한울님의 정신기운이 잉태의 순간에 영으로 이미 내 안에 모셔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본적 동일성령이 천차만별의 인과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 생명위기를 실감하는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생명의 우주적 연계성 또는 인드라망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의식이 열렸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천도교의 입장에서 보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생명의 그물망을 느껴보고자 한다면 해월의 언행보다 더 좋은 전범(典範)은 없어 보인다. 해월은 베짜는 며느리를 보고 한울님이 베를 짠다고 하였으며,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때리지 말라고 하였으며, 동식물도 다 아끼고 사랑하라고 하였으며, 새소리도 한울님의 소리이며, 나뭇가지도 함부로 꺽지 말라고 하였으며, 어린아이가 나막신을 끌고 가니 가슴에 통증을 느꼈으며, 땅을 어머님 살처럼 여겨 침을 뱉거나 물을 멀리 뿌리지 말라고 하였다. 세상으로 눈을 잠시라도 돌려 보면 현대문명이 어느 곳을 향하여 전력질주하는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방향전환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점을 동학·천도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월은 “궁을이 문명을 돌이킨다(弓乙回文明)”라고 하였다. 궁을은 수운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영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부는 말 그대로 신령(神靈)에 그대로 부합하는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운은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종이 위에 뚜렷한 형상을 그려내어 불에 타서 먹어보니 온갖 질병이 나았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더니 낫는 사람도 있고 낫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매번 적중하였다고 하였다. 즉 받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해월은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영에 부합하는 마음이라고 하여 “영부심(靈符心)”이라고 하였다. 즉, 병을 치유하는 것은 천령에 부합하는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이 문명을 대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에 부합하는 마음을 얻는 마음공부가 된다. 놀라운 점은 사람은 태어날 때 이 궁을마음을 타고났다는 사실이다. (계속) *본 글은 2023년 5월 12일/대화아카데미 바람과물연구소, 생명애콜로키움 [종교와 생태문제] 에서 발표하였으며 저자(오문환)의 허락을 받아 게재되었음을 밝힙니다. 글_오문환(정치학박사, 선도사, 영등포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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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 일이다105년 전 1919년 3월 1일, 한반도 전역에서는 태극기가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함성소리는 매해 3월이면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고동치게 한다. 3.1만세운동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평화로운 항거였으며 3.1정신은 이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루는 근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3월이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공적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이 있다. 바로 3.1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자금을 준비하였던 의암 손병희선생이다. 천도교 제3세교조인 의암 손병희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우리나라가 강제로 강탈당하게 되자 10년안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가게 된다. 우이동에 땅을 구입해 수련도장인 봉황각을 짓고 전국에 있는 유능한 지도자들을 모아서 독립의지를 확고하게 심어주기 위하여 심신훈련을 하게 한다. 3년에 걸쳐 7차례 483명이 봉황각 연성수련을 통해서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3.1운동때 전국 각 지역에서 앞장서서 만세운동을 지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 건물을 신축하기로 부구총회를 통하여 결의하고 교호당 10원이상씩 건축성금을 내도록 하였다. 이 자금은 후에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당시 천도교에서 경영하던 보성사 인쇄소가 적자경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지만 끝까지 폐쇄하지 않고 훗날 독립선언서를 인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전국 37개 대교구로 하여금 등사기를 1대씩 구입하도록 하여 훗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도록 준비시켰다. 또한 의암 손병희 선생은 국권회복을 위한 49일 특별기도를 지시하였다. “먼저 보국안민(독립)이 된 다음에야 광제창생 포덕천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서울, 해주, 의주, 길주, 원주, 경주, 서산, 전주, 평강 등 아홉 곳에 대표 기도처를 정하고 각 기도처마다 4명씩 대표를 파견하여 기도식을 지도하게 하면서 3.1독립운동을 위한 전국 교단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그리고 천도교, 기독교, 불교와 대연합으로 33인 민족대표를 결성하기에 이르른다. 의암 손병희 선생은 3.1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전국 조직망을 정비하고 독립자금까지 전담하는 등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지도해 나갔지만 매년 3.1절이 되면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업적은 미미하게 들리는 듯 마는 듯하다. 또한 천도교의 3.1운동에 대한 역할 또한 알려지기도 전에 잊혀져 가기만 한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해야만 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 역사는 사라지고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한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업적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잘못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사라지고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세상이 떠들썩 하도록 매해 기억하고 기록하고 또 기념해야 할 것이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방법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자.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은 틀에 박힌 상징과 형식이 아닌, 권위적이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은 형식으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참회하며 가장 예술적으로 역사를 작품속에 표현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살아있는 곳으로 피터 아이젠먼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1998~2005)는 홀로코스트(Holocaust)로 희생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고 있다. 다음은 나치의 분서사건 60주년을 즈음하여 독일 베벨광장에 세워진 미하 울만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을 보자. 베벨광장 중심부에 가로120센티미터, 세로120센티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투명유리창이 있고 그 지하에 텅빈 직방체 공간이 있다.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의 「도서관」작품이다. 책들의 화형식이 있었던 그 장소의 지하에 설치된 경고의 기념조형물이다. 이처럼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기념하는 방법으로 문화예술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문화예술공간은 시민들의 삶속에 스며들고 있으며 그들은 생활속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 느끼면서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암 손병희선생님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글_숙현당 정정숙(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 천도교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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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역사적인 ‘이승만 띄우기’ 시도요즘 독재자와 학살자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뜬금없이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여 독재자를 기리겠다고 한다거나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짚으려고 한다.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기술한 우리나라 헌법전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준동에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말살과 부정부패를 저질러 4.19혁명으로 쫒겨난 그의 말로를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판에, 독재자 이승만을 두고 다시 논쟁하는 자체가 소모적이다. 이승만의 악행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8ㆍ15해방 이후에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하면서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이 100만명 이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이승만을 국가보훈부가 지난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고, 국방부는 그를 혜안을 지닌 지도자로 미화하는 교재를 발간하기도 했다. ‘홍범도 지우기’로 국민의 공분을 산 집권 세력이 ‘이승만 국부 만들기’로 이념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후 북한·중국·러시아가 공산화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했다”고 그를 칭송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농지개혁·교육개혁·정치개혁이란 3개 개혁으로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았다.”며 이승만을 한껏 찬양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격동의 해방 공간에서 그가 내린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하고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역사적 사실도 그들의 눈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편다. 진실을 덮고 거짓을 호도하려는 영화 한 편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202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만 같아 정말 씁쓸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런 시도가 성공하겠는가. 말 그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국회에 상정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하고자 하는 법률안이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145명을 서훈하면서도,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승만 띄우기’ 기도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를 거스르는 세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 이승만을 구국의 민족지도자로 받들려는 기도를 절대 묵과할 수 없다. 국민 공감대도 없이 진행되는 시대착오적 ‘이승만 띄우기’는 성공할 수도 없고 결국 이념전쟁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것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이승만 국부 만들기’에 주력해온 뉴라이트 역사관에 따른 반역사적인 악행을 당장 멈추기를 요구한다. 글_윤여진(시인,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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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다올해는 3.1운동 105주년이다. 모든 언론이 3·1운동 105주년이라고 쓰고 있다. 오랫동안 사용해 화석화된 잘못된 용어이다. 105년 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 인근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고 일경에 체포되어 갔다. 독립만세를 외치는 경성 거리의 민중들을 바라보며 끌려가던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월 1일의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혁명의 최후 지도자였던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변경하고 1900년대 초의 민족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언론과 교육, 출판 운동 등으로 민도를 높이는 개혁을 전개하다가 1913년부터 전국의 천도교 교역자 483명을 차례로 불러 특별 연성 수련을 실시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장차 국가를 위해서 쓰일 인재를 미리 양성해 놓고자 한 지도자의 혜안이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종결되고 민족자결의 운동이 세계적으로 유행되자 의암은 우리의 독립을 위한 시점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드디어 1919년 천도교는 전체 인구 1,800만 명에 300만 명의 신도 수를 가진 조선 최대의 종단이 되었다. 천도교는 일제의 압제에 대항할 충분한 인원과 조직 그리고 자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학도들만이 참여했던 동학혁명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손병희는 거대한 민족운동을 천도교만의 단독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3.1의거는 제2의 동학혁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국외에서의 독립선언과 의문스러운 고종황제의 죽음으로 민중의 분노가 치솟자 손병희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는 비밀리에 각계의 지도층에게 함께 할 것을 제의했지만 대부분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를 무시하며 함께 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개신교의 이승훈 선생과 길선주 목사 등은 이미 개신교의 독단으로 독립청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두 종단이 비밀리에 접촉했고 함께 독립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교단과 함께한다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임을 고려할 때 이들 종단 지도자들의 결단은 돋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당시 서울에서 활동 중이던 불교계의 큰 스님인 용성 스님과 만해가 함께 하니 비로소 종교연합으로 민족대표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 독립선언에 동참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들 지도자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적 정신이 바로 3.1의거의 출발점이었고, 그들의 고뇌 어린 결단이 있었기에 3.1의거는 추진될 수 있었다. 의거의 중심인 천도교는 과거 실패했던 동학혁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자세로 준비했다. 손병희는 최남선을 시켜 작성된 독립선언서를 자체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이종일에게 비밀리에 인쇄할 것을 지시했다. 인쇄 중 종로경찰서의 악질 조선인 순사에게 발각되기도 하고, 완성된 선언서를 옮기는 과정에 파출소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는 등 곡절 끝에 3만 5천 장의 선언서를 종교 조직을 이용해 전국에 퍼트리는 데 성공하였다. 만세 시위는 당일 오후 2시 경성 등 전국 6개 도시를 시작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당황한 일본은 민족대표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하고 전국의 시위에는 강력한 무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밟으면 밟을수록 일어서는 우리 민족이었다. 특히 경기도의 시위가 가장 격렬했다. 수원 화성 지역은 장날마다 시위가 일어났으며 제암리와 고주리의 학살은 대표적인 피해 사건이 되었다. 3월부터 3달 동안에만 시위에 나선 이가 전국적으로 210만 명에 이르고 체포·투옥된 수도 4만6,948명, 부상자 5만 명 이상이었으며 사망자도 7,5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운동이란다. ‘쓰리 포인트 원 스포츠’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하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된단 말인가? 3·1운동이란 말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가. 해방 이후 헌법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의 헌법전문 초안에도 분명 3·1혁명이었다. 그러나 국회로 넘어가 심의 중에 바꾸었는데 일설에는 대통령에 유력한 이승만의 온화한(?) 이미지와 혁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아첨꾼들이 권했고 이승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헌법전문에 운동으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이승만도 일제강점기 시절 내내 사용하던 3·1혁명을 버린 것이다. 실제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3.1운동이 아닌 3·1혁명, 3·1대혁명이라고 했다. 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과 대한민국 임시헌장(1944)에도 명백히 3·1혁명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지난 3·1혁명 100주년 당시 정명(正名) 운동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명 되지 못하고 있다. 제국의 신민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된다고 선언한 것은 분명 혁명이었는데. 이제 우리부터라도 제대로 된 명칭을 사용하자. 3.1혁명이라고.◎ 글 임형진(년암, 동서울교구,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