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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대신사 생가

기사입력 2025.12.26 16:57 조회수 10,460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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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사께서 태어나 20세까지 살던 집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길 33-29 (가정리 31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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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대신사 생가 전경

     

    대신사께서 태어난 곳, 즉 생가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이다. 1824년 10월 28일(음)에 어머니 한씨 부인 사이에서 최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옥이 후사가 없자 동생의 아들인 제환을 양자로 들인 후이다. 

    대신사는 최옥 나이 63세에 태어난 만득자(晩得子)이다. 그러나 과부였던 한씨 부인이 재가를 하여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서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 스물이 될 때까지 생가에서 살았지만, 화재로 집이 모두 소실되어 잠시 장조카 최세조와 지동에 가서 살다가 용담 깊은 산속의 와룡암 자리의 집으로 들어갔다.

    『동경대전』 「수덕문」 중에 이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先考平生之事業 無痕於火中 子孫不肖之餘恨 落心於世間 豈不痛哉 豈不惜哉

    아버지 평생의 사업은 화재 중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되어 버렸고, 자손의 못난 한을 세상에 

    떨어져 버렸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동경대전』 「수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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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사 대사모 숭모비 : 숭모비는 박노진 선도사와 여성회 본부의 제안에 따라 1년여간 성금을 모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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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바라본 수운 대신사 생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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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 대신사 생가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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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운 대신사 유허비 : 생가 복원하기 전의 유허비(좌측)와 생가 복원 후 이동한 자리에 있는 유허비(우측)

     

    대신사 생가는 용담정 주차장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화재로 소실된 이후 대신사 생가는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971년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마당에 귀부와 이수를 갖춘, 5m 높이의 유허비를 세웠고, 2011년 11월 경주시가 동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

    지난 2023년 10월 28일에는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대신사 생가 터에 대신사 대사모 숭모비를 건립하였다. 숭모비는 박노진 선도사와 여성회 본부의 제안으로 2022년 건립추진위가 구성되고 1년여 동안 2,4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건립되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도를 펼치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대신사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고, 부화부순의 종지를 온 천하에 알리는 뜻깊은 비석이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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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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