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5.12.06 (토)
최세조(崔世祖)는 대신사의 장조카이다. 항렬은 조카이지만 대신사보다 나이가 12살이나 많다. 아버지 근암공에게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인 제환(崔濟渙)을 양자로 들였다. 물론 대신사께서 아직 태어나기 전이다.
이 양아들인 제환의 맏아들이 최세조이다. 근암공의 동학 천도교 기록에는 흔히 맹륜(孟倫)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는 이름이 아니라 최세조의 자(字)이다. 지금 경주시에서 복원한 대신사 생가는 불이 나기 전까지 조카네 가족과 대신사가 함께 살았다.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던 집이 불이 나자, 그곳에서 좀 떨어진 지동(芝洞)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전에 용담교구가 있던 그 지역이다. 그러나 새로 이사를 한 집은 좁아서 대가족이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사는 가족을 이끌고 용담에 있는 아버지 근암공이 고쳐놓은 와룡암 자리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지동의 집에는 조카인 맹륜, 곧 최세조의 가족만 살게 된 것이다.
음력 4월 5일은 장조카인 최세조의 생일이다. 예전에는 생일날 아침에 어른들을 모셨다. 조카인 최세조가 작은 아버지인 대신사를 자신의 생일에 오시게 하려고 옷을 보냈다. 옷을 보내는 것도 옛 관습의 하나이다.
대신사는 조카의 청을 받고 생일상을 잡수러 갔다. 아침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몸이 떨리고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신사를 모시고 용담의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즉 대신사의 종교체험은 이렇듯 장조카 최세조의 집에서, 최세조의 생일날 생일 밥상 앞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록이 『도원기서』에 나온다.
‘지동(芝洞)’이라는 지명은 그곳에 오래 산 사람들만 아는 이름이다. 대부분 오늘의 사람들은 모르는 지명이다. 지금 그곳에는 ‘경주디자인고등학교’가 들어와 있고, ‘천도교용담교구’가 있다. 그리고 그 인근으로는 천도교 동덕들이 세운 ‘방정환 한울유치원’이 있다.
최세조가 살던 집터는 지금은 밭이고, 그 밭 바로 옆에는 현곡보건소가 있다. 160여 년 전 이 자리에서 대신사께서 조카의 생일상을 받아 드시다가, 문득 마음이 선뜻해지고 몸이 떨리며[心寒身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며, 그 증상을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사람들이 모시고 용담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대신사께서 처음 종교체험의 순간을 맞이한 장소이지만, 지금은 아무러한 표지판 하나도 없다. 다만 시간 속에 묻혀버릴지도 모르는 상태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드넓은 논이 펼쳐진 이곳에도 대신사의 행적이 남아 있다. 경주 시내에서 가정리로 오는 메인 도로명이 ‘용담로’이다. 가정리 일대 대신사의 행적에 스토리를 만들어 가칭 ‘수운길(수운동학길)’을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화 예고 : 남원 은적암 '관의 지목을 피해 숨어서 동학 경전을 저술하다' 편이 이어집니다.
수암 염상철 (守菴 廉尙澈)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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