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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윗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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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윗대치

대신사 순도 이후 동학 재건의 발판 삼은 일월산 기슭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용화리 453-3 (입구)

  • 편집부
  • 등록 2026.01.09 18:08
  • 조회수 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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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6-01-09 181904.jpg
하늘에서 바라본 영양 윗대치 마을

 

화면 캡처 2026-01-09 181919.jpg
해월 신사께서 머문 집터로 추정되는 감 나무 앞에 선 답사단

 

대신사께서 대구 관덕당에서 순도한 이후 조선의 조정에서는 동학의 뿌리를 뽑기 위하여, 대신사 수제자들에게 지명수배령을 내린다. 따라서 해월 신사는 대구 성중을 벗어나 안동, 죽 변 등지를 거쳐 영양 일월산 중 산간 마을인 용화동 윗대치로 숨어든다. 영양 윗대치에 해월 신사께서 오셔서 산다는 소문을 듣고, 동학 도인들이 이곳 윗대치로 모 여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영월 동관음에 숨어 살던 수운 대신사의 사모님과 자제들이 찾아와 함께 살게 된다. 명실상부 영양 윗대치라는 산간 마을은 해월 신사를 중심으로 동학 재건을 위 한 마을이 된 것이다. 『도원기서』에 이와 같은 사실이 전해진다

 

過一年 移遷英陽龍化洞 永以不出山外之意 誓以隱跡云云 夢外乙丑歲七月 師母氏率其子女 男負女戴 莫樣以來到 主人見其師母氏之情像 心斷臆寒 莫悶其來然 而蒼猝之勢也 故卽許以 主人家 主人出于他家云云 自甲子以後 所謂道人者 或死或存或棄 閉無相通 永爲絶跡 而彼此 相見如見仇讐 自不能相從也 主人自入山後 身爲山翁 極勞於稼穡之役 而却恐 種桃之跡露 然 而當此時 師家之計活 矜憫難言 歲月如流 遞當丙寅之三月矣 臭味自香 近響遠照 始自尙州 自 然有知 幸賴師家之輔力 俗所謂活人之佛言也 是歲三月初十日 卽先生終朞之日也 尙州人黃文 奎 韓振祐 黃汝章 全文汝 極懷反哺之情孝 而致有追遠 感奠之誠 自懷故之行也 自此以後 師 家之輔護 出於尙州 而惠及於飢者之食也 此時 姜洙當於三月初朔 自量爲思 則今年先生終朞 則其子弟 必爲來龍潭矣 去必逢之 卽爲發行 往尋孟潤氏之家 則厥後莫樣頭緖 方爲賣計於綑 屨 以食也 以其碩大壯氣 困於此地 忍不得難言 而自夕至夜 待所不來 其夜則乃先生諱日也 孟 潤氏 亦爲感悵 而洙此不禁其懷 苦待終無消息 臥起不眠 達夜空嘆 及其曉頭 洙言曰 日已白矣 吾將欲速 孟潤氏曰 君恐指目 而雖爲速去 食飯以去矣 洙曰 此處則有名之地 吾何爲見人之所 指也 卽拜而還家 全聖文者 本是盈德人也 自甲子後 無家紛走來 接主人之比隣其時 自遠以來 同居接隣者 惟全德元 鄭致兼 全潤吾 金成眞 白玄元 朴皇彦 金艮彦 黃在民 權成玉 金性吉 金 啓岳也 丙寅秋八月 江都之亂 一國騷搖 其時道人 失源者欲探其主人之在處 然難尋隱跡之深

居 至於九月 全聖文 適有盈德之行 姜洙偶逢 其人問其師家之所在 主人之所居 聖文曰 初有疑 訝而不言 其實觀其洙之憫然之像 乃言其師家之居處也 洙喜聞其言 卽通朴春瑞 期日發行于主 人家 世貞聞洙與春瑞之來 足不移之以來 握手而言曰 劫過三年之懷 孰勝於彼此也哉 師母氏 孤在此處者 固無强近之族 只有道人之追 故爲人弟子者 親爲倍見於師母 古所不有然 至於此 有此 拜師母之禮 實乃孤踪之故也 是以 尊號曰 大家云云者 自是以出也 是歲十月二十八日 卽 先生之生辰也 洙與春瑞 往參祭祀 主人發論曰 至于今日 道人相會者 如此 自明年丁卯三月爲 始 爲先生成契如何 洙對曰 隆師之道 及於吾輩之情 莫大於此也 主人曰 期於一年 再次生辰與 忌日 各料四盞 以爲春秋之享祭 卽修契案 通文于各處 

 

일 년을 보낸 후에 영양(英陽) 용화동(龍化洞)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영원히 산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맹세하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뜻하지도 않게 을축년(乙丑年, 1865년) 7월, 선생의 부인이 자녀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주인이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끊어지고 가슴이 막혀 차마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별안간에 닥친 일이라 자신의 집에 들게 하고 주인은 다른 집으로 옮겨갔다. 갑자년 이후로부터 도인이라는 사람들은 혹 죽고 혹은 살아남은 사람도 있으며, 혹은 도를 버 리고 서로 상통(相通)하지 않아, 오랫동안 발길이 끊어져, 피차간에 서로 보기를 원수 보는 것과 같이 하기도 하며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았다. 주인은 산으로 들어간 후, 몸은 산옹(山翁)이 되었고, 농사일에 극력 힘을 쓰며, 스스로 발각되고 또 노출될 위험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이즈음 선생의 집은 그 생활의 어려움을 말로 다 하기 어 려웠다. 세월은 흘러 병인년(丙寅年, 1866년) 3월이 되었다.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서 소식을 접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상주(尙州)에서도 자연히 알게 되어 선생의 집을 돕게 되었다. 이해 3월 10일은 선생의 기일(忌日)로 복(服)을 벗는 날이다. 상주 사람 황문규(黃文奎), 한진우(韓振祐), 황여장(黃汝章), 전문여(全文汝) 등이 선생을 그리워하는 정을 지극하게 품으며 정성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때부터 선생의 집을 (도인들이) 보호하게 되었고, 따라서 굶는 식구 들에게 도움이 미치게 되었다. 이때에 강수(姜洙)가 3월 초승을 맞아 스스로 생각을 헤아려 보건대 금년이 선생의 종기년(終 期年)인즉 그 자제가 반드시 용담(龍潭)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게 되면 반드시 이들을 만 날 것이라 여기고 길을 떠나 맹륜(孟倫)의 집을 찾아갔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두서(頭緖)를 그릴 수는 없으나, 그때에 (맹륜은) 나막신을 만들어 팔아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 크고 장대했던 기질로 이와 같이 곤경을 겪고 있으니 차마 말로 다 하기 어려웠다. 저녁부터 밤까지 기다렸으 나 자제들은 오지 않았다. 그 밤은 곧 선생의 기일(忌日)이었다. 맹륜 역시 슬픔이 가득했고, 강 수 역시 그 감회를 금할 수 없어 고대(苦待)하고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밤을 새우고 공연히 한숨만 쉬었다. 새벽녘에 이르러 강수가 말하 기를, 

 “날이 이미 밝았소. 나는 바삐 가겠소.” 

하니, 맹륜이 말하기를 

“그대가 지목(指目)이 두려워 바삐 가려 하니, 음식이라도 들고 가시오.” 

강수 말하기를, 

“이곳은 유명한 곳인데 내가 어찌 지목을 받지 않겠소.” 

즉시 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성문(全聖文)은 본래 영덕 사람이다. 갑자년 후로부터 집이 없어, 이곳으로 와서 주인의 이웃 으로 살게 된 사람이다. 그때 멀리에서 와서 같이 살며, 가까이 한 사람들은 김덕원(金德元), 정 치겸(鄭致兼), 전윤오(全潤吾), 김성진(金成眞), 백현원(白玄元), 박황언(朴皇彦), 황재민(黃在民), 권성옥(權成玉), 김성길(金成吉), 김계악(金啓岳) 등이다. 

병인년(丙寅年, 1866년) 8월은 강화(江華)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소란스럽고 어지러웠던 때이다. 그때 도인들 중 연원(淵源)을 잃은 사람들이 주인이 있는 곳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숨은 곳이 깊어 찾기가 어려웠다. 

9월에 전성문(全聖文)을 영덕으로 보냈다. 강수가 우연히 만나, 선생의 집과 주인이 사는 곳을 물으니, 전성문이 처음에는 의심하여 그 실상을 말하지 않다가, 강수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이내 선생 부인이 사는 곳을 말해 주었다. 강수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즉시 박춘서(朴春瑞)에게 통지하고, 주인의 집을 향해 떠났다. 세정(世貞)이 강수와 박춘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손을 잡고 서로 만나 말하기를, 

“지난 3년간의 회포를 이야기한다면, 무엇이 이것보다 더하겠습니까?” 하였다. 선생의 부인에게는 진실로 가까운 친척도 없고, 다만 따르는 도인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친히 선생의 부인을 모시었다. 옛날에 그러함이 없었으면 지금에 이르러 이러 함이 있겠는가. 선생의 부인께 절하여 예(禮)를 올리니, 실로 외로운 자취인 까닭이다. 모두들 높 여 말하기를 큰집[大家]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이때부터 나온 것이다. 이해 10월 28일은 선생이 생신이다. 강수와 박춘서가 제사에 참례하고, 주인이 발론(發論)하여 말하기를, 

“오늘에 이르러 도인이 서로 모인 것이 이와 같으니, 내년 정묘년(丁卯年, 1867년)부터 선생님을 위하여 계(契)를 시작함이 어떻겠느냐?” 

하니, 강수가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를 크게 일으키는 것이 우리들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큰 것입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일 년을 기하여 생신과 기일에 두 번 각각 4전(錢)씩을 내서 봄과 가을에 제사를 모시자.” 

하며 즉시 계(契)의 안(案)을 다듬어 각처에 통문(通文)하였다.

- 『도원기서(道源記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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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신사 은거 유허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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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신사 은거 유허비 제막식


영양 윗대치는 당시 모여드는 동학 도인들로 하여 ‘동학 공동체 마을’과 같았다. 대신사 사 모님을 중심으로 대신사 승통일인 4월 5일, 대신사 탄신일인 10월 28일, 대신사 순도일인 3월 10일, 이렇듯 일 년에 세 번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자연히 제사를 모시는 날이면 다른 지역 의 동학 도인들도 참여하게 되고, 이 자리를 빌려 동학 재건을 논의하게 된다. 외씨버선길 사계절마다 49일의 특별 기도식을 봉행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와 함께 해월 신사께서 친히 스승님인 대신사 가르침의 글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입으로 구송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받아쓰게 함으로써 스승님의 가르침을 펴기도 했다. 이 내용이 『천도교회사 초고』에 나온다.

 

‘先時에 東經大典과 遺詞가 大神師l 被害되심을 經하야 火燼하고 無한지라 神師 默念하시다가 東經大全과 遺詞를 口呯하사 人으로 하여금 書케 하시다’.

- 『천도교회사 초고』 

 

또한 각처로 사람을 보내 도인들의 신심(信心)을 고취하고, 해월 신사께서 직접 각 처를 방 문하여 법설을 펼치기도 한다. 다음의 기록을 보자. 

또 비밀히 사람을 각처로 보내 道人의 信心을 고취시키고, 

- 『천도교회사 초고 

‘自今으로 吾道人은 嫡庶의 別을 打破하야 天然의 和氣를 傷치 말라.’는 설법을 했다.

- 『천도교회사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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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대치에서 머지않은 곳에 자리 잡은 아랫대치 자생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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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변천 발원 표지비. 영양의 중심 하천인 반변천은 영양 윗대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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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대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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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길- 청송에서 시작해서 봉화까지 이어지는 외씨버선 둘레길. 그 가운데 7코스가 윗대치 마을을 지나 간다. 외씨버선은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따온 문구이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펴고 각지를 순회하므로 경북 영양 일월산 중의 산간 마을인 윗대치는 경상도 일원과 강원도 일원에 퍼져 있는 모든 동학 도인들을 지휘하는 동학의 대도 소(大都所)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 해월 신사는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동학 재건을 꿈꾼다.

지금은 ‘윗대치’를 그곳 사람들은 ‘윗대티’라고 부른다. ‘치’는 언덕이라는 뜻의 ‘치(峙)’이다.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영양 동학혁명기념사업 추진방안 연구’ 사업을 수행한 바 있으며, 그 그런데 고구려 방언에 따르면 원래는 ‘치’가 아니라 ‘티’라고 부른다. 구개음화 현상 때문이다. 영양의 용화동은 신라 방언이 아닌 고구려 방언 지역이기 때문에 ‘윗대티’로 발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월 신사는 위대치에 머무는 동안 경상도 일원과 강원 도 일원에 걸쳐 동학 교도들을 관장하며, 동학 재기를 위 하여 위대치를 그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영해 지역에 들어와 있던 이필제가 영해부를 습격하기 위해 해월 신사 께 사람을 보내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로 인하여 7년간 동학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영양 윗대치 마을은 관군의 침입을 받아 풍비박산이 난다. 해월 신사 등은 간신히 봉화로 피신하였다가, 낮에는 숨고 밤에 는 걸어서 수운 대신사의 유족들이 살고 있는 영월 소밀원 으로 찾아가는가 하면, 간신히 밥 한 그릇을 얻어먹는 등 사방으로 피신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왕래 가 없는 태백산 깊은 산골짜기로 숨어들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현재 윗대치는 생태마을로 지정이 되고, 도회지 사람들 이 전원주택을 짓고 들어와 산다. 그러나 아직 마을이 활 실천 결과물로서 유허비를 착공하였다. 유허비는 해월(海月) 신사의 호를 상징하는 밤바다와 성화되지 않고 산간 마을의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23년 10월 영양군과 인시천영양동학해월최시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동학 해월 최시형 선생 은거 유허비’를 착공하고 2024년 6월 6일 유허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인시천 영양동학해월최시형기념사업회는 10여 년 전 윤석산 교수가 중심이 되어 천도교인 유기제 전 영양군 농민회 회장과 함께 시작한 영양 지역의 동학 공부 모임이다. 그간 ‘해월 최시형 은거 지 인문자연자원 고증 연구’와 강연회 등 영양 지역과 관련하여 동학 천도교의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저자 역시 2023년에 해월 신사의 영양 거주 활동에 관한 170 깜깜한 세상을 밝히는 달을 형상화하였으며, 비문은 윤석산 교수가 다듬었다. 윤석산 교수는 이와 관련해 “2000년도부터 이곳 용화동을 드나들었다. 해월 선생 유허비를 세우느라 군청에도 여러 번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군수님이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주민이 반 대하여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인시천 이상국 회장을 비롯한 군의회에서 적극적 으로 도와주어서 오늘 감격스럽게 유허비가 서게 되었다.”라며 소감을 밝힌 바 있다. 해월 신사 은거 유허비가 일월산 자락 깊은 골짜기마다 해월 신사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널리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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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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