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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일

기사입력 2025.10.01 18:12 조회수 8,019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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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정]960px-Jacques_Courtois_-_Alexander_the_Great,_victorious_over_Darius_at_the_battle_of_Gaugamela.jpg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 군대를 격파하는 장면으로, 가우가멜라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동서 문명의 향방을 바꾼 역사적 전투였다. 

     

    ○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하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3세와 맞선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페르시아의 패권은 무너지고, 알렉산더는 서아시아와 이집트, 인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길을 열었다. 그의 원정은 동서 문명의 교류를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은정]Kyu-Chosensoutokufu-Chosha-from-Kenchikuzasshi-41-492.jpg
    서울 경복궁 내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이자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식민 권력의 상징체였다.

     

    ○ 1910년, 일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다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1910년 10월 1일 서울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임명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입법·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고, 한국인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을 철저히 억압하였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식민지 통치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은정]조선어학회_한글_1권_3호_표지.jpg
    조선어학회 『한글』 제1권 제3호 표지. 학회가 국어 연구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던 간행물이다.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일제에 의해 대거 검거된 사건이다. 최현배, 이윤재, 한징 등 학자들이 모진 고문 끝에 옥고를 치렀고, 일부는 순국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며, 동시에 한국어 보존을 위한 학자들의 숭고한 뜻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은정]Fritz_ter_Meer_during_sentencing_at_IG_Farben_Trial.jpg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법정에서 나치 독일 전범들이 심판을 받는 모습. 이 재판은 인류사 최초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국제적 책임을 물은 사례로 기록된다. 

     

    ○ 1946년,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종결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 처리를 위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국제 군사 재판이 이날 종결되었다. 나치 독일의 주요 지도자들이 인류에 대한 범죄와 전쟁범죄로 기소되어 사형과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국제 사회가 집단학살과 침략 전쟁에 책임을 묻는 첫 사례로, 오늘날 국제 형사 재판의 토대가 되었다.

     

    [은정]Mao_Tse-Tung,_leader_of_China's_Communists,_addresses_some_of_his_followers._-_NARA_-_196235.jpg
    1962년 무렵,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이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이는 장기간 이어진 국공내전의 종식을 의미했으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새 출발을 알렸다. 이로써 동아시아와 세계 냉전 구도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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