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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9일

기사입력 2025.09.29 21:29 조회수 8,294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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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정]폐비윤씨회묘.png
    폐비 윤씨가 잠들어 있는 회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에 있다. 

     

    ○ 1504년(연산군 10년), 갑자사화가 일어나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는 성종의 계비였으나 폐위된 뒤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연산군은 즉위 초기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가 임사홍의 밀고로 진상을 알게 되었고,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된 주변 인물들과 신하들을 포함해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을 잔혹하게 숙청했다. 이 과정에서 사림파가 큰 피해를 보았고, 유교적 정치 질서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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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성공회 초대 조선교구장 찰스 존 코프. 한국 성공회 선교와 근대 의료, 사회복지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 Joni Corfe 

     

    ○ 1890년, 성공회 주교 코프, 인천에 도착하다

    영국 성공회에 소속된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 1843~1921) 주교가 인천에 도착했다. 이후 코프 주교는 인천 중구 송학동에 큰 집을 얻고 병원을 꾸미고 첫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한국 성공회 선교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선진 의료와 교육을 보급하는 데 힘쓴 코프 주교는 1905년 조선을 떠나 중국 베이징에서 3년여간 선교 활동을 하다가 영국으로 돌아갔다.

     

    사상계_창간호_195304.jpg
    1953년 4월 『사상계』 창간호 

     

    ○ 1970년, 월간지 『사상계』 등록 말소

    『사상계』는 1953년 4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장준하의 신념에 따라 창간됐다. 이후 정론 월간지의 대명사로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맞서 자유, 민주, 반독재 투쟁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는 인쇄시설 미비라는 이유로 『사상계』의 등록을 말소했다. 신민당은 정부의 이 같은 처사가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출판의 자유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침해 사건이라고 보았다. 1972년 4월, 대법원의 등록 취소 청구 소송 확장 판결에서 승소했으나 끝내 복간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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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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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 

     

    ○ 1972년, 중국과 일본, 중일 공동 성명 체결로 국교 정상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베이징에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절되었던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로써 양국은 전쟁 이후 27년 만에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동북아 정세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경제·문화 교류의 길이 열리면서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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