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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8일

기사입력 2025.09.18 15:58 조회수 15,468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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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6년, 프랑스 함대의 강화도 침범으로 병인양요 발발. 프랑스군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침범했으며, 이는 서구 열강의 무력 개입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병인양요 당시 조선군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결사 항전을 펼쳤으나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에게 고전하였다. 그러나 끝내 프랑스군이 조선을 장악하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조선은 ‘서양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을 얻는 동시에 서구와의 불가피한 충돌을 예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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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6년 프랑스 함대의 침범으로 격전이 벌어졌던 강화도 정족산성. 사진은 강화역사박물관 내 전시 모형. © 노은정  

     

    ○ 1894년,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인 교동소학교 개교. 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교동소학교는 서구식 학제를 도입한 최초의 공립 초등교육기관으로, 아동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과거 서당이나 서원에서 한문 위주로 교육받던 것과 달리, 산술·지리·역사 등 근대 교과과정을 운영하며 시대 변화에 부응했다. 교동소학교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공립학교 제도의 모델이 되었고, 한국 근대 교육 발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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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9월 만주사변 발발 직후, 일본 관동군 병사들이 총검을 장착한 채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 1931년, 일본, 만주사변을 일으키다. 중국의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일본 관동군이 남만주철도 선로 폭발 사건을 조작해 군사 행동을 개시한 것이 만주사변이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단기간에 만주를 점령하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다. 이 사건은 국제연맹에서 규탄을 받았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탈퇴함으로써 국제 사회와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아시아와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전초가 되었다.

     

    ○ 1953년, 빨치산 이현상, 지리산에서 사살되다. 6.25 전쟁 전후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며 ‘빨치산의 총사령관’으로 불렸던 이현상이 이날 토벌 작전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해방 이후 좌익 무장 세력을 이끌며 농민 운동과 게릴라전을 주도했지만, 국가의 집중적인 토벌 작전에 결국 쓰러졌다. 이현상의 죽음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 1973년, 동독과 서독, 유엔에 동시 가입. 냉전 체제 속 분단국가로 존재하던 동·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각기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독일 분단의 현실을 국제적으로 확인시켜 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트이면서 훗날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의 토대를 닦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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