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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일

기사입력 2025.09.02 16:24 조회수 11,350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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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의 승리로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다. 

     

    기원전 31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맞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는 로마와 로마 영토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을 확고히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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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직전인 1910년 3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감옥으로 면회 온 동생 정근, 공근을 만나는 장면이다. 

     

    1879년, 항일 독립투사 안중근(1879~1910) 출생.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목에서 태어나 일제의 침탈이 국권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항일무장투쟁에 나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초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이자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하는 의거를 단행했다.

     

    1919년, 천도교청년회교리강연부 창립. 1920년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도교청년회는 같은 해 개벽사를 설립하고 종합잡지 『개벽』을 창간하고 계속해서 『부인』 『어린이』 『신여성』 『조선농민』 『별건곤』 『학생』 『농민』 『혜성』 『당성』 『제일선』 『신경제』 『당우』 등을 이어서 발행함.

     

    [크기변환]Kanto-Daishinsai-to-Saitama-2.jpg
    간토 대학살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색출하면서 조선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주고엔 고짓센(15엔 50전)"을 발음해 보라고 요구하며 틀리게 발음하면 그 즉시 무참히 살해했다. 

     

    1923년, 일제, 간토 대지진을 빌미로 조선인들 학살.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 일부에서 조선인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확대되었고, 조선인 거주지에서 집단 학살 발생. 일본 정부와 치안 당국, 자경단(민간 자율방범대)은 학살을 방조하거나 주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1945년, 연합군 사령부,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 발표.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신속한 통치 필요성,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와 냉전의 시작,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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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시게미츠 마모루 외상. 그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때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의족 신세를 지게 되며 미주리호 갑판에 오를 때도 다리를 저는 모습이었다. 

     

    1945년, 일본, 도쿄만에 정박해 있는 미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연이어 떨어진 후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8월 15일이지만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사인한 것은 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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