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동학 정신과 3.1혁명 발자취 되새긴 임실 탐방

기사입력 2025.08.31 20:20 조회수 6,478 댓글수 0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s url
    강병로 종무원장 등 중앙총부 교역자 일행, 자암 박준승 생가, 해월신사 설법 터 방문

    포덕 166(2025)년 8월 26일, 중앙총부 강병로 종무원장과 전명운 교화관장은 독립운동가 삼혁당 김영원 선생의 순국 106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임실을 찾았다. 추모식을 마친 후, 윤철현 임실교구장의 안내로 임실군 청웅면 일대에 남아 있는 천도교 유적지를 탐방하며 동학과 3·1혁명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크기변환]20250826_122940.jpg
    박준승 선생의 삶을 기리는 기념광장 앞에 선 탐방단 일행. 사진 오른쪽부터 최창식 종법사의 손자 임실교구 최세영 동덕, 임실교구 윤철현 교구장, 강병로 종무원장, 전명운 교화관장.

     

     

    [크기변환]20250826_123025.jpg
    임실군 청웅면에 복원된 박준승 선생 생가는 천도교단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상징적 공간이다. 중앙총부 교역자 일행이 윤철현 임실교구장의 안내에 따라 박준승 선생의 생가를 둘러보고 있다.

     

     

    [크기변환]20250826_123208.jpg
    박준승 선생 동상 앞으로 쭉 펼쳐진 청웅면의 온화하고 낮은 산자락과 들녘. 교단의 사적지가 지역의 일상과 함께 이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자암 박준승 선생의 생가였다. 박준승 선생은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으로 활약하였고, 이후 전남 장성군 천도교 대교구장을 역임하며 교단의 교세 확장에 힘썼다. 1919년 3월 1일에는 의암 손병희 성사와 함께 독립선언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그 공훈으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복원된 생가와 기념광장에서 일행은 선생의 굳건한 신앙과 항일 정신을 기리며, 오늘날 천도교인의 길과 사명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은정]20250826_123845.jpg
    임실에 처음으로 동학 교리가 전파된 자리임을 알리는 해월신사 설법 터 표지석

     

    [크기변환]20250826_124211.jpg
    해월신사 설법 터를 찾은 중앙총부 교역자들과 윤철현 임실교구장을 비롯한 임실교구 교인

     

     

    [크기변환]20250826_124335.jpg
    청웅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자리한 해월신사 은둔지. 동학혁명 재봉기 시기, 해월신사가 머물며 교단이 나아갈 길을 모색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어 방문한 해월신사 설법 터는 임실 지역에 처음으로 동학 교리가 전파된 곳으로, 해월신사가 1873년 35일간 설법을 펼치며 교단의 뿌리를 내린 자리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재봉기 시기, 해월신사가 머물며 교단과 민족의 장래를 깊이 고심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해월신사 설법 터 표지석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전북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1137번지

     

    해월신사 동학교리 설법장소

    임실군에 동학이 처음 포교된 것은 1873년(표지석에 1878년으로 쓰여 있는 것은 오류) 3월이다. 동학의 2세 교주 해월 최시형 성생이 장수교인 김신종을 데리고 주치리 새목티 허선의 집에서 35일간 설법을 시작하신 것이 처음이며 강진면에서 15일간 설법을 하였다.

     

    해월신사 은둔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 재봉기 이후 우금치 전투 등 격전이 벌어지는 시기의 대부분을 여기서 머물며 상황을 주시하였던 곳이다. 11월 25일 김제 원평에서 전봉준과 함께 손병희 동학군이 후퇴하여 갈담을 거쳐 찾아온 손병희(3세 교주)를 만나 12월 초 충청 지역으로 도피하였다.

     

    해월신사가 머물던 은둔지는 지금은 고요한 산자락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교단과 민족의 앞날을 깊이 고민했던 해월신사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탐방단은 표지석 앞에 서서 옛 자취를 더듬으며, 천도교가 걸어온 길을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갈지를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