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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항쟁,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재조명
천도교와 학계, 지역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지난 6월 20일(금)부터 21일(토)까지,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1871 영해동학혁명 154주년 추모제 및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는 1871년 동학도인들이 펼친 민중항쟁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할 구체적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번 대회는 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덕군의 후원 아래 진행되었으며, 동학 천도교 정신인 인내천(人乃天)과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치가 어떻게 당대 민중의 실천으로 구현되었는지를 중심에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최초의 한글 번역본 출간… 154년 만에 세상에 나온 사료
이번 학술대회는 특히, 그간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영해동학혁명 관련 1차 사료인 『교남공적』과 『영해부적변문축』의 순한문 원본을 한글로 번역·감수하여 출간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후 1시, 영해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김광열 영덕군수, 김성호 영덕군의회 의장, 황재철 경북도의원 등 지역 주요 인사, 천도교 중앙총부의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정의필 도정, 이용 도훈을 비롯해 서울, 부산, 남해, 영양, 예천, 상주, 천안, 아산, 장흥, 순천 등 전국 동학농민혁명연대 회원 단체와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여 큰 호응과 관심 속에 성황리에 열렸다.
기존 연구를 넘는 새로운 통찰… 해월 최시형의 역할 재조명
그간 동학혁명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 거의 유일한 참고자료였던 「도원기서」에 비해, 이번 번역 출간된 『교남공적』과 『영해부적변문축』은 당시 관군의 진압 작전일지와 피의자 문초 기록을 담고 있어 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특히, 해월 최시형이 처음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고 총기포령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음이 문초기록을 통해 밝혀졌고, 문초 당시 이필제, 이제발 등을 주동자로 지목함으로써 해월의 존재를 보호하려 한 의도도 드러났다. 또한 여성 소사들의 활발한 참여가 확인되어, 이전 사료에서는 누락된 역사적 실체가 드러났다.
다만 『교남공적』이 초기에 작성된 문초기록이 아닌 2·3차 문초기록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건의 전모를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되었으며, 추가 사료 발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동학, 한국형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
학술대회에서는 ‘1871년 영해동학혁명의 재해석과 향후 발전 방향’을 주제로 나행주 건국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신상구 위덕대 교수가 기조강연을 통해 동학의 평등사상과 공동체 정신이 조선 후기 사회 변혁의 분기점이 되었으며, 영해동학혁명은 한국적 근대화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신혜란 인천대 연구원은 발표에서, 동학의 자주·평등 정신이 현재 K-컬처의 근간을 이루며, BTS의 ‘Love Yourself’ 메시지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흥미롭게 조명했다.
또한 장우순 국학진흥원 연구원과 허채봉 부산동학기념사업회 대표는 새로 공개된 사료 분석을 통해 영해동학혁명이 전국 각지의 동학도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대규모 항쟁이었음을 입증하였다.
'동학 민주주의'의 가능성, 새로운 시대 담론으로 떠오르다
토론에서는 ‘혁명’이라는 명칭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발표자와 참가자들은 영해동학혁명이 민중 중심의 정치·사회적 변혁이자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특히 ‘동학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새롭게 제시되며, 동학정신의 현대적 계승 가능성이 모색되었다.
안승문 동학실천시민연대 대표는 “동학은 19세기의 사상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생명의 사상이며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동양적 가치”라고 강조하였다.
‘살생금지’와 ‘시천주’의 실천… 영성의 군대 동학농민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동학혁명군이 단순한 무장항쟁이 아닌, 주문을 송주하며 행진하고 살생금지와 인도주의 행동강령을 실천한 영성의 군대였음을 재확인하였다.
“굶는 자 먹이고, 헐벗는 자 입힌다. 잘못을 뉘우치면 선처하고, 끝까지 탐관오리를 징치한다.”
이와 같은 강령은 천도교가 지금도 실천하고자 하는 시천주 신앙의 사회적 구현이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실체를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었다.
추모제 통해 순도자의 넋을 기리고 천도교인의 신앙을 되새기다
21일 오전에는 순도 154주년을 기리는 추모제가 봉행되어, 동학 신앙을 실천하다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천도교 의례를 중심으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시천주와 인내천의 신앙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천도교, 동학혁명 계승을 넘어 민족 미래로 나아간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념의 차원을 넘어, 동학이 남긴 신앙과 실천의 유산을 오늘날 천도교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이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기념관 건립 등 하드웨어 중심의 접근을 넘어서, 스토리텔링, 교육, 문화콘텐츠를 통한 동학정신의 대중적 계승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권대천 기념사업회 위원장은 “영해동학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한 민주혁명이며, 천도교는 그 중심에 있었다”고 밝히며, “그 정신을 되살려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인권, 생명 평화의 길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천도교중앙총부는 앞으로도 동학정신의 현대적 해석과 실천을 통해, 민중과 함께하는 신앙의 길을 흔들림 없이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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