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제106주년 3·1절을 기념하여 천도교에서 ‘3·1절 특집 역사 학습 콘텐츠-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천도교8인’을 공개한다.
기사입력 2025.03.07 17:11 조회수 3,950 댓글수 0보국안민 정신으로 산화한 천도교인들
![]()
천도교는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아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동학혁명과 3·1운동의 관계를 조명하는 새로운 학습용 콘텐츠를 제작하였다. 이번 콘텐츠는 동학의 정신이 3·1운동으로 계승되는 과정과 그 중심에 있었던 천도교 지도자들의 활약을 조명하며,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인들의 행적을 상세히 담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제는 식민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단체와 사회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단 정치를 자행하며 조선을 억압하고 자원을 수탈했다. 이러한 암흑과 같은 시대 속에서도 천도교는 교리 강습회와 수련회를 개최하며 민족의식을 배양하는 데 앞장섰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민중과 함께 독립을 염원하며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해 나갔다. 특히 1918년 1월 8일,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천명하자 천도교 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구체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동학혁명은 1894년, 외세의 침략과 부패한 조선 정부에 맞서 동학교도들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이었다. 동학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의 자주권과 민중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비록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당시의 동학군들은 동학이 천도교로 대고천하(세상에 널리 알림)한 이후 천도교인으로서 활동하며 동학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이번에 제작된 영상 콘텐츠는 동학혁명 당시 참여했던 동학교도가 나라를 잃은 후, 천도교인으로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고, 결국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 되어 모진 고난의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천도교 관계자는 “이번 홍보 콘텐츠를 통해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모두에서 활동한 천도교인 8인을 조명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3·1독립운동이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동학이 천도교를 통해 계승되고 궁극적으로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천도교는 앞으로도 민족정신을 계승하고, 동학과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번 콘텐츠는 천도교의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조명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sLdHsIdVS8

게시물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