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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학의 지혜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일상의 삶 속에서 꽃피우는 동학의 길을 함께 사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봄날은 간다 저 꽃길을 지나면 그리움 이름 볼 수 있겠죠. 내 마음이 어느새 소소하게 물들었어요. 일신개시화 一身皆是花 일가도시춘 一家都是春 한 몸이 다 바로 꽃이면 온 집이 모두 바로 봄일세. <東經大全 : 시문> 그리움이 쌓이면 향기도 진해진다. 힘들어도 기다리며 살 일이다. -
수운 대신사 생가대신사께서 태어난 곳, 즉 생가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이다. 1824년 10월 28일(음)에 어머니 한씨 부인 사이에서 최옥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옥이 후사가 없자 동생의 아들인 제환을 양자로 들인 후이다. 대신사는 최옥 나이 63세에 태어난 만득자(晩得子)이다. 그러나 과부였던 한씨 부인이 재가를 하여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서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나이 스물이 될 때까지 생가에서 살았지만, 화재로 집이 모두 소실되어 잠시 장조카 최세조와 지동에 가서 살다가 용담 깊은 산속의 와룡암 자리의 집으로 들어갔다. 『동경대전』 「수덕문」 중에 이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先考平生之事業 無痕於火中 子孫不肖之餘恨 落心於世間 豈不痛哉 豈不惜哉 아버지 평생의 사업은 화재 중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되어 버렸고, 자손의 못난 한을 세상에 떨어져 버렸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동경대전』 「수덕문」 대신사 생가는 용담정 주차장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화재로 소실된 이후 대신사 생가는 오랫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971년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마당에 귀부와 이수를 갖춘, 5m 높이의 유허비를 세웠고, 2011년 11월 경주시가 동학 발상지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하였다. 지난 2023년 10월 28일에는 천도교중앙총부에서 대신사 생가 터에 대신사 대사모 숭모비를 건립하였다. 숭모비는 박노진 선도사와 여성회 본부의 제안으로 2022년 건립추진위가 구성되고 1년여 동안 2,4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건립되었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도를 펼치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대신사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고, 부화부순의 종지를 온 천하에 알리는 뜻깊은 비석이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동학의 나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다시 묻다(종합)포덕 166년 12월 23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동학성지화를 위한 국회 학술대회’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원택, 임미애, 정을호 의원 주최, 동학성지화 추진 준비위원회가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동학의 사상적 기원과 역사적 전개, 그리고 오늘날 K-민주주의와의 연관성을 학문적으로 재조명하는 발표와 토론으로 마련되었다. 나행주 방송대 교수(한일관계사학회 회장)는 「동학 성지화의 의의」라는 주제의 기조 발제에서 “동학은 특정 지역이나 사건에 국한된 과거사가 아니라,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이룬 사상”이라며, “동학성지화는 유적 보존을 넘어 동학이 제시한 평등·공경·생명 사상을 오늘의 사회 속에서 되살리는 정신문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학술대회는 「동학의 발상지, 경주」( 김용휘 대구대 교수), 「1871 영해동학혁명과 해월 최시형」(권대천 동학성지화추진준비위원장), 「경북 동학의 역할과 가치―상주·예천을 중심으로」(장우순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 등의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발제와 토론을 통해 참가자들은 ‘동학성지화’가 특정 지역 중심 사업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전국적·범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대한민국은 동학의 성지라는 선언이 학술적 논의와 정책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와 연대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1월 1일 오전 11시, 수운회관에서 교단 새해 출발 다짐포덕 167(2026)년 1월 1일 오전 11시, 수운회관 지하 1층에서 신년합동배하식이 봉행될 예정이다. 새해 첫날을 맞아 열리는 이번 배하식은 교단의 한 해 출발을 알리는 뜻깊은 의식으로 마련됐다. 신년합동배하식은 전명운 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될 예정이며, 개식을 시작으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신년사, 합동배례, 천덕송 제17장 ‘공략가’ 1절부터 4절까지 합창, 만세삼창, 심고, 폐식의 순으로 봉행될 계획이다. 중앙총부는 이번 신년합동배하식을 앞두고 "중앙대교당 안전진단공사로 인하여 수운회관 지하 1층에서 봉행한다. 착오 없으시길 바란다"고 말하며 “희망찬 새해를 맞아 각 도가마다 한울님의 감응이 충만하기를 축원하며, 우리 교단과 모든 동덕이 새롭게 도약하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심고한다”고 밝혔다. -
[칼럼] 대망(待望)의 병오년(丙午年)을 맞이하며대망의 병오년을 맞이하여 한울님께 받은 스승님들의 원단 강시를 찾아 음미(吟味)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전 속 스승님들의 강시를 교사(敎史)와 함께 대조·분석하여 찾아본다. 먼저 수운대신사님의 원단 강시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결(訣) 도를 묻는 오늘에 무엇을 알 것인가?(問道今日何所知) 뜻이 신원(新元) 계해년(癸亥年)에 있더라.(意在新元癸亥年) 공 이룬 얼마만에 또 때를 만드나니(成功幾時又作時) 늦다고 한하지 말라, 그렇게 되는 것을.(莫爲恨晩其爲然) 때는 그때가 있으니 한한들 무엇하리.(時有其時恨奈何) 새 아침에 운(韻)을 불러 좋은 바람 기다리라.(新朝唱韻待好風) 지난 해 서북에서 영우(靈友)가 찾더니(去歲西北靈友尋) 뒤에야 알았노라, 우리집 이 날 기약을.(後知吾家此日期) 봄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春來消息應有知)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와 오네.(地上神仙聞爲近) 이 날 이 때 영우들이 모였으니(此日此時靈友會) 대도(大道) 그 가운데 (있으나) 마음을 알지 못하더라.(大道其中不知心)’ 이 강시는 계해년(서기 1863년) 새해 첫날(원단)에 흥해 손봉조의 집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강시는 해석의 지평(地坪)이 열려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특히 ‘결시(訣詩)’는 주로 예언적인 성격의 시로서 정확하게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결시가 나온 배경은 다음과 같다. 수운대신사님은 임술년(서기 1862년) 연말에 손봉조의 집에서 과세(過歲)를 한다. 섣달 그믐을 맞아 각처의 동학 지도급 인사들을 모이게 하고, 이들 가운데서 각 처의 접주를 정한다. 동학 최초의 접주제 시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결시는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이 결시는 당시 접주 임명을 받은 동학 지도자들에게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말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때를 기다리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리고 봄소식과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워진다는 희망적이고 예언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수운대신사님이 지으신 축문(祝文)의 ‘도유심학(道有心學)’과 상통하는 구절이라 생각된다. 다음으로 해월신사님이 원단에 받으신 강시는 다음과 같이 매우 짧은 것이 있다. ‘무극대도를 작심(作心)으로 정성드리니(無極大道作心誠) 원통봉 아래서 또 통하고 통하였노라(圓通峰下又通通)’ 이 강시는 포덕 28년(서기 1881년) 1월 1일, 원단에 경상북도 상주군 화령면 전성촌에 은거하실 때 지은 것이다. 전성촌 뒷산 이름이 바로 원통봉이다. 포덕 2년(서기 1861년) 입도 후 26년만에 얻은 강시이다. 이 강시는 매우 짧지만 해월신사님이 도통하셨다는 것을 한울님께 인가(認可)받은 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강시에는 도통 비결이 바로 ‘작심한 후 쉼없는 정성을 드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참으로 가슴 속 깊이 되새겨보아야 할 강시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런 강시를 얻어 한울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기를 기약하자! 이 강시에서는 특히 원통봉(圓通峰)이라는 중의적(重義的)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실제 ‘원통봉’이라는 산이름과 함께 원통자재(圓通自在)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 구절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의암성사님의 원단 강시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매우 짧은 결시(어찌보면 결시라기보다는 강화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도 같다)가 있다. ‘해와 달이 중천에 솟으니(日月天中到) 온 세상이 한가지로 즐겁게 보더라(一世共樂觀)’ 이 결시는 포덕 60년(서기 1919년) 1월 1일에 얻은 시이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을 앞두고 새해 첫날에 지은 시이다. 이 시를 깊이 음미해보면 대일항전기(對日抗戰期)의 깊은 어둠을 뚫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터져나와 당시 전세계인의 정신에 큰 충격을 주었던 3·1혁명을 예견한 듯한 감이 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의 혁명이 세상을 바꾸니, 이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할 일인 것이다. 현 시국과 견주어 보아도 의미가 심장하다. 이제 을사년(서기 2025년) 푸른 뱀의 해가 저물고 있다. 그리고 희망에 찬 병오년(서기 2026년) 붉은 말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할 시기이다. 이런 때에 묵은 해의 잔재를 털어 버리고, 새로운 해의 희망을 설계해 보는 것은 매우 시기적절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병오 신년을 앞두고 대망(待望)을 담은 졸시를 지어 본다. ‘을사년은 을씨년스러운 해였는데, 병오년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형국이라 불타오르는 지선 정국에서 새로운 인물이 다출(多出)하리라. 천도교단도 한수에 잠긴 용이 승천하니 곳곳마다 신인간이 출현하여 중흥의 기틀을 짓고, 때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니 세인이 놀라 눈을 크게 뜨리라.’ 동덕님들도 한울님의 감응 속에서 각자 자기만의 병오년 원단 강시를 얻기 바란다. 공암 박돈서(선도사) -
제128주년 인일기념식, 영등포교구 교당에서 봉행제128주년 인일기념식이 포덕 166년(2025) 12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교구 교당에서 봉행되었다. 이번 기념식은 중앙대교당 안전진단 공사로 인해 영등포교구 교당에서 봉행되었으며, 서울 인근 교구 교인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전명운 교화관장의 집례로 교회의식에 따라 개회하여 기념사, 심고, 폐식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청수봉전은 여성회본부 정심당 이정녀 부회장이 봉행했으며, 경전봉독은 여성회본부 수정당 김명덕 회장이 의암성사 법설인 「인여물개벽설」을 봉독했다. 천덕송 합창은 '샘' 연합합창단의 선창으로 제13장 기념송, 제30장 인일기념가를 함께 불렀다. 박인준 교령은 기념사를 통해 인일기념일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인내천 사상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기념사에서 박인준 교령은 “의암성사의 불굴의 신앙과 다시개벽의 정신을 본받아 미래 100년을 향해 정성·공경·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암성사의 생애를 “끊임없는 다시개벽의 도전”이었다고 밝히며, 시천주 신앙을 바탕으로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실천한 의암성사의 삶과 교단·민족사적 업적을 되짚었다. 특히 도통 전수 이후 교단을 국내 최대 종단으로 성장시킨 점과, 『천도태원경』, 『각세진경』, 「인여물개벽설」 등 주요 저술과 법설을 통해 '천도교'로서의 종교적 정체성 확립과 교인들의 신앙의 길을 새롭게 열어준 위업을 강조했다. 또한 교단의 위기마다 시대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의암성사의 결단을 언급하며,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결단과 3·1혁명 영도, 교육·언론·출판 사업을 통한 개벽운동이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박인준 교령은 ▲의암성사 선양 사업의 강화 ▲동귀일체하는 교단 구현 ▲개벽하는 교단으로의 혁신 ▲시대와 짝하여 변화하는 교단 ▲희망을 주는 교단이라는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하며, “의암성사의 의기와 백절불굴의 신앙심을 거울삼아 다시개벽하는 천도교인으로 거듭나자”고 당부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조화정 대학생단 단장의 사회로 인일기념 축하 문화공연이 이어졌다. 축하공연에서는 서울교구 '샘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청원에서」, 「별이 되어」, 「한울세상」, 「샘」 등 네 곡을 선보이며 기념식의 여운을 더했다. 이어 초청공연으로 국악 공연팀 ‘지음(知音)’이 산조합주와 단가 사철가, 진심불염, 영부의 노래 등을 연주하며 전통 국악의 깊은 울림을 통해 천도의 향기를 전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날 행사는 의암성사 승통기념일인 인일의 뜻을 다시 새기고, 문화공연을 통해 신앙과 문화가 어우러진 뜻깊은 행사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 전문이다. 기념사 오늘은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님으로부터 도통(道統)을 전수받으신 지 128주년이 되는 인일기념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우리는 의암성사의 불굴의 신앙심으로 교단과 민족사에 이뤄낸 업적을 널리 알리고,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미래 100년의 성공을 위해 정성·공경·믿음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의암성사의 생애는 끊임없는 ‘다시 개벽’의 도전이었습니다. 포덕2년(1861) 충청북도 청주에서 중인 집안의 서자로 태어난 의암성사께서는 불합리한 신분제의 한계 속에서 각자위심에 빠져 개인의 복록만을 찾던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방황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청년 의암에게 동학은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의암성사께서는 시천주 신앙을 바탕으로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실현한다는 동학을 접하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의암성사님의 동학 입도가 ‘다시개벽’의 시작이었습니다. 의암성사께서는 지극한 수련을 통해 교단과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개벽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하루에 주문 3만 독을 3년간이나 외우는 지극한 수련으로, 과거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의암성사의 자질을 알아보신 해월신사께서는 가섭사 기도에 불러 특별히 지도하셨습니다. 해월신사의 지도로 단련된 의암성사는 포덕 33년(1892) 2월 서울 광화문 교조신원운동에서 상소문을 올렸으며, 포덕 34년(1893)의 보은 장내리 교조신원운동에서는 충의대접주(忠義大接主)로, 동학혁명에서는 통령(統領)으로 앞장서셨습니다. 포덕 38년 12월 24일 도통을 전수 받은 의암성사께서는 우리 교단을 국내 최대의 종단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뿐만아니라 『천도태원경』, 『각세진경』, 『무체법경』, 「이신환성설」, 「성령출세설」, 「인여물개벽설」 등을 저술하고 수많은 법설 등을 남겨 후학이 신앙적으로 올곧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또, 의암성사께서는 교단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큰 결단을 내려 국면을 타개해 나갔습니다. 우금치 전투 패배 후 전북 임실에 은신 하시던 해월신사님을 모시고 강원도로 피신했던 도산검수의 험고, 도통 전수 문제를 해결했던 포덕 41년(1900)의 경자설법, 국권 강탈의 위기에서 교단의 앞날을 준비하신 내원사 49일 수련, 민족 해방을 위한 3·1혁명의 준비와 거사 등은 시대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결단이며 도전이었습니다. 의암성사의 최고의 결단은 포덕 46년(1905)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한 일입니다. 이 대고천하는 45년간의 은도시대의 종막을 고하고 새로운 현도시대의 서막을 열어젖힘으로써, 스승님의 뜻을 바르게 이으면서 근대적 종단으로 거듭난 원대한 용단(勇斷)이었습니다. 의암성사께서는 교단을 넘어 이 땅의 지상천국 건설에 앞장서셨습니다. 포덕 45년(1904)의 갑진개화혁신운동, 보성전문학교와 동덕여학교 등 교육기관 경영, 『만세보』 창간과 보성사 운영 등 언론출판 사업의 전개, 그리고 포덕 60년의 3·1혁명 영도는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실천이었으며, 잠자는 백성을 일깨우는 일대 개벽운동이었습니다. 3·1혁명은 우리 민족사 최대의 독립운동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발판을 마련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오늘 제128주년 인일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의암성사의 크나큰 포부와 영도력을 본받아 다시개벽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의암성사 선양에 한층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의암성사의 위대한 생애와 사상은 아직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적지 정비 및 기념관 건립, 학술 활동, 대외 협력을 통해 성사의 업적을 드높이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 교단의 역량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동귀일체하는 교단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성사께서는 종교와 사상을 넘어 우리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했습니다. 이러한 의암성사의 동귀일체 정신을 귀감으로 삼아 포덕167년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다가올 미래 100년에 대비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야 하겠습니다. 셋째, 개벽하는 교단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천도교가 세상에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교단이 먼저 새로워져야 합니다. 수도연성의 강화, 지방 교구 활성화, 천도교 언론과 교육기관의 체질 개선, 연구·홍보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천도교 문화가 정립되고 신앙이 새로워져 한층 성장하고 발전하는 교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넷째, 시대와 짝하여 변화하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기후재난·전염병 등 인류의 대전환기에서 의암성사의 삶을 교훈으로 삼아 교단의 변화를 이루어 내고,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의 사상을 바탕으로 모든 존재가 차별 없이 모심과 돌봄을 받는 행복한 세상을 열어가야 합니다. 다섯째, 희망을 주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성운의 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친밀감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신앙, 민족을 뛰어넘어 세계인도 찾아오는 교단, 이웃 종단을 참여시켜 3·1혁명을 이뤄내었듯이, 통합과 조화의 정신으로 통일된 한반도를 기필코 이룩하여 민족의 영광을 회복하는 천도교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동덕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주문을 외우고 궁을기 흔들며 세상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오늘, 128주년 인일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의암성사의 의기와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신앙심을 거울로 삼아 다시개벽하는 천도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을사년 남은 시간 잘 마무리하시고 다가오는 포덕 167년 새해에는 동덕 여러분의 가정에 한울님의 감응으로 언제나 행복이 충만하기를 심고 드리면서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6(2025)년 12월 24일 천도교 교령 박 인 준 심고 -
동학성지화 국회 학술대회 열려(1보)동학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성지화의 방향을 모색하는 「동학성지화 국회 학술대회」가 12월 2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학성지화 추진 준비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됐으며, 학계·시민사회·종교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동학의 발상과 확산 과정, 그리고 동학성지화의 의미와 제도화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1부 개회식에서는 개회선언에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동학 유적과 정신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성지화하려는 논의는 역사 계승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며 학술대회의 성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미애 국회의원의 인사말이 진행됐다. 임 의원은 인사말에서 “동학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민중 주체의 역사”라며 “동학의 정신과 유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하고 계승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내외빈 소개와 축사, 격려사가 이어졌으며 참석자들은 단체 기념촬영으로 학술대회의 시작을 함께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는 허채봉 동학성지화추진위원회 간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나행주 한일관계사학회 회장의 기조발제와 김용휘 대구대 교수, 권대천 동학성지화추진준비위원장, 장우순 한국국학진흥원 연구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정정숙 종의원 의장, 정갑선 유지재단 과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2보 이어짐) -
“수원지역 천도교 신앙과 민족운동 역사의 성지”포덕 166년 12월 21일 오후 2시, 천도교수원대교구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안내표지판 제막식이 수원대교구 교당이 있던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303-4일원에서 100여 명의 교인 및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번 행사는 경기 3·1운동기념사업회(회장 장구갑)와 수원교구(교구장 안춘보)가 공동 주최하고, 수원특례시청 문화예술과가 후원했다. 먼저 식전 행사로 '마구잡이 풍물단'의 풍물공연과 수원교구여성회의 합창공연이 분위기를 돋구었다. 제막식의 개회는 청수봉전 등 천도교 의례로 진행되었으며 본 행사로 내빈과 주빈 등이 참례한 가운데 안내표지판을 제막했다. 안내표지판은 수원대교구가 수원 지역 3·1독립운동의 책원지(策源地)로서 근대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해 수원시청에서 설치했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은 인사말에서 “천도교수원대교구교당은 종교의 공간을 넘어 수원 시민 모두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의 현장”이라며, “이번 안내표지판 설치를 계기로 수원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끈 천도교의 역할이 제대로 조명되고 시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축사를 통해 “천도교는 민족의 자주와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실천으로 보여준 종교”라며, “수원대교구 교당 터 안내표지판은 천도교 신앙과 역사, 그리고 시민정신을 잇는 상징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춘보 수원교구장은 인사말에서 “수원대교구는 종교 활동에 그치지 않고 근대 교육과 민족 사상을 전파하며 지역 사회운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며, “이번 제막식을 통해 수원교구의 역사와 정신이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3·1독립선언서 낭독과 안내표지문 낭독은 참석자들에게 수원 지역 독립운동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켰으며, 3·1절 노래 제창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제막식을 주최한 수원교구는 “이번 안내표지판 제막은 천도교 수원대교구 대교당 터의 역사적 가치를 공적으로 확인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기억·보존해 나가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지속적인 역사 알림과 교육 활동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천도교수원대교구는 1906년 영화동 장안문 밖에 교구가 설립된 이후 1912년 북수리(현 북수동)로 이전했으며, 1914년 대교구로 승격돼 경기 남부와 인천 일대 10개 교구를 관할하는 중심 교구로 성장했다. 특히 이곳은 1919년 수원 지역 3·1운동을 이끈 핵심 거점의 역할을 하며 만세운동과 이후 활동 논의가 이루어진 역사적 현장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교구가 폐쇄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교인들은 독립운동의 뜻을 이어갔으며, 이후에도 근대 교육과 민족 사상 전파, 신간회 수원지회 창립(1927년), 천도교청년동맹 결성(1928년) 등 수원 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
제2차 종의원 정기총회 열려제2차 종의원 정기총회가 포덕 166년(2025) 12월 19일(금) 수운회관 907호에서 개최됐다. 이날 총회는 종의원 47명 가운데 27명이 참석해 과반수를 충족함에 따라 성원이 보고됐으며, 이에 따라 정기총회가 공식 개회됐다. 총회 개회식은 점명과 성원보고에 이어 개회 선언,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숙현당 정정숙 종의원 의장이 인사말을 통해 “4월 새 집행부 구성 이후 8개월 만에 열린 정기총회로, 그동안 종의원 워크숍과 운영위원회, 예결산소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오늘은 중앙총부와 유지재단의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자리”라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교화·포덕 사업이 지속 가능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종의원들의 세심한 검토와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준암 박인준 교령이 격려사를 통해 종의원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박 교령은 “종의원은 일반 사회의 국회와 유사한 기능을 지니고 있으나, 천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제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우리는 제도 이전에 신앙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천도교는 특정 개인을 신격화하지 않고 평등과 민주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해 온 종단”이라며 “그 민주적 역량을 보여주는 핵심 기구가 바로 종의원”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령은 아울러 “개인이나 교구의 이해를 넘어 교단 전체를 위한 균형 있는 판단과 동기일치의 정신으로 임할 때, 천도교 중흥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며 종의원들의 사명감을 당부했다. 격려사에 이어 정정숙 의장의 사회로 의안 심의가 진행되었다. 의안은 △제1호 의안 ‘포덕 167년도 중앙총부 사업계획 및 세입세출 예산안’, △제2호 의안 ‘포덕 167년도 유지재단 사업계획 및 세입세출 예산안’, △제3호 의안 ‘기타 안건’ 등이 논의됐다. 이번 정기총회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합의와 제도 운영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천도교 제도 발전과 교단 중흥을 위한 종의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제1보> ※ 상세기사가 이어집니다. -
천도교는 사이비 종교 아닌가요?Q. 천도교는 사이비 종교 아닌가요? A. 천도교는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자생한 민족종교이자 보편 종교입니다. ‘사이비(似而非)’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가짜를 뜻하는 말로, 본래 일제강점기 식민 권력이 한국에서 발생한 종교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하던 용어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일부 종교권에서 경쟁적·배타적 관점으로 이 용어를 사용해 온 측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말하는 ‘사이비 종교’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신도를 통제하고, 가정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비윤리적·반사회적 행위를 일삼는 집단을 의미합니다. 천도교는 인간 존엄과 평등을 강조하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근대 한국 사회의 민주·평등·자주 정신 형성에 크게 기여해 온 종교로, 이러한 사이비 종교의 정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희암 성주현(상주선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