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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환하고 맑은 의식 일깨우기

기사입력 2025.02.12 10:31 조회수 7,820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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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깨어남의 새벽> 수련 때였다. 늘 하듯이 ‘몸 깨우기’를 10여 분 동안 했다. 잠시 숨 명상을 하고 나서 마음 깨우기를 해 보자고 했다. 수련생 한 분께 마음 깨우는 말씀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분은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딱 한 줄의 명언을 소개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이는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가 한 말로 그의 대표작인 《대낮의 악마》에 나온다. 주체적인 삶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삶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운명을 창조해 나가기 위한 끊임없는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말이지만 그렇게 살기가 쉽지는 않다. 번뇌의 실타래로 엉겨드는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둘려 사는 때가 많다.


    다른 수련생에게 물었다. “오늘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시렵니까”라고. 그 수련생 역시 오래 걸리지 않고 대답했다. “밝고 맑고 향기 나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살겠습니다”라고.


    밝고 맑고 향기로운 생각.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산다는 건 아름답다. 우리의 생각과 의식은 환경과 존재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환경과 조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습관이나 집단 내 관습에 따라 이뤄질 때가 많다. 습관과 관습의 엄청난 힘! 그래서다. 하루를 밝고, 맑고, 향기롭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 역시 쉽지는 않다. 


    또 다른 수련생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매 순간을 밝고 맑고 향기롭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알려 주세요”라고. 그분은 말했다. “모든 것에 대해 ‘고맙습니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적이 있는데 그랬더니 맑아지고 환해지는 걸 알았습니다.”라고.


    우리는 모두 온라인 영상으로 명상 음악을 공유하며 오늘 하루 예정된 일정을 한 시간 단위로 나누어 가며 시간대별로 주변 환경과 대상을 떠올리며 “감사합니다”를 독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 소리로 합송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뿐 아니라 소통하는 모든 대상과 밝고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 내가 10년 이상 모으고 있는 공공장소에서의 표어와 안내방송을 몇 개 살펴보자. 알게 모르게 사람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라 모아보는 중이다.


    대전 어느 식당에서다. 들어서는 입구 신발장에 “신발 분실 시 책임지지 않습니다”라는 붉은 글씨가 큰 아크릴판에 새겨져 있었다. 당신 신발은 당신이 책임지라는 것으로 읽힌다. 그 글씨를 보니 신발을 신발장에 넣는 거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렸다. 신발을 벗어들고 들어가라는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주인께 말했다. “신발은 신발장에 잘 챙겨두세요” 정도로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쓴 거 아니다. 업체에서 갖다주는 거 붙였다”라고. 


    경북 구미 근처 철도 건널목에서 본 표어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당신도 언젠가는 건널목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였다. 군부대 철망에서나 보는 “접근하면 발포한다” 수준이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포고문 5항에 ‘의료 현장을 이탈하는 전공의를 처단한다’라는 위협에 버금간다. 


    서울 지하철을 탈 때는 다른 지역 지하철과 달리 노인 우대 무료 표를 받으려면 신분증을 넣고 보증금 500원을 넣어야 한다. 지하철을 나올 때는 반환기에 표를 넣어 500원을 돌려받는다. 다른 지역은 모두 신분만 확인하면 보증금 수납 없이 탈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고 서울 지하철 무료 표 발급기의 안내말에 대해서다. 

    노인 우대 화면을 누르면 “신분증을 투입해 주세요”, “확인되었으니 수거해 주세요” 등의 안내말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에 굳어진 관용어들이다. 한자어와 지시어에 익숙한 관료사회의 오랜 관습이 묻어난다.

    서울 시내버스 안에서 본 ‘안전사고 예방 수칙’은 이렇다. <1.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에는 자리에 착석 해 있거나 이동하지 말 것. 2. 버스 안에서 서 있거나 버스 승·하차 시 휴대전화 사용 중지>. 명령 분위기의 안내문이다. 맞춤법도 많이 틀렸다.


    외래어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 다시 말하기는 부질없어 보인다. 공공언론에서 심하고 전파력이 높다. 노록 악수(딴청 악수-엉뚱한데 보면서 악수를 건성으로 하기), 리질리언스(회복력), 플로티 건물(다리발 건물), 블랙 컨슈머(악성 고객) 등 사전을 뒤져야 겨우 아는 신종 외래어가 판을 친다. 알게 모르게 사대주의와 외국(미국) 숭배 의식을 부추긴다.


    코로나 시대에는 “마스크 착용 후 승차 요망”이라는 표어가 버스 타는 곳 입구에 붙어 있기도 했다. “마스크 쓰고 타세요”라고 하면 좋았을 것이다. 역시 코로나 때 식당에서 본 안내문이었다. “식사 전후 마스크 착용. 식사 시 대화 자제”였는데 “말을 조심하시고 밥 안 드실 때는 마스크를 써 주세요”라고 하면 밥맛도 좋지 않겠는가.


    유명한 전기밥솥 안내말도 “취사가 종료되었습니다”로 하기보다 “밥이 다 됐네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면 어떨까? 시외버스나 고속버스가 출발할 때 안내말도 그렇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세요”라 아니라 “안전띠를 매 주세요”라고 말이다.


    나는 틈틈이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거나 전화로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반응은 대부분 “내 소관이 아니다”라거나 “검토하겠다”라는 자동응답기 같은 답이 대부분이다. 


    봄에 산 입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어가 있다. “불법 입목벌채 임산물의 굴취·채취는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4조 제1호 규정에 의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이라는 경고문이다. 

    작년에 어느 산 입구에서 반가운 표어를 보았다. “주인의 동의 없이는 산나물이나 산 약초를 캐 가면 안 됩니다. 허락 없이 산채, 약초, 녹비, 나무 열매, 버섯, 덩굴류 등을 따거나 캐서 가져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였다.


    아래 표어는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봤다. “깨끗해서 참 좋죠? 쓰레기 되가져 가니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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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은 느낌과 감정에서 싹을 틔운다. 생각은 행동의 뿌리다. 서울 지하철 어느 역에서였다. 대부분 “우측보행”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오른쪽 걷기”라고 되어 있었다. 반가웠다. 고마웠다. 기분이 밝고 환해졌다. 밝고 맑고 향기 나는 느낌이었다. 


    <깨어남의 새벽>수련을 마치면서 “아이구우 좋아라....하하하하”라고 했다. 오늘 하루를 꾸려가는 환하고 밝은 느낌을 듬뿍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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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암 전희식('마음치유 농장’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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