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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66년 3월 1일 제 106주년 3.1절 기념식삼일절을 맞아 지난 3월 1일 오전 11시 제 106주년 삼일절 기념식이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봉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은 개식-국민의례-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독립선언서 낭독-천덕송 합창-기념사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기념식 후 거리행진 및 의암성사 동상 참례(중앙대교당-탑골공원)로 이어졌다. 기념식에서 이재선 청년회장은 독립선언서 낭독을 하였으며 이범창 종무원장은 기념사 대독을 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삼일운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고 1919년 삼일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성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3·1정신은 기록·기억·기념되어야 할 시대적 유산 “역사 왜곡이 웬 말인가요?”3·1정신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며 기념해야 할 시대적 유산이다. 1905년 을사늑약 후 일본에게 조선이 강제로 합병되었던 1910년,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과 핍박과 압박의 고통으로 하루하루가 인격이 무시되고 차별과 불평등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용감하고 끈질긴 우리 민족은 1919년 3·1만세 운동으로 그 찬란한 힘을 발휘하였고 전 세계는 이에 놀랐다. 위대한 3·1정신은 민족의 유산으로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역사는 한순간에 왜곡되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으로 문제가 되어서 불편한 외교관계가 왕왕 있어 왔다.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불편한 관계를 가져 왔었다. 특히 3월이 되면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 일본은 1982년 7월에 일본의 초,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의 고대사, 근대사, 현대사 등을 왜곡 기술하면서 특히 현대사 부분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기술하였다. 한국 “침략”을 “진출”로, “외교권 박탈과 내정 장악”을 “접수”로, “토지약탈”을 “토지소유권확인 관유지로의 접수”로, “독립운동 탄압”을 “치안유지 도모”로, “조선어말살정책”을“조선어와 일본어 공용어 사용”으로, “신사참배강요”를 “신사참배장려” 등으로 왜곡 기술하였다. 이에 국내언론과 일본언론에서는 일본 정부의 처사를 강력히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국내에서는 대대적인 반일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정부로부터 1982년 8월 26일 문제된 부분에 대해서 시정하겠다는 각서를 받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할만한 역사 왜곡 부분이 시정되지 않은 채 문제로 남아 있다. 역사 왜곡은 이렇게 다른 나라에 의해서 왜곡될 뿐만 아니라 국내 학자에 의해서 혹은 정부에 의해서, 그리고 요즈음 대세인 유튜버들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인터넷의 발달로 한 사람의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해 발언한 잘못된 역사가 일파만파로 아주 쉽게 대중들에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칭 역사 강사라는 사람이 정치적 이념 논리에 휩싸여 학생들을 혹은 국민들을 잘못된 역사의 길로 선동하고 있으니 너무나 마음 아픈 현실이다. 2023년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한 독립군 및 광복군 영웅 흉상 철거 논란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 청사에 설치된 홍범도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에 관한 일이며, 최근에는 김구 선생이 중국인이라는 왜곡된 해석 등이 그 분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활동에까지 누를 끼치게 된 점은 3·1절을 맞아 머리숙여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무뢰함이 선을 넘어 서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 올바로 세우기는 요원한 시대정신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2024년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는 2023 일본개항 부분에 “일본의 과거사 반성”, “역사왜곡” 언급이 통째로 빠져버렸다. 우리가 국제외교상 양보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지켜야 하는데 그 마지노선이 무너져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친일청산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어 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친일청산은 우리의 과제이며 친일청산이 깨끗하게 이루어 지는 날이 공명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 역사가 바로 서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제106주년 3·1절과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3월에 남남갈등이 극에 치닫는 시점에서 3·1정신의 비폭력 평화의 대통합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3·1정신을 선양하고 교육할 수 있는 성역화 사업이 무척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정숙 (천도교선도사,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 -
아산교구, 일본 고베교구와 합동시일식 봉행아산교구(교구장 채수엽)는 3월 2일 오전 10시 일본 고베시(神戶市) 나가타구(長田區)에 있는 고베교구를 방문하고, 오전 11시 고베교구 교인들과 함께 합동시일식을 봉행하였다. 이날 시일식은 김청길(金淸吉) 동덕의 집례로 식순에 따라 김용부(金勇夫, 남)의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병송에 이어 김문자(金文子) 동덕의 경전봉독(도수사), 천덕송합창(대신사환원기도가), 김태환 교구장의 설교(오관실행과 행복), 천덕송합창(위령송), 심고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시일식 후에는 고베교구 여성회원이 준비한 지짐(전)과 떡, 김치와 배달된 도시락(스시)로 점심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기화를 도모하였다. 이번 합동시일식에는 아산교구 교인 8명 등 모두 12명이 참가하였다. 아산교구는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 의암성사 사적지 답사의 일환으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3박 4일간 현지를 방문하였고, 특히 고베교구에서 합동시일을 봉행하기 위해 일정을 맞추었다. 아산교구는 고베교구 합동시익실 외에도 의암성사가 머물렀던 교토(京都)의 쇼고인(聖護院) 일대와 의암성사가 포덕 44년경 천도교 청년을 유학시킨 고노에(近衛)중학교를 답사하였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현장이며 재일 한인의 역사와 삶을 기록하고 있는 교토 우지시(宇治市) 이세다쵸(伊勢田町) 우토로평화기념관(ウトロ平和祈念館)을 관람하고 기요미즈데라(淸水寺) 등을 둘러보았다. -
동학 · 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영상콘텐츠 : 춘천교구 편(1)동학·천도교의 역사와 교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의 결과물이 나왔다. 동학·천도교 인물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춘천교구 교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동영상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번 사업은 천도교의 교인들을 통해 민족종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며 보존하는 의미있는 사업으로 그 첫 번째 발걸음을 춘천교구에서 시작했다. 춘천교구는 114년의 역사를 가진 천도교의 주요 교구 중 하나이다. 이번 동영상 콘텐츠를 통하여 천도교를 알지 못했던 대중들에게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번에 제작된 총9편의 영상 콘텐츠는 향후 연구 및 문화 콘텐츠 창작을 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편집자 주- 명승철 선도사, 천도교 신앙과 함께 걸어온 길 이번 콘텐츠는 춘천교구 명승철 선도사의 인터뷰로 천도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성장한 이야기,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과 영부의 치유 경험을 통해 신앙의 힘을 체감했음을 알 수 있다. 명승철 선도사는 청소년 시절 천도교 청소년 수련에 참여하며 신앙에 눈을 떴고, 이후 화악산 수도원에서의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군 제대 후 종학대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천도교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넓혔다. 이후 춘천교구 순회 강사로 활동하며 교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화악산 수도원 설립 과정과 장모님, 장인어른과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수도원 건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3·1절 106주년 기념식 "3·1대혁명, 모든 독립운동의 원천"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이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의암 손병희 성사 - 일제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독립만세의 함성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3·1혁명’이 올해로 106주년을 맞는다. 천도교는 오늘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제106주년 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이번 기념식은 전국 각 교구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개식, 국민의례,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독립선언서 낭독, 천덕송 합창(제17장 공락가), 기념사, 삼일절 노래 합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된 가운데 천도교중앙대교당 기념식 이후에는 중앙대교당에서 탑골공원까지 거리행진과 의암성사 동상 참례가 이어졌다. 이번 행사를 통해 삼일운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고 1919년 삼일운동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성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다. 이재선 청년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통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순간, 참가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마음으로 그 의미를 되새겼다. 독립을 외쳤던 그 날의 함성이 다시금 울려 퍼진 이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민족의 뿌리를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이어 이범창 종무원장은 기념사 대독을 통해 “‘3·1대혁명’으로 순도순국(殉道殉國)하신 선열들의 영령 앞에 고개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선열들이 성령출세(性靈出世)하여 세계 평화와 국가 발전을 도와주시고, 교단의 앞길을 밝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심고(心告)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3·1대혁명’의 위대한 정신을 올곧이 계승하여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마감하고, 통합과 상생발전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또 “천도교를 주축으로 기독교·불교 지도자를 포함하여 민족대표 33인을 정하고, 포덕 60년(1919년) 3월 1일을 기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과 해외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3·1대혁명’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3·1대혁명’은 국내외에서 전개된 모든 독립운동의 원천이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새봄과 함께 찾아온 제106주년 3·1절을 맞아 우리 모두 의암성사님의 거룩한 순도순국 정신을 계승하여, 국가 번영과 교단 중흥을 위해 정성을 모아 나가자는 말씀을 드리면서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삼일절 노래 합창과 만세삼창으로 이어진 행사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대교당을 찾은 교인과 참례객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삼일절 노래를 부르며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기렸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교당을 뜨겁게 달궜다. 이 순간은 마치 그날의 함성이 되살아난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탑골공원 거리행진, 역사적 의미 더해 기념식을 마치고 자리에 참석한 교인 및 참례객들은 태극기와 궁을기를 들고 의암 손병희 성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탑골공원을 향해 거리행진을 하였다. 이날 행진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교인 및 참례객이 참여했다. 천도교서울교구 풍물패가 앞장서서 행진대열을 이끌었으며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1919년 삼일운동 당시의 열정을 되살렸다. 행사에 참여한 한 교인은 "조상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라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가족과 함께 행진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공원에서는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한편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3.1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성지인 이곳 탑골공원이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공원의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탑골공원 성역화 추진과 역사적 논란 서울시는 공원 재정비를 추진하고 있으며, 3.1운동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기념관 건립과 문화유산 복원 등을 포함한 성역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와 시민단체들은 성역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기존 시설물의 변형 또는 철거로 인해 원래의 역사적 공간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으며 새로운 기념물 설치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해석이 개입될 우려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탑골공원의 성역화는 3.1운동의 숭고한 뜻을 계승하고 후대에 정확한 역사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다. 성역화 사업이 단순한 공원 미화가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이뤄낸 독립운동의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독립의 외침, 그 중심에 천도교가 있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탑골공원에서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현장에 모인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특히, 천도교 측은 조직적인 인력을 동원해 전국 각지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청년과 학생들은 주도적인 만세운동을 펼치며 3.1운동을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시켰다. 해마다 삼일절이면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지도자들의 재조명이 잇따르고 있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개신교, 불교계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천도교 측 인사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오늘날 3.1운동의 역사 속에서 개신교와 불교계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반면, 천도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천도교 측 민족대표 15인 다음은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계열 지도자 15인의 명단이다. 손병희(孫秉熙, 1861-1922) : 동학 3대 교주,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3·1운동 주도 김완규(金完圭, 1876-1949) : 천도교회월보 발행인 권동진(權東鎭, 1861-1947) : 천도교 초기 핵심 인물 권병덕(權秉悳, 1868-1944) : 중앙학교 교장 나용환(羅龍煥, 1864-1936) : 15대 교구장 나인협(羅仁協, 1872-1951) : 14대 교구장 양한묵(梁漢默, 1862-1919) : 법도사. 옥중 고문 순국 이종훈(李鍾勳, 1858-1932) : 천도교 초기 핵심 인물 이종일(李種一, 1858-1925) : 보성사 인쇄소 사장. 독립선언서 인쇄 임예환(林禮煥, 1864-1949) : 25대 교구장 박준승(朴準承, 1866-1927) : 임실, 장성 교구장 오세창(吳世昌, 1864-1953) : 서예가, 서화가 최린(崔麟, 1878-1958) : 보성학교 교장 홍병기(洪秉箕, 1869-1949) : 천도교 도사. 후에 만주 고려혁명당 창당 멤버 홍기조(洪基兆, 1865-1938) : 천도교 도사, 장로 천도교의 3.1운동 기여와 역사적 평가 천도교는 3.1운동 당시 조직력과 자금을 제공하며 운동의 기획·실행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의암 손병희 성사를 중심으로 운동을 조직하고, 이종일 선생이 운영하는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 전국적인 독립운동 확산을 위해 천도교 신도(교인)들을 동원하는 등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에 천도교 지도자들의 공헌이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1운동은 종교를 초월한 민족적 항쟁이었으나, 운동의 실질적 주체였던 천도교의 역할이 역사적으로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천도교 지도자들이 3.1운동을 조직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배포하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점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독립운동의 모든 주역들이 제대로 평가될 때, 3.1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더욱 온전히 이해하며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봉행한 이번 삼일절 기념식은 전국적으로 펼쳐진 삼일혁명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각 지역마다 많은 교인 및 참례객들이 기념행사를 개최하여 큰 의미를 더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이 다양한 형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3월 1일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삼일절 기념식 봉행천도교중앙총부는 오는 3월 1일 제 106주년 삼일절 기념식을 봉행한다. 삼일절을 맞아 1919년 민족의 독립을 위한 의지와 희생을 기억하고 모든 국민이 다시 한 번 나라의 독립과 평화,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날 기념식은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봉행된다. 개식-국민의례-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독립선언서 낭독-천덕송 합창-기념사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기념식 후 거리행진 및 의암성사 동상 참례(중앙대교당-탑골공원)가 이어진다. 현암 윤석산 교령은 삼일절 기념식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3·1대혁명’으로 순도순국(殉道殉國)하신 선열들의 영령 앞에 고개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선열들이 성령출세(性靈出世)하여 세계 평화와 국가 발전을 도와주시고, 교단의 앞길을 밝게 인도하여 주시기를 심고(心告)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3·1대혁명’의 위대한 정신을 올곧이 계승하여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마감하고, 통합과 상생발전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천도교는 이번 삼일절 기념식을 통해 1919년 의암 손병희 성사님께서 이끄셨던 삼일운동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고자 합니다. 엄혹한 일제탄압시기에 우리 민족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기념식을 봉행하오니,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어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에 함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교인 및 일반인들이 삼일절을 맞아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삼일절 기념식에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제 9차 종의원 총회, 중앙대교당에서 개최제 9차 종의원 총회가 지난 26일 오후 1시 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에는 윤석산 교령, 김성환 연원회 의장, 김산 연원회 부의장, 이범창 종무원장, 정덕재 감사원장, 신명식 유지재단 이사장, 이미애 교화관장, 정갑선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흥규 부의장의 집례로 진행되었다. 총회는 점명(성원보고)-개회-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인사말에 이어 윤석산 교령, 김성환 연원회 의장의 격려사, 전차회의록 보고, 의안심의 등으로 이어졌다. 선우철수 종의원 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바쁜 와중에도 정기총회에 참석해 주신 종의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가 오늘 결산에 대한 심의를 마치면 종의원으로서의 의무는 오늘로 마무리가 되는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정성과 예의를 다해서 마지막까지 충실히 결산을 마무리해 주셨는데, 오늘 회의에 잘 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시느라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윤석산 교령은 격려사에서 “오늘 종의원 총회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참석해 주신 종의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교단의 살림을 모두 맡아서 해주시는 분들이 오늘 예산 심의를 잘 받아서 유종의 미에 정점을 찍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김성환 연원 회의장은 격려사에서 “우리 종의원은 지난 3년 동안, 어느 때보다도 일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교헌 개정도 발의하시는 등 일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3월 20일이면 우리가. 새로. 교령님을 모셔야 하고 또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훌륭하신 분을 교령님으로 잘 모시도록 여러분께서 많이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도 우리 교단에는 현재 어려운 현안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더 신경 써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제 9차 종의원 총회는 포덕 165년도 천도교중앙총부와 천도교유지재단의 사업 결산안 등을 안건으로 심의하였다. -
윤석산 교령, 민족대표 33인 후손 초청 오찬윤석산 교령은 지난 2월 25일 민족대표 33인 유족과 오찬을 같이하며 3·1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참석한 유족들은 정유헌 민족대표 33인 유족회 대표(의암 손병희 성사 후손), 이기대 민족대표 33인 유족회 부대표(이승훈 선생 후손), 이흥자 전 천도교여성회본부회장(나인협 선생 후손), 홍래준(홍기조 선생 후손), 양쌍승(양한묵 선생 후손), 이상호(이종훈 선생 후손), 최인경 천도교중앙총부 사회문화관장(홍병기 선생, 의암성사 후손) 등 7명이었다. 윤 교령은 “세월이 흘러서 후손 분들도 다들 고령이 되셨는데, 민족대표 33인의 3·1 독립정신을 다음 세대에가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 보태주시길 당부드린다. 천도교에서도 도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정유헌 유족회 대표는 “금년까지는 종로구청의 탑골공원 성역화 사업으로 3·1운동 기념행사를 하였는데 내년부터는 33인 유족회에서 직접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천도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셔서 성역화 사업과 함께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밝혔다. 또 유족 홍래준씨는 “내 나이가 93세인데, 내가 한 가지 섭섭한 건 유관순이 3·1운동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왜곡된 역사가 참 안타깝습니다. 유관순 17살 학생인데 어떻게 3·1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사실을 바로잡지 않고 방치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꼭 바로 잡아야 합니다.”라며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했음을 세상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해월신사 법설 : 천지이기 p.242 -
[칼럼]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중심으로 탑골공원을 성역화하라3·1절이 다가온다. 몇 해 전에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 것 같은데 올해가 벌써 106주년이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전국을 뒤덮었고,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까지 넘실댔다. 유구한 역사를 자주민으로 살아온 대한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 자유민으로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 3·1운동이다. 이 만세운동의 맨 앞줄에 민족대표 33인이 있었다. 우리 독립운동 사상 최대이며 최고의 성과라고 일컬어지는 3·1운동의 성공에는 천도교주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선생 없이는 불가능했다. 선생은 천도교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3·1운동에 집중했다. 선생은 3·1운동의 성공을 위해 일원화, 대중화, 비폭력화의 3대 원칙을 정하고 민족대표를 선정했다. 처음에는 명망있는 구한국 관료를 인물로 민족대표를 구성하려고 했으나 이들이 거부하자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찾아 기독교와 불교와 연합해 33인의 민족대표를 선정했다. 민족대표에는 전국의 명망있던 천도교 중진 15명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3·1운동의 민족대표 선정, 독립선언서의 인쇄와 배포 등등이 천도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3백만 교도의 국내 최고의 종단으로 천도교를 성장시켜 3·1운동을 영도한 인물이 선생이었다. 3·1운동으로 폭발한 독립의 열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었고,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승전보를 울렸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지난(至難)한 독립운동 속에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우리의 해방이 연합국의 전리품이었지만, 3·1운동으로 시작한 지난한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의 건설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현대사는 3·1운동을 기점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다시 찾은 조국의 땅을 밟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영도한 의암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는 귀국해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함께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도 3·1절을 맞아 여러 차례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게 선생은 자신의 갈 길을 열어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천도교는 3.1운동 이후에도 국내에서는 어린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신문화운동, 6·10만세운동, 신간회 운동, 조국광복회 운동, 멸왜기도 운동 등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외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 만주와 연해주에서 전개된 무장 독립전쟁에도 천도교인들이 동참하였다. 천도교는 일제강점기 국내외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는 의암 선생의 뜻을 잇겠다는 교인들의 결기가 담겨있었다. 해방 이후 천도교단에서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공간인 탑골공원을 독립운동의 성지로 만들려고 했다. 1950년 천도교인들은 탑골공원을 ‘3·1혈쟁발상지(血爭發祥地)’로 명명하고 “독립운동기념비”의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동족 상잔의 비극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러나 천도교에서는 3·1운동이 시작된 탑골공원을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탑골공원이 독립운동의 성지로서의 위상을 되찾은 것은 1966년 5월 19일 의암 선생의 동상이 건립되면서 이루어졌다.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한 선생의 동상 건립은 당시 국민 성금이 약 450만 원을 모금한 범정부차원의 사업이었다. 이날 동상 제막식에서 당시 문교부장관이 대독한 대통령의 추념사에는 “(손병희 선생) 동상이 공원의 한낮 장식에 그침이 없이 부단한 경각과 격려의 표상으로 남아 자주, 자립, 번영의 새 한국을 세워나가는 우리에게 자신과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을 기원하면서”라며 선생의 업적을 칭송하고 선생의 정신을 대한민국의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거룩한 선생의 정신과 업적은 이후 독립운동의 주도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불굴의 용기와 역량이 대외적으로 널리 인식되어 한국 독립에 있어서 국제적 협조를 얻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라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찬양하며 동상 건립의 의미를 되새겼다. 동상 건립 이후 천도교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을 갖고 탑골공원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선생의 동상을 참배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그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처럼 탑골공원의 상징과 같은 의암 선생의 동상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탑골공원 성역화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의암 선생의 동상을 옮기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탑골공원이 고려시대 흥복사라는 절이 조선시대 원각사로 바뀌었고 이후 폐사된 절의 10층석탑이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탑골공원이 우리 역사에서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06년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진원지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3·1운동의 중심에 의암 선생이 있다. 탑골공원의 성역화사업은 필요하다. 우리 민족사의 상징인 이곳 탑골공원이 서울의 랜드마크로도 인식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이다. 성역화사업을 통해 잃어버린 탑골공원의 명성을 복원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탑골공원의 역사적 상징을 지닌 의암 선생 동상을 중심으로한 3·1운동에 대한 시설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탑골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가장 잘 살리는 성역화사업이다. 그렇지 않다면 탑골공원은 독립운동의 상징이 아닌 그냥 서울의 흔한 유적지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글 덕암 성강현(동의대학교 역사인문교양학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