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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물건강의 날’ 식물검역이 지키는 미래농림축산검역본부(본부장 김정희, 이하 검역본부)는 5월 9일(금) 고양국제꽃박람회장에서 주한 케냐 대사, 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장, 유관기관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5 세계 식물건강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유엔(UN)은 식물건강에 대한 국제적 인식 제고와 각국의 협력 촉구를 위해 2022년 제76차 총회에서 매년 5월 12일을 ‘세계 식물건강의 날’로 지정·선포하였다. 검역본부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여 매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은 “원헬스(One Health)* 시대, 식물검역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축사, 식물건강 유공자 표창, 어린이 포스터 공모전 시상, 기념 세리머니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었다. 또한 사전 행사로 어린이 포스터 공모전에서 입상한 어린이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해 활기를 더했다. * 사람, 동물, 식물, 환경 등의 건강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각각의 건강을 통합·관리해야 한다는 개념 김정희 검역본부장은 “이번 기념식을 통해 식물건강과 식물검역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길 바란다”라고 하면서, “검역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식물병해충에 대한 선제적 연구도 강화하는 등 철저한 검역을 통해 식물 건강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한농대, 청년 농업기술 교육 추진한국농수산대학교(총장 이주명, 이하 한농대) 평생교육원은 청년농업인의 영농 정착 지원 및 농업역량 제고를 위해 6월부터 9월까지「2025년 청년 영농 아카데미」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번에 개설되는 한농대의「2025년 청년 영농 아카데미」교육과정에서는 25명의 청년 농업인들을 선발하여 한우 개별 품종 정밀사양 맞춤형 기술과 한우 사육 노하우 등에 대해 이론과 실습 교육을 실시한다. 한농대의「2025년 청년 영농 아카데미」교육생 모집공고는 5월 12일부터 5월 23일까지 진행된다. 만 45세 미만의 한우를 사육하는 청년 농업인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신청서는 한농대 평생교육원 누리집(www.af.ac.kr)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한농대에서는 서류 심사를 거쳐서 교육생을 선발하며, 지원자는 신청서를 메일(ch2776@af.ac.kr)이나 팩스(063-238-9729)로 제출하면 된다. 참고로, 한농대 평생교육원에서는 현장의 교육수요를 반영하여 22년부터 24년까지 식량작물 및 채소 품목 대상으로 청년 영농아카데미를 운영하였으며, 올해에는 한우를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이주명 총장은 “청년 농업인들이 한우산업 분야의 최신 기술을 습득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관심 있는 청년 농업인들의 참여를 기대한다.”라고 하면서, “한농대에서는 앞으로도 청년농업인 역량 제고를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 대한민국정책브리핑 -
독립기념관, 광복 80주년 기념 미시간 독립운동 역사축제 지원독립기념관(관장 김형석)은 오는 5월 3일(토), 광복 80주년을 맞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재미한국학교 미시간협의회(회장 김선미) 주최 '독립운동 역사축제'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은 2017년도부터 재외동포 청소년 정체성 함양과 한민족 자긍심 고취를 위해 역사 교육자료가 부족한 해외 한글학교로 역사교육 콘텐츠를 개발·보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68,611명에게 콘텐츠를 지원하였다. 금년도에도 북미, 유럽, 러시아 등으로 콘텐츠를 보급할 계획이다. 교육자료 지원과 더불어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재미한국학교 미시간협의회가 주최하는 ‘독립운동 역사축제’를 지원한다. 이번 행사는 독립기념관이 현지 한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주제의 역사축제에 직접 참여해 교육과 전시가 통합된 콘텐츠를 지원하는 첫 사례이다. 독립기념관은 미시간 지역 한글학교 교사, 학부모, 청소년 등 재외 한인들이 한국 독립운동사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전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국가상징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 ‘태극기’ 주제 체험교육과 AR(증강현실)로 만나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와 국난극복의 역사 인물로 ‘이순신’에 대한 체험교육이 진행된다. 더불어 국권 수호 운동부터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무장, 외교, 문화, 학생 여성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고, 현장 해설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이러한 교육과 전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소속 학예연구사 2명을 파견한다. 독립기념관은 “참가자들이 다양한 체험교육과 전시 관람을 통해 한국 독립운동의 의미와 역사를 쉽게 배우고, 광복 80주년의 뜻깊은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특히 재외동포 청소년들에게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앞으로도 한글학교 교육콘텐츠 보급과 더불어 재외동포 한민족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출처 : 독립기념관 -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 독립기념관 독립운동 사적지 됐다독립기념관(관장 김형석)은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소년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소년회사무소 터를 5월의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로 선정하였다고 8일 밝혔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조선의 민족정신을 지키고 계몽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꾸던 세력 중 하나로 천도교가 있었다. 특히 천도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년운동을 주도하며,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족 교육과 민족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천도교, 일제강점기 소년운동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 소년운동의 배경 천도교는 동학에서 출발한 민족 종교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천도교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여기며 교육을 통한 계몽을 중시하게 된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고취할 필요성을 절감한 천도교는 소년운동을 통해 미래 세대를 양성하고자 했다. 소년운동의 전개 천도교는 1920년대 초반부터 소년운동을 본격화했다. 1922년 창간된 『어린이』는 천도교 소년회가 발행한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자주성을 심어주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또한 천도교는 각지에 소년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날 제정을 주도하며, 청소년 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천도교 소년회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민족 역사와 문화, 도덕적 가치관을 교육했다. 특히 놀이와 학습을 결합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자연스럽게 민족 의식을 심어주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4월 17일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같은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다시 정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의 효시라 할 ‘소년운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103회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일제의 탄압과 천도교의 저항 천도교의 소년운동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주성을 강조하는 활동은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어린이』 잡지도 검열과 폐간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천도교는 이를 통해 더더욱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년운동을 지속했다.천도교소년회 사무소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중앙종리원에 있었다. 중앙종리원은 천도교의 사무소로 천도교청년당을 비롯해 천도교소년회ㆍ학생회ㆍ사월회ㆍ내수단ㆍ조선농민사 등 천도교 사회운동 단체의 본부와 개벽사가 입주해 있었다. 중앙종리원은 1969년 우이동으로 이전하였고 현재 수운회관이 들어서 있다. 한편,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들고, 이듬해인 19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선언’을 주도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옹호,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현파 박래홍 등의 천도교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천도교청년회 산하단체다.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의 사위로서 천도교청년회에서 교역자로 활동하며, 천도교 소년회와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날을 제정, 천도교의 인내천 정신을 어린이 사랑의 실천으로 사회에 구현했다. 2025년 5월 국내 독립운동사적지의 자세한 내용은 국내 독립운동ㆍ국가수호 사적지 홈페이지(sajeok.i815.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독립기념관 -
천도교, 11일 제131주년 동학농민혁명기념탑에서 기념식 봉행준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은 11일 갑오동학혁명기념탑에서 천도교 의례에 따른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였다. 이번 기념식은 오전 10시 각 지역 교인 및 전동연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봉행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에서는 천도교중앙대교당 앞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였으며, 각 지역에도 차량을 지원하여 많은 교인 및 연구자, 시민들이 행사가 열리는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탑으로 모여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날 기념식은 서소연 교무관장의 집례에 따라 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준암 박인준 교령 기념사-심고-기념촬영 등의 순서로 봉행하였으며 준암 박인준 교령은 기념사를 통해 "동학혁명은 민족자주 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고, 자유, 평등, 평화의 정신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동학혁명 정신은 역사 속에만 갇혀 있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천도교가 주도한 3·1운동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정신으로 계승된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특히 동학혁명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활되었고, 오늘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불굴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라고 밝혔다. 박 교령은 기념사에서 “동학농민혁명 131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동학혁명의 그 역사적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합니다. 동학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수많은 동학선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도 완전한 서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동학혁명은 아직도 나라 안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루빨리 동학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서 세계사에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천도교단은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주도적으로 이 혁명정신을 선양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령은 또한 “이제 우리는 동학혁명정신을 계승하여 구시대의 봉건적 사고를 과감히 청산하고, 외세에 의존하고자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동학혁명 정신이야말로 혼란한 이 시대를 제도할 수 있는 진정한 시대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새시대에는 이 정신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정의로운 복지사회가 건설되며,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실현되기를 염원합니다. 이러한 통일된 조국에서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사람 사람이 주인이 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131주년 기념일을 맞아 이 시대적 과제를 동학의 후예들이 앞장서 실현할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열린 제131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유족과 기념재단에 감사를 전하며 선열들의 뜻을 기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준암 박인준 교령을 비롯하여 노암 강병로 종무원장, 지암당 서소연 교무관장, 눌암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을 비롯한 천도교 교역자 및 정탄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고재국 전국동학농민연대 대표, 김혜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배우자,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 도지사, 강기정 광주광역시 시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국회에서는 윤준병·이원택·정을호·백승아 의원, 박태서 공보수석비서관 등이 함께했다. 다음은 준암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 전문이다. 기 념 사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동학농민혁명 131주년을 맞이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 바친 동학혁명군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면서 새로운 각오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곳 황토현은 동학혁명군이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역사의 공간입니다. 탐관 고부근수 조병갑의 폭정과 오리들의 부조리하고 악랄한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동학의 깃발을 들고 이곳 황토현에서 봉기하여, 무자비한 관군을 죽창으로 물리치고 승리한 날이 130년 전 오늘입니다. 이날을 맞아 우리는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되고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수 있기를, 동학의 후예로서 소망합니다. 우리 민족 오천 년의 역사 가운데 선열들이 이루어 놓은 수많은 업적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길이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은 동학과 동학혁명이라고 자부합니다. 동학혁명정신은 경상도 경주 수운 최제우 대신사에 의해 탄생한 ‘모든 사람이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의 만민평등정신을 바탕에 깔고, 나쁜 정치를 퇴치하고 제폭구민, 척양척왜를 통해 자주와 보국안민을 실현하고자 하는 혁명으로 나타나,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이 혁명의 기포를 허락한 분은 바로 천도교 2세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님이셨습니다. 동학혁명은 안으로는 당시 몰락해 가는 봉건적 사회 질서를 혁신하고, 밖으로는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국가 침략에 맞서 싸운 반봉건·반침략·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운 실천적 행동이었습니다. 이곳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혁명은 황토현, 황룡촌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접수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동학혁명군은 출정할 때 반드시 청수를 모시고 주문을 외우며 진군하였습니다. 동도대장 전봉준 접주는 염주를 목에 걸고 동학혁명군을 지휘하였습니다. 이는 동학의 후손인 천도교인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깊이 새기고 바르게 인식해야 할 역사이며 사실입니다. 고부에서 관군을 물리친 동학혁명군은 우리나라 최초로 호남 일대에서 민정을 실시하면서 모순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동학혁명군의 민정은 오늘날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시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능한 조선 정부는 사회개혁보다는 외세에 의지하여 청국에 출병을 요청하였고, 일본도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청일전쟁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침략 의지를 드러내자, 동학혁명군은 국권을 지키기 위해 항일전쟁을 전개하였지만,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세력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동학혁명은 결코 실패한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동학혁명은 민족자주 의식과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고, 자유, 평등, 평화의 정신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주었습니다. 동학혁명 정신은 역사 속에만 갇혀 있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천도교가 주도한 3·1운동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정신으로 계승된 살아 있는 생명입니다. 특히 동학혁명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활되었고, 오늘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불굴의 시대정신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131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동학혁명의 그 역사적 의의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합니다. 동학혁명 기록물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수많은 동학선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도 완전한 서훈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동학혁명은 아직도 나라 안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루빨리 동학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서 세계사에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천도교단은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주도적으로 이 혁명정신을 선양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학혁명정신을 계승하여 구시대의 봉건적 사고를 과감히 청산하고, 외세에 의존하고자 하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동학혁명 정신이야말로 혼란한 이 시대를 제도할 수 있는 진정한 시대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새시대에는 이 정신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정의로운 복지사회가 건설되며,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실현되기를 염원합니다. 이러한 통일된 조국에서 우리는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사람 사람이 주인이 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동학농민혁명 131주년 기념일을 맞아 이 시대적 과제를 동학의 후예들이 앞장서 실현할 것을 다짐합니다. 오늘 이 행사를 위해 새벽같이 먼 길을 달려오신 동덕님들과, 특히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다시 한번 동학농민혁명 131주년을 기억하면서, 전국의 동학 후예들과, 오늘 기념식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한울님의 감응이 늘 함께 하시기를 심고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6년 5월 11일 천도교교령 박 인 준 심고 -
다함께 행복한 세상(5)바람직한 공동체 모색을 위해 기반이 되는 가치관과 사상 중 새로운 인간관을 동학.천도교의 시천주(侍天主).인내천(人乃天) 이치에 기반하여 살펴본다. 주요 특징과 핵심 내용은 자유와 평등의 조화, 개인과 전체의 조화, 성령(性靈)과 육신의 조화이다 -
천지이기p.246 -
동학소년회, 2025 수운학당 10차시 교육 성료… 교사 양성 박차2025 수운학당 교사 양성 프로그램 10차시(20시간)의 알찬 교육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이번 양성 프로그램은 박돈서 공주교구장의 열정적인 강의와 함께 총 9명의 수강생이 참여하여 깊이 있는 학습의 기회를 가졌다. 박돈서 교구장은 수운학당의 강사로서 교육 철학과 교사로서의 소양을 심도 있게 전달하며, 수강생들이 각자의 교육적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연수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활발한 토론과 질의응답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수운학당의 가치와 비전을 체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을 마친 수강생들은 "수운학당의 교육 이념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며 연수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실력 있는 교사 양성을 통한 수운학당의 효과적인 운영, 동학 천도교의 정신과 사상 선양, 수운학당 운영 여건 조성 및 확산을 목표로 진행되었으며 연수를 마친 교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수운학당의 교육을 실천하며, 동학 천도교의 정신을 널리 확산할 것으로 기대한다. 동학소년회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마치며 "향후 전국적으로 더욱 많은 수운학당이 개설되어, 수운학당의 교육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밝혔다. -
천도교와 3·1운동(3) "수련도장 봉황각을 건축하다"『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 이어) 4. 수련도장 봉황각을 건축하다 성사께서는 일제강점기에 기본권이 박탈당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된 종교 활동을 십분 활용하였다. 경술국치 후 총독정치를 예의 주시하시던 성사께서는 1911년 봄에 의친왕 이강공과 더불어 우이동 골짜기를 찾아 밀회를 하였다. 그리고 이해 8월에 중앙총부 간부진을 대동하고 우이동 일대를 탐사하고 금융관장 정구영에게 이곳을 중심으로 밭과 임야를 가리지 말고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약 3만 평 정도를 속히 구입하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우이동은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속한 심산유곡인 오지였다. 서울 시내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입구에 초가집 몇 채가 있고 4킬로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도선암이란 암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해 11월 금융관장은 임야 27,946평을 800원에 매입하고 성사의 지시에 따라 이듬해부터 수련도장을 짓기 시작했다. 경술국치 이후 민족독립에 대한 남다른 결의를 다지고 있던 성사께서는 전국의 교역자들에게 우선 독립 의지를 확고히 심어주기 위해 수련도장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일제의 집요한 감시를 피하기 위해 오지인 우이동에 봉황각을 짓기로 했던 것이다. 수도원은 교인이면 누구든 전국 어디에서나 올 수 있고 수련 기간도 제한이 없이 침식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일제의 감시를 피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봉황각 건축공사는 다음해인 1912년 3월 7일 기공하여 6월 19일 준공하였다. 당시 봉황각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봉황각 : 목조 와즙 1동 28평 2홉 내 실 : 목조 와즙 1동 18평 2홉 부속건물 : 양기와집 8평 3홉 5. 전국 중요 교역자 연성수련 제1회 49일 특별수련 수련기간 : 1912년 4월 15일~1912년 6월 2일 성사께서는 봉황각 건축을 시작하면서 지체 없이 지방 두목을 지명 소집하여 4월 15일부터 6월 2일까지 도선암을 빌려 첫 번째 49일 특별연성을 지도하였다. 인원은 13개도 18개 교구에서 21명이 참가했는데, 그중에 교인을 직접 교화 지도하는 대교구장 및 교구장이 18명, 연원주가 3명 등 핵심적 간부가 대거 참가하였다. 특히 이중에는 3·1운동 당시 천도교 측 민족대표인 라인협· 박준승· 임예환· 홍기조 등 4명도 수련에 참여하였다. 제1회 수련생 명단 吳榮昌, 洪基億, 李鼎錫, 李承祐, 韓泰勳, 李貞漸, 崔周億, 韓賢泰, 朴文華, 洪基兆, 林禮煥, 羅仁協, 朴容台, 金熙淳, 李采一, 鄭桂玩, 金炳泰, 李炳春, 朴準承, 吳昌根, 李鍾奭 수련생의 일과표는 다음과 같다 5시 기 상 6시 식 사 7시 휴 식 8시 ~ 11시 기 도 오후 1시 휴 식 2시 ~ 5시 기 도 6시 식 사 7시 휴 식 8시 ~ 11시 기 도 제2회 49일 특별수련 수련기간 : 1912년 11월 1일~12월 8일 1회 수련이 끝나자 성사께서는 1912년 11월 1일 두목 49인을 선발하여 2회 49일 연성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장소는 봉황각과 도선암 두 곳에서 실시하였으며 수련 시간은 제1회와 같다. 2회 수련은 전국 37개 교구에서 교구장 18명, 대교구장 23명 등이 대거 참가했으며 기타 연원주와 교구 임원이 참가하였다. 수련생 명단 姜琫秀, 吉學晟, 金明善, 金炳柱, 金奉年, 金洙玉, 金承周, 金案實, 金煉九. 金泳彦, 金宗範, 金鎭八, 朴洛陽, 朴麟珏, 朴花生, 方基昌, 方燦斗, 白永魯, 申光雨, 安處欽, 吳明運, 禹世夏, 劉啓善, 尹炳卨, 李君五, 李岐琓, 李燉夏. 李東求, 李祥宇, 李龍儀, 李有年, 李晶和, 李種秀, 林來圭, 林永秀, 張南善. 張承官, 鄭道永, 鄭承德, 鄭瑢根, 周德仁, 陳鍾九, 崔士岷, 崔碩連, 崔永坤, 韓寬珍, 韓世敎, 洪鳳巢, 黃學道 제1회와 2회 수련 시 성사님의 법설 대요는 다음과 같다. “연성의 묘법은 이신환성에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것은 유형한 나이니 유형한 나를 무형한 나로 바꿀 것이요, 신변세사(身邊世事)의 나를 성중천사(性中天事)의 나로 바꿀 것이다. 그대들이 만일 육신의 나로부터 생기는 모든 인연을 끊는다면 본연한 성령의 나는 자연히 나올 것이다. 사람은 평소 견실한 수련을 쌓지 않으면 위급한 경우를 당하여 마음이 흔들리나니 이것은 그대들로 하여금 반드시 꼭 수련을 해야 되겠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시적인 결심은 쉬우나 평생을 통한 결심으로 수양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제3회 49일 특별수련 기간 : 1913년 1월 1일~ 2월 9일 포덕 54년(1913) 1월 1일 성사 지방 두목 48인을 선발하여 봉황각에서 제3회 특별연성을 49일간 실시하였다. 전국 37개 교구에서 대교구장 5명, 교구장 33명, 연원주 2명, 총부임원 5명, 교구임원 4명 등이 참가하였다. 수련생 명단 姜益漸, 金光俊, 金國彦, 李貴淵, 金基洙, 金士彬, 金世業, 金淳澤, 金良根, 金龍田, 金應旭, 金俊興, 金泰鍾, 魯相祐, 柳漢永, 朴光明, 朴仁和, 朴莊祐, 朴昌洛, 朴昌勳, 白寬範, 白應奎, 白粲浩, 孫太龍, 辛光魯, 元致英, 劉文學, 尹世顯, 李景燮, 李觀國, 李起東, 李象鉉, 李龍雷, 李廷馥, 李弼和, 林淇鎭, 林淳灝, 金哲鎭, 鄭相容, 丁永淳, 鄭漢泳, 趙錫烋, 池東燮, 崔競淳, 崔承雨, 崔孝健, 洪聖運, 洪淳杰, 洪河淸 이때 성사께서 수련생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는 가도화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사께서 역설하신 것이니, 수도의 극치는 부화부순이다. 천하대사는 다를지언정 가정에서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아무리 성인이라도 죽기 전에는 그 인격과 명예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요, 큰 성이은 큰 일을 당하여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인간생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니, 첫째는 사상생활이요, 둘째는 학문생활이요, 셋째는 노동생활이다. 그 중에서 사상생활 하는 사람은 능히 학문생활 하는 사람과 노동생활 하는 사람을 부릴 수 있으나, 노동생활하는 사람은 학문생활하는 사람과 사상생활하는 사람을 부릴 수 없는 것이다. 난세에는 이것이 바뀌기 때문에 민생이 도탄에 드는 것이니라”하셨다. (계속)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천도교, 새 교황 선출에 축하메세지 발표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초로 미국 출신 교황이 선출되었다. 시카고 태생의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레오 14세(Pope Leo XIV)'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는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프레보스트 교황은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으로 페루에서 오랜 기간 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는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주교성성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이민자 사목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레오 14세는 첫 공식 연설에서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인사로 시작하며, 전 세계의 평화와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벽이 아닌 다리를 놓는 교회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천도교중앙총부(준암 박인준교령)는 새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환영하는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신 레오 14세 교황님의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울님의 큰 뜻 안에서 인류의 평화를 첫 일성으로 천명하신 교황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그 뜻이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화합의 이정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레오 14세 교황님의 사도 여정에 한울님의 특별하신 감응 있기를 심고합니다.”라고 발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