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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구, 8월 월례수련으로 신앙의 깊이 다지는 시간부산시교구는 포덕 166(2025)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7일간 진행한 월례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수련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졌으며, 교인들은 정성으로 하루를 채우며 신앙의 깊이를 다졌다. 박차귀 교구장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많은 동덕들이 꾸준히 참석하여 정진한 것은 우리 교구 신앙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이번 수련을 통해 각자가 내적 성찰과 힘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신인간으로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수련 2일차에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참석자가 오히려 늘어나, 도심 속에서도 신심이 더 뜨겁게 타오르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교구 관계자는 “여름 더위보다 뜨거운 신앙의 열기가 모여든 시간이었다”며 “이번 수련이 부산시교구의 신앙적 결속을 더욱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이번 8월 월례수련은 교인들이 자신을 단련하고 공동체의 기운을 함께 모으며, 신앙적 실천의 힘을 재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
해월신사의 사상과 철학을 나눈 『평민철학자 해월 최시형』 북토크 열려8월 10일 오후 1시 30분, 『평민철학자 해월 최시형』 출간 기념 북토크가 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해월 최시형 신사의 사상을 조명한 이번 행사는 저자 김용휘 대 구대 교수의 강연과 『청년, 동학을 짓다』 공동 저자이자 고려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인 백진솔 씨와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중앙총부 강병로 종무원장은 축사를 통해 “김용휘 교수의 글쓰기는 매우 특별하다. 해월신사의 생애가 김용휘 교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분명 형형색색으로 빛나게 펼쳐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해월신사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대화와 질의 응답이 이어졌으며, 현장 도서 구입과 저자 사인회도 함께 진행됐다. -
봉암 나용환 선생 89주기 …천도교의 큰 뜻으로 3·1혁명에 앞장선 민족대표오늘, 8월 19일은 천도교인이자 3·1혁명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봉암(逢菴) 나용환(羅龍煥, 1864~1936) 선생의 서거 89주기다. 선생은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동학에 입교해 교단의 지도적 위치에 올랐으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중심인물로 기억된다. 나용환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평안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일찍이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1900년 수접주, 1902년 대접주, 1903년 의창대령을 맡으며 수천 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 ‘포덕대왕(布德大王)’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1906년 의암 손병희 성사로부터 ‘봉암’이라는 도호를 받으며 천도교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고, 1907년 은장을 수훈하며 정주순독과 도령, 신도사 등 요직을 맡았다. 이후 천도교중앙총부 현기사장, 공선관장, 도사에 이르기까지 교단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25일, 고종 장례식에 맞춰 상경한 그는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의암성사와 권동진, 오세창 등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 계획을 듣고 흔쾌히 민족대표로 참여를 결의하였다. 같은 달 27일에는 김상규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검토하고 서명했으며, 3월 1일 오후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민족대표로서 만세삼창을 외쳤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1년 출옥 후에도 천도교의 도사이자 종무사, 종리사, 강도사로 활동하며 교단 운영과 신앙 지도에 힘을 쏟았다. 1925년에는 교단이 신·구 양파로 갈라졌을 때 신파에 참여하여 종법사에 선출되었고, 이후 종법사장, 최고고문, 법정 등 원로직을 두루 맡으며 교단을 이끌었다. 선생은 1936년 8월 19일, 서울 소격정 자택에서 향년 72세로 생을 마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망우역사문화공원 자문위원이자 해설사를 맡고 있는 정종배 시인은 나용환 선생 서거 89주기를 맞아 자신의 블로그에 ‘영영 못 돌아올지 모른다 새옷 입고 집 나선 천도교인 3.1혁명 민족대표 33인 봉암(逢菴) 나용환(羅龍煥, 1864~1936. 8. 19) 89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래는 나용환 선생 89주기를 맞는 관련 글이 실린 정종배 시인의 블로그 주소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jjb3467&logNo=223975383973&navType=by -
『순의포 70년사』(가칭) 발간 위한 첫 삽『순의포 70년사』(가칭) 발간을 위한 첫 회의가 지난 7월 16일 신인간사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순의포 송범두 도정이 참석했으며, 편찬위원회 구성, 과업지시서 작성, 예산 편성, 자료 수집과 정리 방식 등 본격적인 편찬 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 안건들이 논의됐다. 이번에 발간될 『순의포 70년사』는 크게 두 권으로 나뉘어, 1권은 순의포의 역사와 활동을 서술하는 본문, 2권은 각종 자료와 영인본을 수록하는 자료집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편찬 기간은 약 1년으로 잡혀 있으며, 순의포가 걸어온 70년의 역정을 집대성하는 한편, 후대 교도들에게 길잡이가 될 신앙적 자산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앞서 순의포는 지난 6월 28일 부산시교구 성화실에서 총회 및 강도회를 개최했다. 남해, 부산, 서울, 진주 등 각지에서 약 50여 명이 모인 이날 모임에서 송범두 도정은 인사말을 통해 “AI와 같은 첨단 기술이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들어온 시대일수록 종교는 인간다움의 본질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경전 발간 △연원 운영 개선 △수련과 병행한 대회 개최 등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단순히 연례 모임에 그치지 않고 교리 학습과 공동체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활동을 확대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순의포 70년사』는 단체 창립 이후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동시에, 각 시대별 교도들의 증언과 활동 자료를 집대성하여 기록사적 가치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이번 편찬 작업은 교단 출판·간행 사업의 한 축을 이루어, 향후 다른 교단사 발간에도 중요한 경험과 지침이 될 전망이다. -
동학과 천도교의 자취를 따라 걷는 국립서울현충원현충원은 6·25 전쟁 직후 전사한 국군 장병을 위해 1954년 조성되었고, 1996년 ‘국립현충원’으로 개편된 뒤 지금까지 국방부가 관리하고 있다. 수많은 호국영령이 잠든 공간이지만 그 가운데에는 동학과 천도교의 맥을 잇는 독립운동가들도 자리하고 있어 교단의 역사를 되새기는 특별한 탐방지가 되고 있다. 정문을 지나 현충탑 뒤편 오른쪽 방향으로 걷다 보면 국가유공자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태극 문양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두 개의 태극 문양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독립유공자 묘역이다. 이곳에 동학혁명과 3.1혁명 관련 천도교계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이종일(15), 권병덕(17), 홍병기(18), 김완규(19), 권동진(20), 이종훈(21), 라용환(22), 신공제(92), 라인협(126), 안병무(192) 등은 모두 동학과 천도교 교단을 거쳐 동학혁명, 3·1운동에 나섰던 인물들이다. 묘역 표지석 번호를 확인하며 참배하면 된다. 국가유공자 묘역에는 독립유공자 묘역과 임시정부요인 묘역, 무후순국선열제단이 자리하고 있고, 이를 통틀어 추모하는 충열대가 있다. 천도교와 관련은 없으나 스코필드, 서재필, 전명운, 양세봉, 이회영, 장인환, 김상옥, 남자현 등의 묘석도 찾아보자. 충열대 오른편 언덕에는 임시정부 요인 묘역이 있다. 1993년 상하이 만국공묘에 있던 임정 요인 유해를 이장해 조성한 공간이다. 박은식, 이상룡, 지청천, 신규식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잠들어 있으며, 천도교와 교류한 손정도 목사도 함께 모셔져 있다. 동학에서 시작된 자주정신이 임정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충열대 뒤 언덕에는 무후선열제단이 있다. 유해가 없거나 후손이 없는 순국선열 134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이재명, 안창남, 이상설, 이위종, 홍범도, 오동진, 김익상, 나석주, 박응백, 차도선, 백용성, 김마리아, 조도선, 안명규, 유관순, 이동휘, 박열, 조소앙, 엄항섭 등을 비롯해, 최덕신 전 교령의 부친 최동오,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의 부친 유동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현충원에서 천도교 관련 순국선열들의 자취를 살펴보려면 다음 순서가 가장 알맞다. 정문 입장 → 현충탑 참배 후 뒤쪽 우측 → 국가유공자 제3묘역 → 독립유공자 묘역 → 충열대 → 무후선열제단 → 임시정부 요인 묘역 국립서울현충원은 지하철 4호선·9호선 동작역 8번 출구와 연결되어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버스는 국립현충원 정문 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개방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하절기)로, 오후 5시(동절기)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정문 안내소에서 묘역 위치가 표시된 안내 리플릿을 제공받을 수 있다. 원한다면 전동 카트를 이용할 수 있으며, 단체 방문 시 사전 신청으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편한 신발은 필수이며, 그늘이 많지 않고 언덕으로 이루어진 곳을 걸어야 하므로 여름철에는 모자와 물병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교서편찬위원회 제1차 회의 열고 첫 임기 시작포덕 166(2025)년 8월 5일, 교서편찬위원회 제1차 회의가 수운회관 9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는 새로 위촉된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첫 임기를 시작하는 뜻깊은 자리로, 교단 출판과 간행물에 관한 본격적인 심의 활동의 출발을 알렸다. 이번에 위촉된 위원들은 김혁태, 라명재, 박돈서, 성주현, 송봉구, 오문환, 오제운, 전명운(간사, 교화관장) 등이다. 교서편찬위원회는 중앙총부에서 발간하는 각종 출판물의 방향을 점검하고 심의하는 기구다. 교리와 교사의 편찬, 각종 자료집과 안내·홍보물(책자, 영상물 등)의 간행, 단행본 발간, 천덕송 및 송가 채택 등 교단의 정신을 대내외에 전하는 모든 출판·문화 활동이 그 범위에 포함된다. 위원은 교령과 연원회 의장이 협의하여 위촉하며, 신앙적 정통성과 시대적 감각을 겸비한 인사들로 구성된다. 이날 회의에서는 먼저 박인준 교령이 각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며 위원회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박 교령은 인사말을 통해 “중앙총부의 출판물은 우리 도의 정신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얼굴과 같다”며 “위원 한 분 한 분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위원회는 향후 활동 방향을 논의하며, ▲교리와 교사의 현대적 해석 및 보급 ▲청소년과 일반 교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재 개발 ▲시대 흐름에 맞는 영상 및 디지털 콘텐츠 제작 ▲찬송가와 송가의 정리·보급 ▲출판물 품질 관리 및 홍보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삼을 것을 합의했다. 또한 앞으로의 출판 사업이 단순한 기록 차원을 넘어 교화와 포덕,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핵심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교서편찬위원회의 본격적인 출범은 교단 출판·간행 활동이 한층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추진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단 관계자는 “이번 회의를 통해 출판물이 단순한 교단 내부의 자료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세계 속에서 천도교의 사상과 비전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다”며 “위원회의 활동이 우리 교단의 정체성과 현대적 역할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
『3.1만세운동의 연출자 손병희』, 청소년에게 전하는 민족정신의 뿌리지은이: 신동명 장르: 청소년 역사소설 출판사: 도서출판 혜민기획 쪽수: 156쪽 발행일: 2025년 8월 15일 의암 손병희 성사의 삶을 다룬 청소년 역사소설 『3.1만세운동의 연출자 손병희』가 출간됐다. 이번 책은 동학에서 천도교로 이어진 신앙의 길과 3·1만세운동의 민족사적 의미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담아낸 역사소설로, 의암성사의 신앙과 결단을 생생히 되살린다. 이 책은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천도교중앙총부 조회에서 의암성사가 “앞으로 10년 안에 반드시 독립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선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후 1919년 3월 1일, 의암성사는 마침내 그 약속을 실천하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을 울려 퍼지게 했다. 이 작품은 의암성사가 300만 명에 이르는 천도교인들을 이끌며, 기독교·불교 세력과 손잡아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낸다. 특히 3·1혁명의 배후에서 천도교가 그 기획과 준비를 주도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며, 그간 축소·왜곡되어온 역사 서술을 바로잡는다. 저자는 책에서 일제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폐해를 비판한다. 오늘날 3·1혁명이 한 인물, 특히 유관순이라는 개인의 이야기로만 좁혀지는 현실 역시 그 연장선으로 지적한다. 저자는 의암성사와 천도교, 종교 간 연대가 만들어낸 거족적 민족운동의 본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1만세운동의 연출자 손병희』는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0년의 약속과 자주독립의 시작, 독립자금 모금 프로젝트, 종령 제120호 반포, 1919년 고종 황제의 서거, 불교·기독교·유림계와의 연대, 독립선언문 등은 3·1혁명의 주요 장면을 생생히 되살린다. 이 가운데 ‘민족운동의 제물엔 늙은 소보다 어린 양이 더 좋다’는 장은 청년과 학생들의 희생을 앞세운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하며, 오늘날 역사적 성찰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저자 신동명은 시인이자 교육학 박사로, 청소년 교육과 토론문화 연구에 평생을 헌신해왔다. 현재 서정대학 청소년상담복지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에는 천도교에 입교하여 동학과 천도교 정신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번 책은 그의 두 번째 청소년 역사소설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3·1혁명의 진실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하고, 나아가 동학과 천도교의 평등·해방 사상을 미래 세대와 공유하려 한다. 또한 다음 작품으로 해월 최시형 신사에 관한 청소년 소설을 집필 중이다. 『3.1만세운동의 연출자 손병희』는 천도교인에게는 의암성사의 삶을 성찰하는 신앙의 길잡이가, 일반 독자에게는 한국 근대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창이 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나라란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신앙은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가?” 이 물음은 100년 전 의암 손병희 성사의 결단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
진성당 최말란 선도사 환원(김성환 연원회 의장 장모상)18일, 진성당 최말란 선도사(103세)가 숙환으로 환원하였다. 발인은 20일(수) 05시 40분이며 장지는 경주선영이다. 상주는 아들 김문수, 며느리 이남선, 딸 김외특, 김순례, 김기순, 김순옥, 사위 김성환, 최철민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7호실이다. 장례일정은 다음과 같다. ㅁ 입관 일시: 포덕 166년 8월 19일(화) 13시 00분 ㅁ 발인일시 : 포덕 166년 8월 20일(수) 05시 40분 ㅁ 장지 : 경주선영 ㅁ 이실 안내 : 포덕 166년 19일 오전 10시, 7호실에서 35실로 이실 ㅁ 상주 연락처 : 명암 김성환 010-3788-5222 고인의 환원 소식에 많은 동덕들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있다. -
박인준 교령,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특별전시 개막식에서 축사 및 테이프 커팅서울 강북구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8월 1일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특별전시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 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강북구의 독립운동 관련 역사와 인물을 집중 조명하며, 지역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개막식에는 박인준 교령, 이순희 강북구청장, 윤경로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비롯해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와 지역 인사, 시민들이 참석해 광복 80주년의 뜻을 함께 나누었다. 이순희 구청장은 환영사에서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하고, 그들의 기록과 유물을 통해 잊힌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축사에 나선 박인준 교령은 강북구가 가진 특별한 역사성을 강조했다. 또한 “봉황각과 의암 손병희 성사 묘소 등 천도교 성지가 자리한 강북구는 3.1혁명과 민족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다”며, 앞으로 국가 차원의 의암 손병희 성사 기념관과 3.1혁명 기념관 건립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박 교령은 또 “광복 80주년을 맞아 후손들이 독립운동의 정신을 삶 속에서 되새기고,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체적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테이프 커팅 후에는 전시 해설이 진행되었고, 참석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사진과 자료, 당시 사용되었던 유물들을 관람했다. 또한 실감 영상 시사회를 통해 당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독립운동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특별전시는 8월 한 달 동안 진행되며, 학술회의와 어린이·청소년 체험 프로그램, 시민 강좌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될 예정이다. -
“종학대학원을 교역자 양성의 산실로 재도약시키겠습니다”천도교의 유일한 부설 교육기관인 종학대학원은 교단의 신앙 전통을 잇는 핵심 요람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인과 일반인들이 이곳에서 동학 천도교의 사상과 역사를 배우며 신앙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교단 환경의 변화 속에서 종학대학원은 본래의 설립 취지인 ‘교역자 양성’이라는 핵심 목표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제 종학대학원이 전면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김혁태 원장은 오랜 기간 종학대학원 교리담당 교수로서, 또 상주선도사로서 교육 현장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교단의 명운이 달린 교역자 양성을 위해 교육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 원장은 종학대학원의 변화 방향과 미래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현장 경험에서 나온 개혁의 의지 그동안 교단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혁태 원장에게 지금까지의 경력 중 종학대학원 원장직 수행에 가장 도움이 될 경험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종학대학원의 교리담당 교수를 역임하면서 쌓인 경험이 도움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상주선도사 직책을 수행할 때, 교단에 전무(全無)한 교육적 시스템에 대한 우선적 해결 방안으로서 교단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종학대학원을 실질적인 신앙 교육의 산실로 확고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현기사 차원에서 종학대학원의 혁신에 대한 고민을 해왔던 것이 도움이라면 도움이겠습니다.” 그간 학계 교수가 주로 맡아왔던 종학대학원 원장 자리를 교단 내부의 인사가 맡게 된 상징성에 대해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지요”라며, 종학대학원의 전신인 ‘종학원’ 시절에는 원장과 원감을 교령이나 중요 원로가 맡아온 전례를 들며 “지금부터라도 일탈된 부분을 바로잡고 본래의 취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신임 교령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교역자 양성, 교육시스템부터 개편 교역자 양성을 위한 종학대학학원 역할에 대해 김혁태 원장은 “교역자 양성은 교단의 명운이 달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현재 종학대학원의 절대적 과제는 피(被)교육자 모두가 2년의 교육 과정을 통해 동학 천도교의 정신과 진리를 온전히 습득하여 교역자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현실적으로 개편하는 일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종학대학원 교육 과정은 일반 과정과 지도자 과정으로 이원화된다. 일반 과정은 기존의 교육 방식을 유지하되, 지도자 과정은 교역자(원·주직)를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으로 신설된다. 김 원장은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부터라도 교역자 전문교육을 실시하게 되는 것은 교단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해보더라도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인재 양성은 마땅히 신앙을 기본으로 하는 것인 만큼 교육의 과정은 철저하게 교리교사를 중심으로 하여 교역자에 필요한 소양교육에 중점을 둘 것이라는 말에서, 교육 개편의 방향성이 명확히 묻어났다. 종학대학원의 위상 회복이 우선 과제 김혁태 원장은 개혁과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존재감 상실’을 꼽았다. “교단의 유일한 부설 교육기관으로서 설립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당연한 권리로서의 자율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제반의 업무 행정 등을 종무원에 위탁하여 처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종학대학원이 본래의 권리와 기능을 회복해 교단 미래의 인재를 발굴·육성하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국의 교인들이 천도교의 대학원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종학대학원을 준비된 교육기관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임기 내 목표를 밝혔다. 이어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원생이 교역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종학대학원 출신 인재들이 교단 중흥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망설이지 말고 입학하시길” 인터뷰 말미, 김혁태 원장은 교인과 예비 지원자들에게 진심 어린 당부를 전했다. “활동 가능한 교인들께서는 망설이지 마시고 종학대학원에 무조건 입학을 하시길 바랍니다. 평생의 자부심인 내 신앙에 대하여 비로소 온 마음을 다해 공부할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다행한 일입니까. ‘심독히자부’ 할 수 있는 신앙의 충만함은 내가 깨달아 아는 양만큼 채워지는 것이지요.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여러분의 좋은 기회를 종학대학원에서 만들겠습니다.” 종학대학원 개편은 교단의 미래를 책임질 교역자를 길러내는 일이며, 교인 각자가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기회를 확장하는 일이다. 교단의 정신과 전통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기 위해, 종학대학원은 다시 금 교단 교육의 심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