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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적조암- 태백산중 49일 기도, 천의봉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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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적조암- 태백산중 49일 기도, 천의봉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 214

  • 편집부
  • 등록 2026.01.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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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암03.jpg
눈에 덮인 적조암 표지석
적조암01.jpg
적조암 표지석과 해월신사 49일 독공비 앞에 선 필자,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답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선 유인상의 집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해월 신사는 먼저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49일 기도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에 사람들에게 물어 지금의 고한(古汗), 태백산맥에 있는 갈래사(葛來寺)의 말사인 적조암(寂照庵)을 사람들로부터 소개받고, 이곳을 찾아가 이 암자를 지키는 스님인 철수좌(哲首座)에게 먼저 허락을 맡는다.

적조암은 고한읍에서 약 6km 북동쪽 해발 1,2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적조암이 속했던 갈래사는 오늘날의 정암사(淨岩寺)이다. 정암사는 강원도 동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1,573m의 함백산(咸白山)의 한 봉우리인 천의봉(天宜峯)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주위

에는 태백산(1,567m), 태장산(1,409m), 대덕산(1,307m), 백운산(1,426m), 매봉산(1,303m), 조록바위봉(1,087m), 지장산(931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정선에서 사북(舍北)을 지나, 고한이라는 마을에 이르면, 태백산맥으로 이르는 험준한 구릉을 만나게 된다. 이곳 고한에서 다시 지금의 카지노로 유명해진 강원랜드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정암사를 만나고, 이곳에서 다시 한 1km쯤 고갯길을 따라서 가면 왼쪽으로 인가 두어 채를 볼 수 있다. 이 마을이 옛날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의 탄광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광부들이 살던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적조암 가는 길’이라는 팻말을 만난다. 이 팻말에서부터 그리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적조암과 자작나무 샘터 쪽으로 가는 작은 소로로 된 삼거리를 만난다. 이 산길 삼거리 오른쪽으로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씨를 새긴 작

은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을 지나 다시 3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제법 넓은 지대를 만난다. 이 지대가 바로 적조암이 있던 곳이다. ‘적조(寂照)’라는 암자의 이름처럼 정적만이 맴돌고 있는 깊은 산속이다. 지금은 기도처로 사용이 되는지, 기도를 드린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본사인 정암사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고, 지금은 정선,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만항재 길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뚫려 있지만, 해월 신사께서 이곳을 찾아올 당시는 산길조차 없었던, 그야말로 태백산맥 깊은 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 신사께서 숨어서 지내며 수련을 하기에는 참으로 적당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적조암을 지키고 있던 노승을 동학 교단의 기록에는 ‘철수자(哲秀子)’, 철수자(哲修子), ‘철수좌(哲首座)’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를 마치 스님의 이름인 양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철수자(哲秀子)’와 ‘철수자(哲修子)’는 잘못된 표기이다. 더구나 이는 스님의 이름이 아니다. 

수좌(首座)란 불교의 한 용어로, 선원(禪院)에 들어 공부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철수좌(哲首座)는 이들 중에서도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선승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당시 적조암을 지키고 있던 노승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선승(禪僧)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승의 허락을 얻은 해월 신사 등은 적조암에서 49일을 한정하고 특별수련에 임하였다. 이에 관한 기록이 『도원기서』에 있다.

 

主人與洙 將有入山 四十九日之計 洙使海成澤鎭 入葛來寂照菴 有好一老僧 迎我以問曰 客主自何以來 答曰 吾是本邑之人也 今冬 有祈禱之計 故得來幽僻處 方爲周覽訪來 老僧曰 此山中有或 適當之處也 否曰 見他處而卽到此菴也 僧曰 然而食於午饁乎 曰否 卽饋於甘薺小許矣 洙曰此菴視之 則可謂寂然也 吾當寥寂之處 而來此則願老僧 今三冬同苦之義 果如何 老僧默然良久曰 若爲來工 則數來幾人乎 曰只不過三四人也 僧曰 至於四人雖謂多也 若爲丁寧以來 則期日而退去 如何 洙曰 十月念後當來矣 願老師不違期日 待之如何 僧曰諾卽日退 看鳳捿菴 又明日 洙往主人在處 朴龍傑之家 其兩人還于本家 主人及洙來到寅常家 聖文聞主人入山之計 懇乞付託 主人自念其勢 則情或其然 故許言 同苦聖文心爲樂樂 周旋資糧 洙之課糧 當日入到 主僧自順興來者纔爲二日也 至于夜 洙謂僧曰 世上術業之工 各有其張事已 到此同 過三冬之苦 胡爲乎 欺僧乎 僧俗間修道成就 亦是一也 吾之所工 但以呪文矣 僧曰 呪文何呪 答曰 主僧前或聞東學之說乎 其僧良久曰 前有聞之也 曰自今爲始誦呪矣 主僧勿爲忌憚焉 主僧聞呪誦之聲 稱讚不已 日惟勸之四人 各定坐處 手執念珠 衣冠整齊 日夜定數 幾至二三萬讀 而竟過於 四十九日 其後數日 將習符圖 主僧窺視 以言曰 此乃造化之符也 曰主僧何以知之乎 僧曰 造化在符 小僧雖淺見薄識之僧 見其符則自有得驗之事矣 願僉生員主 愼藏而不漏也 吾聞之心獨知 知覺之僧也 一日主僧曰 小僧汝卽往小白山 因忽不見 小僧覺睡後 心常怪訝 掇歸小白山 至于今年四月 又有夢敎而移往太白山 故來此則菴宇空虛 道場荒弊 種薺數頃 斧木百負 以爲過冬之資矣 疇昔之夢 如許二人 來謁佛前 夢中熟視 完在目中 覺以目料 則必有課工之人 到今見生員主 完然若夢中見貌也 此非奇夢耶 洙對曰 吾亦有夢入 山之夜仙官 自空中來坐 壁上吾拜謁 仙官矣 吾今觀佛形 亦如夢中之事 主人曰 吾亦入山之初 有一夢瑞鳳八首 自天上下來 第次坐前 吾奇以抱之三首 則傍人各抱五首 忽自空中 謂語曰 此鳳五首各有主之鳳也 汝當深藏 以後待主各授也 亦豈非祥夢耶 主僧聞之益且奇之 聖文前日去 主人及洙 方向隱潭 以還歲色不遠矣 寅常之家難爲過歲 故將行寧越聖文 時在再堂侄女家矣 洙及主人 同爲過歲

 

주인이 강수와 더불어 장차 산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드릴 계획을 가졌다. 강수가 김해성(金海成), 유택진(劉澤鎭)으로 하여금 갈래산(葛來山) 적조암(寂照庵)에 들어가게 하였다. 어느 한 노승(老僧)이 있어 물어 말하기를,

“손님들께서는 어디에서부터 오시는 길입니까?”

대답하기를,

“저희는 이곳 본읍(本邑)의 사람들입니다. 이번 겨울에 기도를 드릴 계획이 있어서, 깊고 외진 곳을 찾아 두루두루 돌아보며 찾아오고 있는 길입니다.”

노승(老僧)이 말하기를,

“이 산중에 혹 적당한 곳이 있는지요?”

아니라고 대답하며,

“다른 곳을 돌아보고 이 암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그러시면 점심은 드셨는지요?”

점심을 들지 못했다고 하니, 즉시 감자를 조금 가져다주었다.

강수가 말하기를,

“이 암자를 보건대 가이 적조(寂照)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이 

암자에 온 것입니다. 노승께서 금년 겨울을 같이 고생하며 지내실 뜻이 계신지요?”

노승이 오랫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하기를,

“만약 오셔서 공부를 하게 되면 몇 사람이나 오게 되나요?”

말하기를,

“다만 서너 사람에 불과합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네 사람이라면 많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정녕 오시겠으면 기일을 정하시고 일단 돌아감이 어떻겠습니까?

강수가 말하기를,

“10월 20일 이후에 꼭 오겠습니다. 노스님께서는 기일을 지켜서 기다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스님이 좋다고 승낙을 하였다. 그날로 돌아가 봉서암(鳳棲庵)을 둘러보고는, 다음날 강수는 주인이 머물고 있는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가고, 두 사람은 본가(本家)로 돌아갔다.

成)이 스스로 넉넉하게 식량을 마련하였다.

주인과 강수가 유인상(劉寅常)의 집에 오니, 전성문(全聖文)은 주인이 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듣고는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다. 주인이 그 형세를 스스로 생각해 보고, 뜻이 혹 그러하여, 같이 고생할 것을 허락하였다. 전성문(全聖文)은 마음이 매우 기뻐, 식량을 주선하였다. 강수가 마련해야 할 식량은 유택진(劉澤鎭)이 부담을 하였다. 주인의 식량은 스스로 부담하되, 김해성(金海成)이 스스로 넉넉하게 식량을 마련하였다. 

그날에 이르러 산에 들어가 도착하니, 주지 스님이 순흥(順興)에서 돌아온 지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밤이 되어 강수가 주지 스님에게 말하기를,

“세상 술업(術業)의 공부가 각각 그 베푸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일이 이미 이에 이르러 같이 겨울을 보내는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해서 스님을 속이겠습니까? 승속간(僧俗間)에 도를 닦아 성취하는 것이 역시 한가지라, 우리의 공부하는 것은 다만 주문(呪文)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주문(呪文)은 어떤 주문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주지 스님은 전에 혹시 동학(東學)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 스님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기를,

“지금부터 주문 외우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지 스님께서는 기탄하지 마십시오.”

주지 스님이 주문 외우는 소리를 듣고는 칭찬하는 말을 그치지 않고, 날로 오직 주문 읽기를 권

하였다.

네 사람이 각기 앉을 곳을 정하여 손에는 염주(念珠)를 잡고, 의관을 정제하고 밤낮으로 수(數)

를 정하여 읽으니, 거의 이삼만 독(讀)에 이르렀다. 마침내 49일을 끝마치고, 그 후 며칠 간은 부

도(附圖)를 익힐 즈음에, 주지 스님이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조화(造化)의 부도이군요.”

말하기를,

“주지 스님께서 어찌 이를 아십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조화(造化)가 부도(符圖)에 있으니, 소승(小僧)이 비록 천견박식(賤見薄識)한 중이나, 이 부도를 보고 스스로 증험을 얻은 바가 있습니다. 생원님들께서는 삼가 보관하시고 누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것을 듣고, 홀로 지각(知覺)이 있는 스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는 주지 스님이 말하기를,

“소승(小僧)은 본래 계룡산(鷄龍山)에 있던 중입니다. 초막(草幕)을 짓고 공부를 하는데,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너는 즉시 소백산(小白山)으로 가거라.’ 말씀하시고, 문득 보이지 않거늘, 소승(小僧)이 잠에서 깨어난 후로 마음이 이상하여 거두어 가지고 소백산(小白山)으로 돌아왔습니다. 금년 4월에 이르니, 또 꿈에 가르침이 있어 태백산(太白山)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곳에 오니 암자(庵子)가 비어 있고, 도량(道場)이 황폐하여, 감자씨를 몇 이랑 뿌리고, 나무 백 짐을 하여 겨울 지낼 재료로 삼았습니다. 전날 꿈에 어느 두 사람이 부처님 앞에 와서 뵙는데, 꿈속에서 익혀 보았기 때문에 완연히 눈 가운데 있습니다. 깨어나 스스로 헤아려 보니, 반드시 공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원님들을 뵈니, 완연히 꿈에 뵌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이 기이한 꿈이 아니겠습니까?”

강수(姜洙)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 역시 산에 들어오던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선관(仙官)이 공중에서부터 와서 벽상(壁上)에 앉았고, 제가 선관(仙官)에게 절하고 뵈었습니다. 제가 지금 부처의 형상을 보니 역시 꿈속의 일과 같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나 역시 산에 들어오던 첫날에 꿈을 꾸었는데, 상서로운 봉황 여덟 마리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차례로 앞에 앉거늘 내가 기이하게 여기어 세 마리를 싸니, 옆에 있던 사람이 각기 다섯 마리를 쌌습니다. 문득 공중에서부터 말하기를 ‘주인이 있는 봉황이다. 너는 마땅히 깊이 두도록 하라. 이후 주인을 만나거든 주도록 하라.’ 했으니, 역시 상서로운 꿈이 아니겠습니까?”

주지 스님이 듣고는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전성문(全成文)은 하루 먼저 가고, 주인과 강수는 은담(隱潭)을 향하여 갔다. 한 해가 저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인상(劉寅常)의 집에서는 과세(過歲)하기가 어려워 영월(寧越)로 가기로 하였다. 전성문(全成文)은 그때에 재당질녀의 집에 있었다. 강수와 주인이 같이 과세를 하였다.- 『도원기서(道源記書)』

 

적조암04.jpg
적조암 입구에 있는 표지판

 

적조암02.jpg
적조암 표지석, 왼쪽 표지석은 박노진 선도사가 주도하여 세웠고, 오른쪽 표지석은 정선문화원에서 세웠다.

 

적조암에서 행한 49일의 기도는 곧 해월 신사께서 교단 정비의 새로운 계기를 이루는 정점이 된다. 특히 이곳 적조암 기도 이후 훗날 동학의 주요 지도자가 된 손병희, 박인호, 서인주(徐仁周), 손천민(孫天民), 이원팔(李元八) 등을 지도하며 49일 특별수련을 행하기도 하였다. 

무너진 교단을 일으키는 길은 다름 아닌 수련을 통한 ‘신앙에의 결사’에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이렇듯 그 실행에 옮겨가고 있었다.

적조암에서의 기도를 마치고, 해월 신사는 한 편의 강시(降詩)를 짓는다. 음력 12월 5일, 온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인 함백산 산중에서 49일 기도를 마치고, 문득 닫힌 문을 열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적조암으로 보이는 거봉(巨峰)들인 백운산이며, 두위봉 등은 모두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장관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49일간의 독공(篤工)을 하며, 해월 신사 스스로 마음에 새긴 새로운 결의의 그 벅참이 마치 펼쳐진 겨울 산의 장관과도 같이 온 천지에 펼쳐지고 있음을 해월 신사는 느꼈다.


太白山中四十九

受我鳳八各主定

天宜峯上開花天

今日琢磨五絃琴

寂滅宮殿脫塵世

善終祈禱七七期

태백산 중에 들어 49일의 기도를 드리니

한울님께서 여덟 마리 봉황을 주어 각기 주인을 정해 주셨네

천의봉 위에 핀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오늘 비로소 마음을 닦아 오현금을 울리는구나

적멸궁에 들어 세상의 티끌 털어내니

뜻있게 마치었구나, 49일간의 기도를

- 『해월신사 법설』 「강시(降詩)」


49일간의 기도는 곧 마음을 닦는 수련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마친 이후, 오현금을 울리듯이 마음이 맑아지고, 샘물이 다시 차오르듯이 새로운 기운이 돋아남을 해월 신사는 스스로 맛보게 된다. 49일간의 기도는 지난날의 번뇌와 고통을 모두 떨쳐버리는, 정말로 뜻이 있는 수련이었고, 온 천지를 덮고 있는 흰 눈과도 같이 세상을 새로운 힘으로 뒤덮을, 그런 기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 뜻이 있는 49일의 기도를 마치게 되었다[善終祈禱七七期]’라고 해월 신사는 스스로 술회하고 있다.

「태백산공사십구(太白山工四十九)」의 시에 관하여, 동학 교단의 기록에는, 훗날 이 시에 대구(對句)가 될 다른 척구(隻句)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과 같은 말을 담고 있다. 『천도교서』, 『천도교창건사』, 『시천교역사』 등에 나온다. 다음의 기록이 그것이다.

‘太白山工四十九 受我鳳八各主定 天宜峯上開花天 今日琢磨五絃琴 寂滅宮殿脫塵世’라는 詩를 짓다. 이는 內隻句로 後日 外隻句를 채울 사람이 있다.

교단이 어려운 시절 해월 신사의 49일 기도와 함께 나온 「태백산공사십구(太白山工四十九)」의 시는 어느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즉 교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로 이끌 수있는 힘은 바로 기도를 통한 신앙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와 함께 「태백산공사십구」의 시의 대구를 새로운 신앙의 힘, 신앙의 결사가 나올 때 동학이 다시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의미에서 예언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수암 염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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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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