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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송두둑 ·사동 일원, ‘청수 한 그릇’ 제례법 주창하고 용시용활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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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송두둑 ·사동 일원, ‘청수 한 그릇’ 제례법 주창하고 용시용활 설법

사동리(절골) 표지석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 128
해월신사 집터(추정) :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온천로 771-8(장정리 9-1)

  • 편집부
  • 등록 2026.02.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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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01.jpg
송두둑 일원을 흐르는 갈천
사동02.jpg
장정리 전경 - 송두둑과 사동은 지금은 모두 장정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강원도 정선에 머물면서 동학의 재기를 꾀하던 해월 신사는 1874년 충청도 단양(丹陽) 사동(寺洞)으로 옮겨간다. 단양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는 적조암의 스님이 단양 송두둑, 사동 일대가 은거하며 지내면서 동학을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데 유용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조

언한 것에 따른 것이다. 

그간 적조암의 스님이 입적한다. 또 정선 싸내에 사시던 대신사 사모님도 환원한다. 해월 신사는 노스님의 장례와 사모님 박씨 부인의 장례를 치른 후, 안동 사람 권명하(權明夏)의 도움을 받아 단양(丹陽) 남면(南面) 사동 도솔봉 아래에 집을 마련하였다. 

강수, 김연국, 김용순 등도 해월 신사께서 사는 집 근처로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필제의 난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도망치고 또 숨어 살다가, 단양 남면으로 와서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고, 이렇듯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 사동에서 1874년을 보내고 1875년을 맞이하였다. 새해를 맞아 해월 신사는 첫아들 덕기(德基)를 출산하였다. 태어난 곳이 도솔봉 아래이기 때문에 ‘도솔이’라고도 불렀다. 덕기가 출생하고 한 달여가 지난 1875년 2월 하순, 관의 지목도 느슨해졌고 하여, 조금 큰 마을인 송

두둑, 즉 송고촌(松皐村)으로 이주하였다. 송두둑이나 사동은 모두 오늘의 장정리(長亭里)에 속해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 왼편 도솔봉 쪽으로 들어가면 사동이 되고, 바로 올라가면 해월 신사께서 훗날 『용담유사』를 처음 목판으로 간행한 샘골, 곧 천동(泉洞)이 된다. 그러하니 송

두둑은 사람들이 왕래하기에 보다 수월한 곳이다. 

해월 신사는 을해년(1875년) 추석날인 8월 보름을 기하여 각 지역의 지도자격 인사들을 모이게 하여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제례를 베풀 계획을 세웠다.

제례를 준비함에 전일의 예에 의거하여 제수(祭需) 음식을 마련하여 제상을 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제례를 행하려 할 즈음에 이르러, 해월 신사께서 문득 강화(降話)의 가르침을 받아 앞으로는 제물을 진설하지 않고 오직 청수(淸水) 한 그릇만 모시고는 제례를 지내는 날이 올 

것이라는 설법을 한다. 『천도교서(天道敎書)』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余이 過去多年에 各種飮食의 物로써 祈禱儀式의 準的을 行하얏으나 이는 아직 時代의 關係로

부터 出한 所以니 日後는 一切儀式에 但히 淸水 一器만 用하는 日이 有하리라.

- 『천도교서』 


사동03.jpg


제수도 진설하지 않은 채 청수 한 그릇만을 올린 제상(祭床)인 청수일기의 제례법을 시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는 곧 기존의 모든 형식의 틀은 동학의 이념이 담긴 형식으로 과감히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본래 전통적인 제례에서는 혼백(魂魄)이 멀리 구천(九天)에 있어, 먼저 이 혼백을 부르는 초혼(招魂)을 한다. 그래서 향을 피우고 향기 나는 술을 뿌린다. 향을 피워서 천상으로 떠도는 혼(魂)을 지상으로 내려오게 하고, 술을 뿌려서 지하에 있는 백(魄)을 오게 하여, 안치한 신위(神

位)에 모셔놓는 것이 우리의 유교적 전통적인 제례 의식이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곧 신위란 신(神)이나 조상의 혼백이 모셔져 있는 바로 그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월신사는 바로 이러한 오랜 우리의 관습이 되어온 제례 형식을 과감히 바꾸어 그 안에 새로운 동학의 정신을 담아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한울님이나 조상의 영혼이란 유형한 것이 아니라 무형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근원적으로 한울님이나 조상의 영혼은 모두 혼원

(渾元)한 우주의 영기(靈氣)이며,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생명력, 바로 이 생명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백이라는 것이 구천(九天)에 있는 것도 아니요, 한울님이 먼 천상에 계신 것도 아니며, 바로 내 마음속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 곧 동학의 가르침이 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제례 의식과 같이 조상의 영혼이 신위에 모셔져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이 무형한 조상의 영혼이 음식을 흠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해월 신사의 생각이었다. 나아가 ‘신위를 내가 바라보는 벽에 세울 것[향벽설위(向壁設位)]’이 아니라, ‘나를 향해서, 곧 내 마음

에 세워야 한다는 것[향아설위(向我設位)]’이 해월 신사의 생각이었다. 즉 내 안에 한울님이 모셔져 있으며, 나아가 조상의 영혼 역시 내 안에 모신 한울님과 그 근원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청수일기(淸水一器)’의 제례법은 훗날 해월 신사에 의하여 제창되는 향아설위(向我設位)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즉 해월신사께서 제기한 ‘청수일기의 제사법’이 동학 제례의 외양적인 형식이 된다면, 나를 향하여 위패를 세운다는 ‘향아설위’는 그 내용, 곧 정신이 된

다고 하겠다.

이렇듯 앞으로는 ‘청수 한 그릇’이라는 매우 파격적인 제례를 행해야 한다는 설법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제례를 행한 이후, 해월신사는 강수 등과 남쪽 지방을 순회하였다. 한 달여의 순회에서 돌아온 해월 신사는 동학의 종교적인 수행과 의례를 확립하기 위하여 ‘한울

님께 고하는 제례’, 곧 ‘고천제례(告天祭禮)’를 행하였다. 또한 이러한 고천제례를 위하여 새로 마련된 제례 시에 입는 법복(法服)과 법관(法冠), 법대(法帶)를 새로 제정하기도 한다. 

 

乙亥制法冠法服行設法祭 … (중략) … 法冠四圍三疊中 盖正圓 前後葉圓而稍竦 左右葉尖而稍低 色或紫或黑 內貼綢而無定色 法服正斜 幅前五後四 袂身直徑一尺三寸 縱徑七寸 袂後方直 貼於前後幅兩縫 間袂口僅容覆手 法帶廣二寸 圍二尺 餘結釦於右腋下 前垂二條 廣亦如之長

稱身色純黑

법관(法冠)은 사방이 모두 삼 층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 덮게는 정원(正圓)을 이루고 있다. 법관의 앞과 뒤는 둥글며 조금 치켜져 올라가 있고, 좌우는 뾰족하며 조금 내려가 있다. 법관의 색은 자주색이나 검은색이다. 법관의 안에 부친 감은 일정한 색을 정하지 않았다. 법복(法服)은 정사폭(正斜幅). 곧 똑바르게 내려가다가 비스듬해지는 형태의 폭이다. 앞쪽은 5폭, 뒤쪽은 4폭으로 되어 있다. 소매 직경은 1척 3촌이고, 세로 폭은 7촌이다. 소매 뒷부분은 방직(方直), 곧 모가 나게 하여 곧게 내렸고, 전후 폭 양쪽 마름질한 곳에 부쳤다. 소맷부리는 두 손을 겨우 덮을 정도로 하였다. 또 법대(法帶)는 넓이가 2촌이고 둘레가 2척이다. 그 나머지는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 테두리를 주어 묶었다. 앞쪽으로 두 끈을 늘어뜨렸는데, 그 넓이는 허리띠와 같고 색은 검은색이다.

- 『시천교역사(侍天敎歷史)』 「제2편(第二篇)」

 


단양으로 거처를 옮긴 해월 신사는 종교적 의례를 정례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따라서 설법제(說法祭), 구성제(九星祭), 인등제(引燈祭) 등을 행한다. 

『도원기서』의 기록을 보자.

又逢淸河人李君綱 李俊德 抵到達城 洙得見子渭慶 五年別離之餘 父子相逢 莫非自然 又伏問家嚴之安候 喜不勝敢言 明日卽向丹陽 而來到本家 十月主人將有設法之計 使洙通文于旌善 以十八日來會于道主家 則當以其日行祭矣 寅常及聖文來到 俱製冠服仙道創始 洙作祝告于天主 其時參祀人 祭官分定 初獻道主人崔慶翔 執禮朴奎錫 亞獻道次主姜洙 奉香金永淳 終獻全聖文 奉爐金龍鎭 大祝劉寅常 執禮朴奎錫 奉香金永淳 奉爐金龍鎭

또 청하(淸河) 사람 이군강(李君綱), 이준덕(李俊德)을 만났다. 달성(達成)에 이르러 강수는 아들 위경(渭慶)을 만났다. 5년간이나 떨어져 있었던 부자(父子)가 서로 만나니,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또 집안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니, 기쁨이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곧 단양(丹陽)으로 향하여 본가(本家)에 이르렀다. 

10월에 주인이 장차 설법(說法)을 할 계획이 있어, 강수로 하여금 통문(通文)을 정선(旌鮮)에 보내도록 했다. 18일에 도주(道主)의 집에 모여서, 그날로 제사를 행한다고 하였다. 유인상(劉寅常)과 전성문(全成文)이 와서 관복(冠服)을 지어 선도(仙道)로써 새롭게 (제례를) 만들었다. 강수가 축문(祝文)을 짓고 한울님께 고하였다. 이때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제관(祭官)을 나누어 정해 주었다.

 

초헌(初獻) 도주인(道主人) 최경상(崔慶翔)

아헌(亞獻) 도차주(道次主) 강수(姜洙)

종헌(終獻) 전성문(全成文)

대축(大祝) 유인상(劉寅常)

집례(執禮) 박규석(朴奎錫)

봉향(奉香) 김영순(金永淳)

봉로(奉爐) 김용진(金龍鎭)

- 『도원기서(道源記書)』


사동04.jpg
해월 신사께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

 

설법제나 구성제, 인등제를 지낼 때 마치 유교의 제례와 같이 축문을 읽고,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을 비롯해 대축(大祝), 봉향(奉香) 등의 제관(祭官)을 두어 격식을 갖추었다. 또한 제수를 차리지는 않았지만, 49되의 쌀을 13되, 9되, 8되, 7되, 5되, 4되, 3되 들이 7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아 진설했고, 무명베 49자를 13자, 9자, 8자, 7자, 5자, 4자, 3자 등으로 나누어제단을 쌓았다. 

쌀이나 무명을 13, 9, 7, 5, 4, 3 등의 숫자에 맞추어 진설하거나 제단을 쌓은 것은 동학의 주문 13자와 구성(九星), 팔괘(八卦), 칠성(七星), 오행(五行), 사시(四時), 삼재(三才)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동학의 정신과 전해 내려오는 동양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것들이 된다. 

종교의식, 곧 종교 의례란 일상과는 다른, 장엄하고 조직적이며 정형화된 종교적 행위이다. 

이러한 종교 의례는 그 종교집단에 질서를 부여하게 되고, 나아가 그 종교집단의 공통된 감정이나 의지를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형식이다. 이러한 종교적 의례를 통해 동학 교도들에게 종교적 질서를 부여하고, 나아가 이들을 종교적 신념을 지닌 집단으로 결집해 나가고 있었다.

또한 이때 해월 신사는 「용시용활(用時用活)」의 법설을 하고, 이름을 고쳐 주었다. 『도원기서』의 기록을 보자.

其時主人頒布曰 吾有十二時字 又有十二活字 則爲先以三人 時字改名 以賜之 以活字改字 以授之 此時活二字 有命敎 故敬以傳授 

그때에 주인이 반포(頒布)하여 말하기를,

“나에게 12개의 시(時) 자(字)와 또 활(活) 자(字)가 있다. 먼저 세 사람에게 시(時) 자로써 이름을 고쳐 주고 활(活)로써 자(字)를 고쳐 주겠다. 이 시(時), 활(活) 두 자는 명교(命敎)가 있는 것이니 공경하여 받도록 하라.”

- 『도원기서(道源記書)』

 

1875년 10월 18일 해월 신사는 설법제(說法祭)를 연다. 이 자리에서 해월 신사는 모인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천도교회사 초고』에는 이름과 자를 바꿀 뜻으로 강화(降話)의 가르침을 받고, 이 이어, 「용시용활」의 설법 내용도 함께 싣고 있다.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神師이 名字를 改하실 意로써 降話의 敎를 受하시고 仍히 徒弟에게 用時用活의 義로써 說法하시다.

- 『천도교회사 초고(天道敎會史 草稿)』 「지통(地統)」

 

大抵 道는 用時用活에 在하나니 時代와 進化에 應치 못하면 이 死物과 無異한지라. 하물며 吾道의 五萬年 未來를 範圍함이리오. 余이 特히 此 主義를 示기 爲하야 先히 名字로써 此에 對한 萬古의 範을 垂하리라.

- 『천도교서』

이어 해월 신사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용시용활’의 ‘시(時)’ 자를 빌려 최시형(崔時亨)으로 바꾸고, 강수는 강시원(姜時元)으로, 유인상은 유시헌(劉時憲)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인격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렇듯 새로운 인격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름마저 바꾸면서 강조한 ‘용시용활’은 해월 신사의 도(道)에 대한 생각을 잘 나타내는 설법이 아닐 

수 없다. 

단양 사동을 비롯한 송두둑 등은 해월 신사께서 가장 오랜 기간인 10년을 머문 곳이고, 아들 덕기를 낳은 곳이며, 설법제, 인등제, 구성제 

등의 제례를 정하여 동학 교단의 내실을 기한 곳이며, 청수일기(淸水一器)의 제례법을 주창하였고, 「용시용활」의 법설을 펼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단양의 아름다운 산수와 함께 동학이 온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갈 그 준비를 했던 것이다.

사동05.jpg
해월 신사께서는 장정리에 머무시는 동안 청수일기 제례법 을 주창하신다.

 

당시 해월 신사께서 거처하던 집은 지금은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장정리에서 약 100m 들어가면 과수원이 나오고 과수원 밭 자리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단양향토사문화연구회 유지상(충북향토사연구회 부회장) 고문의 제보로 집터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가 과수원 농장을 운영하는 김영식 선생의 말을 녹취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네 분들은 예전부터 이곳을 도사 밭이라 하고, 그분이 자주 다른 지방으로 다녔고 피해 다녔다. 사동이나 다른 쪽으로 도망가는 퇴로인 샛길이 집터 뒤에 있고, 중턱에 위치해 관군이나 누가 오는지 다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얼마 전까지 여기에 샘물도 있었는데, 현재는 덮어버렸다. 창고 지을 때 그릇, 맷돌, 절구 등이 발견되었다.”

해월 신사께서 살던 집터에 대해서는 이후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한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수암 염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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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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