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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무성한 잎 울긋불긋 말라 후더덕 떨어져 앙상한 자리, 붉은 감 홍시 찬연히 자태를 뽐내는 늦가을.
이곳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고성산 정상에, 1894 동학농민혁명 영호도회군들은 일본군에 쫓기고 쫓겨 절벽까지 내몰려 쫓기고 쫓기고 또 쫓기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했던 동지들의 주검 위로 차곡차곡, 오갈 데 없는 단말마 외마디 비명이 넘었고, 그리운 이들의 엇갈린 생사로 산천의 서슬은 바위 절벽 꽁꽁 언 골짜기 바람으로 남아 131년이 지난 오늘도 휘휘 돌아 비바람에 고시랑거리는 초목으로 스며들었다.
목숨을 다 바쳐 산화하신 하동 고성산 동학혁명군 추모위령식을 돌아보면,
3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의 손길이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의 위령식이 있었다.
오랜 세월 만고풍상 겪은 동학혁명 위령의 길 위에 선 오늘.
모든 설움과 굴욕을 너머 함께하는 동학도인들의 모습에도 길고 긴 세월의 서리가 소리 없이 깊은 감응으로 다가왔다.
131년 전 전라에서 충청, 경기·강원, 경상, 북쪽에서…
또 그 이전 154년 전 영해에서 붉디붉은 꽃으로 산화하신 동학혁명군들의 성령과 함께 오늘의 시간이 하얗게 빛이 되어 빛났다.
눈부신 가을빛, 코발트 청명한 남빛 하늘바다.
노랗게, 선홍 감빛으로 물든 꽃보다 예쁜 단풍.
겨울마중의 길목에서 깊은 샘물처럼 솟는 천어(天語)를 되뇌인다.
“이제, 대한민국은 동학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지역에 국한된 한정적인 기억 공간이 아닌,
대한민국이 동학의 기억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세계인들이 경외하는 대한민국,
K-민주주의의 원형은 바로 동학민주주의가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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