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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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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

성진 고종호 作

  • 편집부
  • 등록 2025.10.31 10:52
  • 조회수 14,319
  • 댓글수 0

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


함백산 그늘 깊은 곳,

눈 쌓인 적조암의 토굴에

관솔불이 흔들렸다.

 

그곳에 해월이 오시니

하늘과 땅이 한 호흡으로 고요해지고,

도접주 유시헌은 그 뒤를 따랐다.

 

세상은 어지럽고,

사람의 길은 잿빛으로 흐르던 때,

그들은 오직 기도로 길을 찾으려 했다.


“하늘은 사람 안에 계시니

스스로 한울을 모시라.”


해월의 음성이

바위 틈새로 스며들자

산조차 숨을 죽였다.


유시헌은 무릎을 꿇고

세상과의 인연을 내려놓았다.

그의 이마 위로 내리는 눈발이

참회의 눈물인 양 흩날렸다.


새벽마다 향을 사르고

49일의 숨결을 쌓아 올릴 때,

기도는 바람이 되고

바람은 빛이 되었다.


전세인, 젊은 사서가 붓을 들었다.

그는 말보다 조용히,

그러나 떨리는 손끝으로

그들의 말씀을 적어 내려갔다.


그 글줄마다

하늘과 사람이 만나는 자취가 깃들었으니,

견봉날인

훗날 세상은 그것을

최선생 도원기서라 불렀다.


사십구일째 되는 날,

태백산맥의 줄기 함백산의 하늘이 열리고

여덟 마리 봉황이 내려와각기 빛을 품었다.


그 빛이 사람의 심장을 스치자

기도하던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하늘의 색으로 번졌다.


해월은 말했다.

“하늘의 뜻은 나뉘지 않는다.

사람마다 그 빛을 품을 뿐이니,

그대 또한 한울의 사람이로다.”


유시헌은 그 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삶으로 도를 행하겠습니다.”

그 말이 눈발 속에 사라질 때

적조암의 종이 울렸다.


눈꽃이 천의봉을 덮고

은빛 고요가 산을 감싸며

세상의 소리가 잠들었다.


해월은 조용히 읊조렸다.

“도는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속이 곧 하늘이니라.”


그 말씀에 전세인의 붓이 멈추었다.

그는 눈물로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하늘은 사람 안에 있고,

그 뜻은 사랑으로 흘러나온다.’


세월이 지나 산은 그대로이되

적조암의 돌벽에는

그날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다.


전세인은 노년의 손으로 말했다.

“그 기도는 세상을 위한 등불이었고,

그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적조암의 새벽,

누군가 종을 울리면

봉황의 노래가 다시 들린다.

어두운 마음에 빛을 밝히라 

그곳에 하늘이 열리리라.


 

글쓴이

성진 고종호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정선의 정신을 동학에서 찾아야겠다고 자각하고 정선동학선양회를 조직했다. 유시헌의 증손, 동학난중기 등을 개발하며 정선동학의 기초를 이루었으며,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동학에의 열정을 살려 동학아리랑을 새로이 개발, 제작하고 있다. 이 시는 해월 최시형과 도접주 유시헌이 정암사 적조암 토굴에서 드린 49일 기도를 기록한 사서 전세인의 『최선생도원기서』를 바탕으로 적조암을 세 차례 답사한 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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