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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2일

기사입력 2025.09.22 15:03 조회수 9,232 댓글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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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_Petit_Journal_7_Oct_1906.jpg
    1906년 10월 7일 자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 표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을 묘사하고 있다. 

     

    ○ 1906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인종 폭동 발생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백인과 흑인 간의 대규모 충돌로 2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차별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사건 이후 흑인 사회는 언론과 교육을 통한 권익 신장 운동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민권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 1937년, 중국, 제2차 국공 합작 선언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항일전선 구축을 위해 ‘제2차 국공 합작’을 선언했다. 양대 세력은 내전을 중단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로 합의하였으며, 이후 중일전쟁의 향방과 중국 현대사 전개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합작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갈등으로 치달으며, 해방 후에는 국공내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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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제헌국회 본회의 장면. 친일파 청산을 위한 법 제정은 해방 이후 국민적 염원의 표현이었다. 

     

    ○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배신한 친일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공포되었다. 해방 이후 정의와 역사적 청산을 향한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법이었으나, 냉전 구도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아쉬운 역사를 남겼다. 그렇더라도 이 법은 훗날 역사 정의와 과거사 청산 논의가 이어지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 1966년, 국회의원 김두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 투척

    국회의원 김두한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독특한 정치 행보로 유명했던 김두한의 행동은 당시 정치적 혼란상과 의회 민주주의의 미숙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이 사건은 국회 회의록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이색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크기변환]Iranian_soldiers_in_the_Iran-Iraq_War_(14).jpg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부상으로 후송 중인 이란 병사. 

     

    ○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중동 현대사의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가 시작되었다. 8년간 이어진 이 전쟁은 국경 분쟁과 종교, 민족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석유 자원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리며 국제 정세에도 큰 파문을 불러왔다. 전쟁은 결국 양측 모두에게 뚜렷한 승리를 안겨주지 못한 채 휴전으로 끝나 ‘승자 없는 전쟁’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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