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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 신사의 삶과 사상을 되새기다포스코와 포스코 휴먼스가 후원하고 (사)일월문화원이 주관하는 “2025 해월문화제”가 오는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포항에서 성대히 열린다. 학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질 이번 행사는 동학 2세 교조 해월 최시형 신사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고, 지역의 역사적 자산을 재발견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전망이다. 첫 행사인 “해월과 일월동행 전시회”는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며, 해월신사의 사상과 생애를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가 마련된다. 시낭송, 해월 초상화 그리기 대회 수상작 전시, 해월순례길 소개, 해월 도피 35년의 여정, 어린이를 위한 체험형 콘텐츠, 해월 어록 서예전, 인장 체험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5월 30일에는 포항복합문화센터에서 학술 세미나가 열린다. 백승종 교수는 ‘21세기 한국을 위한 동학의 가르침’을 주제로 해월신사의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하고, 도종환 시인은 ‘동학과 어린이 운동’이라는 주제로 인간 존엄과 어린이 권리에 대한 동학의 가치를 조명한다. 김상백 포항시의원은 ‘검등골 사적지 지정’과 관련한 지역 역사 보존의 중요성을 강연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이동초등학교 배꽃 어린이합창단의 축하공연도 함께 마련돼 문화와 교육의 만남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문화기행 프로그램으로는 포항문화예술회관을 출발해 천곡사, 해월어록비, 동학 16접주 임명지, 냉수리 신라비와 고분 등을 탐방하는 유적지 답사가 계획돼 있으며, 포항시산림조합 숲마을 야외공연장에서는 숲속 음악회가 개최되어 자연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6월 1일에는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해월순례길 걷기’ 행사가 진행된다. 검등골에서 해월어록비까지 약 10km의 순례길을 걷는 이 행사는, 총 61km에 이르는 ‘해월순례길’ 중 일부 코스로, 지난해 11월부터 일월문화원 회원들이 직접 사전 답사를 거쳐 표지판 6개와 이정표 100여 개를 설치하며 개척한 길이다. 사단법인 일월문화원에 지속적인 자문을 해온 천도교중앙총부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은 “해월신사님께서 걸어가신 지고한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동학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창립된 일월문화원(김혜경 원장)은 전통문화 전승, 문화유산 보호, 인문학 강의와 문화교실 운영 등 지역문화 활성화에 앞장서며, 동학사상의 현대적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천도교 전용서체 개발 완료…천도교중앙총부에 전격 기증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주관하고 천도교동두천교구와 대동교구가 앞장선 천도교 전용서체 개발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천도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사상을 담은 「수운천도본체」와 「수운천도각체」 한글 전용서체 2종(총 4타입)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 5월 21일, 해당 서체들은 천도교중앙총부에 정식으로 기증되었으며,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측은 서체에 대한 저작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중앙총부에 전면 양도하였다. 이로써 서체는 천도교 내 각종 출판물, 교육자료, 디지털 콘텐츠 등에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번 서체 개발은 천도교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대중과의 소통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특허 신청을 위한 디자인 서류 역시 5월 말까지 중앙총부로 전달될 예정으로, 법적 보호를 위한 절차도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다. 서체개발을 주도한 강정환 동두천 교구장은 “민족 문화의 뿌리를 잇고, 신앙 공동체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스승님의 가르침이 담긴 용담유사의 가치를 재조명, 대중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종교적, 문화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서체개발에 일반인 13분 포함 88분이 후원해 주셨고, 성강현 대동교구장, 김성수 마산교구장, 안춘보 수원교구장, 김대석 동천교구장, 최행룡 옥구교구장 그리고 많은 동덕분들의 지지와 격려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강정환 동두천교구장님의 봉사와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수운천도체 개발 취지처럼 포덕을 위해 널리 잘 활용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정윤택 서울교구장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일을 착안하고 헌신적으로 추진해 오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발언하였다. -
천도교여성회, 포덕 166년 상반기 금요강좌 및 주말수련 시작천도교여성회가 포덕 166년 상반기 금요강좌와 주말수련 프로그램을 오늘(5월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리와 역사에 대한 심화 학습과 신앙 수련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로, 천도교 교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금요강좌 제1강은 이날 오후 2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열리며, 윤태원 신인간사 대표가 「천도교 교헌 톺아보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이후 2강부터는 혁암 김혁태 종학대학원장이 연단에 나서, <해월신사의 꿈>, <해월신사의 사명의식>, <해월신사의 교훈> 등 해월 신사의 사상과 영성을 6월 20일까지 4주에 걸쳐 조명할 예정이다. 금요강좌와 병행해 주말수련도 진행된다. 5월 23일부터 7월 11일까지 매주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총 8주간 이어지며, 장소는 서울 우이동에 위치한 여성교육복지관이다. 참가 신청은 방자명 포덕부장(010-8593-6383) 또는 임남희 조직부장(010-6726-4402)에게 문의하면 된다. 천도교여성회 관계자는 “이번 강좌와 수련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교인에게 열린 자리이며, 남성 동덕 여러분의 참여도 적극 환영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한울님의 은덕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자료제공 : 천도교여성회 -
천지이기 p.246~247 -
천도교동두천교구,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개관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아동문화운동을 이끈 소파 방정환 선생의 뜻을 기리는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난 5월 22일 오후 2시, 동두천 지역에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은 천도교동두천교구 주최, 천도교중앙총부 후원으로 성대하게 개최되었으며, 지역사회와 천도교 관계자, 시민들이 대거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청수봉전, 심고, 참석자 소개, 인사말, 축사, 폐식 순으로 이어졌으며, 2부에서는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바리톤 강신택, 소프라노 남상임, 테너 이정현, 피아니스트 양해나 등이 참여해 <산촌>, <눈>, <가고파>, <뱃노래>, <꽃구름속에>, <거문고 뱃노래>, <사랑가(오페라 춘향전 중)> 등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축사를 맡은 준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은 “작은 도서관 운동의 뿌리를 찾아보면 천도교와 닿아있다”며,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도로 창설된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고, 1922년에는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령은 이어 “색동회 창립, 아동 예술 강습회 개최, 기관지 『어린이』 창간 등 천도교는 아동문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며, “오늘 개관한 소파 방정환 색동도서관은 역사적, 종교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곳이 동두천 지역의 어린이 문화 활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정환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관장은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망과 꿈을 전하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셨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다양한 멀티미디어 교육 콘텐츠도 개발해 동두천이 미래 청소년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기업들과 함께 청소년들이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어린이 인권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천도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향후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어린이 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교령사 -
한일중 청년들이 함께 여는 3국 협력의 내일외교부는 「제12차 한일중 대학생 외교캠프」를 5.19.(월)-22.(목) 서울과 강릉에서 개최했다. 금번 캠프에 참가한 한국‧일본‧중국 대학생 45명은 5.19.(월) 외교부 대강당에서 개최된 개회식 참석 후 3박 4일간 서울과 강릉 일원에서 △3국 협력 아이디어 발표회 △청년선언문 작성 △3국 외교관과의 대화 △문화시찰 △산업시찰 △폐회식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상훈 아시아태평양국장은 개회사에서 3국 협력이 1999년 3국 정상간 조찬회동에서 시작되었듯 참가자들이 이번 캠프에서 3박4일간 다양한 일정과 숙식을 함께하며 3국의 미래 협력을 위한 상호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희섭 한일중3국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은 축사에서 3국 청년 간 교류는 3국 협력의 미래 발전 기반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하고, 외교캠프를 통해 풍성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5.22.(목) 개최된 폐회식에서 참가자들은 3국 청년선언문을 발표하여, 향후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를 이어나감으로써 3국 청년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3국 협력 증진을 위해 노력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협력의 토대를 남기기 위해 책임있는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을 다짐했다. 참가자들은 금번 외교캠프가 한일중 3국 청년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3국 외교관과의 대화, 산업시찰, 문화시찰, 토론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3국 간 협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외교캠프와 같은 교류의 장이 지속되어 3국 청년 간 신뢰와 우정이 한층 더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012년 이래 올해 12회째를 맞이하는 한일중 대학생 외교캠프는 3국의 청년들이 3국 협력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왔다. 외교부는 앞으로도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소통하며 우호를 증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미래지향적인 3국 협력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갈 것이다. 출처 : 외교부 -
주한 외국인 콘텐츠 창작자, 한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세계에 전하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체부)는 주한 외국인 콘텐츠 창작자들이 한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이를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6월부터 11월까지 ‘2025 유네스코 문화유산 및 명소 탐방’ 행사를 총 5회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정읍과 부산, 경기도 광주·수원, 여수, 평창 등 다양한 지역을 방문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현재 한국의 유산으로는 세계유산 16건, 인류무형문화유산 23건, 세계기록유산 20건 등이 등재되어 있다. 문체부는 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누리소통망(SNS) 활동이 활발한 주한 외국인을 선발해 탐방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전 세계로 확산할 예정이다. 6월 정읍과 부산을 시작으로 11월 평창까지 ‘한국의 보물을 열다’ 이번 탐방 행사에서는 ‘한국의 보물을 열다(Unlock Korea’s Treasures)’를 주제로 하여 6월 정읍과 부산을 시작으로, 9월 경기도 광주·수원, 10월 여수, 11월 평창까지 한국 곳곳에 숨겨진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난다. ▴정읍에서는 무성서원을 찾아 한국 성리학의 역사를 배우고,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민중의 저항정신을 기린다. ▴부산에서는 한국전쟁기 피란 수도의 역사적 장소들을 방문하고, 감천문화마을의 다채로운 풍경을 영상에 담는다. ▴광주와 수원에서는 남한산성과 화성을 탐방하며 유적지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여수에서는 세계기록유산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이순신 장군의 삶과 조선 해전의 역사를 배우고, 여수 밤바다의 낭만적인 풍경과 갯벌 체험을 즐긴다. ▴평창에서는 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여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김장 문화를 체험하고 조선왕조실록박물관과 광천선굴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회차별 탐방 내용 기록 영상과 문화유산 기획 영상 제작해 확산 문체부는 회차별 탐방 내용을 기록한 영상을 ‘코리아넷’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GatewayToKorea)에 게재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특별 기획 영상도 함께 제작해 우리 문화유산의 전 세계 확산에 나선다. 탐방 행사 일정과 참가자 모집 관련 내용은 공식 누리집(https://www.heritageinkorea.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한국에 오래 거주한 외국인들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배울 기회는 많지 않다.”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그들이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직접 경험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홍보대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
통일포 3개 교구 합동 시일 및 선열 위령식, 아산교구 공원묘역에서 봉행통일포 소속 마포교구, 아산교구, 의정부교구는 포덕 166년 5월 11일(양력 2025년 5월 11일), 아산교구 공원묘역에서 합동시일과 선열 어르신들을 기리는 위령식을 함께 봉행하였다. 이번 합동 시일은 세 교구가 뜻을 모아 교구 간 유대를 다지고, 선열들의 은덕을 기리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시일식에 앞서 참석자들은 고(故) 혁암 조기주 종법사님의 묘소와 3.1운동 순국선열이자 국가유공자인 故 서봉국 선생의 묘소, 그리고 아산교구 선열님들의 묘소를 참례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천도교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겼다. 아산교구는 이날 참석한 동덕들을 위해 공원에서 정성껏 점심을 준비해 따뜻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아산교구 공원묘역은 1세대 어르신들께서 직접 산을 매입해 묘지를 조성한 후, 3대에 걸쳐 꾸준히 정비와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날 참석한 동덕들은 “이처럼 선열의 뜻을 이어 묘역을 가꾸어 가는 아산교구는 천사님의 은덕을 듬뿍 받은, 참으로 행복한 교구”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행사는 교구 간의 화합은 물론, 천도교 신앙의 뿌리와 선열의 정신을 계승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며, 참석자들 모두가 새로운 다짐과 함께 돌아가는 감동의 자리가 되었다. 사진 및 자료제공 천도교마포교구 -
천도교와 3·1운동(4) 성사께서 수련생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는 가도화순에 있는 것이다."『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 이어) 3회 수련생 중에서 순창에서 참가한 지동섭 교구장과 성사님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었다. 문 : 대신사님께서 다시 출세하신다 하니 사실입니까? 답 : 성령으로 출세하실는지 육신으로 출세하실는지는 말할 수 없으나 다시 출세하실 것만은 분명하니라. 문 : 그러면 누구나 뵈올 수 있습니까? 답 : 정성이 지극하면 뵈올 수 있느니라. 문 : 그때가 언제쯤 되겠습니까? 답 : 이번 49일 기도를 마치는 날쯤이면 출세하실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육신으로 다시 출세하는 것은 천하에 없는 일이니 육신출신이야 바랄 수 있겠느냐마는 설사 육신으로 출세할지라도 그대의 수련이 부족하면 대신사를 뵈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신사의 출세 여부는 그대들의 수련 독실여부에 있는 것이니라. 제4회 49일 특별수련 기간 : 1913년 4월 6일~ 5월 24일 포덕 54년(1913) 4월 6일 성사 지방두목 49인을 선발하여 봉황각에서 제4회 특별연성을 49일간 실시하였다. 전국 37개 교구에서 대교구장 5명, 교구장 33명, 연원주 2명, 총부임원 5명, 교구임원 4명 등이 참가하였다. 수련생 명단 姜興龍, 全基善, 金命俊, 金福倫, 金泗振, 金成立, 金龍煥, 金義泰, 金重華, 金昌錫, 金處吉, 金處聲, 金春軾, 金顯龜, 羅元經, 羅宗善, 文吉鉉, 文哲模, 朴旺植, 朴瀅錫, 白洛龍, 邊應燦, 宋斗玉, 申相熙, 辛精集, 申泰天, 安國鎭, 安命錫, 嚴鍾晟, 吳基弘, 李圭植, 李大源, 李星九, 李龍吉, 李寅祥, 李楚玉, 林復彦, 全鍾浩, 鄭桂瑾, 鄭履河, 鄭泰僑, 鄭惠南, 羅珽翼, 趙鍾鳳, 車聖翁, 韓祥翊, 韓承祿, 黃河湜. * 1명 확인미상 이때 성사께서 수련생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는 가도화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사께서 역설하신 것이니 수도의 극치는 부화부순이다. 천하 대사는 다를지언정 가정에서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아무리 성인이라도 죽기 전에는 그 인격과 명예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이요 큰 성인은 큰일을 당하여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인간생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니 첫째는 사상생활이요, 둘째는 학문생활이요, 셋째는 노동생활이다. 그 중에서 사상생활 하는 사람은 능히 학문생활 하는 사람과 노동생활 하는 사람을 부릴 수 있으나 노동 생활하는 사람은 학문생활 하는 사람과 사상 생활하는 사람을 부릴 수 없는 것이다. 난세에는 이것이 바뀌기 때문에 민생이 도탄에 드는 것이니라” 하셨다. 제 5회 49일 특별수련 수련기간 : 1913년 10월 1일~11월 18일 포덕 54년(1913) 10월 1일 지방두목 105명을 선발하여 제5회 특별연성을 봉황각에서 49일간 실시하였다. 5회 특별수련은 전국 59개 교구에서 대교구장 6명 교구장 53명, 연원주 26명, 교구임원 11명, 총부임원 7명, 기타 2명이 참가하였다. 수련생 명단 姜文雍, 權衡重, 奇 順, 金庚咸, 金光翰, 金基洪, 金吉鵬, 金洛疇, 金斗華, 金斗煥, 金得運, 金得弼, 金明厚, 金命熙, 金炳烈, 金秉俊, 金炳燻, 金奉涉, 金鳳華, 金相鼎, 金泳夏, 金應祿, 金正淡, 金鼎參, 金定鎰, 金鍾黃, 金中祿, 金志濂, 金鎭璇, 金昌德, 金昌道, 金澤瑞, 金學周, 金孝珍, 朴基伯, 朴魯輝, 朴三元, 朴昇敏, 朴昇鄴, 朴容順, 朴仁坤, 朴宗勳, 朴燦洙, 方鎭垣, 裵世昌, 裵龍國, 裵元鶴, 白性淵, 徐相河, 孫應奎, 宋奉元, 申明熙, 安 鍾, 安鳳河, 安承煥, 安永錫, 吳俊泳, 柳炳順, 柳義烈, 柳志觀, 尹基浩,尹泰弘, 尹和守, 李 英, 李達海, 李大秀, 李德善, 李炳基, 李壽榮, 李昇泰, 李洙馹, 李昇夏, 李有祥, 李義達, 李春浩, 李興龍, 林根泰, 朴尙烈, 林承泰, 林寅煥, 張世華, 張信德, 張雲龍, 全奎河, 金時弘, 鄭相悅, 鄭容鎭, 趙東龍, 朱昌鍵, 崔炳勳, 崔承周, 崔安國, 崔致淳, 崔學承, 韓炳順, 韓錫敏, 韓榮泰, 韓五俊, 韓龍浩, 韓仁璜, 韓致雲, 許炳周, 洪命植, 洪淳杰, 黃己㭦 성사께서는 5회 수련에서도 이신환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누누이 이신환성에 대하여 말하였거니와 성령은 불생불멸하므로 기수(氣數)가 능히 제어하지 못하였거니 진실로 오는 화를 면하고자 하면 성령과 육신을 바꾸어 믿는 데 있느니라. 성령과 육신을 바꾸어 믿는 방법은 육신관념을 끊어야 하나 육신관념을 끊으려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육신관념을 끊으려고만 생각지 말고 일거일동에 누가 능이 나로 하여금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움직이게 하는가 하고 이것을 오늘도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하면서 적극적인 공부를 계속하면 자연히 성령이 주체가 되고 육신이 객체가 되어 위로는 대신사와 같이 대각이 될 것이요 아래로는 가히 육신의 화를 면할 것이니라.” “또한 오늘의 일은 국가의 일이거나 교회의 일이거나 오늘에 있는 우리들이 해야 될 것이 아닌가. 사람은 큰일을 하려면 먼저 종교적 수련이 있어야 하나니 종교적 수련이 없으면 한울님의 감응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한울님의 감응을 받으면 만리만사가 무위이화로 되는 것이요 한울님의 감응을 받지 못하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오관에 대하여 말씀 하시기를, “오관 중 주문, 청수, 시일, 기도는 정신적 헌성이요 성미는 물질적 헌성이기 때문에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도 각자 먹는 그대로 매끼 때마다 거짓 없이 떠서 소속교구에 바쳐야 한다. 혹 대가없는 것이라거나 풋곡식이나 초근목피를 받는 것이 여름철에 혹 썩을 경우에는 교구나 전교실에서 심고 드리고 수량만 기입하고 정결한 곳에 묻어도 좋다. 세상 사람들은 대가없는 물건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한울님에 드리는 정성은 같은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하지만 성미 뜨는 손은 부지런히 놀려서는 안 된다. 성미 뜨는 주부는 꼭 가족 수대로 한술씩 뜨고 반드시 심고 드리고 또 뜨고 또 심고를 정성으로 드려야 한다. 특히 시일기도는 특별헌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청수와 같이 정미 오홉을 모시는 것인데 기도하는 정성은 소·양 천 마리보다 깨끗한 쌀 한홉이 더 나은 것이니라. 그리고 한울님께 심고하는데도 거짓이 있을 수 없으니 정심과 진심으로 고해야 감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미로 본존하였던 쌀은 한울님께 정성드린 쌀이니 꼭꼭 모아두었다가 귀중하게 사용하든지 부득이 팔게 될지라도 도인에게 팔아야 한다. 그 이유는 혹 부정하게 사용할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기도미 제도를 실시하기는 포덕 52년이었지만 54년에 와서야 오관제도가 완성되었으니 나로서 가르칠 것은 이제는 다 가르쳤다. 수인사대천명이라 하였으니 내가 할 인사는 다하고 이제는 그대들이 수인사를 해야 될 것이다. 이후에 만일 기심기천(欺心欺天)하는 교인이 있다면 한울님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포덕 54년 전에 교인에게 허물이 있다면 그 책임을 전부 나에게 있으나 이제부터는 그 책임이 전부 그대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논학문』에 ‘천지무궁지수(天地無窮之數)와 도지무극지리(道之無極之理)가 게재차서(皆載此書)라 하였거니와 천지무궁수(天地無窮數)를 알려거든 이신환성을 해야 하고 도지무극지리(道之無極之理)를 알려거든 오관실행을 잘 해야 한다.” 제 6회 49일 특별 수련 수련기간 : 1913년 12월 18일~1914년 2월 7일 포덕 54년(1913) 12월 18일 성사께서 지방 두목 105인을 선발하여 제6차 특별연성을 봉황각에서 49일간 실시하였다. 전국 65개 교구에서 대교구장 4명, 교구장 43명, 연원주 30명, 교구임원이 17명, 총부임원 10명, 기타 1명이 참가하였다. 수련생 명단 賈榮魯, 姜極三, 姜丙守, 姜大設, 姜載元, 桂龍彩, 高炳傑, 高龍模, 公禮洙, 具德喜, 具尙周, 權宗國, 金再鎬, 金現龍, 金基秋, 金斗學, 金明鎭, 金文弘, 李秉俊, 金鳳周, 金相設, 金相重, 金演樞, 金永萬, 金永生, 金榮遠, 金應斗, 金應河, 金麟鍾, 金一疇, 金眞善, 金鎭衡, 金致明, 金致松, 金鶴天, 金和日, 魯弘俊, 獨孤煊, 羅柏春, 羅義涉, 明鳳周, 閔泳一, 閔元植, 閔致煥, 朴明斗, 朴禮一, 朴昌烈, 朴弼周, 朴興株, 方振球, 白文選, 白善澤, 白龍承, 白龍繪, 白仁玉, 徐圓朝, 宋繼祚, 宋應株, 申明天, 安斗彪, 梁元魯, 梁元燮, 梁華國, 吳勉秀, 元容乾, 劉信恒, 尹承模, 尹基彦, 尹鶴律, 李啓述, 李德有, 李敏道, 李鳳軫, 李秀屹, 李養培,. 李有楨, 李應華, 李載景, 李載恩, 李正模, 李貞信, 李鎭海, 李學榮, 任東準, 張錫恒, 鄭龍河, 鄭昌國, 鄭學龍, 車洛俊, 崔丹鳳, 崔鳳天, 崔碩燦, 崔承翊, 崔信株, 崔龍基, 崔宗駿, 韓基元, 韓錫均, 韓仁赫, 許奉河, 玄祉誠, 洪 淳, 吳碩恒, 洪淳儀, 黃在國 이때의 법설은 이신환성을 재강조 하였고 아울러 식생활 개선을 역설하시면서 식사할 때 도반기(都飯器)를 사용하여 먹던 음식을 두었다가 먹는 습관을 버리게 하셨다. 제 7회 49일 특별수련 수련기간 : 1914년 4월 16일 ~ 6월 3일 포덕 55년(1914) 4월 16일에 성사께서 지방 두목 105인을 선발하여 봉황각에서 7회 49일특별연성을 실시하였다. 이번 수련에도 전국 58개 교구에서 대교구장 4명, 교구장 33명, 연원주 32명, 교구임원 19명, 총부임원 10명, 기타 7명이 참가하였다. 수련자 명단 姜善汝, 姜極三, 姜元弼, 桂英宣, 高處雲, 孔達斌, 弓尙元, 權思仁, 金光洙, 金德華, 金道俊, 金道鉉, 金孟欽, 金文彦, 金炳建. 金炳麟. 金炳勳, 金鳳德, 金鳳模, 金仕傑, 金泳珣. 金泳柱, 金容文, 金龍雲, 金允河, 金應洙, 金載珍, 金周煥, 金鍾元, 金昌植, 金昶植, 金忠侃, 金致官, 金致郁, 金學斗, 金瀅模, 金興烈, 羅炯泰, 文成實, 文七運, 朴 英, 朴炳協, 朴鳳儀, 朴龍熙, 朴正侃, 朴燦洙, 白龍燮, 邊貞薰, 徐仁和, 孫東七, 申東錫, 申碩浩, 申龍柱, 申仁敬, 安 鎌, 安初炫, 嚴正柱, 吳琯翊, 吳允景, 吳俊得, 吳昌燮, 元明濬, 劉公樂, 柳遠台, 劉宗烈, 劉昌源, 劉化仁, 尹大植, 尹秉贊, 尹雲靑, 尹興華, 李寬述, 李德源, 李東洙, 李秉健, 李炳雲, 李鳳震, 李三甲, 李成敎, 李用甲, 李貞燧, 李禎華, 李鍾現, 李昌俊, 李昌煥, 李泰仁, 李鶴年, 李紈胃, 張啓俊, 張壽憲, 鄭養魯, 趙京淳, 趙德龍, 崔信乙, 崔榮植, 崔宗涉, 崔宗河, 崔宗禧, 崔周洪, 崔贊九, 崔弘善, 卓千鳳, 韓應澤, 許 鍍, 許俊敬, 이상과 같이 포덕 53년(1912) 4월 14일부터 포덕 55년(1914) 3월 25일까지 3년 동안 7차에 걸쳐 전국에 대교구장, 교구장, 연원주 등 중요 교역자를 차례로 49일 독공수련을 실시하였는데 후일 우리 천도교가 기미 3.1운동과 민족독립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봉황각 연성수련이 그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교구임원 : 포덕사, 금융원, 순회교사, 공선원, 전교사, 의정원, 의사원 전제원, 강도원, 당 상무 연원관계 : 접주, 수접주, 대접주, 부령, 봉훈, 교훈, 도훈 총부임원 : 도사, 종리사, 종법사, 경도사 무교직 : 교직을 알 수 없거나 평교인 제1회 연성자 21인 포덕53.4.15 - 49일간 (참고서적 정리 요) 1 구창근(具昌根)전주 명암(溟菴) 대교구장 약사, 55,8 2 김병태(金炳泰)강진 농암(農菴 도사,대교구장 창건록 3 라인협 (羅仁恊) 성천 홍암(泓菴) 대접주,대교구장 창건록 40 4 박문화(朴文華)진천본암 교구장 약사, 55,7 5 박용태(朴瑢台)서산涇菴 대교구장 약사 47.12 6 박준승(朴準承)장성沘菴 대교구장 약사 55.7 7 오영창(吳榮昌) 서흥장암 대교구장 약사 47.12 8 이병춘(李炳春)전주풍암 교구장 창건록 583 9 이승우(李承祐) 횡성승암 대교구장, 포덕사 창건록 233 10 이정석(李鼎錫곡산柏菴 교구장 약사 55.7 11 이정점(李貞漸)태천楠菴 대접주 창건록527 12 이종석(李鍾奭)수원동암 대교구장 약사 47.12 13 이채일(李采一)영천휘암 교구장 창건록497 14 임예환(林禮煥)중화淵菴 교령, 교구장 창건록577 15 전희순(全熙淳)진주구암 대교구장 창건록487 16 정계완(鄭桂玩)경성성암 대교구장 약사 47.12 17 최주억(崔周億)상원樂菴 교구장 약사 55.7 18 한태훈(韓泰勳)선천포암 도훈 약사48.1 19 한현태(韓賢泰)선천柱菴 의정원 약사48.1 20 홍기억(洪基億) 용강壽菴 대교구장 창건록381 21 홍기조(洪基兆)용강游庵 대교구장 창건록381 제2회 연성자 49인 포덕 53년 8월 15일 - 10월 2일 1 강봉수(姜琫秀)장흥泰菴교구장 약사 55.7.1 2 길학성(吉學晟)영변得菴대교구장 약사 62.7 3 김명선(金明善)영변敬菴대교구장 창건록 118 4 김병주(金炳柱)평강植菴대교구장 창건록 131 5 김봉년(金奉年)전주權菴대교구장 약사 55.7.1 6 김수옥(金洙玉)평양佛菴대교구장 창건록 455 7 김승주(金承周안악根菴대교구장 약사 55.7 8 김안실(金案實)안주楹菴대교구장 약사 55.7 9 김연구(金煉九)태인徑菴교구장 약사 55.7.1 10 김영언(金泳彦)중화枰菴대교구장 약사 55.7.1 11 김종범(金宗範)벽동一菴교구장 창건록 514 12 김진팔(金鎭八)정주材菴대교구장,대접주 창건록 301 13 박낙양(朴洛陽)광주益菴대교구장 약사 47.12.6 14 박인각(朴麟珏)후창접주 창건록 52 15 박화생(朴花生)임실沁菴교구장.경도사 약사 62.12.12 16 방기창(方基昌)맹산老菴교구장 창건록 323 17 방찬두(方粲斗)송화汕菴대교구장 약사 47.12.6 18 백영노(白永魯)철원厚菴교구장, 교훈 약사 55.7.1 19 신광우(申光雨)성주凌菴대교구장 약사 55.7.1 21 오명운(吳明運)의주重菴교구장 창건록 34 22 우세하(禹世夏)용천근암교구장 약사 63.10 23 유계선(劉啓善)평양길암포덕사.의사원 약사 65.12 24 윤병설(尹炳卨)초산 교구장 25 이군오(李君五)선천 睦菴 대교구장 약사55.7 26 이기완(李岐琓)함흥梧菴교구장 약사 55.8 27 이돈하(李燉夏)성천楟菴대교구장 창건록 407 28 이동구(李東求)횡성 의정원 약사62.7 29 이상우(李祥宇)은진湖菴대교구장 약사 47.12.6 30 이용의(李龍儀)당진 교구장 약사 52.1 31 이유년(李有年)북청삼암대교구장 약사 47.12.6 32 이정화(李晶和)평양起菴수접주 창건록 463 33 이종수(李種秀)구성桄菴대교구장 창건록 243 34 임래규(林來圭)태인洞菴대교구장 약사 47.12.6 35 임영수(林永秀)용천格菴대접주 창건록 75 36 장남선(張南善)익산溱菴대교구장 약사 55.7. 37 장승관(張承官)안동현校菴교구장 창건록 77 38 정도영(鄭道永)수원枃菴대교구장 약사 55.8 39 정승덕(鄭承德)강서侃菴대교구장 창건록 396 40 정용근(鄭瑢根)익산梁菴대접주 창건록 583 41 주덕인(周德仁)가산존암교구장 월보8-73-40 42 진종구(陳鍾九)용인雄菴교구장 창건록 473 44 최석련(崔碩連)의주順菴도사 창건록 40 45 최영곤(崔永坤)철산桓菴교구장 창건록 65 46 한관진(韓寬珍)강동樹菴대교구장 약사 55.7 47 한세교(韓世敎)수원謙菴교구장 약사 55.7 48 홍봉소(洪鳳巢)곽산주암도훈 월보1-7-52 49 황학도(黃學道)평양대교구장 약사.55.7 이하생략. (계속)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근대 시기 천도교와 3.1혁명-근대를 관통한 천도교의 ‘독립정신’(2)본 글은 포덕 164년, 천도교중앙총부 주최로 열린 '동학·천도교 그리고 3·1운동과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3·1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이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지난 호에 이어) 2) 동학농민혁명이 표방한 근대적 평등사상 1864년 최제우가 처형된 후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은 최시형에 의해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으로 더욱 진보하였고, 교세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더욱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사인여천은 말 그대로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고 존중하라는 의미로 시천주 사상보다 더욱 구체적, 적극적으로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사상이다. 종교적 성격이 강한 동학의 평등관이 보다 근대적이고 세속적 의미의 평등관으로 진보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사인여천의 평등관을 공유한 동학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었다. 동학사상의 근대적 성격은 전주화약에서 제기되었던 ‘폐정개혁안’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동학농민혁명에서 농민군이 천명한 폐정개혁안의 조목들이다. 1. 전운소(轉運所)를 폐지할 것 2. 국결(國結)을 하지 말 것 3. 보부상들의 작폐를 금할 것 4. 도내 환전은 옛 감사가 거두어갔으니 다시 징수하지 말 것 5. 대동미 상납 전에 각 포구 잠상의 미곡무역을 금할 것 6. 동포전은 각 집마다 봄, 가을 2냥씩으로 정할 것 7. 탐관오리들을 파면, 축출할 것 8. 임금을 둘러싸고 관직을 팔아 국권을 조롱하는 자들을 모두 내쫓을 것 9. 관장이 된 자는 해당 경내에 입장(入葬)할 수 없으며, .또한 논을 거래하지 말 것 10. 전세는 전례에 따를 것 11. 연호(烟戶)의 잡역을 줄일 것 12. 포구의 어염세를 혁파할 것 13. 보세(洑稅)와 관답(官畓)은 시행하지 말 것 14. 각 고을에 원이 내려와 백성의 산지에 늑표(勒標)하고 윤장(倫葬)하지 말 것 15. 균전어사를 혁파할 것 16. 각 읍 시정 물건들에 대한 분전수세(分錢收稅)와 도가명색(都賈名色)을 모두 혁파할 것 17. 백지 징세와 사전 진결을 거두지 말 것 18. 대원군을 국정에 간여토록 하여 민심이 바라는 대로 할 것 19. 진결(賑結 )을 혁파할 것 20. 전보국이 민간에 대한 피해가 크니 혁파할 것 21. 각 읍 관아에서 필요한 물건은 시가대로 사서 쓸 것 22. 각 읍 아전을 임명할 때 돈을 받고 하지 말고 쓸만한 사람을 택하여 쓸 것 23. 각 읍 이속들이 천금을 축냈으면 그 자만 처형하고 친족에게 징수하지 말 것 24. 묵은 사채를 관장을 끼고 억지로 거두는 일을 금할 것 25. 동학교도를 무고히 살육하지 말며 동학과 관련하여 가둔 이를 모두 신원할 것 26. 京營邸吏料米는 과거의 예에 따라 삭감할 것 27. 포구에서 장사하는 각국 상인들의 동성 시장 출입을 금하고 아무 곳에서나 마음대로 행상하지 못하게 할 것 (1-14조는 「전봉준판결선고서원본」(『동학관련 판결문집』, 총무처 정부기록보존소, 1994), 15-27조는 정창열의 「갑오농민전쟁 연구」(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1, 170-171쪽) 참조. 25-27조는 정창열이 다른 폐정개혁안들을 분석하여 추가한 것임. ) 이들 조항은 세제나 탐관오리의 횡포에 대한 개혁을 주된 내용으로 하며, 심지어 국정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항에는 보국안민, 축멸양왜 등 농민군이 봉기하면서 내세운 핵심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 주로 ‘안민’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확인될 뿐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봉기하였던 2차 봉기의 성격 및 구호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조항은 정부군과 교전하여 전주화약을 맺을 당시 농민군 지도부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차 봉기 시에는 갑오개혁의 영향과 반일, 반외세에 대한 내용이 일정하게 반영되어 있어야만 한다. 농민군의 폐정개혁안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으므로 이들 폐정개혁안은 농민군의 봉기과정을 따라 점차 완성적인 모양을 갖추어 갔을 것이다. 2차 봉기를 앞둔 상황, 즉 갑오개혁의 영향을 받고,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던 시기 동학 집강소의 ‘폐정개혁안’에는 당연히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이나 근대적 개혁의 요소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 내용으로 볼 때 오지영의 『동학사』 (오지영, 『동학사』, 민학사, 1975.)에서 기록된 폐정개혁안 12개조는 반외세와 갑오개혁의 내용이 대폭 반영되어 있으므로 2차 봉기 당시 개정된 폐정개혁안일 가능성이 있다. 이 폐정개혁안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이 직접 기록한 것이므로 충분히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조항에는 2차 봉기에서 목적으로 천명한 척왜에 대한 태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갑오개혁의 영향을 받은 듯한 신분 개혁 등의 조항도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동학사』의 폐정개혁안 12개조의 내용이다. 1. 도인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宿嫌)을 탕척(蕩滌)하고 서정(庶政)을 협력할 것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査得)해 일일이 엄징할 것 3.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를 엄징할 것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배는 못된 버릇을 징계할 것 5.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6.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쓰는 평양립은 벗어 버릴 것 7.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락할 것 8. 무명잡세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9. 관리 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10. 왜와 간통하는 자는 엄징할 것 11. 공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12.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등이다. (이 12개 조의 폐정개혁안은 오지영이 『동학사』에서 가공적으로 만들어 내 신뢰할 수 없다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폐정개혁안 자체는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12개 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장된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가 집약,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영섭(「『(역사소설) 동학사』의 12개조 폐정개혁안 문제」, 『시대정신』 68, 2015, 136-147쪽), 박종근(「갑오농민전쟁(동학란)에 있어서의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역사논평』 1962년 4월호(일본)), 한우근(「동학군의 폐정개혁안검토」(『역사학보』 23, 역사학히, 1964, 55-69쪽) 등이 사료성을 부정하는 연구를 발표하였지만, 12개 조항에는 보국안민, 반외세라는 이들의 봉기 목적에 그대로 부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게 반영되지 못하였다.) 앞서 살펴본 27개조 보다 상당히 정돈이 되었고, 일제에 대한 태도와 갑오개혁의 내용이 일부 반영된 점으로 보아 여러 폐정개혁안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등을 일관되게 표방하였던 동학의 핵심사상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 기록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들 폐정개혁안으로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목표로 하는 사회가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혁파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구현하는 근대적 가치의 사회였음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동학혁명은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의 하나로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평등관이 근대적 형식을 갖추고 근대성을 확보하는 결적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국의 전통사상 속에는 이미 근대의 핵심 가치인 평등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였고, 수운 최제우는 전통사상 속에서 이러한 평등의 가치를 추출하여 주창함으로써 한국이 가야 할 근대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동학의 평등사상이 전국의 민중들에게 급속하게 전파되는 통로가 되었고, 이러한 평등사상의 전파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낡은 신분질서를 급속하게 해체하고 근대민족으로서 한민족의 출현을 촉진하는 교량 혹은 징검다리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근대적 성격은 더욱 심화되었고, 동학혁명이 제시한 근대적 개혁의ㅣ 의제는 이후의 2, 3차 갑오개혁이나 대한제국의 광무개혁에 반영되면서 한국적 근대를 전망하고, 견인하는 핵심 기준과 요소들로 작용하였다. (계속) 글, 장우순(성균관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