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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4일○ 1321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가 세상을 떠남. 피렌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단테는 볼로냐대학에서 수학하고 생 제미냐노 특파대사, 피렌체 통령 등을 역임했다.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인물로, 서양사에 한 획을 그은 이탈리아 문학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사모해온 베아트리체의 영혼에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의 과정을 읊은 『신곡』은 그가 생애 마지막 7년 동안에 완성한 작품이다. ○ 1818년, 다산 정약용(1792~1836), 18년 만에 유배에서 풀려나다. 정약용은 28세 때 대과에서 2등으로 합격해 벼슬길로 나아갔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뜨면서 고난이 시작되어 1801년 신유박해 때 경기도 안성으로,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전남 강진에 유배되었다. 18년의 유배 기간을 자신의 학문을 연마하는 계기로 삼아, 이 기간 중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조선 후기 실학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인물로 꼽힌다. ○ 1920년, 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다. 부산 태생의 독립운동가 박재혁은 의열단원으로서 고서(古書)를 파는 중국인으로 가장하고 부산경찰서에 진입했다. 당시 부산경찰서에는 많은 독립운동가가 투옥되어 있었다. 폭탄 투척으로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 부산경찰서장이 사망하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었다. 체포된 박재혁은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됐으나 “왜놈의 손에서 욕보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라며 단식으로 옥사했다. ○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5개국,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설립하다. 석유 수출국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주기적으로 회원국들의 석유 공급량과 유가를 조정하고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석유 감산 조치로 전 세계적인 석유 파동을 몰고 오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3일○ 1910년, 독립운동가 이재명 사형 집행. 스물세 살의 청년 이재명은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 문밖에서 군밤 장수로 변장하고 벨기에 황제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 안타깝게도 이완용은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고 수술 후 살아남았으나 이재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이날 서대문형무소(당시 경성감옥)에서 순국했다. 이완용은 1926년 68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사인은 폐를 다친 후유증으로 알려졌다. 1909년 이재명이 찌른 칼이 이완용의 폐를 관통한 바 있다. ○ 1971년, 중국공산당 부주석이자 국방부장 린뱌오(林彪),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린뱌오(林彪)는 항일투쟁과 국공(國共) 내전 때 혁혁한 공을 세우고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로 떠오르며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이 되고자 했다. 린뱌오의 야심을 꿰뚫은 마오쩌둥은 린뱌오를 옥죄기 시작했고 위험을 느낀 린뱌오는 소련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비행기 사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암살을 모의한 매국노로 단죄됐고 당적에서도 제명됐다. ○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PIFF,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개막.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목표로, 한국에서 열린 첫 번째 국제영화제이다. 동적인 영화 관람 형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영상문화를 만들고 세계 영화계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작하였다. 제1회 행사의 상영작품은 31개국 169편, 동원 관객은 184,071명이다. -
[칼럼] 수운 대신사 출세 200년 이후 프로젝트지난해 10월 28일 동학을 창명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출세 20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들썩였다. 오랜 준비 끝에 마련한 출세 200주년 기념식에는 성황리에 거행되었다. 각 종단의 성직자와 정부 대표가 기념식에 참석해 동학의 창도와 수운 대신사 출세 20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경축했다. 기념식의 식전과 식후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출세 기념일을 전후해 국제 컨퍼런스가 개최되어 석학의 입을 통해 동학 창도가 지닌 문명사적 의미와 현대 문명이 가진 문제에 해답을 제시하는 수운 대신사의 통시적 혜안과 통찰을 들을 수 있었다. 개벽의 새 길을 연 수운 대신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구체제에 의해 당했던 수난로(受難路) 걷기를 통해 고난과 질곡의 수난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2024년 연말에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 자료집>의 간행으로 출세 200주년 행사가 막을 내렸다. 화려한 출세 200주년 기념식은 끝났다. 1924년 수운 대신사 출세 100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역량을 모아 “수운 대신사 출세 100년 기념관”을 건립해 민족 구성원들을 위한 공회(公會)의 장을 제공한 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화려한 기념식은 끝났다. 기념식이 끝났다고 수운 대신사의 업적을 이 땅에 펼치는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고 넘친다. 이제 출세 200년 이후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수운 대신사 출세 200주년 기념행사의 성과를 확산해 수운 대신사 출세의 의의와 동학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수운 대신사의 일대기를 정리한 전기, 수운 대신사와 초기 동학에 관한 사료를 정리한 자료집,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천도교회월보>와 <신인간>의 수운 대신사에 관한 기사 모음집 등등 수운 대신사와 초기 동학에 관한 저술을 출판해 연구자 및 동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수운 대신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수운 대신사의 저술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 당시의 형태로 재현해 수운 대신사와 동학을 알리는 선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동학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동학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공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래 세대들이 수운 대신사와 동학을 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즐겨하는 웹툰(Webtoon)과 그래픽노블(Graphic Novel), 게임화된 학습 앱, AR/VR 체험 등 미래 세대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손안에서 만나는 동학’을 창출해야 한다. 최근 열린 동학학회 학술대회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게임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이처럼 미래 세대들이 수운 대신사와 동학을 알 수 있게 하는 동영상 제공과 젊은 감각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에 간행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 자료집>에는 수운 대신사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 성과물이다. 특히 자료집의 가장 큰 성과로 수운 대신사의 사적지 조사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수운 대신사와 동학을 알리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자료집을 보면 알겠지만, 수운 대신사의 사적지 가운데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는 곳은 몇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경주 관아의 감옥, 용담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다시 대구 경상감영으로 이송되는 수난로(受難路), 수운 대신사의 마지막 길인 순도로(殉道路) 등에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사람들이 이를 알고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이 한꺼번에 다 하려고 욕심내지 말고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늘려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수운 대신사의 사적이 정비되면 그 가운데 수운 대신사의 수난로를 ‘동학 순례길’로 명명해 순례길로 활용할 수 있다. 동학 순례길을 걸으며 세상 속에서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한울님 마음을 찾는 길을 걷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 땅에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을 잘 실현하고 있는지 살피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수운대신사의 표현으로 각자위심을 벗어나 동귀일체를 실천하는 사람과 단체,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단체 등을 발굴해 알리고 함께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수운상”을 만들어 수여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겠다.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을 일상의 표현으로 하면 “타인을 한울님처럼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를 위해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고 동학의 가치를 펴는 사회적 활동도 전개해야 한다. 아직 이 땅 곳곳에 시천주의 본원적 평등이 실천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을 펼치는 이들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은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며 포덕의 다른 표현이다. 덧붙여 수운 대신사 출세 200주년 행사를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행사 담당자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사의 좋았던 점을 살리고 미비한 점은 보충해 앞으로 있을 행사를 보다 규모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당장 2년 후인 2027년은 해월 신사 출세 200주년이다. 2년 후의 더 나은 행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번 행사를 돌아보는 평가가 요구된다. 여기에 외부 전문가도 참여시켜 귀를 열고 조언을 들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수운 대신사 출세 200주년 이후에 해야 할 프로젝트 방안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이처럼 수운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행사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수운 대신사의 가르침이 여전히 필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글, 성강현(천도교 대동교구장, 동의대학교 강사) *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2일○ 1921년, 의열단원 김익상, 조선총독부 청사에 폭탄 투척. 총독은 죽이지 못했으나 무사히 빠져나와 중국으로 피신했다. 이후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만나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가 상하이에 온다는 보도를 접하고 처단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 총알이 빗나가고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하고 체포당하였다. 21년의 옥고를 치르고 귀향하였으나 일본 고등경찰에게 연행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 1916년, 대종교 교조 나철(1863~1916), 자결하다. 나철은 대종교 창시자이자 을사오적 처단을 시도한 인물이다. 을사늑약 소식이 전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여러 차례 일본에 건너가 국권 수호를 위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 단군신앙을 부흥시켜 대종교라 일컫고 국학운동과 항일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대종교 총본사를 만주로 옮기고 항일투쟁을 계속하다 국내로 돌아왔으나 일제의 무단적 종교정책에 항거하여 자결하였다. ○ 1940년, 프랑스에서 라스코 동굴 벽화가 발견되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프랑스 도르도뉴 몽티냐크에 있는 후기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로, 기원전 17000년~15000년경 크로마뇽인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하였으며, 구석기 시대 인류의 예술성과 신앙,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써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2022년,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인 「오징어게임」이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6관왕에 오르다. 이정재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비영어권드라마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황동혁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다. 이유미가 여자배우 게스트상, 이외에도 시각효과상, 스턴트 퍼포먼스상,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받았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1일○ 1898년, 고종 황제와 황태자 독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다. 함경도 출신인 김홍륙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역관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홍륙은 궁중요리사를 매수해 고종이 즐겨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넣었다. 고종은 이내 맛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금방 뱉었으나 황태자는 단숨에 마셔 평생 건강에 지장을 받았다. ○ 1906년,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1869~1948),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시작하다. 간디는 당시 머물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들이 지문을 등록하고 증명서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차별법에 반대해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 불리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훗날 인도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월 1일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계기로 경술국치와 그로 인한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 주도와 민주공화국 설립을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초대 국무총리로 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결성했으며, 9월 11일에는 이승만을 초대 임시대통령으로,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추대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 1994년, 노태우 대통령,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발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 공동사무처 등이 포함된 남북연합 구성을 그 내용으로 한다. 남북연합은 남북 간 개방과 교류협력을 실현하고 통합의 기반을 조성하는 최고의결기구가 된다. 이후 북측이 남북대화에 호응하면서 양측은 총리급 수석 대표 간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바 있다. ○ 2001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하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D.C.의 펜타곤을 겨냥한 동시다발적 항공기 테러를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약 3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6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 현재까지도 가장 큰 인명피해를 유발한 테러로 기록되고 있다. -
삼혁당 김영원 선생 순국 106주기 추모식, 임실 삼요정(三樂亭)에서 항일독립정신 되살리다지난 포덕 166(2025)년 8월 26일, 삼혁당(三革堂) 김영원(金榮遠) 선생의 순국 106주기 추모식이 전북 임실군 운암면 삼요정에서 열렸다. 천도교중앙총부, 임실군과 지역사회단체 관계자, 유족, 천도교인, 마을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추모식은 선생의 애국 정신과 교육 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였다. 추모식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 행사는 삼혁당김영원선생추모회(이하 추모회) 김태식 사무장의 사회로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김영원 선생 약사 보고 등이 이어졌다. 유족 대표로 나선 김영원 선생의 증손자 김창식 추모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금년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 나라가 있고 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김영원 선생을 비롯하여 선열들의 얼을 잠시나마 기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임실군청 유해수 복지환경국장과 임실군의회 장종민 의장 등이 추모사를 전하며, 선생의 삶과 정신이 지역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2부 행사는 천도교임실교구 윤철현 교구장의 집례로 천도교 의식으로 봉행됐다. 임실교구 최순자 여성회장의 청수봉전에 이어 심고, 주문 3회 병송이 진행됐으며, 집례자는 매 의식의 의미를 행사 참석자들에게 일목요연하게 전달했다. 박인준 교령을 대신해 단상 앞에 선 강병로 종무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선생님의 숭고한 애국혼과 헌신은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며 운을 떼었다. 이어 강 종무원장은 김영원 선생이 “동학농민혁명과 갑진개혁운동에 이어 3·1만세운동까지, 세 번의 혁명을 몸소 체험하셨다”는 점을 강조했다. 선생의 호 ‘삼혁당’은 반봉건, 반외세의 뜻을 담은 이름으로,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치신 증표라는 것이다. 또한 선생이 삼화학교와 창동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고, 천도교 지도자로 박준승, 양한묵 등 제자를 길러낸 삶은 겨레를 위한 참된 사표라고 말했다. “임실은 당시 전라도에서 천도교인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곳이며, 삼요정은 독립운동의 발상지이자 역사 속의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강 종무원장은 이에 덧붙여 “우리는 선생의 천도교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항일독립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사람이 곧 하늘이 되는 세상,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향해 우리 모두 나아가야 한다.”라는 말로 이야기의 방향을 맺었다. 이와 함께 임실군과 지역사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선생의 성령이 우리 민족의 정의와 평화의 길에 함께하길 심고한다”고 전했다. 추모사 후 강병로 종무원장, 유해수 임실군 복지환경국장 등 내빈들의 분향이 이어졌고, 마치는 심고로 2부 행사가 마무리됐다. 김영원 선생(1853~1919)은 조선 말 동학 접주로 시작하여 동학농민혁명, 갑진개혁운동, 3·1만세운동까지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의 선구자였다. 임실 청웅과 전주에서 삼화학교, 창동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활동했으며,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독립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체포되어 옥중 순국함으로써 그의 생애는 항일의 삶 그 자체였다. 삼요정(三樂亭)은 선생이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장소로, 전라도 지역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일제 시절 철거되었지만, 지역사회의 복원 노력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또한 선생이 임실교구장을 하던 임실교당은 천도교 역사와 삶의 공간뿐만 아니라 임실 지역 3.1운동의 중심지로서 종교·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2020년 12월 4일 문화재청에 의해 국가등록문화재 제799호로 지정되었다. 이번 제106주기 추모식은 삼혁당 김영원 선생의 항일독립정신과 천도교의 교육 정신이 현재에도 삶 속에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지역사회와 천도교중앙총부, 임실군의 협력이 기념 공간 보존과 문화재 지정, 교육 현장 활용 등으로 구체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이 주목된다. -
[속보] 법원, 새만금 신공항 ‘제동’…기본계획 취소 판결서울행정법원이 9월 11일 새만금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수립한 기본계획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사업 추진에 큰 제동이 걸리며 향후 정부와 지자체의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천도교한울연대는 종교환경회의 소속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함께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를 위해 활동해왔다. 한울연대는 지난 9일 법원 앞에서 현장 기도회를 열고, “자본이 아닌 생명의 편에 서 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새만금 공항 예정지가 미군이 사용하는 군산공항과 불과 도보 10분 거리로 사실상 중복 투자이며, 활주로 길이가 2.5km로 국제공항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해왔다. 또한 갯벌 생태계 파괴와 조류 충돌 위험, 낮은 사업 타당성(비용편익 분석 0.479) 등을 근거로 전면 백지화를 요구해왔다. 한울연대는 판결 직후 “생명의 편에 선 법원의 정의로운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정부가 판결을 수용해 사업을 완전히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지난 9일 발표한 천도교한울연대의 기도문의 전문이다 < 새만금 신공항 계획 백지화를 위한 기도문> 오늘 우리는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선고를 앞둔 서울행정법원에서 이 법정이, "자본이 아닌 생명의 편"에 서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는 이미 미군이 쓰고 있는 군산공항에서,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입니다. 수천억의 세금을 들여, 굳이 또 하나의 공항을 지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2019년 국토부가 스스로 내놓은 수치, 비용편익 분석 결과는 0.479. 사업 타당성 기준 1.0에도 한참 못 미칩니다. 100원을 투자해 50원의 이익도 얻지 못하는, 실패가 예견된 사업입니다. 더구나 새만금 신공항 활주로 길이는 2.5킬로미터. 국제공항 최소 규격에도 미치지 못하고, 군산공항 활주로보다도 짧습니다. 결국 이 신공항은 군산공항의 확장일 뿐입니다. 한미 SOFA 협정에 따라, 언제든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군사시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습니다. 이 공항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 추진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선 까닭은 단지 숫자와 효율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구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만금의 수라 갯벌에는 법정보호종만 60종이 넘는 생명들이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들의 집을, 우리가 파괴할 권리가 있습니까? 허물어 버린 생태를, 우리가 다시 되살릴 수 있습니까? 해월 최시형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천지이니, 천지부모는 일체니라.” 하늘과 땅이 우리 부모요, 우리는 천지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다양성이 무너진 땅에서 인간만 번영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가 날로 뜨거워지는 오늘, 우리는 50년 뒤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빛의 혁명으로 세워진 이재명 정부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리하게 추진된 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수백 년, 수천 년 뒤까지 내다보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이 땅의 법정에 닿게 하소서. 우리의 간구가 이 나라의 미래를 바로잡게 하소서. 2025년 9월 9일 천도교한울연대 심고 -
박인준 교령, 오는 9월 12일 주낙영 경주시장과 간담회, “경주에서 동학의 미래 밝힌다”중앙총부 박인준 교령이 오는 9월 12일(금) 오후 3시 경주시청 청사에서 주낙영 경주시장과 간담회를 갖는다. 이번 만남은 교단과 경주시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으로 주목된다. 주요 안건으로는 동학교육수련원 수탁 운영 문제, 해월신사 생가 복원사업의 추진 상황, 대신사 태묘 입구 주차장 화장실 설치 여부가 포함되어 있으며, 지역사회와 교단의 실질적 협력이 필요한 현안들이 중심을 이룬다. 더불어 오는 9월 27일 개최될 경주동학문화제 기념식 지원과 협조,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 경주 동학역사문화공원 조성 계획 등도 폭넓게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동학역사문화공원 조성은 경주를 동학 발상지로써 재조명하고, 전국적 차원에서 동학 천도교의 역사적 의미를 확산하는 사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인준 교령은 이를 통해 지역 발전과 더불어 동학 천도교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번 면담은 천도교와 경주시가 동학의 역사와 정신을 공유하며, 문화유산 보존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구체적 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2025년 경주동학문화제, 9월 27일 경주에서 개최천도교중앙총부는 오는 9월 27일(토), 경주동학교육수련원과 용담정 일대에서 ‘2025년 경주동학문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의 부제는 “동학정신 세계화의 비상”으로, 동학의 사상과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고 세계 속에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문화제는 식전공연, 기념식, 축하공연, 비전선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식전공연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공연이 펼쳐지며, 이어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동학정신을 기리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한다. 오후에는 축하공연과 함께 동학정신 세계화를 위한 비전선포식이 이어질 예정이다 경주, 동학의 성지를 배경으로 경주는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활동했던 성지로, 동학교육수련원과 용담정은 동학의 역사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장소이다. 이번 행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동학이 추구했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철학을 현재와 미래 세대에 전승하고 세계 시민과 함께 나누기 위한 의미 있는 자리로 마련된다. 천도교중앙총부는 “동학은 19세기 조선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가치와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번 경주동학문화제를 통해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이라는 비전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번 2025년 경주동학문화제는 동학정신의 현대적 계승과 세계화를 목표로, 경주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시민과 종교계, 문화예술계가 함께 참여하는 뜻깊은 문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서울에서 출발하는 차편은 9월 27일 당일 오전 7시 30분 수운회관에서 출발, 10시 30분부터 경주동학교육수련원 일대에서 행사 부스 운영을 시작하며 기념식은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행사와 관련된 문의는 천도교중앙총부 사회문화관(☎ 02-6488-6831~2, chondosc@daum.net)으로 하면 된다. -
‘포덕’이란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펼치는 일'‘포덕’이란 한마디로 말해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펼치는 일’이다. 흔히 ‘포교(布敎)’와 혼동되지만, ‘포덕(布德)’은 그 뜻이 훨씬 깊고 넓다. 포교가 교리를 전하는 활동이라면, 포덕은 한울님의 덕을 내 삶 속에서 회복하고 그것을 세상에 실천적으로 드러내는 길이다. 천도교에서 말하는 덕(德)은 한울님의 덕을 가리키며, 이는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생명의 본원적 힘이다. 수운 대신사는 동학을 창명한 뒤 먼저 마음공부를 강조했다. “사람은 성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하지 못해 성현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여, 포덕의 근본이 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음을 밝혔다. 즉 한울님의 덕을 회복하는 일은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마음의 공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해월신사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오랜 피신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마음을 닦으며 한울님의 덕을 실천했다.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한울님의 덕과 합일되는 경지를 뜻한다”고 설파하며, 본래의 덕을 회복한 뒤 이를 생활 속에서 드러내는 삶을 살았다. 가난한 농민과 민중 속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며, 한울님의 덕을 실제 삶 속에서 펼쳐낸 해월신사의 행적은 ‘포덕이 곧 생활의 실천’임을 잘 보여준다. 포덕은 내적 성찰과 회복을 바탕으로 한 삶의 확산이다. 오늘날 천도교에서 말하는 포덕은 신앙의 확산을 넘어, 한울님의 덕을 내 안에서 되찾고 그것을 이웃과 사회, 나아가 세계 속에 드러내는 실천을 의미한다. 다시개벽을 향한 천도교의 비전은 바로 이러한 포덕의 정신 위에서 세워져 있다. ※ 참고자료: 윤석산 지음, 『일하는 한울님 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