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 한 줄이 바꾼 삶, 프랑스에서 천도교 꽃피우는 청년 한울님, 한승원 동덕
프랑스 리옹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승원 동덕은 혼자서 『동경대전』을 탐독하다가 천도교의 길에 들어선 특별한 사연을 지닌 젊은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삶의 방황 속에서 새로운 정신적 지지대를 찾던 그는 천도교 경전 속 구절에 깊은 울림을 받고 입교를 결심했다. 현재 그는 프랑스인 아내와 함께 주문을 묵송하며 천도교를 실천하고 있으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현지에 천도교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장기비자 신청을 위해 일시 귀국한 한승원 동덕이 지난 포덕 166년(2025) 9월 28일, 천도교신문 편집국이 있는 신인간사를 방문했다. 다음은 한승원 동덕과의 1문 1답이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편집장)
▶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배경과 현재의 활동에 대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현재 프랑스 리옹에 거주하고 있는 한승원입니다. 본래는 학부 졸업 후 관광업에 종사하려 했는데 한국어 교원이 되고자 마음을 먹은 건 학부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1년간 체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공립 중학교에서 봉사 활동으로 3개월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낀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통해 한국어 교원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고,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국어 교육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석사 취득 후에는 이태원 근처 사립고등학교에서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1년 계약직으로 근무한 후, 감사하게도 계속 그 학교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부 시절 언어 교환 프로그램으로 만난 지금의 제 아내와 교제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상 부인이 한국에 와서 사는 것은 여의치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선택지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혹은 프랑스로 이주 후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선택 사이에서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24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여자친구와 약혼식을 올렸습니다. 물론 아직은 단기 비자만 발급되기 때문에 기관에 소속되어 근무는 하지 못하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소일거리처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비자가 만료되어 장기 비자 신청을 위해 한국에 잠시 체류하고 있는데, 오는 10월 16일, 다시 프랑스에 입국한 후에는 영주권을 얻고 안정적으로 새 삶을 살아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 경전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만들어 가신 경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으실까요?
저는 아주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교회를 굉장히 즐겁게 다니던 기억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생활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열아홉 살 무렵, 신앙생활을 그만두고 강렬한 무신론, 유물론자로 서른 살까지 살아왔습니다. 저는 신보다는 자신을 믿으며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었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는 버릇이었습니다. 저는 운동도 잘 안 하고 흡연도 안 하다 보니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 길이 없었고,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찾던 것이 알코올이었습니다. 이게 한잔 두잔 매일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알코올이 없으면 감정 정리가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연하게도 알코올을 계속 마시다 보니 성격은 더더욱 예민하고 포악해지고, 성격이 예민해지니 스트레스를 다시 폭발적으로 받아 또 과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저는 여자친구와 알프스산맥을 따라서 도보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엄청난 대자연 속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바위보다 작은데, 왜 이렇게 나는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폭발하며 사는 거지? 나는 여태껏 나 자신을 믿으며 산다고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도 폭발하고 마음은 갈대처럼 요동치는데, 이런 나를 믿고 산다는 것은 결국 브레이크가 빠진 자동차를 믿고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게 아닌가?”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올랐고,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피폐해진 마음이 정신적 지지대를 강렬히 요구한다는 하나의 구조신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즉시 저는 여러 종단에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얻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경전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종교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에 와닿는 종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쩌다 보니 『동경대전』까지 읽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정독은 못 하고 훑어보기를 했는데, 「탄도유심급」 장에서 “흐린 기운을 쓸어 버리고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 “남의 적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나의 적은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라”라는 구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구절들이 마음에 확연히 와닿았고 “이런 좋은 말이 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한 자, 한 자 정성껏 탐독하기 시작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이 제가 찾던 그 무언가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 『동경대전』 구절들이 기성 종교 경전처럼 ‘신께서 가라사대…’와 같은 말들만 가득했다면 아마 그대로 경전 읽기를 포기하고 덮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동경대전』은 제가 정신적 지지대와 같은 존재가 절실히 필요할 때, 가장 현실적인 말을 해준 유일한 경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앞으로 삼을 정신적 지지대는 바로 이곳이구나!”
▶ 프랑스에서 생활하시면서 천도교 신앙을 이어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누구의 권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종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홀로 『동경대전』을 접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신앙을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난관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전의 내용이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난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동덕님들이 올리신 해설을 읽어보고, 해의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고, AI의 도움도 받고 또 한자 사전들을 찾아보며 경전 내용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정리된 경전 내용을 그때그때 워드 파일에 기록하고 또 수정해 나가기 시작하며 점차 경전에 대한 저의 생각들도 굳혀나갔습니다. 이렇게 이치 공부를 했습니다.
주문 수련의 경우 아무래도 초심자다 보니 오래는 하지 못하고 밤 10시경 아내와 함께 청수를 봉전하고 마주 앉아 주문을 105회 묵송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치 공부와 주문 수련 모두 누군가의 지도 없이 행한 것이다 보니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번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중앙대교당 시일식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좀 더 발전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실제로 경전을 번역하면서 느낀 보람이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종교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종단에서 다양한 강의를 들으며, 제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을 무언가를 절실하게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저는 『동경대전』에서 크게 느꼈고, 『해월신사법설』까지 넘어갔을 때 이미 저는 일상에서 큰 변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매일 달고 살았던 술은 어느새인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사소하게 짜증을 내거나 화가 폭발하는 나쁜 습관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또 큰 시련이 닥쳐도 ‘풍운기수 수기기국’이라 속으로 말하며, 그저 지금은 쇠하는 시운이니,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겠노라고 생각하며 수심정기를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가장 먼저 저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역시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면서, 혹시 그동안 열중해서 읽던 그 책(『동경대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말했고, 책 내용을 어설픈 프랑스어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대신사님께서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제 부족한 설명도 한몫했겠지만, 일단 천도교가 말하는 그 교리가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기 때문에 제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를 위해 경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설명해주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경전 한 구절, 한 구절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후 그 아래에 해설을 길게 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프랑스인이라 음과 양, 영부, 선약과 같은 동양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고, 해설이나 보충 설명 없이는 한 구절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제 작업물은 공식적인 번역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입문서 내지는 소개 책자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제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은 역시 아내가 그 글을 읽고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였습니다. 아내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와 우주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연결되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내는 여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천도교 경전에서 그 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전을 통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까지 받다 보니, 경전 번역본을 읽고난 아내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덩달아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번역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이라면 역시 언어구조의 차이가 불러오는 번역의 한계입니다. 예를 들어, 원문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프랑스어로 명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굴신동정’, ‘무극대도’, ‘무왕불복’과 같은 말들을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은 원문을 쓰지 않고 최대한 프랑스어로 풀어서 설명하거나 일부는 생략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 작업물을 번역본이라기보다는 해설서 내지는 입문서로 소개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최근 『해월신사법설』과 『의암성사법설』까지 프랑스어 번역을 마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 제 작업을 경전 번역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작업 자체가 아내에게 천도교 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개인적인 해설 노트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인들에게 제가 천도교 경전을 번역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은 안 드리고,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천도교 소개 책자를 만들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원래는 아내에게 『동경대전』 하나만 소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조금 더 욕심이 생겨서 결국에는 『의암성사법설』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거의 다 마칠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이 번역 및 해설 노트를 더 가독성 있게 잘 다듬어 아예 프랑스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입문서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노트도 천도교 초심자인 아내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었기에 그 내용 역시 심오하게 들어가기보다는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천도교가 무엇인지를 가볍게 설명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경전해설서’가 아니라 ‘한국문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충분히 일반인 대상 입문용으로는 적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실제로 아마존(Amazon) 독립출판사 지원 서비스를 통한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작업물이 입문서인 만큼 모든 장을 다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천도태원경」이나 「명심장」같이 국민계몽운동적 성격이 강한 장은 번역을 마치기는 했지만, 최종본에서는 생략했습니다. 현재 원고는 680페이지가량 되고, 최종 출판본의 페이지 수는 이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목표는 프랑스인 포덕을 위한 종교 서적의 출판도, 천도교 경전 프랑스어 공식 번역본의 출판도 아닙니다. 대신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새로운 심법 종교인 천도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문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치 물이 스며들듯 조심스럽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 프랑스인인 내수도께서 천도교 경전 읽기에 동참하게 되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와 감동을 경험하셨는지 들려주신다면요?
아내는 『해월신사법설』을 읽었을 때쯤 천도교의 교리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대자연과 우주를 부모에 비유한 것, 부부 사이를 하늘과 땅으로 비유한 것이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또 주문 수련에 동참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저희는 매일 밤 10시에 청수를 봉전하고 주문을 105회 묵송하고 있습니다. 묵송 후에는 경전을 한 장씩 읽고, 서로 맞절을 하고 청수를 분작합니다. 그렇게 매일 수련을 하고, 맞절을 하니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상도 바뀌었습니다. 아내와 밤 산책을 하는데 바위 근처에 달팽이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아내는 달팽이를 가리키며 “한울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또 강물 소리를 들으며 “한울님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대신사님이 당신의 부인을 포덕하기 위해 특별한 묘책을 쓴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자신의 마음부터 돌아보고 행실을 달리하니, 부인께서도 그 마음에 감응하신 것이잖습니까. 그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천도교를 하라고 권유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내는 불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 너그러워지고, 술을 안 마시고, 긍정적으로 변하자 아내도 따라서 감응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아내는 해월신사의 독실한 팬이 되었습니다. 해월신사의 은도 시대 때 일화만 들려줘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훔칠 정도이니까요. 특히 천도교 공부를 시작한 후 SBS 드라마 「녹두꽃」을 프랑스어 자막으로 같이 정주행했는데, 아내가 심고를 할 때마다 신사님을 생각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크게 감동했습니다.
▶ 『천도교 경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나 번역 과정에서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다면요?
경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야 정말 너무 많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소제탁기 아양숙기’라고 하겠습니다. 탁한 기운을 쓸어내고 맑은 기운을 어린아이 기르듯 하라는 이 구절은 어떻게 보면 기성 종교에 있는 모든 경전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될 정도로 보편적인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저 구절을 읽었을 당시 저는 반쯤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음속에 분노가 언제나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소위 탁한 기운이 완전히 저의 몸을 감싸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 문구를 읽었을 때, 저는 처음에는 ‘말은 쉽지. 그러면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고행이라도 하라는 건가?’라고 생각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경전을 더 깊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즉, 저 한 구절 때문에 경전 공부를 깊이 시작한 것이니, 결과적으로 저 여덟 자 때문에 천도교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의외로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은 바로 ‘한울님’을 어떻게 번역하냐였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dieu’, 즉, 영어로는 ‘god’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실수였습니다. 서양인들은 오랜 시간 ‘god’이라고 하면 옥경대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한울님을 ‘god’으로 번역하니 개개인이 모두 초월자적 신이 되는 것인가 하며 굉장히 의아해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것을 서양인들의 몰이해 때문이라고 탓할 수는 없는 것이, 결국 ‘god’라는 단어는 수천 년간 굳어진 그들의 신관을 드러내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슬람교같이 절대자에 대해 강한 복종을 드러내는 종교를 믿는 경우 이를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번역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은 우주이자 음양이자 또 생명의 근원, 그 자체이지 않습니까? 서양인들에게는 이미 ‘god’가 구름 위에서 우리를 내려보며 상벌을 직접 내리는 그런 초월자적 신이라는 관념이 너무 오랜 시간 깊이 박혀있다 보니, 아무리 이 부분에 주해를 달아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쉽사리 바꾸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한울님을 ‘hanulnim’으로 번역하고, ‘god’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천도교의 세계 포덕에 있어 한울님을 ‘god’라고 쉽게 번역해버리면 오히려 그들의 신관에 한울님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모습이 되어버릴 것 같아 조금은 두렵습니다.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천도교를 알리고자 할 때는 철저히 서양인들의 신관과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제 해설본에서 서양인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그 신은 ‘god’라는 단어로 정의하도록 했고, ‘hanulnim’을 기존의 신관을 깨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신으로 새롭게 소개했습니다.
▶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원로 교인께서 프랑스어 번역본을 보고 감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우선 너무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고, 정말 영광입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심고를 하는데, 그때마다 저는 ‘스승님께서 저에게 지혜로 감응하시되, 제가 스스로 마치 이치를 다 아는 것마냥 자만하지 않도록 저를 꾸짖듯이 감응해주세요’라고 심고합니다. 저 역시 해설본이 매우 부족한 것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섣불리 출판하기에 앞서 계속 살피고 또 수정하고 있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현재 제 작업물을 공식적으로 ‘경전 번역본’이라 감히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도교와 한국문화 입문서’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물 안에는 경전의 해설뿐만 아니라 천도교와 관련된 한국문화와 역사, 민속에 관한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직 30대이신데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젊은 천도교인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책임감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작년 9월이었습니다. 경전을 읽고서 너무 가슴이 설레서 도저히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 큰 가르침을 얻었음에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천도교는 그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일단 알려지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무위이화 될 것이다.’ 이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천도교를 쉽게 소개할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정말 밤낮으로 고민하며 계획을 짰습니다. 아마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네 가지를 ‘청년포덕 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전념을 다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나무위키 프로젝트입니다.나무위키는 한국에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오픈백과 사전으로, 대한민국 기준으로 청년들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들었을 때 열이면 열, 가장 먼저 찾는 사이트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가 너무 원론적이고 사전적인 정의만 하는 것과는 달리 나무위키는 구어체를 사용해 쉽고 간편하게 개요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교육과정에서, 또 한국사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 천도교와 동학이란 이름을 반드시 접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 천도교나 동학에 흥미나 호기심을 느낀 일부가 있다면, 분명히 나무위키를 통해 그것이 뭔지를 궁금해서 찾아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무위키 내에 천도교 페이지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분명히 “어? 천도교에 대한 역사는 적혀 있는데 오늘날과 관련된 정보는 없네? 아! 그럼 천도교는 오늘날에는 없어져버렸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이 페이지를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부터 저는 나무위키 내 천도교 페이지를 모두 정비하고 청년들이 알기 쉽게 교리를 정리했습니다. 천도교가 아직 살아 있는 종교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식당을 새로 오픈할 때도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내야 하는 게 유리하듯, 나무위키가 청년들의 지식 탐구를 위한 페이지 1번인 만큼 저 역시 나무위키 정비를 첫 번째 프로젝트로 삼았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청년들을 위한 천도교 커뮤니티 운영입니다.이렇게 나무위키를 통해 정보를 얻은 청년들 가운데 해당 정보에 흥미를 더 느낀 사람들이 공통된 주제에 대해 모여 의견을 나누고자 할 때 모이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습니다. 수백 개가 넘는 세부 관심사 채널들이 모여져 만들어진 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천도교 채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글을 올리지 않는 소위 유령 채널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 22일, 제가 해당 채널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그 채널 관리자가 되어 매일 천도교에 관한 칼럼을 올리고 청년들을 위한 경전 공부 시리즈를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채널에 방문하는 10대, 20대의 절대다수는 나무위키에 잘 정리된 교리들을 보고 흥미를 느낀 후, 이 채널에 접속해 천도교를 더 심층적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변 가게 전략’이 통한 셈입니다. 가끔 이 채널에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천도교가 뭔지 몰랐는데, 글을 읽어보고 감동했다”, “경전을 어떻게 구하는지 알려주세요”, “어떻게 입교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문의드려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저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정윤택 서울교구장님과 연결시켜드립니다. 최근에는 제가 올린 천도교 관련 글에 감명받아 한 고등학생이 중앙대교당에 찾아와 서울교구장님을 뵙고 간 사례도 있었고, 어떤 분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천도교 홍보를 자발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 역시 감동이 밀려와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해월신사님께서는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한울이 감응치 아니하고, 마음이 언제나 기쁘고 즐거워야 한울이 언제나 감응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즐거운 마음에 정성을 드렸고, 이에 한울님이 알아서 감응을 해주시니, 이게 무위이화의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 번째는 유튜브 채널 운영입니다.저는 글로만 이루어진 경전 공부 시리즈를 채널에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천도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타 종교에 관해 찾아보면 ‘10분 성경 해의’, ‘15분 만에 보는 법화경 해설’ 등과 같이 이미 젊은 세대 친화적인 유튜브 채널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젊은 층을 겨냥한 이런 채널들이 천도교에는 아직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제가 운영하는 채널을 통해 경전 공부, 동학, 천도교에 관한 모든 것을 젊은 사람의 감성에 맞추어 세련되게 표현할 예정입니다. 현재 천도교 교리에 관한 2부의 영상 제작을 마쳤고, 이번 천도교신문과의 인터뷰 기회를 빌려 상주선도사님께 내용 검수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검수가 완료되는 대로 제 채널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네오천덕송 프로젝트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던 제 기억을 바탕으로 고안된 프로젝트입니다. 개신교는 CCM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인 버전의 찬송가들이 하나의 거대한 음악 장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종교적이고 지루한 멜로디를 벗어던지고, 팝과 같은 비트에 은혜가 충만한 가사들을 적어 현대인의 감성에 최대한 맞춘 것인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CCM을 듣고 자랐고, 개신교를 벗어난 지금도 CCM 하나만큼은 정말 훌륭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집안의 아이들은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CCM을 들으면서 자라고, 그 과정에서 성경의 말씀들을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체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교회 밴드를 결성해서 또 CCM을 부르고, 작곡 작사를 하게 되죠. 음악으로 이루어진 교회 결속력 강화와 선순환인 셈입니다.
저는 천도교의 천덕송 역시 이렇게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의 CCM과 같은, 새롭게 현대화된 천덕송을 ‘네오천덕송(NCDS)’이라고 일단 임시로 명명했습니다. 현재 제가 작사는 직접 하고, 작곡은 AI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만 총 3곡을 완성했습니다. 앞으로 7곡 정도 더 작곡하여 총 10곡을 만든 후, 이를 1집 앨범으로 하여 제 유튜브 채널에 올릴 뿐만 아니라 교인분들에게도 저작권 없이 무료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저는 천도교 집안의 아이들 역시 이렇게 네오천덕송을 들으며 영적으로 강하게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들의 악기로, 또 그들의 목소리로 한울과 세상을 노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다섯 번째 프로젝트도 있기는 한데, 제가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에 체류했다면 진행했을 것입니다. 원래는 ‘시천주 한국어 교실’과 같은 이름으로 외국인들 대상의 무료 한국어 봉사를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천도교도 알리고 한국어도 무료로 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제가 사정상 프랑스에 거주하느라 못하겠네요. 그래도 앞으로도 중앙대교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 문화, 한국어, 서예 혹은 요리 수업 등을 재능기부 형식의 무료 강좌로 개설하면 천도교 홍보에도 매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프랑스와 같은 해외에 천도교를 알리는 활동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덕님께서 바라는 천도교의 세계화는 어떤 모습인지요?
과거 1860년에도 그랬듯이, 천도교의 가르침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 마음속에 물질적 지지대와 정신적 지지대를 하 나씩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물질적 지지대는 견고해졌지만, 탈종교가 일어나면서 정신적 지지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적 지지대의 빈자리를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물질주의가 채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되니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채우기 위해 더더욱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신적 풍요를 돈으로만 바꾸려 하는 쾌락 제일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도교는 사인여천, 동귀일체를 통해 작금에 만연하고 있는 쾌락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이기주의를 모두 타파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천도교는 현대인들의 피폐해진 정신적 지지대를 다시 세울 유일한 힘인 셈입니다. 저는 경전을 번역하기 전, 항상 신사님의 용시용활 장을 읽습니다. 대저 도란 시대와 짝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그 말씀을 언제나 가슴속에 새기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게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요즘 동서를 막론하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는 종교라고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정신적 지지대를 필요로 한다는 구조신호인 셈입니다. 그러나 하늘 위에 계신 신의 명령에 복종하자는 기존의 유일신 종교에는 피로감을 느끼니,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자라는 심법 종교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미 이런 흐름을 진작에 파악하여 매년 젊은 사람들의 감성을 가득 담아 불교 페스티벌을 열고 있고, ‘뉴진스님’과 같은 분들을 영입, ‘극락도 락(rock)’이다라는 슬로건하에 마치 콘서트처럼 파격적인 무대 행사까지 보입니다. 심지어 반야심경을 이용해 클럽 음악을 만들며 다 같이 뛰며 즐깁니다. 이런 불교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이미지 변신은 SNS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지금은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저 어려운 염불만 외우던 종교로 인식되었던 불교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 이미지 변신이 가능했던 데에는 불교 중앙 교단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불교가 지금 해월신사님께서 말씀하신 용시용활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친심법종교적 패러다임’이라는 큰물이 들어왔을 때 천도교 역시 힘껏 올라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천도교도 심법 종교라고. 그리고 현대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다고. 불교가 ‘극락도 rock이다’라는 재밌는 슬로건을 내건다면 천도교는 ‘모두가 하늘이다’ 이런 식의 슬로건을 내걸지 못할 것 없지 않나요? 불교가 반야심경을 EDM 음악으로 변곡해서 다 같이 춤춘다면, 천도교도 주문 21자를 EDM 비트로 변곡하지 못할 것 없지 않나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천도교의 세계화는 거창하게 말할 것 없습니다. 이미 세계화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쾌락주의와 물질주의가 지배해버린 이들의 정신적 지지대를 무위이화의 도로 다시 정화하는 작업 그 자체가 천도교의 세계화가 될 것입니다. 특히 서양에서는 환경주의, 인권주의의 목소리가 강한 지역인만큼, 천지부모나 사인여천과 같은 신선한 교리들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는 절대로 제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지친 마음을 힐링하는 데 천도교라고 하는 해결책도 있다더라, 하며 조심스럽게 권하는 중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감응한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도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를 뿐, 일단 알려지기만 하면 무조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청년 포덕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타 종교의 신문이나 미디어도 정기적으로 보면서 포덕에 대한 영감을 얻는데, 개인적으로 청년 천도교인으로서 천도교에는 없거나 미약한데, 다른 종단에는 있는 네 가지 부러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최소한 지부가 하나는 있는 것. 둘째, 청년부가 각 지역 예배당에서 활력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 셋째, 성직자 양성 기관이 매우 많고 이곳에서 성직자들이 끊임없이 양성되어 세대교체가 항상 이루어지는 것. 넷째, 군종병과가 있는 것. 위 네 가지가 제가 먼 훗날 환원하기 전 꼭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위 네 가지의 실현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정성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해월신사님은 훗날 서울 한복판에서 주문 소리가 울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바람은 수십 년 후 의암성사님 시대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겸손함을 가진 정성과 한울님 감응으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위의 네 가지가 실현되는 그날이 반드시 올 수 있도록, 저는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닌 지금처럼 직접 발로 뛸 것입니다. 제힘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히 정성을 드리고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항상 심고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제 개인적인 소망이고,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