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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만든 신흥종교가장 신기하고 의아한 것은 한 사람이 한 이성을 만나 평생을 같이 산다는 것이다. 한 종교만을 갖고 사는 사람도 그렇다. 이해가 안 된다. 사회의 집단 최면에 걸린 결과로 보인다. 집단성은 심적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에 이성을 마비 시킨다. 하늘 기운과의 접속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솔깃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만 살다 가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을 한 가지 음식만 먹고 산다고 하면? 딱 한 가지 옷만 입고 산다면? 그걸 강요하는 종교가 있다면? 나란히 비교될 수 있는 소재들이다. 내가 심취했던 종교는 다섯 개나 된다. 이제 다 심드렁하다. 심드렁하다기보다 모두가 소중하되 근본은 같아 보이고 차별성이 있다고 한들 시대와 지역 변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기 종교의 특정 교리를 들먹이며 신관과 우주관, 인간관과 자연관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기에 좀 딱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신흥종교를 하나 만들었다. 내가 해 오던 여러 수행 방편의 진수가 담긴 셈이다. 나는 그게 신흥종교인 줄 모르고 지냈는데 존경하는 선배가 그게 바로 신흥종교라고 일러 줘서 이름까지 붙이게 됐다. ‘박장대소교’다. 교리와 경전과 성소가 없는 종교다. 교주도 없다. 이 글의 제목이 ‘내가 만든 신흥종교’지만 스스로 교주라고 여긴 적은 없다. 어느 순간, 딱 네 곳의 인상 깊은 기억이 한 순간에 겹쳐 왔고 그걸 시연한 게 계기였다. 재작년 봄이었다. 터박이 씨앗을 연구하고 수집하는 단체에서 나더러 명상 수련을 지도해 달라고 했던 때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제안이었다. 나는 딱 5초 만에 강의를 끝냈다. “쳇! 자기네 황토집에서 재워준다면서 배 불리 먹이더니 강의 들으라는 것이었군.”하는 눈치가 역력해서였다. 이 5초짜리 강의가 ‘박장대소교’의 출현이 될 줄이야! 짧디짧은 강의는 폭소를 자아냈고 더 해 달라고 해서 5분을 더 했고 이어서 1시간이나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박장대소교의 교리와 의례와 전교가 완성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한 5초 명상 강의는 이랬다. 말과 몸짓으로 나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교대로 크게 들썩이며 “이래도 좋아. 저래도 좋아”라고 했다. 그리고 양 무릎을 벌떡 세워 일어나 두 팔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 좋아. 아이구 좋아라. 으하하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장대소’라는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 만날 때마다 ‘아이구~ 반가워요’라는 선배, 몸짓을 가르쳐 준 어느 신부님 등의 기억이 결합 된 것이다. ‘박장대소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기성 종교인에게 양다리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헌금도 없다. 성직자도 없다. 모든 대상을 행해서 아이구 반가워 하하하. 아이구 맛있다 하하하. 아이구 좋아라 하하하. 아이구 몬 살아 하하하. 아이구 내 팔자야 으하하하하라고 하면 된다. 약간 과장스러운 몸짓을 곁들일 것을 권하다. 이게 다다. 근데 좀 귀 티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내 얼굴과 입과 팔다리에 완전한 자기 주권이 실현된 종교다. 마음 자기 결정권이라는 게 있다면 그걸 행사하는 종교다. 멋지지 않은가? 누구나 스스로 바라지 않는다. 짜증이나 불행이나 화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데도 습관과 기억에 얽매여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참 바람을 몸과 마음과 입으로 시도 때도 없이 성취해 가는 종교다. 박장대소하면서 웃음을 전염시키는 종교다. 이 정도라면 세상 모든 종교의 통합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라고 해도 될 것이다. 교인이 되시라. 절차도 의례도 없다. 위에 나온 걸 참고로 자기만의 교리와 의례를 적절하게 만들면 된다. 글_목암 전희식(진주교구. 한울연대 공동대표) -
해월신사 순도 순국 126주기 묘소 참례식 봉행지난 6월 2일 해월신사 순도일을 맞아 중앙총부는 여주시 천덕산(금사면 주록리 산 138) 신사 묘소를 참례하였다. 참례식에는 이범창 종무원장을 비롯하여 송범두 전 교령, 이미애 교화관장, 정갑선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연원회 김성환 연원회의장, 김산 연원회부의장, 종의원 최흥규 종의원부의장, 최용범 종의원 사무장, 여성회 박징재 여성회장, 등 교단 임직원 등 유족대표, 계한경 공항교구장, 김시형 여주교구 전교실장, 내빈으로는 홍일선 경기작가회의 회장 등 여주지역 시민사회단체장 및 시민 60여 명이 참석하였다. 참례식은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 병송, 분향, 폐식후 해월신사 약력소개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미애 교화관장은 발성 심고에서 “해월신사님이시어, 도에 대한 한결같은 생각을 주릴 때 밥 생각하듯이, 추울 때 옷 생각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이 하라고 하시며 이 세상 운수는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의 큰 운수를 회복한 것이니, 새 한울 ·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지금은 도를 권하면 사람들이 다 믿지 아니할 것이나 이후에는 사람들이 손바닥에 시천주 주문을 써 달라고 할 것이니 그 때가 오게 되면, 포덕사를 세계 각국에 보내어 모든 나라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도에 힘써 배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우리의 삶이 곧 스승님의 삶을 실천하는 길이 될 수 있는 진정한 한울 사람이 되어, 한울님을 모시고 사람을 섬기며 만물을 공경하는 한울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면서 한울님과 스승님 감응하시기를 심고하였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인사말에서 “스승님들은 전세계 인류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많은 진리를 밝히셨다. 일용행사 막비도야(日用行事 莫非道也)라 하셨으니 우리들은 매매사사에 스승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참 한울사람이 되기를 심고한다.”라고 말하였다. -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한국어교육과, 동학혁명기념관 역사탐방전주한옥마을은 이제 국내 유명관광지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코로나 시국을 벗어나 최근 들어 외국인들이 무척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에도 전국에서 찾는 관광객과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 내 동학혁명기념전시관에 오시는 분들은 평일 하루 2백~3백 명 수준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1천~2천여 명을 웃돌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초·중·고·대 현장학습이 많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친지들과 가족단위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지난 6월 1일(토) 오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대학원생들이 교수진과 동학혁명기념관을 단체 방문했다. 이들 외대, 대학원생들은 동학혁명기념관 역사탐방을 위해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등 사전에 꼼꼼히 준비한 흔적들이 있었다. 수운 최제우·해월 최시형·의암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동학사상을, 전봉준·김개남·손화중 장군을 중심으로 반봉건 1차 동학농민혁명을, 반외세 2차 동학농민혁명 즉 항일의병전쟁을, 이후 의병운동, 독립운동, 해방 후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중항쟁 등 근현대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자료집을 보면서,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준비를 철저히 한 대학 측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대학원생들은 전시관 자료들을 자세히 관람했으며, 전체적인 학습은 미디어 영상실에서 이윤영 관장의 지도에 따라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을 관람·학습하였다. 이들 대학원생들 중 외국인들은 한국어공부를 나름대로 능통해 대화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외국어대학원생들은 동학혁명기념관 일정을 마치고 전주한옥마을 여행하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사진 및 기사 제공-동학혁명기념관) -
중앙총부 신임 집행부 봉고식 봉행5월 31일(금) 오후 2시 경주 용담정에서 윤석산 교령을 비롯한 총부 임원과 교인들은 신임 집행부 봉고식을 봉행하였다.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진행된 봉고식은 청수봉전 등 의식에 이어 윤석산 교령의 봉고문 낭독이 있었다. 봉고식 후 수운기념관을 둘러본 후 대신사 태묘와 생가를 참례하였다. 윤석산 교령은 봉고문을 통해 “지난 5월 9일 제41차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령으로 선출되었음을 한울님과 스승님 앞에 삼가 받들어 고합니다. 오늘 봉고식에는 교령인 저를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이범창 종무원장, 김춘성 상주선도사,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등 이번에 새로 선임된 교역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곳 성스러운 용담성지에서 스승님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면서 대도중흥을 위하여 성력을 다할 것을 한울님과 스승님께 굳게 맹세합니다. 주어진 직책을 천명으로 여기며 오로지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소임을 다하며,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히 정진하겠다”고 다짐하고, “또한 천도교인들이 순일한 정성을 태산같이 쌓아 그 힘으로 평화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한 교역자들이 솔선수범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봉고식에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김산 연원회 부의장, 김춘성상주선도사, 이범창종무원장, 최흥규 종의원 부의장, 최용범 종의원 사무국장, 이미애 교화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문범식 전서실장, 오성식 전서, 최상락 용담수도원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최상욱 용담교구장 등 20여 명의 교역자가 참석하였다. 아래는 봉고문 전문이다. 봉 고 문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오늘 대신사님께서 무극대도를 창명하신 용담성지를 찾아 불초 도생이 지난 5월 9일 제41차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교령으로 선출되었음을 한울님과 스승님 앞에 삼가 받들어 고합니다. 오늘 봉고식에는 교령인 저를 비롯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 이범창 종무원장, 김춘성 상주선도사,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등 이번에 새로 선임된 교역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곳 성스러운 용담성지에서 스승님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면서 대도중흥을 위하여 성력을 다할 것을 한울님과 스승님께 굳게 맹세합니다. 스승님께서 경신년 4월 5일에 한울님의 특별하신 감응으로 이곳 용담정에서 득도하시고 저희들에게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의 대업을 과제로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직책을 천명으로 여기며 오로지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소임을 다하며,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정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시천주의 진리가 온누리에 널리 널리 퍼져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세상이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낡음에서 새로움으로 변화하도록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또한 천도교인들이 순일한 정성을 태산같이 쌓아 그 힘으로 평화적인 민족 통일을 이룩하고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한 교역자들이 솔선수범 하겠습니다. 용담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을 이루고 이곳 구미산에 봄이 와서 온 세상이 무극대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여 수도에 정진하며 포덕교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저희 새로운 집행부 교역자들은 대도중흥을 바라는 전체 교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천도 정신으로 똘똘 뭉쳐 일할 것을 봉고하오니 한울님 감응하옵시고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포덕 165년 5월 31일 교령 윤석산 심고 윤석산 교령과 총부 임원의 봉고식 모습 -
이창번 천도교중앙도서관장에게 듣다(2)이창번 천도교중앙도서관장님을 만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를 거쳐 우리 역사가 흘러온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 시절을 건너 온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야말로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구십 살이 넘은 생을 넘나드는 기억들을 풀어내며 선생의 생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선생의 말씀 속에 선생이 경험한 모든 것을 표현할 때 ‘감사한 마음’이었다. 주어진 삶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지난 호에 이어) 수용소 안에서의 종교생활은 어땠나요? 그 안에서는 글자를 읽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러니 성경을 읽었죠. 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 성경을, 아마 기독교 신자들보다 내가 더 많이 읽었을 거예요. 당시 수용소에 있던 분들하고 천도교인이라는 걸 서로 알게 됐을 때 어떠셨어요? 무척 반갑죠. 91수용소에 있을 때는 완전히 우익이 장악하고 있을 때니까 내놓고 얘기를 할 수가 있을 때예요. 그래서 2대대 경비대에 가서 안에 시일을 봤거든요. 황승훈 씨 이분이 경전을 암기한 걸 적었어요. 적으면서, 이게 아니야, 이 글자야, 이 글자야 서로 이러면서 경전을 만들었어요. 그거 가지고서 시일을 보았다니까요. 그때 나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렇게 완전히 시일식을 했어요. 시일을 보는데 천덕송은 그때 김영찬 씨라고 하는 분이 아주 잘 가르쳤어요. 그분이 천덕송을 가르치고, 저는 북한에 있을 때도 천덕송을 불러왔기 때문에 수용소에서도 천덕송을 아주 그때 잘 불렀어요. 판문점에 올라가 가지고 거기서도 천덕송 부르고 천덕송 대회도 하고 그랬어요. 거기서. 시일식의 식순은 북한이나 여기나 똑같아요. 당시에 포로수용소에서는 얼마나 계셨죠? 저는 거의 3년 동안 수용소에 있었어요. 투쟁이 너무 심하니까 분리 심사를 하는데, 그때 나오는 방송이 앞으로 며칠 후에 하는 심사는 여러분이 일생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해야 된다. 이 결심을 한 번 하게 되면 다시 옮길 수가 없다. 신중히 생각해라. 그런 방송이 나왔어요. 그러고 나서 한 줄로 쭉 들어가서 심사관 앞에 가면, 북으로 갈 거냐 남의 잔류할 거냐, 이걸 묻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방송에서, 혹시 북으로 안 가고 남에 남겠다고 해도 정부에서는 여러분의 장래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예요. 알아서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돌아가길 바라는 것처럼 이렇게 방송을 했다고요. 그래서 북으로 갈 거냐, 남으로 갈 거냐, 남으로 가면 이쪽, 저쪽 방으로 들어가면 북으로. 딱 갈라놓는 거예요. 북으로 갈 사람들을 따로 모아가지고 수용소에다 잡아놓고 남에 남겠다는 사람은 여기에 남고. 분리 심사 후 북으로 송환을 거부한 사람 3만 5천 명 정도가 북으로 안 가겠다고 그러고, 북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9만 명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여기에 남겠다는 사람이 반공 때문에 남겠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북으로 가는 사람들이 친공 때문에 간 게 아니에요. 그때 누구나가 생각하기를 통일은 앞으로 2~3년 안에 될 거다. 또 하나는 북한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집단 농장이 안 됐어요. 왜정 때와 똑같았어요. 모든 게 다 국유화됐다고 그러지만 내 집에 살고 있었고 내 땅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거 생각을 한 거예요. 북한도 지금처럼 집단 농장이 되고 그런 식이 된다면 누가 북으로 가요, 아무도 안 가요. 2~3년만 있으면 통일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분류가 된 거예요. 그래서 북한에 간 사람들은 사실은 그것 때문에 갔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에 남게 되셨어요? 여기(남한에) 나와서 제 고향 사람 한 분 집에 내가 그 집 아들로 입양이 돼서 호적을 만들었어요. 대한민국에서 석방되어 나와서 장교로 있을 때, 그때 호적을 만들었어요. 그 고향 분이 아버지하고 친구고 같은 성주 이 씨예요. 촌수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이분도 분류 심사할 때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하시더라고요.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었고 처자식이 있었는데, 내가 안 가면 부모님은 어떻게 모시고 자식은 어디 갈 거냐고요. 그런데 내가 말렸어. 가지 말자고. 이제 뭐 2, 3년 있으면 통일될 테니까 가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냐고, 그냥 있자고. 그래서 내가 그분을 부모처럼 모신 거예요. 여기서 내가 그분의 아들로 내가 입적을 해가지고서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이제 2~3년이면 통일되겠지 하고서 남았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또 북에 가는 사람도 그랬어요. 가족들을 생각해서 한 2~3년만 참으면 어떻게든 통일될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분리 심사할 때 사실상 북으로 간 사람들 있는데 다 불행하게 됐죠. 북에 갔던 사람들은 전부 아오지 탄광으로 가고 그때 그랬어요. 그리고 이후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는 부산 가야 수용소로 왔습니다. 거제도에서 부산 가야 수용소로 왔어요. 그땐 완전히 반공포로 출신이죠. 가야의 수용소가 a, b, c, d, e, f, g, h까지 있었어요. 그 수용소가 a 수용소 b 수용소 이렇게 해서 h 수용소까지 있었는데 b 수용소가 천도교인만이 모인 수용소였어요. 한 수용소가 한 1300여 명씩이나 됐어요. 천도교인만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지만. 다른 곳에도 천도교인이 있었어요. 나는 그때 H수용소에 있었어요. 반공 프로들이 여러 수용소에서 분리 심사를 해서 오니까 어떤 데서는 91 수용소에도 들어오고 그랬는데, 혼합이 돼 들어올 때 천도교인들은 H 수용소에 있었는데 지금 당산교구에 있는 안명록 씨라고 그분이 나랑 같이 H수용소에 있다가 온 분이죠. 거기에서 그때 하야리아 부대라고 하는 미군 부대가 있었어요. 거기에 식당 요원을 뽑는데 이 양반이 통역관이니까 같이 나가게 됐는데 그때 미군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니까 신체 검사가 보통 심한 게 아니에요. 몇 번을 가서 검사를 받고 합격이 돼야만 그 식당에 갔어요. 그 쪽에 큰 미군부대가 있어요. 미국에서 오는 모든 장병들이 거기에 왔다가 전방에 나가고, 제대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거기 왔다가 다시 본국으로 가는 큰 수용소인데 거기에 식당이 여러 개가 있었어요. 그럼 수용소의 포로들이 인근 부대에서 일을 했다는 말씀이신거죠? 네. 미군 식당이 있었는데 우리가 간 데가 장교식당이에요. 소위에서부터 중령까지만 식사하는 데예요. 그리고 거기에 장군 식당은 대령에서부터 장군들만 식당하는 데가 따로 있었는데, 내가 그 식당에 가서 일을 하게끔 됐어요. 원래는 일반 민간인을 채용해서 쓰다가 그 사람들은 월급을 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포로를 쓰게 되면 그게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미군들이 일반 민간인들 다 내보내고 포로들, 반공포로에서 골라서 데려왔어요. 저도 그때 안명록 씨하고 같이 거기로 나갔어요. 가서 제가 배치된 곳이 창고였어요. 식품이 꽉 찬 창고를 내가 지키는 일을 맡았어요. 반공포로 석방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6월 18일날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 석방시킬 때, 내가 있던 곳은 미군 부대니까 여기는 건드리지 못한 거예요. 우리는 전혀 몰랐어요. 포로들이 석방된 걸. 6월 18일 아침이 기억이 나네요. 내가 매일 아침에 커피를 가져다 줬던 장교가 와 있더군요. 또 커피 가져오라고 그럴 것 같아서 미리 가서 커피 두 잔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 앞에다 놓고 나도 한잔 마시려고 그랬는데, 나를 딱 쳐다보더니 "너 왜 여기 있냐" 이거야. 난 그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왜 도망치지 않고 여기 있냐 이 소리예요. 다 도망쳤다는 거예요. 난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수용소 안에서 전체가 다 도망을 칠 수가 있냐, 그걸 모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다 나갔다는 거예요. 그때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신문을 가져 왔는데 딱 보니까, ‘포로 전원 석방’이라고 나온 거예요. 우리가 여기에 멀쩡하게 지금 있는데 전원 석방이라고 나온 거야. 아이고, 눈이 캄캄해지는 거예요. 야 이게 우리만 떨어졌구나, 우리만 탈출을 못했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그 신문을 여러 사람한테,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화장실에다 그 신문을 놓고는 교대로 들어가서 그걸 보고 오라고 했어요. 그때부터는 일을 못하는 거예요. 다들 들떠가지고서. 어디 가야 하나, 우리도 뛰어야 하나. 양놈들이 눈치를 채고 조금 있으니까 무장한 군인들이 확 오더니 그때는 경비 두 명이 따라와 가지고 전부 태워가지고 다시 그 수용소한데다 잡아놓은 거예요. 그날 밤에 한잠도 못 자고 지금도 철조망을 뚫고 나가야 하나,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탈출은 못 했어요. 다음 날 되니까 장갑차가 오더니 무장 군인들이 15명 정도 와가지고 다 태우는 거예요. 문 딱 잠그고서 가는데 우리는 북송하는 줄 알았어. 그랬더니 가야 수용소, 우리가 있던 수용소에다 잡아넣는 거예요. 그런데 a 수용소 b 수용소였는데 거기 가니까 미국 탱크가 정문 앞에다가 또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군이 석방을 시켰으니까 탱크들이 와서 지키고 있어요. 우리가(식당에서 일하던 사람들) 그때 한 30여 명 됐어요. 도망치다가 다시 붙잡혀 들어온 사람들 한 60명하고 합류가 된 거예요. 거기다 잡아놨는데 그때부터는 진짜 그 밥이라는 게 먹히질 않는 거예요. 거기서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갑자기 밤중에 그냥 자는데 그때는 뭐 불침번이고 뭐고 없었을 때예요. 그냥 자고 자는데 밤중인데 막 불을 켜더니 깨우더라고요. 다 배낭 지고서 소지품 가지고 나오라는 거예요. 틀림없이 북송하는 줄 알았어. 절망감이 오면서 어떻게 할 생각이 안 드는 거야. 그래서 어디로 가신 건가요? 어디로 가나, 가만히 보고 있는데 열차를 태우게 되면 북으로 가는 건데... 여수면 역을 지나가더라고요. 수용소에 갔더니 거기도 석방 안 된 사람이 우리 말고 더 있었어요. 한 2천여 명이 거기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9월 달에 판문점 갈 때까지 6월달서부터니까 그 한 서너 달 거기에 있었죠. 그때도 고통스러웠어. 진짜. 거기 있을 때 한국군이 우리 붙잡지 않는다는 거야. 그때는 탈출하게 되면 경찰들도 붙잡아서 미군에게다 갖다 놓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석방시켜 주니까 이제 우리 나가면 이제 환영하거든 서로 탈출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철조망이 이렇게 이중 철조망으로 쳐졌는데 땅굴 파기 시작했던 거예요. 또 거기서 그런데 적발이 돼 가지고 탈출을 못 했어요. 그러다 결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헌병사령관을 보내가지고 수용소 안에 방송으로 이번에 석방 못 됐지만 여러분들은 판문점에 갔다가 1월달이면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달라. 우리 대한민국이 절대적으로 책임지겠다. 그걸 하는 게 그때부터 안심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 그때부터는 우리도 이제 땅굴 팔 생각 안 하고 이제 석 달만 지나면 이제 우리 석방될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미군하고도 협조가 돼가지고서 미군들도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거예요. 프랭카트 만들겠다고 하니 천을 가져다 주고 그래가지고 그때 판문점 갈 때는 궁을기를 만들어 가지고 간 거예요. 태극기하고 궁을기 그 당시에 마음대로 만들 수가 있었으니까 나도 그때 궁을기 만드는 방법을 배웠어. 그럼 그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중립지대로 가서는 마음대로 했어요. 그때는 작업도 없이 수용소에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는 천막 하나를 쳐놓고 교회를 만들었는데, 노상 교회에 가서 살았어. 밥 먹고 가면 교회 가서 천덕송 부르고 그때 경전의 일부가 들어왔던 적이 있었어요. 경전을 가져온 사람이 있었어. 신인철학도 내가 그때 처음 봤어요. 그때 중립지대는 미군은 완전히 손 떼고 인도군이 우리 경비를 했어요. 인도군의 감시하에 경비를 하고 병원 수용소에는 한국 간호원들이 들어와 있었어요. 병원 수용소에서 서로 연락을 하는 거예요. 중앙정보부하고 우리하고의 모든 연락을 간호원들이 했어요. 그래서 그때 각 수용소 간에 연락할 게 있으면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는 거예요. 내가 여기에 도서관장으로 오면서, 처음 들어와가지고 그 기록을 찾아보니까, 반공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명부가 있더라고요. 나도 그게 있는 줄은 몰랐어. 거기 보니까 내 이름이 나와. 천도교인 그 이름이. (다음 호에 계속) 인터뷰영상 바로가기==>http:// https://www.youtube.com/watch?v=UMIi5P5Dfqg -
포덕 165년 4월 21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설교 : 살아 있는 천도교를 하자(혜원당 김춘성 상주선도사) -
마음공부(4) - 행복의 기본 요건나는 마음과 육신뿐만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성령은 내가 살아가는 힘과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된다. 이 성령이 바로 나의 본래생명이다 천도교 동귀일체는 포덕 140년 12월 천도교 신인간사 주최 대토론회 「새 천년, 천도교 무엇을 할 것인가」이 계기가 되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천도교의 중흥과 발전을 위해 젊은 동덕들로 구성된 종교결사로서 포덕 141년 6월 10일 창립하였으며 철저한 오관 실행과 수련으로 자기 포덕 및 가정 포덕을 이루며 각종 연구(수련, 교리, 교사, 포덕, 교화, 홍보, 행사 분과) 활동을 통해 질력있는 지도자가 되며 이러한 사업활동을 통해 교단의 발전과 대도의 중흥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와 운영 방안을 갖고 활동해왔다. 최근 '마음공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네 번째 주제로서 '행복의 기본 요건' 영상 링크를 소개한다. 나를 구성하는 몸과 마음, 성령 3가지를 차분히 살펴보며 행복의 기본 요건을 알아본다. -
포덕 165년 4월 14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설교 : 개벽운수를 맞이합시다(성암 정갑선 교무관장) -
의병, 그 마음 다시 빛나다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식」 개최「제14회 의병의 날 기념식」이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백학광장 일원에서 전국 의병단체 대표와 의병 후손,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6월 1일(토) 오전 10시에 개최된다.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가 주최하고 경기도 연천군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의병, 그 마음 다시 빛나다’를 주제로 진행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모 화환을 보내 ‘의병의 날’을 함께 기념하였으며,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참석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의병(義兵)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의병 영령들의 넋을 추모한다. 이번 행사가 열리는 경기도 연천군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난 순국선열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장이다. 구한말 의병장 ‘허위’는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연천 ‘심원사’를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구국의 뜻을 모아 5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항쟁을 이어 나갔다. 특히, 기념행사가 열리는 백학면은 1919년 경기 북부지역 만세운동을 확산시킨 시초가 된 ‘3.21 두일리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이날 기념식에 앞서 ‘3.21 두일리 만세운동’을 재현하기 위하여 백학면 주민 30여 명이 참여하는 ‘오천 개의 태극기’ 주제공연이 펼쳐진다. 기념식은 기념사, 추모사 등에 이어 의병의 노래 합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이 밖에도 6월 1일(토)부터 7일(금)까지 애국증서 만들기, 의병의상 체험, 전통놀이, 의병영화제 등 의병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는 다양한 체험행사가 백학광장 일원에서 진행된다. 고기동 차관은 “우리나라 곳곳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고장을 지키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선조들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라며, “정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존중받고 가치 있게 기억되며 선조들의 의로운 정신이 계승되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2024 제주포럼 계기 ‘여성 외교독립운동으로 바라 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 세션 개최외교부는 제19회 제주포럼(5.29~31) 계기, 포럼 둘째날인 5.30(목) 학계 인사, 외교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세션을 개최하였다. 금번 세션은 강윤진 국가보훈부 보훈정책관(좌장)의 진행으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발표자)이 발제하고, Jeff Robinson 주한호주대사와 김정민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학예팀장이 토론자로 참석하였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황마리아 선생(대한부인회, 하와이), 손마리아 선생(대한부인구제회, 하와이), 김순애 선생(상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상해), 최순이 선생(대한소녀리그회, 하와이), 강원신 선생(대한여자애국단, 캘리포니아), 김숙경 선생(훈춘애국부인회, 만주), 방순희 선생(중경한국혁명여성동맹, 충칭)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기여를 소개하면서, 이러한 여성 외교독립운동의 특징은 개인 차원의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화된 풀뿌리 운동으로 승화시킨데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 소장은 또한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을 상대로 외교를 펼친 차경신 선생, 임시정부 의정원의 여성의원으로 임시정부 승인을 위해 소련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친 방순희 선생, 1941년 4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석하여 임시정부 후원과 대미외교 및 선전을 선도한 심영신 선생과 민함나 선생 등의 활약상도 소개하였다. Robinson 주한호주대사는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데이지 호킹 등 3명의 호주 여성 선교사들*이 부산 일신여학교(현 부산 동래여고)를 설립하고, 옥고 등을 감수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하는 등 우리 독립운동에 대한 헌신을 소개하였다. Robinson 대사는 이사벨라 멘지스 선생의 조카이자 호주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성장한 로버트 멘지스 총리가 재임시 발발한 한국 전쟁에 호주군의 파병을 결정한 것도 고모 이사벨라 멘지스의 독립운동 활동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당시 호주를 포함한 여러 외국 국적 여성의 활약상을 발굴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2022년 애족장), 이사벨라 멘지스(2022년 건국포장), 데이지 호킹(2022년 건국포장) 김정민 학예팀장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외교독립운동가의 업적과 역할이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미래세대의 통합적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균형 있는 독립운동사 재조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였다. 김 팀장은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 하와이 여성독립운동을 이끈 김노디(김혜숙) 선생, 1919년 대한인총대표회의에 동참한 우조앤(우복자) 선생,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면서 독립을 위한 외국인 지지세력 규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한 프란체스카 여사 등을 소개하였다. 김 팀장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서훈한 약 18,000명의 독립유공자 중 여성은 661명이며, 이 중 청원 및 공공외교의 영역에서 활동한 외교독립운동사는 55명으로 0.3%에 불과하다면서, 역사 속에 숨겨져 알려지지 않고 있는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연구.발굴해 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소장은 21세기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국난의 시기에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신념을 단순히 자신과 가족에 국한시키지 않고 국가의 영역에까지 확산시켰다는 점을 이해하여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창출하는데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번 세션은 ‘독립운동 가치의 합당한 평가 및 기억 계승 방안’(4.30, 외교부, 국가보훈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합동 발표)의 후속조치로 진행된 것으로, 동 세션은 외교‧안보, 경제‧경영, 기후‧환경, 여성‧문화‧교육, 글로벌 제주 5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는 일반 세션 중 여성‧문화‧교육 분야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기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