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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덕 166년 1월 5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 새해의 서원설교 : 현암 윤석산 교령 -
중앙총부, 포덕 166년 시무식 개최, 새해 맞이 다짐과 결의포덕 166년 새해를 맞이하여 중앙총부는 시무식을 열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시무식에는 각 기관 및 부서 임직원들이 모여 새해의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고, 결의를 다졌다.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개식-청수봉전-주문 3회 병송-시무사(종무원장) 등으로 이어진 시무식은 축하와 다짐의 시간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새해를 맞이하며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계획에 따라 다음 집행부가 잘 이어받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각 부서에서 적극적 지원과 협조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동귀일체로 업무를 추진해 나갈 때 광제창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올해도 열심히 맡은 바에 임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포덕 166년 시무식은 새해를 시작하며 각 기관의 방향성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자리였으며, 참석한 교역자들은 새해의 도전과 기회를 맞이하는 결의를 다졌다. -
[특별기고] 포덕천하, 광제창생지난 여름의 폭염과 올겨울 첫눈의 폭설은 모두 기록적인 기상재해였습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기상재해는 해마다 기록을 경신해 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로 인해 인류가 받는 고통은 그 도를 더 해 갈 것입니다.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 대책도 없이 우리 자신의 삶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지금 지구촌에서는 두 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꽃다운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나라 안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 한심한 꼴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합니다. 분노와 증오가 나라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이 모든 것은 인간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 일들입니다. 이런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우리 천도교인들이 나서서 깨우쳐야 하지 않을까요? 일찍이 해월 스승님께서는 “장래 물질문명이 그 극에 달하고, 인심을 인도하는 선천도덕(先天道德)은 때에 순응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울의 신령한 변화 중 일대 개벽의 운이 회복될 것이니, 우리 도의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은 한울의 명하신 바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지금 하나하나 현실화 되고 있습니다. 일대 개벽의 운도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울의 신령한 변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준행하여야 하는 신앙인으로서 인류의 종말적 미래가 그대로 진행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희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한울이 명하신 바 그대로 포덕천하! 광제창생! 입니다. 천도교인에게 명령하신 이 시대적 사명은 실로 준열할 뿐 아니라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지구를 구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완수해야 합니다. 첫째로 포덕천하는 천도교인에게 지워진 지상명령입니다. 시천주(侍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 인내천(人乃天)의 위대한 사상을 온 인류에게 알려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계에 최초로 창안된 대종지선(大宗至善)의 이 가르침을 어찌 널리 널리 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천도교인들은 모두 떨쳐 일어나 포덕의 대열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포덕천하의 그 날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지구촌을 구하고 인류를 구제할 오직 단 하나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광제창생은 우리 도의 종국적 목적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합니다. 한울이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한울인, 우리의 이웃과 지구촌 식구들을 어찌 구제하지 않고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한 사람의 눈물이라도 한 짐승의 고통이라도 덜어 주어야 합니다. 위대한 사상은 위대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천도교인들이 분발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생명을 구할 위대하고도 숭고한 사명을 띠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포덕 166년에는 더욱 신앙심을 돈독히 하여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대열에 힘차게 나갑시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암 이범창 종무원장 -
중편소설 <하얀 혁명>(3)(지난 호에 이어) 2. 혁명 괴산전투가 끝난 후, 동학군은 큰물 들어오듯 척양척왜의 깃발과 지역별 포접을 알리는 깃발을 앞세워 보은을 향해 진군해 나아갔다. 워낙 많은 숫자의 이동이라 정해진 길은 따로 없었다. 이천포는 청안, 미원을 지나 보은의 지경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행군 도중 여장을 푼 숙영지마다 흰옷 입은 동학군이 밀려들어 수천 마리 백로가 날아든 듯 가을 들판을 뒤덮었고, 밥때를 알리는 호군장(犒軍將)의 징소리가 가마솥이 풍기는 밥 냄새와 어우러져 산야로 퍼져나갔다. 보은 장내리 대도소에 도착하기 하루 전, 이천포는 마지막 숙영지로 보은군 산외면과 내북면 사잇길로 접어들어 학림리(鶴林里)라는 작은 마을에 당도했다. 학림이라는 이름처럼 마을 뒤편 소나무 군락지에는 보청천을 먹이터 삼아 둥지를 튼 백학과 왜가리 떼가 평화롭게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여기서 장내리까지는 반나절 거리였다. 이천포 대열이 마을에 당도하자 동네사람들이 밥 짓던 연기를 부지깽이로 다스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대군의 기세에 눌려 썩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 집이나 헛기침 없이 들어간다 해도 막아설 사람은 없겠으나 이창진과 한규석은 민폐를 염려해 촌장 집을 물어 찾았다. 마을 안쪽 솟을지붕으로 대문을 얹은 기와집이었다. 탕건을 쓴 주인이 나왔다. 초면이었으나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합장의 예를 갖추어 인사하자 주인이 손님을 사랑채로 안내했다. “우리는 경기도 이천에서 기포한 동학군이오. 마침 길이 저물어 이 마을에서 하룻밤 유숙을 청하오니 무례를 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창진이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여 유숙을 청하자 주인이 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무례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몇 날을 유하여도 하등 신세 될 것 없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떠한 민폐도 끼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리옵니다.” “그것도 너무 괘념치 마시오. 사람이 살다보면 피차 신세를 지기도 하고 갚기도 하는 것, 더욱이 침식(寢食)의 신세는 항차 큰 인연으로 이어진다고도 하더이다.” 주인의 손님맞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만일 유숙을 거절하면 억지로라도 밀어붙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이창진의 낯빛이 무뎌졌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소생은 경기도 이천에 사는 이창진이라 하옵고, 이녁은 한규석이라 하옵니다.” “경주김가 김교무라 부릅니다. 가난한 유생의 처지라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한규석의 눈에 안쪽 벽에 걸린 족자가 들어왔다. 예서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족자의 글귀와 말미에 찍힌 낙관을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이 마을이 경주김씨 세거지인 듯하오만?” “그렇습니다. 보은에는 본시 경주김가 터전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마을 역시 경주김가의 오랜 세거지로 속리산 한 자락을 늘여 펴서 누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요. 타성바지는 스무 집 남짓합니다. 보은을 잘 아시는지요?” “주인장 얼굴을 뵈니 초면이 아닌 듯하여 묻습니다.” “대처에 나가본 바가 드물어 경기도 이천은 낯선 곳입니다.” 이창진도 주인의 얼굴이 낯익은 듯 미간을 좁혀 말했다. “하오면 우리가 보은에 왔을 때 뵈었다는 것일 터.” “보은에 온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작년 3월 보은 취회 때 장내리에서 한 달을 유하다 간 적이 있습니다.” “옳거니. 그렇다면 거기서 만났을 겝니다. 소생도 거기에 간 적이 있으니까요.” 김교무가 작년에 있었던 기억을 냉큼 끌어와 화답했다. “어쩐지 낯이 익는다 싶었는데 내 눈이 틀림없군요. 입도는 하셨는지요?” “동학도를 말씀하시는 게지요?” “그러하오.” “입도는 하지 않았으나 만민은 평등하고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라는 시천주, 사인여천의 동학도 교리는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입도하지 않았다면 우리 취회에 오실 일이 없었을 터인데?” “외월(猥越)스럽지만 제 집안에서 누대로 살아온 가솔 서넛을 면천(免賤)해 주었다 하여 동학 교주 해월선생께 초빙되어 문안드린 바 있습니다.” 이창진과 한규석은 그제야 주인의 얼굴이 기억났다. 이 댁의 주인인 김교무가 솔선해 양반 가문인 경주김씨 집안에서 대대로 종살이하던 노비들의 면천에 앞장섰기에 해월선생이 광제창생의 모범이라 하여 그를 취회에 모셔온 적이 있었다. 그의 진력으로 노비문서가 소각되고 면천된 자가 부지기수였던바 교주의 칭송이 자자했던 일이 선하게 떠올랐다. “그런 인연이 있었습니다그려. 다시 한번 면천을 베풀어주심에 감읍하옵니다.” “부끄럽습니다.” 둘이 한사코 만류하는데도 김교무가 안채에 기별을 넣어 저녁상을 보도록 일렀다. “누옥(陋屋)에 소찬(素饌)이라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불청객을 이리도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보은 땅에 민보군이 결성되었다는 소식은 없으니 야습 걱정은 않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룻밤이라도 편안히 객고를 푸시기 바랍니다.” “거듭 감읍할 따름입니다. 기왕 말씀 나온 김에 한 가지 묻습니다. 우리는 보은이 객지인지라 이곳 사정에 밝지 못합니다. 혹여 꼭 알아두어야 할 인물이나 관군의 동태에 대해 알고 계신 바가 있으면 듣기를 청합니다.” “제 말씀보다는 보은에서 기포한 충경포(忠慶包)의 도인 한 사람을 알고 있으니 그를 만나 물으심이 빠를 듯합니다. 장내리에 당도하여 대도소에 연통을 넣으시면 쉬 만나실 수 있을 겝니다. 호협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름은 신재길이라 합니다.” 때마침 밥상이 들어왔다. 기름 찬 없는 푸성귀 밥상이었으나 방짜 며느리가 지은 듯 찰지고 오달진 저녁상이었다. 둘은 주인이 일러주는 이름을 새기며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삐뚜름하게 뜬 상현달이 조족등(照足燈) 되어 밤길을 비춰주었다. 사흘 후면 보름이다. 군사들은 벌써 객지에서의 곤궁함도 잊은 채 서둘러 저녁을 마친 후 탈곡한 볏단을 보료 삼아 논바닥에 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이천포 군은 보은 읍내를 멀리 돌아 장내리로 향했다. 장내리에는 동학군의 총 지휘소 역할을 하는 대도소가 마을 뒤 옥녀봉을 배경으로 서 있었고, 그 앞의 너른 공터에는 초막 사백여 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무리 터전이 넓다 해도 그곳에는 이미 충청, 경상, 강원도에서 온 동학군들로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천포는 급한 대로 청산 쪽으로 향하는 보천강 변의 논배미 몇 군데를 정해 야영지를 마련하는 한편, 그길로 이창진과 한규석은 수접주를 모시고 해월선생을 만나기 위해 대도소를 찾았다. 그러나 해월은 거기에 없었고, 접사나 서기, 집사 등의 직분을 맡은 교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규석이 바쁜 일손을 막아 세워 신재길의 거동을 묻자 떠꺼머리 도동(道童) 하나가 길 안내를 자청하고 나섰다. “접주님을 만나시려면 저를 따라오시어요.” “신재길이라는 사람이 접주이신가?” “그렇사옵니다.” 아이를 따라간 곳은 대도소 뒤꼍의 싸리나무 사립문을 단 야트막한 초막이었다. 삼베적삼에 청색 전대(戰帶)를 두른 남자가 손에 쥔 총을 기름종이로 닦다 말고 일행이 들어서자 돌아섰다. 못 보던 총이었다. “소생이 신재길이오만 뉘신지요?” “초면에 실례가 많소이다. 이분은 경기도 이천의 수접주 어른이시고, 저희는 이천접의 접주와 접사의 직분을 맡고 있는 도인입니다.” 한규석이 같이 온 일행을 소개했다. 신재길이 황망히 총을 치우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먼 길 오셨습니다. 인사 여쭙니다. 보은 사는 신재길이라 하옵니다. 괴산에서 이천접의 전공이 눈부셨다 들었습니다.” “한울님이 도우셨지요.” “하온데 소생의 이름은 어찌 아셨는지요?” “오던 길에 학림리에서 유숙하였던 바 김교무라는 선비에게서 접주님의 고명을 들었습니다.” “고명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김교무 어르신이라면 제가 잘 압지요. 덕망이 높아 보은 땅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저를 면천해주신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한규석은 신재길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비를 면천해준 김교무도 대단하지만, 그런 신분의 사람을 접주로 임명한 해월선생의 파격적 인사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신분제를 타파하고 평등한 세상을 열고자 하는 그의 ‘다시 개벽’ 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증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이 예전에 노비였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신재길 바로 이 사람이었다. 제 입으로 면천되었다고 밝히기 쉽지 않을 텐데 그는 거침없이 자기 신분을 말했다. 놀라기는 수접주도 마찬가지였는지 기름을 만져 손이 더럽다며 한사코 물러나는 신재길의 손을 붙잡고 마냥 흔들어댔다. 수접주가 신재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해월도 대단하고, 김교무도 대단하고, 신접주 당신도 대단하오.” 수접주의 칭송에 신재길이 눈 둘 곳을 몰라 뚜렷거리며 말했다. “혹여 제가 무슨 도울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초면에 너무 경황이 없었구려. 우선 해월선생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자 하는데 어디 가면 뵈올 수 있을까요?” 수접주의 말에 신접주가 잠시 대꾸를 미루다가 입을 뗐다. “저희도 선생님 종적은 모릅니다. 워낙 조심성이 많은 분이라 행차 말씀을 하지 않으시지요. 하오나 모레 이곳에서 출정을 위한 치성식(致誠式)이 열릴 예정이오니 아마 그때 뵈올 수 있을 겝니다.” “이틀이야 못 기다리겠소. 하오면 충경포의 수접주 어른은 뵈올 수 있는지요?” “마침 출타 중인데 곧 오신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오시면 뵈올 수 있도록 말해놓겠습니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군요. 그런데 아까부터 손에 든 그것은 무엇이오?” 신접주가 기름종이에 싼 물건을 풀어 보여줬다. “이건 일본군이 메고 다니는 스나이더 소총입니다. 제가 소싯적부터 방포 놓는 것을 좋아해 화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속리산에 들어가 포수 노릇도 좀 했었구요. 이 총도 그래서 구한 것입니다. 그간 모아둔 병장기가 좀 있는데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신접주가 몸을 돌려 초막 안을 가리켰다. 셋이 흔쾌히 그를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는 여러 겹 단을 쌓은 선반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많은 화포가 진열되어 있었다. 신접주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었다. “이것은 포의 일종으로 극려백포(克慮伯砲), 회선포(回旋砲), 불낭기포(佛狼機砲,) 대완기(大碗器), 천황포(天黃砲)라 부르는 대포이며, 저쪽은 궁시(弓矢)와 시석(矢石) 같은 활이나 화살, 죽창, 마름쇠입니다. 이 앞에 모아둔 것은 화승총이라 부르는 천보총과 조총입니다.” 셋은 생전 처음 보는 화포에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이만한 무기라면 천하라도 얻을 수 있겠습니다그려.” 수접주의 말에 수집품을 자랑할 겸 수긍할 법도 한데 신접주의 대답은 의외였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겉보기엔 대단해 보여도 대포는 무게가 무거워 기동이 불편하고, 화승총 역시 신식 양총에 비한다면 목총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동학군이 갖춘 무장이라고 해봐야 화승총이나 활과 창이 고작인데, 관군이나 일본군이 가진 총은 독일제 모젤 총, 영국에서 만든 스나이더 총, 최근에 일본에서 개발한 무라다 총입니다. 화승총과는 성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그리 말씀하십니까?” 이창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한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입지요. 토총(土銃)인 화승총은 유효사거리가 고작 일백 보 남짓인데 이런 양총(洋銃)은 일천 보가 넘고, 화승총은 비바람이 불면 심지에 불이 붙지 않아 쏠 수 없지만, 이 총은 총알을 뒤에서 집어넣어 쏘는 후장식(後裝式)이라 하등 날씨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파괴력도 출중해 황소의 대퇴골도 흔적 없이 부숴버릴 수 있다 하옵니다. 한마디로 토총 백으로 양총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합니다.” 수접주가 기가 막혀 물었다. “지금 들고 있는 총이 바로 그 양총이란 말이지요?” “저도 양총의 성능이 믿기지 않아 어렵게 한 자루를 구해 살펴보는 중입니다. 다른 것은 대충 알겠는데 이것 한 가지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습니다.” 신접주가 들고 있던 총을 세워 총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수접주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재우쳐 물었다. “뭐가 그렇다는 말입니까?” “이 총구 안을 자세히 보십시오. 나선형으로 홈이 파인 것이 보이지요?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화승총은 전혀 이런 모양이 아닌데 말입니다.” 셋이 돌아가며 총구 안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총구 안에는 나선형의 줄이 여러 겹 새겨져 있어 오래 보고 있자니 눈알이 뱅글뱅글 돌았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신접주가 총을 선반에 얹으며 말했다. “나선형 줄을 새겼다는 것은 총알이 돌아나가도록 만들었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했는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 총에 맞는 탄환이 있다면 한번 쏴보고 싶지만 그게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넷은 무거운 마음으로 초막을 나섰다. “접주의 말이 정 그렇다면 지난번 괴산전투에서는 어찌하여 우리 이천포가 양총을 든 일본군과 관군을 이겼다 생각하시오?” 이창진이 은근히 치밀어 올라오는 부아를 눅이며 묻자 신접주가 진작부터 속에 쟁여둔 생각인 듯 쉽게 대답했다. “일본군의 숫자에 비해 동학군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는 게 첫째 이유일 것이고, 둘째는 꽹과리와 징을 치며 달려드는 소리에 겁먹은 비루한 관군이 황급히 성을 비운 탓이겠지요.” 신접주는 속리산을 누비던 포수답게 앞서 말했던 이천포 군의 괴산전투 승리가 말치레 공치사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창진이 괴산전투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던 동학군을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어찌 총을 당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정녕 일본군을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는 것이오?” “물론 방도야 있겠지요. 기습이나 매복으로 양총을 탈취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고, 산세를 이용해 불붙은 장태를 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오. 동학군은 지역 실정을 잘 아니까 천문지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고. 하지만 문제는 총이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설령 총을 구한다 해도 탄환까지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오. 화승총에 들어가는 납탄이야 저 같은 포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이런 후장식 총의 탄환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셋은 신접주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막힌 속이 더욱 답답해짐을 느꼈다. 무기의 열세를 절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도동이 달려와 보은 수접주의 도착 소식을 알렸다. 신접주가 뒤따르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레 있을 치성식에 오시는 해월선생께서 큰 비방을 내놓으실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천지신명이 돕고 한울님이 보살필 것입니다.” 넷은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보은 수접주를 만나기 위해 대도소로 향했다. (계속)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 -
마포교구, 역촌동 어려운 이웃을 위해 라면 100상자 기부지난 12월 27일, 마포교구에서는 연말을 맞이하여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 캠페인을 펼쳤다. 이번 캠페인으로 나눔의 손길을 전하며 따뜻한 온정을 나누었다. 천도교 마포교구는 이날 11시 마포교구가 위치한 역촌동 주민센터 등 지역 사회의 여러 단체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겨울철 추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 특히, 라면은 간편하게 끓여 먹을 수 있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선물로,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포교구는 연말연시를 맞아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한 캠페인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눔의 실천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마포교구 교인들은 "작은 나눔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나눔 활동은 사람을 한울님처럼 존중하는 천도교의 정신을 넓게 펼치고 지역 사회와의 연대감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데 힘을 보탰다. 라면 선물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나눔의 실천은 연말을 맞아 더욱 뜻깊은 시간을 선사하며,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캠페인에는 김산 도정, 장용덕 선도사, 김진순 마포교구장, 김정호 교화부장, 이정녀 여성회장, 이미희 경리부장 등이 함께했다. 지난해에는 쌀 50포를 전달하였으며 올해는 마포교구 교인들의 커피 성금과 연말을 맞이하여 모금한 성금을 전달했다. 김진순 마포교구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하며, 직접 차로 이동하고 짐을 들고 나르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김 산 도정님과 이미희 경리부장님께 특별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마포교구가 지역사회에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방정환어린이도서관 ‘다시 열리는 한마당’ 잔치 열려지난 24일, 제127주년 인일기념식과 함께 수운회관 5층 천도교중앙도서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려 대교당을 찾는 교인들에게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정환어린이도서관’ 재개관 홍보를 위한 '다시 열리는 한마당 잔치'는 <천도교인명대사전에서 ‘방정환’ 찾기>, <천도교 서울교구 작품 전시>, <천도교경전 한 구절로 서양 동화 읽기> 등으로 구성된 기념 전시와 도반과 함께 나누는 다과와 도담 등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에게는 기념품으로 ‘방정환 친환경 물병’ 등을 증정하였다. 준비한 기념품은 조기에 소진될 정도로 많은 참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후문이다. 이 행사에서 남연호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은 “천도교중앙도서관과 방정환어린이도서관을 역사적으로 소중한 동학∙천도교 자료 보존의 본분에 충실하며, 이를 바탕으로 스승님들의 위대한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하는 한 방편으로 방정환어린이도서관을 집안의 ‘거실’이나 동네 ‘카페’처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개방하고자 한다.”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남연호 도서관장은 방정환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순수한 본성을 찾아 가꾸면서 양천주(養天主)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참가한 일반시민 중 김순필 씨(서울)는 ‘동학 공부를 위해 앞으로 이곳을 많이 이용하겠다.’고 말하면서, ‘컴퓨터와 프린트기 등도 사용할 수 있어서 참으로 편리하겠다.’고 전망하였다. 한편 주영선 동덕(한강교구)은 도서관이 작지만 예쁜 북-카페라며, 앞으로 천도교인들이 마치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장소라며 고무적으로 평가하였다. 한편, 도서관 사서로 재직 중인 강선녀 동덕은 ‘이날 행사를 통해 드러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일반 시민이나 교인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앞으로 천도교중앙도서관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 경전 공부, 문화∙교양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문 연구자들을 위한 특별 연구실 개방∙운영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
포덕 165년 12월 29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지화지기설교 : 화암 김호성 선도사 -
다사다난했던 갑진년, 중앙총부 종무식포덕 165년 천도교중앙총부 종무식이 12월 30일 오전 11시 천도교수운회관 907호에서 열렸다. 이날 종무식은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청수봉전-심고-주문 3회 병송-격려사(현암 윤석산 교령)-종무사(이범창 종무원장)-심고 순서로 이어졌다. 윤석산 교령은 격려사에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한해동안 여러분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특히 올해 대신사 출세 200년이라는 큰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노력과 정성 덕분으로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내일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내년 3월이면 새로운 교령님이 오실 것입니다. 앞으로 교단 중흥을 이루는 데 중앙총부가 중심이 돼서 천도교의 앞날을 이끌어 주시길 당부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길 심고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종무사를 통해 "올해 종무사는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착잡한 마음입니다. 애도의 마음을 함께합니다. 올해 5월 9일 임시대회에서 교령님을 모시고 종무원장이 되었는데, 올해 대신사 출세 200년 사업을 잘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왔고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정성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일해왔습니다.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들께서 잘 해주셔서 모든 사업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서 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남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천도교 중앙총부는 1월 1일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신년배하식을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포덕 166년 새해의 힘찬 출발을 할 예정이다. -
제주항공 참사 애도의 심고문천도교중앙총부 애도의 심고문 12월 29일 오전 09시 03분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슬픔과 충격을 남겼습니다. 이번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 모습조차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어 비통하고 애절한 천포형제들께 진심으로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우주와 인간의 근본을 밝혀 주시어 모든 사람과 사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형체가 비록 없어지더라도 그 성령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과 영원히 함께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천포형제님들! 희생된 분들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성령으로 출세하시어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이번 사고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하며, 사회 각계각층과 협력하여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활동에 동참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번 사고로 인해 희생된 모든 분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며, 고통받는 모든 분들과 함께하며 기도합니다. 심고 포덕 165(2024)년 12월 30일 천도교중앙총부 -
인일기념일의 의미와 의암성사님의 숭고한 정신 되새기자12월 24일은 의암 성사께서 해월 최시형 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하는 인일기념일이다. 올해는 제127주년을 맞이하며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 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이날 인일기념일을 계기로 교단 중흥을 위한 굳건한 결의를 펼쳤다. 중앙대교당에서 봉행된 인일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 수정당 김명덕 여성회부회장의 청수봉전, 박징재 여성회장의 경전 봉독(인여물개벽설), 윤석산 교령의 기념사가 이어졌다. 윤석산 교령은 기념사에서 “의암성사님께서는 ‘천지와 해와 달이 가슴 속에 들어오니, 천지가 큰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이 큰 것이라, 군자의 말과 행동은 천지를 움직이나니, 천지조화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이러한 스승님의 가르침처럼 우리 천도교인이 모두 ‘자기 마음 한울’을 자각(自覺)한다면 우리의 염원인 교단의 중흥은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라고 하면서 “오늘날 우리 인류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정신적인 대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찍이 우리 수운대신사님께서는 ‘다시개벽’의 소식을 전하시면서, ‘문명의 대전환(大轉換)’을 예고하셨습니다. 우리 천도교는 이 위기를 생태문명으로의 전기(轉機)로 삼아, 모든 존재들이 차별받지 않고 거룩한 한울님으로 모심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추만대에 빛날 의암성사님의 의기(義氣)와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조를 지켜 순도 순국하신 그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의암 성사께서 생의 마지막에 남긴 유시를 되새기며 기념사를 마쳤다. 기념식이 끝나고 2부 문화공연은 천도교대학생단 조영은 단장의 사회로 이어졌다. 이날 기념공연은 ‘민족의 꽃’이신 의암 성사께서 ‘민중의 성자’이신 해월 신사께 도통을 이어받은지 127주년을 기념하여 천도교대확생단 단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이뤄졌다. 첫순서는 ‘천도교 대학생단 합창단’ 8명의 단원이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랑과 위로를 이야기하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와 고난과 어둠을 지나 빛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야기를 노래 ‘Butterfly’로 표현하여 참석한 교인들이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두 번째 순서에서는 대학생단 여성 4인으로 결성된 ‘천도퀸즈’의 무대가 이어져 추운 겨울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너와의 모든 지금’, 그리고 천도퀸즈와 스페셜 게스트로 이재선 청년회장이 함께 신명 나는 트로트 ‘날 봐 귀순’이 이어져 큰 박수를 받았다. 이번 인일기념일 행사는 청년 교인들의 빛나는 열정을 무대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다음은 제 127주년 인일기념일 기념사 전문이다. 기 념 사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기운과 함께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세밑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세월의 흐름을 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의암성사님께서 해월신사님으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으신 지 127주년이 되는 인일기념일입니다. 우리는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위대한 의암성사님의 삶과 사상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결의(決意)를 새롭게 다져야 하겠습니다. 의암성사님은 조선이 저물어가던 무렵인 포덕 2년(서기 1861년) 청주군 대주리 손씨 집안에서 서자로 탄생하셨는데, 신분 차별에 분노하며 젊은 시절 한때 울분으로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기가 남달랐던 의암성사님께서는 보국안민(輔國安民)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가르침이 동학이라는 말을 듣고 단번에 입도를 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날의 잘못된 습관을 단칼에 끊어버리고, 2년간 용맹정진하여 대도의 기초를 단단하게 쌓았습니다. 그 후 해월신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하루에 주문 3만독 송주로 끊임없는 독공 수련 끝에 천도를 체득하셔서 큰 인물로 거듭나셨습니다. 의암성사님께서는 동학혁명 당시 북접통령(統領)으로서 동학군을 지휘하며,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헌신하셨습니다. 비록 일본군의 개입으로 혁명의 기세는 꺾였지만, 개벽 세상을 향한 마음만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한때 천하대세와 선진문명을 살피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머물며 서양의 앞선 물질문명을 탐색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상은 물질문명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개벽의 바탕 위에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포덕 46년(서기 1905년) 12월 1일에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 하시는 용단(勇斷)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운명은 저물고 결국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게 됩니다. 나라를 잃은 후, 자주독립을 향한 성사의 강인한 의지는 드디어 3·1 대혁명으로 세계에 커다란 충격과 영감(靈感)을 주게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이 거사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당시 고통 속에 시달리던 식민지 민중들에게도 커다란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거대한 제국의 폭력에 당당히 맞서는 풀뿌리 민중의 위대한 힘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의암성사님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애는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구도자,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 위대한 교육자이면서 종교지도자, 3·1 대혁명의 영도자 등 그 참모습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풍운대수(風雲大手)의 삶이셨습니다. 그래서 일부 세상 사람들은 의암성사님이 당시 상황에 따라 용시용활로서 행한 일을 보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무어라고 해도 의암성사님이 발휘하신 탁월한 경륜(經綸)과 영도력(領導力), 시대를 내다보는 형안(炯眼)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이 나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의암성사님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간이 본래부터 품고 있는 ‘한울님 성품’으로 돌아가서 지상천국을 건설하자는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인류를 구원할 생명존중의 가르침이며, 더 나아가 우리와 함께 있는 지구행성의 만물을 살릴 수 있는 살림과 돌봄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또한 의암성사님의 성령출세설(性靈出世說)은 수운대신사님의 포덕장생설(布德長生說), 해월신사님의 향아설위설(向我設位說)을 이어받아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성령의 자각을 통한 영적 장생설(靈的 長生說)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출세의 진리를 체득할 때 우리는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또 의암성사님께서는 봉황각 49일 수련시에 “육신은 한때의 객체(客體)이며, 성령(性靈)이야말로 영원한 주체(主體)이므로, 성령이 주체가 된 삶을 살으라”고 하신 이신환성(以身換性)의 법설을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신환성의 가르침은 일제강점기에는 3·1대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으며, 현재의 우리에게는 신앙과 수도(修道)의 요결(要訣)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의암성사님의 이신환성 가르침은 대기번복(大氣飜覆)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염병과 전쟁, 기후 재앙 등으로 고통받는 인류와 만물을 구제할 한 줄기 활로(活路)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만약 의암성사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신다면 그 형형하신 눈빛을 빛내시면서, 우리들에게 아니 이 세상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의암성사님께서는 ‘천지와 해와 달이 가슴 속에 들어오니, 천지가 큰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이 큰 것이라, 군자의 말과 행동은 천지를 움직이나니, 천지조화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이러한 스승님의 가르침처럼 우리 천도교인이 모두 ‘자기 마음 한울’을 자각(自覺)한다면 우리의 염원인 교단의 중흥은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기후 위기를 비롯한 생태적·정신적인 대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찍이 우리 수운대신사님께서는 ‘다시개벽’의 소식을 전하시면서, ‘문명의 대전환(大轉換)’을 예고하셨습니다. 우리 천도교는 이 위기를 생태문명으로의 전기(轉機)로 삼아, 모든 존재들이 차별받지 않고 거룩한 한울님으로 모심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추만대에 빛날 의암성사님의 의기(義氣)와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조를 지켜 순도 순국하신 그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127주년 인일기념일을 계기로 우리는 의암성사님의 성령과 융합하여 이신환성의 삶을 살아가자는 말씀을 드리면서, 의암성사님께서 생의 마지막에 남기신 유시(遺詩)를 가슴 속 깊이 새겨봅니다. 쇠 몸인들 어찌 덥지 아니하리오. 세 번 나누고 합하는 연분을 지으니 늙은 용은 폐택으로 돌아가고, 철새는 가을 한울로 보내네. 손을 잡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못하니 이별하는 말인들 어찌 선명하리오. 앞 길에 더욱 어려움이 많으리니 뒷일을 여러 어진이에게 맡기노라.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우리는 의암성사님이 유시에서 당부하신 것처럼 뒷일을 책임져야 합니다. 천도교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내고, 침체된 교단을 중흥시켜 중원포덕을 넘어 세계포덕을 실현해내야 합니다. 이것은 천명(天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업(大業) 실현은 오직 우리의 믿음과 공경과 정성의 힘이 모일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제 얼마 후면 갑진년 ‘푸른 용의 해’를 마감하고 곧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새해에는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으로 동덕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한울님의 뜻과 함께 이루어지는 ‘만사여의의 해, 성공하는 한 해’가 되길 심고 드리면서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5(2024)년 12월 24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