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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9월 2일○ 기원전 31년,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를 맞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는 로마와 로마 영토에 대한 옥타비아누스의 세력을 확고히 하게 했다. ○ 1879년, 항일 독립투사 안중근(1879~1910) 출생.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목에서 태어나 일제의 침탈이 국권을 뒤흔드는 수준으로 확대되자 항일무장투쟁에 나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초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이자 초대 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사살하는 의거를 단행했다. ○ 1919년, 천도교청년회교리강연부 창립. 1920년 천도교청년회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도교청년회는 같은 해 개벽사를 설립하고 종합잡지 『개벽』을 창간하고 계속해서 『부인』 『어린이』 『신여성』 『조선농민』 『별건곤』 『학생』 『농민』 『혜성』 『당성』 『제일선』 『신경제』 『당우』 등을 이어서 발행함. ○ 1923년, 일제, 간토 대지진을 빌미로 조선인들 학살. 9월 1일 일본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대지진 직후, 일본 사회 일부에서 조선인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확대되었고, 조선인 거주지에서 집단 학살 발생. 일본 정부와 치안 당국, 자경단(민간 자율방범대)은 학살을 방조하거나 주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 ○ 1945년, 연합군 사령부,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 발표.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신속한 통치 필요성,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와 냉전의 시작,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침. ○ 1945년, 일본, 도쿄만에 정박해 있는 미 해군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연이어 떨어진 후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한 것은 8월 15일이지만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사인한 것은 이날이다. -
오늘의 소사(小史) ○ 9월 1일○ 1983년,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이 일어나다. 뉴욕에서 서울로 향하던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되어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복잡한 국제 관계와 군사적 긴장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 1918년, 만해 한용운, 불교 잡지 『유심』 창간. 『유심』 창간호에는 국판 64쪽에 한용운의 시와 평론을 비롯해 최린, 최남선, 이능화의 논문이 실렸다. 1918년 12월 1일 통권 3호로 종간되었다. ○ 1939년, 독일, 폴란드 침공. 1939년 9월 1일부터 10월 6일까지 약 한 달 동안 폴란드와 나치 독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제2차 세계대전 개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건이다. -
동학 정신과 3.1혁명 발자취 되새긴 임실 탐방포덕 166(2025)년 8월 26일, 중앙총부 강병로 종무원장과 전명운 교화관장은 독립운동가 삼혁당 김영원 선생의 순국 106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임실을 찾았다. 추모식을 마친 후, 윤철현 임실교구장의 안내로 임실군 청웅면 일대에 남아 있는 천도교 유적지를 탐방하며 동학과 3·1혁명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3·1혁명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자암 박준승 선생의 생가였다. 박준승 선생은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으로 활약하였고, 이후 전남 장성군 천도교 대교구장을 역임하며 교단의 교세 확장에 힘썼다. 1919년 3월 1일에는 의암 손병희 성사와 함께 독립선언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그 공훈으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복원된 생가와 기념광장에서 일행은 선생의 굳건한 신앙과 항일 정신을 기리며, 오늘날 천도교인의 길과 사명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이어 방문한 해월신사 설법 터는 임실 지역에 처음으로 동학 교리가 전파된 곳으로, 해월신사가 1873년 35일간 설법을 펼치며 교단의 뿌리를 내린 자리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재봉기 시기, 해월신사가 머물며 교단과 민족의 장래를 깊이 고심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해월신사 설법 터 표지석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전북 임실군 청웅면 옥석리 1137번지 해월신사 동학교리 설법장소 임실군에 동학이 처음 포교된 것은 1873년(표지석에 1878년으로 쓰여 있는 것은 오류) 3월이다. 동학의 2세 교주 해월 최시형 성생이 장수교인 김신종을 데리고 주치리 새목티 허선의 집에서 35일간 설법을 시작하신 것이 처음이며 강진면에서 15일간 설법을 하였다. 해월신사 은둔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 재봉기 이후 우금치 전투 등 격전이 벌어지는 시기의 대부분을 여기서 머물며 상황을 주시하였던 곳이다. 11월 25일 김제 원평에서 전봉준과 함께 손병희 동학군이 후퇴하여 갈담을 거쳐 찾아온 손병희(3세 교주)를 만나 12월 초 충청 지역으로 도피하였다. 해월신사가 머물던 은둔지는 지금은 고요한 산자락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교단과 민족의 앞날을 깊이 고민했던 해월신사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탐방단은 표지석 앞에 서서 옛 자취를 더듬으며, 천도교가 걸어온 길을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갈지를 되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
소박하나 굳건한 시천주의 발걸음, 임실교구 하계 기도회임실교구(교구장 윤철현)는 포덕 166(2025)년 8월 22일(금)부터 24일(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임실교당에서 하계 기도회를 열었다. 임실교구 교당은 지난 포덕 164(2023)년 11월 국가등록문화재 제799호로 지정되어 예전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 복원을 기념하여 봉고식도 치른 바 있다. 현재 임실교구 교인 가운데 8명이 봉고식 이후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다. 첫날인 22일 오후 5시 임실교당에 모인 교인들은 개회에 앞서 교당과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마음을 모았다. 이어 기도회 일정 안내와 더불어 ‘천도와 유불선’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저녁 9시에는 기도식에 이어 자유토론을 진행하며 기도회 첫날을 차분히 마무리하였다. 23일 새벽 4시 30분, 교인들은 기상과 동시에 5시 기도식에 참여하며 하루를 열었다. 이어 주문 수도와 아침 식사, 식사 후 주문 수도, ‘주문에 담긴 생명 사상’을 주제로 하는 강의와 토론이 마련되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박희숙 선도사의 지도로 천덕송 함께 부르기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주문 수도와 ‘명명기덕 염념불망’, ‘천도교 수도법’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저녁 식사 이후까지 이어졌다. 첫날에 이어 둘째 날에도 자유토론 시간을 두고 교단과 교구 발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셋째 날인 24일에는 5시 기도식과 주문 수도를 마친 후 임실교구 발전 방안 논의에 집중하였다. 이어 시일식을 봉행하고 점심 식사 후 유적지 순례를 끝으로 3일간의 기도회를 마쳤다. 임실교구는 동학농민혁명과 3·1혁명의 중심지로서, 지역사와 교단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겨왔으며, 이번 하계 기도회는 그 역사적 정신을 오늘에 이어가고, 미래 교단의 활로를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
제115주년 국치일 맞아 대한민국 독립선열 합동 추모대전 개최제115주년 국치일을 맞아 대한민국 독립선열 합동 추모대전이 포덕 166(2025)년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엄숙히 거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사)독립유공자유족회가 주최하고 (사)한국민족사회단체협의회가 후원했으며, 박인준 교령을 비롯해 각계 사회단체 대표와 관계자, 청년, 시민들이 참석해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뜻을 되새겼다. 행사는 국민의례와 독립운동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되었으며, 이어 이날 행사의 의의를 담은 동영상을 다 함께 시청했다.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국치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치욕의 날이며, 독립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해 민족정기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경로 한국민족사회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경과보고에서 국치일 추모행사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며, 민족사의 교훈을 후세에 올바로 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독립유공자유족회 박석무 상임고문은 1945년 12월 23일 순국선열 추념대회에서 김구(金九)가 낭독한 추념문 일부를 현대어로 옮겨 낭독했다. 이날 행사에 종교계 수장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한 박인준 교령은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민족이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국치일로, 국론 분열과 국권 상실의 아픔을 남긴 역사적 교훈의 날”이라고 밝히고 “광복 80년이 되었음에도 일본의 침략 야욕은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천도교는 동학혁명과 3·1독립혁명, 6・10만세운동, 멸왜기도운동, 민족운동, 민주화운동에 가진 것을 다 바쳐 헌신하였으며, 앞으로도 이 정신을 되살려 보국안민, 광제창생의 정신으로 성력을 다 바쳐 나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비상시국회의 김상근 상임고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자주통일평화연대 이홍정 상임대표의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부영 이사장,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 등도 추념사에 나서 민족적 단결과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연세대학교 정예슬 총학생회장이 결의문을 낭독하며, “청년 세대가 독립선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롭고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국치일은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제로 빼앗은 치욕의 날로, 이후 독립운동은 3·1독립혁명, 무장 독립투쟁 등으로 이어지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냈다. 이번 행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치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다짐 속에 막을 내렸다. -
오늘의 소사(小史) ○ 8월 31일○ 1957년, 말레이시아 연방,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 말레이시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8월 31일을 ‘메르데카 데이’라 부르며 기념하며, 매년 8월을 ‘메르데카 먼스’로 지정해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를 이어간다. ○ 1997년,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 20살에 왕세자비가 된 후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숱한 이야깃거리를 안고 살아온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비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지 1년 만에 36살로 생을 마감했다. ○ 2002년, 태풍 ‘루사’ 전국 강타. 8월 31일 오후 6시경 전남 고흥군에 상륙한 태풍 루사는 9월 1일 오후 3시 강원도 속초 지역을 지나기까지 한반도를 관통하며 전국적으로 사상 초유의 피해를 주었다. 인명피해 321명, 재산피해 5조 1,479억 원이 발생하였다. -
고(故) 인성당 정운벽 선도사 영결식 봉행서울교구는 포덕 166(2025)년 8월 30일 오후 8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인성당 정운벽 선도사의 영결식을 봉행하였다. 윤태원 전 교구장의 집례로 봉행된 영결식은 개식, 청수봉전, 심고, 주문 3회 병송, 정운벽 선도사의 약력 소개, 위령문 낭독, 조사, 위령송 합창, 분향, 유족 대표 인사, 심고, 폐식 순으로 이어졌다. 영결식장에는 많은 교역자와 교인,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삶을 추도하였다. 정운벽 선도사는 포덕 63(1922)년 1월 황해도 옹진군 남천리에서 출생하였다. 포덕 105(1964)년 중앙총부로부터 인성당 당호를 제수받고 포덕 111(1970)년 여성회본부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는 한편, 서울교구 여성회에서도 지속해서 활동하여 여성회 감사,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78세가 되던 포덕 140(1999)년에는 중앙총부로부터 포덕사에 선임되고 이듬해에는 선도사에 선임되었다. 만 100세가 되던 지난 포덕 163(2022)년에는 서울교구 주관하에 중앙대교당에서 상수연(上壽宴)을 봉행하여 중앙대교당에서 생신 잔치를 연 최초의 교인이 되었다. 정운벽 선도사는 평소 “정말로 포덕이 잘 돼서, 우리 천도교가 창생을 건지는 그러한 천도교가 되고, 국교가 되고, 정말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며 한결같은 믿음으로 교인들의 귀감이 되어왔다. 유족으로는 장녀 박태자, 장남 박성기 선도사, 차남 박형기, 차녀 박영숙, 큰손자 박현구, 손녀 박우정, 작은손자 박준구가 있으며, 큰 외손자 민인기, 작은 외손자 민순기를 두고 있다. -
고(故) 진성당 최말란 선도사 영결식 봉행고 진성당 최말란 선도사의 영결식이 시원포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포덕 166(2025)년 8월 19일 오후 9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봉행되었다. 영결식은 천도교 의식에 따라 엄숙하게 봉행되었으며, 최말란 선도사의 약력 소개에 이어 박인준 교령의 조사, 최상락 용담수도원장의 조사가 진행됐다. 이후 위령송 합창과 분향, 마지막으로 유족을 대표하여 김성환 연원회 의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영결식에는 강병로 종무원장을 비롯한 중앙총부 교역자와 많은 교인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고인의 삶을 기렸다. 최말란 선도사는 포덕 64(1923)년 6월 경북 경주시 현곡면에서 태어나 포덕 101(1960)년 입교하였으며, 이후 평생을 천도교 신앙과 교단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포덕 124(1983)년 환갑을 맞아 용담정에서 100일 독공 후 영통을 얻었으며, 포덕 131(1990)년 대신사 태묘 묘비 제작에 애쓴 공로로 중앙총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포덕 138(1997)년에는 대신사님 장남(세정)의 순도지인 옛 영양관아터 흙을 채취하여 부인 강릉김씨 묘와 합장으로 안장하였고, 포덕 139(1998)년에는 울산시 유곡동 여시바윗골 대신사님 유허비 제작을 위해 특성금을 헌납한 공로로 유허비 제막식에서 공로패를 받았다. 또한 여시바윗골을 사적지로 보존하는 성역화 사업에 앞장섰으며, 포덕 141(2000)년에는 시원포 선도사로 추대되었다. 같은 해에 용담정 내 대신사님 존영 우측의 향목 병풍을 기증하고 포덕 148(2007)년에는 여시바윗골 대신사 유허비 공사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등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포덕 149(2008)년 12월 완공된 용담수도원 내 진성관은 전액 최말란 선도사의 특성금으로 건립됐다. 또한 포덕 154(2013)년에는 대신사 생가 복원 공사의 기초설계도를 작성해 경주시청 문화과에 제출함으로써 대신사 생가 복원에 일조하였다. 포덕 155(2014)년 3월 여성회 창립 90주년 행사에서 공로패를 받았으며, 이 밖에도 30여 회 이상의 헌정 사례를 남겼다. 이날 영결식은 평생을 시천주 신앙의 길에서 성실과 헌신으로 살아온 고인의 삶과 대신사 성역화 사업에서 남긴 빛나는 업적을 되새기는 자리였다. -
동학학회 제57회 추계학술대회, “동학과 현대”의 길을 묻다동학학회가 제57회 추계학술대회를 열고 ‘동학과 현대’를 주제로 철학·경제·문화·문학 전 영역에서 동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동학학회(회장 조극훈)는 8월 29일 수운회관 8층 천도교종학대학원 강의실에서 교단 안팎의 연구자와 교역자, 교인들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술대회를 열고 동학의 가르침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가 될 수 있는지를 성찰했다. 조극훈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분이 참석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강병로 종무원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박인준 교령은 “오늘 학술대회 준비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동학 천도교를 흔히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한다. 이는 동학 천도교가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치를 담고 있으며, 미래를 향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술대회 주제를 ‘동학과 현대’로 한 것은 많은 면에서 동학 연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며,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현대 동학에서 찾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오늘 학술대회에서 밝혀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동학학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정희 전 교령은 "동학학회는 지난 30년간 많은 논문을 생산하고 지속해서 발표해왔다. 특히 오늘 학술대회의 주제인 '동학과 현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동학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서 구현되고 확산되는가에 대해 심층적인 내용이 오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동학과 현대, 오늘의 문제를 비추다 기조강연은 임상욱 교수(숙명여대)가 맡았다. 「동학의 오늘: 우리 삶을 관통하는 상생의 길」에서 임 교수는 인내천, 만물일체, 후천개벽 사상을 현대 사회의 위기와 연결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교육 위기의 뿌리에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도구화한 문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며 “동학의 상생 철학은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근본적 자원”이라고 말했다. 특히 교육 현실을 언급하며 “아이들은 놀이와 성장을 통해 배워야 하지만 경쟁 중심 사회는 아이들의 건강과 창의성을 해치고 있다”며, 동학의 눈으로 본 교육은 생명 존중의 실천임을 강조했다. 그는 “동학은 민중운동의 역사적 성격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시민운동과 세계 시민사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동학의 ‘오늘’을 곧 상생의 길로 규정했다. 제1주제인 경제 영역에서는 최배근 교수(건국대)가 「모두를 위한 경제: 경제민주주의의 실현 방안」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가 지난 세대 동안 겪어온 불평등 구조와 그로 인한 저출산, 노인 빈곤 문제를 지적하며, “경제민주주의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삶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김영진 교수(경희대)는 “경제민주화 개념의 역사적 맥락 설명이 부족하다”고 했고, 이관재 교수(공주대)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오늘에 적용하면 모든 국민이 경제적 권리의 동등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제2주제 문화 영역에서는 성지윤 교수(평택대)가 「동학농민혁명의 디지털 서사 콘텐츠화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는 “역사와 게임 콘텐츠의 결합은 민중의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일”이라며, 교조신원운동, 고부 봉기, 전주 화약, 우금치 전투 등을 게임 서사로 구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토론자 우수영 연구원(경북대)은 “공공역사적 가치가 단순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정진화 교수(성신여대)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캐릭터와 배경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토론자의 의견은 동학농민혁명 콘텐츠가 오락이라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와 민중의 열망을 디지털로 구현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신동엽과 수운, 언어와 영웅 서사로 만나다 제3주제 문학 영역 발표자로 나선 김응교 교수(숙명여대)는 「게임 이후 읽는 신동엽 ‘좋은 언어’와 동학의 천어(天語)」에서 신동엽의 시와 동학 사상의 만남을 탐구했다. 김응교 교수는 “조용히, 당신의 자리를 아프게 눕지 않게 하라”는 시 구절을 통해 폭력적 언어가 아닌 낮은 자의 언어가 민주적 소통을 가능케 한다고 풀이하며, 해월 최시형의 천어 개념과 연결 지었다. 김춘옥 교수(고려대)는 ‘낮은 곳’의 의미 보강을 요구했고, 송봉구 교수(영산대)는 “개벽은 정신적 차원을 넘어 하늘과 땅의 실질적 변화까지 포함해야 한다”며 개벽 사상의 확장을 강조했다. 제4주제인 철학․사상 영역에서 최문형 교수(성균관대)는 「동학사상과 문화유전자 – 수운의 영웅 서사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그는 수운 최제우의 생애를 영웅 서사 이론과 문화유전자(memetics) 개념으로 해석하며, 동학을 한국적 범주를 넘어 문명사적 대안으로 조명했다. 황묘희 교수(인천대)는 “문화유전자 개념의 설명과 구체적 맥락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했고, 정혜정 교수(동국대)는 “서구 영웅 패턴의 단순 적용은 한계가 있다”며, 수운을 순교자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학문적 소통, 교단과 사회를 잇다 종합토론에서 안외순 교수(한서대)는 이번 학술대회를 “새로운 소통의 학술회의”라고 규정했다. 안 교수는 “‘동학과 현대’라는 주제에 걸맞게 경제민주화, 디지털 게임, 신동엽의 시, 문화유전자론 등 새로운 주제를 통해 동학을 오늘과 연결하려 했다”며, 외부 전공자와 동학 연구자가 균형 있는 소통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이번 대회가 경술국치일에 열린 것 또한 “동학을 통해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유의미한 방식이자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의 소감도 이를 뒷받침했다. 동두천교구 황규만 동덕은 “교단 안에서 풀지 못한 고민에 외부 연구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 지금은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동교구 성강현 교구장은 “경제, 문화, 문학, 철학을 아우른 이번 세미나는 동학이 과거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대안임을 확인시켜주었다”며 “토론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수준 높은 학술대회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동학학회 제57회 추계학술대회는 동학이 여전히 ‘오래된 미래’로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동학학회는 앞으로도 교단과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속에서, 동학의 현대적 의미와 미래적 비전을 더욱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
오늘의 소사(小史) ○ 8월 30일○ 1785년, 중국 청대의 정치가 임칙서(1785~1850) 탄생. 청의 고위 관료 가운데 드물게 청렴하고 유능했던 인물로, 청에 들어오는 영국의 아편 밀수를 강경하게 단속했다.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아편전쟁이 발발했다. ○ 1882년, 임오군란 후 조선-일본 간 제물포 조약 체결. 조약에 따라 공사관 수비라는 명목으로 일본은 1개 대대를 한성에 파견. 이에 이미 3천 명의 청 군대가 조선에 주둔해 있는 가운데 양국 간 무력충돌의 위험이 증대되었다. ○ 1918년, 러시아 블라디미르 레닌 피격. 범인으로 지목된 파니 카플란이라는 여성은 레닌을 반역자로 여겨 암살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레닌은 그로부터 6년 뒤 발작 증세로 사망했으며, 이는 총상 후유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 ○ 1963년, 미국 워싱턴-소련 모스크바 간 핫라인 개통. 국방부 핵전쟁 정책 담당관이었던 토머스 셸링의 아이디어로, 미국에 방문한 흐루쇼프 총리가 이 제안을 수용하면서 성사.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핫라인 확보는 양측의 지상과제로 급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