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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무은담-동학 교단 재기의 바탕을 마련하다영월에 찾아온 정선 사람 유인상(劉寅常)이 해월 신사를 뵙고 이내 동학에 입도했다. 해월신사께서 신미년 이필제 난을 겪고 영월 직동으로 숨어들어 온 이후, 지역적으로 가까운 정선의 교도들은 해월 신사와 지속적으로 왕래를 하게 된다. 이러할 때 직동을 방문한 유인상을 해월 신사께서 직접 포덕하였고, 이후 유인상이 그간에 정선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포덕한 사실을 높이 사, 이 지역의 도접주(道接主)에 임명하였다. 유인상이 어떤 이유에서 영월의 산간 마을 직동을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유인상의 증손인 유돈생 씨의 증언에 의하면, 유인상의 어머니, 곧 유돈생의 고조할머니가 ‘박씨’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증언을 토대로 족보를 확인한 결과, 성씨가 박씨인 것은 분명한데, 본관이 명기되어 있지 않았다. 하여 유인상과 박용걸이 내외종(內外從) 간이 아닌가, 추정할 따름이다. 따라서 외가 마을을 찾아온 유인상이 해월 신사를 만나게 되었고, 동학에 입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유인상은 1843년생이다. 그러니 해월 신사보다 16년 연하가 된다. 또한 해월 신사를 만나 동학에 입도한 1871년은 그의 나이가 28세 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은담(霧隱潭)이라는 이름과 산수가 좋은 태백산을 찾아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학문과 재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시골 양반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이 곤경에 처한 해월 신사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후원자가 아닐 수 없었다. 유인상이 살았다는 무은담은 정선군 남면 문곡리에 위치해 있다. 무은담 앞으로는 고한읍 갈래천에서 발원한 계곡의 물이 흐르고 있다. 개천 건너편에는 높은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그런 까닭에 이 개천에서는 늘 물안개가 피어올라 앞산 봉우리를 휘감고 있어, 그 풍광이 마치 무릉도원과 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안개가 늘 피어올라[霧] 그 안개 속에 숨어 있는[隱], 그런 못[潭]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도 ‘무은담’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을 현지의 사람들은 ‘무른담’, ‘물은담’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상에는 없는 지명이다. 유인상이 살던 정선의 무은담과 영월 직동은 그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 아니다.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뚫렸지만, 작은 산길 소로로 무은담에서 벌어곡을 지나 자울재라는 고개를 넘고 함백(咸白)을 거쳐, 영화 「엽기적 그녀」 촬영지가 있는 길운산(吉雲山) 옆으로 난 고개를 넘으면 직동 바로 아래 동네인 큰터 골짜기를 만난다. 이렇듯 산간 소로를 통해 유인상은 동학 선생인 해월 신사께서 직동 박용걸의 집에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만났던 것이다. 이후 해월 신사는 유인상을 따라 정선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게 된다. 또한 영월 소밀원에서 어렵게 사는 대신사 유족들을 정선으로 모셔올 계획을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이 『도원기서』에 기록되어 있다. 待明日 黃昏運送爲計矣 旌善人劉寅常將來 與寅常終夜相議 而問於世淸曰 或東或西乎 旌善姑未去矣 寅常答曰 事將迫矣 吾當速去 師家保護之策 先爲周旋也 願接長中 誰某來之 則周旋之財送之矣 因爲入去 其日薄暮 收其家庄之物 或負或戴 前呼後携 師母氏改男服而着冠 林生負之 處子二人 以着童子之服 主人倍師母 而隨後洙及聖文 擔負以導前向 朴龍傑之家 正月二十八日也 寅常還于本家 厥明日 卽往辛鳳漢之家 以大家救給之策 言之則鳳漢卽備錢二十金 給送主人及洙與聖文來到 寅常處爛熳相議 出於不得已 思之則道之 先入者 只在乾川洞 金谷道人洙使聖文來于洪錫範家 以大家移遷之事 言之則錫範落心千萬 莫知何爲 請來安時默洙曰 老兄之修道 自襄陽來矣 今番襄陽之事 出於亂法亂道之根也 是所謂出於爾者 反乎爾者也 吾 則客地 孤踪束手無策 故大家救急之道 難處也 今於老兄之誠勸 一時救急如何 時默曰 接長之言 實是 爲師家之言也 情力爲矣 及於明日 以十緡錢言之 洙責曰 十緡錢雖爲足矣 然而師家之所率 至於六七口也 以些小之物 何以保用乎 揮却以去 越明日 金敬淳錢三十兩 負來中 錢十兩時默保助十兩 錫範保助十兩 敬淳保助云 先時辛未三月 師母氏來在錫範之家 三朔云云 旌善人辛錫鉉 入道於聖文 崔重燮振 燮入道于洙 至三月初十日 寅常來參先生祭祀 其時主人 使洙亦以悔過之意 作發明章 告祝 旌善收合錢五十金 買家基於永春獐峴谷 移遷安接其時 朴龍傑 之誠力 出於自然之理也 다음날을 기다려 황혼 녘에 옮기기로 계획을 세웠다. 정선(㫌善) 사람 유인상(劉寅常)이 오니, 인상과 더불어 서로 의논하고, 세청(世淸)에게 물어 말하기를, “동쪽으로 가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서쪽으로 가겠는가? 정선(㫌善)으로는 아직 갈 수가 없다.” 하니, 인상(寅常)이 대답해 말하기를, “일이 매우 긴박합니다. 제가 빨리 가서 사가(師家)를 보호할 계획을 먼저 주선해 보겠습니다. 접장(接長)들 중에 누가 오든지 주선하여 물건을 보내시지요.” 이렇듯 의논을 하고 떠나갔다. 그날 저녁에 집안의 여러 물건을 챙겨 혹 짊어지고 혹 머리에 이고 하여, 앞에서는 부르고 뒤에서는 이끌며, 사모님은 남자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관(冠)을 쓰고, 임생(林生)은 짊어지고, 처자(妻子) 두 사람은 동자(童子)의 옷으로 입고, 주인은 사모님을 모시고 뒤에서 따라오고, 강수(姜洙)와 성문(聖文)은 짐을 짊어지고 앞에서 인도하며 박용걸(朴龍傑)의 집을 향해 갔다. 이때가 정월(正月) 28일이었다. 유인상(劉寅常)이 본가(本家)로 돌아가, 그 다음날로 즉시 신봉한(辛鳳漢)의 집으로 가서 큰집[師家]을 구급(救急)할 방책을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봉한이 즉시 돈 20금을 준비하여 보냈다. 주인과 강수, 전성문(全聖文)이 유인상(劉寅常)의 집에 와서 서둘러 상의(相議)를 하니, 부득이 나온 생각이다. 도(道)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다만 건천동(乾川洞) 금곡도인(金谷道人)들이었다. 강수가 전성문(全聖文)으로 하여금 홍석범(洪錫範)의 집에 오게 하여 사가(師家)를 옮길 일을 이야기하니, 홍석범(洪錫範)이 낙심천만(落心千萬)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더라. 안시묵(安時默)을 오게 하여 강수가 말하기를, “노형은 수도(修道)하기를 양양(襄陽)의 일을 살펴보건대, 난법난도(亂法亂道)의 근원이 여기에서부터 나왔소. 이 일이 이곳에서 나와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소. 우리는 즉 객지(客地)이고, 또 외로운 사람들이라, 속수무책(束手無策)이오. 사가(師家)를 구할 일이 어려운 처지입니다. 지금 노형이 정성으로 권하여 한때의 급함을 구함이 어떻겠소?” 안시묵(安時默)이 말하기를, “접장(接長)의 말씀이 실로 사가(師家)를 위하는 말씀입니다. 뜻과 힘을 다해 하겠습니다.” 다음날에 이르러 돈 열 꿰미를 주며 말을 하니, 강수가 책망하여 말하기를, “돈 열 꿰미가 비록 족하나, 사가(師家)의 거느린 식구가 예닐곱이라, 사소한 물건으로 어찌 보용(保用)할 수 있겠소?” 물리쳐 가게 하였다. 다음날이 지나서 김경순(金敬淳)이 돈 30냥을 짊어지고 왔다. 그중 10냥은 안시묵(安時默)이 도와준 것이고, 10냥은 홍석범(洪錫範), 또 10냥은 김경순(金敬淳)이 도와준 것이라고 말하였다. 먼젓번 신미년(辛未年, 1871년) 3월에 사모님이 홍석범(洪錫範)의 집에서 석 달을 보냈다고 말하였다. 정선(㫌善) 사람 신석현(辛錫鉉)이 전성문(全聖文)에게 입도(入道)하고, 최중섭(崔重燮), 진섭(振燮)이 강수에게 입도하였다. 3월 10일에 이르러 인상(劉寅常)이 와서 선생의 제사에 참례하였다. 이때 주인이 강수로 하여금 참회의 뜻으로 ‘밝음을 나타내는 글(發明章)’을 짓게 하고 고축(告祝)을 하였다. 정선(㫌善)에서 돈 50금을 수합하여 영춘(永春)에서 장현곡(獐峴谷)에 집터를 사서 옮겼다. 그때 박용걸(朴龍傑)이 정성을 들이고 힘을 썼다. 이는 자연의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 - 『도원기서(道源記書)』 해월 신사께서 영월 직동에서 거처를 정선으로 옮긴 이후, 유인상의 집을 중심으로 한 정선 지역은 동학 교문의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른다. 특히 대신사 유족을 비롯하여 많은 동학 도인들이 모여들고, 또한 해월 신사 역시 새로운 계획과 함께 동학 교문을 일으키려 시도한 지역이 된다. 어느 의미에서 정선 무은담은 동학 교단 재기의 중요한 발판이 되는 지역이다. 지금은 정선 곳곳에 이곳 무은담을 비롯하여 동학과 관련된 지역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무은담, 싸내, 적조암 등에 정선문화원이 마련한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그 옛날 동학 도인들이 모여 활동을 한 곳임을 나타내고 있다. 무은담은 유인상의 집을 중심으로 동학 재건의 바탕이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싸내는 대신사 사모님이 줄곧 거주하시다 환원한 곳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적조암은 해월 신사를 비롯한 동학의 인사들이 49일 기도를 행한 곳이다. 수암 염상철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부고] 유지재단 북암 김선배 사무국장 장인상, 김말곤 선생 환원유지재단 북암 김선배 사무국장의 장인이자 김진미 동덕의 부친 김말곤 선생이 환원하였다. 빈소는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25일 11시 30분 발인한다. 유족-배우자 최옥금, 아들 김현기, 며느리 김정심, 딸 김선미, 김진미, 사위 김문환, 김선배, 손 김기준, 김기현, 김태민, 김기훈, 김지혜, 김현지, 김은진, 김종우 교단의 여러 동덕들은 고인의 성령출세를 심고하며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있다. 부고안내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fd.fdnara.com/share/funeralNotice/visitor/FNTC000007918/MUN000064324 -
[특별기고] 한울님의 감응과 은덕(恩德)이 온누리에 가득하시기를천도교신문은 포덕 167년(2026)을 맞아 새해의 뜻을 함께 나누고자 천도교 각 기관장의 신년 인사를 인터넷신문을 통해 게재한다. 이번 신년 인사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다짐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제출된 원고는 도착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게시되며, 이를 통해 동덕 모두가 포덕 167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경하는 교인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포덕 167년(2026), 병오년 새해 아침이 힘차게 밝았습니다. 한울님의 감응과 은덕(恩德)이 온누리에 가득하시기 바라며, 우리 사회가 심화기화(心和氣和)로 천심을 회복하여, 한울님의 덕이 온 세상에 펼쳐지기를 심고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질서를 지키고 사회 안녕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조화와 화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반드시 분단 조국이 하나로 연결되는 길이 트일 것을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천도교는 시대적 사명을 새롭게 자각하고,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의 정신을 살려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의 길로 쉬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한울님 감응으로 만복이 깃들기를 심고 드립니다. 포덕 167년 새해 아침 교령 박 인 준 심고 -
한울연대, 2026년 정기총회 개최천도교의 생명·평화·영성의 교리를 실천하는 환경단체인 한울연대가 2026년 2월 7일(토)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대전 한밭신도교구에서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이번 정기총회에서는 2025년도 사업 보고와 결산, 2026년도 사업 계획과 예산안 심의 등 주요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회원들은 한울연대의 활동 방향을 함께 점검하고, 앞으로의 연대와 실천 과제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총회 이후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따뜻한 식사를 나누며 교류의 시간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울연대 정기총회는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고 공동의 실천을 다짐하는 자리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대된다. -
[특별기고] 복지재단을 바로 세우는 것이 지상천국의 완성의 길입니다천도교신문은 포덕 167년(2026)을 맞아 새해의 뜻을 함께 나누고자 천도교 각 기관장의 신년 인사를 인터넷신문을 통해 게재한다. 이번 신년 인사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다짐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제출된 원고는 도착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게시되며, 이를 통해 동덕 모두가 포덕 167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천도교 동덕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시천주복지재단은 교인들의 복지 실현을 위해 주옥경 사모님의 눈물 젖은 유산을 처분한 자금으로 양평요양원을 매입함으로써 사실상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설립된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복지재단이 교인들의 복지실현은커녕 오히려 교단의 근심거리로 화하여, 교인 여러분께 실망과 안타까움을 안겨드렸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때에 윤석산 전 교령님과 박인준 현 교령님께서 한울님과 주옥경 사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복지재단으로 굳건히 세우라는 소임을 주셔서 부족한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유지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여 양평의 시설들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양평에는 여러 사정으로 요양원 대신 한울재가복지센터와 ‘꽃피는 궁을촌’이라는 이름의 양로생활공동체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복지재단의 금년도 사업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양평 한울재가복지센터와 꽃피는 궁을촌 양로생활공동체가 상반기 중에 안착하여 하반기부터는 흑자 경영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병오년 올 한해가 저물기 전에 유지재단으로부터 차입한 금액을 모두 상환할 벙법을 찾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저와 임원진들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굳은 사명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올 한해 한울님께 심고를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 동덕 여러분!! 정부에서 천도교에 복지재단 설립 허가를 내어준 까닭은 전국의 천도교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복지재단을 통해 대한민국 복지사회 구현에 일조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실제 우리 천도교의 4대 목적 또한 포덕천하·광제창생·보국안민·지상천국건설입니다. 우리 천도교인 신앙은 이 4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살기 좋은 복지사회의 완성이 곧 지상천국의 완성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는 우리 시천주복지재단이 올곧게 바로 서면 천도교의 거룩한 4대 강령이 굳건히 실천된다는 사실로 통(通)합니다. 병오년 새해는 시천주복지재단이 제자리를 찾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시천주복지재단이 바로 설 때 저절로 포덕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병오년 새해에도 전국의 천도교 교인들이 한울님의 뜻 안에서 평온하시고 강건하시기를 심고드립니다. 또한 우리 교단이 새 시대를 열어니가는 거룩한 구심점으로 거듭날 수 있는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심고 드립니다. 사회복지법인 천도교시천주복지재단 이사장 수암 우창수 심고 -
[특별기고] 포덕 167년 새해, ‘다시 신인간’의 길에서천도교신문은 포덕 167년(2026)을 맞아 새해의 뜻을 함께 나누고자 천도교 각 기관장의 신년 인사를 인터넷신문을 통해 게재한다. 이번 신년 인사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다짐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제출된 원고는 도착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게시되며, 이를 통해 동덕 모두가 포덕 167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포덕 167년 새해를 맞아, 모든 동덕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한울님의 감응이 늘 함께하시기를 심고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교단 안에서도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천도교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 이 시대와 만날 것인가?” 천도교는 사람을 한울님으로 모시는 신앙이며, 삶 속에서 사인여천을 증명해 온 실천의 종교였습니다. 시천주와 사인여천, 인내천의 가르침은 오늘의 혼란한 시대 앞에서도 여전히 분명한 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앙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곧 포덕이 되는 삶, 그 길 위에서 천도교는 다시 사회와 만나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신인간사는 포덕 167년 4월 1일, 창립 100주년과 『신인간』 창간 100년이라는 뜻깊은 역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신인간』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천도교의 신앙과 사상, 시대의 고민과 실천을 기록해 온 살아 있는 역사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잡지가 아니라, 천도교 정신의 기록이며 다음 세대에게 정할 미래의 기반입니다. 다가오는 100년은 기념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이라 생각합니다. 신인간사는 이 역사 위에서, 오늘의 언어로 천도교를 말하고, 오늘의 삶 속에서 인내천을 살아내는 길을 기록하는 매체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교단의 소식을 전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앙과 사회, 역사와 미래를 잇는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해 나가겠습니다. 특히 신인간사의 새로운 100년은 결코 몇몇의 노력만으로 열릴 수 없습니다. 동덕 한 분 한 분의 관심과 참여, 작은 정성과 꾸준한 성원이 모일 때 비로소 『신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교단의 기록이 될 수 있고, 신인간사 또한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인간 100주년을 맞는 이 길에 동덕 여러분의 따뜻한 동행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포덕 167년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 포덕’을 묻는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세대와 만나는 교화, 사회와 호흡하는 실천,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지는 작은 실천이 모일 때, 천도교는 다시 이 시대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도 동덕 한 분 한 분의 삶 속에 천사님의 감응이 깃들고, 그 삶이 곧 포덕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심고합니다. 신인간사는 그 길을 함께 기록하고, 함께 모색하는 기관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7년(2026) 새해 ㈜신인간사 대표이사 휘암 윤태원 심고 -
[칼럼] 일상(日常)의 성화(聖化)’에 대한 새로운 이해올해 1월 1일부터 49일기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각급 기관 내지 부문별 수련회가 잇달아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수련하는 시간이야말로 ‘한울사람’과 ‘지상천국’의 실체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은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일일 것입니다. (주문)수련을 하다보면 강령과 같은 체험의 순간은 ‘뜻밖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시천주(侍天主)의 관점으로 보면, 그 모든 것이, ‘이미 준비된’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해월신사님은 「대인접물」 편에서 “일용행사가 도 아닌 것이 없다(日用行事莫非道).”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학자들은 ‘일상(日常)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성화’를 해월신사님의 대표적인, 그리고 신사님을 ‘평민철학자’로 부를 수 있게 하는 특징적인 철학사상으로 꼽습니다. 해월신사님과 관련된 교사(敎史)의 에피소드들은 해월신사님 얼마나 일상에서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소한 것에서 한울님을 찾아내어 밝혀 주셨는지 증언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베 짜는 며느리 이야기,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이야기 등이 모두 그러한 예입니다. 일용행사막비도의 관점에서 보면 「대인접물」의 팔할(80%) 이상은 ‘일상생활에서 도(道)를 실천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해월신사님의 다른 법설들도, 고담준론(高談峻論)보다는 일용행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법설의 의미가 ‘일상적인 것’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실상 ‘일상의 성화’는 일찍이 수운대신사님이 가장 강조하신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덕문」에서 강조하신바 ‘한번 입도식을 지낸 것은 한울님을 길이 모시겠다는 맹세이니 마음을 옮기지 말라.’ ‘의관을 바로 갖추라.’ ‘길에서 먹으면서 뒷짐을 지지 마라.’ ‘네발짐승의 나쁜 고기를 먹지 마라.’ ‘찬물에 갑자기 앉지 마라.’ ‘유부녀를 범하지 말라.’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지 말라.’ 같은 것은 현학적인 종교 교리와는 거리가 먼,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운대신사님이 관념적으로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신유년에 포덕을 시작한 이후 용담 계곡을 오가는 사람들-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하나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열거한 일상의 사건들은 수운대신사님이 직접 목격한 일들도 있고, 또 대신사님에게 와서 도를 묻는 제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묻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수운대신사 재세시에 제자들이 물었던 물음에는 ‘천령이 강림하셨다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주문을 누워서 외어도 됩니까?” “어제 저잣거리에서 도인 아무개가 웃통을 벗어던진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인 아무개가 ‘네발짐승’의 고기를 험하게 도살하여 먹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도 많았다는 알 수 있습니다. 해월신사님의 ‘일용행사막비도’는 이러한 수운대신사님의 일상적인 모습과 언행을 용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수운대신사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동학(東學)을 가르쳐서 이루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우부우민(愚夫愚民)이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군자는 당연히 유교('논어')에서 본래 의미하는바 왕족이나 귀족, 또는 조선의 성리학에서 의미하는바 유학의 도학(道學) 풍부하게 수양한 인격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동학에서 군자는 ‘한울님(天主)을 마음속에 모심을 깨닫고(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人乃天) 진리를 실천하는 도덕적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동학의 군자관(君子觀)에 대한 심각한 오인(誤認)을 불러올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 정도의 사람은 ‘도통군자’라고 하거나 ‘성인(聖人)’이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한울님을 모심을 깨닫고, 인내천을 실천하는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 의문입니다. 수운대신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삼년(三年)’ 내에 ‘도성입덕’이 되는 군자는 그보다는 훨씬 ‘일상적인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수운대신사님은 「도수사」에서 계속해서 노래하기를, “급급한 제군들은 인사(人事)는 아니 닦고 천명(天命)을 바라오니 졸부귀불상(卒富貴不祥: 갑자기 부귀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함)이라 만고유전(萬古遺傳: 아주 옛날부터 전해오는 지혜) 아닐런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사(人事)를 닦는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는 것과 같이 주문수련(만)이 아니라 ‘일용행사’에서 ‘군자지행(君子之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용행사에서 군자지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문 공부를 통해 강령이나 강화 등의 체험을 거쳐서 ‘시천주’를 ‘깨달아야 한다.’”는 조언(助言)이 뒤따를 테지만, 그 말도 ‘반쯤만’ 맞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주문수련)이 유일한 경로라고 한다면 수운대신사님이 굳이 앞서 인용한 「수덕문」의 여러 계명(誡命)을 나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도교에 입문(입도)하면 마음공부(주문공부)와 이치공부(교리공부)를 겸전해야 한다는 것은 해월신사님이 「수도법」에서 일러주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두 가지의 기본공부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이 바로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수덕문」의 계명들은 우리가 일용행사에서 지켜야 할 ‘군자지행’의 극히 일부분의 사례입니다. 일동일정(一動一靜), 일어일묵(一語一默), 기거동작(起居動作) 모두에서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한울님을 모신 존재들을 대함에 갖추어야 할 예법이 어찌 몇 가지 조항으로 한정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인간의 오만가지 언행에 일일이 규범의 잣대를 마련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교사에 따르면, 수운대신사님이 초창기에 도인들에게 강조한 것은 식고(食告)하는 법도와 출입필고(出入必告)하는 두 가지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해도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밥 먹는 것과 집안을 출입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행동들입니다. 도는 그렇게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상으로 귀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식고와 심고인 셈입니다. 입도식을 지내는 것은 “한울님을 모시겠다는 중한 맹세”란 것도, 입도식을 지낸 그날부터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맹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읽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주문수련을 통해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자라야 주문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성화’는 천도교인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천도교인으로서 자격을 갖추는 출발지인 것입니다. <내가 이미 군자라는 것을 알고 군자>답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밥먹고 옷 입는 것, 절하는 것, 걷고 앉는 것이 ‘일상의 성화’입니다. 지극한 주문수련에 앞서야 하는 것이 ‘일상의 성화’입니다.일용행사가 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박길수 _신인간사 주간 -
천도교 여성운동의 선구자, 수의당 주옥경 종법사 추모수의당 주옥경 종법사 제44주기 추모식이 1월 17일 오전 11시, 우이동 묘역에서 여성회본부 주관으로 봉행되었다. 또 이날 저녁 전국의 여성회원들은 재가기도식으로 추모식을 봉행하였다. 여성회본부가 주관한 추모식은 김명덕 여성회본부 회장 등 여성회본부 임원과 여성회원, 서종환 의창수도원장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순련 여성회본부 총무부장의 집레로 교회 의식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추모식은 개회의식 후 약력소개(방자명 포덕부장), 경전봉독(성령출세설, 임남희 조직부장), 추모사(김명덕 본부 회장), 분향 순으로 진행되었다. 김명덕 여성회본부 회장은 추도사에서 “주옥경 종법사님은 102년 전 포덕 65년(1924)에 ‘천도교내수단’을 창단하시고, 초대회장을 비롯하여 10여 차례 회작을 역임하면서 천도교여성회를 이끌어 주셨다”고 밝히고 “포덕 167년 병오년을 맞으며 여성회원들은 힘을 합쳐 교단 발전의 중심역할을 하기 위해 앞장설 것”을 다짐하였다.(<추도사> 전문 하단 참조) 이어 참석자들은 주옥경 종법사님 묘소 아래쪽에 위치한 모친 김여경 여사의 묘소를 찾아 참례하고 위덕을 기렸다. 주옥경 종법사님은 포덕 35년(1894) 12월 28일 평안도 숙천에서 탄생하여 포덕 59년(1915) 의암성사님과 가연을 맺고, 부인 겸 비서로서 의암성사님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였다. 포덕 65년 4월 5일 우리나라 근대 여성운동의 효시인 ‘천도교내수단’ 창단을 이끌고 초대 대표가 되셨고, 포덕 68년(1927)에는 일본 유학중에 ‘천도교내수단 동경지부’를 조직하셨다. 이후 귀국하여 10여 차례 여성회본부 회장을 역임하고, 민족대표33인 유족회 회장, 광복회 부회장 등 사회 활동도 하였다. 포덕 110년(1969)년 성덕사(여성회본부 추존), 포덕 112년(1971) 천도교 최초의 여성 종법사로 추대되었고, 포덕 123년(1982) 1월 17일, 만 87세로 환원하여, 의암성사님의 묘역 내의 산록에 안장되었다. 추도사 한울님 스승님 감응하옵소서. 수의당 주옥경 종법사님의 성령이시여 감응하옵소서. 주옥경 종법사님의 제44주기 추모제를 맞이하여 전국 여성회원들은 각자 재가에서 추모 행사를 하오니 감응하옵소서. 주옥경 종법사님은 지금부터 102년 전, 포덕 65년(1924)에 교단의 중견간부의 부인, 교역자 부인, 교구 내 여성전교사, 그리고 여학교를 다닌 신여성 등으로 구성된 ‘천도교내수단’을 창단하시고 초대회장을 지내셨으며, 그 이후로도 10여 차례 회장직을 역임하시면서 천도교여성회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종법사님의 성령이시여! 포덕 167년(2026)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여, AI 발달로 인해 국가적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고, 국제정세는 국가 간 분쟁이나 전쟁이 재도발되는 매우 불안한 한 해를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천도교여성회 사업이 변함없이 추진되기 위해 전국 여성회원들은 힘을 합해 노력하고 있으며, 교단 발전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 앞장서서 나아갈 것입니다. 중앙총부와 여성회본부에서는 신앙심 회복과 포덕 실천을 통해, 인류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하루속히 극복하기 위해 75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담수도원에서 포덕 167년 전국여성 동계수련을 실시하였고, 온라인 49일수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우리 후학들의 앞길을 소소히 밝혀 주시옵고,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종법사님의 성령이시여! 사람의 육신은 환우너하여 없어지지만, 성령은 전국 여성회원 동덕들의 심령 속에 융합하여 영원히 같이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부디 장생하시면서 여성회원들의 도가와 교회와 국가사회의 건전한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감응하옵소서. 포덕 167년 1월 17일 천도교여성회본부 회장 김명덕 심고 -
[특별기고] 만물이 한울님을 모신 일상, 다시개벽의 출발점천도교신문은 포덕 167년(2026)을 맞아 새해의 뜻을 함께 나누고자 천도교 각 기관장의 신년 인사를 인터넷신문을 통해 게재한다. 이번 신년 인사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의 마음으로 지난 한 해를 성찰하고, 새해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다짐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제출된 원고는 도착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게시되며, 이를 통해 동덕 모두가 포덕 167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날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와 다툼의 대상으로 여겨온 태도는 이제 분명한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천도교가 말하는 한울님은 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물 속에 깃든 생명의 이치 기운이고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곧 한울님을 훼손하는 일이며, 스스로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모두가 한울님을 모셨다는 시천주의 정신은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의 삶 속에서 만물을 한울님처럼 모시라는 가르침입니다.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는 작은 실천, 소비를 줄이고 생명을 배려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곧 한울님을 모시는 수행이 됩니다. 또한 사인여천의 가르침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로 확장될 때 비로소 오늘의 시대에 살아 있는 교리가 됩니다. 다시개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전환에서 시작됩니다. 편리함을 당연하게 여기던 마음을 돌아보고, 나의 선택이 내 자손과 이웃과 다음 세대, 그리고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포덕 167(2026)년의 일상 속에서 천도교인은 만물이 한울님을 모신 믿음으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선택해 나가기를 심고합니다. 천도교한울연대 상임대표 이미애 심고 -
포덕 167년 전국여성 합동 동계수련, 용담수도원에서 봉행포덕 167년(2026) 전국여성 합동 동계수련이 1월 8일부터 14일까지 6박 7일간 용담수도원에서 봉행되었다. 이번 수련은 전국 각 교구 여성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을 다지고 실천의 힘을 기르는 자리로 마련되었으며, 8일 오후 5시 개강식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이어졌다. 포덕 167년 1월, 전국 각지의 여성 동덕들이 동계수련을 위해 용담성지에 모였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나누는 순간부터 이미 수련은 시작되고 있었다. 간식을 나누고 도담을 이어가는 사이, 수련장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개강식에서 김명덕 여성회본부 회장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해 주신 동덕 여러분께 깊은 존경의 인사를 올린다”며 “‘남의 적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나의 적은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라’는 말씀처럼, 어르신 동덕들의 삶에서 우러난 지혜와 젊은 동덕들의 열린 마음과 에너지가 이번 수련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화암 최상락 용담수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전국에서 모인 여성 동덕 여러분을 용담수도원에서 모시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이번 전국여성 합동 동계수련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수련은 매일 새벽 5시 기도식과 맞절, 체조로 하루를 열며 진행되었다. 몸을 살피고 마음을 여는 수행의 시간 속에서 수련생들은 ‘몸한울’을 돌보는 신앙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대신사님 참배길은 햇살로 포근했고, 용담성지의 기운은 수련생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었다. 수련 기간 동안에는 박인준 교령을 비롯해 박남수 전 교령, 고운당 임우남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원장, 방영호 레크리에이션 강사, 최금희 탈북민·가톨릭대학교 학술연구위원 등이 특강 강사로 나서 신앙과 실천, 시대적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레크리에이션과 합창, 3분 스피치 프로그램을 통해 웃음과 나눔이 끊이지 않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춘 천덕송과 노래는 수련장의 분위기를 밝히며 수행의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었고, 짧은 발표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나누는 시간은 “나의 적은 지혜를 베푼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이어진 방문과 후원, 그리고 함께한 정성과 마음은 이번 수련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마지막 날 소감 나눔 시간에는 영부 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졌으며, 많은 동덕들이 “이번 수련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힘이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포덕 167년 1월 14일, 폐강식과 마지막 큰 절을 끝으로 일주일간의 전국여성 합동 동계수련은 마무리되었다. 헤어짐은 아쉬웠지만, 용담성지에서 함께 나눈 기운은 각자의 삶 속에서 수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동계수련은 논란하지 않는 마음과 지혜를 나누는 삶이 곧 일상의 수행임을 다시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