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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열정과 의지의 동학『동학 천도교 인물사전』, 『천도교종령존인』, 『보국안민 발길로 서울을 걷다』, 『천도교대교당 50년 이야기』, 『춘암상사댁일지』 등을 펴낸 이동초 선생을 만나 동학 천도교에 대한 말씀을 들어 보았다. 이동초 교수, 사진_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 제공 @최인경 선생님께서는 2020년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추진한 동학문화해설사 교육에서 현장 위주로 동학과 천도교를 재미있게 진행해 주셨는데요.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생생한 소식을 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동학은 물론 동학 관련 유적지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알려 주더군요. 특히 천도교중앙대교당은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데 문화해설사 또는 선생님도 마치 소설을 쓰듯 제멋대로 해설을 하더라구요. 천도교 교인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학자들처럼 논리적, 학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자고 다짐했죠. 그 후로 동학 역사현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일일이 발로 뛰어 다니며 작업을 했습니다. 부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종로구청, 서울시청, 문체부 등에도 엄청나게 문의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무원 한 분이 “선생님의 정성과 열정은 인정합니다. 동학이나 천도교 관련 유적지를 발견하시면 우선 돌멩이라도 하나 세워 두세요. 그럼 저희들이 객관적, 역사적 사실을 찾아서 유적지에 표지석이나 표지판을 세워 드릴게요.”하더군요. 선생님께서 그동안 쓰신 책이나 논문은 일반 동학학자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데요. 동학에 대한 선생님의 관점이나 생각은 어떠신지요? 동학혁명,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런데 학자들 특히 동학 연구자들의 개인적 견해에 따라 잘못된 해석을 하고 주장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특히 동학군에 의해 의병이나 백성들이 받은 피해도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다룬 자료는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역사적인 자료를 근거로 실제 현장을 찾아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숨겨진 이야기를 밝혀내는 일을 해 온 셈입니다. 선생님께서 <이동초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데요. 흥미롭고 이슈가 될 만한 콘텐츠가 많습니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블로그 이전에 카페를 운영했는데 주제를 선정하고 표현하는데 시간은 물론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 요구되는 작업인 셈이죠. 그 당시만 해도 젊어서 밤에 글을 많이 썼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주로 낮에 틈틈이 쓰고 있죠.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 선정이나 콘텐츠 기획에 대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그동안 동학 관련 자료를 발굴, 확인 작업을 해 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동학 천도교 인명사전』은 인물 10만여 명의 정보와 30만명의 이름이 수록된 방대한 규모의 동학 천도교 관련 인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전을 제작할 때였어요. 전국에서 200여명이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숨어 있던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확인하는 열정을 보며 보람이 컸어요. 『보국안민 발길로 서울을 걷다』 책을 발간할 때는 현장 사진을 수준있게 담아 보려고 야심찬 기획을 했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지 못해 제가 찍은 사진을 자료로 쓸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아요. 동학과 천도교에 관하여 일반인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한 말씀해 주시죠 저는 동학과 천도교에 쓴 소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우이동 봉황각에 보리수나무가 있었어요. 그 열매로 염주도 만들 정도로 크게 자랐어요. 그런데 관리자가 낙엽이 많이 생긴다고 가지를 잘라 몽당연필처럼 만들어 놓더니 그마저도 베어 버렸어요. 이것을 칼럼으로 썼더니 불려가서 엄청 혼이 났어요.(웃음)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특히 천도교의 정체성을 외부학자에 의해 왜곡하고 훼손하여도 아무런 대응이 없어요. 방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그런 책을 대량 구입해서 보급하는 것을 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어요. 무엇보다 청년들이 앞장 서서 해월 신사님의 용시용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보국안민정신을 이 시대에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열정과 의지가 중요해요. 글_ 함경숙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보훈처,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에 적극 나서야지난 3월 9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제1소위는 회의를 열어 이정문 의원 등 의원 60명이 공동발의한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1차 심사했다. 일부개정법률안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 서훈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수년 동안 관련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계속 나왔다. 관련 학계와 시민단체는 을미의병(1895) 서훈이 합당하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1894) 참여자도 서훈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을미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이 똑같은 항일무장투쟁 즉 독립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보훈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보훈처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145명을 서훈하면서도,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을 하지 않았다. 3월 9일 법안심사 제1소위에 참석한 윤종진 국가보훈처 차장은 "동학 2차 봉기도 독립운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찬성 의견, 2차 봉기가 반일 투쟁의 국면을 보인 것은 맞지만 반봉건 투쟁도 함께 진행돼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양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이에 정무위 위원들은 "보훈처는 찬반 의견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 분명히 밝히라"는 질의를 하였다고 한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50개 단체 참여)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독립운동사 전공 역사학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1894년 경복궁 점령사건은 일제가 일으킨 국권침탈 사건이었다. 1894년 경복궁 점령사건은 일본군이 1894년 6월 21일 경복궁을 점령하여 국왕 고종을 포로로 잡고 조선군대의 무장을 해제하였으며 민씨 정권을 타도하고 친일개화파 정권을 세워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한 사건을 가리킨다. 이 경복궁 점령사건 때에 조선군 궁궐 수비대 17명이 전사하였고 60여 명이 부상하였다. 1894년 경복궁 점령사건은 1895년 을미사변보다 더 규모가 컸고 더 폭력적이었다. 을미사변으로 조선군 궁궐 수비대 11명이 전사하였고 민비가 시해되었으며 궁녀 2명이 사망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를 국권침탈로 보는 국가보훈처의 주장을 따른다면(<제2차 동학농민혁명 서훈 해결의지 없는 보훈처>, 2021, 10, 12. 민형배 국회의원실 작성 문서, 4쪽),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 145명에 대한 서훈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둘째, 항일투쟁인 을미의병 참여자 145명의 서훈이 합당하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1894) 참여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 똑같은 항일 독립운동이기 때문이다. 독립보훈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기관은 형평성과 공정성에서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 일제가 일으킨 1894년 경복궁점령사건(국권침탈사건)에 맞서,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2차 동학농민혁명(=항일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역사학계는 2차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운동사의 범주에 포함된다'라고 논증하였다. 한국의 독립운동이 갑오의병(1894)과 2차 동학농민혁명(1894)에서 시작되었다고 대학의 한국독립운동사 개설서인 <한국독립운동사 강의>(한울, 1998년∼2023년)에서 가르쳐왔다. 김상기 교수는 국권침탈 사건으로 갑오변란(1894년 경복궁 침범사건)을 설명하면서, 갑오변란을 계기로 반침략투쟁인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났다(김상기, <갑오·을미 의병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8, 16쪽)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어 김 교수는 갑오·을미의병이 항일투쟁이기에, 독립운동에 해당한다고 여러 저서와 논문을 통해 강조했다. 한시준 교수(현 독립기념관장)는 <총설: 한국 독립운동사의 이해>에서,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인 '갑오변란'과 1895년 민비시해사건을 계기로,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군과 을미의병들이 봉기하여 일본군과 싸우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라고 서술하였다. 김희곤 교수(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도 "독립운동사는 1894년부터 1945년까지 51년 동안 전개되었고, 그 가운데 첫머리를 장식한 것이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갑오의병이었다. 그런데 독립운동사의 출발점인 갑오의병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곳 안동이었다"(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사>, 안동시, 1999, 23쪽)라고 갑오의병을 한국 독립운동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들도 2차 동학농민혁명을 "민족독립운동"으로 주장하였다.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2007, 256∼257쪽)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고,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라고 주장하였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2020년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 세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이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려는 운동"(<세계사의 현단계와 동학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한다>, <나주동학농민혁명 재조명과 세계시민적 공공성구축-자료구축을 중심으로-2020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 자료집), 나주시, 2020, 10, 28, 14∼15쪽)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역사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1차 동학농민혁명(1894, 3, 20, 무장 봉기)은 신분제 철폐와 같은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이었다. 2차 동학농민혁명(1894, 9, 10. 전주 삼례 봉기)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1894, 6, 21.)으로,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의병운동에도 반봉건 운동의 성격이 있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후기의병도 반봉건 투쟁이 있었다. 의병운동에서 반봉건 투쟁이 있었다고 해서, 의병운동 참여자가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되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항일투쟁, 반일투쟁을 가지고 하였다. 2차 동학농민혁명 봉기가 항일 투쟁을 전개한 것이 맞으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해야 한다. 넷째, 1980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2023년 현재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까지 43년 동안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한 항일 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법률 제정과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완결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4)은 제2조(정의)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란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2019년 2월 대한민국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제정하여, 매년 국가 기념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
다시 읽는 시} 전쟁의 소리전쟁의 소리 이훈철 소리는 들린다. 야심과 허욕의 觸傷된 오랜 腫物의 터지는 소리 傷한 병사의 고통! 신음 소리로 아울러 소리는 들린다. 대포! 소총! 폭력이냐? 정의이냐? 피 위에 피를 퍼붓고 죽음 위에 죽음을 더 쌓은 曠野로서 오는 바람은 피와 죽음의 비린 냄세를 보내고 彈烟의 餘燼은 봄비에 새로 개이려는 공기를 후리우는데 소리는 들린다. 울음! 吶喊! 고함 장미색의 비행기는 고요한 曉空을 흔들고 발동기의 소리는 고막을 울리어라 무겁게 濛濃한 雲屛 피, 觸鏤, 腐肉으로 채었는데 彈火의 익은 부상한 병사의 등에 첫직을 더하는 잔학한 소리 어린이? 늙은이의 驚身, 恐怖, 悽慘의 울음 풀 위에 꺼구러진 죽어가는 병사의 飢渴, 苦痛, 呻吟 소리는 들린다. 피 흐르는 넓은 뜰에서 나의 가슴은 울렁거려라. 이 소리를 들을 때 끌어오르는 혈관을 강타하며 동맥은 극렬히 진동하여라. 감초였던 새벽의 지상 平靜 나의 단꿈의 평화의 기쁨 쓴 고통의 공포로 끄리라. 이 소리를 들을 때 전쟁? 죄악? 허욕의 공상에 취한 狂人들아 평화의 간판, 통일의 광고지로 형제를 살륙하는 무리들아 直正한 통일 참 평화를 바라거든 값 없는 쇠와 불의 세력을 깊은 지하에 묻어버려라. 너희의 허욕! 야심! 폭력! 모든 것을 불살라 차라리 그 餘灰를 공중에 뿌려라. “지상에 있는 모든 거짓 영웅의 무리를 몰아낸 그 다음에야 완저한 평화가 오리라고” 人道의 집 속에 벌거벗은 정의는 소리친다. 나는 듣노라. 전쟁의 소리, 정의의 소리 ------------------------------- 이 시는 1922년 초반 중국 텐진(天津)에 거주하는 이훈철(李勳哲)의 작품이며, 『천도교회월보』 142호(1922년 7월)에 발표된 글이다. 『동아일보』 1923년 6월 24일자에 「별 아래서」라는 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훈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1925년경 이민창(李民昌, 李東谷)과 함께 고학으로 베이징(北京)대학에 유학 중이었다. 이 시에서는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포덕 164년 6월 18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포덕 164년 6월 18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 -
2023 천지부모 공경 캠페인 전개천도교한울연대(대표 천은당 정미라) 는 ‘천지부모 공경 캠페인’ 행사를 6월 18일 부산 대동교구에서 시행함으로써 전국 교구 환경교육순회를 시작하였다. 이날 대동교구에서는 시일설교로 노암 강병로 선도사의 환경설교가 있었고 시일식에 이어 김의동 환경전문 강사의 ‘천도교인에게 탄소중립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강의와 지은당 정진숙 동덕이 진행한 환경퀴즈, 커피 찌꺼기 재활용 커피화분 만들기 등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함께 한 시간이었다. 2023년도 환경부 공모 사업으로 선정된 ‘천지부모 공경 캠페인’은 금년 8월까지 지방 교구를 방문하여 진행된다. 생명·평화·영성을 기치로 전국을 순회 하는 천도교한울연대의 탄소중립 환경교육 ‘천지부모 공경 캠페인’을 희망하는 교구는 한울연대 사무국(02-900-9323)으로 문의하면 된다. -
한국+스웨덴 녹색전환연합,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와 ‘도시에서의 순환경제’ 세미나 개최한국+스웨덴 녹색전환연합은 최근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함께 ‘도시에서의 순환 경제’라는 주제로 스웨덴, 한국, 그리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의 모범 사례를 공유하는 지식 공유 세미나를 개최했다. 스웨덴 연사로는 △스톡홀름 환경 연구원(Stockholm Environment Institute) △예테보리 시(市) 카린 페이옐 부시장(City of Gothenburg) △아트라스 콥코(Atlas Copco) △이케아(IKEA)에서 참가해 스웨덴 정부와 순환 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업들이 녹색 성장, 녹색 일자리, 그리고 환경 측면으로 지속할 수 있는 도시 달성을 위해 기여할 기회와 노력에 대해 발표함으로써 민·관·학과 시민사회가 함께 탄소 중립 사회를 위해 협력하고 남은 도전 과제를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스웨덴과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순환경제 정책은 순환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 시장 내에서 순환성이 높은 상품의 교역이 활성화되는 것이며, 이번 세미나에서는 스웨덴, 한국, 그리고 녹색성장연구소와 같은 국제기구와 협력해 미래 지향적인 경제 이니셔티브를 구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출발점을 제시했다.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 대사는 환영사에서 “이번 세미나는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보호에 대한 스웨덴의 오랜 노력과 일치하며, 이러한 협업을 통해 스웨덴과 한국이 서로 배움으로써 우리의 도시와 일상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사무차장보 신경남 교수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는 오늘과 같은 행사 등을 통해 스웨덴(EU)과 한국 간 그린 파트너십의 운영을 촉진하는 동시에 지식을 습득하고, 스웨덴·한국 순환 경제 정책 및 기술을 채택하고자 하는 수많은 국가들과의 녹색 협력 촉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미나를 마치며 연사들은 민·관·학, 그리고 시민사회가 순환경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함께하고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녹색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는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국+스웨덴 녹색전환연합은 연중 ‘스마트모빌리티’와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후속 세미나로 한국의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을 모색하며, 한국의 녹색 및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 산업계 파트너 업체들과의 협력을 도모할 예정이다. 한국+스웨덴 녹색전환연합 소개 “대한민국을 함께 녹색으로(Let’s make Korea Greener Together)”. 한국+스웨덴 녹색전환연합은 스웨덴 기업(아트라스 콥코, 이케아, 크래프트파워콘, 스카니아, SF마리나, 테트라팩, 볼보자동차, 볼보트럭, 알파라발, 셀임팩트)과 주한스웨덴대사관, 주한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 및 주한스웨덴상공회의소가 함께하는 이니셔티브다. 한국의 녹색 및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을 위한 스웨덴의 지지와 국내 산업계 파트너 업체들의 협력을 도모하고자 한다. 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 소개 주한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는 스웨덴과 대한민국 양국의 무역투자 분야 협력 및 관계 증진을 통해 스웨덴 기업의 한국 내 투자 및 세계화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스웨덴 정부 산하기관이다.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무역관련 기관, 상공회의소 및 대사관, 영사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언론연락처: 주한스웨덴무역투자대표부 이재연 컨설턴트 02-739-1460 이 뉴스는 기업·기관·단체가 뉴스와이어를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입니다. -
천도교, 동학농민혁명기록물 9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주요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지정됐다. 천도교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지난 달 1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4.19혁명 기록물’과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최종 등재 승인되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한국 사회의 근대적 전환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았으며, 이번에 오른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총 185건으로 이중 천도교중앙총부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은 모두 9건이고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나동환 교장 임명장, ②정순경 교장 임명장, ③이승룡 교수 임명장, ④홍재인 대정 임명장, ⑤오세용 부참모장 임명장, ⑥양언남 봉헌 임명장, ⑦이수방 접주 임명장, ⑧최운용표, ⑨무장 포고문 필사본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신사는 1884년부터 교장, 교수, 도집, 집강, 대정, 중정의 육임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천도교의 교역자 제도의 효시이다. 1885년부터는 각 지방에서도 육임제를 확장하면서 동학의 교세가 크게 늘어났다. 교장은 ‘자질이 알차고 덕망이 두터운 사람’에게 수여된 직책이었고, 교수는 ‘성심으로 수도하여 가히 교리를 전할 수 있는 사람’, 대정은 ‘공평하며 부지런하고 중후한 사람’에게 수여된 직책이었다. 위 세계기록유산은 위 육임제의 직책에 따라 각각 수여한 임명장으로 나동환, 정순경에게 교장을, 이승룡에게 교수를, 홍재인에게 대정의 임명장을 수여했다는 증서인 것이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동학군은 총사령관, 대장, 참모장, 부참모장의 직책으로 나뉘었는데, 위 오세용 부참모장 임명장은 오세용을 수성 부참모장으로 임명하는 사료이며 양언남 봉헌 임명장은 갑오년(1894년) 8월에 해월 최시형이 양언남에게 봉헌이라는 직책을 수여한 임명장인데, 봉헌은 오늘날로 하면 비서의 직책이다. 또 이수방 접주 임명장에서 ‘접주’란 동학교도 약50가구를 맡아 이끄는 지도자를 부르는 말이었으며, 이수방의 경우는 여러 개의 접을 합친 대접주로 사료를 보건대 오늘날 정읍시 태인면의 대접주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최운용표는 경주최씨인 최운용에게 미도인표(동학교도가 아니다)라는 확인표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동학교도 체포령이 내린 상태에서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던 확인표로 결성현(오늘날의 충남 홍성)에서 발행한 확인표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에 등재된 185건중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기록물은 30건인데 이중 18개의 생산자가 해월신사이다. 즉 동학혁명의 최고지도자가 해월신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장포고문은 1894년 3월 21일 동학의 대접주인 손화중과 접주인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전북 고창군 무장읍 동음치에서 ‘동학이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려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할 것이다. 우리는 살상과 약탈을 하지 않을 것이나 오직 탐관오리만은 처벌할 것이다’라는 기치로 만천하에 재봉기할 것을 선언한 발표문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역사적 의의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운동 과정에서 동학군은 집강소라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를 설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았다. 이러한 형태의 거버넌스는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으로, 19세기 당시까지 이와유사한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이 번영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중국군과 일본군의 조선으로의 군대 파병, 이로 인한 청일전쟁 촉발과 이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이어져,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해체를 촉발시켰다. 이 기록물들은 어떻게 민중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보편적 가치, 즉 평등, 자유, 인권, 정의의 방향으로 전진시켜나갔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저장소이다. 천도교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에 이어 2대 교주 최시형, 그리고 3대 교주 의암 손병희가 개칭한 민족종교로서 3.1운동의 기틀을 세운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천도교는 동학농민혁명의 사상적 토대로서 오늘날까지도 신분철폐, 조세개혁, 자주독립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로 흘러왔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동학농민군, 정부, 관료, 진압군, 민간지식인 등 여러 주체가 직접 생산한 종합적인 역사 기록이다. 이 기록물에는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문서, 정부 보고서,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진행 과정과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리와 평등, 식민주의에 대한 반대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희귀성이 있다. -
용담수도원! 새롭게 단장하다코로나19의 폐해는 사회, 문화 교육, 환경, 의료 등여러 방면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다. 관혼상제에서도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을 침해하고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용담성지에도 그렇게 빈번하게 찾아들던 방문객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단체 내방은 아예 끊어져 버렸다. 수도원 입소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단체수련이 중단된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급기야 시천주 신앙을 하는 우리 천도 교인의 주문수련 풍속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는데 재가 수련 방식의 수련문화가 도입되는가 싶더니 휴대폰 (단 체) 줌 수련방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수도원을 운영하는 책임자의 한사람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할 따름인데 지금부터 용담수도원과 용담성지의 근황을 전해 드리고자 한다. 먼저 용담수도원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면 포덕 115년(1974년) 구미산 일대가 국립공원에 편입 되어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는데 제대로 된 수련시설도 없이 법암 김근오 선생께서 초대 수도원장으로 부임 하였다. 1975년 10월 28일 용담정을 낙성하고 용담성지 1차 성역화가 마무리되고 2차 성역화 사업으로 당시 우리 교단의 숙원인 현재의 용담수도원이 1978년 10월 28일 건립되었다. 용담수도원은 여성회 수련을 비롯한 단체수련 등 천도교의 대표적인 수도원으로 자리매김 하며 그 진가를 높였다. 필자는 구미산 아래 경주디자인 고등학교(옛 가정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향토 출신으로 다른 교인들보다 자주 용담정을 찾았고 특히 동계 또는 하계 여성회 수련에 내수도(보심당)를 따라 참여하였다. 본가에는 지금도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신 어머님께서 거주하고 계신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여성회 수련 상황을 회상해 보면, 우선 6박 7일 수련에 참여한 수련생이 그때마다 100명에서 150명은 족히 되었던 것 같다. 열악한 수련 시설과 환경 아래서도 수련의 열기는 정말 뜨거웠다. 이른 새벽 청수대를 찾아 청수 떠오기부터 시작하는 기도식 집례, 경전봉독은 오전11시와 저녁 9시 기도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는데 각 역할 분담에 경쟁적으로 신청하여 한껏 수련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치열한 과정을 통하여 선발 되고자 안간힘을 썼으며 심지어 수련을 그만두고 돌아 가려는 움직임까지도 내비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련 막바지에 실시되는 경전 암송대회는 선의의 경연장으로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라고나 할까? 수련 때마다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등 용담수도원의 수련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수련의 깊이를 가늠하기에 충분하였다. 필자는 포덕 160년(2019년) 4월 1일 자 용담수도원 장으로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렀는데, 그동안 코로나19의 창궐로 말미암아 2020년 2월 이후 단체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수련 공백기에 용담수 도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수도원 건물과 부대시 설의 개보수, 보강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제일 먼저 3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수납장을 설치하여 수련생의 편의 를 제공하였으며, 성화실 앞쪽에는 에어컨을 추가로 설치하여 여름철 더위를 식히고자 하였다. 한편 오래전부터 수도원 건물 정면부 후면부를 증·개 축하여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증설하려던 계획을 수정 하여 진성관 보조 주방을 멸실하고 석축옹벽을 뒤로 물려 그 공간에 남녀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보조주방, 보일러/세탁실을 신축하였다. 수도원 주 출입구 좌우 신발장과 발판을 용추회(회장 손윤자) 회원들의 정성으로 이미 교체한 바 있다. 이제 포덕 163년(2022년) 두 달여에 걸쳐 진행된 수도원 건물 내외부의 대대적 수선·정비에 대하여 기술하 고자 한다. 지난 추석을 즈음하여 천심회 회원인 담화당 성경순 동덕과 여러 차례 통화하고 카톡과 문자를 주고 받으며 공사 구분과 범위, 투입 원료와 자재, 인력 등 검토와 조율을 하는데 꼬박 한 달이 소요되었다. 관련 견적 절차를 끝낸 후 비로소 공사를 착수하였다. 먼저 내벽 도색공사, 천장 도색공사와 외벽 도색공사및 난간대 구조물 도색공사가 차례대로 시공되었다. 이어서 미닫이 유리문 제거와 방충망 설치 및 창호공사, 방수공사를 무리 없이 하였으며 여닫이 바깥문 한지 제거, 문짝 문살 도색 후 문종이 부착을 마쳤다. 성화실 뒤편 에어컨을 제거하고 새로 산 냉온풍기를 설치하였으며 제거한 에어컨은 진성관 실내 뒤쪽에 옮겨 설치하였 다. 바닥 장판 교체로 수도원 건물 내외부 공사가 끝났 으며 관사 외벽 일부와 마루 도색공사 그리고 지붕의 궁을장 등 도색공사를 함으로써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문을 여는 순간 궁을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깨끗하게 단장된 수도원 내벽이 펼쳐진다. 벽면에 걸려 있던 액자 거울 등을 모두 걷어내니 하얀 벽면이 일체감을 이룬 다. 입구 좌우 이불장의 여닫이문에 거울을 부착하였다. 위를 쳐다보니 새로 색칠한 천정에 엘이디 형광등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불빛을 밝힌다. 흠잡을 것 없는 창호공사 시공으로 방풍 방음 보온 기능을 극대화하였고 건물 외벽은 흰색과 나무색으로 전통적 목조건물 같은 친근감을 유발한다. 보기에 심각하게 훼손된 난간 대가 말끔하게 단장되고 네 군데의 흰 바탕에 붉은 궁을 장이 기와지붕과 조화를 이룬다. 놀랍게도 이번 도색공사 시공업체의 대표자는 수운 대신사 생가 바로 옆에 처가(지금은 없어짐)가 있었다고 밝히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공사에 임했다고 한다. 우연 이라고 하기보다는 조화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금부터는 이번 용담수도원을 새롭게 단장하는데 투입된 공사비 일체를 조건 없이 부담한 천심회를 소개 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30년 전 용담수도원에서 실시한 제144차 여성회 수련(포덕 133년 1월 5일~1월 11일) 수료자 중 한울님 믿는 마음을 돈독히 하고 그 마음을 천도와 교회사업에 쓰기로 결의를 다짐한 40세 이하의 뜻 있는 동덕들이 모여 천심회(회장 이정필)를 결성하였다. 애초 15명(현재 8명)이 참여하여 포덕 133년 1월 17 일 1차 회의를 개최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처음 2년간 두 달에 한 번 만남을 이어 오다 나중에 1년에 두번씩 모임을 지속해서 유지했으며 요즘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임남희 동덕의 귀국에 맞춰 만남이 이루어진다. 회비 중 1인당 1만 원씩 30년을 꾸준히 적립하여 목적 사업의 재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성지 길목의 방정환 한울 어린이집 개원 종잣돈으로 일천 만원을 쾌히 낸 바 있으며 이번 공사비 28,880,000원 전액을 용담정 성금으로 기꺼이 헌성하였다. 현재 회원 8명의 천심회 명단은 아래와 같다. 이정필(회장, 포항교구), 성경순(대구대덕교구), 정영엽(남해 고현교구), 나인경(대구대덕교구), 임남희(부산남부교구 프랑스 거주), 박혜선(북부산교구), 양남순(포항교구), 안정애(포항교구). 이정필 회장은 “용담수도원 새 단장은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소감을 밝히고 “앞으로도 취지에 맞는 의미 있는 천도사업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30년이라면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긴 세월임에도 회원 모두가 한울님 마음으로 하나 된 계속되는 선행이 야말로 천도교 신앙을 하는 우리 동덕들에게 신선한 충격이며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재정 여건이 열악한 우리 교단의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장차 어느 시기에 이렇게 산뜻하고 깔끔하게 꾸밀 수 있을는지. 지난 12월 2일 동학기념관과 교육수련관의 개관식이 거행되었고 경주시에서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가면 많은 청소년과 순례객 그리고 관광객들이 용담성지를 찾아올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그동안 수도원의 모습이 변변치 못하여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바람이 있다면 앰프와 스피커, 대형 모니터 등 시청각 기자재만 완비된다면 손색없는 수련장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코로나가 그러하듯이 심각한 환경오염과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면서 쌓인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등산, 운동 또는 요가나 명상 등을 통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코로나19가 진정되어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오늘따라 수도원 앞마당 태극기와 나란히 게양된 대형 궁을기가 힘차게 펄럭인다. 3년 동안 응집된 수련의 욕구가 해소되어 성지 용담의 용추계곡에 주문 소리가 진동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글_최상락 용담수도원장 -
포덕 164년 서울교구의 날 행사서울교구(교구장 윤태원)는 창립 113 주년을 맞이하여 4월 16일 시일식 후 ‘서 울교구의 날’ 행사를 중앙대교당에서 개최하였다. 이날 기념식에서 윤태원 교구장은 정암 김명세 선도사와, 삼경합창단(단장 소암 김인환)에게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정암 김명세 선도사는 코로나19 팬데 믹으로 인하여 비대면 소통 채널인 서울 교구 ‘삼경방’에서 진행한 새벽기도에 쉼없는 정성으로 한결같이 참여한 정성으로, 삼경합창단은 매시일 천덕송 합창을 위시하여 교구 행사 때마다 아름다운 하모니로 행사를 빛냈을 뿐아니라 남북 평화합창제에 참여하여 타 종단에 천도 교의 위상을 높인 공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서울교구의 기원은 포덕 47년(1906) 설치된 ‘한성대교구’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서울교구의 설립 연도는 포덕 51년 (1910) 4월 21일 “한성 내에 교구를 설함” 이라 명시한 천도교 종령에 의거, 2011년 2월 서울교구 설립일을 4월 21일로 서울 교구 회의에서 확정하였다. -
포덕 164년 천일기념식천도교중앙총부는 포덕 164년 천일기념일을 맞아 중앙대교당과 전국 교구에서 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이날 오전 11시 중앙대교당에서 봉행된 기념식은 이미애 교화관장의 집례로 개식, 청수봉전(고윤옥 여성회 부회장), 심고, 주문3회병송에 이어 박징재 여성회장의 경전봉덕(포덕문), 천덕송합창(기념송), 박상종 교령의 기념사,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장관(김대현 종무실장 대독) · 정문헌 종로구청장 ·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진우 스님(범종 스님, 조계종 사회부장 대독) · 김령하 한국민족종교협의회장 등의 축사, 포상및 장학증서 수여, 천덕송합창(천일기념가), 심고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박상종 교령은 기념사에서 “오늘은 수운대신사께서 동학 천도교를 창명하신 지 163년이 되는 천일기념일이며, 개벽 후 오만년 동안 노이무공하시던 한울님이 수운대신사를 만나 성공하고 한울과 사람과 만물이 더불어 새로워짐을 선포하신 후천개벽의 첫날”임을 전제하고 “지금 남북 정세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남북 천도교인들이 앞장 서서 보국안민 정신을 면면히 계승하여 포덕천하, 광제창생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장학증서와 공로패 수여 한편 이날 박상종 교령은 대학생단장 장학증서와 교단에 공로가 많은 12명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공로패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조보아 연합합창단장(서울교구), 정점교(대구대덕교 구), 안진혁(대구대덕교구), 최창식(서초추진위), 이정필 (포항교구), 성경순(대구대덕교구), 정영엽(고현교구), 나인경(대구대덕교구), 임남희(부산남부교구), 박혜선 (북부산교구), 양남순(포항교구), 안정애(포항교구). 기념식 후에는 축하 행사로 천도교연합합창단(수운의 길, 대각), 봄눈별(북아메리카 원주민 피리 연주), 히스토리보이스(수운 최제우, 아름다운 나라)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화환을 비롯 하여 많은 화환이 자리를 빛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