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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가섭암에서 육임제를 생각한다1884년 10월 4일 해월 최시형 신사는 미래의 동학 인재 손병희, 박인호, 송보여와 공주의 가섭암(迦葉菴)으로 수도를 떠났다. 가섭암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의 말사다. 마곡사에서 북서쪽으로 약 4㎞ 거리에 국사봉 자락의 해발 400m 지점에 있다. 손병희의 사람됨을 파악하고자 '솥을 잘못 걸었다고 계속 수정하게 해 일곱 번에 걸쳐서 행하게 했다', '밥을 잘못 지었다고 일곱 번을 짓게 했다'등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얘기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반복해서 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고 지시를 따르는 됨됨이와 인내심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동학의 조직을 체계화할 육임제(六任制)를 구상하였다. 육임은 도인들을 교육하는 직책인 교장과 교수, 도인들의 기강을 잡는 도집과 집강, 교단을 공평하게 관리하고 직언을 하는 대정과 중정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해월 최시형 신사는 육임제를 통해 교육과 기강, 직언의 세 부분으로 교단의 직책을 조직화시켜 동학 교단의 기반을 마련했다. ① 교장(敎長)은 자질(資質)이 알차고 인망(人望)이 두터운 사람으로 삼고 ② 교수(敎授)는 성심으로 수도하여 가히 교리(敎理)를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삼고 ③ 도집(都執)은 위풍(威風)이 있고 기강(紀綱)이 밝으며 시비선악(是非善惡)의 한계를 아는 사람으로 삼고 ④ 집강(執綱)은 시비를 밝히고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삼고 ⑤ 대정(大正)은 공평성을 갖고 부지런하고 중후(重厚)한 사람으로 삼고 ⑥ 중정(中正)은 바른 말을 능히 할 수 있는 강직(剛直)한 사람으로 삼는다. 제1차 동학혁명 당시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일대에 설치됐던 집강소(執綱所)는 해월 최시형 신사가 만든 육임제의 ‘집강’에서 유래했다. 또한 10월 28일에는 신사께서 제61회 대신사 탄신 향례를 기하여 제의규범(祭儀規範)을 정하였다. 제 의 규 범 (祭 儀 規 範) 1. 목욕재계(沐浴齋戒) 1. 예복환착(禮服換着) 1. 고천(告天)(심고(心告)) 1. 초학주문 삼회낭독(初學呪文 三回朗讀) 1. 강령주문 삼회낭독(降靈呪文 三回朗讀) 1. 본주문 삼회낭독(本呪文 三回朗讀) 1. 주문낭독(呪文朗讀) 1. 고천(告天)(심고(心告)) 폐식(閉式) 신사께서 식을 마친 자리에서 갑신년에 대신사가 탄생하신 뜻과 경신년에 수도하신 창운과 갑자년에 조난하신 액장과 미래도운이 도래할 것을 설법하였다. 함께 수도했던 미래의 동학 인재, 손병희, 박인호는 3세, 4세 천도교 교조가 되어 도통을 이어갔다. 가섭암은 동학천도교의 역사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며, 충청도 지역 최고의 성지이다. "사철나무는 벼락을 맞고 죽었다 부활하여 푸르름이 국사봉의 으뜸이다" 글, 사진_조성갑(동학문화해설사)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창작판소리 녹두장군 전봉준, 임진택의 시대정신임진택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은 지난 10월 28일 저녁 정읍의 전봉준 고택에서 창작 판소리 "녹두장군 전봉준"의 공개 시연을 시작으로 순회공연을 열었다. 그동안 동학에 관련된 많은 학술 세미나, 예술 공연 등이 있었지만 이 공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전통예술의 고장이자 동학혁명발상지 정읍에서 현대 문화운동의 거목인 창본 작가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리꾼이 함께 자리하며 판을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창작판소리 창본 집필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마당극의 창시자 임진택 이사장. 작창과 완창을 도울 이는 전주 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송재영 명창, 국립민속국악원장 왕기석 명창이다. 그들은 3시간 동안 동학에 대한 이해와 진실을 소개하며 소리판으로 이끌었다. 이 공연은 누구나 평등 하고자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사상과 더불어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 속에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정읍 전봉준 생가에서의 시연회를 시작으로 11월 10일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19일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도 이어졌다. 동학혁명은 1894년 신분제 중심의 오래된 체제를 개혁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일어난 혁명이다. 또한, 일본 국권 침탈에 맞서 싸운 민족의 봉기로써 큰 의미도 있으며 애국이라는 민족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과 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고 왜곡, 축소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60년 4.19혁명 이후 동학혁명의 재조명이 시작되었고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사 정리를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이 추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프롤로그는 수운 최제우의 탄생 <아니리> 천하가 한번 크게 변할 양이면 천지간에 괴이한 변이 잇달아 나타나는 법. 허나 난법 뒤에 정법이 나온다 했으니 어찌 진인이 아니 날소냐? 전라도는 전주요 경상도는 경주인디, 경주 근도리 어느 곳에 최제우라는 이가 사는디, 그 이가 태어날제 구미산이 사흘을 크게 울어 댄즉, 어진 사람들은 이 집에 신인이 났다 하고, 모진 사람들은 역적이 났다고 했다더라. 때는 조선조 말엽이라. 왕권은 무능하고 세도가 판을 칠제, 벼슬아치 양반들은 토색질로 날을 새고 가련한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거날, 개같은 왜적놈들 호시탐탐 침노하고 맹수같은 양귀자들 때도 없이 출몰하니 어허 우리 중생, 목숨 보명을 어찌할거나! 최제우가 중생 구할 도를 찾아 천하를 주유했으나 온갖 처세가 다 낭패라. 울산 처가에 얹혀 남의 땅 부쳐먹으며 근근히 지낼적에 - 임진택 창본, ‘녹두장군 전봉준’ 중에서 임진택 경기아트센터이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창극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의 역사를 되새기고 부패한 권력에 맞선 동학농민군들의 처절한 심정과 굳건한 결의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전봉준에 대한 작품이지만 수운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의 탄생과 일대기를 먼저 보여줌으로써 동학의 사상적 배경이 시작된 역사를 먼저 짚고 싶었다고 말한다. 선생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제’ 때 ‘고부봉기 역사 맞이굿’을 기획하면서 정읍과 인연을 맺고 동학농민혁명을 판소리로 엮어냈다. 김제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이후 판소리에 빠져 소리꾼과 연출자의 길을 걸어왔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는 주제별로 국내 최고의 기량을 갖춘 명창 3인이 무대에 올랐다. 1부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자 판소리 ‘수궁가’ 예능 보유자인 왕기석 명창이 ‘탐학을 금(禁)해주시오’를 주제로 교조 신원과 고부 봉기의 내용을, 2부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자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인 송재영 명창이 맡아 ‘고통받는 민중은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를 주제로 무장기포와 황토현 전승, 전주성 입성을 보여주었다. 3부는 오랜 기간 동학에 천착하며 이번 작품의 창본을 완성한 광대 임진택이 ‘갑오세 가보세’를 주제로 집강소 설치와 우금치 전투 등의 내용을 노래하였다. 전봉준 누구인가,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 횃불처럼 우뚝 서서 피투성이로 싸운 사람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워 하지 않은 사람 누구보다도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은 사람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 합치더니 운이 다 하니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의(義)를 바로 함에 무슨 허물 있으랴만 나라 위한 애국단심(愛國丹心) 그 누구가 알아줄꼬. - 임진택 창본, ‘녹두장군 전봉준’ 중에서 광대 임진택 다시 동학으로 판을 열다 역사와 함께, 시대를 노래한 광대 임진택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이 창작판소리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인 1994년 최초로 선보였던 ‘녹두장군 전봉준’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큰 의미가 있다. 초연 당시에도 전봉준의 일대기를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19세기말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 아래 봉건제도의 수탈과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섰던 동학농민운동의 역사를 판소리로 엮어낸 바 있는 이 작품은 그때와 지금 어떻게 다를까. 작품은 전봉준의 탄생이 아닌 수운 최제우의 탄생과 무능한 왕권과 세도가 판을 치는 세상, 가련한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수운 최제우의 주유천하, 그리고 깨달음으로 문을 연다.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수운 최제우의 깨달음과 도의 실천은 많은 민중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고 혹세무민의 죄로 수운 최제우의 순도(처형), 그리고 해월 최시형이 펼친 동학의 교세 확장은 혁명의 사상적 기반으로 굳건히 서게 된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때 등장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으로 이어진다. 수운 최제우의 탄생과 동학의 창도, 해월 최시형 선생이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도통을 전수 받아 2대 교주가 되어 도의 실천과 확장으로 동학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과정, 죽창을 든 민중들의 봉기, 그리고 전봉준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이 작품의 1부와 2부, 3부는 왕기석, 송재영, 임진택 세 소리꾼이 각각 맡아서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이 특징이며 여 운, 김정헌, 임옥상 등의 작가들의 걸개그림으로 무대를 구성한다. 창작판소리 녹두장군 전봉준, 임진택의 시대정신 “이 작품은 동학의 태동에서 시작해서 전봉준의 최후에서 끝납니다. 수운의 동학 창도에서 녹두 전봉준의 최후까지라고 볼 수 있죠.” 3시간에 가까운 작품 분량으로 동학의 역사를 한판의 판소리로 완성시켰다. 최근 시간은 짧고 화려한 형식으로 구성되는 공연의 풍조와는 다르다. 화려한 조명과 영상 등에 개의치 않고 정통 판소리 방식으로 공연을 열었다. 정통적인 판소리 공연의 형식을 고집했던 이유는 100여년 전에 있었던 이 긴 이야기를 관객에게 바쁜 마음이 아닌 시간을 충분히 내고 자기 침잠을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임진택 선생은 50년 가까이 판소리 창작자로, 마당극 연출가로 민중들과 함께 했다. 스물 다섯 살에 소리를 시작한 선생은 소리는 적어도 열다섯에 시작해야 하는데 스스로 늦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스물 다섯에 시작한 소리꾼, 광대인생은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며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앞서 걷는 길은 외로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뒤를 따르고 곁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함께 건너온 시절의 짙은 그늘이 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작품은 언제나 이 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나는 옛날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 판소리가 한동안은 그 메시지를 주지 못하던 때가 있었어. 그때 나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실제로 옛날 판소리는 거의 소멸 위기에 있었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판소리 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어. 그러다가 문화재 제도가 생기고 문화재 보존 정책이 들어온 거지. 그 당시에 소리들은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아무도 생각지 않았지. 그때 나는 옛날 판소리 그대로는 안 되고 판소리를 새롭게 만들어 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시대의 스승들 박동실의 <열사가>를 처음 접했을 때, 선생은 의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예술작품으로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옛날 판소리에 비해 열사가는 너무 비분강개만 한다고 생각했어. 프로파간다로 민족과 애국을 외치는 게 예술은 아니기 때문에 좀 미흡하다고 느꼈어. 특히 판소리에는 비장과 골계가 있어야 하는데 골계는 없고 비장만 있다고 평가했어. 그런데 내가 창작판소리를 하는 사람이 된 거야.” 그땐 몰랐다. 당신 스스로 소리꾼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판으로 가서 새로운 세상을 한 번 만들어볼까, 외교관이 되려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 선생이었다. 대학시절 선생은 연출가로서 연극을 하며, 마당극이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과 양식을 시도하던 때였다. 무대 위에서,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선배도, 동료도, 후배도 늙어갔지만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밝히던 사람들. 2000년을 맞이하며 창작판소리 열두 바탕을 새로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안에 동학, 독립운동, 통일 문제를 담아내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박동실 선생의 열사가를 다시 마주한 선생은 당시의 소감을 말한다. “엄청나더라고. 느낌이 달라졌어요. 이만큼 창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그 당시 창작판소리에 박동실 명창이 얼마나 사설에 관여했는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있었다고는 해요. 이준, 안중근, 윤봉길, 그리고 유관순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만든 작품, 그게 열사가야. 처음엔 진부하고 예술 미학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만든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창작을 해보니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어. 사설보다는 작창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지.” 임진택 창작 판소리의 시작은 ‘지하형’의 작품으로 회상한다. 김지하의 담시 세 편,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는 오늘날 임진택의 창작판소리가 탄생하게 된 커다란 물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지하 시인의 시로 눈물 지새우지 않은 청년은 없었을 것이다. 이 사회의 어둠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읊으며 피워낸 가슴마다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을 키워냈을 것이다. 선생이 만든 창작판소리는 백범 김구, 안중근, 전태일, 다산 정약용, 장보고, 남한산성, 그리고 오월 광주의 윤상원까지 우리 역사에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빛을 밝혔던 인물과 빛나던 순간들이었다. “그 이전에 김지하의 담시 세 편, 오적, 소리내력, 똥바다 이 세 편이내 창작판소리의 시작이야. 판소리계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 마당극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 선생은 극장을 벗어나 더 큰 무대를 꿈꿨다. 사전에 단어가 없다는 건 그런 현상이나 실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호칭을 준 적이 없을 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극장이라는 게 생긴 지는 얼마 안 된다고, 우리나라엔 연극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선생은 연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연극은 허영된 사치가 아닌 자기 현실을 외치는 시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창작극이 많았는데, 나는 생각했지. 창작극 가지고는 안된다고. 남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사회의식을 가지고 쓴 창작극이어야 한다고. 거기엔 사회의식을 담아 내고 있느냐,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느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 무렵 대학에 탈춤반이 생기면서 탈춤이 처음 공연되는 걸 보게 된 선생은 거기서 ‘마당’을 만나게 된다. 선생이 하던 연극은 학교에서 허가를 내어주지 않았지만, 극장이 없으면 ‘마당’에서 공연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지금 왜 동학인가? “내가 아직 동학이 뭔지 모를 때 내가 태어난 고향과 어릴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 이야길 좀 들려줄까?” 어린 시절 집 앞 큰 길가에서 버스 차장이었던 사촌 형이 진택아, 장터 구경가자 하고 차에 태워서는 데려간 적이 있다. 장터 구경 간다고 신이 나서 버스에 올랐을 것이다.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은 김제군(지금은 김제시) 봉남면이었다. 대여섯살 때까지 거기 살았다. 김제읍에서 봉남을 지나 원평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는 하루에 두 번 운행을 했다. 그걸 타고 원평에 갔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부조화를 느꼈다. 사람들이 전부 쪼그라져 있었다. “그때가 1955~6년쯤 되었으려나. 바로 몇 년 전, 6.25전쟁이 훑고 갔겠지. 나는 그 일그러진 얼굴들이 6.25의 상처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닌 거야. 동학난리의 기억이 아직 그들에게 남아 있는 거야. 동학에서 원평 땅이 굉장히 중요하지. 전봉준의 최초의 근거지가 원평이거든. 최근 나온 자료를 보니 원평 김개남과 같은 동네에 살았을 때 서당을 다녔는데 거기가 봉남이야. 봉남과 원평이 붙어 있거든. 그걸 알고 놀랐어.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내 머릿속에 남아 있어. 동학의 상처가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남아 있었던 것처럼.” 선생은 어릴 때 빈 사당에서 만난 마치 동학군의 형상을 한 사내를 만난 이야기도 어느 마을의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이나 설화처럼 이야기했다. 동학을 모르는 땅은 어디에도 없건만, 선생이 태어난 자란 김제는 오죽할까 싶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는 동학을 모르고 지내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친구 김민기를 통해 가슴에 동학의 불꽃을 지펴냈던 선생은, “김민기가 아침이슬 이후로 탄압을 받다가, 자기 고향인 익산으로 가서 농사를 짓고 살았어요. 그때가 30살 전후였지. 그 전에 김지하가 민청학련으로 감옥가기 전에 동학 이야길 꺼냈었지. ‘장일담’이라는 작품인데 동학 이야기야. 거기서 밥이 하늘이라고 하니까.” 이후 역사적인 작품 하나가 탄생한다. 1980년대에 김민기가 여는 무대,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이 작품은 1982년 제6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으로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그 주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으며 개항 때부터 갑오년까지의 고난의 움직임과 외세와의 역학관계가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연극이 너무 무거워서 임진택 선생은 거기에 소리를 붙였다. 80년대 광주항쟁 직후, 무슨 공연에도 광주항쟁과 연결해서 가슴 아픈 작품을 할 때였다. 그 사이 동학농민혁명은 1994년 100주년을 맞이한다. 전라북도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1994년에 전주에서 100주년기념행사를 치렀다. “1994년에 동학이 완전히 일어났어. 그해에 한편으로는 고부 역사맞이굿을 하면서 전체 동학100주년 기념사업을 하면서 한편으로 1982년에 했던 전체로 판소리로 만들었는데 실패했지.” 다시 왜 전봉준인가, 왜 동학인가. 선생은 말한다. 동학은 과거가 아닌 현재이고 미래라고. 동학에 들어있는 사상을 다시 생각하자고. 동학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또 말한다. 귀천이 없는 평등이었다, 척양척왜의 자주였다, 그리고 동학은 궁극적으로 생명사상이다. 사람이 한울이라 하지 않는가. 선생이 걸으면 다 길이었다. 맨 앞에서 걸었다. 마른 풀들이 일어서서 길을 내어주었다. 길 잃은 새들은 선생이 가는 길을 따라 더 멀리 날아가기로 하였다. 글 신채원 * 이 글은 천도교중앙총부 동학혁명정신선양사업단에서 발행한 매거진 <동학집강소>에 게재된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
새만금에 펼쳐지는 “디지털 잼버리” 준비 완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이종호 장관은 7월 28일(금) 오후 12시40분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이하 ‘새만금 세계잼버리’, 8.1일~8.12일)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 잼버리 부지에 방문하여 디지털 인프라 및 서비스 지원 현황 등을 점검하였다. 이번 방문은 지난 7.21일(금) 개최한 새만금 세계잼버리 통신장애 예방·대비상황 점검회의에 이어 과기정통부가 그간 추진해온 디지털 지원 방안이 현장에서도 차질 없이 준비되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으로, 4일 앞으로 다가온 잼버리가 안전한 환경에서 개최될 수 있도록 28㎓ 5G 기지국을 활용한 WiFi, 지능형 기술이 적용된 CCTV 등 디지털 인프라 및 디지털 서비스를 중심으로 점검을 진행하였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4년마다 열리는 전세계 청소년들의 야영 축제로 이번에 개최하는 새만금 세계잼버리는 158개국에서 4만 3천여 명의 청소년이 참석하는 코로나 19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행사이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지원’ 이종호 장관은 먼저 XR·메타버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새만금 메타버스 체험관과 망원경·태양관측카드 등 과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이동천체과학관을 방문하여 청소년들이 체험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 준비 상황을 점검하였다. 디지털 서비스 지원 현장에서 이종호 장관은 “새만금 메타버스 체험관은 대한민국의 최신 디지털 콘텐츠를 오감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곳” 이라며 “새만금 잼버리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이 꿈과 미래를 그리고 대한민국의 디지털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체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편리·안전한 대회를 위한 통신·정보보호 ’인프라 지원‘ 이어서 디지털 인프라 구축 현황 등을 점검하기 위해 잼버리 공원에서 시설물 현황, 안전 대책 등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 준비상황을 보고받고 AI 기반 지능형 기술이 적용된 CCTV 관제센터를 방문하여 행사기간 중 화재, 금지 구역 침입 등의 사고 발생을 자동 감지하는 모의 시연을 실시하였다. 또한, 잼버리 병원, 종합상황실 등이 운영되는 복합시설인 글로벌리더센터에서는 실내 방역 및 다과 서빙을 위한 자율주행로봇 운용상황을 점검하였으며, 28㎓ 5G 기지국을 활용한 WiFi 시연을 통해 다중밀집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Wifi 속도도 직접 점검하였다. 마지막으로 대회기간 중 국제우편서비스를 제공하고 BTS 우표 등 각종 우편상품을 판매할 예정인 잼버리 우편스토어도 방문하여 직원들을 격려하면서 “그간 과기정통부는 잼버리 기념우표를 발행하고 디지털휴먼 홍보대사를 제작하는 등 새만금 잼버리를 알리기 위해 디지털 기반 홍보를 지원해왔다”며, “잼버리 대회 기간 동안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의 첨단 디지털 기술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도록 대회 마지막까지 조직위와 협력을 통해 디지털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
농식품부,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로 기후위기 적극 대응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이하 농식품부)는 7월 28일 저탄소 농산물 인증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공고했다. 동 사업은 인증대상 품목 여부, 저탄소농업기술 적용 여부, 친환경·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 여부 확인 후 선착순으로선정하는데, 2023년 하반기에는 많은 농가가 참여하여 모집공고 하루만에 마감되었다. 저탄소 인증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저탄소 생산·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로, 저탄소 농업기술을 활용해 생산전과정에서 평균보다 온실가스를적게 배출하는 친환경·농산물우수관리(GAP) 농산물에 부여한다. 농업인이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 배출량 산정 보고서 작성 등 인증 취득 전과정을지원하며, 인증 요건을 충족하면 저탄소 인증을 받게 된다. 올해 하반기 선정 농가는 1,608호로, 선정 농가가 전부 인증 농가로 등록될경우*전체 인증 농가 수는 총 8,941호가 될 전망이다. 이 중 사과 등 과수가5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식량 27%, 채소가 16% 수준을 차지할것으로 예상된다. * 배출량 인증 심사 후 변동 가능 소비자가 그린카드로 저탄소 인증 농산물을 구매할 경우 구입액의 15%를에코머니 포인트로 수령할 수 있다. 그린카드는 소비자가 저탄소·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때 에코머니 포인트를 지급하는 신용카드다. 에코머니 포인트는현금, 상품권 등으로 전환하거나 대중교통 요금 결제, 친환경 기부 등에 사용할 수 있다. 농식품부 송지숙 농촌탄소중립정책과장은 “농업이 기후변화 민감산업인만큼농식품 생산·유통·소비 전 단계에서 탄소배출량을 저감할 책임을 느낀다. 저탄소 인증제 등 지원사업을 통해 저탄소 농식품 체인을 구축하고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붙임 1.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 개요 2. 저탄소 농업기술 현황(18가지) 3. 에코머니 개요 및 사용방법 4. 저탄소 인증 농산물 예시 -
여름방학 기간 중 하루는 자녀에게 ‘안전 선물’을행정안전부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은 여름방학 기간(7~8월) 중 ‘재난안전 가족체험’을 총 6회에 걸쳐 실시한다고 밝혔다. ‘재난안전 가족체험’은 가족 구성원이 재난안전체험 공간에 모여 안전을 배우고 안전의 중요성을 깊이 새겨보자는 취지에서 2022년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것으로, 올 여름은 7월 마지막 날부터 8월 셋째주까지 총 6회* 진행된다. * 모집인원: 회당 50명 내외, 세부일정: 7.31.(월), 8.3.(목), 8.8.(화), 8.9.(수), 8.10.(목), 8,14.(월) ‘재난안전 가족체험’은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안전지식을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연기탈출, ▴완강기, ▴소화기, ▴풍동, ▴지진, ▴심폐소생술 등 다양한 체험활동 위주로 구성되었다. 먼저 민방위 대피시설의 목적과 활용 방법을 알아보고 포디(4D) 재난영상을 통해 지진 및 화재 발생 시 행동 요령을 배운 뒤, 연기로 꽉 찬 어두운 건물 내부에서 탈출하는 요령을 익힌다. 또한 건물 7미터 높이(약 3층 정도)에서 완강기를 타고 탈출하는 방법과 완강기 설치방법을 체험해보고, 가정용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고 소화기를 분사하여 직접 불을 꺼보면서 소화기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풍동 체험장에서는 강풍(최대풍속 20~30㎧)의 위력을 체감하고, 진동대에 올라 진도 1.0~7.0의 흔들림을 경험하면서 지진발생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요령도 배운다. 마지막으로 갑자기 주변 사람이 쓰러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도 교육받는다. 아울러, 안전퀴즈를 통해 정답을 맞춘 자녀에게는 선물을 증정하고, 체험 완료 후 가족단위 기념사진과 단체사진도 촬영해 증정하는 등 자녀들의 흥미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될 예정이다. 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은 “이번 여름방학기간 중 재난안전 가족체험에 참가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값진 ‘안전선물’을 안겨주는 셈”이라며, “앞으로도 가족구성원 모두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방학기간 중 다양한 재난안전 가족체험 교육을 마련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
캄보디아 공무원, K-행정 배우러 한국 찾아캄보디아 국립지방행정학교의 비락 멈(Virak Mom) 부원장을 비롯해 교수와 지방공무원 등 15명이 K-행정을 배우러 한국을 찾는다.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지방자치인재개발원은 7월 30일(일)부터 8월 9일(수)까지 ‘캄보디아 지방공무원 인적자원개발’ 과정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과정은 자치인재원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공동으로 2021년도부터 3개년에 걸쳐 추진되는 공적개발원조(ODA) 국제연수사업의 일환이다. 2021년도에는 22명, 2022년에는 20명이 참여하였으며, 올해는 15명이 참여한다. 캄보디아 정부는 현재 국가전략개발계획의 4대 전략*의 하나로 인적자원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 권한의 점진적 지방이양 등 지방분권과 지방분산 혁신을추진하기 위해 지방공무원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 캄보디아 정부의 4대 전략 : 경제다각화, 고용촉진, 지속가능발전, 인적자원개발□ 자치인재원은 이와 같은 캄보디아 정부의 수요를 고려하여 중앙-지방 간 협력체계(거버넌스), 지역발전 정책, 정부혁신과 디지털행정서비스, 인적자원 관리 등으로 구성된 맞춤형 연수를 진행한다.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정책현장인 전주도시혁신센터, 김제스마트팜 혁신밸리 등을 방문하는 현장 연수도 마련되어 연수의 현지 적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아울러 한국 전문가와 함께 캄보디아 인적자원개발 분야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이 자리에서 현장에 적용 가능한 정책 실행계획을 직접 수립해보고 캄보디아 현지에 한국 행정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류임철 지방자치인재개발원장은 “자치인재원은 그동안 다양한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2000년부터 15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라며, “이번 과정으로 양국의 우호 증진과 대한민국 행정을 수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1923관동대지진 100년, 78주년 광복절 맞이 문진오 콘서트노찾사 출신 가수 겸 작곡가 문진오가 1923 관동대지진 100주년, 78주년 광복절 맞이 독립운동가의 노래 콘서트를 연다.가수 문진오는 해마다 3.1절과 8.15광복절에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는 공연을 해왔다.올해는 1923년 관동대지진 100주년과 78주년 광복절 맞이 공연으로 '다시 찾은 빛-열림'이라는 주제로 공연을 앞두고 있다.모두 '한 사람들'의 이야기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묵직한 '한 걸음들'이 역사를 바꿔왔다.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있었고, 격문을 써 내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이 곧 한울님'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목숨을 걸고 죽음 앞으로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다.일제강점기를 굳건히 살아낸 그 '한 사람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다시는 이 슬픈 비극의 역사를 쓰지 말라고 가르쳤다.낯선 땅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만든 곡 <조선인의 발-1923관동대지진 사진첩에서>, 백운산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의병들에게 격문을 써 내려간 황병학,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움과 비통함, 그리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시로 쓴 이육사, 윤동주를 노래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동학으로 거슬러올라가 동학의 지도자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의암 손병희의 이야기를 담은 곡 <천명, 수운 최제우>,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겨레의 가슴 손병희>를 노래로 만나본다. 지금 이 시대, 왜 역사를 되짚어야 하나공연의 연출을 맡은 신채원 작가는 "청산되지 못한 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친 시민들의 얼굴을, 분단된 조국에서 부모와 형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통곡을,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를 부르며 맨주먹 불끈 쥔 사람들의 외침을, 내 나라, 내 땅에서 말과 글을 잃은 식민지 조선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며 지금 이 시대 역사를 되짚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왜 동학인가, 왜 한 사람들인가 투쟁과 혁명의 역사는 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한 걸음에서 시작되었듯 동학은 수운 최제우의 깨달음에 의해 창도되었다. 시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은 동학이 세상을 밝혀 준 빛이 되어준 것처럼 민중들의 삶 속에서 약자를 돌보는 따뜻한 스승이었던 해월 최시형을 그리며 쓴 시에 곡이다. 여기 길 떠나는 한 사람이 있소.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소. 환한 달빛 고루 비추는 바다 해월, 사람이 한울이라 했소. 어찌하여 한 시도 쉬지 않는 거요. 이보게 한울님도 한 시를 쉬지 않는다네. 산새도 풀벌레도 쉬지 않고 날아간다네. 사람이 한울이라 했소. 몰아치는 민중들이 굽이치는 광야를 피로 적시던 밤 바람되어 춤추는 넋이여, 당신이 꿈꾼 세상 어디쯤 나도 있습니까. 사람과 하늘 만물 앞에 온 몸으로 빛이 된 사람 사람이 한울되는 세상 향해 한없이 걷던 사람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저 바다를 공평히 비추는 찬란한 빛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빛이 된 사람 해월 -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中, 신채원 시 / 문진오 곡 1923 관동대지진 100년의 의미 노래에 담아 ... 1923-2023, 100년의 기억 - 올해는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100년이 되는 해이다.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동경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진 틈에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조선인에 대한 분노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대와 경찰, 일반 민중들에게 조선인을 학살하게 한 사건이다.100년이 흐르는 동안 일본 정부는 사과도 진상규명도 하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에서도 이를 요구한 바가 없다.100년간 은폐하고 부정해 온 역사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노래를 통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내고자 이번 공연에 의미를 담았다. '쥬고엔 고쥬센/ 아들아 기억하지 쥬고엔 고쥬센/ 물려받을 것 없어/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에게 사람이 죽어간이 날의 역사를 물려받은/ 너희 가엾은 후손끼리뜨겁게 뜨겁게/ 뜨겁게 안고 울어라-신채원 시, 문진오 곡 <조선인의 발-1923관동대지진 사진첩에서>- 가수 문진오는 이번 공연을 열며 "빛을 되찾는 광복의 의미를 담아 따뜻한 무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노래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히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발굴하는 일은 끝이 없음을 느끼며 이번 공연을 통해 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열림'이번 공연은 8.15광복절을 앞둔 8월 11일 저녁 7시 홍대입구역 다리소극장에서 열린다. 동학에서 3.1운동, 관동대지진,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공간,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을 찾는 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많은 관람을 기대한다. 일반석 50,000원 VIP석 100,000원 문의 010-8139-7008 3.1절엔 음반 독립운동가의 노래 발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노래로 만나다 2019년 3.1운동100주년, 임시정부수립10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노래로 만들어 음반을 발표했다. 이후 4년만에 낸 음반 <독립운동가의 노래 '결'>은 관동대지진 100년의 의미를 담았다. 관동대지진은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그리고 의병전쟁의 역사 속에 식민지 지배 문제로 이어진 사건이며 현재까지도 재일조선인 사회의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역사 부정의 시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의 진상규명과 다음 세대로 기억이 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고 음반을 발매했다. 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노래하고 기억하는 뜻깊은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 100년 전, 천도교는 당시 유학생 등과 이재동포위문반을 결성하여 희생자 조사를 하고 이를 <독립신문>에 발표했다. 그리고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1924년 1주기 추도식을 거행한 바 있다. -
포덕 164년 7월 3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포덕 164년 7월 3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 -
부산여성연합회, 하계수련강도회 열어포덕 164년 7월 29일 토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천도교부산여성연합회(회장 시정당 문춘옥)는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위치한 원동수도원(源東修道院)에서 1일 하계수련강도회를 개최하였다. 부산시교구와 대동교구 총 35여명이 참여한 이번 수련회는 그동안 내린 폭우로 일정이 연기되어 열렸으며 폭염주의보가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부산여성연합회 임원들의 헌신적인 봉사로 시원하고 넉넉한 음식과 간식 등 철저한 준비로 잘 진행되었다. 오전, 오후 합송, 묵송, 현송의 주문 수련과 경전 합독, 원동수도원장 (휘암 하명출-'지혜로운 여성이 되자')의 강의, 천덕송과 즐거운 자연 체험의 시간으로 알차고 보람있는 시간이 되었다. 폐강사에서 박차귀 부산시교구장은 "원동수도원은 부산시교구에서 관리하는 수도원이지만, 모든 천포형제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공간이기에 언제나 기쁘게 자주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아직 부족함이 많은 시설이지만 언젠가는 전국에서 가장 멋진 수도원이 될수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글 혜허당 -
동학민족통일회·평화원탁회의,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위한 임진각 선언지난 7. 27일 임진각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70년을 맞이하여 동학민족통일회 중심의 연대기구인 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주최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위한 임진각 선언’을 단행하였다. 이들 평화통일단체는 남북의 동포가 손잡고 전 세계를 향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였으며, 남북 간의 3통(통행·통신·통상)실현으로 평화공존과 통일번영의 금수강산을 이루자고 주장하였다. 이날 노태구 동학민족통일회·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상임의장은,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체결은 일찍이 남북이 UN에 동시가입하면서부터 시작되어야 했던 일이다. 위로부터의 엘리트중심의 정치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중중심의 시민정치의 시대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정권이 바뀌자 말자 그간에 쌓아온 통일운동은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되어, 통일운동단체가 반국가단체로 폄하되고 남북관계는 적대관계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정치력 부재로 여겨진다. 이제라도 통합·평등·균형·협력의 글로벌 거브넌스 플렛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들 평화통일단체는 7.27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결의한다고 밝혔다. 하나. 7.27 정전협정 70년을 맞아 평화협정 원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3통(통행 통신 통상)실현을 우선하고자 한다. 하나. 북과 ‘남북동포 띠잇기운동’을 위해 판문점에서 만나고자 한다. 그리하여 3통실현을 위해 민족문제는 남북의 동포가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함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자 한다. 하나. 7.27를 기하여 ‘통일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임을 알리는 통일투어에 들어가고자 한다. 주권재민의 시민의식에 기반한 민족통일 정치사상교육을 정착시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평화민족통일원탁회의 공동의장)은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위한 임진각 선언’을 적극 지지하고 동참한다고 밝혔다. 이윤영 관장은 ‘한(조선)반도 평화통일은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혁명 정신을 계승함으로서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