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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주년 지일기념일 -
올바른 신앙으로 생활에 활력을 찾자모시고 안녕하십니까? 다사다난했던 무술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연초에 계획했든 사업 들은 잘 마무리가 되셨는지요. 내년에는 삼일운동 백 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천도교에 위상이 더욱 충천하기를 기원합니다. 동덕님들 내년에도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은 ‘올바른 신앙으로 생활에 활력을 찾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떠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천도교를 신앙함으로써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신앙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 신앙 인간의 흥망을 신에 의한 위력으로 믿어 지배와 간섭을 받고자 하는 민속화 한 다신 사상의 신을 믿고 모르는 것을 위탁하고 한 일을 감사하다고 보고하는 미신의 다신 주의 신앙은 예로부터 민속화 하여 전하여 오는 것입니다. 화복 길흉을 기원하는 신, 직접 신앙은 우리나라에 전통화하여 가정에서는 토주신, 산신, 수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신 숭배로 전하여 내려오는 신앙입니다. 둘째, 간접신앙 한울님을 직접 믿지 못하고 한울님과 통하는 중보자를 중간에 내세워 간접으로 믿는 계급적인 중보자 신앙입니다. 사람은 한울님을 직접 믿고 상통할 수 없으므로 한울님을 직접 통할 수 있는 중보자를 중간에 내세워 그 이름으로 믿는 신앙이 간접신앙입니다. 보통 사람은 기원할 자격을 갖추지 못하여 신의 절대 신임 자인 위대한 자를 중보자로 내세우고 믿는 의존적인 계급적인 신앙입니다. 의존적인 신앙은 항상 잘못에 대해 속죄하면 된다고 믿고 속죄를 기원하는 자와 신을 대신해서 속죄를 받아들여 용서해 주는 자와 사후 천당을 가게 해주는 자가 따로 있어 인간을 초개 같은 존재로 저하하는 제도의 신앙입니다. 셋째, 자주 신앙 한울님을 직접 믿고 한울님과 사람 사이를 가정적인 분위기로 되게 하는 자주 신앙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고 평등 자유 분위기로 한울님과의 사이는 둘이 아닌 하나로 동화되는 가정적이면서 자주적이고 지공무사한 한울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한울님을 직접 믿는 자주 신앙은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기 고향에서 자유로이 살며 부모 처자가 원만한 가정에서 서로 뗄 수 없는 윤리·도덕으로 같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인내천 진리의 자주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 메이는 사람처럼 방황하거나 금수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신앙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으므로 침착해서 기도와 노력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슬기롭게 극복하여 전화위복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닥쳤을 때 두렵고 괴로운 마음으로 허둥대다가 더 큰 불행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힘이 됩니다. 신앙은 신념을 가지는 것이며 신념은 심주를 세우는 결심이며 그 사람의 면목을 세우는 기운이요 힘이요 주인입니다. 대 신사께서 경신년 4월 5일에 득도하시고 후천개벽 한다고 하신 말씀은 천사 문답에서 얻은 한울님을 믿는 형언할 수 없는 힘의 표현입니다. 신앙은 일상 기거에서부터 가정생활로 국가·민족의 의무로 인류 전체에 이르기까지 그 힘이 됩니다. 대 신사는 보국안민 포덕 천하 하신다고 하며 지상 신선 즉, 천사가 된다고 전 인류의 희망이 되는 힘을 주신 것은 한울님을 믿는 데서 한울님의 힘을 얻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조금도 두려움과 불평이 없이 태연한 태도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받으신 대 신사의 힘은 한울님을 믿는 신앙의 힘입니다. 갑오동학혁명, 갑진개화운동, 기미삼일운동, 일제하에 반일 사상의 고조로 비롯된 무인년 황해도 반일 기도사건 등 현재의 이르기까지 남북한에서 사상의 대립으로 수많은 신도의 희생과 옥고와 불우한 세파의 역경에서도 일관해서 백수십 년을 버티고 내려오는 것은 한울님을 믿는 신앙의 힘이며 천도와 천운을 믿는 신앙의 힘입니다. 한울님을 믿으면 천도를 알게 되고 천도를 알고 믿게 되면 시대가 향상 발전됩니다. 그것은 사인 여천 주의를 실행한 신앙의 힘이 합기덕 되어 무위이화로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정신과 마음의 영양소요 강장제가 되는 것입니다. 현실의 인간사회를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앙. 현실의 인간사회를 낙원으로 할 수 있다는 신앙은 인내천 진리의 신앙입니다. 이 지구는 무형한 한울의 모든 성령과 영기를 화생 시킨 곳이므로 한울님의 뜻대로 인간의 낙원을 이루는 곳입니다. 인생은 한울님의 죄를 지고 온 것이 아니라 무형의 한울님이 유형의 한울님으로 귀화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화초의 씨가 나와서 성공적으로 본연의 꽃을 피우듯이 성령의 화신으로 된 사람을 영광스럽게 알고 즐거워 하여야 합니다. 이 지상의 천국을 실현하고 지상 신선이 되어 생활하는 안락한 인간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자는 신앙이 인내천 진리의 신앙입니다. 정신과 이념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신앙 불필요론. 그날그날에 일신상의 만족과 향락을 위하여 현실 주위로 내일의 인간윤리를 생각하지 않고 이념에 구애받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독선적입니다. 마치 법 없는 사회 예절이 없는 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념에 근거를 두지 않는 향락과 자유는 공부하기 싫다고 공부하지 않는 행동과 같습니다.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일 안 하고 저축하지 않는 행동은 책임자 없는 조직과 같이 오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의 부담도 인간사회의 향상 발전과 존엄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제재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신앙은 선견지명의 신념입니다. 신앙은 앞으로 보이지 않는 장래를 보고 말하기 어려운 장래를 믿어 희망을 신조로 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념을 굳건히 하여 노력하고 믿도록 앞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현실 위주의 사업으로 만족하지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오늘의 일 중에도 정신과 육신의 공동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매사 행동을 삼가 오늘보다도 내일인 먼 장래에 미치는 영향과 나의 의무를 다하여 자손만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업하는 것입니다. 보통은 오늘만을 보고 생활하나 신앙생활은 맨 앞을 본 선견지명으로 고생을 무릅쓰고 감수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잘살기 위함이다. 신앙생활이란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따르는 제도와 금기가 있으므로 제도와 금기를 지키는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닌 행복한 즐거운 행사가 되어야 하며 즐겁게 생각함으로써 정성이 되고 지극한 신앙이 되어 그 정성과 신앙의 결과가 진정한 행복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원에 화초와 수목은 나뭇가지를 잘라 주어야 하고 비료나 물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꾸는 행동을 고생스러운 노력으로 안다면 화초와 수목을 심은 정신과 어긋나며 진정한 재미를 모르는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약간의 비용이 들고 약간의 제도로 제재가 된다고 해도 그 돈과 제재는 괴로움이 되지 않는 행복한 생활의 한 토막이라는 생각을 가질 적에 만족한 기쁨의 희망입니다. 이 기쁨의 생활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리로도 만들 수 없는 행복한 신앙생활이며 훌륭한 큰 인간 사업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외롭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것은 외로움뿐입니다. 생각이란 상대와 합하는 것이며 예를 들면 사업하는 이는 사업의 생각을 하고 연인은 연인에 대하여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 외로움이 덜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생각은 그 시한이 지나가면 희비 양선으로 결정되어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란 일부적이며 일신 전체의 생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종교를 신앙하는 진리의 생각은 사업하는 이나 연인이나 병석에 누운 환자나 위대한 정치가나 학자나 군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틈틈이 생각하고 생각하여 외로움을 잊는 가운데 본연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종교적인 진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의논하고 충고를 얻을 부모가 없는 고아나 남편 없는 살림과 같고 선생 없는 학생의 처지와 다를 바 없이 외로운 것입니다. 진리의 신앙이란 목숨이 다하도록 배우자와 같은 존재가 되므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고 나아가면서 작은 일에 구애 되지 않고 작은 일에 고통을 느끼지도 않게 됩니다. 신앙은 희락의 핵심이요 종자입니다. 신앙이 희락의 핵심이요 종자란 신앙에서 세상 모든 근심을 해탈하는 힘과 희망이 생기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신(神)이 나서 심화기화가 되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말함입니다. 동지 동덕 간에 만나는 즐거움이나 교회당에서 신(神)나게 노래할 때 한울님께 감사한 심고를 할 때나 주문을 외울 때 심화기화한 그 즐거움을 애연가가 주린 담배 피우거나 애주가가 목마를 적에 술 마시는 즐거움이요, 무희나 가수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움입니다. 잊어버렸던 물건을 찾은 즐거움이나 근심하든 걱정이 없어진 즐거움 못지않은 심독희 자부(心獨喜自負)하는 자랑스러운 마음은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체험하여 본다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는 신앙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앙은 만족을 줍니다. 어린애가 울다가도 어머니의 젓만 물리면 즉시 울음을 멈추는 것은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로서 믿는 대상을 생각하면 즉시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은 신앙으로서 어린애가 어머니 젖을 문 것과 같이 만족하기 때문에 정신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때 이십일 자 주문 (二十一字 呪文)을 생각하고 외우면 고통을 잊을 수가 있고 시간이 지루할 때 주문을 외우면 지루한 것을 잊어버리고 피로할 때 주문을 외우면 피로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자기의 심화기화로 이해와 해탈로써 자위 되며 심신의 안정을 가지는 호신의 좋은 방법입니다. 이상으로 신앙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열거하였는데 우리 동덕께서는 적극적으로 신앙의 열의를 갖고 노력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리며 오늘에 설교를 마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포덕 160년 1월 신인간 게재 -
무위이화, 조화이며 천리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세계는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학자는 앞으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며 앞으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이전상태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늘 바깥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이번 기회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지내다 보니 우리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부질없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해진 것 같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삶의 방향과 그동안 구축해 온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나 언제든지 위기와 환란이 찾아올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도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보여주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몇 달 만에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면서 우려와 걱정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초기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응 방법을 놓고 우리를 비난하거나 경계하던 나라들도 우리가 옳았다는 긍정적인 평가 속에서 신뢰로 바뀌고 있으며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우리 문화와 함께 한국의 독창적인 종교인 천도교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세계의 석학들은 앞으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이 급속도로 변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가운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에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긴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변화가 이미 16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사님께서는 “12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라고 하시며 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병지란 지낸 후에 살아나는 인생들은 한울님께 복록정해 수명일랑 내게비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경전을 통해 수없이 보아 온 천도교인이라면, 인류의 문명이 ‘다시개벽’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병지란’에 대해서도 그동안 우리나라가 많은 재난을 겪어 왔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대신사님의 심법을 계승한 우리 천도교인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중앙총부에서는 1주일간 특별기도를 실시하는 공문을 보내 전국의 교인들은 집에서 특별기도를 하여 왔으며 오늘로써 특별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수도는 계속되어야 하고 더욱 깊은 공부를 하시어 우리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설교 제목을 무위이화로 정해 보았습니다. 무위이화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한울님의 조화이며 천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한울님께 기원하고 바라는 단계에서 무위이화의 단계를 공부하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최근 몇 분들과 함께 오랜만에 함께 수련을 하였는데 그동안 수도를 꾸준히 해 오신 결과 주문소리도 표정도 언행도 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자연히 화해진 모습을 보니 천리를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세계 정세는 일찍이 대신사님께서 말씀하신 ‘무병지란’과 다름이 없습니다. 대신사님 당시에도 콜레라가 삼남 지방을 휩쓸어 많은 사람이 전염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신유년 여름에 용담의 문을 열고 포덕을 처음 시작할 때 용담에 명인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도를 배우고자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병을 고치고 살기 위해서 몰려들었습니다. 대신사님은 영부를 써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영부를 병에 써보니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여 그 까닭을 살펴보니 도덕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매번 효험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입도를 하고 도를 닦으니 오래된 병이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낳았으며, 물욕이 제거되고 총명해지고 심지어 얼굴 모습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신사님은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것이니 지상신선 내아닌가 하고 노래하셨습니다. 해월신사님 당시에도 콜레라가 창궐하여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이를 면하는 길은, 위생을 철저히 지키고 주변을 청결히 하고 수도에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잘 실천하였던 교인들은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며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때도 모두 무사했으며 이를 본 사람들은 동학을 하면 괴질도 피해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들어 왔다고 합니다. 성사님께서도 포덕 51년 8월에 서울 시내에 콜레라가 유행하여 걱정하는 교인들에게 우리 교인들이 아직 신앙심이 빈약하여 눈에 보이는 물질과 귀에 들리는 이론만을 숭상하다가 보니 유행병 같은 것을 무서워하는 것이라며 신사주문을 지어서 교인들에게 시일 저녁 기도식 때 105회를 외우라고 하셨습니다. 춘암상사님께서도 수해로 사람들이 천명이나 죽는 모습을 보시고 무병지란이 아닐 수 없다며 교인들에게 수도를 극진히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보면 스승님들께서는 시련과 위기가 닥쳐올 때나 큰일을 앞두고서 모든 교인에게 가장 먼저 수도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는 코로나가 지나간 후에 더 큰 충격과 시련이 닥쳐올 것이란 예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무병지란은 어느 한 나라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영향과 충격도 세계적이고 전 지구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무병지란을 피하여 살아날지라도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힘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승님들께서는 무한하고 무궁한 생명의 근원과 통할 수 있도록 수도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 물질이나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한울님의 뜻과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수도하는 교인들이 줄어들자 교당도 점점 비어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사님께서는 「포덕문」 첫머리에서 “저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사시가 성하고 쇠하는 것이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 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로되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와 이슬의 혜택을 알지 못하고 무위이화로 알더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논학문」에서도 “오도 무위이화라” 하시며 서학과 다른 우리 도의 이치가 무위이화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풀이하시면서 조화를 무위이화라고 하셨습니다. 「포덕문」에서 대신사님은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하건만, 한울님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부우민(愚夫愚民)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만사를 안다고 하지만, 한울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부우민입니다. 비록 천도교를 하지만, 시천주를 실지로 체험하지 못하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남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인내천’ ‘사인여천’을 말로만 외치는 사람들도 우부우민입니다. 한울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우리 천도교인들이 수도를 참 열심히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5시 기도식과 함께 1시간 수련을 하시고 일과를 시작하시는 분이 대부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적어도 한두 차례는 수도원에 가셔서 합동수련을 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수도원에는 교인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열기가 식어 지금은 수도원이 텅텅 비고 교당이 비어가고 있습니다. 또 매년 단체수련을 실시하지만, 참가하는 인원도 적고 수련내용도 부실하고 정성도 예전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예전 우리 교인들은 군대보다도 더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여름날 천둥 번개가 요란하고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려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천도교인들 수련 모습은 당시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참 대단한 모습이었습니다. 또 휴식시간에는 일감을 찾아들고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힘든 줄 모르고 일하시는 모습은, 처음 수련에 참가한 사람들을 감동시켜 힘들어하던 사람들도 그 분위기 속에서 감명을 받아 1주일 수련에 대부분 강령이 되어 한울님 모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천도교인이라면 누구나 시천주는 알고 있습니다. 들어서 아는 사람도 있고, 배워서 아는 사람도 있으며, 경전을 살펴보고 알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주문을 외워서 직접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서 아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시천주를 참으로 아는 사람일까요? 이제는 말만 하는 천도교인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닦고 실천하는 천도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형식만 남아있는 천도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천도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만 강조하는 천도교가 아니라 현재를 중시하고 미래를 앞장서서 열어가는 천도교가 되어야 합니다. ‘무병지란 지낸 후에 살아나는 인생들은 한울님께 복록정해 수명일랑 내게 비네’ 라고 하신 상황이 눈앞에 닥친 지금 우리 천도교인들은 무엇으로 사람을 살릴 것입니까? 예전에는 강령도 받고 영부도 받고 강화의 가르침도 받으신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수도를 하는 교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고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측면에서만 관심을 갖고 있는 천도교인, 그리고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교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천도교의 힘은 결국 천도교인으로부터 나오며 천도교인들의 힘은 시천주 신앙과 수도를 통해서 나옵니다. 수도하는 교인들이 없다면, 천도교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두 막막한 심정일 것입니다. 더욱 우리나라는 초기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비난과 경계의 대상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나라가 됨으로써 국가적 위상도 높아지고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 인류에게 커다란 교훈을 남겨 주었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고도의 물질과학 문명을 추구해 왔으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을 통해서 그 한계를 여실히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급변하는 인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우리 천도교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어떤 분이 “당신은 왜 수도를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저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수도를 한다고 무심히 대답하였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구도 동기는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수도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 어떤 불심이 깊은 석공이 바위를 쪼아서 불상을 만들려고 온 산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적당한 바위를 찾지 못하고 지쳐서 잠시 쉬려고 하는데 눈앞에 부처님이 떠억 앉아계셔서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군더더기를 제거하니 부처님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나더란 글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있을 때 유명한 사진작가가 “피사체는 스스로 말한다”는 야릇한 말을 하였는데 자기가 사물을 포착하여 셔터를 누른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렌즈에 들어와서 그냥 셔터를 눌렀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끔 이런 분들을 만나면 기분도 좋아지고 그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어집니다. 예술가들이 도달한 무위의 세계와 그 경지가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의 삶은 과연 예술가들만 가능한 것일까요?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평범한 우리 교인들 가운데도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오고 감동을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래전 환원하셨지만 제가 존경하는 숙덕 어르신은 홀몸으로 아들 여섯을 키우신 위대한 어머니셨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아들 여섯을 키우면서 대학 공부까지 시키셨으니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고생인 줄 모르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공부시켜야 해서 자신의 신세를 비관할 틈도 없었다고 하시며 자식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넘겼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자식들이 자신을 살리고 키웠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그분에게는 자식에 대한 어떤 집착도 기대도 원망도 없었습니다. 무위이화를 알아야 진정으로 무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위의 삶을 살아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해월신사 법설 「기타」 편에 “주문 열세 자는 천지 만물화생의 근본을 새로 밝힌 것이요, 수심정기 네 글자는 다시 천지가 운절되는 기운을 보충한 것이며 무위이화는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도천리에 순응하는 우주만유의 참된 모습이니라 ” “십삼 자로써 만물화생의 근본을 알고 무위이화로써 사람이 만물과 더불어 천리와 천도에 순응함을 안 연후에 수심정기로써 천지가 크게 화하는 원기를 회복하면 능히 도에 가까움인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사람 곁에는 진실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진실한 사람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천도교를 하는 이유가 다만 나만 잘살기 위함은 아니지 않습니까? 수도를 하는 이유가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위이화는 잠시도 쉬지 않고 천지 만물을 낳고 기르지만, 힘든 줄도 모르고, 천지 만물을 살려내지만, 그 공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귀천도 가리지 않고 시비도 가리지 않는, 그래서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이 한없이 자유로운 한울님의 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길이며 멋과 품격을 지닌 천도교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 수도가 필요한 것이고 스승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수도에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눈앞의 세상은 모든 것이 변화하면서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낡은 것은 이미 생명이 다했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개벽운수를 누구나 실감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속히 새로운 차원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를 착실히 준비한다면 다가올 미래가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위이화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생명과 영성이 충만한 천도교인들이 많아질 때 천도교의 중흥도 멀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며, 그 길은 천도교인들이 스승님께서 강조하신 수도를 열심히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설교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1년 5월 -
백년만의 해후, 독립영웅 최재형 선생 배우자 최 엘레나 여사 유해봉환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8일(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의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가 키르기스스탄 에서 사후 70여년만에 대한민국으로 봉환됐다”고 밝혔다.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는 7일(월) 키르기기스탄 비슈케크에서 출발해 인천에 도착하는 TW604편으로 봉환되었으며 민간기업 티웨이 항공과 페이버스 그룹의 후원이 있어 적기에 모시는 것이 가능했다. 국내로 봉환된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는 8일(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되어 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 임시안치될 예정이다. 또한,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11일(금) 국내로 반입해 12일(토), 13일(일) 양일간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마련되는 국민추모공간에 최재형 선생의 위패와 함께 모실 계획이다. 12일(토) 국민추모부터는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 거주하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증손자 최 표토르, 외증손녀 박 따띠아나 등 직계 후손들이 귀국해 유족으로서 함께한다. 이어서,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월)에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을 주제로 부부 합장식을 거행해, 원래 최재형 선생의 묘가 있다가 멸실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안장한다. 최 엘레나 여사(1880-1952)는 1897년경 최재형 선생과 결혼해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최재형 선생이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최 엘레나 여사는 대가족을 돌보며 최재형 선생의 손님들을 대접하는 등 남편의 독립운동을 내조하였고 특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순국하자 그의 남은 가족들도 보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 중 3남 최 발렌틴과 5녀 최 올가의 회고에 의하면 최재형 선생 내외는 고성 한번 오가는 일 없이, 서로 깊이 존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하자 최 엘레나 여사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고, 1922년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자본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1952년 사망하여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국가보훈부는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를 모두 끝마치고 7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왔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최 엘레나 여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 여사의 유해가 수습된 비슈케크 묘지 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최재형 선생의 곁에서 독립운동을 내조한 최 엘레나 여사가 이역만리 낯선 땅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70여년간 묻혀 계셨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이제라도 여사님을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와 서울현충원에 최재형선생의 부부합장묘를 조성하게 되어 너무나 뜻깊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 실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12일(토)~13일(일) 최재형 선생 국민추모기간에는 최재형 선생께 전하는 글을 추모공간에 남기면 선생의 ‘러시아 추위보다도 나라를 잃은 나의 심정이 더 차갑다’ 명언이 인쇄된 부채를 나눠주는 이벤트도 별도 진행할 예정이다. -
김언정 작가의 ‘우리가 이렇게 살 줄이야’ 교보문고 POD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 올라페스트북은 김언정 작가의 에세이 ‘우리가 이렇게 살 줄이야’가 7월 교보문고 POD 에세이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밝혔다.이 책은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면서 겪는 고난과 눈물, 변화, 소망의 이야기를 담았다. 장애를 다룬 에세이들 가운데 드물게 온 가족이 함께 등장하고 20대까지 성장한 자폐 청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장애 아이를 중심으로 아빠와 남동생이 함께 가족밴드를 구성해 활동한 내용도 있어 눈길을 끈다. 김언정 작가는 성교육, 양성평등 교육 강사로 이름을 알릴 즈음 큰아이의 장애라는 고난을 맞이했다. 일, 육아 어느 것 하나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일을 그만뒀다. 이후 2020년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가족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2021년 특수학교 학부모회장을 맡으며 시작한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자조 모임을 이끌고 있다. 책을 펴낸 페스트북은 김언정 작가가 아들의 장애를 알게 된 세 살 무렵부터 가족밴드를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게 되기까지를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그려냈다며, 장애를 불행이 아닌 ‘다름’의 하나라고 믿는 작가의 응원 가득한 글이 독자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베스트셀러 선정 소감을 밝혔다. 베스트셀러 선정 소식을 접한 김언정 작가는 “아이의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성장시킨 디딤돌이었다. 지난해 한 드라마를 통해 자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실제 장애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일상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아쉬웠다”며 “이 책이 고난 한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전해지길 기대한다”며 선정 소회를 밝혔다. 인터넷 서점의 한 독자는 구매자 리뷰를 통해 ‘장애가 있는 가족과 같이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가 말한 오히려 그래서 더 행복하다는 말은 그래서 무언가를 넘어서는 지혜의 말처럼 들린다. 삶이 어려운, 특히 가족 문제에 치이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김언정 작가는 8월 19일 성남시 분당야탑청소년수련관에서 북토크를 통해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 줄이야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구매할 수 있다. 페스트북 소개는 ‘작가들이 크리에이터를 위해 만든 회사’. 2013년 설립된 페스트북은 총 200종이 넘는 출간물과 50종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크리에이터 중심 출판사다. 교보문고 POD 사업부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해 전자책 출판 후 주문형 종이책을 출판할 수 있다. 예술가와 예비 작가의 합리적이고 효과적 출판을 돕기 위해 기획, 출판, 마케팅 일원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The가꿈 8기’ 발대식 개최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대표 옥경원)는 8일 현대백화점그룹 인재개발원 청평캠퍼스에서 ‘The가꿈’ 제8기 발대식을 개최했다. The가꿈은 한 해 동안 지역아동센터 아동과 일대일로 연계해 학습과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멘토링 활동으로, 2023년도 2학기부터 진행되는 제8기는 서울·경기·인천·대구의 네 권역에서 지원자 327명 가운데 서류와 면접 심사를 통과한 최종 80명의 합격자가 선발됐다. 이날 발대식은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옥경원 대표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임명장 수여, 선서와 사업 소개, 팀 빌딩(Team building)과 전문가 특강 등 대학생 멘토 대상으로 이뤄졌다. 선발된 대학생 가꾸미들에게는 활동을 돕는 교재비와 교육 기자재, 외부 활동비와 환영 꾸러미 등을 제공했으며 모든 과정을 수료한 대학생들에게는 300만원의 장학금과 장학증서, 수료증을 발급한다. 주관 단체인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의 옥경원 대표는 “The가꿈 8기 면접에서 가꾸미로 선발될 대학생들을 만나며 희열을 느꼈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과 지성을 갖춘 대학생 멘토들의 만남이 실로 기대되며 이 꿈을 실현하도록 The가꿈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는 현대백화점그룹과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The가꿈은 2017년부터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사업으로,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의 학습과 정서 지원을 위한 대학생 장학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후원하고,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협력하며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가 주관하고 있다.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는 2007년 설립된 아동복지시설 전국 연합회(단체 보건복지부)다.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의 권리 옹호와 사회적 기회균등 그리고 ‘이용자 중심의 공동체적 사회복지 실천’을 목표로 하는 NGO 단체다. 대정부 및 국회 정책 활동과 연구, 회원 기관의 인적·물적 지원, 대학생 멘토 파견 사업 ‘The가꿈’, 아동복지시설의 역량을 위한 ‘BASE CAMP Conference’ 등 기업 사회공헌과 이용자 간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한울님을 바르게 믿자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설교를 맡은 원암 김창석입니다. 아침저녁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여러 숙덕 어르신 사모님들 건강 잘 챙기시길 심고 드립니다. 설교에 앞서 제 소개를 간략히 올리겠습니다. 저는 포덕 109년, 1968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천도교에 입문하였습니다. 이후 대학 진학 차 서울에 올라와 대학생 단 단장 등을 맡았으며 현재 공직에 몸담고 도가를 이뤄 부족한 가운데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한울님을 바르게 믿자’로 정해보았습니다. 신앙은, 종교는 믿는 것이며, 무엇보다 바르게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한울님을 바르게 믿자’라는 내용을 대신사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 도를 펴신 <포덕문> 에 비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포덕문>은 한울님의 도와 덕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밝히신 글로, 신앙의 핵심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다고, 저는 우리가 바르고 참된 신앙을 하기 위해서는 이 <포덕문>을 각별히 유념해서 숙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한울님을 믿어야 한다 먼저 첫째로, 대신사님은 <포덕문> 첫머리에서 춘추와 사시, 비와 이슬의 혜택이라는 우리 삶 주변의 사례를 들어 한울님의 존재와 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한울님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한울님은 엄연히 계시며,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은덕을 베풀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와 덕을 펴는 데 있어 대신사님의 자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보아라, 네가 주변에서 보고 겪는 이런저런 것이 바로 한울님이 계신다는 증거이고 이 모든 것이 한울님의 은덕이다’라고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속뜻은 한울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을 신(信)을 그렇게 강조합니다만, 믿음은 어떻게 하면 생기는 것이며 능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그냥 내가 ‘믿겠다, 믿는다’ 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까? 저는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상이 진리든 사람이든 내가 마음으로 수용할 때 믿음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없다면 천도와 천덕도 그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포덕문> 앞부분에 바로 뒤이어 대신사님께서는 옛날 오제 이후의 실제 사례를 들어 보다 구체적으로, 한울님은 계시며 그 한울님을 기준 삼아 일동일정과 일성 일패를 천명에 부치는 삶을 삶으로써 사람은 군자와 성인에 이르고 사회는 평안하고 아름다운 도덕 문명을 이루었노라고 거듭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한울님이 우리의 삶 속에 계시며, 한울님을 믿고 은덕에 감사하고, 정성 공경을 다 하는 거기에 평안과 행복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한번 한울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라는 간곡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이 <포덕문>의 앞부분부터 각별히 유념해서 읽어나가야 할 줄로 압니다. 한울님이 직접 가르치는 후천운수 다음 둘째로, <포덕문>에서 대신사님은 당신이 한울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시던 천사문답(天師問答)의 광경을 생생히 전달하고 계십니다. 한울님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여러 선생님 사모님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이는 후천시대에는 선천 때와 달리 한울님이 직접 가르침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 경전 여러 곳에서 말씀하시거나 암시하고 있습니다. 의암성사법설 <각세진경>에서 “나와 한울의 기운이 서로 합하여 한울과 사람이 말을 서로 들으며, 뜻과 생각이 서로 같아서 모든 일을 능히 통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신 것이나, 역시 성사님 법설 <권도문>에서 “방금 성령이 현세하여 밝음이 엄숙한지라, 능히 근본을 알아 지키는 데에는 선생의 밝은 도로써 명하여 가르치심이 있어 홀로 묘연한 사이에 받음을 알 터이요”라고 하신 등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한울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정성을 들이면, 한울님은 반드시 바른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울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봅니다. 하나는 깨달음, 즉 어떤 것을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깨닫게 될 때 모호함과 불안함이 없어지고, 고비를 넘기고 마음이 시원해지고 확신이 드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나아갈 바에 대해 분명한 판단이 서게 됩니다. 즉, 보다 현명해지고, 한울님의 뜻과 스승님의 가르침에 더욱 맞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한울님의 가르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공부가 더해지면 한울님은 내가 해야 할 일, 사명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니다. 즉, 한울님께서는 내가 천도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 나를 이 세상에 내실 때 부여하신 사명을 알게 해주시고, 또 이를 이뤄나갈 방안에 대해서도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즉, 후천시대는 한울님과 내가 서로 하나로 일치하여 나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는 동시에,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한울님의 뜻과 스승님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되어 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됨을 뜻하기도 합니다. 말 없고 소리 없는 한울이 가장 무섭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점을 생각하면, 천도에 인연을 맺은 것이 너무도 큰 복이지만, 동시에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항상 삼가고 살피며 나아가야 하는지 알게 되어 몹시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모든 것이 오직 한울님을 위하려는 것 셋째, 대신사님께서는 한울님으로부터 영부와 주문을 받는 대목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영부와 주문은 우리 천도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영부는 영부심 즉 한울님 본래의 마음, 온전한 천심(天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정말 중요한 부분이 바로 그 뒤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울님께서 대신사님께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길이 살면서 덕을 천하에 펴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나, 즉 한울님 당신을 위하게 하면’이라는 구절이 정말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해월신사법설 <강서>에는 “한울이 백성을 내리시어 임금을 내고 스승을 내었으니 오직 상제를 돕게 함이라”라는 서경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임금은 교화와 예악으로 만민을 화하고 법령과 형벌로 만민을 다스리고, 스승은 효제충신으로 후생을 가르치고 인의예지로 후생을 이루게 하나니, 다 상제 즉 한울님을 돕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암성사법설 <수수명실록>에는 “한울이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 명백함이여, 모실 시(侍) 자에 어찌 믿음이 없으며 공경이 없겠는가”라고 하여, 한울님이 당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내고 사명을 주어 활용하신다고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한울님을 위한다는 것은 한울님이 좋아하는 주문을 자꾸 외우고, 마음을 평안하고 기쁘게 하며, 효제 온공을 실천하고, 나아가 한울님의 뜻과 가르침을 이 세상에 펴는 천도 사업, 내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완수해나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신앙하는 사람은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어떤 회사에서, 또 여기 사모님들이 많이 와 계시는데 결혼해서 시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입사를 하고 시집을 가서 “내가 이 회사에, 이 집안에 왔으니 정말 열심히, 제대로 한번 잘해 보겠다”라고 다짐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위아래를 챙기며 그야말로 온갖 노력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회사 사장님이나 시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아주 만족하실까요? 아니 만족하시던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그 사장님은 “열심히 하니 좋긴 좋다. 그런데 무언가 아쉽다”라고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사장님은 처음에 목적한 바가 있어 회사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과 계획도 세웠을 것이며, 그렇게 회사를 운영해오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여러 고민도 생겼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정말 훌륭한 직원이라면, 자기 입장이나 생각에서가 아니라, 사장님의 입장에서 지금 이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역할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회사의 사정을 살피고, 사장님과 수시로 대화하며 방법을 찾기 위해 적극 나선다면, 바로 이런 직원에게 사장님은 “아! 이 직원은 정말 나의 목적과 고민을 알고 제대로 일하는구나! 우리 회사에 보물이 들어왔네”라고 하면서 애정을 주고 칭찬도 하고 적극적인 지원은 물론, 승진도 시켜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과는 나오지 말라고 해도 나올 것입니다. 이는 시댁이나 교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선생님 사모님 -
생태적 문명 전환을 위한 결단의 시간모시고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2년간 인도 오로빌 공동체를 체험하고 지난 4월에 귀국했습니다. 원래는 3-5년 정도 계획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생각보다 일찍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체험담은 다음에 다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 지구적 생태위기와 그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천도교는 여기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시대 천도교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고 하는 세계적인 팬데믹, 역사책에서나 봤던 괴질을 현실로 마주하면서 고통스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코로나는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확산일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백신이 언제 나올지, 나온다 하더라도 코로나가 끊임없이 변종되고 있어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도 의문입니다. 어쩌면 평생 코로나와 함께 공존하면서 사는 삶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남획하면서 생긴 재앙, 즉 환경파괴에서 비롯된 환경재앙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 괴질뿐만이 아닙니다. 코로나 외에도 생태 위기는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종다양성 소멸, 열대림 파괴, 사막화, 토양침식, 홍수와 가뭄, 폭염과 한파, 지하수 고갈과 오염, 산호초 파괴, 쓰레기 매립지 확대, 독성 폐기물과 살충제 및 제초제,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땅의 황폐화, 핵폐기물, 미세먼지, 천연자원의 고갈, Gmo 농산물 등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기후변화입니다. 최근의 세계적인 홍수와 가뭄, 기록적인 폭염과 한파는 대부분 기후변화로 인한 것입니다. 최근 유럽은 150년만에 최악의 폭염으로 약 3만 5천명이 사망했으며, 인도는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약 1500명이 사망했습니다. 2010년 일본에서 쓰나미로 원전이 폭파되어 2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으며, 중국과 브라질, 파키스탄은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로 수천명이 사망하는가 하면, 스페인과 포르투칼, 아프리카는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며 영구동토층이 감소하고 있으며, 제트기류의 이상과 바닷물의 열순환이 방해받고 산호초가 멸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쪽 수림대와 아마존의 밀림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지난 100년간 약 1도가 상승했으며,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2006년 발표된 영국 정부의 ‘기후변화의 경제학’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가 1℃ 오를 경우, 안데스 산맥 빙하가 녹으면서 이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던 약 5000만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으며, 매년 30만 명이 기후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3℃ 오를 경우 아마존 열대우림이 붕괴되고, 최대 50%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며, 4℃가 오르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터키가 사막으로 변하고 북극 툰드라의 얼음이 사라져서 추운 지방에 살던 생물들이 멸종한다고 예측합니다. 5℃ 오를 경우 히말라야의 빙하가 사라지고, 바다 산성화로 해양 생태계가 손상되며, 뉴욕과 런던이 바다에 잠겨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균기온이 6℃ 오를 경우 인간을 포함해서 현재 생물종의 90%가 멸종한다고 예측합니다. 최근에『2050년,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미래에 인류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기후변화’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추세대로 간다면 2050년에는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지표면의 30% 이상에서 극심한 사막화가 동반된다고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산불, 폭염, 가뭄, 침수 등의 이상기후를 겪을 것이고, 강우량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엘리뇨 현상이 만연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결과 기후재난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는 새로운 유형의 ‘기후 난민’이 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폭염이 1년에 100일 이상 지속될 것이고, 전 세계 곡물 수확량이 80%가 감소할 것이며, 더불어 만성적 물 부족 문제에 처할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간 식량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UN은 2050년에 기후난민이 2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생존에 취약한 빈민층이 10억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 IPCC(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가 2도 상승하는 경우 1.5도 상승할 때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 인구가 약 1억 5000만명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결과를 예상하고도 국제간의 협력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7년 기후변화협약을 담은 교토의정서가 무색하게 이후 20년 동안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습니다. 또한 2016년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유지하는 파리기후협약에 195개국이 동의했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이 협약에서 탈퇴를 공식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미국인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경제성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경 문제는 결국 경제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생태계 파괴의 현상적 원인은 이산화탄소의 과다 방출, 초국적 종자회사의 농간, 부도덕한 기업의 불법적 행위들로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결국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성장이데올로기, 시장원리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확장을 동력으로 존속되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연과 노동을 착취하게 됩니다.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라는 작은 책을 쓴 오리건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존벨라미 포스터는 환경과 경제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출현과 더불어 인간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 즉 토지와 자연자원 그리고 인간 자신의 노동을 시장에서 이윤을 낳을 잠재적 상품으로 간주하면서” 광범위한 환경파괴가 이루어졌음을 역사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사실은 발견이 아니고 점령이었습니다만, 그 이후 얼마나 많은 인디언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땅을 뺏고, 그 땅과 그 땅의 동물, 식물을 착취하면서 환경파괴를 자행했는지 모릅니다. 고급 모피를 얻기 위해 수천만 마리의 수달과 비버, 여우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숲은 파괴되었고, 지역민들이 먹을 곡물을 재배하던 땅에는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사탕수수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엄청난 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이 건설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땅은 황폐해지고 원주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으며,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의 노예를 들여왔습니다. 본격적인 산업혁명 이후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왕자와 제비라는 소설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쓰라린 시간들(1854)이라는 소설에서 당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높은 굴뚝에는 그칠 줄 모르는 뱀불꽃 같은 연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 올랐다. 그 마을엔 검은 운하가 있었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염료로 자줏빛으로 변한 강이 하루종일 흐르고 있었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집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제3세계 민중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1980년대에 와서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것 역시 또 다른 방식의 경제적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대놓고 남의 나라 땅을 지배하는 용인될 수 없기에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으로 세계의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 바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놔두고 환경문제를 논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격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경문제를 경제문제, 사회문제와 별개로 봐서는 안됩니다. 환경문제는 사회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집니다. 환경문제는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으며, 그 과정에서 역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전쟁, 제3세계의 저발전이라는 사회문제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재편 없이는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자연을 대하는 태도, 생산 양식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로 가자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사회주의 역시 환경파괴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역시 근대문명입니다. 이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모두 넘어선 새로운 생태문명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폭주하는 자본주의라는 기관차에서 내려서 친환경 에너지로 운행되는 완행버스로, 또는 자전거로 갈아타야 하는 결단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천도교는 3·1운동에서 이미 도의적 신문명의 비전을 제시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1920년대 개벽 운동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를 비판하였으며, 해방공간에서 청우당이 내놓은 ‘신국가건설’을 위한 4대 강령을 내놓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47년 천도교의 정치이념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형의 자본가 중심의 자유민주주의를 원치 않는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제도 안에 내포한 모순과 폐해를 미리부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소련류인 무산자 독재의 프로레타리아 민주주의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조선에는 일찍이 자본계급의 전횡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조선의 현단계에 적응한 ‘조선적 신민주주의’를 주장한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당시 이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신한국적 민주주의’와, ‘동귀일체의 순환경제’, ‘사인여천의 새로운 윤리에 바탕한 존엄한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이런 천도교 선배들의 안목과 높은 비전과는 달리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진리인 것처럼 떠받들어 왔습니다. 이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천도교는 이런 선배들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서 도의적 신문명, 생태문명의 비전을 이 시대에 맞게 다시 선명하게 제시하여야 합니다. 우리 천도교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역할은 더 이상 천도교 사상이 위대하다고 까마귀 제소리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다수의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입니다. 저출산 문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최고의 자살률의 원인도 근본적으로 보면 양극화가 심화된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분단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이 분단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강조한, 절멸적인 환경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를 보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도의적이고 생태적인 신문명의 비전과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경제모델을 천도교가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공히 넘어설 수 있는 비전과 사상을 가진 거의 유일한 단체가 바로 천도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스승님과 천도교 선배들의 열망을 계승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문 연구기관의 설립과 교육기관의 설립입니다. 더 이상 동학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 사회의 문제와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그리고 분단 문제이고, 하나는 절멸적인 위기에 놓인 자연과 생태계의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적 연구기관의 설립이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교육기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됩니다. 교단의 총력을 모아 교육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대학원대학이라도 설립해야 합니다. 늦었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 되는 과를 유치하려고 해서는 다른 대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대의를 내세운 과를 앞장세워야 합니다. 그냥 천도교대학원대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천도교 생명평화대학원’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천도교 교리교사를 연구하는 과도 필요하고, 수련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수련명상학과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화두인 생명과 생태, 통일과 평화 문제를 다루는 ‘생명평화대학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 생명학과, 평화학과, 통일경제학과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NGO학과, 사회복지학과, 미래문명학과 같은 것도 나중에 추가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학이 다 어려운데 지금 대학을 설립해서 운영이 되겠느냐고 걱정하십니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와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러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대의와 명분이 있다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시세에 영합해서 돈 되는 학과나 유치한다고 하면,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생명평화대학원대학’이어야 합니다. 저는 천도교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연구기관과 그것을 실천할 인재양성의 교육기관, 이것을 미뤄둔다면 이제 천도교는 이 땅에서 서서히 이 땅에서 사라질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는 운명을 앉아서 가만히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다시 일어설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전환을 위한 결단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포덕 161년 7월 26일 -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과 시천주侍天主 진리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이 코로나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으로 귀한 목숨과 생업과 행동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모든 불행한 일들이 한울님의 특별 감응으로 일시에 정리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설교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과 시천주侍天主 진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새해를 맞아 우리 천도교인은 스승님께서 천사문답을 통하여 무극대도, 동학, 천도교를 창도하셨던 오심즉여심의 심법과 시천주 진리를 받았던 161년 전 천사문답에 대해 “초심불망”하여야 하겠습니다. 『동경대전』 「논학문」을 살펴보면 스승님께서 경신년 사월에 천하가 분란하고 민심이 효박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즈음 들리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다른 연고가 아니라, 서양 사람들은 도를 서도라 하고 학을 천주학이라 하고, 교는 성교라 하니, 이것이 천시를 알고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러한 소문을,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므로 내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즈음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한울님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하는 오심즉여심의 심법을 받음으로써 도는 무극대도, 천도요, 학은 동쪽에서 생겼으므로 동학이면서 마음공부가 주인 심학이요, 교는 한울님의 도를 가르치는 신앙으로 천도교가 창도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건질 무극대도 동학, 천도교가 창도하기 이전을 선천시대라고 하고, 창도 이후를 후천시대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선천시대 기성종교의 신은 무소불위하며, 전지전능한 절대자로 신에게 절대 복종하여야 하는 종속 관계 또는 노예관계를 유지하면서 특정계층만 신과 동등한 신분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계급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후천시대를 여신 스승님의 오심즉여심의 심법과 시천주 진리는 기성종교의 신관을 180도 바꾼 진리로, 모든 사람의 마음은 한울님과 같은 마음이며,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만민평등의 후천 오만년 내려갈 진리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천도교를 신앙하는 교인이나 천도교를 신앙하고자 하는 예비 교인은 스승님의 오심즉여심의 심법과 시천주 진리를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스승님의 심법과 진리를 체험하는 수도연성이 꼭 필요합니다. 천도교 신앙을 함에 있어 수교자는 전교인의 지도를 받으며, 우선적으로 7일 또는 21일의 수도연성을 통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주문공부를 함으로써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진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에 있는 수도원에 집합이 금지되어 교인과 예비교인이 수련을 하러 갈 수가 없는 안타까운 시대로 새해를 맞았습니다. 이에 각 가정에서 가족끼리 하는 재가수련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새해를 맞으면 전통적으로 신년 목적을 정해 7일 또는 21일을 정해 특별기도를 봉행하는데 새벽 5시, 저녁 21시 기도식 및 경전봉독 후, 한 시간 동안 현송과 묵송으로 나누어 주문공부를 하였습니다. 천도교 수련은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마음가짐으로 “성신쌍전性身雙全”을 하는 수련법입니다. 현송은 21자 주문을 소리 내어 송주하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항상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 몸속에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잘 못하고 공기 중 산소를 마시는 것이 적어져서 머리가 명쾌하지 못하고 답답한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할 수 있는 수련법입니다. 묵송은 천지미판 전 내 몸과 마음이 생기기 전 성품을 보고 마음을 깨닫는 수련법으로 견성각심하기 위해 조용한 속에서 심송心誦으로 본주문 13자를 무시로 외우는 것입니다. 어려운 코로나19 시대에 건강한 성심신 삼단을 위하여 각 가정에서 정성·공경·믿음으로 재가수련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도교 신앙을 함에 있어 가정과 사회생활 및 모든 일상생활의 기본이 되며, 일용행사 시 실천궁행하여야 하는 진리인 오심즉여심의 심법과 시천주 진리를 수호,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심즉여심의 심법은 스승님께서 경신년 4월 5일 “한울님 마음이 곧 스승님 마음”이라는 천어를 듣고 이 세상에 창명한 무극대도, 천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오심즉여심의 심법에 기초하시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13자 본주문과 8자 강령주문 총 21자 주문을 짓고 순천명, 순천리하지 않고 세상을 망치는 각자위심하는 위정자와 양반 상놈의 계급사회, 적서의 차별, 남존여비 등을 타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과 세상을 건지실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21자 주문 중 가장 중요한 글귀가 본 주문 맨 처음에 시작하는 “시천주” 석자가 되겠습니다. 시천주는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천도교를 신앙하는 분들은 다 알고 있지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많은 세상 사람은 본인이 한울님 모시고 있는 진리를 모르고 허무하게 세상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해월신사법설』 「성·경·신」을 살펴보면 “우리 수운 대선생께서는 정성에 능하고 공경에 능하고 믿음에 능하신 큰 성인이시었다. 정성이 한울에 이르러 천명을 계승하시었고, 공경이 한울에 이르러 조용히 천어를 들으시었고, 믿음이 한울에 이르러 묵계가 한울과 합하셨으니, 여기에 큰 성인이 되셔서” 이 세상을 건질 오심즉여심의 심법을 받으신 것이며, 시천주 진리를 창명하신 것입니다. 포덕 4년 영덕에 사는 제자 강수가 스승님을 찾아뵙고 수련의 절차를 물으매 스승님께서 내려주신 것이 「좌잠」입니다. “오도박이약吾道博而約 불용다언의不用多言義, 별무타도리別無他道理 성경신 삼자誠敬信 三字, 저리주공부這裏做工夫 투후방가지透後方可知, 불파진념기不怕塵念起 유공각래지惟恐覺來知”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많은 말이 필요치 않고,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성·경·신 석자에 있느니라. 이 속에서 공부한 뒤에라야 마침내 알 것이니,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우쳐 지에 이루도록 염려하라. 천도교인의 수도연성 함에 있어서 「좌잠」의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고 더욱 더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주문공부에 매진하여야 하겠습니다. 해월신사님께서는 스승님의 심법과 진리를 수호, 계승, 발전시켜 “사람을 한울님처럼 대하고 섬기라”는 사인여천의 윤리를 밝혀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을 한울님처럼 대하고 섬기려면 위정자와 교직자부터 솔선수범하여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수심정기가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선성지소교先聖之所敎요, 수심정기守心正氣는 유아지갱정惟我之更定이라(인의예지는 옛 성인이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오직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하신 말씀과 같이 ‘수심정기’가 아니면 후천 오만년 내려갈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진리 및 사인여천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도량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천도교인은 한울님 마음 즉 천심을 지키고, 내 몸에 모셔져 있는 한울기운을 바르게 한 다음, 세상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순천명, 순천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월신사법설』 「수심정기」편을 살펴보면 “수심정기 네 글자는 천지가 운절되는 기운을 다시 보충하는 것이니라. 수심정기하는 법은 효·제·온·공이니 이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아이 보호하는 것 같이 하며, 늘 조용하여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늘 깨어 혼미한 마음이 없게 함이 옳으니라. 수심정기는 바로 천지를 내 마음에 가까이 하는 것이니, 참된 마음은 한울이 반드시 좋아하고 한울이 반드시 즐거워하느니라.” 의암성사님께서는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진리, 사인여천의 윤리를 수호, 계승, 발전시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신앙을 확립시켰습니다. 인내천 신앙은 3백만 이상의 국민을 천도교에 입교시켜 전국적으로 3·1독립운동을 거행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의 건재함을 알려 독립의 기초를 다지고,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으며, 현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동경대전』 「탄 도유심급」을 살펴보면 “내두백사來頭百事는 동귀일리同歸一理하리라(앞으로 오는 모든 일은 한 이치에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천도교인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생각은 앞으로 오는 모든 일은 시천주 진리의 이치가 기준이 되어, 이 진리에 어긋나면 잘못된 것이고 이 진리에 맞게 행하면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과 미국 우선주의, 인도의 세습적 계급사회인 카스트제도, 기성종교의 여성 배제 및 남성우월주의 등은 선천시대의 낡고 뒤떨어진 정신과 제도에서 나온 것으로 후천시대가 되어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진리가 창명되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천주 진리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로 약 15년 전 호주제 폐지 시 천도교인 중 스승님의 시천주 진리의 이치를 모르고 폐지에 반대하였던 분들이 있었지만, 현재 호주제는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어 양성평등 시대가 되었습니다. 천도교인은 시천주 진리를 근본으로 용시용활用施用活하여 시대를 앞서 나가야 겠습니다. 시천주 진리를 생활화하기 위해 교인끼리 인사할 때 “모시고 안녕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묻는 인사에서 “시천주 인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동경대전』 「논학문」에 “삼재의 이치를 정하고 오행의 수를 내었으니 오행이란 것은 무엇인가. 한울은 오행의 벼리가 되고,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되고,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었으니, 천·지·인 삼재의 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과 「참회문」에 “천지의 덮고 실어주는 은혜를 느끼며”라는 말씀을 합하여 생각하면, 한쪽 손바닥은 하늘이요. 다른 손바닥은 땅이라 볼 수 있고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는 천지가 덮고 실어주어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두 손을 잡으면 한자로 사람 인人이 됩니다. 두 손을 잡은 상태에서 천·지·인 삼재의 수와 이 세상사람 모두가 천포형제이면서 물물천, 사사천이라는 시천주 진리를 생각하며 “시천주”라고 말을 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천도교인은 스승님의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호, 계승, 발전시켜 시대를 앞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을 버리고, 오심즉여심과 시천주 진리를 깨닫고, 수심정기하여 코로나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심고 드립니다. 지금은 후천시대입니다. 후천시대를 맞아 후천시대의 근본인 시천주 진리를 알지 못하면 설령 지극한 정성이 있어도 한울이 간섭치 않아 죽음이 무상한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의암성사님 법설』 「권도문」의 글귀를 읽어드리며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몸은 선천이기로 화생함이요. 이 마음은 후천이기로 받음이라. 이런고로 세상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지 아니함이 아니언마는, 후천운수를 알아 지키지 아니하면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는 바,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면 오직 사람의 중함으로도 놀다가도 죽고, 자다가도 죽고, 섰다가도 죽고, 앉았다가도 죽을지라. 이와 같이 죽음이 무상한 것은 그 간섭치 아니함을 반드시 알지라. 만일 지키는 사람도 이 운수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설령 정성이 지극할지라도 한울이 간섭치 아니할 터이니 깨닫고 생각하라. 포덕 162년 신인간 1월호 -
천도교의 심법 ; 모심에서 정시정문으로번잡한 세상사에서 잠시 떠나 공기 좋고 조용한 산속 수도원에서 마음을 닦는 하계 수련의 때입니다만, 무병지란의 어려움 속에서 재가수련 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련은 왜 해야 할까요? 살다보면 세상일이나 사람들이 내 맘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게 푸념하면, “원래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한울님 순리대로 되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한울님 순리인지 알아야겠지요? 1. “심학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하였어라”(교훈가) 도를 몰라서 못하나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이 옳다고 아는 것을 지킬 수 있으려면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당장 시비가 붙어 싸우면 서로 손해지만, 알아도 그 화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사고를 치는게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마음이 몸의 기운을 움직여 육신이 일을 하는지. 그 마음을 살필 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마음공부지요. 요즘엔 명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 즉 내 안의 참 마음, 한울 마음을 알아채고 그 마음을 지키며, 그 마음에 따라 행하는 것이 천도교의 수행이 됩니다. 2. 내 마음을 어떻게 잘 조절할 것인가? 모든 수행의 시작은 내 안에 나를 움직이는 참 생명, 즉 한울님의 내유신령을 모시고 있음을 자각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이요,”(논학문) 모심은 주문의 핵심이자 동학의 핵심 요의지요. 내유신령은 내 안의 생명, 외유기화는 나와 소통하는 내 밖의 모든 생명 내지는 나를 둘러싼 빈 듯하나 가득 찬 신령한 영기를 뜻합니다. 사람은 내 안의 생명이 없어도, 내 밖의 생명(공기, 음식, 물과 동식물, 미생물, 그리고 나와 소통하며 교류하는 생명과의 교감)이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는 서로 떨어지거나 옮길 수 없는 하나의 큰 생명, 기운, 한울이고 이를 지극한 기운 즉 지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로 연결 되어 있는 생명의 그물망을 알고 한울생명으로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각지불이고 그렇게 자각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까지가 모심의 뜻이 됩니다. 그로써 모든 생명은 한울로 동귀일체하게 되므로 모심은 각지불이의 실천이 있어야 완성됩니다. 의암 성사께선 온전한 생명의 조건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내유신령)과 나를 비롯한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성품, 외유기화) 그리고 그것을 행하는 몸(각지불이)의 세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성심신삼단) 궁을장이 표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중에서 우리 몸을 움직이고,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 마음이니 마음공부가 우리 삶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 또 바꿀 수 있는지 결정하는 핵심이 되겠지요. 그럼 이 마음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모든 생명은 누구나 태어날 때 한울의 신령한 기운, 한울마음을 받아 태어납니다. “안에 신령이 있다는 것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기의 마음이요, 밖에 기화가 있다는 것은 포태할 때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를 이룬 것이라.”(해월신사법설, 영부주문) “마음은 바로 성품이 몸으로 나타날 때 생기어, 형상이 없이 성품과 몸 둘 사이에 모든 이치와 일을 소개하는 요긴한 중추가 되느니라.”(성심신삼단) 이렇게 신령한 마음을 누구나 받아 태어나니 이를 거울에 비유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난 그 처음에는 실로 한 티끌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다만 보배로운 거울 (같은 마음)한 조각을 가진 것 뿐이니라.”(성범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보배로운 거울, 신령한 마음을 잊고 욕심 가득한 어리석은 마음을 갖고 살게 될까요? 이를 의암성사는 제이천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두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르고, 하나는 미워하는 마음이라 이르느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두 마음이 (참된)마음을 가리운 것이 티끌과 같으니라.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모든 물건이 마음에 들어오면 자연히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생기나니라. 이렇듯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물건의 반동심이라, 비유하면 젖먹이가 눈으로 물건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어 기뻐하며 웃다가 물건을 빼앗으면 성내어 싫어하나니, 이것을 물정심(물건에 정든 마음)이라 이르느니라. 물정심은 곧 제이 천심이니 억만 사람이 다 여기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하느니라.”(진심불염) 내 몸의 감각에 의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하는 자의식이 생깁니다. 이런 제이의 마음이 거울에 먼지가 앉듯이 참된 마음을 가리게 되면, 진실을 보는 현명한 눈이 가려집니다. 좋아하는 물건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면, 거기에 독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덥석 움켜쥐게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자라면서 받는 제도권의 교육들도 규격화된 국민을 양산해내고,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는 역할을 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진실을 올바로 보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무조건 답을 외우기만 했지 그것이 맞는 답인지, 왜 답이 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점수만 잘 나오면 되고, 좋은 학교만 가면 됩니다. 가치 기준이 학생 때는 점수로, 성인이 돼서는 돈으로 획일화되니, 과정이 어찌되건 성적만 좋으면, 돈만 잘 벌면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친 겁니다. 그러니, 다른 피부색의 사람이나 동물 심지어 물건들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게 우리사회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 나아가 물건까지도 신령한 차별 없는 한울입니다. 그러나 제도권의 교육은 그것이 얼마나 효용가치가 있는지,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에 따라 차별하여 바라보고 대하는 것만 훈련시켜왔던 게 사실입니다. 이 모든 오해들이 먼지처럼 참된 마음의 거울을 가리고 있고, 이를 닦아내 본래의 깨끗한 참 마음을 되찾는 것이 마음공부요 수행이 됩니다. 3. 그러한 수행의 기장 기본이 모든 일에 습관적으로, 제이천심으로 행하기 전, 내유신령-참된 마음에 고한 뒤 행하는 심고입니다. “사람이 움직일 때에 마음을 먼저 발하여 사지에 혈기와 정신이 통한 뒤에 동작하여야 서로 어김이 없는 것이다. 또한 말할 때에도 마음으로 먼저 생각하여 (마음과)정맥이 서로 통한 뒤에 말을 하면 혈기가 감손되지 아니하나, 무심코 말을 하면 기운과 피가 크게 상하고 음식도 무심 중 급하게 먹고 마시면 해가 되며, 보통 기거할 때에도 무심중 급하게 움직이면 해가 되는 것이니 삼가고 삼가라.”(위생보호장)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내 생명의 근원인 한울에게 고하며 함께 움직이는 겁니다. 이를 해월신사님은 물물천 사사천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한울 이치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고하고 감사하며 행하는 것, 이것이 심고입니다. 그렇게 일상을 행하는 것 모두가 수행이요, 기도가 되니 천도교에선 기도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성과 속이 하나가 됩니다. 4. 또한 일상 중에 판단이 필요할 때는 재사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수덕문) 다만 여기서 재사심정은 자기의 자의식으로 다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을 두 번 한들 같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두 번째 생각은 내 입장이 아닌 한울님 마음으로 생각해 보는 겁니다. 해월신사께서도 “심령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육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수심정기)고 하셨습니다. 육관은 몸의 감각기관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부정확하고 주관적인가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이외에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육관에 의지한 생각은 거짓된 정보에 혹하게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고하면서 오직 자신의 본래 내유신령, 성령性靈으로 직관해야 합니다. 5. 정시정문 합시다. 성사님은 심고와 재사심정, 심령으로 생각하는 가르침을 발전시켜 정시정문의 심법을 말씀하셨습니다. “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는 것은 성․심․신 삼단이 합하여 보이고, 나누어 보임이니 세 가지에 하나가 없으면 도가 아니요 이치가 아니니라. 나도 또한 이 세 가지를 합하여 깨달아 홀로 황황상제의 자리에 앉았노라.”(신통고) 나의 육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심신삼단, 즉 한울님의 시각에서 보고 판단해야(正示正聞) 바른 진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안을 성품과 마음과 몸의 시각으로 나누어 보고 합하여 보는 정시정문이 천도교 특유의 심법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단편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만 보고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성심신삼단의 심법으로 각각의 입장을 나누어 보고, 합해서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을, 한울의 모습을 보는, 정시정문하는 수련입니다. 한 사람이 암에 걸렸습니다. 몸을 주로 보는 사람은 암을 제거하는 수술과 항암치료 등 질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물론 때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주가 굳지 못하고 이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럴 때 몸의 욕심을 좇느라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리고,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같이 살펴야 하는 이유지요. 마음을 주로 보는 사람은 치료를 하되, 환자의 종합적인 상황을 살핍니다. 힘든 수술과 긴 치료를 견딜 수 있는 체력과 경제력이 되는지, 나이 들고 치료를 안 해도 병의 진행이 더뎌서 기대수명의 차이가 별로 없는지 살펴봅니다. 또한 암이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교정해야할 생활습관이 있는지를 살핍니다. 암을 수술로 제거해도 원인이 된 생활습관이나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재발할 테니까요. 한 발 더 나아가 암도 자신이 살아온 인과의 흔적입니다. 이를 부인하고 제거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정직하게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그를 반성하고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성품을 주로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암세포도,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나 바이러스도 모두 하나의 성령이고 하나의 한울 성품입니다. 본래 있는 게 아니고 수명은 다 달라도 곧 소멸 되 무형으로 돌아갑니다. 내 몸도 본래 있는 게 아니라 잠깐 유형화된 한울 성령일 뿐입니다. 내가 본래 있는 게 아니니 병도, 암도 본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견성하면 그 모든 인과가 사라지고, 병도 물약자효되는 거지요. 마치 대신사께서 빗속에 성묘 다녀오셔도 옷이 젖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비도, 옷도, 내 몸도 다 같은 한울 성품이니 어디 물들고, 젖고 할 것이 없는, 물아일체, 나와 주변이 경계가 터져 하나 된 인내천의 경지인 것이지요. 코로나로 아직 온 세상이 힘듭니다. 코로나 얘기도 이젠 지겹지요? 그럼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달리 보고 달리 얘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시정문 심법으로 얘기해 볼까요? 몸을 주로 보는 사람은 질병이 종식 될 때까지 거리두기와 방역에 계속 힘써야 한다고 할 겁니다. 마음을 주로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벌써 1년 반 이상 지속되는 방역으로 피해가 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영업자들부터 시작해서 취업기회를 잃은 젊은이들에 이르기까지, 실제 감염된 사람 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격리되고 치료과정을 겪은 사람들의 심리적 상처는 어떻게 돌볼 것인지 마음 써야합니다. 또한 전염병으로 생긴 타 지역, 타국인 혐오증은 또 다른 각자위심입니다. 이건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겠지요. 성품을 보는 사람은 어떨까요? 이젠 코로나가 계절 독감처럼 토착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을 제외한 건강한 젊은 사람들은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갈 수 있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과 기저질환이 있는 고 위험군에 대한 예방접종과 치료에 집중하고, 어느 정도 예방접종이 이루어진 뒤엔 더 이상 과도한 방역과 전체 확진자 수 집계를 멈추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모든 바이러스도 한울이고, 질병과 죽음을 포함한 생로병사의 과정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이고 무왕불복지리임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질이 생긴 원인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라도 한울을 거스르지 않는, 천지부모를 상하지 않는 삶을 생각하는 큰 시야를 잃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그리고 이런 질병으로 인한 삶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 걱정하고 이 어려움이 타인과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이 일상화 되는 문명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 할 겁니다. 이렇게 모든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기가 아는 대로, 습관된 의식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한울님께 고해서, 한울 이치에 맞는지, 한울님 마음에 흡족한지, 우리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이렇게 성심신 삼단을 나누어 보고 합하여 보고 판단하는 정시정문의 수행을 하는 것이 천도교의 심법이요 수행입니다. 이 심법을 따르는 것이 한울님 순리를 따르는 것이고, 그렇게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으면, 모든 일을 한울님과 같이 행하니 만사여의, 무위이화할 것입니다. “지나간 옛 현인과 철인이 스스로 구하고 스스로 보이는 것으로 서로 다투었으나, 우리 도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스스로 구하여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울님이 반드시 바르게 보이고 바르게 들으니, 만에 하나도 의심이 없느니라.” 요즘도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통합해서 판단하지 못하니 사안마다 얼마나 다툼과 갈등이 많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먼저 한울님 이치로 냉철히 보고(성), 그것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위하는 길인가(심;한울님 마음) 보고, 내가 어떻게 실천할지를 생각합니다(신). 옛 현인과 철인은 지엽에 그쳤지만, 이 정시정문의 심법으로 “만에 하나도 의심이 없다” 즉, 천도교에 와서 진리가 완성되었고, 이로써 이전까지 있었던 역사의 모든 논란(부분적인 앎으로 인한 종교와 철학의)을 해결했다는 선언을 하신 겁니다. 이는 깨달은 성인(의암성사)의 확신이지, 제자(일각의 주장처럼)의 글이라면 나올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천도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각자의 시각으로 오해해서 비롯된 세상의 모든 갈등과 다툼을 통합된 정시정문으로 바르게 이해해서 합의와 화합으로 이끄는 것. 이게 동귀일체입니다. 올 여름, 이같이 좋은 도를 열심히 닦아, 한울님 순리대로, 나의 삶과 우리 사는 세상이 순리대로 되는, 개벽되는 세상이 되도록 수련 해 보자는 말씀드리며 마치겠습니다. 162년 8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