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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행주 방송대 교수, 신혜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강남교구 입교한일관계사 연구자 나행주 방송대 교수(한일관계사학회 회장)와 신혜란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이 입교했다. 학문과 연구 현장에서 역사와 인간 존엄의 가치를 탐구해 온 두 사람의 입교는 천도교 신앙이 지닌 인내천 사상과 시대적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나행주 교수는 오랜 기간 한일관계사와 식민지 역사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로, 한일관계사학회 회장을 맡아 역사 인식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왔다. 나행주 교수는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 그리고 실천적 윤리에 대한 질문이 깊어졌고, 그 고민의 끝에서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과 다시개벽의 가르침을 만나게 됐다”고 입교 소감을 밝혔다. 신혜란 연구원 역시 독립운동사 연구를 통해 항일과 자주, 민중의 삶을 조명해 온 연구자다. 신혜란 연구원은 “독립운동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이어진 실천의 역사”라며 “천도교 신앙은 연구로만 머물던 가치를 일상 속에서 살아내도록 이끌어 주는 길이라 느꼈다”고 말했다. 정갑선 전 교무관장의 전교로 입교한 신입 교인의 입교식은 이미애 전 교화관장의 집례로 봉행되었다. 입교식에 참석한 교인들은 “학문적 성찰과 사회적 실천을 이어온 연구자들의 입교는 교단에도 큰 울림을 준다”며 “천도교가 지향해 온 인내천과 다시개벽의 정신이 오늘의 지성인들과 만나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입교는 천도교 신앙이 역사 연구와 시민적 실천,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치 탐색과 깊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교단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포덕 167년 종학대학원 동계수련, 용담수도원에서 봉행포덕 167년(2026) 종학대학원 동계수련이 지난 1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용담수도원에서 개최됐다. 이번 동계수련은 경전 강독과 수행을 중심으로 한 수련, 현장 답사, 주제 강의 등으로 구성돼 천도교 교리와 수행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수련은 개식과 교회의식으로 문을 열었으며, 최상락 수도원장의 환영사와 교수진 소개, 천덕송 합창으로 개강식이 봉행됐다. 이어 진행된 제1강에서는 김혁태 종학대학원장이 ‘수련지도법’을 주제로 강의하며 수행의 이론과 실천 방향을 제시했다. 주문 수행과 다양한 시각의 강의 송봉구 영산대 교수는 ‘선불교의 화두선과 동학의 주문 수련법 비교’ 강의를 통해 동아시아 수행 전통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짚었으며, 성강현 대동교구장의 안내로 용담 일대 답사가 진행돼 수운대신사의 사상과 수행 현장을 직접 체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김선배 유지재단 사무국장은 ‘21자 주문의 수학적 귀납법 해석’을 통해 주문 수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으며, 임형진 전 동학학회장은 ‘수운 최제우의 인내천과 이상사회론’을 주제로 동학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강의했다. 박인준 교령 특강, ‘천도교와 생명’ 박인준 교령은 특강을 통해 ‘천도교와 생명’을 주제로 강의하며, 인내천 사상에 기초한 생명 존중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천도교 고유의 생명문화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며, 정화수와 세시풍속, 명절 의례 등이 단순한 생활 관습이 아니라 한울님을 모시고 모든 생명을 공경하는 신앙이 일상 속에서 구현된 모습임을 설명했다. 특히 천도교의 청수는 한울님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표상으로서, 매일의 삶 속에서 생명성과 정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도록 이끄는 신앙적 장치임을 강조하며, 생활 속 수행과 신앙의 중요성을 짚었다. 몸과 마음으로 다시 확인한 동학의 뿌리 이번 종학대학원 동계수련에 참가한 수련생들은 “경전과 수행, 답사를 통해 동학과 천도교의 뿌리를 몸과 마음으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며 “일상 속에서 인내천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독립운동으로 인정해야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의 역사적 성격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참여자에 대한 국가 서훈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한 국회 공개 토론회가 열린다. ‘동학서훈 입법 국회 공개 토론회’는 2026년 2월 24일(화)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관 306호(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토론회는 박수현·안호영·윤준병·이원택·강준현·민형배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정책조정위원회(위원장 임오경)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가 주관한다. 이번 토론회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가운데 봉건체제 개혁을 목표로 한 1차 봉기와 달리, 일제의 경복궁 점령에 항거해 전개된 2차 봉기의 항일무장투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를 독립운동으로 인정해 서훈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다시 공론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1962년 문교부가 을미의병(1895년)을 독립운동의 기점으로 설정한 이후, 그보다 앞선 시기인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19년 법정기념일 지정, 2023년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등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가 한국 독립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돼 왔다. 이날 토론회는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하며, 개회사와 축사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정애 정책위의장, 공동주최 국회의원들과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발제는 김용달 광복회 학술원장(전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다. 신영우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의 서훈 정당성」을 주제로 발제하고,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역사학계 연구 성과로 드러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의 성격」을 발표한다. 이어 이윤영 관장, 성주현 경희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미정 문화체육관광부 전통문화과 과장, 최기찬 국가보훈부 공훈심사과 과장이 토론에 나선다. 이번 토론회를 책임 주최한 박수현 의원은 “1894년 일제의 경복궁 점령에 항거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는 이미 명예회복특별법과 유네스코 등재, 국가기념일 제정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서훈의 명분이 충분히 확립됐다”며 “현실을 반영한 서훈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준병 의원은 “동학농민혁명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의 기치 아래 봉건체제를 개혁하고 국권을 수호하고자 한 최초의 민중혁명”이라며 “특히 2차 봉기 참여자들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훈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동학농민혁명의 인내천 사상은 민주와 평등, 인간 존엄의 가치를 선포한 위대한 민중혁명”이라며 “이는 3·1독립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평가했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과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국민연대 상임대표는 이번 토론회가 다섯 번째로 열리는 동학서훈 관련 국회 공식 논의라며, “동학 서훈 입법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의 동학 관련 단체와 동학사상, 동학농민혁명에 관심 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
포덕 167년 전국 교구장 워크숍 및 특별수련(2보)포덕 167년 전국 교구장 워크숍 및 특별수련에 참가한 교구장들은 1월 31일 토요일 오전 최상락 수도원장의 지도로 새벽수련으로 하루를 시작하여 소감 발표와 폐강식을 끝으로 일정을 마치고 해산했다. 광주교구 조봉훈 교구장은 소감 발표에서 “어제 오늘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입교하면서 시작했는데, 교구에서 하지 못했던 수련과 단체생활을 하면서 내가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도교 신앙인으로서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 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포덕천하, 광제창생, 제폭구민, 지상천국 건설을 위해 열심히 매진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신념으로 평생을 헌신해 온 민주화 통일운동 정신에 더하여 천도교 신앙이 저의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조부로부터 5대에 걸쳐 신앙을 해 오고 있다는 부산시교구 교구장님의 사례 발표에서 특히 감명 깊었습니다. 또 대동교구의 놀라운 교구운영 모습, 진주시교구의 자력 경제 활동의 모습도 놀라웠습니다. 제가 전혀 모르고 있던 교구 활동의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보고, 배우고 동참해서,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양수동 원주교구 교무부장은 “저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원주 ‘깨시민’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종로로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분의 안내로 천도교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전라도, 충청도의 동학혁명 사적지, 그리고 재작년 대신사 탄신 200주년을 지나면서 하나씩 천도교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계대교인이 아닌 제가 천도교 신앙을 하게 된 것은 한울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박노임 대전시교구장은 “대전교구는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여했다가 거제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반공포로 출신들이 세운 분들이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해서 모은 돈으로 세운 교구입니다. 75년 정도 되었습니다. 최근에 기존 교구를 팔고 9억 원 예산으로 새로운 교당 건물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4월 입주할 예정입니다. 저도 공직을 퇴임하고, ‘어쩌다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교구 이 즈음에 교구장 수련회가 개최되어 참여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 교구에서 포덕 사례, 교구 운영 사례를 들으며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또 중앙총부의 여러 활동을 소개해 주셨는데,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졌구나, 부서별로 업무 추진 경과를 알게 되어 뜻 깊었습니다. 특히 전국 각지 교구장님들을 뵙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저희 교구는 시일식 후 점심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중앙대교당 설교를 유튜브로 시청하는 것으로 시일식을 봉행하게 되어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증조부님(준암 박영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시고, 3.1운동에도 참여하시어, 국가유공자로 등재되어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노앙래 서천교구장은 “AI 시대에 맞춰 강의 자료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이번 워크숍에서 여러 교구장님의 사례발표를 듣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많은 반성도 하고, 서천교구도 어떤 모습으로 발전되어 가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수심정기 명상법에 대해 연구를 해서 천도교 발전에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용담정에 왔을 때, 계곡 물소리가 좋았습니다. 그 물소리를 녹음해서 수도를 할 때 틀어 놓으면, 맑은 정신으로 수도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장님이 여름에 녹음 파일을 만들어서 배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안진혁 대구대덕교구장은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동암 라태석 도정님의 둘째 사위인데,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천도교식으로 동시입장을 하는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입교는 2년 후에 했고, 그 후로 30여 년 경리부장을 했습니다. 재작년에 교구장이 되어, 처음으로 공식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 이번 행사입니다. 와서 특별히 제가 느낀 것은 참여하신 교구장님들이 전부 살신성인하는 자세로 교구 활동에 임하는 얘기를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활동을 해 왔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시교구는 규모가 큰 것을 떠나 교구장님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감명을 크게 받았습니다. 대동교구도 여러 활동도 하면서 발전 계획도 세우고 계신 점도 감명 깊었습니다. 우리도 형편에 맞춰서, 본받을 것을 본받아 나가겠습니다. 준비 열심히 해 주신 총부 교역자와 모든 교구 참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에 서소연 교무관장은 “대구대덕교구는 교구장을 중심으로 각 임원들이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고, 화목하게 잘 운영이 되고 있는 모범적인 교구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성강현 대동교구장은 “오늘 아침 수련시간에 대신사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교세가 미약하고 교구 활동도 힘들다고 하지만, 대신사님은 혼자 시작해서, 동학혁명, 3.1운동, 천도교청우당의 큰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대동교구 사례를 자랑스러워하며 소개한 것은 천도교가 희망이 있다는 걸 말씀 드리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대신사님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쇠운이 가고 성운이 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교구장을 하면서 총부로부터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이번에 짧은 일정이지만, 총부 교역자님들의 돌봄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애쓰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박차귀 부산시교구장은 “어제 많은 이야기를 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인사는 하고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왔습니다. 저는 자랑한다는 얘기를 들을까 두려워서, 많은 자제를 하는 편입니다. 어제 저희 교구 사례 발표를 좋게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5세 무렵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순회를 다녀오면 집에서 사탕 하나를 주던 맛에 순회를 따라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1남 5녀 중 장녀로 자랐는데, 우리 집안의 철칙은 결혼은 비교인과 결혼을 하고, 천도교에 입교하는 것이 첫째 조건인데, 고맙게도 제부들이 모두 천도교에 입교하였습니다. 제 손자손녀, 외손자외손녀가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손자, 손녀들을 열심히 돌봐주면서 어릴 적부터 교구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 덕분에 그 애들도 천도교를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천도교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내가 천도교를 신앙한 것이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천도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늘 생각하면 천도교는 지금보다 희망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수련을 하며 주문 소리와 천덕송 소리를 들으며 화음도 잘 맞고 힘차다는 걸 느꼈습니다. ‘교구장합창단’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심점례 도봉종로교구장은 “도봉교구와 종로교구가 합친 지 3년째 되고 있습니다. 그때 교구 교당을 마련하여 이사 다니지 않고 안정적으로 시일식을 봉행하게 되어서 발걸음도 가볍게 교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동, 부산시, 진주 교구 사례를 보면서 앞으로 천도교가 더욱 발전하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행복한 일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서민영 대구시교구장. “포덕 123년에 입교를 하여, 꽤 오랫동안 신앙을 해 왔습니다. 청주교구장님의 시어른이 전교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도 전임 최상락 교구장(현 수도원장)이 수도원장으로 오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교구장이 되어 3연임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 때문에 하루 늦게 참석하게 되었는데, 오는 길에 ‘내가 왜 이 길을 가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가서 배우고 느끼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하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중앙총부의 업무 보고와 교구장님들의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교구장으로서의 내 역할,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해월신사 편 강서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덕이다’라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나의 역할을 다하는 것, 찾아가는 것이 여기 온 이유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희는 시일식 후 주문수련도 하고, 2주 1회식 경전 공부도 합니다. 교인들의 화합과 소통을 위해 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정리하는 기회가 되어서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근영 송탄교구 경리부장은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가족들은 아직도 기독교를 신앙하는데, ‘어쩌다’ 친구의 안내로 천도교인이 되었습니다. 서울교구 시일식 영상을 보면서 은적암 등 일정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임사실천십개조 ‘근업무(勤業務)’를 생각하며,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 수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여하였는데, 천도교가 대체로 잘 안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잘 되는 교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진행해 주신 총부 교역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선자 청주교구장. “저는 1980년 12월에 대구시교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도 햇수로 22년째 교구장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몸에 큰 병이 생겨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생각을 하고, 마지막으로 여성회 수련을 참석하였는데, 수련 때 네 분 스승님이 오셔서 “‘너는 너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셔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교구를 새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난관이 있지만, 교당을 완전히 안정시켜서 누가 와도 교구운영을 잘 할 수 있도록 마무리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임무입니다. 이번에 진주, 부산시, 대동 교구 사례를 들으면서 감명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의적 진주교구장은 “처음에 워크숍이 잘 진행이 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총부에서 잘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상하반기로 자주, 정기적으로 하면 총부와 교구 간의 소통 창구가 원활하게 운영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구장님들이 지금부터라도 용기를 내시고, 잘 된다고 생각하는 교구를 거울삼아 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애쓰신 총부 교역자와 교구장님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용담교구 최상락 수도원장은 “저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용담교구 감사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교구장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크게 희망을 느꼈습니다. 너무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용담교구는 최근에 새로운 교당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는 ‘용담성지’의 관문을 지키는 으뜸 교구가 되자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교구회’ ‘장례위원회’ ‘순회교사’ 등을 새롭게 설치, 임명하였습니다. 종학대학원도 교구 지원으로 입학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용담교구가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또 수도원장으로서 이 좋은 프로그램 운영을 지켜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최희수 삼천포교구장은 “삼천포교구는 작년 ????신인간???? 11월호에 소개가 되었으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교구마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우리는 ‘유소년’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총부에 요청도 하고 했는데, 인터넷 시일식도 운영하는 등 나름대로 잘 해 주고 계십니다만. 현재 유소년들이 어른들과 같이 시일식을 봉행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시일식 마다 궁을기를 직접 게양하는데, 그러면 마음가짐이 새로워지는 걸 느낍니다. 저도 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하고 있는데, 저희 막내 여동생이 이 용담정으로 신혼여행을 왔습니다. 저도 이번 워크숍에서 느낀 바가 참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청 드리는 것은, 유소년들에게 ‘음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가 생각해서 하모니카를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금 ‘샘’과 ‘한울세상’을 연습하고 있는데, 한 곡 선사해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말하며, 하모니카 연주로 마무리하였다. 서소연 교무관장은 “여러 교구장님 발표 중에 중앙총부가 쇄신하는 모습을 말씀하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더 달라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수련의 키워드가 ‘어쩌다’가 되었는데, 다음번에는 ‘필연적’인 모습이 되도록 하고 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교구장들이 참석할 수 잇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번 워크숍 진행에 진행보조로 참여한 박현서(대학생단 부단장), 강혜림, 박현빈(대학생단 단원)의 소감 발표가 있었다. 박현서 부단장은 “이번에 교구장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천도교를 해야 할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강혜림 단원은 “이제 2학년이 되는 시점에 교구장님들 워크숍 일정을 도와 드리고, 수련도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현빈 부단장은 “처음으로 수련을 해 보았는데, 걱정이 많았으나, 해 보고 나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교구장 워크숍 일정은 소감 발표 후 폐강식과 점심식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
천도교의 지방교구 중심시대를 향한 뜻 깊은 자리중앙총부는 포덕 167년(2026)년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용담수도원에서 20여 명의 교구장 및 교구대표가 모인 가운데 전국 교구장 워크숍 및 특별수련을 개최했다. 이번 워크숍은 권역별 교역자 간담회에서 제안된 것으로 중앙총부와 지방교구의 소통, 교단 발전 방안을 기획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29일(목) 오후 3시 열린 개강식은 박인준 교령의 격려사, 강병로 종무원장의 개강사, 최상락 용담수도원장의 환영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박인준 교령은 격려사에서 “이번 교구장 워크숍은 지방교구 중심시대에 교구장의 중요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성과 있는 일정을 잘 진행해 주시기 바라다”고 밝혔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개강사에서 “이 워크숍은 교구장님들의 요청에 의해 마련하게 되었다. 좋은 제안을 해 주셔서 오늘의 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늘날 교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각자 해결하기는 여러 어려움이 많은 줄 안다. 그것을 중앙총부와 상호 협력하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상락 수도원장은 환영사에서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어 교구 발전과 교단 중흥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이어 참가 교구 소개 및 교구장(대표) 인사, 중앙총부 포덕교화사업 안내, 수련으로 진행되었다. 30일(금) 오전에는 새벽 수련과 식사에 이어 업무보고 및 토론 순으로 진행되었다. 업무보고는 종무원의 교화, 교무, 경리, 사회문화 관장이 각 관별로 업무 내용을 보고하고, 질의 응답 및 제안, 건의 사항을 접수하였다. 오후에는 신동명 동두천교구 교무부장의 진행으로 “웃음빵빵 마음청소”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동귀일체’ ‘수심정기’ ‘포덕천하’ 3개 접별로 몸과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고 합동하며 과제를 해결하며, 함박웃음과 동귀일체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분임토의를 진행하여 3개접별로 교단 및 교구 발전을 위한 방안, 각 교구별 현황과 현안(건의사항) 등을 토의하고 접장이 종합발표를 하였다. 이어 교구운영 사례발표 및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시간에는 부산 대동교구(교구장 성강현), 진주교구(교구장 정의적), 부산시교구(교구장 박차귀)가 교구별로 특징적인 교구 운영 사례를 발표했다. 대동교구는 대남(대연+남부)교구와 동부산교구가 합동하여 포덕 162년 5월에 출범한 이래 새로운 교당을 건축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의 참여와 활력을 이끌어낸 과정을 소개하였다. 진주교구는 10년 동안 자체 사업(된장 판매)으로 교당 자금을 모아 교당(3층 건물)을 구입하기까지 과정을 소개하였다. 부산시교구는 인암 박찬표 선생이 창립하여 올해 96주년이 되는 교구로, 광복 후에 적산가옥을 불하받아 교당을 마련한 이래 현재 4층 꼬마빌딩의 자체 교당을 마련하고, 성화실을 비롯하여 식당과 부문단체 사무실, 수련실, 카페 등의 시설을 갖추고 대내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과정을 소개하였다. 특히 부산시교구는 교구 직할 원동수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40년째 계속하고 있는 월례수련 등의 대내 활동과 부산 지역 사회에 천도교를 알리는 활동으로 여성연합회, 지역 종교계 교류와 봉사, 여성합창단 등을 지원하고 운영하는 현황을 소개하였다.(기사 계속됩니다) 이날 저녁에는 전명운 교화관장이 “인공지능시대와 천도교”를 주제로 발표하였다. 전명운 관장은 인공지능의 개념, 현황, 문제점 등의 기초적인 내용에 이어, 인공지능을 이용한 천도교 포덕과 교화의 방향, 인공지능 시대에 천도교 공부를 어떻게 것인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강의하였다. 전 관장은 “인공지능은 도구이고, 사람은 목적이다”라는 말로 인공지능에 대해 가져야 할 기본 태도를 정리하고, 지금이야말로 ‘경전 암송’이나 ‘필사’, 그리고 누구에게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 등, 천도교의 전통적인 윤리와 신앙 지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세부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교구장 워크숍’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고 “단지 수련이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교인들과 총부를 매개하는 교역자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워크숍 및 특별수련은 짧은 일정임에도 중앙총부의 운영계획을 일선의 교구장들과 공유하고 총부와 교구 간의 간극을 좁히며, 각 지역교구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성공사례를 더욱 널리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행사의 의의를 정리하였다. -
박인준 교령, 이해찬 전 국무총리 조문박인준 교령이 1월 30일(금) 오전 11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날 박인준 교령은 고인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고인의 삶을 기렸다. 또한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슬픔의 시간을 함께 나눴다. 빈소에는 상주인 아들을 비롯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김태년·곽상원 국회의원 등 정계 인사들이 조문객으로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발인은 1월 31일(토) 오전 6시 30분에 엄수될 예정이다. -
살다보면 느낀다『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학의 지혜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일상의 삶 속에서 꽃피우는 동학의 길을 함께 사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살다보면 느낀다 한적한 곳으로 이사 왔어. 풀빛 기운 가득하던 지난 날 잊을 수 없어. 내 안의 풀꽃 향기, 그대 생각이 많이 날 거야. 지납분토 오곡지유여 地納糞土 五穀之有餘 인수도덕 백용지불우 人修道德 百用之不紆 땅은 거름을 들여야 오곡의 남음이 있고 사람은 도덕을 닦아야 모든 일이 얽히지 않느니라. <東經大全 : 유고음> 지난 일을 반추해보면 향기가 난다. 거기에 들꽃향기, 그대가 있었다. -
정선 적조암- 태백산중 49일 기도, 천의봉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정선 유인상의 집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해월 신사는 먼저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49일 기도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에 사람들에게 물어 지금의 고한(古汗), 태백산맥에 있는 갈래사(葛來寺)의 말사인 적조암(寂照庵)을 사람들로부터 소개받고, 이곳을 찾아가 이 암자를 지키는 스님인 철수좌(哲首座)에게 먼저 허락을 맡는다. 적조암은 고한읍에서 약 6km 북동쪽 해발 1,2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적조암이 속했던 갈래사는 오늘날의 정암사(淨岩寺)이다. 정암사는 강원도 동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1,573m의 함백산(咸白山)의 한 봉우리인 천의봉(天宜峯)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주위 에는 태백산(1,567m), 태장산(1,409m), 대덕산(1,307m), 백운산(1,426m), 매봉산(1,303m), 조록바위봉(1,087m), 지장산(931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정선에서 사북(舍北)을 지나, 고한이라는 마을에 이르면, 태백산맥으로 이르는 험준한 구릉을 만나게 된다. 이곳 고한에서 다시 지금의 카지노로 유명해진 강원랜드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정암사를 만나고, 이곳에서 다시 한 1km쯤 고갯길을 따라서 가면 왼쪽으로 인가 두어 채를 볼 수 있다. 이 마을이 옛날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의 탄광 마을이다. 그러나 지금은 광부들이 살던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적조암 가는 길’이라는 팻말을 만난다. 이 팻말에서부터 그리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적조암과 자작나무 샘터 쪽으로 가는 작은 소로로 된 삼거리를 만난다. 이 산길 삼거리 오른쪽으로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씨를 새긴 작 은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을 지나 다시 3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제법 넓은 지대를 만난다. 이 지대가 바로 적조암이 있던 곳이다. ‘적조(寂照)’라는 암자의 이름처럼 정적만이 맴돌고 있는 깊은 산속이다. 지금은 기도처로 사용이 되는지, 기도를 드린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본사인 정암사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고, 지금은 정선,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만항재 길이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뚫려 있지만, 해월 신사께서 이곳을 찾아올 당시는 산길조차 없었던, 그야말로 태백산맥 깊은 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해월 신사께서 숨어서 지내며 수련을 하기에는 참으로 적당한 곳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적조암을 지키고 있던 노승을 동학 교단의 기록에는 ‘철수자(哲秀子)’, 철수자(哲修子), ‘철수좌(哲首座)’ 등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를 마치 스님의 이름인 양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철수자(哲秀子)’와 ‘철수자(哲修子)’는 잘못된 표기이다. 더구나 이는 스님의 이름이 아니다. 수좌(首座)란 불교의 한 용어로, 선원(禪院)에 들어 공부하는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철수좌(哲首座)는 이들 중에서도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선승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당시 적조암을 지키고 있던 노승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선승(禪僧)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승의 허락을 얻은 해월 신사 등은 적조암에서 49일을 한정하고 특별수련에 임하였다. 이에 관한 기록이 『도원기서』에 있다. 主人與洙 將有入山 四十九日之計 洙使海成澤鎭 入葛來寂照菴 有好一老僧 迎我以問曰 客主自何以來 答曰 吾是本邑之人也 今冬 有祈禱之計 故得來幽僻處 方爲周覽訪來 老僧曰 此山中有或 適當之處也 否曰 見他處而卽到此菴也 僧曰 然而食於午饁乎 曰否 卽饋於甘薺小許矣 洙曰此菴視之 則可謂寂然也 吾當寥寂之處 而來此則願老僧 今三冬同苦之義 果如何 老僧默然良久曰 若爲來工 則數來幾人乎 曰只不過三四人也 僧曰 至於四人雖謂多也 若爲丁寧以來 則期日而退去 如何 洙曰 十月念後當來矣 願老師不違期日 待之如何 僧曰諾卽日退 看鳳捿菴 又明日 洙往主人在處 朴龍傑之家 其兩人還于本家 主人及洙來到寅常家 聖文聞主人入山之計 懇乞付託 主人自念其勢 則情或其然 故許言 同苦聖文心爲樂樂 周旋資糧 洙之課糧 當日入到 主僧自順興來者纔爲二日也 至于夜 洙謂僧曰 世上術業之工 各有其張事已 到此同 過三冬之苦 胡爲乎 欺僧乎 僧俗間修道成就 亦是一也 吾之所工 但以呪文矣 僧曰 呪文何呪 答曰 主僧前或聞東學之說乎 其僧良久曰 前有聞之也 曰自今爲始誦呪矣 主僧勿爲忌憚焉 主僧聞呪誦之聲 稱讚不已 日惟勸之四人 各定坐處 手執念珠 衣冠整齊 日夜定數 幾至二三萬讀 而竟過於 四十九日 其後數日 將習符圖 主僧窺視 以言曰 此乃造化之符也 曰主僧何以知之乎 僧曰 造化在符 小僧雖淺見薄識之僧 見其符則自有得驗之事矣 願僉生員主 愼藏而不漏也 吾聞之心獨知 知覺之僧也 一日主僧曰 小僧汝卽往小白山 因忽不見 小僧覺睡後 心常怪訝 掇歸小白山 至于今年四月 又有夢敎而移往太白山 故來此則菴宇空虛 道場荒弊 種薺數頃 斧木百負 以爲過冬之資矣 疇昔之夢 如許二人 來謁佛前 夢中熟視 完在目中 覺以目料 則必有課工之人 到今見生員主 完然若夢中見貌也 此非奇夢耶 洙對曰 吾亦有夢入 山之夜仙官 自空中來坐 壁上吾拜謁 仙官矣 吾今觀佛形 亦如夢中之事 主人曰 吾亦入山之初 有一夢瑞鳳八首 自天上下來 第次坐前 吾奇以抱之三首 則傍人各抱五首 忽自空中 謂語曰 此鳳五首各有主之鳳也 汝當深藏 以後待主各授也 亦豈非祥夢耶 主僧聞之益且奇之 聖文前日去 主人及洙 方向隱潭 以還歲色不遠矣 寅常之家難爲過歲 故將行寧越聖文 時在再堂侄女家矣 洙及主人 同爲過歲 주인이 강수와 더불어 장차 산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드릴 계획을 가졌다. 강수가 김해성(金海成), 유택진(劉澤鎭)으로 하여금 갈래산(葛來山) 적조암(寂照庵)에 들어가게 하였다. 어느 한 노승(老僧)이 있어 물어 말하기를, “손님들께서는 어디에서부터 오시는 길입니까?” 대답하기를, “저희는 이곳 본읍(本邑)의 사람들입니다. 이번 겨울에 기도를 드릴 계획이 있어서, 깊고 외진 곳을 찾아 두루두루 돌아보며 찾아오고 있는 길입니다.” 노승(老僧)이 말하기를, “이 산중에 혹 적당한 곳이 있는지요?” 아니라고 대답하며, “다른 곳을 돌아보고 이 암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그러시면 점심은 드셨는지요?” 점심을 들지 못했다고 하니, 즉시 감자를 조금 가져다주었다. 강수가 말하기를, “이 암자를 보건대 가이 적조(寂照)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이 암자에 온 것입니다. 노승께서 금년 겨울을 같이 고생하며 지내실 뜻이 계신지요?” 노승이 오랫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하기를, “만약 오셔서 공부를 하게 되면 몇 사람이나 오게 되나요?” 말하기를, “다만 서너 사람에 불과합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네 사람이라면 많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정녕 오시겠으면 기일을 정하시고 일단 돌아감이 어떻겠습니까? 강수가 말하기를, “10월 20일 이후에 꼭 오겠습니다. 노스님께서는 기일을 지켜서 기다리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스님이 좋다고 승낙을 하였다. 그날로 돌아가 봉서암(鳳棲庵)을 둘러보고는, 다음날 강수는 주인이 머물고 있는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가고, 두 사람은 본가(本家)로 돌아갔다. 成)이 스스로 넉넉하게 식량을 마련하였다. 주인과 강수가 유인상(劉寅常)의 집에 오니, 전성문(全聖文)은 주인이 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듣고는 간절하게 부탁을 하였다. 주인이 그 형세를 스스로 생각해 보고, 뜻이 혹 그러하여, 같이 고생할 것을 허락하였다. 전성문(全聖文)은 마음이 매우 기뻐, 식량을 주선하였다. 강수가 마련해야 할 식량은 유택진(劉澤鎭)이 부담을 하였다. 주인의 식량은 스스로 부담하되, 김해성(金海成)이 스스로 넉넉하게 식량을 마련하였다. 그날에 이르러 산에 들어가 도착하니, 주지 스님이 순흥(順興)에서 돌아온 지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밤이 되어 강수가 주지 스님에게 말하기를, “세상 술업(術業)의 공부가 각각 그 베푸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일이 이미 이에 이르러 같이 겨울을 보내는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해서 스님을 속이겠습니까? 승속간(僧俗間)에 도를 닦아 성취하는 것이 역시 한가지라, 우리의 공부하는 것은 다만 주문(呪文)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주문(呪文)은 어떤 주문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주지 스님은 전에 혹시 동학(東學)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 스님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기를, “지금부터 주문 외우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지 스님께서는 기탄하지 마십시오.” 주지 스님이 주문 외우는 소리를 듣고는 칭찬하는 말을 그치지 않고, 날로 오직 주문 읽기를 권 하였다. 네 사람이 각기 앉을 곳을 정하여 손에는 염주(念珠)를 잡고, 의관을 정제하고 밤낮으로 수(數) 를 정하여 읽으니, 거의 이삼만 독(讀)에 이르렀다. 마침내 49일을 끝마치고, 그 후 며칠 간은 부 도(附圖)를 익힐 즈음에, 주지 스님이 살펴보고 말하기를, “이것이 곧 조화(造化)의 부도이군요.” 말하기를, “주지 스님께서 어찌 이를 아십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조화(造化)가 부도(符圖)에 있으니, 소승(小僧)이 비록 천견박식(賤見薄識)한 중이나, 이 부도를 보고 스스로 증험을 얻은 바가 있습니다. 생원님들께서는 삼가 보관하시고 누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것을 듣고, 홀로 지각(知覺)이 있는 스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루는 주지 스님이 말하기를, “소승(小僧)은 본래 계룡산(鷄龍山)에 있던 중입니다. 초막(草幕)을 짓고 공부를 하는데, 꿈에 부처님이 오셔서 ‘너는 즉시 소백산(小白山)으로 가거라.’ 말씀하시고, 문득 보이지 않거늘, 소승(小僧)이 잠에서 깨어난 후로 마음이 이상하여 거두어 가지고 소백산(小白山)으로 돌아왔습니다. 금년 4월에 이르니, 또 꿈에 가르침이 있어 태백산(太白山)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곳에 오니 암자(庵子)가 비어 있고, 도량(道場)이 황폐하여, 감자씨를 몇 이랑 뿌리고, 나무 백 짐을 하여 겨울 지낼 재료로 삼았습니다. 전날 꿈에 어느 두 사람이 부처님 앞에 와서 뵙는데, 꿈속에서 익혀 보았기 때문에 완연히 눈 가운데 있습니다. 깨어나 스스로 헤아려 보니, 반드시 공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원님들을 뵈니, 완연히 꿈에 뵌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이 기이한 꿈이 아니겠습니까?” 강수(姜洙)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저 역시 산에 들어오던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선관(仙官)이 공중에서부터 와서 벽상(壁上)에 앉았고, 제가 선관(仙官)에게 절하고 뵈었습니다. 제가 지금 부처의 형상을 보니 역시 꿈속의 일과 같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나 역시 산에 들어오던 첫날에 꿈을 꾸었는데, 상서로운 봉황 여덟 마리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차례로 앞에 앉거늘 내가 기이하게 여기어 세 마리를 싸니, 옆에 있던 사람이 각기 다섯 마리를 쌌습니다. 문득 공중에서부터 말하기를 ‘주인이 있는 봉황이다. 너는 마땅히 깊이 두도록 하라. 이후 주인을 만나거든 주도록 하라.’ 했으니, 역시 상서로운 꿈이 아니겠습니까?” 주지 스님이 듣고는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전성문(全成文)은 하루 먼저 가고, 주인과 강수는 은담(隱潭)을 향하여 갔다. 한 해가 저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인상(劉寅常)의 집에서는 과세(過歲)하기가 어려워 영월(寧越)로 가기로 하였다. 전성문(全成文)은 그때에 재당질녀의 집에 있었다. 강수와 주인이 같이 과세를 하였다.- 『도원기서(道源記書)』 적조암에서 행한 49일의 기도는 곧 해월 신사께서 교단 정비의 새로운 계기를 이루는 정점이 된다. 특히 이곳 적조암 기도 이후 훗날 동학의 주요 지도자가 된 손병희, 박인호, 서인주(徐仁周), 손천민(孫天民), 이원팔(李元八) 등을 지도하며 49일 특별수련을 행하기도 하였다. 무너진 교단을 일으키는 길은 다름 아닌 수련을 통한 ‘신앙에의 결사’에 있음을 깊이 자각하고 이렇듯 그 실행에 옮겨가고 있었다. 적조암에서의 기도를 마치고, 해월 신사는 한 편의 강시(降詩)를 짓는다. 음력 12월 5일, 온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인 함백산 산중에서 49일 기도를 마치고, 문득 닫힌 문을 열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적조암으로 보이는 거봉(巨峰)들인 백운산이며, 두위봉 등은 모두 흰 눈을 뒤집어쓴 채 장관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49일간의 독공(篤工)을 하며, 해월 신사 스스로 마음에 새긴 새로운 결의의 그 벅참이 마치 펼쳐진 겨울 산의 장관과도 같이 온 천지에 펼쳐지고 있음을 해월 신사는 느꼈다. 太白山中四十九 受我鳳八各主定 天宜峯上開花天 今日琢磨五絃琴 寂滅宮殿脫塵世 善終祈禱七七期 태백산 중에 들어 49일의 기도를 드리니 한울님께서 여덟 마리 봉황을 주어 각기 주인을 정해 주셨네 천의봉 위에 핀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오늘 비로소 마음을 닦아 오현금을 울리는구나 적멸궁에 들어 세상의 티끌 털어내니 뜻있게 마치었구나, 49일간의 기도를 - 『해월신사 법설』 「강시(降詩)」 49일간의 기도는 곧 마음을 닦는 수련이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마친 이후, 오현금을 울리듯이 마음이 맑아지고, 샘물이 다시 차오르듯이 새로운 기운이 돋아남을 해월 신사는 스스로 맛보게 된다. 49일간의 기도는 지난날의 번뇌와 고통을 모두 떨쳐버리는, 정말로 뜻이 있는 수련이었고, 온 천지를 덮고 있는 흰 눈과도 같이 세상을 새로운 힘으로 뒤덮을, 그런 기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 뜻이 있는 49일의 기도를 마치게 되었다[善終祈禱七七期]’라고 해월 신사는 스스로 술회하고 있다. 「태백산공사십구(太白山工四十九)」의 시에 관하여, 동학 교단의 기록에는, 훗날 이 시에 대구(對句)가 될 다른 척구(隻句)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과 같은 말을 담고 있다. 『천도교서』, 『천도교창건사』, 『시천교역사』 등에 나온다. 다음의 기록이 그것이다. ‘太白山工四十九 受我鳳八各主定 天宜峯上開花天 今日琢磨五絃琴 寂滅宮殿脫塵世’라는 詩를 짓다. 이는 內隻句로 後日 外隻句를 채울 사람이 있다. 교단이 어려운 시절 해월 신사의 49일 기도와 함께 나온 「태백산공사십구(太白山工四十九)」의 시는 어느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즉 교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로 이끌 수있는 힘은 바로 기도를 통한 신앙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와 함께 「태백산공사십구」의 시의 대구를 새로운 신앙의 힘, 신앙의 결사가 나올 때 동학이 다시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의미에서 예언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수암 염상철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어린이 눈높이로 함께한 새해 시일식포덕 167년 1월 25일, 천도교 청년회와 대학생단이 주관한 어린이 시일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새해를 맞아 어린이들이 시일의 의미를 되새기고, 즐거운 체험 활동을 통해 교단 공동체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됐다. 이날 시일식은 정민아 어린이가 집례를 맡아 차분하고 성실한 태도로 의식을 이끌었으며, 이도형 어린이가 경전을 봉독해 행사의 엄숙함을 더했다. 설교는 서울교구 박현서 동덕이 담당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따뜻하고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를 전했다. 시일식 전반의 진행은 수원교구 조영은 동덕이 맡아 행사가 원활히 이어지도록 했다. 이번 어린이 시일식은 오전 11시부터 11시 20분까지 약 20분간 온라인으로 봉행됐다. 화면을 통해 각 가정에서 참여한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은 함께 예식을 지켜보며, 공간의 제약을 넘어 신앙의 시간을 공유했다. 이어 오전 11시 20분부터 11시 40분까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활동 프로그램이 진행돼 분위기를 한층 밝게 만들었다. 체험 활동은 청년회와 대학생단이 함께 준비한 ‘복주머니 키링 만들기’로, 새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됐다. 실용성과 상징성을 겸비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복주머니 키링 만들기 활동은 수원교구 이예나 동덕이 진행을 맡아, 어린이들이 실시간 화면 안내에 따라 블록을 차근차근 조립하며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행사에 필요한 재료는 사전에 각 가정으로 배송돼, 어린이들이 집에서도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참여한 어린이들은 화면을 통해 서로의 작품을 소개하고, 완성된 키링을 직접 들어 보이며 성취감을 나누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최 측은 “온라인으로 진행됐지만 각 가정에서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어 어린이들의 집중도가 높았다”며 “새해를 맞아 의미 있고 실용적인 복주머니 키링을 직접 만들며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뜻깊은 행사였다”고 전했다. 이번 어린이 시일식은 신앙 활동과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한 형식으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교단의 가치를 접하고 공동체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청년회와 대학생단은 앞으로도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단 내 세대 간 소통과 연대를 이어갈 계획이다. 자료 및 사진 제공 : 청년회 -
시 해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인 『접시꽃 당신』으로 문단에 이름을 알리고,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받았다. 제50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7~2019)을 역임했다. 『접시꽃 당신』 외에 『사람의 풍경』, 『세상의 모든 저녁』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신동엽창작기금(1990), 정지용 문학상(2009), 윤동주 문학상 대상(2010), 백석문학상(2011)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 해설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제목이 시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는 직관적(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이며, 관조적(감정 개입 없이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시상 전개를 따라가 보면, 개개의 꽃에서 전체적인 꽃으로 확대시키는 점층적 표현을 구사하고, 꽃의 줄기와 꽃잎을 인간의 사랑과 삶으로, 자연현상인 비와 바람을 인간의 삶에 닥쳐오는 시련으로 유추(서로 비슷한 점을 비교하여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을 추리)하는 표현기교를 사용했습니다. 이 시는 총 2연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연은 5행으로 각운과 대구법을 구사하여 리듬감을 주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사랑, 2연에서는 비에 젖으며 피는 꽃과 인간의 삶을 비교하여 절묘하게 시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고 줄기를 곧게 세우는 모습에서 시련, 고난 역경 속에서도 올바른 가치관과 신념으로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꽃이 비, 바람을 맞으며 꽃잎을 따뜻하게 피어나듯이 우리네 사랑과 삶도 시련을 겪으며 아름답게 이루어진다는 보편적 진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비, 바람. 천둥, 서리를 견뎌야 한다’는 미당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연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당의 시는 언어의 조탁이 이루어진 반면, <흔들리며 피는 꽃>에 비해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힘은 조금 약한 편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깊거나 온갖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 가난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이 시를 읽게 되면 누구나 시련, 고난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진한 감동을 주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샘을 자극하여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화려한 시어나 난해한 시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시어를 통해 시련과 고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삶에 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필자 : 운암 오제운. 신태인교구장, 천도교 동귀일체 고문. 문학박사, 부안문인협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