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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평등법 입법 추진을 위한 종교계 지도자 초청간담회 개최3월 22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종단 지도자들과 만나 평등법 제정 취지와 경과를 설명하고 자문을 구했다. 인권위는 이날 천도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주교 등 종교 지도자들과 평등법 입법 추진 간담회를 열었으며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천도교 교령 대행 주용덕,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원불교 교정원장 나상호 교무, 유교 성균관장 최종수 관장이 참석했다. 인권위는 "'평등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평등법 제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입법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등법 제정 취지와 주요 경과를 공유하고 종교계 지도자들의 자문을 듣고자 간담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주용덕 교령대행은 이날 간담회에서 평등법 입법추진에 대해, “평등의 원칙인 기본권 보장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라고 우리 헌법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실증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성소수자와 동성애자를 지지하며 그분들이 대해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주용덕 교령대행은 “독거노인들이 2025년 197만명으로 증가한다. 독거노인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천도교의 삼경사상에서 밝히고 있듯 모든 생명이 공존 공생하고 순환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을 공경하여 인간의 평등함,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2020년 6월 국회에 평등법 제정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장애나 성별, 연령이나 특정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 문제가 발생해도 개별법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종교계는 일부의 입법 반대 목소리를 표출해왔다. 현재 제21대 국회에서 평등법안 4건이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아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
[칼럼] 반역사적인 ‘이승만 띄우기’ 시도요즘 독재자와 학살자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뜬금없이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여 독재자를 기리겠다고 한다거나 영화 ‘건국전쟁’을 통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뒤짚으려고 한다.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기술한 우리나라 헌법전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런 준동에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말살과 부정부패를 저질러 4.19혁명으로 쫒겨난 그의 말로를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판에, 독재자 이승만을 두고 다시 논쟁하는 자체가 소모적이다. 이승만의 악행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8ㆍ15해방 이후에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되어 독재정치를 하면서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이 100만명 이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이승만을 국가보훈부가 지난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고, 국방부는 그를 혜안을 지닌 지도자로 미화하는 교재를 발간하기도 했다. ‘홍범도 지우기’로 국민의 공분을 산 집권 세력이 ‘이승만 국부 만들기’로 이념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해방 후 북한·중국·러시아가 공산화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수립했다”고 그를 칭송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농지개혁·교육개혁·정치개혁이란 3개 개혁으로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았다.”며 이승만을 한껏 찬양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격동의 해방 공간에서 그가 내린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강변한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하고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역사적 사실도 그들의 눈에는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편다. 진실을 덮고 거짓을 호도하려는 영화 한 편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202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만 같아 정말 씁쓸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런 시도가 성공하겠는가. 말 그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국회에 상정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하고자 하는 법률안이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을미의병 참여자에 대해서는 1962년부터 지금까지 145명을 서훈하면서도,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 명도 서훈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승만 띄우기’ 기도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를 거스르는 세력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 이승만을 구국의 민족지도자로 받들려는 기도를 절대 묵과할 수 없다. 국민 공감대도 없이 진행되는 시대착오적 ‘이승만 띄우기’는 성공할 수도 없고 결국 이념전쟁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것으로 끝날 것이 뻔하다. ‘이승만 국부 만들기’에 주력해온 뉴라이트 역사관에 따른 반역사적인 악행을 당장 멈추기를 요구한다. 글_윤여진(시인,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부회장) -
즐거운 도가모임지난 3월 17일 즐거운 도가모임 시흥교구 모임이 있었다. 시흥교구의 마지막 도가모임으로 세 가정의 모여 진행하였다. 생일을 맞은 어린이 한울님의 파티를 통해 서로 촛불을 끄고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주고 받는 기쁨을 나눴다. 도가모임을 진행한 시흥교구 교인은, "3월 큰형한울님의 생일에 모두 모여 생일 축하하고 맛있는 음식 같이 먹었습니다. 서로 촛불끈다고 울고 불고...앞으로도 생일인 달에 어린한울님들이 모여서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기회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하고 노력해주신 여러 동덕님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3·1운동 105주년기념 특별기획 전시회근현대사미술관“담다”(관장 정정숙, 용인교구추진위원장)는 3·1운동 105주년기념 특별기획 전시회를 3월 21일부터 5월 25일까지 개최한다, ‘용인의 3·1운동, 예술로 피어나다!’ 주제로 용인지역의 3.1운동에 대하여 조망하고 향토사를 알아가는 전시회다. 용인의 3.1운동은 3월 15일부터 원삼면 좌항리의 황경준, 김영달, 김성남, 맹리의 이은표, 이용환 등이 서울의 만세 소식을 듣고 용인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21일 새벽, 원삼면 좌찬고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까지 행진하면서 용인의 3.1운동은 시작되었다. 이후에 수지구, 기흥구에서 만세운동이 4월 3일까지 이어졌다. 용인에는 3대가 독립운동가인 집안이 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의병활동을 한 오인수 의병장, 그의 아들 오광선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가게 된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교관 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임무를 맡아 항일운동을 하게 된다. 그는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이름도 광선(光鮮)으로 개명하였다. 부인 정정산(후에 정현숙으로 개명) 지사는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서 독립군에게 하루 12번의 밥을 해 먹일 정도로 독립군의 뒷바라지를 한 사람이며 비밀연락, 밀서 전달 등의 일을 하게 된다. 그의 딸 오희영, 오희옥 지사는 16세, 14세의 나이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서 일본군 내의 한국인 사병을 탈출 시키는 공작, 초모(招募)공작,선전활동을 하였다. 오희영 지사의 남편인 신송식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 참모를 지냈으며 일본군 점령지구에 대한 선전공작, 정보수집, 유격전 등의 활동을 하였다. 용인의 2대 독립운동가 집안도 있다. 홍재설 지사는 1907년 고종황제 양위를 반대, 대한문 앞 석고단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정미7조약을 반대하고 을사오적 이완용의 집에 방화를 하였다. 두 아들 홍종욱, 홍종엽 선생은 1919년 3월 28일 처인구 포곡읍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외에도 신민부 집행위원장으로서 김좌진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에 참가하고 무장투쟁을 한 김 혁장군 뿐만 아니라 외교관으로 순절한 이한응 선생, 독립운동가 정철수, 권종목, 김운식, 심종윤, 이덕균, 정규복, 한영규선생 등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자료와 수감자 인물카드, 판결문 등이 전시된다. 또한 독립군들이 불렀던 독립군가, 광복군가, 애국가, 의병가 등이 함께 전시되며 한국최초의 여성의병지도자 윤희순이 직접 쓴 가사집도 전시된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이번 특별전시를 위하여 용인작가 중 신혜선, 예미숙, 이보름 세 분을 선정하여 그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정정숙 관장은 “역사는 기억하며 기록하고 기념하는 일이다. 역사를 잊어버리면 그 역사는 사라지고 왜곡된다. 올바른 역사를 전달하고 잊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다.” 이번 전시회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전시회 개막식은 21일 오후 2시에 미술관에서 하며 개막식 때에 용인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모시고 함께 진행한다. 특히 여성독립운동가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3대 독립운동가 집안의 오희옥 지사의 동영상이 개막식 중에 상영된다. 오희옥 여사는 현재 서울 보훈병원에서 입원중이다. 이번 전시는 5월 25일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미술관주소: 용인시 기흥구 강남동로140번길1-6/031-283-7222/www.damda3.com) -
천도교여성회100년사 출간“여성이 천도교의 주인이다! 여성이 다음(새로운) 세상의 주인이다!”를 표방하며 창립된 천도교여성회가 2024년으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천도교여성회는 1924년 4월 5일, 천도교 제3세 교조이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부인 수의당 주옥경(守義堂 朱玉卿, 1894~1982)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여성들이 창립한 단체로, 창립 당시 이름은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이다. 전성기에는 전국 200여 개 지부에 3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때도 있었으나, 현재는 전국 60여 개 지부 3천여 명의 회원을 망라하고 있다. 역대 임원은 초대회장 주옥경을 비롯하여 42대에 걸쳐 모두 20명의 여성회장(중임 또는 3연임 이상 포함)이 재임하였으며, 부회장 이하 임원 숫자만 1천 명에 육박한다. 처음 이름인 ‘내수(內修)’는 천도교의 핵심 교리인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따라, 내 안(內) 모신 한울님 마음을 갈고 닦아서(修) “인내천 세상”을 이루는 주역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도교여성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6.25 전쟁과 근대 산업화시기를 거쳐 오는 동안, 안으로는 수도연성을 통한 도가완성과 교회발전을 도모하고,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는 한편, 밖으로는 사회봉사 활동, 여성인권 신장 운동, 남북 천도교여성 교류사업, 선열 선양사업, 수도원(修道院) 및 기념관 건립 사업 등 굵직한 대외 사업 등을 전개해 왔다. 또한 대외적으로 (사)한국여성단체연합,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여성위원회 등의 연합단체와 연계하는 등 종교 및 사회 평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천도교여성회 100년의 역사는 한마디로, 모심과 살림의 길이었으며, 천도교 여성들은 그 길을 정성과 공경과 믿음의 자세로 걸어왔다. 모심과 살림이란 안으로 나 자신을 한울여성으로서 고귀한 존재로 모시고, 밖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회 전체를, 나아가 기후위기 등으로 말미암아 생존-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전 지구적 재난 상황을 생명살림의 자세로 살려나가는 주역을 (천도교)여성들로 설정하는 사상적 근거와 역사적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제시한다. 천도교에서 여성운동은, 일찍이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가 노비를 해방하여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는 실천을 몸소 행한 것은 물론, 시천주, 즉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가르침에 따라 남녀 평등한 조건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수련에 임하게 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제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은 “베 짜는 며느리가 곧 한울님”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또한 “부인(여성)은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하고, 또 “구녀일남(九女一男: 남성 1명이 도통하는 동안 여성은 9명이 도통함)의 운수가 도래한다”고 하였으며, 또 “나(=최시형)는 부인(여성)도 스승으로 삼는다”고 하는 등 여성 존중의 교리를 설파하였다. 또한 동학의 향아설위(向我設位) 제사법은 나를 향하여 제사상을 차리는 혁명적인 제사법이고, 훗날 ‘청수 한 그릇으로 제사상을 차리는’ 천도교 특유의 제사법으로 발전하였는데, 이 또한 과중한 제사 문화에 시달리는 여성해방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는 그때까지 이름이 없이 ‘○씨 부인’ 등으로 불리던 여성들에게, 모두 이름을 짓도록 하였으며, 동덕여학교(오늘날 동덕여대) 등의 여학교를 운영 또는 지원하여 여성 인재 양성과 계발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바탕 위에 창립한 천도교여성회는 그 후 천도교내성단, 천도교내수회, 천도교부인회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시련을 거쳐, 1968년 ‘천도교여성회’라는 이름을 쓰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도교여성회100년사』는 100년간의 천도교여성회 역사를 제1부에서 여명기(창립 전) - 창립기(1924~1936) - 시련기(1936~1956) - 재건기(1956~1968) - 준비기(1968~1980) - 성장기(1980~2001) - 개화기(2001~2019) - 전환기(2019~현재)로 구분하여 시간 흐름을 축으로 여성회 활동사를 살피고, 제2부에서 ‘기념사업’, ‘조사 및 학술연구사업’, ‘문화사업’, ‘사회활동 및 대외협력사업’ 등으로 공시적으로 살피면서 천도교여성회 역사와 주요 여성 지도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으로서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사(宗法師)에 초대회장 주옥경(1894~1982)을 비롯하여, 양이제(1892~1985), 차기숙(1899~1994), 최시영(1904~1992, 이상 환원), 조동원(1926~ 생존) 등 5명이 추대되었으며, 현재 천도교단의 유일한 종법사는 ‘조동원(전 가리산수도원장)’이다. 결론부에서는 천도교여성회 과거 100년사를 기반으로 미래 100년의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이 책이 과거사 정리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선언문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천도교여성회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그리고 종교 내의 여성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천도교여성회가 겪은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신적 강인함과 사회적 기여는, 단순한 종교 단체의 활동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천도교단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천도교여성회의 역사 또한 내적이며 종교적인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사 속에서 시대 흐름과 시대적 과제에 적극적으로 응전해간 민족운동사, 여성운동사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으므로 그러한 내용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천도교여성회100년사』는 한국 여성사와 사회사의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천도교여성회의 100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천도교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과 도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간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 단체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이끌어왔는지에 대한 귀중한 사례이다. 한편 이 책은 천도교여성회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조직으로 편찬위원, 자료위원, 집필위원으로 구성되어 집필하였다. 최종 집필은 박길수, 노은정이 담당하였다. 기획은 천도교여성회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담당하였다. 추진위원회는 박징재 현 천도교여성회회장을 위원장으로 여성회 원로, 고문들을 자문위원으로, 여성회본부 상임위원, 중앙위원과 전국 여성회지부 회장들을 추진위원으로 하여 구성되었다. 천도교여성회는 오는 3월 25일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삼일대로 457)에서 제100주년 창립기념식과 함께, 『천도교여성회100년사』 출판봉고식(기념식)도 함께 봉행한다. -
은성당 조동원 종법사님을 만나다(3)<지난 호에 이어>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던 날이었다. 홍천에 있는 가리산수도원으로 조동원 종법사를 만나러 갔다. 조동원 종법사는 1926년 평북 구성에서 타어나 19세에 우암 김동화 선생(1987년 환원)과 혼인하면서 천도교인이 되었다. 선생의 삶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극한 정성과 수련으로 천도교의 참진리를 깨닫게 되며 자기완성과 함께 많은 교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으로서 교단 발전에 기여해왔다. 가리산수도원은 1982년 8월에 작고하신 남편 김동화 선생과 함께 창설하여 현재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천도교인이라면 한번쯤 깊은 수련의 참된 경험을 안겨준 성지로서의 기능을 해 왔다. 1925년 평안북도 구성군 이현면 진도동 참새골에서 태어난 조동원 종법사는 아버지 조만경, 어머니 김문채 사이에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오십 리 밖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다니지 못했다. 길쌈과 바느질 등의 일을 배우며 18세가 되어 열 여섯 살이 많은 천도교인 故김동화 선생과 혼인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기의 상흔 속에서 살아왔다. 천도교의 진리를 깨닫고 수련을 이어나가며 수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피워 올리기 위해 염주알을 손에 쥐고 주문을 외웠던 삶의 길이 촘촘히 수도원 가는 길에 이어졌다. 인생은 때로 너무 짧다. 전쟁이 일어났지. 6.25 때야 뭐 말도 못하게 죽을 고비 다 겪었어요. 스물세 살에 남편을 따라 월남을 했습니다. 삼팔선을 넘어왔지요. 남편이 몇 달 먼저 월남하시고 내가 뒤따라 왔어. 그때 북한은 공산당이 독재를 할 때였어. 살 수가 없는 거야. 삼팔선을 넘어 남한 땅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지. 남편을 만나러 춘천으로 갔어요. 가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지요. 월남해서 춘천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춘천 시내에 포가 떨어져요. 밤새 총소리가 나더니만 아침에 공산당이 춘천에 점령했어요. 방공호에 숨었지. 사흘을 있었어. 인민군이 집까지 쳐들어와서는 사람들을 끌고 나와서는 방공호로 쳐 넣어서 따발총으로 쏘았지.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죽었어. 피난을 가다가, 첫 아기 낳은 거를 안고 있었는데, 애가 죽었어. 두 살된 첫아기가. 방공호 속에서 남편을 찾았지. 이렇게 살펴보니까 문턱에 염주를 두른 팔뚝이 보이더라고. 아, 저기다 하고서는 죽은 사람을 막 비집고 나가서 팔을 탁 쳐드니까, 눈을 반짝 뜨면서 날 더러 죽은 이처럼 하고 가만히 있으래요. 그래서 아이고, 남편이 살아있으면 됐다, 하고서는 아이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죽은 애를 안아 올렸더니, 피가 주르르 흘려. 그 자리에서 염주를 올려놓고 정신 빠지게 주문만 외웠지. 밖에서 소리치는 여자가 하는 말이 “공산당이 사람 살리려고 나왔지 사람 죽일려고 나온 줄 아느냐”고 말이야. 공산당들이 나더러 남편 내놓으라, 그래. 남편 돌아가시고 애들만 데리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거짓말이라면서 총을 갖다가 가슴에 대고 쏘려고 하더라고. 그런데 총알이 안 나가는 거야. 그러는데 대문이 열리더니 중국 군인이 총을 메고 들어오는 거야.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이 총을 빼앗겼지. 그런 순간들마다 주문을 외웠어. 그러니까 주문을 많이 외우니까 한울님이 살려주는 거라. 한울님이 ‘오늘은 콩밭으로 나가라.’ 하시거든. 그 말씀에 따라 콩밭으로 나가면 집에 와서 천장에 총을 쏘았어. 그리고 다른 날 콩밭에 가 있으면 한울님이 ‘오늘은 들어가라’, 하시거든. 그러면 콩밭에 와서 사람들을 다 잡아갔어. 그렇게 안 죽고 살았어요. 그때 생각을 하면 말로 다 못해. 옛날 어른들 하는 말이 염주만 두르고 있으면 난리가 나도 안 죽고 산다고 했어요. 피난길에 남편이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이 양반이 깨진 얼음을 타고서 건너와서 안 죽고 살아왔어. 거기서 붙들고 울고 염주 때문에 살아왔다고 했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염주 때문에 살아서 돌아온 거야. 남편은 수도원을 차려놓고 3년 만에 돌아가셨어. 일흔 아홉에. 천도교 믿는 사람들은 모든 걸 내가 해야 할 수련으로 해야해. 내 하는 모든 것이 도가 되기 때문에 일용 행사가 도야. 밥을 할 때도 쌀 다섯 번씩 씻으라고 하잖아요. 쌀을 다섯 번씩 씻어서, 안칠 적에 잘 되게 해달라고 심고하고, 밥 풀적에 심고, 먹을 때 또 심고, 다 먹고 나서 심고. 하여튼 심고를 수십 번 해야 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뭐 지금도 누가 뭐 사업이 안 된다고 하면 심고를 해요. 또 부화부순이 안 된다, 암에 걸렸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심고부터 하는 거야. 그렇게 심고를 부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심고 드리는 사람은 셀 수가 없어.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다리를 못 쓰니까, 어떻게 보면 심고 드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한울님 뜻 같아. 그것밖에 이루어질 수가 없는 거야. 제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도, 수련을 했어요. 저는 화악산에 가서 수련을 하면서 유방암을 다 고쳤어요. 병원에서, 조동원이는 사람 못 될 거라고 그랬대. 아휴 말도 못해. 하여튼 도 닦는 일을 그저 열심히, 일용행사로 해야 해요. 딴 거 없어. 남의 말 듣고서 그렇게 되려고도 하지 말고, 내가 가정에서 으뜸가는 한 식구가 돼야 해. 내가 일용 행사를 잘하면 그 자리에 들어가고 못 하면 못 들어가는 거야. 남이야 떡을 먹든지 밥을 먹든지 남의 말 하지 말고 이목구비 사지백태 오장육부만 하나 하나 잘 간직하면 돼요. 그거는 남이 훔쳐가질 못해. 이거 못 훔쳐가. 물질이 많으면 훔쳐가죠. 말도 못해. 그러니까 묵묵부답하고 닦아도 묵묵부답하고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 한울님으로 대해줘야 해. 다 한울님이지. 한울님 아닌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말고 다 일체 똑같이 대해주세요. 내 손에 귀중한 게 있다고 합시다. 먹는 거라든가, 물건이라든가 내 손에 생겨서 누군가에게 갖다 주려면, 내 자식보다 남의 자식에게 더 많이 줄 마음이 생겨야 해. 내 자식은 조금 줘도, 남의 자식 많이 주고. 내 부모를 조금 드려도, 남의 부모에게 많이 드리고. 마음을 그렇게 쓰도록 바꿔줘야지. 그거 바꾸지 못하면 주문 암만 외워도 안 되고 경전을 암만 봐도 입에서만 달달 외우지 소용이 없어. 정답으로 들어가야 해. 천도교를 왜 해야 하냐? 천도교를 해서 한울님을 찾아야지. 그리고 한울님을 찾는 것보다도 내가 바로 잘해야 해. 이목구비 사지백태, 오장육부를 똑바로 잘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딴 거는 다 저절로 돼요. 범인들도 밥 먹고 나면 배부른 거 알고, 배고픈 거 알고 화장실에 가는 거 알잖아요. 알고 가잖아요. 그거는 저절로 다 알고서 느껴서 가는 거지. 도를 제대로 닦으면 그걸 느껴서 알고 가는 것처럼 매사 이래, 몸으로 느껴져. 그렇게 몸으로 느껴서 알게 되는 거야. 그리고, 중요한 것 또 하나는 남의 비밀은 말하지 말라. 지켜줘라. 나는 평생 천도교를 했어요. 내가 죽기 전에 후학들에게 왜 천도교를 해야 되는가? 이 천도교의 진리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요. 천도의 진리는 내가 깨달은 게 진리야. 내가 사람 되는 게 진리야. 하늘 사람 되는 게 진리야. 그거 안 되면 껍데기를 찾는 거지. 내가 아무리 배운 글이 없고 무식해도 내가 한울님을 위하는 마음, 식구들을 위하는 마음 그거는 알고 진리를 찾는 거지. 딴 게 없어. 그게 도야. 우리는 다 한울님 은덕으로 먹고 살아요. 땅에 실려서 하늘이 덮어주잖아. 그게 바로 땅은 어머니고 하늘은 아버지야. 그러니까 항상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야 해요. 내 엄마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한울님한테 합해진 거야. 그러니까 천지부모로 엄마, 아빠 찾으면 나를 낳아준 엄마도 거기 다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를 못 봐도 항상 어머니 아버지 감응해 주시옵소서. 하고 심고를 드리는 거지. 종법사님이 마음에 품었던 스승님 말씀이 뭐였어요? 마음에 품은 스승님의 말씀은 제일 먼저 그거지. 내가 일용 행사를 잘 해야 한다. 첫째 부화부순 부모 잘 모시는 것 그거를 100점 만점으로 해야 된다 이거야. 부화부순도 100점, 부모님 모시는 것도 100점, 자식들 키우는데 때리고 욕하고 그러지 말라. 어린아이는 한울님이기 때문에, 한울님을 못 쓰게 된다. 애 때리면 죽는다. 내수도문에 다 있잖아요. 『탄도유심급』에 마음을 닦아야 덕을 알고, 덕을 오직 밝히는 것이 도니라. 덕에 있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에 있고 공부에 있는 것이 아니요, 가까운 데 있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에 있고 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은 듯하나 그러하고 먼 듯하나 멀지 아니하니라. 종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지상천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상천국? 지상천국이 여기가 천국이여 이게 천국이여 그러면 여기서 천당을 찾아야지. 여기서 천당을 못 찾으면은 저 세상에는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 그러니까 있다 하면 여기서 천당 찾은 사람이 거기 갈 수 있고 천당 못 찾은 사람이 있어도 못 가. 그러니까 여기서 천당 차원을 찾아야 돼요. 나 하나 다 닦아라. 한울님으로 닦아 놓으면은, 그러니까 다른 거 여러 가지 자꾸 생각할 거 없고 사심을 버리고 천심으로 발을 디디면 돼. 천심으로. 모든 게 내 말대로 전부 내 것이지, 다 남의 것이 아니야. 부모도 내 부모, 다 내 형제니까 언제든지 욕심 버리고 남을 미워하는 거 버리고 그것만 따라가면 되는 거야. 그래서 주문을 많이 외우고 주문 외워서 저절로 열어줘야지. 내가 반드시 열겠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부지런히. 생활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내 식구들한테 열심히 해주고 그게 도지 딴 게 도가 아니여 은성당 조동원 가리산수도원 원장 약력 포덕 67년 평안북도 구성군 이현면 진도동 출생 포덕 86년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혼인 포덕 88년 38선은 넘어 월남, 강원도 춘천에 정착 포덕 103년 충청남도 대덕군 탄동면으로 이주,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탄동전교실 운영 포덕 109년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으로 이주, 우암 김동화 선도사와 유성전교실 운영 포덕 110년 천도교종학원 수료, 유성전교실 전교사 포덕 115년 부산시 광안리로 이주 포덕 118년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 홍천전교실 운영 포덕 120~포덕123년 3년간 독공수련 포덕 12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초대 원장 취임 포덕 128년 남편인 우암 김동화 선도사 환원(향년 79세) 포덕 134년 천도교 금강포 연원회 도훈 포덕 14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20주년 포덕 15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30주년 포덕 163년 가리산수도원 개원 40주년 <끝> 인터뷰영상 바로가기==>http://www.youtube.com/watch?v=JPTR63nSXFo&t=1s -
천도교종학대학원 정규강좌와 수요강좌 성황리에 진행중천도교종학대학원(원장 이상면)은 3월 2일 정규/통신과정 1학기 개강식 이후, 토요일 오후1~6까지 정규강좌로 「무체법경」, 「동양의 종학」, 「도원기서」 세 강좌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9시까지 「열린강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토요일인 3월 9일, 16일에는 김춘성교수의 ‘무체법경’ 강의, 박범석 교수의 ‘동양의 종학’ , 송봉구 교수의 ‘도원기서’ 강의가 연속적으로 열렸다. 김춘성 교수는 의암성사법설 「무체법경」을 중심으로 매주 그 내용을 강독한다. 박범석 교수는 “논쟁과 비판, 무위와 유위, 본성과 감정, 유교와 불교, 교종과 선종, 도오와 점수, 절대와 상대, 초월와 내재, 경험과 합리, 이성과 신앙, 문명과 자연” 등 매주 학습주제를 정해 강의를 진행한다. 송봉구 교수는 최초의 동학역사서로 알려진 「도원기서」를 중심으로 초기 동학의 전개과정을 강의한다. 수요일인 3월 6일에는 윤승용 교수의 ‘한국민족종교 이해를 위한 종교문화개설’이 열린강좌로 진행되었다. 13일에는 장정태 한국서민불교학회장의 ‘한국민속의 이해’란 주제의 강의가 열린강좌 진행되었다. 특히, ‘한국민속의 이해’ 강의는 영화 ‘파묘’ 등의 영향으로 많은 수강생이 질의하여 9시를 넘기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3월 20일 열린강좌 시간에는 민영현 양자기학연구소장이 「민족고유신앙」을 강의한다. 포덕165년(2024) 천도교종학대학원 정규·통신 과정 교육과정은 매 토요일마다 세 강좌의 정규강좌, 수요일은 종학연구토론(수 오후7시), 단체수련(7월) 그리고 현장학습(유적지답사)이 예정되어 있다. 재원생들은 매주 블로그를 통해 공지되는 강의 일정 및 강재를 강의 전에 숙지하여 현장(강의실)과 온라인(줌)으로 참여하고 있다. (종학대학원 입학 상담 및 문의는 02 720 3020)(글.사진 제공 천도교종학대학원) -
천안향교 동학혁명기념관 방문천안향교(회장 신혜영, 인솔 서명희, 40여명)에서 지난 3월 14일 동학농민혁명130주년을 기념해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을 예약 방문했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천도교 직접도훈, 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은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해설 및 강의를 하였다. 특히 당시 유학의 지배이념에 있어 동학은 과히 혁명적인 사상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윤영 관장의 해설 및 강의 내용에 있어 제목을 위주로 아래와 같이 간추려보았다. 첫째_동학·천도교를 창시한 수운 대신사 최제우 선생에 대해 알아야 한다. 둘째_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 2세교조 해월신사 최시형 선생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셋째_동학농민혁명 총대장 전봉준 장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동학혁명군 대통령과 3.1운동 영도자 손병희 선생에 대해서도 꼭 알아야 한다. 넷째_동학농민혁명 1차 기포는 내부적인 반봉건 개혁운동이었지만, 2차 기포는 외부적인 반외세 즉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지야욕에 대한 항일의병운동이었다. 다섯 번째_동학농민혁명은 갑오년의 좌절과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이다. 동학혁명은 일제강점기 의병운동과 3.1독립운동 그리고 상해임시정부로 계승되었다. 또한 해방 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반독재민주정신으로 계승되었으며, 남북의 평화통일이 달성될 때까지 끊임없이 계승되고 진행될 것이다. -
3월 25일, 천도교여성회 창립100주년 기념식 봉행국내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여성단체 중 하나인 천도교여성회(회장 박징재)가 올해 3월 25일 창립 100주년을 맞아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삼일대로 457)에서 제100주년 창립기념식을 봉행한다. 천도교여성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천도교여성회100년사』 를 간행하면서, 출판봉고식(기념식)도 함께 봉행한다. 『천도교여성회100년사』 는 200자 원고지 3000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100년 동안 활동해 온 천도교여성회 역사를 망라한 대작(大作)으로 선보인다. 천도교여성회는 1924년, 천도교 제3세 교조이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대표인 의암 손병희 선생의 부인인 수의당 주옥경(守義堂 朱玉卿, 1894~1982)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당시 천도교단의 주요 여성들이 창립한 단체로, 창립 당시 이름은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이다. 전성기에는 전국 200여 개 지부에 3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때도 있었으나, 현재는 전국 60여 개 지부 3천여 명의 회원을 망라하고 있다. 역대 임원은 초대회장 주옥경을 비롯하여 42대에 걸쳐 모두 20명의 여성회장(중임 또는 3연임 이상 포함)이 재임하였으며, 부회장 이하 임원 숫자만 1천명에 육박한다. 내수(內修) 천도교의 핵심 교리인 시천주(侍天主) 사상에 따라, 내안(內)에 모신 한울님 마음을 갈고 닦아서(修) “인내천 세상”을 이루는 주역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도교여성회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6.25 전쟁과 근대 산업화시기를 거쳐 오는 동안 안으로는 수도연성을 통한 도가완성과 교회발전으로 도모하고, 여성 지도자를 길러내는 한편, 밖으로는 사회봉사 활동, 여성인권 신장 운동, 남북 천도교여성 교류사업, 선열 선양사업, 수도원(修道院) 및 기념관 건립 사업 등 굵직한 대외 사업 등을 전개해 왔다. 또한 대외적으로 (사)한국여성단체연합,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여성위원회 등의 연합단체와 연계하는 등 종교 및 사회 평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천도교에서 여성운동은, 일찍이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노비를 해방하여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은 실천을 몸소 실행한 것은 물론, 시천주, 즉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가르침에 따라 남녀 평등한 조건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수련에 임하게 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제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신사는 “베 짜는 며느리가 곧 한울님”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또한 “부인(여성)은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하고, 또 “구녀일남(九女一男: 남성 1명이 도통하는 동안 여성은 9명이 도통함)의 운수가 도래한다”고 하였으며, 또 “나(=최시형)는 부인(여성)도 스승으로 삼는다”고 하는 등 여성 존중의 교리를 설파하였다. 또한 동학의 향아설위(向我設位) 제사법은 나를 향하여 제사상을 차리는 혁명적인 제사법이고, 훗날 ‘청수 한 그릇으로 제사상을 차리는’ 천도교 특유의 제사법으로 발전하였는데, 이 또한 과중한 제사문화에 시달리는 여성해방의 중요한 사례가 된다.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성사는 그때까지 이름이 없이 ‘○씨 부인’ 등으로 불리던 여성들에게, 모두 이름을 짓도록 하였으며, 동덕여학교(오늘날 동덕여대) 등의 여학교를 운영 또는 지원하여 여성인재 양성과 계발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바탕 위에 창립한 천도교여성회는 그 후 천도교내성단, 천도교내수회, 천도교부인회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야 하는 시련을 거치면서, 1968년 ‘천도교여성회’라는 이름을 쓰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100주년 창립기념은 『천도교여성회100년사』 출판 기념식(봉고식)과 함께, “사진으로 보는 천도교여성회 100년사”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한편 이번에 발간되는 『천도교여성회100년사』 는 제1권 ‘본부 활동사’로서, 크라운판 496쪽에 달하며, 『천도교여성회100년사』 2권은 ‘지부(지역 교구의 천도교여성회) 활동사’로서, 내년에 출간할 예정이다. 『천도교여성회100년사』 는 100년간의 천도교여성회 역사를 제1부에서 ‘여명기 - 창립기 - 시련기 - 재건기 - 준비기 - 성장기 - 개화기 - 전환기’로 시대 구분하여 시간 순으로 살피고, 제2부에서 ‘기념사업’, ‘학술연구사업’, ‘문화사업’, ‘사회활동’ 등으로 공시적으로 살피면서 천도교여성회 역사와 주여 여성 지도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으로서 천도교 최고 예우직인 종법사(宗法師)에 초대회장 주옥경(1894~1982)을 비롯하여, 양이제(1892~1985), 차기숙(1899~1994), 최시영(1904~1992, 이상 환원), 조동원(1926~ 생존) 등 5명이 추대되었으며, 현재 천도교단의 유일한 종법사는 ‘조동원(전 가리산수도원장)’이다. 박징재 천도교여성회 회장은 “지난 100년의 천도교여성회의 역사는 곧 한국 여성운동 100년사이고, 다가오는 미래 100년을 살아가고 활동해 나갈 후학들에게 귀중한 지침이자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과거를 기록하지만, 앞으로의 천도교여성회 100년을 다시 시작하는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것은 훌륭한 대로, 부족하고 아쉬운 순간들은 또 그것대로 미래의 귀감이 되고 훗날의 자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앞으로 ‘지부 편’ 발간을 위한 조사, 연구 활동과 아울러 통일의 그날을 대비하여 북한 지역 천도교 여성의 역사도 하루빨리 수집되고 통합되어 더 큰 ‘천도교여성회 역사’가 오롯이 완비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천도교여성회(천도교내수단)가 창립식(=發會式)을 가진 날은 1924년 4월 5일지만, 그날이 천도교의 창도기념일(天日紀念日)인 관계로 이후 기념식은 ‘창립 준비회의’를 열었던 3월 25일에 봉행하고 있다. (문의 : 02-6488-6839) -
중앙총부, 제6차 기관장회의 개최포덕 165년 3월 14일 오후 2시 수운회관 907호에서 제6차 기관장회의가 개최되었다. 기관장 회의는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되었다. 주용덕 교령대행, 김성환 연원회의장, 윤석산 상주선도사(줌 참석), 선우철수 종의원의장, 정덕재 감사원장(줌 참석), 신명식 천도교유지재단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기관장회의는 개회-청수봉전-심고-주문3회병송-개회사(교령대행)-전차회의록 보고-안건논의(신인간사 협조요청 건, 임시전국대의원대회 소집의 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자료 협조 요청, 3.1역사문화관 건립 추진위 구성, 대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 구성, 고유번호증 대표자 변경)-폐식심고의 순서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