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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중앙교당에서 현도의 뜻이 울려 퍼지다제120주년 현도 기념식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교구에서 봉행되었다. 포덕 166년(2025) 12월 1일(월), 남해읍 중앙교당에서 봉행한 현도기념식은 의암성사님의 천도교 현도의 뜻을 기리고 교단의 정체성과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다지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송암 박철 선구교구장의 집례, 청수봉전은 덕성당 이정희 선도사, 경전봉독은 인신당 신동엽 선도사(권도문, p.686)가 맡았다. 이어진 천덕송과 기념송은 현도의 의미를 더했다. 여유범 남해교역자운영위원장(남해교구 도원포 도정)이 박인준 교령의 기념사를 대독하여 교령의 메시지를 교인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포덕행진곡을 합창하며 기념식의 뜻이 울려 퍼졌다. 기념식 진행 안내는 훈암 여성훈 남해교구장이 맡았으며, 전체 식순은 중앙총부 현도기념식순에 따라 봉행하였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특별 순서로 건암 김대부 동덕(선구교구, 천도교남해교역자 운영위원회 사무국장)이 당시 제국신문 등에 실렸던 ‘현도 광고문안’의 핵심 내용을 직접 소개하였다. 김대부 동덕은 광고문안이 발표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의암성사님이 천도교 현도를 선포하며 담아냈던 사상적 의의,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현도기념일의 신앙적 취지를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설명하여 참석한 동덕들의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의암성사께서 포덕 46년 12월 1일(을사 1905)을 기하여 동학을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에 널리 선포하셨으니 이것이 곧 천도교의 대고천하인 것이다. 동학을 천도교라고 이름하신 것은 대신사께서 논학문에서 道則天道 學則東學(도는 곧 천도요 학은 곧 동학)이라고 하신데서 연유하여 현대적 종교로 등장시키기 위하여 敎자를 붙이신 것이다. 이로 인해서 40여 년간 받아오던 탄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신앙을 하게 되었다. 당시 현도에 대한 광고문은 광무 9년 12월 1일 금요일자 제국신문 제8권 제274호 첫머리에 게재된 것을 비롯해서 15회나 반복 게재되었다. 광고 무릇 우리 교는 천도의 큰 근본일세 그 이름을 천도라고 하니라. 우리 교가 창명된 지 이제 46년이 지나는 가운데 신봉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널리 있으며 이와 같이 믿는 사람이 많은 데 교당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유감되기 다시 말할 것이 없고, 지금 세계는 인류 문화가 드러나고 열려서 각 종교의 자유로 신앙하는 것이 만국의 공예가 되었고 그 교당을 자유로 건축하는 것도 또한 전례가 되어 있으니 우리 교회의 교당도 날아갈듯이 크게 짓는 것도 또한 천시에 응하고 사람이 순히 따르는 일대 표준인 것이다. 우리 동포 모든 분들이여 이와 같이 믿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당 건축공사 시작은 명년 2월로 시작할 것입니다. 천도교 대도주 손병희 고백 해월신사법설 吾道之運 편에 우리 도의 이름과 주의를 멀지 아니하여 세계에 펴 날리고, 서울 장안에 크게 교당을 세우고, 주문 외우는 소리가 한울에 사무치리니, 이 때를 지나야 현도라고 이르느니라 라고 하셨다. 해월신사께서 대신사의 유훈을 받들어 무극대도를 지키시고 경전을 간행하셨으며, 의암성사께서는 해월신사의 유훈을 받들어 대 교당을 세우시고 은도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현도를 하신 것이다. 한편 남해교당에서는 12월 한 달 동안 이웃돕기 성금 마련을 위한 캘리그라피 전시가 함께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남해동학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동호회 ‘수수한 남해’의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판매대금 전액은 남해군 지역 복지기관에 기부될 예정이다. 신앙과 예술, 나눔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지역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자료 및 사진 제공 정효종 고현교구장 -
김현성, 동학을 노래하다…경전에서 길어 올린 신작으로 문화운동의 새 물꼬가을밤, 천도교중앙대교당 앞마당이 노래와 이야기로 환해졌다. 9월 25일 오후 7시, 「이등병의 편지」와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이 ‘자유와 독립을 향한 동학혁명의 이야기와 노래’를 주제로 단독 콘서트를 열고, 동학 천도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신작들을 처음 공개했다. 공연은 1부 ‘민족 시인의 노래·독립군의 노래’, 2부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로 나뉘어 진행됐다. 관람석에는 박인준 교령과 강병로 종무원장, 서소연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남연호 도서관장을 비롯해 100여 명의 관객이 자리해 기타 선율과 서사에 귀를 기울였다. 서막은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이어 이육사의 「청포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이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편곡으로 무대에 올랐다. 「나는 자랑스런 의병이에요」와 신곡 「홍범도의 묘비」는 청중의 호흡을 낮추며 독립군의 마음을 불러냈고, 「이등병의 편지」와 「술 한잔」이 1부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무대 양옆 대형 스크린의 자막과 영상은 곡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했다. 2부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에서 가사를 뽑아 쓴 신곡으로 채워졌다. 2부 공연 시작에 앞서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이 초대 손님으로 나와 동학 천도교가 3‧1혁명에서 촛불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심장부에 서 있었음을 환기시켰다. 최 관장은 “작은 문화운동이 국민의 마음에 스며들도록 전국 순회 프로그램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히면서 대중을 향한 천도교 문화운동의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김현성 역시 “음악은 시대를 기록하고 메시지를 건네는 유용한 통로”라며, 전국 소극장 투어와 음악극·뮤지컬 등으로의 확장을 예고했다. “동학은 미지로 보일지 몰라도, 여기서 길어낼 에너지는 엄청나다”는 그의 기대가 덧붙었다. 이어진 「해월 선생 내게 물으시네」는 「대인접물」의 문장을 경쾌하게 풀어 천도교 교리를 자연스레 각인시켰고, 「탄 도유심급」은 바른 마음을 다잡는 경구를 리듬으로 새겼다. 『용담유사』 「흥비가」 구절을 인용한 「아름드리나무」의 흥겹고 포근한 결이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배우 김진휘의 ‘일하는 한울님’ 낭독이 이어지며 서소문 옥중 해월 최시형 신사의 육성이 현재의 시간 위로 포개졌다. 뒤이은 「해월, 작별의 인사」와 「세상에서 참 기쁜 일」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를 만난 기쁨과 해월의 결연한 마음을 절제된 선율로 그려 깊은 공명을 만들었다. 김현성은 “(이 노래들은) 경전의 문장을 노랫말로 발췌해서 처음 들려드리는 것”이라고 창작 배경을 전했고, 무대는 「주먹밥」, 「기미독립선언을 노래함」으로 이어졌다. 앵콜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관객과 함께 합창하며 밤하늘의 여운을 길게 남겼다. 내내 공연을 지켜본 20대의 비(非)교인 정소라(가명) 씨는 “자막과 영상 덕분에 노랫말과 맥락이 또렷했다”며, 신앙 배경이 없어도 동학과 천도교의 핵심을 따라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非)천도교인에게도 열린 입구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서울교구 송영기 동덕은 “중앙대교당 앞마당이 공연장으로 변한 순간, 교당이 ‘문화의 마당’이 될 수 있음을 체감했다”며 유연한 공간 활용의 가능성을 짚었다. 맑은 날씨와 어울린 선곡이 현장을 하나로 묶었다는 소감도 전했다. 강병로 종무원장은 “동학은 이런 식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오늘 콘서트에 크게 감동했다. 동학이 음악, 미술, 운동으로까지 이처럼 확장되는 방식이야말로 동학이 사회 속으로 퍼지는 길”이라고 강조해, 중앙총부가 지향하는 K-동학의 좌표를 다시 확인케 했다. 권윤호 동덕은 배우 김진휘의 낭독을 언급하며 “해월 신사께서 하셨을 말씀이 자막과 함께 흐르자 울컥해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음악과 서사의 결합이 만든 집중력, 신작에 맞춘 자막 운영의 효과가 눈에 띄이는 부분이다. 주선원 동학민족통일연구회 상임의장은 “매우 독특한 기획을 해줘서 오늘만큼은 정말 기쁘다. 경전 말씀이 오늘의 노래로 울릴 때 너무 좋았다”고 평했고, 서울교구 양윤석 선도사는 “최근 중앙총부가 추진한 행사 중 가장 빛나고 가장 탄탄한 기획”이라며 제작진의 열의와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김현성의 아름다운 사람들’은 노래로 만난 동학 천도교의 현재형 기록이었다. 수운 대신사와 해월 신사의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와 선율로 되살린 무대, 그리고 그 무대를 발판으로 전국을 잇는 순회 문화운동의 약속이 한데 포개졌다. 문화로 스며드는 교화, 생활 속에서 자라는 신앙. 중앙총부가 열어갈 다음 장을 기대하게 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
『동경대전』 한 줄이 바꾼 삶, 프랑스에서 천도교 꽃피우는 청년 한울님, 한승원 동덕프랑스 리옹에 거주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승원 동덕은 혼자서 『동경대전』을 탐독하다가 천도교의 길에 들어선 특별한 사연을 지닌 젊은이다.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삶의 방황 속에서 새로운 정신적 지지대를 찾던 그는 천도교 경전 속 구절에 깊은 울림을 받고 입교를 결심했다. 현재 그는 프랑스인 아내와 함께 주문을 묵송하며 천도교를 실천하고 있으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현지에 천도교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장기비자 신청을 위해 일시 귀국한 한승원 동덕이 지난 포덕 166년(2025) 9월 28일, 천도교신문 편집국이 있는 신인간사를 방문했다. 다음은 한승원 동덕과의 1문 1답이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편집장) ▶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배경과 현재의 활동에 대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현재 프랑스 리옹에 거주하고 있는 한승원입니다. 본래는 학부 졸업 후 관광업에 종사하려 했는데 한국어 교원이 되고자 마음을 먹은 건 학부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1년간 체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공립 중학교에서 봉사 활동으로 3개월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낀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통해 한국어 교원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고,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국어 교육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석사 취득 후에는 이태원 근처 사립고등학교에서 다문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원으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1년 계약직으로 근무한 후, 감사하게도 계속 그 학교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부 시절 언어 교환 프로그램으로 만난 지금의 제 아내와 교제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상 부인이 한국에 와서 사는 것은 여의치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선택지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혹은 프랑스로 이주 후 완전히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선택 사이에서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24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여자친구와 약혼식을 올렸습니다. 물론 아직은 단기 비자만 발급되기 때문에 기관에 소속되어 근무는 하지 못하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소일거리처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비자가 만료되어 장기 비자 신청을 위해 한국에 잠시 체류하고 있는데, 오는 10월 16일, 다시 프랑스에 입국한 후에는 영주권을 얻고 안정적으로 새 삶을 살아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 경전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만들어 가신 경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려줄 수 있으실까요? 저는 아주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왔습니다. 어렸을 때는 교회를 굉장히 즐겁게 다니던 기억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생활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열아홉 살 무렵, 신앙생활을 그만두고 강렬한 무신론, 유물론자로 서른 살까지 살아왔습니다. 저는 신보다는 자신을 믿으며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강하게 믿었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는 버릇이었습니다. 저는 운동도 잘 안 하고 흡연도 안 하다 보니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 길이 없었고,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찾던 것이 알코올이었습니다. 이게 한잔 두잔 매일 마시다 보니 나중에는 알코올이 없으면 감정 정리가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연하게도 알코올을 계속 마시다 보니 성격은 더더욱 예민하고 포악해지고, 성격이 예민해지니 스트레스를 다시 폭발적으로 받아 또 과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저는 여자친구와 알프스산맥을 따라서 도보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엄청난 대자연 속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난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바위보다 작은데, 왜 이렇게 나는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폭발하며 사는 거지? 나는 여태껏 나 자신을 믿으며 산다고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에도 폭발하고 마음은 갈대처럼 요동치는데, 이런 나를 믿고 산다는 것은 결국 브레이크가 빠진 자동차를 믿고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게 아닌가?” 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올랐고,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피폐해진 마음이 정신적 지지대를 강렬히 요구한다는 하나의 구조신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즉시 저는 여러 종단에 이메일을 보내 정보를 얻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경전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종교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에 와닿는 종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어쩌다 보니 『동경대전』까지 읽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정독은 못 하고 훑어보기를 했는데, 「탄도유심급」 장에서 “흐린 기운을 쓸어 버리고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 “남의 적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나의 적은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라”라는 구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구절들이 마음에 확연히 와닿았고 “이런 좋은 말이 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한 자, 한 자 정성껏 탐독하기 시작했고,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이 제가 찾던 그 무언가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약 『동경대전』 구절들이 기성 종교 경전처럼 ‘신께서 가라사대…’와 같은 말들만 가득했다면 아마 그대로 경전 읽기를 포기하고 덮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동경대전』은 제가 정신적 지지대와 같은 존재가 절실히 필요할 때, 가장 현실적인 말을 해준 유일한 경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앞으로 삼을 정신적 지지대는 바로 이곳이구나!” ▶ 프랑스에서 생활하시면서 천도교 신앙을 이어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누구의 권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순전히 종교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홀로 『동경대전』을 접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신앙을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난관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전의 내용이 현대인들에게는 너무 난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동덕님들이 올리신 해설을 읽어보고, 해의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고, AI의 도움도 받고 또 한자 사전들을 찾아보며 경전 내용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정리된 경전 내용을 그때그때 워드 파일에 기록하고 또 수정해 나가기 시작하며 점차 경전에 대한 저의 생각들도 굳혀나갔습니다. 이렇게 이치 공부를 했습니다. 주문 수련의 경우 아무래도 초심자다 보니 오래는 하지 못하고 밤 10시경 아내와 함께 청수를 봉전하고 마주 앉아 주문을 105회 묵송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치 공부와 주문 수련 모두 누군가의 지도 없이 행한 것이다 보니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번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중앙대교당 시일식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좀 더 발전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실제로 경전을 번역하면서 느낀 보람이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종교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종단에서 다양한 강의를 들으며, 제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을 무언가를 절실하게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저는 『동경대전』에서 크게 느꼈고, 『해월신사법설』까지 넘어갔을 때 이미 저는 일상에서 큰 변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매일 달고 살았던 술은 어느새인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사소하게 짜증을 내거나 화가 폭발하는 나쁜 습관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또 큰 시련이 닥쳐도 ‘풍운기수 수기기국’이라 속으로 말하며, 그저 지금은 쇠하는 시운이니,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겠노라고 생각하며 수심정기를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가장 먼저 저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역시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면서, 혹시 그동안 열중해서 읽던 그 책(『동경대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말했고, 책 내용을 어설픈 프랑스어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대신사님께서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제 부족한 설명도 한몫했겠지만, 일단 천도교가 말하는 그 교리가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기 때문에 제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를 위해 경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설명해주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경전 한 구절, 한 구절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후 그 아래에 해설을 길게 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프랑스인이라 음과 양, 영부, 선약과 같은 동양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고, 해설이나 보충 설명 없이는 한 구절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제 작업물은 공식적인 번역본이라기보다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입문서 내지는 소개 책자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제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보람은 역시 아내가 그 글을 읽고 감동하는 모습을 볼 때였습니다. 아내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와 우주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연결되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내는 여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천도교 경전에서 그 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전을 통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까지 받다 보니, 경전 번역본을 읽고난 아내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덩달아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번역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이라면 역시 언어구조의 차이가 불러오는 번역의 한계입니다. 예를 들어, 원문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프랑스어로 명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굴신동정’, ‘무극대도’, ‘무왕불복’과 같은 말들을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런 부분은 원문을 쓰지 않고 최대한 프랑스어로 풀어서 설명하거나 일부는 생략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 작업물을 번역본이라기보다는 해설서 내지는 입문서로 소개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최근 『해월신사법설』과 『의암성사법설』까지 프랑스어 번역을 마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 제 작업을 경전 번역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작업 자체가 아내에게 천도교 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개인적인 해설 노트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인들에게 제가 천도교 경전을 번역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은 안 드리고,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천도교 소개 책자를 만들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원래는 아내에게 『동경대전』 하나만 소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조금 더 욕심이 생겨서 결국에는 『의암성사법설』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거의 다 마칠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이 번역 및 해설 노트를 더 가독성 있게 잘 다듬어 아예 프랑스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입문서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노트도 천도교 초심자인 아내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었기에 그 내용 역시 심오하게 들어가기보다는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천도교가 무엇인지를 가볍게 설명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경전해설서’가 아니라 ‘한국문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충분히 일반인 대상 입문용으로는 적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실제로 아마존(Amazon) 독립출판사 지원 서비스를 통한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작업물이 입문서인 만큼 모든 장을 다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천도태원경」이나 「명심장」같이 국민계몽운동적 성격이 강한 장은 번역을 마치기는 했지만, 최종본에서는 생략했습니다. 현재 원고는 680페이지가량 되고, 최종 출판본의 페이지 수는 이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목표는 프랑스인 포덕을 위한 종교 서적의 출판도, 천도교 경전 프랑스어 공식 번역본의 출판도 아닙니다. 대신 현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새로운 심법 종교인 천도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문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치 물이 스며들듯 조심스럽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 프랑스인인 내수도께서 천도교 경전 읽기에 동참하게 되셨는데요,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와 감동을 경험하셨는지 들려주신다면요? 아내는 『해월신사법설』을 읽었을 때쯤 천도교의 교리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대자연과 우주를 부모에 비유한 것, 부부 사이를 하늘과 땅으로 비유한 것이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또 주문 수련에 동참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저희는 매일 밤 10시에 청수를 봉전하고 주문을 105회 묵송하고 있습니다. 묵송 후에는 경전을 한 장씩 읽고, 서로 맞절을 하고 청수를 분작합니다. 그렇게 매일 수련을 하고, 맞절을 하니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상도 바뀌었습니다. 아내와 밤 산책을 하는데 바위 근처에 달팽이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아내는 달팽이를 가리키며 “한울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또 강물 소리를 들으며 “한울님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대신사님이 당신의 부인을 포덕하기 위해 특별한 묘책을 쓴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자신의 마음부터 돌아보고 행실을 달리하니, 부인께서도 그 마음에 감응하신 것이잖습니까. 그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천도교를 하라고 권유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내는 불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 너그러워지고, 술을 안 마시고, 긍정적으로 변하자 아내도 따라서 감응을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아내는 해월신사의 독실한 팬이 되었습니다. 해월신사의 은도 시대 때 일화만 들려줘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훔칠 정도이니까요. 특히 천도교 공부를 시작한 후 SBS 드라마 「녹두꽃」을 프랑스어 자막으로 같이 정주행했는데, 아내가 심고를 할 때마다 신사님을 생각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크게 감동했습니다. ▶ 『천도교 경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나 번역 과정에서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다면요? 경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는 구절이야 정말 너무 많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소제탁기 아양숙기’라고 하겠습니다. 탁한 기운을 쓸어내고 맑은 기운을 어린아이 기르듯 하라는 이 구절은 어떻게 보면 기성 종교에 있는 모든 경전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될 정도로 보편적인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저 구절을 읽었을 당시 저는 반쯤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마음속에 분노가 언제나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소위 탁한 기운이 완전히 저의 몸을 감싸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 문구를 읽었을 때, 저는 처음에는 ‘말은 쉽지. 그러면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고행이라도 하라는 건가?’라고 생각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경전을 더 깊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즉, 저 한 구절 때문에 경전 공부를 깊이 시작한 것이니, 결과적으로 저 여덟 자 때문에 천도교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의외로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은 바로 ‘한울님’을 어떻게 번역하냐였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dieu’, 즉, 영어로는 ‘god’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실수였습니다. 서양인들은 오랜 시간 ‘god’이라고 하면 옥경대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한울님을 ‘god’으로 번역하니 개개인이 모두 초월자적 신이 되는 것인가 하며 굉장히 의아해하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것을 서양인들의 몰이해 때문이라고 탓할 수는 없는 것이, 결국 ‘god’라는 단어는 수천 년간 굳어진 그들의 신관을 드러내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슬람교같이 절대자에 대해 강한 복종을 드러내는 종교를 믿는 경우 이를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받아들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번역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은 우주이자 음양이자 또 생명의 근원, 그 자체이지 않습니까? 서양인들에게는 이미 ‘god’가 구름 위에서 우리를 내려보며 상벌을 직접 내리는 그런 초월자적 신이라는 관념이 너무 오랜 시간 깊이 박혀있다 보니, 아무리 이 부분에 주해를 달아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쉽사리 바꾸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한울님을 ‘hanulnim’으로 번역하고, ‘god’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천도교의 세계 포덕에 있어 한울님을 ‘god’라고 쉽게 번역해버리면 오히려 그들의 신관에 한울님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모습이 되어버릴 것 같아 조금은 두렵습니다.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천도교를 알리고자 할 때는 철저히 서양인들의 신관과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제 해설본에서 서양인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그 신은 ‘god’라는 단어로 정의하도록 했고, ‘hanulnim’을 기존의 신관을 깨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신으로 새롭게 소개했습니다. ▶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원로 교인께서 프랑스어 번역본을 보고 감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우선 너무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고, 정말 영광입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심고를 하는데, 그때마다 저는 ‘스승님께서 저에게 지혜로 감응하시되, 제가 스스로 마치 이치를 다 아는 것마냥 자만하지 않도록 저를 꾸짖듯이 감응해주세요’라고 심고합니다. 저 역시 해설본이 매우 부족한 것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섣불리 출판하기에 앞서 계속 살피고 또 수정하고 있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현재 제 작업물을 공식적으로 ‘경전 번역본’이라 감히 소개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도교와 한국문화 입문서’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제 작업물 안에는 경전의 해설뿐만 아니라 천도교와 관련된 한국문화와 역사, 민속에 관한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아직 30대이신데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젊은 천도교인으로서 본인이 느끼는 책임감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작년 9월이었습니다. 경전을 읽고서 너무 가슴이 설레서 도저히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 큰 가르침을 얻었음에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천도교는 그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일단 알려지기만 한다면 그다음은 무위이화 될 것이다.’ 이게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천도교를 쉽게 소개할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정말 밤낮으로 고민하며 계획을 짰습니다. 아마 밥 먹는 시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네 가지를 ‘청년포덕 프로젝트’로 설정하고 전념을 다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나무위키 프로젝트입니다.나무위키는 한국에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오픈백과 사전으로, 대한민국 기준으로 청년들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들었을 때 열이면 열, 가장 먼저 찾는 사이트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가 너무 원론적이고 사전적인 정의만 하는 것과는 달리 나무위키는 구어체를 사용해 쉽고 간편하게 개요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교육과정에서, 또 한국사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 천도교와 동학이란 이름을 반드시 접합니다. 그리고 이들 중 천도교나 동학에 흥미나 호기심을 느낀 일부가 있다면, 분명히 나무위키를 통해 그것이 뭔지를 궁금해서 찾아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무위키 내에 천도교 페이지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은 분명히 “어? 천도교에 대한 역사는 적혀 있는데 오늘날과 관련된 정보는 없네? 아! 그럼 천도교는 오늘날에는 없어져버렸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이 페이지를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부터 저는 나무위키 내 천도교 페이지를 모두 정비하고 청년들이 알기 쉽게 교리를 정리했습니다. 천도교가 아직 살아 있는 종교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식당을 새로 오픈할 때도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내야 하는 게 유리하듯, 나무위키가 청년들의 지식 탐구를 위한 페이지 1번인 만큼 저 역시 나무위키 정비를 첫 번째 프로젝트로 삼았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청년들을 위한 천도교 커뮤니티 운영입니다.이렇게 나무위키를 통해 정보를 얻은 청년들 가운데 해당 정보에 흥미를 더 느낀 사람들이 공통된 주제에 대해 모여 의견을 나누고자 할 때 모이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습니다. 수백 개가 넘는 세부 관심사 채널들이 모여져 만들어진 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천도교 채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글을 올리지 않는 소위 유령 채널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 22일, 제가 해당 채널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그 채널 관리자가 되어 매일 천도교에 관한 칼럼을 올리고 청년들을 위한 경전 공부 시리즈를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채널에 방문하는 10대, 20대의 절대다수는 나무위키에 잘 정리된 교리들을 보고 흥미를 느낀 후, 이 채널에 접속해 천도교를 더 심층적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변 가게 전략’이 통한 셈입니다. 가끔 이 채널에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천도교가 뭔지 몰랐는데, 글을 읽어보고 감동했다”, “경전을 어떻게 구하는지 알려주세요”, “어떻게 입교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문의드려야 하나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저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정윤택 서울교구장님과 연결시켜드립니다. 최근에는 제가 올린 천도교 관련 글에 감명받아 한 고등학생이 중앙대교당에 찾아와 서울교구장님을 뵙고 간 사례도 있었고, 어떤 분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천도교 홍보를 자발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 역시 감동이 밀려와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해월신사님께서는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한울이 감응치 아니하고, 마음이 언제나 기쁘고 즐거워야 한울이 언제나 감응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즐거운 마음에 정성을 드렸고, 이에 한울님이 알아서 감응을 해주시니, 이게 무위이화의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 번째는 유튜브 채널 운영입니다.저는 글로만 이루어진 경전 공부 시리즈를 채널에 올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천도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타 종교에 관해 찾아보면 ‘10분 성경 해의’, ‘15분 만에 보는 법화경 해설’ 등과 같이 이미 젊은 세대 친화적인 유튜브 채널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젊은 층을 겨냥한 이런 채널들이 천도교에는 아직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제가 운영하는 채널을 통해 경전 공부, 동학, 천도교에 관한 모든 것을 젊은 사람의 감성에 맞추어 세련되게 표현할 예정입니다. 현재 천도교 교리에 관한 2부의 영상 제작을 마쳤고, 이번 천도교신문과의 인터뷰 기회를 빌려 상주선도사님께 내용 검수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검수가 완료되는 대로 제 채널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네오천덕송 프로젝트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던 제 기억을 바탕으로 고안된 프로젝트입니다. 개신교는 CCM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적인 버전의 찬송가들이 하나의 거대한 음악 장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즉, 종교적이고 지루한 멜로디를 벗어던지고, 팝과 같은 비트에 은혜가 충만한 가사들을 적어 현대인의 감성에 최대한 맞춘 것인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CCM을 듣고 자랐고, 개신교를 벗어난 지금도 CCM 하나만큼은 정말 훌륭하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신교 집안의 아이들은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CCM을 들으면서 자라고, 그 과정에서 성경의 말씀들을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체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교회 밴드를 결성해서 또 CCM을 부르고, 작곡 작사를 하게 되죠. 음악으로 이루어진 교회 결속력 강화와 선순환인 셈입니다. 저는 천도교의 천덕송 역시 이렇게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의 CCM과 같은, 새롭게 현대화된 천덕송을 ‘네오천덕송(NCDS)’이라고 일단 임시로 명명했습니다. 현재 제가 작사는 직접 하고, 작곡은 AI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만 총 3곡을 완성했습니다. 앞으로 7곡 정도 더 작곡하여 총 10곡을 만든 후, 이를 1집 앨범으로 하여 제 유튜브 채널에 올릴 뿐만 아니라 교인분들에게도 저작권 없이 무료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저는 천도교 집안의 아이들 역시 이렇게 네오천덕송을 들으며 영적으로 강하게 자라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들의 악기로, 또 그들의 목소리로 한울과 세상을 노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다섯 번째 프로젝트도 있기는 한데, 제가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에 체류했다면 진행했을 것입니다. 원래는 ‘시천주 한국어 교실’과 같은 이름으로 외국인들 대상의 무료 한국어 봉사를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천도교도 알리고 한국어도 무료로 알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제가 사정상 프랑스에 거주하느라 못하겠네요. 그래도 앞으로도 중앙대교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 문화, 한국어, 서예 혹은 요리 수업 등을 재능기부 형식의 무료 강좌로 개설하면 천도교 홍보에도 매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프랑스와 같은 해외에 천도교를 알리는 활동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덕님께서 바라는 천도교의 세계화는 어떤 모습인지요? 과거 1860년에도 그랬듯이, 천도교의 가르침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문제를 해결할 아주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원래 마음속에 물질적 지지대와 정신적 지지대를 하 나씩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물질적 지지대는 견고해졌지만, 탈종교가 일어나면서 정신적 지지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적 지지대의 빈자리를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물질주의가 채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되니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채우기 위해 더더욱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신적 풍요를 돈으로만 바꾸려 하는 쾌락 제일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도교는 사인여천, 동귀일체를 통해 작금에 만연하고 있는 쾌락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이기주의를 모두 타파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천도교는 현대인들의 피폐해진 정신적 지지대를 다시 세울 유일한 힘인 셈입니다. 저는 경전을 번역하기 전, 항상 신사님의 용시용활 장을 읽습니다. 대저 도란 시대와 짝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그 말씀을 언제나 가슴속에 새기기 위함입니다. 저는 그게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요즘 동서를 막론하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사랑받는 종교라고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정신적 지지대를 필요로 한다는 구조신호인 셈입니다. 그러나 하늘 위에 계신 신의 명령에 복종하자는 기존의 유일신 종교에는 피로감을 느끼니,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자라는 심법 종교에 신선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미 이런 흐름을 진작에 파악하여 매년 젊은 사람들의 감성을 가득 담아 불교 페스티벌을 열고 있고, ‘뉴진스님’과 같은 분들을 영입, ‘극락도 락(rock)’이다라는 슬로건하에 마치 콘서트처럼 파격적인 무대 행사까지 보입니다. 심지어 반야심경을 이용해 클럽 음악을 만들며 다 같이 뛰며 즐깁니다. 이런 불교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이미지 변신은 SNS를 통해 젊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지금은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저 어려운 염불만 외우던 종교로 인식되었던 불교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감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 이미지 변신이 가능했던 데에는 불교 중앙 교단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불교가 지금 해월신사님께서 말씀하신 용시용활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친심법종교적 패러다임’이라는 큰물이 들어왔을 때 천도교 역시 힘껏 올라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천도교도 심법 종교라고. 그리고 현대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다고. 불교가 ‘극락도 rock이다’라는 재밌는 슬로건을 내건다면 천도교는 ‘모두가 하늘이다’ 이런 식의 슬로건을 내걸지 못할 것 없지 않나요? 불교가 반야심경을 EDM 음악으로 변곡해서 다 같이 춤춘다면, 천도교도 주문 21자를 EDM 비트로 변곡하지 못할 것 없지 않나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천도교의 세계화는 거창하게 말할 것 없습니다. 이미 세계화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쾌락주의와 물질주의가 지배해버린 이들의 정신적 지지대를 무위이화의 도로 다시 정화하는 작업 그 자체가 천도교의 세계화가 될 것입니다. 특히 서양에서는 환경주의, 인권주의의 목소리가 강한 지역인만큼, 천지부모나 사인여천과 같은 신선한 교리들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는 절대로 제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지친 마음을 힐링하는 데 천도교라고 하는 해결책도 있다더라, 하며 조심스럽게 권하는 중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감응한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이루고자 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도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를 뿐, 일단 알려지기만 하면 무조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청년 포덕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타 종교의 신문이나 미디어도 정기적으로 보면서 포덕에 대한 영감을 얻는데, 개인적으로 청년 천도교인으로서 천도교에는 없거나 미약한데, 다른 종단에는 있는 네 가지 부러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최소한 지부가 하나는 있는 것. 둘째, 청년부가 각 지역 예배당에서 활력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 셋째, 성직자 양성 기관이 매우 많고 이곳에서 성직자들이 끊임없이 양성되어 세대교체가 항상 이루어지는 것. 넷째, 군종병과가 있는 것. 위 네 가지가 제가 먼 훗날 환원하기 전 꼭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위 네 가지의 실현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정성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해월신사님은 훗날 서울 한복판에서 주문 소리가 울리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바람은 수십 년 후 의암성사님 시대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겸손함을 가진 정성과 한울님 감응으로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위의 네 가지가 실현되는 그날이 반드시 올 수 있도록, 저는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닌 지금처럼 직접 발로 뛸 것입니다. 제힘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히 정성을 드리고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항상 심고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제 개인적인 소망이고,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입니다. 감사합니다. -
수심정기(守心正氣)수심정기(守心正氣) 1. 등불은 기름을 부어야 불빛이 환하고 거울은 수은을 칠해야 물건이 비치네 사람은 마음에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은 뒤에야 마음과 뜻이 신령한 것이니라 2. 저울에 물건이 없으면 언제나 평하고 구슬에 진흙이 없으면 언제나 빛나네 사람의 성령은 일월과도 같으니 영기가 중심에 이르면은 만사가 신통하네 3. 마음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지키고 희로애락을 과하게 하지 않으며 효제온공으로 갓난아이 보호하듯 마음을 언제나 기쁘게 하면 한울이 감응하네 한울이 감응하네 노랫말: 『해월신사법설』 「수심정기」 편에서 발췌 (3절 첫 두 줄은 『의암성사법설』 「위생보호장(衛生保護章)」에서 발췌) 작곡: 김정희 / 노래: 조의선 / 대금: 김대곤 / 가야금: 이서영 / 장구: 방지원 / 음원 녹음․편집: 조든든 “1998년 12월 15일 천도교에 입교한 이래, 우리 음악 어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덕송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제라 생각하면서도, 내 공부가 일천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2016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늘 염두에 두었던 작업을 시작하였다. 나의 전교인이자 은사이신 혜원당 김춘성 선생님의 환갑을 앞두고, 평생을 천도교에 헌신하며 살아오셨고, 지금도 그러하신 선생님께 가장 좋은 보답은 바로 새 천덕송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경전에서 노랫말을 발췌하고, 선율을 만들고, 반주를 붙이고, 연주자와 녹음 담당을 섭외하고, 몇 차례의 연습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해야 했다. 다행히 최고 수준의 연주자와 녹음 담당이 순조롭게 섭외되었고,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서, 선생님의 환갑 생신날, 인사동에서 뵙고 들려드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여태껏 연구한,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음악의 어법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다. 토속민요는 그 민족의 음악적 모국어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 의해 거듭거듭 불리고 다듬어지며 전해 내려온, 집단지성이 이룩한 자생적 예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대표적 종교인 천도교의 천덕송이 이처럼 민요에 바탕을 두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_ 국악작곡가/민요연구가 김정희 김정희(영등포교구) 국악작곡가이자 민요연구가 부산예술대학 음악과 졸업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전문사 졸업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박사 졸업 전(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 유튜브를 통해서 위 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y5Qg_t_DqE -
동학 사상의 본질을 문학과 신화로 탐구하다지은이: 임금복 장르: 동양사/동양문화 일반 출판사: 모시는사람들 쪽수: 352쪽 발행일: 2025년 8월 10일 동학 사상의 근원을 문학적 서사와 신화적 상상력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책이 출간됐다. 성신여대 국제교육원 대우교수로 재직 중인 임금복 교수가 집필한 『동학의 사상적 서사와 신화적 상상력』(모시는사람들 刊)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책은 동학 연구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한편, 종교와 철학, 문학, 신화가 융합된 통합적 해석을 시도해 주목받고 있다. 임 교수는 1997년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이래 동학 사상과 문학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그간 『동학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2004), 『그림으로 읽는 수운 최제우 이야기』(2014), 『수운 최제우와 함께하는 중국 탐방기』(2024)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동학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으며, 이번 책은 그러한 연구를 집대성한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세 갈래 시선으로 본 동학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동학의 사상과 세계를 해석한다. 제1부에서는 한승원의 『동학제』, 유현종의 『들불』,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 등 동학 관련 소설을 중심으로 동학 정신과 민중의 삶이 어떻게 문학 속에서 재현되는지를 살핀다. 특히 ‘개벽’과 ‘인내천’이라는 핵심 사상이 민중 서사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분석하며, 문학이 동학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장치였음을 밝힌다. 제2부는 동학 경전에 담긴 신화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요순 신화와 삼황오제 신화, 그리고 시천주의 개념 등을 토대로, 동학의 경전이 단순한 교리집이 아니라 신화적 언어와 수사학으로 구성된 서사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동학의 교리가 지닌 상징성과 그 속에 담긴 우주적 상상력을 새롭게 해석한다. 제3부에서는 『동경대전』, 『용담유사』, 『해월신사법설』, 『의암성사법설』 등에 등장하는 중국의 역사적 인물들을 집중 분석한다. 공자와 노자, 제갈량 등 다양한 중국 사상가와 정치가들이 동학의 서사 안에서 어떤 의미로 변용되고 있는지를 규명하며, 동학이 단순히 한국적 사상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문명 전체와의 대화를 통해 발전했음을 조명한다. 동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합적 연구 『동학의 사상적 서사와 신화적 상상력』은 동학을 단순한 종교 운동으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철학·문학·신화·역사·윤리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교차시킨다. 이를 통해 동학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동학 정신이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함을 입증한다. 저자는 “동학은 민중의 삶에서 태어난 사상이며, 그 안에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이 담겨 있다”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동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책은 동학을 연구하는 학자뿐 아니라 역사와 문학, 종교와 철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넓은 시야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학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뜻깊은 길잡이가 될 전망이다. -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 봉행포덕 166년 1월 12일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이 봉행되었다. 기존의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은 낙안회에서 진행하였으나, 이번 온라인 시일식부터는 천도교 청년회에서 총괄을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 온라인 어린이시일식 집례는 서울교구의 김현용 어린이가 진행하였으며 경전봉독은 서울교구 김준용 어린이가 해월신사법설 <천지부모>를 봉독하였다. 네트워크 연결이 정확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두 어린이 모두 씩씩하고 바른 목소리로 집례와 경전봉독을 해냈다. 이후 설교는 청년회의 이재선 청년회장이 앞서 낭독한 천지부모에 이어, ‘천지부모를 통해 생각하는 어린이 마음’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온라인 시일식은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봉행하였으며,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이 진행되었다. 이번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시간에는 천도교 대학생단 박현서 동덕이 <태양과 지구의 공전 모형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어린이들을 위한 태양과 지구, 달의 자전과 공전에 대한 설명에 이어, 어린이들이 직접 모형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모든 어린이들이 진중한 자세로 만들기에 참여하여, 과학 지식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온라인 어린이 시일식은 천도교 어린이들이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고,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이 천도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미래 세대로서의 역할을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 및 기사제공 천도교대학생회) -
제 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년 8월 14일 오전 11시 천도교중앙대교당 및 전국 교구에서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식을 봉행하였다.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 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하였다. 집례는 인화당 이미애 교화관장이 맡았으며 기념사-천덕송-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 등의 순서로 진행하였다. 이번 지일기념식에는 교단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여 명암 정윤택 교당관리실장과 북암 김선배 천도교유지재단 서무과장에게 공로상을 수여하였다. 기념식이 끝나고 천도교연합합창단 '샘'의 "한울세상, "아름다운 나라", 서울교구 삼경 합창단의 "임진강", "해월신사 가신 길",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빛의 자손들", "해월 최시형" 등의 문화공연이 이어져 참석한 교인 및 내외빈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편 현암 윤석산 교령은 기념사를 통해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제161주년 지일기념사 전문이다. 기념사 국내외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포덕 4년(1863) 8월 14일 해월신사님께서 천명(天命)에 따라 수운대신사님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지 161주년이 되는 지일 기념일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거룩한 신사님의 삶과 사상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새롭게 결의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 평생토록 지극한 정성으로 쉼 없이 수도(修道) 정진한 신사님은 수행자의 표상(表象)이셨습니다. “내 눈을 붙이기 전에 어찌 감히 수운대선생님의 가르치심을 잊으리오. 삼가서 조심하기를 밤낮이 없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독실한 수련의 결과 하루아침에 활연관통(豁然貫通)하니, 길을 가면 발끝이 평탄한 곳을 가리키고 집에 있으면 신(神)이 조용한데 엉겼으며, 자리에 앉으면 숨결이 고르고 편안하고, 누우면 신이 그윽한 곳에 들어 하루 종일 어리석은 듯하며 기운이 평정하고 심신이 청명하였습니다. 마침내 수운대신사님의 말씀 그대로 ‘지극히 지기와 화하여 지성 (至聖)의 경지’에 도달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가물던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절개 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 같았으며, 그 법도는 가을 서리 같 았습니다. 이에 따라 신사님을 한 번 뵈온 사람들은 모두 감복하여 입도하였으니, 이것이 이른 바 ‘성인의 덕화(德化)’입니다. 그 결과 당대에 보따리 하나 둘러메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마당 포덕이란 위업을 이룩하셨고, 후대에 ‘민중의 성자’ 소리를 듣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일하시면서 수심정기(守心正氣) 공부로 일관하신 신사님의 더 없는 수도자상에서 깊은 감명과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신사님은 어렸을 적에 성인과 같은 위대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수운대신사님을 뵙고 심법(心法)을 배운 후에는 ‘성인도 별 사람이 아니요, 누구나 다 마음으로 작정(作定)하고 독실하게 마음 공부를 하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누구나 독실하게 공부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수련에 매진하여 자아 완성하고 포덕광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중앙총부에서도 동덕 여러분의 수도 생활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수도원의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신사님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셨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머슴의 설움을 익히 알았고,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으며,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온몸으로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해월신사님은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당시 민중의 열망을 그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민중의 열망을 실현시킬 방법이 없어서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천운(天運)으로 수운대신사님이 동학을 창명하여 세상을 새롭게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흔연히 입도한 후에 천도(天道)를 터득하시면서, 모든 것을 천명에 부치고 천리(天理)에 순응하여 시운(時運)에 따라 용시용활(用時用活)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순도 후에는 35년간 고비원주(高飛遠走)하는 삶을 살아 내시면서도 전국적인 포덕 교화망을 구축하셨습니다. 또한 다양한 교조신원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비폭력적인 종교인의 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전개한 교조신원운동은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현대 시민운동의 원류’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해월신사님의 ‘때에 가장 적절하게 사신 삶’을 본받아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시대정신에 따라 적의하게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독립 유공 서훈 문제로 논쟁이 있는 듯한데, 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 규정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로 인하여 순국한 자’에 해당하는 역사적 증거가 분명히 있으므로 서훈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독립유공자로서 서훈해 주기를 오늘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앞으로 관련 단체와 적극 협력하여 서훈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해월신사님은 엄혹한 시절 경전 간행을 완수하여 대신사님의 가르침을 전승토록 하였으며, 시대에 응하여 민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교리를 재해석하고 확장한 영적 스승인 동시에 대사상가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수운대신사님의 ‘다시 개벽’ 사상을 인문개벽 사상으로 밝히시면서, 어둠 속에서 절망하는 민중과 도인들에게 희망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으셨습니다. “우리 도의 운수에 요순 공맹의 성스러운 인물이 많이 나리라”고 하셨으며, 장차 천도교가 세계 인류의 정신을 지도하고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도 국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신사님이 영적 능력으로 미래를 예지하고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실현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경천(敬天)과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삼경설 (三敬說)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경물 사상은 현대의 고질적인 병폐인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목전에 닥친 지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생태철학으로서,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생명 사상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현재 많은 석학이나 생명 평화 운동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반려동물의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을 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물 학대자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동물보호단체가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사님이 지으신 <내수도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육축 (六畜)이라도 다 아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동물권(動物權)’ 혹은 ‘생명권(生命權)’에 대한 선각자로서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사님은 여성과 어린이를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한울님 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을 늘 강조하셨고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신사님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훗날 천도교에서는 어린이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 7대 부문의 신문화 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인권 존중의 민주적인 평등사상은 우리 사회가 점점 수평 사회로 변화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사님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덕 여러분! 요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동학 공부 열풍이 불고, 경북 영양의 해월신사 은거 유허비 제막식 등 각종 동학 선양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중앙총부에서는 이러한 시운을 맞이하여 특히 올해 스승님들의 위대한 삶과 사상을 현창하고, 시급하고 중요한 교단 혁신책을 우선 시행하여 ‘교단 중흥의 원년’으로 삼고자 합니다. 동덕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력을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다 함께 교단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는 대업에 참여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사님의 출세 200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 가짐을 다시 굳건히 하고 교인 여러분의 적극적 참여도 기대합니다. 모든 동덕님께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늘 함께 하여 만사여의 하시길 심고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5(2024)년 8월 14일 천도교 교령 윤 석 산 심고 -
8월 14일, 제161주년 지일기념식 봉행포덕 165(2024)년 8월 14일(수) 제 161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이하여 기념식이 서울 중앙대교당 및 전국교구에서 일제히 봉행한다. 서울 중앙대교당에서 열리는 지일기념식은 현암 윤석산교령을 비롯하여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한다. 오전 11시 기념식은 인화당 이미애교화관장이 집례를 맡아 진행하며 ▲기념사 ▲천덕송 ▲해월신사법설_守心正氣(수심정기)▲해월신사 약력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또한 기념식에 이어서 천도교연합합창단 [샘], 서울교구합창단 [삼경],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역사음악합창단]의 문화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은 해월신사(海月神師, 최시형)께서 천도교 제1세 교조(敎祖)이신 수운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천도교 제2세 교조가 되신지 1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지일기념일을 앞두고 "기쁜 날을 맞아 다함께 신사의 삶과 수행에서 길어 올린 귀한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 체행하고, 이웃에게 실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한울세상을 이루어 내길 심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천도교의 5대 기념일은 다음과 같다. 천일기념일 : 매년 4월 5일 수운대신사께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인 천도를 받아 동학을 창명한 날을 기념함 지일기념일 : 매년 8월 14일 해월신사께서 수운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인일기념일 : 매년 12월 24일 의암성사께서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도일기념일 : 매년 1월 18일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날을 기념함 현도기념일 : 매년 12월 1일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세상에 선포한 날을 기념함 -
수운 대신사 탄신 200주년, 스승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려야지난 5월 임시전국대의원대회를 거쳐 교령에 선출되신 지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취임식 이후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신데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교령이 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한 반년 이상 지난 것 같아요. 현재 우리 교단이 당면한 문제들이 대단히 많잖아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우리 어렸을 때는 어머니들이 스웨터를 직접 집에서 짜서 입혔거든. 근데 그 실타래가 엉키면 실마리를 찾아 풀어야 풀리는데, 중간에 막 잡아당기면 더 엉켜서 풀지를 못해요. 근데 오늘날 우리 천도교는 그렇게 실타래가 엉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이를 풀어가느냐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취임이후 그런 걸 찾아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욕심부리지 말고 한 발 한 발 가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전임 교령의 잔여임기를 맡아서 교령 직을 수행하게 되셨는데, 취임사에서 임기가 짧은 만큼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수운 대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는데요, 교령님께서는 경전을 알기 쉽게 풀어쓰고 가르침을 펼치고자 하신다고 하셨지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연구하고 풀어쓰는 일은 내가 상주 선도사 할 때부터 많은 분들과 같이 만들어왔던 과정들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 교인들 중에 이 작업들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고 나까지 다섯 명인데, 그분들과 한 달에 두 번씩 모여서 한 구절, 한 구절 번역하는 일을 해왔지요. 그 2년의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과정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용담유사 연구』나 『주해 동경대전』을 펴내시기도 하셨지요. 굉장히 오랫동안 교령님께서 해오신 경전에 대한 해석과 번역 작업은 어떻게 보면 선생님께서 수행해오신 과업이었던 거잖아요. 올해 대신사님 탄신 200주년에 큰 결실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동경대전이나 용담유사를 번역하는 과정은 200주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성경을 보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200년 동안 계속 번역이 되어 왔어요. 처음부터 100% 완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200년 동안 해온 일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경전도 계속 번역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동경대전이 한글로 번역이 된 게 1956년이에요. 한국전쟁 이후 협정이 끝나자마자 우리 중앙정부에서 만들었어요. 그 이후 번역을 한 번도 새롭게 시도해 보지 못했어요. 70년 동안 그대로인 거야. 세월은 이렇게 흘렀는데.. 시대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우리 경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 경전에 대한 어려움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참 안타까우셨겠어요 그렇죠. 제가 경전 연구를 하면서 이건 좀 심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일반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경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령님께서는 우리 경전을 가로쓰기로 재편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경전 번역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접근하기 쉽고 읽기 쉬운 가로경전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예를 들어 신성사법설에서 하늘 천(天)자를 써놨는데 ‘한울님’이라고 번역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하늘’이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고 ‘한울’이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근데 한결같이 ‘한울’이라고 번역을 해 놓았더군요. 또 ‘해월신사법설’을 강의하다 보니까 너무 중요한 부분들이 많은데 거기에 대한 해명이 없어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경대전, 용담유사에 이은 스승님의 말씀들을 지금부터라도 위원회를 조직해서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조금 먼 이야기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교령님께서 돌아보셨을 때, 어린시절이나 청년기에도 천도교를 하셨잖아요. 그때는 교세가 어땠나요? 지금보다는 컸지만 그때도 열악했어요. 내가 젊을 때는 전국에 청년회 조직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청년의 조직이 없어요. 청년회장이 전국을 다니면서 순회하고 지방의 청년들을 만나서 그리고 청년들끼리 모여서 축구 시합도 하고 용담에서 모여서 수련하고 그랬죠. 지금은 그 청년들이 전부 나 같은 할아버지가 돼버렸지. 청년시절의 교령님께서 수련하시면서 천도교의 깊은 마음으로 들어가셨을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교령님의 청년기에는 어떤 부분에서 천도교 신앙에 매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 수도원에 가서 수련을 하면서 경전연구를 주로 했지요. 수련과 경전공부를 함께 하며 천도교가 우리 인간이 현상 속에서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어렴풋이 깨닫고, 수련을 하다 보니까 그런 매력이 생기는 거죠. 내가 이 현실에서 가보지 못하는 세계에 갈 수 있는 것, 그 길이 천도교에 있다고 믿었고 그 세계로 가고 싶었던 거예요. 수련을 하시면서 품었던 마음들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교령님의 마음에 와 닿았던 스승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런 마음들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과 화합하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죠. 내가 다른 분한테 베풀 수 있는 게 있으면 베풀고요. 그리고 갈등을 종식시키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삶, 지금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사는 세상, 서로 돕는 데서 값진 행복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월신사 법설에 ‘부화부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끼리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조화를 이뤄 가정을 행복하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천도교의 미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균형과 조화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균형을 잘 잡아서 그걸 통해서 조화를 이루는 거죠. 균형이 안 되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잖아요. 균형이 깨지면 위기가 와요.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을 내 안에 모시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울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한울’은 우리 천도 용어로서 우주예요. 근데 이것을 ‘한울’이라고 할 때는 생명 마음이 없는 겁니다. 생명이라는 마음이 그 안에 없어요. 논학문에 보면 ‘허령이 창창’하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허령’이 바로 마음이에요. 근데 이 우주인 ‘한울’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울님’이 되는 거예요. 우주만 얘기할 때는 ‘한울’이겠지만 여기에 생명력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한울님’이 되는 것입니다. 성사님 법설을 보면은 마음에 관한 것들이 나오는데, 마음이라는 게 참 기가 막히게 신령(神靈)스러운 거예요. 우리 마음에 신령스러움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허령(虛靈)이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그것을 우주인 한울이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한울님이되는 거에요. 이 우주를 살아있는 생명으로 보는 거지요. 천도교 교세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천도교가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야 할까요? 천도교가 왜 존재합니까? 우리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공부해서 세상에 펼치려고 하는 건데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펼칩니까? 그러니까 교세가 늘어나려야 늘어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우리 천도교는 이런 겁니다, 라고 밝힌 게 없어요. 그런 걸 위해서라도 경전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펼치는 것, 그리고 지금은 책만 가지고는 안 되는 시대예요. 인터넷 방송국 같은 걸 만들어서 정제된 것, 핵심을 뽑아서 천도교를 세상에 알리는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천도교가 과거에 동학혁명과 3.1운동을 일으켰다고 하는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역사인데 우리가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은 천도교의 어떤 가르침이 목숨을 희생해가면서 동학혁명으로, 3.1운동으로 표출되었는가를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스승님들이 그냥 주문을 준 게 아니에요. 이 주문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동학군들이 깨달았기 때문에 하는 거지.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이 그 안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아주 훌륭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이 천도교인이야. 나도 천도교 한번 하고 싶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교령님께서 생각하시는 지금 우리가 천도교를 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한다는 뜻입니다. 실천으로서 종교 신앙을 해나간다는 것이지요. 말로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천도교인은 믿는다가 아니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실천한다는 뜻이니까. 교령님께서는 동학 천도교 연구자로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천도교는 다른 종단과 달리 교육기관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많은 연구자들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교육은 현 종학대학원을 어떻게 활용해서 잘 키우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저도 대학에 오래 있었지만, 지금은 교육기관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끝으로 천도교가 나아갈 길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도교 신앙을 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의 삶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우리 천도교인의 의무이고 신앙을 세상으로 펼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교인분들께는 개개인이 먼저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천도교인이라는 자각 하에 남을 대할 때도 천도교인이 이러면 안 되지, 그렇잖아요. 욕을 하려고 그러다가 천도교인이 욕을 하면 안 돼. 이웃하고도 잘 지내야지. 스스로 천도교인이라는 것을 늘 의식하고 천도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우리가 포덕이 됩니다. 천도교인답게 스스로 천도교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천도교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산 신임 교령은 한양대 명예교수이며, 사회경력으로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 학장, 한양대학교도서관장, (사)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을 역임 하셨으며, 천도교회 경력으로는 천도교 서울교구장, 천도교 교수회 회장, 천도교연구소 소장,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천도교중앙총부 현기사 상주선도사, 천도교중앙총부 교서편찬위원장을 하는 등 교단 안팎의 소임을 두루 역임했다. 인터뷰를 통해 천도교의 진리가 무엇이며 이 진리는 어떻게 이웃과 함께 서로 돕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로 향하였다.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가고 있다. 마음 속 한울님께서 환히 길을 비추어 주셨다. -
삼천포교구 제8회 경전암송대회천도교 삼천포교구(교구장 전암 최외수)에서는 올해로 제8회 경전암송대회를 개최하였다. 8회째를 맞이하는 경전암송대회는 신앙심 회복과 타성에 젖지 않고 본인 스스로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올 초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였다. 제126주년 인일기념식 및 시일식 봉행후 스승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생각으로 암송대회를 시작하였다. 유소년들을 비롯하여 10명의 동덕님들이 경전을 비롯하여, 해월신사법설과 의암성사법설, 천덕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스승님의 말씀을 표현하였다. 교화부장(욱암 장순욱)의 집례로, 교구장(전암 최외수)의 인사말에서 스승님의 말씀을 공부한다는 자세로 임하는 동덕들의 수고를 격려하였다. 먼저 최원준 유소년의 사계명 제창을 시작으로 최문승 유소년의 법문 암기, 이진욱 유소년의 천어를 각각 또박또박 막힘없이 암송하였으며, 송암 최봉수 도정은 동덕들의 열기에 조금이나마 보태고자 탄 도유심급을 원문으로 암송하였다. 교화부장(욱암 장순욱)은 용담가를 거침없이 암송하였으며, 여성회에서는 성혜당(백한나) 동덕이 이심치심을, 선우당 김명숙 동덕은 법문을 원문과 해석문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암송하였다. 경리부장(자암 김대균)은 탄 도유심급 해석문을 암송하였으며, 감사장(경암 최희수)은 농사짖는 틈틈이 권학가를 묵직한 목소리로 완벽하게 암송하였으며, 이어 하모니카 연주로 “샘”을 신명나게 연주하여 동덕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암송대회가 끝나고 교구에서 준비한 소정을 선물을 나누며, 좀 더 많은 교인이 참여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올해 경전암송대회를 무사히 마쳤다. 또한 여성회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도담을 나누며 행복한 분위기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또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거듭 나기를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