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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천도교방송, 어린이날 맞아 소파 방정환 선생 조명하는 특집 영상 공개천도교는 어린이날을 맞아 유튜브 천도교방송을 통해 소파 방정환 선생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특집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영상은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교인으로서 어린이 운동에 헌신하게 된 배경과 그 정신적 뿌리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영상은 방정환 선생이 실천한 천도교의 종지(宗旨)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모든 어린이를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 바라보았는지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사상은 조선시대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인간 평등과 약자 보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인권 사상이었다. 영상에서는 또한, 1920년대 이전까지 ‘어린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도 소개된다. 당시 어린이들은 ‘애기’, ‘애새끼’, ‘계집애’ 등 비하적 언어로 불리며 어른의 축소판으로만 여겨졌고, 매우 어린 나이부터 노동에 내몰리곤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소년회의 실무자로 활동하며, ‘어린이’라는 말을 창안하고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또,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을 발표하며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하늘을 모신 존귀한 존재로 대할 것을 사회에 천명했다. 이는 단순한 보호의 수준을 넘어선, 어린이를 위한 '개벽'의 실천이었다. 천도교 관계자는 “이번 영상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어린이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천도교의 시천주와 개벽 사상이 어떻게 어린이 운동으로 구현되었는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영상은 천도교방송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천도교동두천교구,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개관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아동문화운동을 이끈 소파 방정환 선생의 뜻을 기리는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난 5월 22일 오후 2시, 동두천 지역에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은 천도교동두천교구 주최, 천도교중앙총부 후원으로 성대하게 개최되었으며, 지역사회와 천도교 관계자, 시민들이 대거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청수봉전, 심고, 참석자 소개, 인사말, 축사, 폐식 순으로 이어졌으며, 2부에서는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바리톤 강신택, 소프라노 남상임, 테너 이정현, 피아니스트 양해나 등이 참여해 <산촌>, <눈>, <가고파>, <뱃노래>, <꽃구름속에>, <거문고 뱃노래>, <사랑가(오페라 춘향전 중)> 등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축사를 맡은 준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은 “작은 도서관 운동의 뿌리를 찾아보면 천도교와 닿아있다”며,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도로 창설된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고, 1922년에는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령은 이어 “색동회 창립, 아동 예술 강습회 개최, 기관지 『어린이』 창간 등 천도교는 아동문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며, “오늘 개관한 소파 방정환 색동도서관은 역사적, 종교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곳이 동두천 지역의 어린이 문화 활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정환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관장은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망과 꿈을 전하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셨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다양한 멀티미디어 교육 콘텐츠도 개발해 동두천이 미래 청소년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기업들과 함께 청소년들이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어린이 인권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천도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향후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어린이 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교령사 -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 독립기념관 독립운동 사적지 됐다독립기념관(관장 김형석)은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소년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소년회사무소 터를 5월의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로 선정하였다고 8일 밝혔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 조선의 민족정신을 지키고 계몽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꾸던 세력 중 하나로 천도교가 있었다. 특히 천도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년운동을 주도하며,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족 교육과 민족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천도교, 일제강점기 소년운동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 소년운동의 배경 천도교는 동학에서 출발한 민족 종교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천도교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여기며 교육을 통한 계몽을 중시하게 된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 속에서도 민족의식을 고취할 필요성을 절감한 천도교는 소년운동을 통해 미래 세대를 양성하고자 했다. 소년운동의 전개 천도교는 1920년대 초반부터 소년운동을 본격화했다. 1922년 창간된 『어린이』는 천도교 소년회가 발행한 것으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자주성을 심어주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또한 천도교는 각지에 소년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날 제정을 주도하며, 청소년 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천도교 소년회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민족 역사와 문화, 도덕적 가치관을 교육했다. 특히 놀이와 학습을 결합한 방식으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자연스럽게 민족 의식을 심어주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4월 17일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같은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다시 정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의 효시라 할 ‘소년운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103회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일제의 탄압과 천도교의 저항 천도교의 소년운동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자주성을 강조하는 활동은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었고, 『어린이』 잡지도 검열과 폐간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천도교는 이를 통해 더더욱 민족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년운동을 지속했다.천도교소년회 사무소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중앙종리원에 있었다. 중앙종리원은 천도교의 사무소로 천도교청년당을 비롯해 천도교소년회ㆍ학생회ㆍ사월회ㆍ내수단ㆍ조선농민사 등 천도교 사회운동 단체의 본부와 개벽사가 입주해 있었다. 중앙종리원은 1969년 우이동으로 이전하였고 현재 수운회관이 들어서 있다. 한편,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들고, 이듬해인 19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선언’을 주도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옹호,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현파 박래홍 등의 천도교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천도교청년회 산하단체다.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의 사위로서 천도교청년회에서 교역자로 활동하며, 천도교 소년회와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날을 제정, 천도교의 인내천 정신을 어린이 사랑의 실천으로 사회에 구현했다. 2025년 5월 국내 독립운동사적지의 자세한 내용은 국내 독립운동ㆍ국가수호 사적지 홈페이지(sajeok.i815.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독립기념관 -
제 104회 어린이날 행사,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올해는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날을 만든지 104년째 되는 해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들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옹호,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현파 박래홍 등의 천도교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천도교청년회 산하단체다. 당초 천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년부를 설치했었는데, 소년부의 부원이 늘어나자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됐다. 이후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운동회와 동화회, 토론회, 등산회 전람회 등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창립 1주년을 맞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첫 어린이날 행사는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기념식, 선전지 배포, 시가행진, 축하회로 진행됐으며 이는 이후 어린이날 행사의 기본틀이 됐다. 특히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4월 17일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같은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다시 정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의 효시라 할 ‘소년운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103회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이 같은 인식은 천도교의 종지인 ‘시천주’와 ‘개벽’ 사상에서 비롯됐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라는 시천주 사상은 시대를 앞서는 근대적 만민평등사상이기에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약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철폐하고 세상을 개벽하고자 했다. 어린이날 탄생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낱말이 없었고 '애기,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사내아이, 계집애' 등으로 불렸다. 대개의 어린이들은 그저 '어른의 축소판'으로만 취급받으면서 아주 어릴 때 최소한의 돌봄만 받은 후, 곧바로 농사일을 하러 나가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다. 천도교소년회(당시 방정환은 천도교소년회의 실무자였다)는 ‘어린이’란 말 자체를 만들고, 어린이를 위한 잡지 《어린이》 를 만들고, 또한 ‘어린이 인권선언’을 하며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어린이를 대할 것을 천명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어린이를 위한 개벽이었다. 올해 천도교는 2025년 어린이날 기념 행사를 오는 5월 4일(일요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개최한다. 100여년전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기념 행사를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준비된 이번 행사는 어린이 시일식(11:00~11:30)과 장기자랑(11:30~12:00)무대, 놀이기구와 체험부스(13:00~15:30)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당일 행사에 오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푸짐한 선물이 제공될 예정이며 어린이들의 끼와 재능을 뽐낼 수 있는 ‘어린이 뽐내기’ 장기자랑 무대도 마련된다. 한편 이날 행사가 열리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어린이날 행사의 일원으로 잡지 《어린이》 원본 전시회도 마련된다. 이번 전시는 5월 4일부터 5월 11일까지 열리며 《어린이》 잡지 원본 총 31점이 전시된다. 방정환어린이도서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고 , 자료를 준비하며 《어린이》 에 실린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 악보를 발견하고 큰 감동을 느꼈다. 방정환 선생님의 숨결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듯 하였다"고 밝혔다. 방정환어린이도서관의 이번 전시회는 천도교중앙대교당 2층에서 5월 11일까지 매일 10시~15시까지 운영된다. 천도교청년회는 “어린이 시일식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장기자랑 무대를 통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천도교청년회는 어린이들의 밝고 건강한 성장을 응원하며, 어린이날을 맞아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들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
독립만세운동을 가장행렬로 재현하다사단법인 동학소년회는 지난 10월 12일(토) 진주성 및 진주시내 일원에서 열린 제 17회 전국 가장행렬 경진대회에 참가하였다. 진주는 소년운동의 발상지이다. 1920년 진주소년들 스스로 제2의 독립만세를 꿈꾸며 강영호 선생을 비롯한 소년들이 독립만세운동을 도모하였고, 이로 인해 재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진주소년들의 나라사랑과 독립에 대한 의지는 오늘날 대한민국 소년들에게 역사적으로 큰 교훈이 되고 있다. 동학소년회는 이날 제17회 전국 가장행렬 경진대회에서 어린이, 청소년 30여 명과 성인 20여 명이 참가하여 진주 소년들의 독립만세와 재판을 받는 과정을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하였다. 또 퍼포먼스에는 방정환 선생과 강영호 선생의 역할로 분하여 등장하게 함으로써 진주소년회와 전국 천도교소년회 활동이 함께였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사단법인 동학소년회는 무지개 소년단과 학부모, 자연봉사자, 천도교진주교구 교인 등 50여 명이 함께 첫 참가이자 첫 번째 등장으로 진주시민들에게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단법인 진주소년회는 6년째 일제강점기 진주소년회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
천도교 진주시교구 교당이전 봉고식 개최천도교 진주시교구(교구장 정의적)는 9월 30일 11시 교구 이전 봉고식 및 시일식을 봉행하였다. 진주시 도동로 14 상가건물 2층 새 교당 성화실에서 봉행된 교당 이전 봉고식은 중앙총부 성암 정갑선 교무관장의 집례로 국민의례, 청수봉전, 심고, 주문3회, 경전봉독, 봉고문낭독(진주시교구 감사 도암 박완주), 공로패 수여(교령상, 도암 박완주, 호암 김치수, 옥선당 서경옥), 천덕송, 식사(교구장 정의적), 축사(김산 연원회부의장, 최봉수 순원포 도정, 정덕재 남진포 도정, 주선원 동학혁명유족회장), 설교(이범창 종무원장), 천덕송, 심고, 폐식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시일·봉고식은 진주, 사천, 삼천포, 마산, 고성, 통영 등 인근 6개 교구 합동으로 열렸다. 약 100여 명의 교인 및 하객이 참석하여 성화실을 가득 채웠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진주시교구는 포덕 47(1906)년 전국 72개 대교구 설립 시 설립되어 그해 12월에 23개 대교구로 통합되면서 영남지방에는 유일한 대교구가 되었다. 포덕 60(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손병희 의암성사의 지시로 교구에 비치해 두었던 등사기로 독립선언서를 등사 배포하고 각 군과 면의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 8월 미래의 희망인 소년들에게 민족계몽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진주천도교소년회를 조직했다. 1923년 4월에 백정의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형평운동을 하기위하여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의 주도로 진주형평사를 설립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종교 활동금지로 대교구운영이 사실상 중단되어 8·15광복 다음 해인 포덕 87(1946)년 진주대교구 교당을 매각하고 진양군 속사리에 밭 470평을 매입했다. 이때부터 교구명칭이 진양전교실로 바뀌어졌고 진양교구의 출발이다. 포덕 119(1978)년 8월에 진주시교구 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인암 박춘기로 발족되어 포덕 122(1981)년 1월 진주시교구가 인준되어 정상적인 교구운영을 시작하였다. 교인들의 정성과 궁을촌 된장(간장) 제조 판매 사업과 천도교중앙총부, 천도교유지재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43년 만에 자가 교구 건물을 마련하였다. 정의적 진주시교구장은 봉고식을 마치고 "모시고 공경합니다. 전국 교구장님들의 염원과 후원, 격려로 성황리에 교당 입당봉고식을 잘 마쳤습니다. 진주시교구는 진주대교구 118년의 선배, 선열들께서 이루어놓으신 업적과 정신을 이어받아서 포덕천하의 대업을 달성토록 성력을 다하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익산 어양초등학교, 동학혁명기념관 현장학습익산 어양초등학교 4학년 1~5반 125명은 5월 29일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동학혁명기념관을 방문했다. 어양초등학교 4학년은 각 반별 25명씩 차례로 기념관을 방문하여 현장학습을 체험했다. 이날 현장학습에 참가한 학생들은 동학혁명기념전시관 안내에 따라 관람했으며, 전시관은 1~5실로 구성되어있다. 어양초등학교 4학년 현장학습단은 특히 기념전시관 3실에 전시되어있는 소파 방전환 선생의 어린이날 창립과 어린이 잡지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운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9년 3.1독립운동으로 천도교 지도부가 대부분 투옥되어 교단붕괴의 상황에 처하자 동학·천도교 제3세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셋째사위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1921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를 창립한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맞아 어린이날을 제정하고(추후 어린이날 5월 5일로 변경) 어린이 인권운동을 세계 최초로 시작하였다. ‘어린이’지는 1923년 3월 1일 초대 편집인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창간한 아동문학잡지이다. 천도교 ‘개벽사’에서 창간한 어린이 잡지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고, 수많은 아동문학가를 배출하였다. 이 어린이지를 통해 ‘어린이’라는 말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보편화 되었다. 훗날 방정환 선생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지 출간, 어린이 운동 등은 겉으로는 어린이 인권운동이지만 속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 정신을 심어주려 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아래는 동학혁명기념관 1~5실 관람안내이다. (사진 및 기사 제공-동학혁명기념관) -
제 103회 어린이날 행사,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천도교중앙총부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올해로 103번째 어린이날 행사를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개최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는 매년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최해왔으며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슬로건으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개최하는 어린이날 행사이다.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 운동을 주도했던 천도교에서 103회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성대하게 열었으며,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어린이날 시일식에는 특별히 어린이가 직접 집례와 경전봉독을 맡아 진행하였으며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의 설교, 주용덕 교령대행의 축사가 이어졌다. 집례를 맡은 정연서 어린이는 “할머니를 따라 이곳에 와봤는데 직접 집례를 해보니까 재미있고 또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천도교중앙대교당 너무 멋져요. 방정환선생님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아저씨 같아요. 친구들 만나서 같이 체험놀이 하니까 너무 신나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주용덕 교령대행은 축사를 통해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됐습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사용했으며,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22년, 천도교소년회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한 후 1923년 5월 1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라고 밝히며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은 설교를 통해 “어린이날은 미래의 주인이 온전한 한울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이 함께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존대하고 한울님처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는 조이결, 장채원 어린이가 ‘어린이선언문’을 낭독하였다. 2부 축하공연은 김교영 어린이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역사어린이합창단, 역사청소년합창단의 연합공연으로 ‘형제별, ’잘 가거라 열 다섯 살아‘ ’늙은 잠자리‘, ’눈오는 새벽‘, ’산길‘, ’귀뚜라미‘ 등 방정환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들과 함께 했다. 이어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 노래‘ 등을 불러 어린이날의 의미를 더했다. 역사어린이청소년합창단은 역사음악연구소 산하의 합창단이며 2003년에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맞아 40여 명의 역사어린이청소년합창단이 공연에 함께하였으며, 박용진 역사음악연구소장은 “의미있는 행사에 어린이들과 공연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노랫말에 곡을 붙여 함께하게 되어 어린이들도 참 신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부 사회를 맡은 김교영 어린이는 "작년에 이곳에서 믿음상을 받았어요. 오늘 2부 사회자로 이자리에 서게 되어 기쁩니다. 어린이날은 늘 신나는 날인데 오늘은 사회자의 역할도 하게 되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는 천도교대학생단 및 봉사자들도 함께했다. 인형만들기, 팔찌염주만들기, 모형 대교당 만들기, 비누방울놀이 등의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천도교대교당에 왔던 박대현 동덕은 어린이날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어릴 때는 많은 어린이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는데 어른이 되어 함께하고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청년이 되어 이 자리에 왔는데 동생들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날은 일제하에서 소년운동을 벌이던 ‘천도교소년회’를 중심으로 제정이 이뤄졌다.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 3세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의 사위로 독립운동가이자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 아동문학가로 어린이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한편 제2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는 103년 전 어린이날을 만들고 102년전 첫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했던 역사와 천도교 교리에 따라 사회적 실천으로서 행한 어린이운동을 계승해가고 있다. 아래는 주용덕 교령대행의 축사 전문이다. 모시고 공경합니다. 오늘은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103회째 맞는 어린이날 이자, ‘제2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은 전국의 천도교 어린이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비가 와서 마음이 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린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맑고 고운 눈빛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우리 어린 한울님…! 오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보내기를 바랍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제정됐습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아동 문학가이신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처음 사용했으며,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22년, 천도교 소년회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한 후 1923년 5월 1일 천도교 교당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어린이날을 제정하게 된 배경은 해월 최시형 신사께서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라.”라고 한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린이 헌장에도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날은 모든 국민과 부모들이 언제나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린이가 행복하고 즐겁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우리의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하루 마음껏 즐기며, 꿈과 희망이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심고 합니다. 다시 한번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
천도교 선포일 기준 어린이날 103회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천도교중앙총부(이하 천도교)는 5월 5일(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어린이날 행사인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개최한다. 올해는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인권선언을 한지 101년째 되는 해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들고, 이듬해인 19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선언’을 주도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어린이의 인격옹호, 정서 함양, 건전한 사회성 함양을 목적으로 소춘 김기전, 소파 방정환, 현파 박래홍 등의 천도교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천도교청년회 산하단체다. 당초 천도교는 어린이들을 위한 소년부를 설치했었는데, 소년부의 부원이 늘어나자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됐다. 그동안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들을 위한 운동회와 동화회, 토론회, 등산회 전람회 등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왔다. 창립 1주년을 맞은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첫 어린이날 행사는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기념식, 선전지 배포, 시가행진, 축하회로 진행됐으며 이는 이후 어린이날 행사의 기본틀이 됐다. 또한 어린이를 위해 잡지 ‘어린이’도 창간했다. 동화와 동시, 민담, 소설, 생활 상식, 특집 기사, 퀴즈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아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1925년경에는 3만부의 판매 부수를 자랑할 정도였다. 잡지 ‘어린이’는 일제 강점기 최장수 어린이 잡지로 어린이운동을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4월 17일 불교소년회, 조선소년군 등 소년운동단체와 연대하기 위해 조선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고 같은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다시 정했다. 그리고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된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의 효시라 할 ‘소년운동 선언문’이 발표됐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이 같은 인식은 천도교의 종지인 ‘시천주’와 ‘개벽’ 사상에서 비롯됐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라는 시천주 사상은 시대를 앞서는 근대적 만민평등사상이기에 조선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남녀차별에 반대하며, 세상을 개벽하고자 했다. 이것이 억압하는 이들에 맞서 동학혁명을 일으키고, 3.1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이 됐으며, 천도교는 믿기만 하는 종교가 아니라 행하는 종교인 만큼 1920년대에 농민, 노동, 학생, 상민, 청년, 소년, 여성의 7개 부문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102주년, 어린이인권선언 101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어린이날 축하행사인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는 소파 방정환 선생과 천도교소년회 활동가들의 어린이인권선언에 깃든 만민평등과 인권존중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5월 5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이날 행사는 어린이날 기념식과 특별체험부스를 운영하며 어린이날 선물을 증정한다. 천도교중앙총부는 “1920년대 천도교가 소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전국적인 어린이 운동을 전개해 나간 것처럼 어린이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행사를 앞두고 기념식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체험부스에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년운동 선언문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예우를 허라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한편, 어린이날 다음 날인 5월 6일 오후 2시부터는 천도교중앙총부가 주최하고 투데이스타, 한국음반산업협회, 엔터원에서 후원하는 <방정환동요제>가 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된다. 올해 시범적으로 개최되는 방정환동요제는 동요보다 트롯에 물들어가는 어린 동심을 회복하는 여정의 시작이며, 향후 교단 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
오늘의 역사-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천도교소년회는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포하고 첫 어린이날 행사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크게 열었다. 이에 1년 앞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2년 5월 1일을 기억하자. 102주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오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날을 선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19년 3·1혁명 당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받고 1주일만에 석방된 방정환 선생은 1920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동경 도요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선생은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1921년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한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한다. 소춘 김기전 선생은 1921년 4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를 특설해 5월에는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고 총재를 역임하며 박내홍, 방정환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 어린이날 제정,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옛 기사로 보는 오늘 1922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이 제정된 날이다. 이날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1년 5월 1일 창립된 천도교소년회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천도교 청년들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하였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십년 후 조선을 여하라 조선 소년 운동의 시작으로 금일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는 소용이 없고 그들에게는 오직 장래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조선사람은 과거와 현재에 무엇을 가졌는가. 설령 지난 일과 당장 눈앞의 일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 우리는 다만 내일과 내년의 화려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따라서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도 장래를 위하여 사는 것이오, 장래가 곧 우리가 춤출 때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믿는 바이다. 한 나라 한 사회나 한 집안의 장래를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곧 그 집안이나 그 사회나 그 나라의 아들과 손자일 것이다. 장래에 희망을 두고 어린이에게 장래를 맡기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찌 어린이의 일을 등한시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살림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는 과연 아들과 손자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옛날 일은 지나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수년 동안 우리의 학부형은 그 자손을 위하여 이전에는 없던 애를 써왔다. 다시 말하면 그 자제를 가르치기에 열심히 하며 여러 가지로 자손을 인도하는 데 노력한 것은 근래의 교육열과 향학열이 증명하는 바다. 이는 실로 경하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학부형 가운데에는 배우고자 하는 자식을 막아서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드는 완고한 일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을 볼 때 뜻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한숨을 쉬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오. 이에 자극을 받은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를 위한 부모의 도움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을 기회로 삼아 ‘어린이의 날’이라고 이름하고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라고 쓴 네 가지의 인쇄물을 시내에 배포하며 소년회원이 거리마다 늘어서서 취지를 선전했다. 이러한 일은 조선 소년 운동의 처음이라 할 수 있으며,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 응원하여 “조선사람의 10년 후의 일”을 위하여 노력하기를 바란다. 『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 「10년 후 조선을 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