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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 손봉조의 집남원 은적암에서 돌아온 이후 대신사는 각 처로 다니며 가르침을 폈다. 이러한 결과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나고, 또 그 지역도 넓어져 다만 경상도 일원만이 아니라 충청도에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인원을 보다 조직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접(接)’을 조직하는 것이다. 본래 접이라는 이름은 유생들이 쓰던 용어이다. 그러나 대신사께서 만든 접은 이와는 다르다. 흥해 매곡동(현재는 매산리) 손봉조의 집에서 행한 접주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포항시 흥해 손봉조의 집은 매우 중요하다. 동학 교도가 늘어나자 대신사는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도하기 위하여 접(接)을 구성하였다. 그래서 각 처의 지도자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여 접주를 정해 주었다. 이때가 임술년(1862년) 12월 말이다. 본래 ‘접(接)’이라는 용어는 우리 전통 사회에서 쓰던 말이다. ‘접’은 예전에 글방 학생이나 과거를 보는 유생의 동아리를 이르던 말이었다. 또 보부상(褓負商)의 동아리를 이르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신사께서 구성한 ‘접’은 이러한 개념과는 다르다. 접은 철저한 속인제(屬人制)에 의한 구성이다. 내가 한 사람을 포덕하면, 그 사람은 나의 접이 된다. 일컫는바 점조직과도 매우 유사하다. 한 사람이 잡혀도 그 사람을 포덕한 사람만 알 뿐, 그다음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경주 본부의 접주로 임명된 이내겸(李乃謙)은 본래 영천(永川) 사람이다. 그러나 이렇듯 경주 본부의 접주로 임명이 된 것은 동학이 본래 속지제(屬地制)를 따르지 않고 속인제(屬人制)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전도자(傳道者)와 도를 받는 사람 사이에 인적 유대를 중요시 여긴 까닭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도의 전수(傳受)는 ‘정신의 전수’라는 면이 강조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접 제도는 오늘까지 천도교에서 연원제(淵源制)로 전승되고 있다. 대신사는 이러한 접 조직을 통하여 갑자기 늘어난 동학 도인들을 조직하고 관리하였다. 그래서 손봉조라는 제자의 집에서 각처의 지도자들을 오게 하여 각 접의 접주(接主)를 정해 주었던 것이다. 각 접주가 마치 지역별로 정해진 듯하지만, 옛날에는 지금과 같이 이사를 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서 죽을 때까지 몇 대를 이어가며 살았다. 그래서 비록 속인제이지만, 속지제와 같이 지역을 중심으로 접주를 정해 준 것이다. 접주를 정해 준 뒤에 새해인 계해년(1863년) 1월 1일 아침 대신사는 이에 대한 시를 쓴다. 訣 問道今日何所知 意在新元癸亥年 成功幾時又作時 莫爲恨晩其爲然 時有其時恨奈何 新朝唱韻待好風 去歲西北靈友尋 後知吾家此日期 春來消息應有知 地上神仙聞爲近 此日此時靈友會 大道其中不知心 도를 묻는 오늘, 아는 바가 무엇인가. 뜻은 새해 계해년에 있도다. 공을 이룬 것이 언제인데, 또 때를 만나겠는가. 늦는다고 한하지 마라. 그렇게 되는 것을. 때는 그 때가 있나니, 한탄한들 무엇 하리. 새해 새 아침에 운을 불러 좋은 때를 기다린다. 지난 해 서쪽, 북쪽에서 좋은 벗들이 찾아옴이여, 훗날 알리라. 우리의 이 집에서의 그날 그 기약을. 봄이 오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응하여 알 수 있으니, 지상신선의 소식 가까워지네. 이날 이때 신령한 벗들의 모임이여,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그 가운데 자리한 대도(大道)여. - 『동경대전』 “지난해 서쪽, 북쪽에서 좋은 벗들이 찾아옴이여, 훗날 알리라. 우리의 이 집에서의 그날 그 기약을 [去歲西北靈友尋 後知吾家此日期]”이라는 이 구절이 바로 흥해 손봉조의 집에서 접주를 정한 사실이다. 지난해는 접주제를 행한 임술년(1862년)이다. 그해 말에 서쪽 북쪽에서 온 영우(靈友)들이란 다름 아닌 접주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접주제는 훗날 동학혁명을 보다 조직적으로 이끈 중요한 바탕이 된다. 손봉조가 살았다는 흥해 매산리의 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훗날 지은 집이 서 있다. 손봉조의 집 앞으로는 제법 큰 개천이 흐르고, 그 개천 건너편에는 마을 사람들이 쉬고 노는 정자와 당수나무인 팽나무가 서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인 이곳에는 그간 표지판 하나 없었다. 다행히도 필자가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동학역사문화선양회와 (사)동대해문화연구소가 2022년 11월 18일, 팽나무 부근에 ‘최초 동학 조직 안내 표지판’을 설치했다. 또한 포항시에서도 동학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발굴하고 이곳을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시설로 홍보하는 것과 동시에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장소로 개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 다음 회 예고 : 대구 감영과 관덕당 편이 이어집니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
포항시의회 최광열 시의원 시정질문, 포항시장 “해월기념관 건립 추진하겠다”포항시의회 최광열 시의원은 제325회 임시회 시정질문을 통해 2027년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포항시의 기념사업 추진 의지를 확인했다. 최 의원은 “해월 선생은 평등과 생명 존중의 사상을 정립한 인물”이라며 “포항은 신광 일대에 해월 선생 유허지를 비롯한 역사적 흔적이 많음에도 기념관 건립 등 사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광면 환경학교 부지를 기념관 후보지로 포함해 타당성 조사를 재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이강덕 포항시장은 “해월 선생의 사상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2027년 200주년을 맞아 기념관 건립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환경학교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조속히 용역을 재추진하고, 추경 예산을 통해 속도감 있게 준비하겠다”고 답변했다. 최 의원은 “이번 기념사업이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포항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며 경북 차원의 역사 관광 자원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포덕 166(2025)년 9월 18일 제325회 포항시의회 제2차 임시회의에서 이루어진 최광열 시의원의 시정에 관한 질문과 이강덕 포항시장의 답변 내용이다. ▶ 최광열 시의원: 2027년 3월이면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이 됩니다. 본 의원은 제318회 임시회에서 포항시 동학사상 계승 발전을 위한 지원 조례안을 열세 분의 동료 의원들과 공동 발의, 해월 최시형 선생이 정립한 평등과 생명존중 사상을 오늘의 시대 정신으로 이어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일월문화원, 동대해연구소 등 포항 시민단체들도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의 전시, 강연 등으로 힘을 보태왔습니다. 본 의원은 오늘 시정 질문을 통해 포항시가 포항사람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 및 역사 관광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성과는 무엇이고 향후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인접 시․군 및 경북 차원의 추진할 의사가 있는지, 이를 위해 주무 부서 신설에 대한 견해와 신광면 환경학교를 활용한 기념사업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 해월 신사에 대한 영상 자료 제시] ▶ 최광열 시의원: 시장님, 해월 선생은 평등과 인권, 그리고 생명 존중의 가치를 정립하고 행동으로 실천한 인물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포항에 미치는 역사적, 사회적 시사점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는데,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강덕 포항시장: 영상에서도 나왔지만 조선 말기에 굉장히 혼란스럽고 왕정 부분에 대한 회의도 있고 여러 가지 정체성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어려웠던 시기인데 그때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은, 개인 인권을 중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늘같이 여기는 그런 사상들은 그것을 직접 전파하고 생각을 그렇게 정립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어느 부분이든 오늘날 민주주의가 이렇게 확립된 데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저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 최광열 시의원: 시장님 말씀에 더하여 좀 강조할 게 있는데요, 해월 선생은 삼경 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하였는데요, 삼경 사상은 경천, 경인, 경물로, 특히 경물은 자연을, 그리고 물건을 하늘처럼 받들라, 이런 겁니다. 그래서 삼경 사상이 오늘의 지구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탐욕으로 인한 생태위기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를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장님, 신광 검곡에 해월 선생 유허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유허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는지요? ▶ 이강덕 포항시장: 저도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중요한 분의 유허지나 여러 가지 유적들이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늘 책임감을 느끼고 정리를 번듯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최광열 시의원: 유허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이유가 2007년에 국가문화재 등록을 시도했지만 사실 안 됐습니다. 유허지에 구체적인 유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그렇더라도 18년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늦었지만 시정 절차가 나올 건데요, 경상북도 문화재나 포항 향토문화재로 시급히 등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장님 의견 좀 묻겠습니다. ▶ 이강덕 포항시장: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산업도시로 급격하게 성장을 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위기 대처나 이런 부분에 우리 행정이나 우리 시민들도 많이 치우치다 보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적, 문화적 유산,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다소 관심이 덜했던 게 아닌가, 저도 항상 자책을 하고 많이 느낍니다마는 해월 최시형 선생에 관련된 것에 대한 유적 정리나 그런 부분이 많이 안 되고 해서 늘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산업도시로 해나가는 것, 그 이상으로 정신적 뿌리를 튼튼히 해야 우리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 유허지 문제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광열 시의원: 유허지 관리가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포항은 흥해하고 신광에 해월 선생 유허지 및 도를 득도한 곳이 많다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가까운 영덕, 그리고 영해, 울산, 경주, 영천뿐만 아니라 경기도 여주, 전북 정읍, 충남 태안, 전남 장흥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인물과 따라오는 가치와 사상을 후대에 기리기 위해 기념관, 기념탑을 건립해 그 도시의 역사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 영상 자료 제시] 울산에는 최제우 선생 유허지가 있습니다. 1997년에 울산시 문화재로 등록을 해서 관리를 하고 있고요, 그다음 경주에는 동학수련관하고 동학교육관이 있습니다. 동학수련관에는 경주시에서 네 분의 공무원들이 파견되고 있고, 수련관에서 연간 5천만 원 정도의 이용료 수입을 얻고 있고, 경주시에도 3억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주 황성공원에 1979년에 만들어진 해월 동상입니다. 지금 가치로 보면 10억을 들여도 못 만들 정도로 굉장히 잘 만들어 놨습니다. 경기도 여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묘소입니다. 2021년도에 경기도문화재로 이미 등록을 마쳤습니다. 전라도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고 기념제도 매해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는 충남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고 77억 정도 들여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남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입니다. 전남 장흥하고 태안은 어떤 곳이냐 하면, 전봉준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면서 한 부류는 태안, 한 부류는 장흥으로 내려갑니다. 장흥에서 3만 가까운 농민군들이 전사했다고 전해지지요. 태안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일부는 배를 타고 서해를 통해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적 인물로 해월 선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에 비해서 제대로 된 기념관이 없는 실정입니다. 시장님,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 이강덕 포항시장: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정신적 뿌리가 튼튼해야 그 기반 위에 모든 것을 세울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근자에 들어와서 물질적인 부분, 산업적인 부분만 너무 강조해서 정신적 뿌리를, 토대를 튼튼히 하는 부분에 소홀히 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느껴집니다. ▶ 최광열 시의원: 포항은 타 지자체보다 동학 관련 유적지가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닙니다. 2023년 2월 2일에 제302회 자치행정 회의록에 보면, 당시 문화예술과에서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 알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다양한 사업 추진, 그리고 기념관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하겠다고 보고를 했고, 2023년 10월에 용역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용역보고서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기념관 건립에 관한 후속 조치가 전혀 없는 상태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제가 해월 최시형 기념관 용역보고서를 문화예술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기념관이 흥해 2곳, 신광 2곳으로, 하나는 유허지, 또 하나는 신광면 소재지 2곳에 용역을 한 겁니다. 그런데 4곳 다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라고 했고, 그래서 기념관 건립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기념관 건립에 대한 시장님 의견을 듣겠습니다. ▶ 이강덕 포항시장: 타당성 용역을 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걸 바탕으로 기념관 세우는 것을 기대를 했었는데, 아시다시피 용역 결과가 다르게 나와서 아쉽게 생각합니다마는 한 번에 그칠 게 아니라 더욱 더 노력을 해서 타탕성이 있도록 만들어서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관을 꼭 세우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70년 최시형 선생 인생에서 포항 신광면 주변에서 보낸 것이 20년이 넘고, 그것도 대부분 가장 중요한 청년기에 거기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보고, 지역 주민들, 또 관계있는 지역의 향토사학자들, 또 해월 선생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동대해문화연구소, 그런 분들하고 함께해서 꼭 더 많은 자료를 찾아내고 기념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원님께서 보여주신 다른 지역은 겨우 묘소 하나 있는 데도 그렇게 된 것에 비하면 우리는 더 많은 흔적을 찾아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 부분을 함께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최광열 시의원:[※ PPT 제시] 보시는 화면은 신광면에 있는 환경학교 부지입니다. 2026년 3월에 임대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갑니다. 임대 계약이 끝나면 환경학교를 하면서 잘 만들어놓은 시설을 복구를 해주고 빠져나와야 된다라고 합니다. 복구 비용이 얼마 들지는 모르겠지만 저 공간이 굉장히 자세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조사용역 보고서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원래 기념관은 경제적, 재무적 타당성이 사실 낮습니다. 경주 동학수련관 얘기를 아까 드렸지만 실제로는 인문학적인 기관들은 적자가 수반되지만 시민들의 역사에 대한 사랑,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 이런 것으로 비용이 지출되지만, 그 기관을 유지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 재무적 타당성이 낮다는 것이 기념관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용역보고서에 있는 4곳의 부지 대상 자체가 사실상은 맞지 않습니다. 하나는 유허지가 워낙 산골이고, 토성리와 흥해는 애초에 의미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출발 자체가 그렇지 않나 생각하고, 그 보고서에 보면 삼경 사상을 언급하고 이를 기반으로 치유농장 프로그램 등을 하면 수익 창출이 가능하지 않겠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기념관들은 기념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기념관이 있고 그 옆에 수련관이 있거나 그 옆에 환경학교를 배치한다든가 여러 가지 다양한 복합 형태의 기념관으로 구성이 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향후 기념관 건립에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2023년 기념관 용역 조사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해월 선생 묘소밖에 없다는 경기도 여주가 사실상 제일 먼저 해월기념관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기존 동학기념관은 있지만 전국에 해월기념관은 없거든요. 그런데 해월기념관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드리고, 해월 선생 탄신 200주년에 맞추어서 해월 최시형 기념관 건립을 포함한 기념사업에 대한 연구 용역을 수행해주실 것을 묻겠고, 특히 신광면에 있는 환경학교 공간을 기념관 건립 부지로 포함해서 그것 역시도 타당한지 용역 및 기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지 의견을 묻겠습니다. ▶ 이강덕 포항시장: 기념관은 유허지나 의미 있는 곳에 세워야 하는데, 더 크게 보면 신광면 전체가 해월 선생의 활동 근거지로 볼 수 있으니까 환경학교가 옮겨간 다음 저기 세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 부지가 경북도교육청 소관이니까 그것을 이관을 받아서 최시형 선생 기념관을 세우는 게 맞고요. 오히려 2027년도에 여주가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으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빨리 세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저런 정도 짓는 것은 시간이 그렇게 오래 안 걸리거든요. 필요하다면 올해 좀 더 근거를 마련하고 용역도 빨리 좀 해서 올해 추경이나 아니면 내년 초에 바로 착공 들어갈 수 있도록 해서 2027년도에 200주년 기념행사를 우리 포항이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만들어 가는 것도 좋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동학 운동을 근거로 해서 호남 지역에서는 유족들 연금까지 타내려 한단 말이에요, 우리가 최시형 선생이 20여 년 활동한 그런 게 있으면 우리가 충분히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용역하는 기관이나 여러 부서에서 그걸 못 찾아내서 그런데, 단단한 데로 용역을 주면 그런 근거는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싶고, 그렇게 되면 동학 운동 관련해서 최시형 선생을 잡고, 경주, 호남까지 다 통틀어서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한 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는 최시형 선생이 우리 포항의 자산이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하는 데 여러 의원님들이 함께 힘을 합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다음 추경 정도에 용역비를 제대로 넣어서, 지난번처럼 작게 하지 말고 많이 넣어서 하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포항이 같이 커지기 때문에, 최광열 의원뿐만 아니라 여러 의원님들이 함께 힘을 합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 장상길 부시장, 도 명 환경국장 질문 및 답변 생략] ▶최광열 시의원: 그동안 여러 차례 포항시의 보고와 논의가 있었고 포항 시민단체를 비롯한 선후배 의원들의 기념사업 및 역사공원화 사업에 대한 의견 개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사업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실행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는 집행부의 의지와 조직 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오늘 시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시겠다고 해서 시민으로서, 포항시의원으로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2027년은 해월 최시형 탄신 200주년입니다. 해월이 살았던 신광 일대의 유허지를 제대로 관리하고 정비하는 데에서부터 포항 향토문화재 등록을 시작으로 지금이라도 전담 부서 설치와 전문 인력 확충 등 체계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하여 기념사업이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포항의 정체성과 미래 비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월 최시형 기념사업에 관한 연구 용역 및 기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며 기념관 건립에 신광면 환경학교 부지를 포함하여 기념관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재추진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본 의원은 오늘 제기한 문제들이 집행부가 책임 있는 행정을 통해 해월 정신을 계승하고 포항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만들어 주시길 당부드리며, 나아가 포항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사업이 경북 차원의 역사 관광 사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본 시정에 관한 질문과 답변은 포항시의회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sXKi7dqViU ※ 본 기사는 포항교구 박남문 기자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발빠른 정보를 제공하여 주신 박남문 동덕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말구불재 넘어 스승을 향해… ‘세상을 구하러’ 달려간 그 길“해월신사님께서 걸으셨던 길, 그 길을 다시 걷는 것은 순례를 넘어 기도이자 각성입니다.” 경주에서 포항까지 약 100리, 해월신사가 스승 수운대신사를 만나기 위해 걸었던 그 길을 되살리는 ‘해월순례길’ 조성에 앞장선 박택호 동덕은 이 길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영적 귀향’이라 정의한다. 종학대학원 수련생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여름, 경주 용담수도원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순례길 조성의 발단이 된 제안을 처음 들었다. “지금 개별적으로 걷는 길은 2차선 차도라 위험하다. 시골 정취를 살리면서도 안전한 순례길을 만들자”는 누군가의 소망이 그의 마음에 씨앗처럼 심어진 것이다. 포항 신광면에 거주하는 박택호 동덕은 이후 발로 답사하며 옛길을 찾기 시작했다. 지도에는 사라진 고갯길,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산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구간, 즉 해월신 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말구불재’ 고갯길을 찾아내는 데까지 수차례의 시도가 필요했다. “말구불재에 올라서면 멀리 구미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그곳에서 스승을 향해 달려간 해월신사님의 간절함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보다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감동이 더 컸습니다.” 그는 순례길 조성을 단순한 관광자원 개발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 말기 국가와 공동체가 해체되는 위기 속에서 동학의 사상을 통해 삶의 해답을 모색했던 해월신사의 고뇌와 결단을 되새기는 과정이라 말한다. 순례길은 5개 구간으로 나뉘어 조성되고 있다. 검곡에서 신광 만석리까지는 해월어록비가 세워진 상징적인 출발지이고, 이어지는 법광사지길과 생명의 길,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일대는 신라·조선 시대 문명의 자취와 함께 유네스코문화유산의 품격을 담고 있다. 마지막 구간은 검단 약수터와 말구불재를 지나 용담정으로 이어지는 영적 완성의 여정이다. 각 구간은 선사시대 고분군, 신라비, 조선 서원 등 역사성과 교육적 가치가 풍부해 향후 문화관광자원으로의 활용 가능성도 크다. “가장 평범한 산과 들, 마을과 강이 해월신사님의 삶을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관광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진짜 세계적인 순례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순례길 조성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검곡 입구의 출입 문제였다. 과거에는 해월신사의 유택으로 바로 진입이 가능했지만, 수몰과 귀촌 등으로 구성된 현재 마북리 주민들과의 입장 차이로 인해 마찰이 생겼다. 다행히 최근에는 주민들과 천도교 포항교구, 동학 관련 시민단체가 협의를 이어가며 편의시설 설치와 출입 방식에 대한 조율이 진행되고 있다. 박택호 동덕은 “올해 말까지는 검곡 계곡 집터가 온전히 개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순례길을 ‘세상을 구하러 검곡에서 용담까지 달려간 길’이라 표현한다. 극심한 혼란기였던 구한말, 민중이 절망하고 있던 시기에 스승을 찾아 나선 해월신사의 여정은 종교적 헌신을 넘어 민족사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세상은 해월신사님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검곡에서의 평온한 삶을 내려놓고 길 위에 선 그 결단이 없었다면, 동학의 법맥도, 3·1혁명의 정신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 길은 순례자에게 영적인 울림을 준다. 박 동덕은 수십 차례 순례를 했지만, 말구불재 정상에 서면 언제나 전율을 느낀다며 “스승을 향한 해월신사님의 간절함이 그 땅에 배어 있는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영적 체험 대신, 천도교 경전에 담긴 대자연과 공생의 정신을 되새기며 매번 새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해월신사님은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건을 공경하면 덕이 만방에 미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산새 울음과 들꽃 향기, 촘촘한 오솔길 하나까지 하늘처럼 여긴 그 마음을 순례길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길이 종교적 순례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자산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순례길 인근에는 선사시대 유물, 신라 유적, 조선 서원 등 다양한 역사자원이 분포해 있다. 포항시와 경주시, 시민단체들이 협력한다면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유의미한 관광·교육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아이들은 조상들의 삶을 배우고, 어른들은 옛 정취를 떠올리며,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세트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순례길, 이 길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끝으로 그는 해월신사의 탄신 200주년이 되는 2027년을 전환점으로 삼아, 이 순례길이 천도교의 현대적 신앙 실천의 장이자 시민사회와 호흡하는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곡에서 용담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 누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평범한 삶 속에서 하늘을 모시는 길, 바로 그 길이라는 사실을요.” -
해월 최시형 신사 고향 포항, 기념관 건립을 위한 첫걸음 내딛다해월 최시형 신사의 고향 포항에서, 신사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기념관 건립 첫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천도교를 비롯한 동학 관련 인사들과 포항시민들의 깊은 관심 속에 진행되었으며, 천도교에서도 오랜 숙원이자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는 해월 기념관 건립의 서막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사단법인 동대해문화연구소는 6월 23일(일) 오후 2시, 포항시 남구 지곡동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경상북도와 포항시, 포항시의회의 후원을 받아 『포항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관 건립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석태 동대해연구소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호남과 충청 등지에는 이미 여러 동학기념 시설이 조성되어 있음에도, 정작 해월 선생의 출생지인 포항에는 아직 기념공간이 없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포항다운 콘텐츠와 공간으로 최상의 기념관을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세미나에서는 국내 각지의 동학 관련 기념관 조성 사례와 지역 홍보 활동이 공유되었다.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은 전주 기념관의 건립 과정과 전시 운영을, 송선희 청주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손병희 유허지 조성사례를 발표하였다. 정의필 울산대 명예교수는 울산 수운 최제우 유허지를, 김성대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이사는 경주 동학홍보 현황과 과제를 소개했다. 천도교중앙총부를 대표해 참석한 남연호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은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관, 어떻게 설립하면 좋을까요?”라는 발표를 통해, ‘해와 달을 품은 포항정신’과 해월사상의 조화를 이루는 기념관 조성을 제안해 큰 주목을 받았다. 남 관장은 특히 “포항의 자연과학도시 이미지에 걸맞게 해월 정신을 창조적으로 풀어내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종합토론에서는 도형기 지속가능발전연구원장의 사회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참석자들은 MZ세대를 위한 VR·AR 체험관 도입, 포항·경주·울산의 ‘해오름동맹’을 활용한 예산 확보, ‘K-동학’이라는 이름으로 해월정신의 세계화, 동학 해설사 양성과정 사전 운영, 포항정신문화 테마파크와의 연계 등 해월 기념관이 단순한 과거 회고를 넘어 현대적 신앙·정신문화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공감하였다. 이번 세미나는 해월 정신의 뿌리를 되새기고 천도교의 사상적 정수를 현대 사회와 연결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천도교중앙총부는 해월신사의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포항 기념관 건립에 전 교단적 관심과 협력을 모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해월신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도덕적 삶, 자주적 신앙, 평화의 실천정신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원한다. -
경주교구, 경주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3·1절 행사 봉행천도교 경주교구에서 만세삼창 및 참례의식을 갖고 태극기와 궁을기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만세 소리와 하얀 두루마기들이 입은 참가자들은 만세삼창과 함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 발상지 표지석에 이르자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날 행사엔 천도교 경주교구와 용담교구 교인, 경주겨레하나 회원,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회원, 포항 동대해문화연구소 회원, 포항 일월문화원 회원 등이 참여했다. 이날 김성대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상임이사는 의암 손병희 성사의 지시로 영남지역 천도교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경주지역에서의 기도봉행 및 종교인대표 33인, 종교인들에 대한 일제의 삼엄한 감시, 그리고 당시 대구경북 독립운동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1919년 3월 여러 차례 만세운동을 위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지만 4월까지 경북을 비롯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져나갔다. 경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현장인 장터가 위치했던 이곳엔 현재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표지석이 전부다. -
1871영해동학혁명과 1894영해봉기를 주제로 학술대회 열려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는 2024년 12월 6일(금), 경북 영덕군 영해면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1871영해동학혁명과 1894영해봉기’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영덕군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동학의 역사적 의의와 영해 지역 혁명의 흐름을 재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행사는 오후 2시, 권태용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되었으며, 권대천 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 위원장이 ‘1871영해동학혁명 역사적 대의를 위한 제고’를 주제로 기조 발표를 진행했다. 권 위원장은 1871년 영해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을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닌, 조선 후기 민중의 혁명적 열망을 담은 역사적 운동으로 평가하며, 이를 근대사 연구의 중요한 단초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박대길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 ‘신미아변시일기를 통해 본 1871년 영해 사건’을 주제로 사건의 전개와 의의를 살펴보았다.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교수는 ‘1871년 영해동학혁명 이후의 영해부 동향과 1894년 영해 혁명’ 발표를 통해 동학혁명의 유산이 영해 농민 봉기로 이어진 과정을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장우순 동학연구소 연구위원이 ‘영해동학혁명의 유산과 1894년 영해농민봉기 - 한국적 근대를 향한 발자취’를 발표하며 동학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했다. 종합 자유토론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이 오갔다. 특히 남두병 선생의 후손인 남상균 선생이 동학인명록에서 새롭게 확인된 사실을 알고 놀라워했다. 또한, 이상국 영양동학인시천 해월최시형 기념사업회 회장은 "영해동학혁명을 단순히 이필제로 이어진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동학의 기류 속에서 시대적 필요와 동학의 원리에 따라 일어난 운동임을 강조했다. 이상국 회장은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가르침인 ‘용시용활(用時用活)’, 즉 “시간과 시대를 잘 이해하고 이를 신속히 활용하라”는 교훈을 언급하며 당시의 혁명이 동학 사상과 조응하는 혁신적 대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석태 포항 동대해문화연구소 이사장은 해월 최시형 동학기념관 설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동학 사상이 음양오행과 칠성의 전통사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이석태 이사장은 이를 통해 동학 사상의 철학적 기반과 전통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학과 영해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동학혁명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통해 우리 근대사 연구를 풍요롭게 발전시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및 자료 제공 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장흥 석대들에서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다시 외치다“우리 전국의 동학민주시민들은 마음을 모으고 기운을 합하여 다시 깃발을 세운다. 동학농민혁명을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갈길 잃은 세상에 새 빛을 비추고자 한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의 창립격문의 첫 문장이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국 39개 단체가 참여한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가 지난 12일 장흥군민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 대표자 등 1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는 천도교 박상종 교령과 김성 장흥군수, 박형대·신민호 전남도의원 등이 참석해 축사와 함께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의 계승과 발전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총회에 앞서 장흥 공원묘지 ‘무명농민군 묘역’에서는 심고 청수봉전, 헌화, 서훈촉구 결의문 낭독을 하였다. 그동안 개별적인 참배는 있었지만, 전국차원의 추모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동학 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공설공원묘지 4묘역에 모였다. 장흥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으로 불리는 4묘역은 1894년 장흥 일대에서 숨진 동학농민군 묘지 1699기가 안장된 곳이다. 참가자들은 ‘남도장군 이방언’ ‘웅치대접주 구교철’ ‘고읍대접주 김학삼’ 등 동학지도자들의 이름이 적힌 만장과 함께 보국안민, 광제창생, 척왜양창의 등의 깃발을 들고 묘역 곳곳에 서 있었고 묘지마다 국화를 놔두며 동학군 영령을 추모하였다. 합동참배는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정의적 이사장의 집례로 이뤄졌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우심 이사의 청수봉전이 이어졌으며 허채봉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의 심고문 낭독을 통해 추모와 위로의 장을 열었다. “이곳 석대들 1700기 묘역의 성령들은 장흥, 순천, 여수, 광양, 무안, 함평, 고흥, 보성, 장성, 진주, 산청, 남해, 하동 등 각지의 고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겨운 삶을 살았던 우리들의 아버지였고, 우리의 아들이었으며, 우리의 딸이었고, 우리의 어머니, 그 이름은 사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130년이 지난 지금, 이곳, 장흥 석대들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에서 함께하고 있는 ‘우리’가 이제 130년 전 ‘무명’의 그 이름, 동학농민혁명군의 성령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석대들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에서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하라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는 성명서에서 “장흥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은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아 묘지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며 “정부는 동학과 같은 시기 일어난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 145명을 서훈했다. 똑같이 항일무장투쟁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서훈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촉구하며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 6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회에 상정된 2개의 동학서훈법률안이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동학농민혁명명예회복법(2004)의 규정대로 2개의 동학서훈법률안을 즉각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라”고 촉구했다. ‘소년 뱃사공’의 손자 윤병추 어른에게 듣는 살아남은 ‘동학군들’ ‘소년 뱃사공’ 윤성도(1878∼1965)의 손자 윤병추(92)선생은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쫓긴 동학군을 배에 태워 고금도, 청산도, 금일도 등으로 피신시켜 살렸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동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밤이면 손자에게 그날의 긴박했던 탈출기에 대해 말씀해주셨다는 윤병추 선생은 할아버지 윤성도에 대해 더 많은 동학군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안타까워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밝히며 가슴에 품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창립총회 장흥군민회관에서는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창립총회를 열고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장흥 묘역 성역화, 전국적 기념행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단체는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두년 경북 예천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각 준비위원들(조기석, 김명재, 이하윤, 이현종, 고재국, 김봉승, 허채봉)은 2023년 7월부터 전국연대체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번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천도교 박상종 교령은 축하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고, 각종 학술 회의와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 함께 동학혁명의 선양사업에 온 힘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갑진년(20240)은 동학 창도주, 천도교 제1세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입니다. 이처럼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전국에서 추진하는 기념행사와 학술대회도 중요하지만,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성 장흥 군수, 전남 도의원 신민호 위원장의 축사와 함께 동학을 노래하는 가수 문진오 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창립총회에서는 정관을 채택하고 고재국 대표(장흥), 권대천 부대표(1871 영해), 사무국장 김명재(순천 영호도회소), 이사(중앙이사 권역 10인과 유족회 1인), 감사는 정효종(남해), 조용호(고창)등이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마지막으로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박홍규 화백의 특강으로 1박 2일 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장흥에서 다시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깃발을 든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가 동학정신을 널리 펼쳐가기를 기대한다. 창립총회에 함께한 단체 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고부농민봉기기념사업회,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광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당진동학농민혁명승전목기념사업회, (사)동대해문화연구소,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준)동학농민혁명선양사업회, 동학뉴스창간준비위원회, 동학농민혁명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 동학실천시민행동,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 (사)동학농민혁명아산기념사업회,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인시천영양동학해월최시형기념사업회, 옥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가)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장흥취회, 장성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정선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천도교중앙총부,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하동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