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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22일○ 188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개장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가 이날 개장했다. 개장 공연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였으며, 3,800석 규모의 화려한 인테리어와 최첨단 무대 장비로 뉴욕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메트(The Met)’라 불리며 전 세계 성악가와 음악 애호가들이 꿈꾸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매 시즌 세계 각국의 명작 오페라와 신작이 무대에 오르며, 인류 문화유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 1962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 쿠바 해상 봉쇄 명령 1962년 10월 22일,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배치된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제거하기 위해 해상 봉쇄를 명령했다. 일명 ‘쿠바 미사일 위기’로 불리는 이 사건은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이후 양국은 극적인 타협을 통해 전면전은 피했으나, 세계는 핵무기의 공포 속에서 평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1967년, 워싱턴에서 대규모 베트남전 반대 시위 1967년 10월 22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앞에는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전쟁은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국방부 앞까지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와 군인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683명이 체포되었다. 이 시위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일본과 서유럽에서도 동시다발적인 반전 집회가 이어졌다. 이후 고엽제 살포와 민간인 학살 등 베트남전의 참상이 드러나면서 반전 여론은 더욱 커졌다. 특히 1969년 10월 15일 ‘베트남 반전의 날’에는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평화의 외침을 이어갔다. ○ 1987년, 산악인 허영호, 히말라야 마나슬루봉 단독 등정 성공 1987년 10월 22일, 한국의 산악인 허영호가 히말라야 마나슬루봉(8,163m)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단독으로 오른 인물이 되었다. 극한의 추위와 고립 속에서도 그는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의 대상”이라 말하며, 도전과 성찰의 철학을 남겼다. 그의 등정은 이후 한국 산악계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 1989년, 뉴욕 소더비에서 「수월관음도」 경매되다 이날 뉴욕의 미술품 경매 회사 소더비(Sotheby’s)에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가 경매에 부쳐졌다. 정교한 필치와 은은한 채색이 돋보이는 이 불화는 고려시대 불교 미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경매가 100만 달러를 넘어서는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 이후 「수월관음도」는 동서양을 잇는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주목받으며, 고려 불화의 예술성과 세계사적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9일○ 1933년,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1933년 10월 19일,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했다. 이는 조선어 표기법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마련된 첫 통일안으로, 이후 「표준어사정안」과 더불어 현대 한글맞춤법의 기초가 되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의 체계를 확립하려 한 학자들의 헌신은 오늘날 한글의 과학성과 통일성을 가능하게 했다. ○ 1945년, 조지 오웰, ‘냉전(Cold War)’ 용어 최초 사용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45년 10월 「트리뷴(Tribune)」지 칼럼에서 ‘냉전(Cold War)’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를 예견하며, “핵무기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용어는 이후 동서 진영 간의 정치·이념적 대립을 상징하는 세계사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 발발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던 조선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장병들은 여수와 순천 일대의 남로당 세력과 결합해 ‘반(反)정부 봉기’를 주도했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한때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으나, 이는 여수·순천 주민이 아닌 군대가 주도한 사건이었기에 ‘여수 14연대 반란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사건은 이후 군 내부의 대대적인 숙군(肅軍) 작업으로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 내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순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이념 대립과 냉전의 비극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 1956년, 일본–소련 국교회복 공동선언 1956년 10월 19일, 일본과 소련이 모스크바에서 국교회복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이로써 두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1년 만에 공식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선언에는 포로 송환, 경제 협력, 그리고 평화조약 체결 협의가 포함되었으나, 이후 북방 4개 섬(쿠릴열도 남단)의 영유권 분쟁을 지속하며 양국 관계는 완전한 정상화에 이르지 못했다. ○ 1987년, 미국 주식 대폭락 ‘검은 월요일’ 발생 1987년 10월 19일,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했다. 역사상 단일일 최대 낙폭이었던 이날은 이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로 불리게 되었다. 급등하던 주가의 거품 붕괴와 프로그램 매매 시스템의 자동 매도,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가 맞물리며 전 세계 증시가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이 여파로 일본, 영국,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증시도 동반 폭락했고, 세계적으로 약 1조 7천억 달러가 증발했다. 이후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의 길로 들어서며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게 된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7일○ 1968년,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 『설국』 『천마고양』 『산의 소리』 등을 통해 일본 문학 특유의 섬세한 미의식과 덧없음의 미학을 세계 문단에 각인시켰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나는 아름다움의 나라 일본에서 왔다”고 말하며 일본 문화의 정서를 세계에 전했다. ○ 1972년, 박정희 대통령, 10월 유신을 단행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선언을 발표하며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당과 정치 활동을 중지시켰다. 곧이어 제8차 헌법이라 불리는 ‘유신헌법’을 제정해 대통령에게 종신에 가까운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의 군부 독재체제를 완성했다. ‘유신(維新)’이란 본래 ‘새롭게 고친다’는 긍정적 의미를 지녔으나, 한국 현대사에서는 헌정 질서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친위 쿠데타’로 기억된다. 이 시기 언론 통제와 정치적 탄압이 강화되었으나, 동시에 경제 성장과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역설적인 평가를 남겼다. ○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이 발생하다 중동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에 대한 보복 조치로 원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세계 경제를 뒤흔든 ‘제1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다. 원유 가격이 4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각국의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 침체가 심화하였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절약 운동과 석유 절약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불 꺼진 서울’의 풍경이 나타났다. 이는 산업 구조의 재편과 에너지 자립에 대한 국가적 과제를 남겼다. ○ 1978년, 북한 제3땅굴 발견 강원도 양구 인근 비무장지대 남쪽에서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판 제3땅굴이 발견되었다. 폭 2m, 높이 2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규모로, 서울까지 진입이 가능한 거리였다. 그 이전에도 제1·2땅굴이 발견된 바 있으며, 이후 제4땅굴까지 추가로 드러나면서 한반도 안보 불안이 다시금 부각되었다. 남북 간 군사적 대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6일○ 802년, 합천 해인사 창건되다 신라 애장왕 3년, 왕비의 병을 낫게 해준 공덕으로 왕실의 후원을 받은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합천 해인사를 창건하였다. 통도사(불보), 송광사(승보)와 함께 삼보사찰 중 하나로 꼽히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이름 높다. 통일신라 말기 선종 통합과 불교 교학 발전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의 대표적 사찰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 기요틴에서 처형되다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오른 지 9개월 만인 이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말로 상징되는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던 그녀의 죽음은, 절대왕정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자 민중 혁명의 완성을 의미했다. ○ 1979년, 부마 민주항쟁 시작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된 부마 민주항쟁은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 시민들의 분노가 부산에서 마산으로 확산하며 전국적 민주화의 불씨가 되었다. 유신체제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고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자유와 정의를 외쳤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으나, 이 항쟁은 열흘 뒤 10·26사태로 유신정권이 붕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1979년, 세계 식량의 날 제정 1945년 오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창설된 것을 기념해 1979년 제정된 날로, 전 세계에 식량 문제의 심각성과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캠페인이 열린다. FAO와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8억 3천만 명 이상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10세 미만 어린이 가운데 7초마다 한 명이 굶주림으로 생명을 잃고 있다. 비타민A 부족으로 6분마다 한 명이 시력을 잃는다는 통계도 있다. 풍요 속의 불평등이 여전히 인류의 과제로 남아 있다. ○ 2017년,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에버트 인권상’을 촛불 시민에게 수여 결정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2016~2017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민운동이 보여준 평화적 시위와 민주주의 회복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한국의 ‘촛불 시민’을 2017년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상은 독일 사회민주당 초대 총리안 프리드리히 에버트(Friedrich Ebert, 1871~1925)의 이름을 따 제정된 것으로, 인권과 사회정의, 민주주의 수호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5일○ 1905년, 일진회, 한일 보호조약 촉구 성명 친일 단체 일진회는 이날 일본과의 보호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진회는 일본의 내정 간섭을 합리화하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한 조직으로, 이 성명은 사실상 국권 포기의 선언에 가까웠다. 근대화를 빌미로 외세 의존을 정당화한 이들의 주장은 불과 한 달 뒤 을사늑약 체결로 이어지며, 우리 민족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 1934년, 중국 공산당 대장정 시작 중국 남부 소비에트공화국이 국민당의 포위 공격으로 붕괴하자, 공산당 군(홍군)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의 지휘 아래 12,000km에 이르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 행군은 혹독한 자연과 전투 속에서 수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1935년 산시성 옌안에 도착해 새로운 혁명의 근거지를 마련함으로써 중국 공산혁명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 1944년, 독일 총사령관 롬멜 자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하며 ‘사막의 여우’로 불린 독일 육군 원수 에르빈 로멜이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자살을 강요받았다. 그는 나치 체제의 충성스러운 장군이었으나, 히틀러의 무모한 전쟁 수행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서울에 위수령 발동 정부는 ‘학원 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서울 지역 대학가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7개 대학에 무장군인이 진주하고, 전국 23개 대학에서 학생 177명이 제적되었으며, 수많은 동아리와 간행물이 강제 해산됐다. 이는 유신체제 수립을 앞둔 권위주의 통치의 전조로 평가된다. ○ 1980년, 세계맹인협회, ‘흰지팡이의 날’ 지정 시각장애인의 상징인 흰지팡이는 ‘의존’이 아닌 ‘자립과 권리’의 표현이다. 1962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시각장애인의 기본권을 강조하며 “시각장애인에게 흰지팡이를!”이라 외친 데서 비롯된 이 기념일은, 1980년 세계맹인협회가 공식 지정하면서 국제적 인권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도 흰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 1988년, 지강헌 일당 인질극 발생 영등포교도소 수감자 지강헌과 일당은 이송 도중 교도관을 공격하고 탈주해, 서울 북가좌동의 한 민가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과 대치하던 지강헌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고 총격 속에 숨졌다. 사회 불평등과 형사사법제도의 문제를 드러낸 사건으로, 당시 사회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4일○ 1900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발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한 첫 저작으로, 인간 심리와 예술, 철학,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실제로는 1899년에 집필을 마쳤으나, 출판사는 ‘새 세기의 첫 책’으로 홍보하기 위해 1900년으로 발간 연도를 표기했다. 이 책은 20세기 인문학의 출발점이자, 인간 내면 탐구의 상징으로 남았다. ○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발생 미국 정찰기가 쿠바 내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포착하면서 냉전이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를 명령했고, 세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지켜보았다. 이후 소련이 미사일 철수를 약속하면서 사태는 진정됐으나, 인류가 핵전쟁의 공포를 체감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석가탑 보수공사 중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본으로,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의 높은 수준을 증명한다. 751년 이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기원을 천 년 이상 앞당긴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 1976년, 서울 상공에 미확인비행물체(UFO) 출현 이날 밤, 서울 강북 하늘에 밝은 빛을 내뿜는 원형 비행물체 여러 대가 포착되어 시민과 군 당국이 큰 충격에 빠졌다. 대공포 사격까지 이어졌으나 격추되지 않았고, 라디오 방송이 중단될 정도로 전국적인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는 기상 현상 또는 비행훈련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아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1979년, 경기도 연천 전곡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 발굴 미군 병사였던 그렉 보웬이 우연히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의 전기가 열렸다. 이후 발굴조사에서 다량의 석기가 출토되어 한반도에 약 50만 년 전 인류가 살았음을 입증했다. ‘전곡리 유적’은 한국 고고학사의 지평을 바꾼 발견으로 평가된다. ○ 1993년, 영화 「서편제」 상해국제영화제 감독상·여우주연상 수상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 「서편제」가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오정해는 21세의 나이로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국악의 정서와 인간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한국적 미학의 세계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3일○ 54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아내에게 독살당하다 로마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기원전 10년 ~ 기원후 54년)는 즉위 후 로마 행정제도를 정비하고 영국 정복에 성공하는 등 업적을 남겼으나, 권력욕이 강한 아내 아그리피나(Agrippina)의 음모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아들 네로(Nero)를 황제로 세우기 위해 독이 든 버섯을 건넸고, 결국 클라우디우스는 이를 먹고 사망했다. 이후 황제가 된 네로는 폭정을 일삼아 로마의 대화재와 반란을 불러오는 등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군주로 기록되었다. ○ 1453년, 계유정난 발생, 수양대군, 김종서와 황보인 제거 조선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좌의정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을 살해한 사건이다. 어린 단종의 섭정 체제를 무너뜨린 이 사건으로, 조선 조정의 실권은 수양대군에게 넘어갔고, 그는 이듬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 최대의 정치적 쿠데타로, 왕권 강화를 위한 피의 정치로 평가된다. ○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 선포 1990년대 초 사회 혼란과 정권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은 전국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는 군 정보요원 윤석양 이병이 ‘청명계획’ 폭로로 정권의 비밀조직이 드러난 직후였다. 정부는 조직폭력배 소탕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였고, 1년간 200여 개 조직에서 700여 명이 구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일부에서는 이를 정치적 위기 돌파용 치안 전략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을 ‘한반도의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 화해,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민주화 운동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한 평화정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 지도자 중 드물게 비폭력과 인권의 가치를 실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2010년, 핀란드, ‘실수・실패의 날’ 제정 핀란드는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움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로 매년 10월 13일을 ‘실수・실패의 날(Day for Failure)’로 정했다. 기업가, 예술인, 정치인들이 자신의 실수담을 공개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는 완벽주의보다는 도전과 성장을 중시하는 북유럽 특유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12일○ 1492년, 콜럼버스, 신대륙을 발견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대서양을 건너 오늘날의 바하마 제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이 항해는 세계사의 대전환점을 이루며 신대륙 식민화와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열었다. ○ 1810년, 독일 뮌헨에서 첫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다 독일 바이에른의 왕자 루트비히 1세와 작센의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축제가 그 시초다. 뮌헨 교외 평원에서 열린 이 행사는 지역 주민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매년 열리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6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로, 맥주뿐 아니라 전통 의상, 음악, 음식, 놀이가 어우러지는 독일 문화의 상징적 축제다. ○ 1897년, 고종, 대한제국을 선포하다 고종 황제는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고, 조선의 국호를 ‘대한’으로 바꾸며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이는 대한이 자주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후 광무개혁을 통해 자주적 근대국가를 지향했으나, 열강의 침탈로 그 뜻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 1911년, 105인 사건이 발생하다 일제강점기 초기, 일제는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1911년 ‘105인 사건’을 조작하였다. 신민회 주요 인사들이 평양의 일본 총영사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대거 체포한 사건이다. 실제로는 민족계몽운동을 주도하던 지도층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음모였다. 이 사건으로 안창호, 양기탁 등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으며, 우리 근대 민족운동은 큰 타격을 입었다. ○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 국회 의결 국민의 거센 민주화 요구 속에서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의결하였다. 6월 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 열망이 제도적으로 결실을 본 순간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에 따른 평화적 헌법 개정이었다. 이를 계기로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치러지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 1997년, 미국 컨트리 포크 가수 존 덴버, 세상을 떠나다 1970년대 가장 사랑받은 싱어송라이터이자 통기타 음악의 상징인 존 덴버(John Denver, 1943~1997)가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개인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대표곡으로 「Take Me Home, Country Roads」, 「Annie’s Song」, 「Leaving on a Jet Plane」 등이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한 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9일○ 1446년(세종 28년), 조선의 세종, 「훈민정음」을 반포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한 글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하였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서문은 백성을 향한 애민 정신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한글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10월 9일 한글날은 이러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이다. ○ 1835년, 프랑스의 작곡가 생상스 태어나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는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음악가로, 「동물의 사육제」, 「삼손과 데릴라」, 「제3교향곡」(오르간 교향곡)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 천재적 음악성과 뛰어난 지적 감수성으로 프랑스 음악의 품격을 한층 높인 인물로 평가된다. ○ 1947년,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발간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랜 세월 동안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한글학회가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을 발간하였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낸 헌신의 결실이었으며, 이는 한글 보급과 국어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 1967년,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처형당하다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가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총살당했다. 그는 제국주의에 맞선 혁명가의 상징으로, 사회 정의와 평등을 위해 싸운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 1983년, 아웅산 묘소 폭발 사건 발생하다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저지른 폭탄 테러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한국 정부 관계자 17명이 희생되었다. 대통령은 행사 참석이 지연되어 목숨을 건졌으나, 이 사건은 한반도 긴장을 극도로 높인 국제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1997년,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다 이탈리아의 풍자극 작가 다리오 포(Dario Fo, 1926~2016)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권력과 부패, 사회적 불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극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대표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를 통해 억압적인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 정신을 그려냈다. ○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확정되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 반기문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확정되었다. 그는 2007년 1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해 전 세계 평화와 인권 증진에 이바지하며 한국 외교의 위상을 높였다. -
오늘의 소사(小史) ○ 10월 6일○ 1927년,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상영 미국 뉴욕에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The Jazz Singer)」가 상영되었다. 기존의 무성영화에 음성을 입힌 이 작품은 주인공 알 졸슨(Al Jolson)의 대사 “레이디스 앤 젠틀맨!”으로 영화사의 새 장을 열었다. 이후 유성영화 시대가 본격화되며 영화 예술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도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며 『경향신문』이 창간되었다. 당시 천주교 서울교구가 모태가 되어 설립된 『경향신문』은 “정의와 진리를 위하여”를 사시로 내걸고 사회 정의와 인권 보도에 앞장서왔다. 이후 군사정권 시절 폐간과 복간을 거치며 한국 언론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 1973년, 이스라엘-아랍 간 제4차 중동 전쟁 시작 이날, 이집트와 시리아가 중심이 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제4차 중동 전쟁, 즉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의 주요 명절인 ‘욤키푸르(Yom Kippur, 대속죄일)’에 맞춰 전격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중동 지역의 군사·정치 구도를 뒤흔들었고, 이후 석유 금수 조치로 인한 세계적 ‘오일 쇼크’로 이어졌다. ○ 1976년, 중국 문화대혁명 주동자 사인방 체포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을 주도했던 이른바 ‘사인방(四人幇)’, 즉 장칭(江靑, 마오쩌둥의 부인), 장춘차오, 요원위안, 왕훙원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마오쩌둥 사망 직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문화대혁명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덩샤오핑 체제가 들어서면서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 피살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 중,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1981) 대통령이 이슬람 급진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사다트는 1978년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여 중동 평화의 전기를 마련했으나, 이를 ‘배신’으로 여긴 세력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의 죽음은 중동 평화 프로세스의 큰 변곡점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