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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시민과 함께하는 종교문화예술한마당, 종교·문화·나눔의 정신 시민 속에서 실천사단법인 한국사회평화협의회가 주관한 ‘2025 시민과 함께하는 종교문화예술한마당’이 11월 15일(토)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천도교는 올해 행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민들과 함께 종교·문화·나눔의 가치를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마련했다. 김명덕 천도교여성회장은 행사 시작과 함께 7대 종단 대표자들과 나란히 서서 ‘화해와 상생의 세레모니’를 진행하며 종교 간 조화와 연대의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했다. 종교 대표자들이 함께 한 세레모니가 행사 전체의 따뜻한 분위기를 여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샘’ 합창단, 돌발 상황 속에서도 빛난 무대 천도교 공연은 올해도 ‘샘’ 합창단이 맡아 깊은 울림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공연 중 음향 문제로 피아노 반주가 나오지 않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으나, 단원들은 전혀 흔들림 없이 무반주로 선율을 이어갔다. 음정과 템포를 끝까지 정확하게 유지하며 공연을 완성해낸 합창단의 집중력과 실력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무대가 끝나자마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사고는 오히려 샘 합창단의 기본기와 팀워크가 빛난 순간으로 기록됐다. “햇살, 은행잎, 그리고 우리의 화음” 한 단원은 이날 공연을 돌아보며 "여러 차례 날씨 때문에 미뤄졌던 만큼, 그날은 최고의 날씨가 되어주었습니다. 노란 은행잎과 햇살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샘 합창단의 화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모두 준비하느라 힘들었지만, 그 경쾌한 시간이 서로에게 힐링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종교·문화·나눔이 함께한 시민 축제 특히 이번 행사에는 전명운 교화관장, 서소연 교무관장이 직접 참석하여 천도교 체험부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을 맞이하며 인내천 정신과 천도교의 사상을 시민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안내와 체험 프로그램 진행을 함께하며 현장을 따뜻하게 이끌었다. 7대 종단이 함께한 현장에서는 종교문화 체험부스, 종교예술 공연, 마음쉼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다. 종교 체험 스탬프를 완주하면 취약계층 도시락 한 개가 기부되는 ‘모아모아 나눔’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며 큰 호응을 받았다. 의류 재사용·순환 부스, 응원 메시지 나누기 등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며 종교행사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종교 간 화합과 연대를 확인한 자리 한국사회평화협의회는 그동안 상생나눔운동, 종교 화합행사 등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넓혀 왔다. 이번 종교문화예술한마당은 종교, 예술, 나눔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으로, 종교 간 상생과 시민 참여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
천도교·동학 단체 대표자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간담회, 동학서훈법 제정 촉구11월 14일(금) 오전 11시, 동학서훈법 당론 채택을 위한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천도교, 동학단체 대표자들과 민주당 김병기 의원, 안호영 기후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 진성준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희승 예결위 의원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을 위한 특별법’(이하 ‘동학서훈법’) 당론 채택을 요청하는 천도교단 및 동학 관련단체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간담회가 11월 14일(금) 오전 11시 국회 본관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동학-천도교 단체 대표자들과 국회의원들이 동학서훈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향후 추진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김병기 원내대표 “동학서훈법, 당론으로 패스트트랙 처리” 천도교 및 동학 단체 관계자들은 “131년 전 동학농민군의 희생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며 법안 추진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주선원 동민회 상임의장은 “김병기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가 지연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동학서훈법률안은 당론으로 추진하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박용규 동학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도 “이번 간담회는 법률 제정의 실질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최종 통과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힘을 모아 분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 및 천도교, 동학 단체 대표자 참석 이날 간담회에 국회의원으로 김병기(민주당 원내대표), 안호영(기후노동위 상임위원장), 진성준(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희승(예산결산위 의원) 의원이 참석했다. 천도교 및 동학 단체에서는 서소연 교무관장(천도교중앙총부), 주영채 상임의장(동학민족통일회), 문영식 명예관장(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의적 이사장(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최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원), 고재국 회장(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최두현 부장(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획운영부), 이용길 회장(충남동학단체협의회), 박용규 상임대표(동학서훈국민연대) 등 10명이 참석하였다.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과장 겸 동학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겸 동학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
“동학 정신을 우리 삶의 가치철학으로 가져가는 것, 그것이 제 꿈이자 바람”나이 마흔에, 서울살이를 끝내고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 새로 둥지를 튼 권소영 대표는 원래 동학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프랑스 출장길, 관계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혁명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한 동학사상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설파한 뒤, 그다음 날 회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술술 풀렸던 경험이 동학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였다. 한데 2007년, 그가 살러 온 홍천 서석면 풍암리가 동학혁명 전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인연이 오려는 길이었구나.” 하고 직감했다. 홍천에 내려온 뒤에는 마을 주민들 요청으로 4년 동안 아이들에게 동학과 동학혁명을 이야기했다. ‘시천주’ 사상에 담겨 있는 존엄과 평등, 공존과 존중을 가르쳤다. 홍천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칭도 하고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7년, “동학 사업을 좀 키워보자”는 서석면 면장의 제안으로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에 나선 것이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이후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해, 2024년까지 동학혁명 전적지 탐방, 휘호대회, 백일장, 보드게임, 메모리카드, 동학탑놀이, 동경대전·용담유사 목활자 퍼즐,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명상과 심리 치유 프로그램 등 수많은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그 무수한 콘텐츠의 아이디어 창구이자 이를 실제 구현으로 이끈 장본인이며, 11월 6일 발대식을 갖는 '강원동학21'을 이끌어나갈 권소영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동학,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단체 설립 과정, 지금까지의 주요 활동을 소개해 주신다면?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세 가지 축을 담았습니다. 하나는 강원 지역 동학의 역사예요. 인제, 정선, 영월, 평창, 원주, 강릉, 고성, 홍천 등 곳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동경대전」이 발간되고 보국안민의 기포가 다시 일어난 지역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동학의 핵심 사상, 시천주와 삼경사상, 인내천과 사인여천 정신입니다. 셋째는 이 사상을 21세기 현재의 언어와 삶으로 풀어가겠다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강원동학’ 뒤에 ‘21’을 붙였습니다. 제가 홍천에 온 지 20년이 되어 갑니다. 2017년에 당시 서석면 면장님이 제가 기획·컨설팅하는 걸 알고 “서석면에 동학혁명 유적지가 있는데, 이걸 제대로 키우고 싶다”며 동학 관련 사업을 제안하셨어요. 당시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주축 어르신들만 남아서 사실상 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였어요. 한데 공모사업을 하려면 단체에 소속돼야 하니, “단체 이름을 좀 빌려 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2017년 국가유산청 지역유산활용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4개의 프로그램 개발은 거의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동학 정신을 서예로 표현하는 전국 휘호대회와 학생들이 동학농민혁명 과정을 공부하며 글을 쓰는 백일장, 역사 흐름과 인물을 게임으로 배우는 보드게임과 메모리카드, 시천주·존엄·존중·공경 같은 키워드를 몸으로 익히는 ‘동학탑놀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목활자본 퍼즐과 인쇄 체험, 지역주민이 만든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동학 아카데미, 초등학교 체험, 중학교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동학사상과 명상을 결합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과 동학군 복장을 입어보고 행진하는 체험과 동학 관련 유튜브와 캐릭터, 이모티콘 대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초등학생, 중·고생, 학부모, 마을 주민과 군인들까지 합치면 대략 5천 명 정도가 홍천 동학과 동학혁명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기반을 바탕으로, 홍천을 넘어 강원 전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강원동학21’이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개발해 오신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합니다. 휘호대회, 보드게임, 심리 치유 프로그램, 음악회 등 조금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기획을 할 때 ‘한정된 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산 1,000만 원이면 2,000만 원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늘 고민합니다. 그래서 동학 프로그램들도 교육, 놀이, 예술, 심리를 한데 묶어 설계하고 있어요. 먼저 휘호대회는 강원도 교육감님께서도 칭찬하신 행사입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을 공부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고, 글씨에 담긴 마음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진행했습니다. 심리 치유 프로그램은 동학사상을 현대 심리학 기법과 결합한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시천주·삼경사상, 수심정기를 체험형으로 접하도록 설계해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음이 굉장히 차분해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습니다. 이건 제가 아이들 코칭과 부모 상담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은 경험과 동학 공부가 만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이 음악회입니다. 저는 어릴 때 클래식을 전공해볼까 고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동학 스토리텔링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6일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음악과 동학 이야기를 엮으려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첫 곡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합니다. 인트로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돌아보게 되는 자각의 느낌이 있거든요. 이어서 「나 하나 꽃 피어」라는 가곡이 불립니다. 나 혼자만 피어서는 숲이 되지 않지만,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울 때 어떤 세상이 열리는지를 동학 정신과 연결해 설명하지요. 또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스 오보에」를 들려줍니다. 이 곡을 들으며 동학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나눕니다. 이렇게 곡마다 스토리텔링 해설을 붙입니다. 음악적 분석만이 아니라 이 곡이 동학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감응 매치하여 이야기하면, 관객들이 깊게 공감합니다. “난 동학은 어려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으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시죠.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합니다. 밥을 먹을 때 “농부가 쌀을 안 만들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가 밥을 해 줄 때와 안 해 줄 때의 차이, 그 사이의 정성과 마음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면, 생각의 폭과 깊이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저는 그 과정을 ‘동학식 수심정기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 최근 홍천군의회 본회의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이 부결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말씀드린 대로 어이없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기념사업과 주민들의 호응, 전국적인 평가를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학 정신을 이야기하는 내가, 동학이 말하는 수심정기와 시천주를 어느 만큼 실천했는가를 먼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군의회 내 갈등, 몇몇 기사에 따른 감정적 반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동안 해 온 활동의 진정성과 필요성을 더 깊이 이해시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은 2026년 재발의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의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기념사업의 의미와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조례와의 연계, 홍천이 갖는 상징성을 차분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추모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추모일이 양력 10월 23일로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음력 10월 23일입니다. 올해부터는 이 부분도 바로잡고, 음력 추모일을 기준으로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추모·기념 행사를 체계화해 보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논쟁도 결국 조금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보고, 끝까지 책임 있게 풀어가려 합니다. ▶ 조례 제정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조례가 통과될 경우 지역사회와 동학 기념사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조례는 결국 공공의 약속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에는 이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조례’가 있어서, 큰 틀에서 강원동학21 사업을 하는 데 제도적 장애는 없습니다. 하지만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의 실제 무대는 홍천군입니다. 홍천군에 조례가 제정되면, 다른 시·군에 선도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고, 기초자치단체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과 동학 정신 계승을 법적 책무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민간의 열정과 자발적 재능기부에 의존한 측면이 크다면, 조례 제정 이후에는 예산·인력·교육·관광 정책과의 연계가 훨씬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학 정신을 강원도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공적 선언이 되는 셈이지요. ▶ 강원동학21이 비영리 사단법인, 궁극적으로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추진 상황과 법인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요? 현재는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고, 최종 목표는 재단법인화입니다. 사단법인은 사람 중심의 조직이고, 재단법인은 재정과 자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플랫폼입니다. 강원동학21이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재단법인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강원도 곳곳에서 동학과 동학 정신에 공감하는 분들을 모아 ‘강원동학21 재단법인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있습니다. 이 법인을 통해, 재정적 안정화를 이루고, 동학 해설사, 강사, 프로그램 기획자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학교·지자체·문화재단·시민단체·천도교 교구와의 협력 구조를 정비해, 동학 정신을 강원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천도교 입교 여부와 상관없이, 현대화된 동학 정신을 삶의 철학으로 전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시에 천도교중앙총부와도 마인드 교육, 직무·인성 교육 등에서 협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천도교도 함께 알려지고, 강원도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강원 지역의 동학 유적을 잇는 ‘동학길’ 사업과 2027년 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준비 중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큰 축 중 하나가 ‘강원 동학길’ 역사 투어예요. 원주–홍천–인제 권역, 홍천–평창–횡성 권역, 홍천–고성–강릉 권역, 홍천–영월–정선–원주 권역으로 나누어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를 구상하고 있어요. 단순히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수준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과 시천주·삼경사상, 인내천·사인여천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설계 중입니다. 특히 2027년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해월 선생 평전을 쓴 분들의 책을 거의 다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월 신사의 삶과 사상을 담은 선양극·뮤지컬 시나리오를 세 편 정도 써 두었고, 앞으로 검토를 받아 무대에 올려보려 합니다. 해월 선생이 걸었던 길을 실제로 따라가며, 공연과 강의, 명상과 음악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해월의 길을 따라서’라는 이름으로 강원도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목표예요. 이 과정에서 춘천교구, 원주교구, 강릉교구 등 강원 지역 천도교 교구들과의 네트워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각 교구가 지닌 역사와 인적 자원을 살리면, 교구 입장에서도 창조적인 선도 역할을 할 수 있고, 강원동학21은 종교색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동학·천도교의 가치를 넓게 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 여러 자리에서 “정치는 멈춰도 동학 정신은 멈출 수 없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동학 정신은 어떻게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동학은 1860년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창도하신 이후, 해월 최시형 선생,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 이어지는 차원이 다른 생각의 가치혁명이었습니다. 희망이 거의 없던 시대에 ‘하늘이 사람 안에 있다(시천주·인내천)’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이었죠. 지금 우리는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누리는 것 같지만, 자기 삶의 주권을 온전히 행사할 자질은 오히려 부족해진 부분을 많이 보곤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면 환경과 타인 탓만 하고, 정치·사회적 문제도 내 마음과는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시천주 사상은 한울님을 모시기 위해 수심정기,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로 세우라고 가르칩니다. 삼경사상은 만물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이걸 오늘의 언어로 정리하면 존엄, 존중,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며 수심정기를 실천하고, 타인과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을 목표로 삼는 것.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소통 이전에 존중이 없습니다. 만나서 각자 자기 말만 하고 돌아가면서 그걸 대화라고 부르기도 해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감정이 앞서다 보니 조율과 조화가 설 자리가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학 정신을 AI 시대, 포스트휴먼 시대의 K-철학, K-동학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인간의 존엄과 마음의 평화, 타인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동학 정신이 오늘의 사회 가치로 뿌리내린다면,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차별, 공동체 붕괴 같은 문제의 뿌리가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 그리고 시민사회나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는 1976년부터 있었지만, 오랫동안 일부 주축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며 조직의 임무와 기능, 목표와 가치가 거의 사장된 상태였어요. 2018년부터 제가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공모사업을 따오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산을 끌어오며 조직의 틀을 새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석면 원주민도 아니고, 여성, 그것도 아줌마라는 이유로 괜한 트집과 반발을 겪기도 했습니다. 서석면 안에만 동학을 가둬두고 싶어 하는 분들은 “왜 홍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느냐, 왜 강원 전체를 이야기하느냐”며 반대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같이 일하자”고 나서는 사람보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거나 트집을 잡고 험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시·군이나 도 단위에서 이 사업을 바라보는 분들은 ‘너무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해 주시더라고요. 사회 문제와 조직 문제로 고민하는 리더들은 동학 정신 계승 사업을 보면서 “우리 지역에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까이에서는 홀대받고, 멀리서는 부러움을 사는 모습이 종종 헛헛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앞으로는 강원동학21 발대식을 계기로, 강원 지역의 뜻있는 인재와 명망 있는 추진위원들을 적극적으로 모실 생각이에요. 시민사회에는 “이건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공동체의 가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지방정부에는 “정신문화의 토대가 튼튼해야 지방자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앙정부에는 동학 정신을 전국적 가치로 확산하는 데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드리고 싶고요. ▶ ‘동학’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기획이 권 대표님만의 강점인 듯합니다. 앞으로 꿈꾸는 음악·예술 프로젝트와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요? 저는 동학을 책 속의 사상으로만 두고 싶지 않아요. 노래와 연극, 클래식과 국악, 뮤지컬, 영상과 유튜브 채널 등 사람들이 실제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형식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이미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러 공연과 강연, 프로그램을 올리고 있고, 이번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클래식과 동학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 음악인들이 “우리끼리만 좋다”고 만족하는 데 머무르면 확장이 안 된다고 늘 말합니다. 예술은 결국 남이 듣고 감동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5년 안에, 강원동학21을 재단법인으로 세우고,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에 맞추어 해월 선생 선양극·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정치·사회·교육·문화·예술 전반에 동학 정신을 녹여낸 가치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21세기형 동학운동’을 거창한 혁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자가 스스로를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고, 그 눈으로 타인과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개벽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명상도 결국은 ‘자기라는 한울이 자기 마음을 경계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이미 동학운동의 현장입니다. 강원동학21이 그 현장에서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강원도에는 동학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느리지만 또 저 같은 분이 나오셔서 이어간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 기억을 남기는 일도 있지만 누군가의 사명으로 넘겨주는게 제 마지막까지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
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 함백산 그늘 깊은 곳, 눈 쌓인 적조암의 토굴에 관솔불이 흔들렸다. 그곳에 해월이 오시니 하늘과 땅이 한 호흡으로 고요해지고, 도접주 유시헌은 그 뒤를 따랐다. 세상은 어지럽고, 사람의 길은 잿빛으로 흐르던 때, 그들은 오직 기도로 길을 찾으려 했다. “하늘은 사람 안에 계시니 스스로 한울을 모시라.” 해월의 음성이 바위 틈새로 스며들자 산조차 숨을 죽였다. 유시헌은 무릎을 꿇고 세상과의 인연을 내려놓았다. 그의 이마 위로 내리는 눈발이 참회의 눈물인 양 흩날렸다. 새벽마다 향을 사르고 49일의 숨결을 쌓아 올릴 때, 기도는 바람이 되고 바람은 빛이 되었다. 전세인, 젊은 사서가 붓을 들었다. 그는 말보다 조용히, 그러나 떨리는 손끝으로 그들의 말씀을 적어 내려갔다. 그 글줄마다 하늘과 사람이 만나는 자취가 깃들었으니, 견봉날인 훗날 세상은 그것을 최선생 도원기서라 불렀다. 사십구일째 되는 날, 태백산맥의 줄기 함백산의 하늘이 열리고 여덟 마리 봉황이 내려와각기 빛을 품었다. 그 빛이 사람의 심장을 스치자 기도하던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하늘의 색으로 번졌다. 해월은 말했다. “하늘의 뜻은 나뉘지 않는다. 사람마다 그 빛을 품을 뿐이니, 그대 또한 한울의 사람이로다.” 유시헌은 그 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삶으로 도를 행하겠습니다.” 그 말이 눈발 속에 사라질 때 적조암의 종이 울렸다. 눈꽃이 천의봉을 덮고 은빛 고요가 산을 감싸며 세상의 소리가 잠들었다. 해월은 조용히 읊조렸다. “도는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속이 곧 하늘이니라.” 그 말씀에 전세인의 붓이 멈추었다. 그는 눈물로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하늘은 사람 안에 있고, 그 뜻은 사랑으로 흘러나온다.’ 세월이 지나 산은 그대로이되 적조암의 돌벽에는 그날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다. 전세인은 노년의 손으로 말했다. “그 기도는 세상을 위한 등불이었고, 그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적조암의 새벽, 누군가 종을 울리면 봉황의 노래가 다시 들린다. 어두운 마음에 빛을 밝히라 그곳에 하늘이 열리리라. 글쓴이 성진 고종호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정선의 정신을 동학에서 찾아야겠다고 자각하고 정선동학선양회를 조직했다. 유시헌의 증손, 동학난중기 등을 개발하며 정선동학의 기초를 이루었으며,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동학에의 열정을 살려 동학아리랑을 새로이 개발, 제작하고 있다. 이 시는 해월 최시형과 도접주 유시헌이 정암사 적조암 토굴에서 드린 49일 기도를 기록한 사서 전세인의 『최선생도원기서』를 바탕으로 적조암을 세 차례 답사한 후 썼다. -
포덕 166년 10월26일 시일식 설교 “시천주로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자”운암 오제운 신태인교구장은 지난 10월 26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식에서 ‘시천주로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자’를 주제로 설교를 하였다. 이번 설교는 일상 속 시천주의 실천과 치유의 힘을 강조하며, 천도교의 핵심 교리인 ‘시천주(侍天主)’의 실천적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성품·정력의 조화를 통해 나와 이웃을 함께 살리는 길을 제시하였다. 일상 속 시천주의 실천 오제운 교구장은 “참된 천도교인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도 하늘님을 모시고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무심(無心)을 버리고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시천주의 실천이며, ‘수심(守心)’과 ‘정기(正氣)’의 지속적인 수련이 그 토대가 된다고 설파했다. 질병 극복과 주문 수련의 치유력 설교 중에는 오 교구장이 직접 체험한 질병 극복 사례가 소개되었다. 병고 속에서도 시천주의 믿음과 주문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했다고 증언하며, “믿음의 힘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되살리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천도교의 수행이 곧 삶의 치유이자 건강의 근본 원리임을 깨닫게 하는 실질적 메시지를 전했다. 궁극의 깨달음, 내 몸과 마음이 곧 하늘님 오 교구장은 설교를 마무리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이 바로 부모요, 시천주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구장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모님처럼 효제(孝悌)와 운공(雲公)의 마음으로 섬길 때, 심화(心和)와 기화(氣和)가 이루어지고,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참된 천도교인이 된다”고 역설했다. 설교의 마지막에서 오제운 교구장은 “부족한 말과 실수가 있었지만 끝까지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하며, “시천주의 믿음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생명으로 깨어나길 바란다”는 축원으로 설교를 마무리하였다. 이번 설교는 바쁘고 불안한 현대사회 속에서 마음과 몸의 균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천주의 신앙이 지닌 실천적 지혜와 치유의 길을 일깨워준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
천도교 경전이 궁금해요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1860년 동학을 창명한 이후 교도들에게 가르칠 자신의 종교적 교의를 담은 글을 지어요. 이 글들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어요. 첫째는 「포덕문」, 「논학문」, 「수덕문」, 「불연기연」 등 동학의 본체를 밝힌, 한문으로 쓰인 글들이에요. 둘째는 「용담가」, 「교훈가」, 「안심가」, 「도수사」, 「권학가」, 「몽중노소문답가」, 「도덕가」, 「흥비가」 등 한글 가사체 작품과 단가 형태의 「검결」 등 교리를 노래로 표현한 것들이지요. 셋째는 한문으로 된 「시문」들과 「결」, 「주문」, 「팔절」, 「필법」, 「축문」, 「탄도유심급」, 「좌잠」 등 수행에 필요한 글들이에요. 이 글들이 쓰인 연대는 우선 1860년에 「검결」, 1860년 후반기 「용담가」, 「안심가」, 1861년 봄에 「포덕문」, 1861년 11월 「교훈가」, 1861년 12월 「도수사」, 「권학가」, 1861년 12월에서 1862년 2월 사이 「논학문」, 1862년 6월 「수덕문」, 「몽중노소문답가」, 1862년 11월 「필법」, 1863년 1월 「탄도유심급」, 1863년 4월 「좌잠」, 1863년 7월 「도덕가」, 1863년 8월 「흥비가」, 1863년 11월 「불연기연」, 「팔절」 등이에요. 「시문」들과 「결」 등은 이 사이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여요. 이와 같은 수운 대신사의 저술들은 후대에 해월 신사가 주도해서, 한문으로 된 글[文]과 한시들, 「결」, 「주문」 등을 합해 『동경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출간해요. ‘동경(東經)’은 ‘동학 경전’을 줄인 말이고 ‘대전(大全)’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뜻이에요. 이때가 1880년(庚辰年)이고 펴낸 장소는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 있는 제자 김현수의 집이에요. 또 가사 8편을 합해 수운 대신사가 도를 받은 ‘용담정’ 이름을 빌려 ‘용담 선생이 남긴 글’이라는 뜻의 『용담유사』를 1881년(辛巳年)에 충북 단양 샘골 제자 여규덕의 집에서 목판으로 출간한답니다. 하지만 「검결」은 수운 대신사가 대구 감영에서 국문(鞫問)을 당할 때 문제가 된 노래여서 처음에는 제외되었다가 후에 다시 『용담유사』에 편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현재 해월 신사가 주도해서 최초로 간행한 경진판(庚辰版) 『동경대전』이나 신사판(辛巳版) 『용담유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계미판(癸未版, 1883년)과 계사판(癸巳版, 1893)이 전해지고 있지요. 이 같은 경전이 판본으로 정착한 과정에서, 해월 신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기(靈氣)로 외워 구송(口誦)한 것을 제자가 받아썼다는 구송설(口誦說)과, 해월 신사가 관의 지목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늘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목판본 후기(後記) 등을 분석해 구송설이 아닌 원본설(原本說)이 제기되기도 해요. 천도교 교령을 역임한 윤석산 전 한양대 교수는 구송설과 원본설을 통합한 절충설을 제기하고 있지요.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모두 동학의 교의(敎義)와 사상을 전달하고 표현한 중요한 경전들임에도 그 표현 양상은 매우 달라요. 그에 담긴 세계관의 차이 때문이지요. 『동경대전』은 당시 지배 계층의 사상이었던 유교적인 인식과 방법이 문장 진술이나 전개, 표현에 많이 원용되었어요. 반면 『용담유사』에서는 당시 기층문화를 이룬 민간 사상, 즉 풍수지리나 도참설, 역(易)사상 등이 많이 원용되었지요. 수운 대신사는 『용담유사』에 민중의 꿈과 이상이 담긴 사상을 담고, 이를 통해 보다 쉽게 자신의 사상을 펴고 고취하려 했어요. 『동경대전』이 한문 문장을 통해 지식층에게 교의와 사상을 전달하고자 한 ‘의미 중심의 경전’이라면, 『용담유사』는 민중들의 꿈과 소망을 담아내며 이들을 감화시키고 한울님이라는 존재를 깨닫게 하는 경전이지요. 이처럼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서로 다른 언어와 형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결국은 하나의 진리, 곧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깨달음으로 귀결돼요. 수운 대신사가 밝힌 진리는 지식인에게는 사유의 혁명이었고, 민중에게는 구원의 희망이었지요. 『동경대전』이 동학의 사상적 체계를 세운 기둥이라면, 『용담유사』는 그 사상을 노래와 언어로 풀어 민중의 삶 속에 스며들게 한 강물이라 할 수 있답니다. 두 경전은 서로의 결을 이루며,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길을 제시한 동학의 근본 정신을 오늘까지 이어오게 한 생명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참고한 자료: 윤석산 지음,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04. -
천도교와 3 · 1운동(22) "3·1독립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암 손병희 성사에 의해 이루어졌다"『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3.1운동의 정식명칭 3.1독립운동 90주년을 맞는 올해(2009년, 편집자)를 맞아 3.1운동의 이름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교과서에 3.1운동을 폭동이라 기술하였다하여 그 시정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일본은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 폭동이란 이름을 버리고 3.1독립운동이라 고쳤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는 아직도 3.1운동이라 하면서 '독립' 두 글자를 넣지 않고 있다. 남들에게는 독립운동이라 부르라 해놓고 자기는 독립운동이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3.1운동은 우리 역사에 있어 무궁화 꽃이다. 3.1운동은 또 우리 민족사에 구심점으로서 그 어떤 다른 역사보다도 자랑스러운 거사로 믿고 있다. 우리 근대사에 3.1운동만큼 의미심장한 역사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 이름조차 제대로 붙이지 않았다면 타고르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 이는 3.1운동을 우리 역사의 여러 강줄기가 모여드는 커다란 호수라고 한다. 마치 백두산 천지 같은 깊은 물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의 결과 태어난 나라라고 명기하고 있다. 독립선언서를 잘 읽어보면 한국만이 아니라 동양 모든 나라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 투쟁한 역사라 하겠다. 우리는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해 독립, 즉 자유를 외친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외친 것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 영국 미국 어떤 나라도 한국의 주권을 빼앗을 수 없으며, 빼앗는 날 세계평화는 깨지고 만다고 엄중히 선언한 것이다. 서울 종로 2가에는 3.1운동이 일어난 성지 탑골공원이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유적지는 사라지고 없다. 왜 서울시 당국은 길을 넓히고 빌딩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리고 동방의 등불을 밝히는 데는 관심이 없는가? 3.1운동 90주년을 맞이하면서 해가 갈수록 빛이 바래가고 있는 서울의 역사정신이 아쉽기만 하다. 3.1운동이 평양에서 1시간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3.1운동의 영광을 버리려하는가 잊지 말고 서서히 반성하라. 3. 맺는 말 3·1독립운동은 일제의 10년간의 가혹한 무단통치로 인한 압제와 경제적 착취는 물론 민족의 자존심마저 유린한 극한적인 상황에서 이천만 민족의 분노가 폭발한 일대 항일운동이었다. 이에 전국적인 강력한 조직망과 300만의 교인을 포용한 천도교가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청사에 빛나는 민족사를 창출하였다. 이 3·1독립운동은 시종일관 이 운동을 영도하신 의암손병희 선생이 중심에 계셨기에 가능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은 천도교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특히 3·1독립운동의 초기단계에서의 천도교의 역할은 이 운동을 결정짓는 절대적 계기가 되었다. 우선 운동의 3대 기본방침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운동자금을 마련하는 일과 운동을 통일화·일원화 시키는 일, 그리고 독립선언서의 인쇄와 배포 등 거의 전반에 걸쳐 천도교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독립운동을 준비한 것이 천도교요, 독립운동 자금의 공급처도 천도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도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를 비롯한 40여개소의 지방 교구가 방화로 소실되었고, 중앙과 지방의 중요 교역자가 구속되고, 일백 수십만 원의 예금을 압수당하였다. 결국 3·1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3·1독립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암 손병희선생의 탁월한 지도력과 포용력, 그리고 현실과 미래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에 의해 이루어진 운동이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대교당 건축을 추진한 것도, 기독교 측과의 연합을 위해 운동자금 지원을 결단한 것도,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를 해마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유지해온 것도 의암손병희 선생의 결단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 3·1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거나 심지어 천도교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마저 있음을 보게 되면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생명과 재산을 바쳐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깊이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연재를 마칩니다. 끝.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2025 민족종교 예술제, 개천절 맞아 마로니에공원서 성황리 개최지난 10월 3일 개천절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주관한 <2025 민족종교 예술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하며,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전통을 되새기고 종교·예술·시민이 어우러지는 축제로 진행됐다. 행사장에는 천도교 청년회가 운영한 체험 부스를 비롯해 각 민족종교 단체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천도교 ‘샘 합창단’은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합창 공연을 선사,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선율로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가 공원 가득 울려 퍼지며,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물들였다. 행사 중 잠시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교인들과 시민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완수했다. 비 속에서도 이어진 공연과 참여자들의 열정은 개천절의 의미를 더욱 깊게 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관계자는 “오늘 행사는 민족의 정신과 신앙, 그리고 예술이 하나로 어우러진 자리였다”며 “내년에는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
청주서 열린 제1회 의암 손병희배 청소년 활쏘기 대회포덕 166년(2025) 9월 19일, 충북 청주시 북이면 금암리에 위치한 의암 손병희 성사 유허지에서 제1회 의암 손병희배 전국 청소년 전통 활쏘기 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사)온깍지협회가 주관하고 국가유산청 ‘전승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추진되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충북교육청이 함께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대회 명칭에 의암 손병희 성사의 이름이 붙음으로써 천도교단이 계승해 온 정신이 새롭게 조명되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날 대회는 우리 민족 전통 활쏘기 문화의 정신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직접 체험하고 계승하는 장이었다. 개회식에 앞서 참가자들은 의암 성사의 영정 앞에 참배하며 그 뜻을 기렸고, 이어진 시사에서는 활터음악공연단이 ‘획창’을 더해 장내의 흥을 돋웠다. 과녁을 맞힐 때마다 울려 퍼지는 “지화자, 겹지화자, 세겹지화자”의 소리는 어린이들의 집중과 기쁨을 한층 북돋웠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활쏘기와 함께 우리 전통의 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초등학교 학생들이 3인 1팀으로 참가해 모두 16개 팀이 기량을 겨뤘다. 단체전에서는 경산 용성초등학교가 1·2·3위를 휩쓸며 저력을 보였다. 개인전 고학년부와 저학년부에서도 용성초 학생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여 ‘국궁 꿈나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을 입증했다. 특히 고학년부 2위 결정전은 대회의 백미였다. 네 명이 동점을 기록한 뒤 세 차례의 비교전을 치르는 치열한 접전 끝에 단 1점 차로 순위가 갈렸다.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았고, 어린 선수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회장 한편에는 한지 글씨 쓰기, 화살깃 붙이기, 조선 시대 무과 급제 홍패 작성,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 부스가 마련됐다. 참가자 모두에게는 조선 시대 홍패 양식을 본뜬 참가상이 수여되었는데, 이는 전통을 잇는 상징적인 선물이 되었다. 학생들은 활쏘기와 더불어 우리의 전통 공예와 예술을 함께 경험하며,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의암 손병희 성사의 이름을 걸고 열렸다는 점이다. 행사를 내내 지켜본 주선자 청주교구장은 “학생들이 행사 전 의암성사 영당에 참배할 때 제가 도우미로 봉사를 했다. 앞으로 이 대회가 계속 이어져 더 많은 청소년이 의암 성사의 숭고한 뜻을 배우고, 더 많은 교인과 시민들이 의암성사 유허지를 찾아 대회의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청년회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특별한 무대 선보인 ‘인내천연합기타반’포덕 166년(2025) 8월 31일, 제106주년 천도교청년회 창립기념일 2부 행사 무대에 특별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음악을 통해 신앙의 기쁨을 나누고, 교인 간의 친목과 조화를 이루는 모임인 인내천연합기타반이 축하 공연을 펼치며, 교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한 것이다. 인내천연합기타반은 수원교구의 장효재, 이윤정, 최은실, 조인숙 동덕과 서울교구 문범식 동덕, 신태인교구 오제운 교구장 등 총 6명이 뜻을 모아 결성한 음악 모임으로 기타합주를 통해 시천주, 인내천, 동귀일체의 정신을 음악으로 실천하는 작은 신앙 활동을 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번 기념행사를 앞두고 멤버들은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연습을 통해 서로 힘을 북돋웠다. 무대에서 첫 번째로 연주한 곡 「나는 반딧불」은 ‘나는 작지만 어둠 속에서 길이 되고 희망을 주는 빛이 되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교인들의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전했다. 이어서 선보인 마지막 곡 「바램」은 ‘서로의 곁에 끝까지 함께 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내어, 행사장을 가득 채운 교인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인내천연합기타반의 노래와 기타 연주를 통해 전해진 울림은 행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천도교청년회 창립 106주년을 맞은 이날, 인내천연합기타반의 합주는 청년정신과 천도교 신앙의 기쁨을 오늘에 되살려낸 상징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