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치바현 관음사 ‘보화종루’와 위령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의 기억을 잇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수많은 희생을 남기고 조선인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동경에는 천도교 해외 거점인 동경종리원이 있었는데, 지진과 화재에도 무사히 보존되어 이재동포위문반의 임시사무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희생자 조사와 피해 동포 구호 활동이 이루어졌다.
1924년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1주기 추도식이 열렸고, 지난 2023년에는 100주기 추모문화제까지 개최했다.
본 연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가진 상징적 기억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일본 치바현에 위치한 관음사에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보화종루(普化鐘樓)’가 자리하고 있다.
‘보화(普化)’라는 이름에는 ‘넓을 보(普)’, ‘될 화(化)’, 그리고 ‘쇠북 종(鐘)’, ‘세울 루(樓)’의 뜻이 담겨 있다.
1982년부터 일본시민사회를 통해 전개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시민운동과 함께 국내에서는 이 '보화종루'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졌으며, 1985년에 이르러 이 종루가 완공됐다. 이어 1998년 9월 24일, 나기노하라에서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발굴되었고, 이 유해는 1999년 세운 위령비 아래에 안치되었다.
보화종루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역사의 아픔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한국 전통 단청으로 장식되어 있어 두 나라의 화합과 기억을 함께 담고 있다.
보화종루, 다시 울리다
20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 시민들의 모금으로 보화종루의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2025년 8월 26일, 보화종루는 새롭게 단장되어 완공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선인 희생자 위령 종루 보화종루 개수완공기념식’이 관음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한 가운데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세키 타쿠마(関琢磨) 관음사 주지의 개안공양(開眼供養)으로 시작해, 살풀이춤 공연이 이어졌다.
이후 야치요시 시장과 다카츠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의 일본 측 인사와, 한국 측 대표로 참석한 유라시아문화연대 신이영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또한 개보수된 보화종루 안의 종을 직접 울리는 타종식과 함께, 개보수에 힘쓴 양국 인사들과 한국의 단청 장인들에게 감사장이 전달됐다.
2부는 본당으로 자리를 옮겨, 치바현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추도 조사실행위원회 와타나베 아키라 대표와 도쿄 한국상공회의소 김순차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후 1983년부터 현재까지 40여 년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오충공 감독이 제작한 사진 슬라이드를 통해 보화종루의 4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마지막 순서에서는 재일동포 탄고단의 사물놀이 공연과 함께 저녁 만찬이 진행되어, 한일 양국의 우정을 다지는 자리가 되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 관동 지역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직후 민심이 혼란해지자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부녀자를 강간했다’, ‘방화와 약탈을 했다’와 같은 허위 소문이 확산됐다.
이를 빌미로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와 경찰, 소방대,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이 사건으로 6천여 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다.
천도교는 당시부터 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모사업에 앞장서 왔다.
(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이어가겠다.)
이동초 천도교 교서편찬위원이 저술한 『천도교중앙대교당 50년 이야기』에 따르면, 1924년 사건 1주기 추모식이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고 전한다.
이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조선 청년들의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기억을 이어가는 현재
이번 보화종루 개수완공기념식은 과거의 비극을 되새기며, 한일 양국이 함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 세대가 기억을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1923년의 아픔을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억하고, 이를 통해 평화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