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천도교·동학 단체 대표자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등과 간담회, 동학서훈법 제정 촉구11월 14일(금) 오전 11시, 동학서훈법 당론 채택을 위한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천도교, 동학단체 대표자들과 민주당 김병기 의원, 안호영 기후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 진성준 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희승 예결위 의원 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을 위한 특별법’(이하 ‘동학서훈법’) 당론 채택을 요청하는 천도교단 및 동학 관련단체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의 간담회가 11월 14일(금) 오전 11시 국회 본관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동학-천도교 단체 대표자들과 국회의원들이 동학서훈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향후 추진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김병기 원내대표 “동학서훈법, 당론으로 패스트트랙 처리” 천도교 및 동학 단체 관계자들은 “131년 전 동학농민군의 희생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며 법안 추진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주선원 동민회 상임의장은 “김병기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가 지연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동학서훈법률안은 당론으로 추진하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박용규 동학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도 “이번 간담회는 법률 제정의 실질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평가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최종 통과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힘을 모아 분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 및 천도교, 동학 단체 대표자 참석 이날 간담회에 국회의원으로 김병기(민주당 원내대표), 안호영(기후노동위 상임위원장), 진성준(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박희승(예산결산위 의원) 의원이 참석했다. 천도교 및 동학 단체에서는 서소연 교무관장(천도교중앙총부), 주영채 상임의장(동학민족통일회), 문영식 명예관장(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의적 이사장(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최현국(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원), 고재국 회장(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최두현 부장(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획운영부), 이용길 회장(충남동학단체협의회), 박용규 상임대표(동학서훈국민연대) 등 10명이 참석하였다.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과장 겸 동학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사진 및 자료 제공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겸 동학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 -
[칼럼] 태안 동학혁명을 기억하는 길지난 10월 29일 『태안동학농민혁명사』가 간행되어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집필자의 한 사람으로 지난 여름 땡볕에 구슬땀을 흘리며 태안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답사한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다. 둘러보니 태안(泰安)은 글자의 뜻 그대로 ‘태평하고 안락한’ 곳이었다. 높고 거친 산이 없이 백화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모습에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해안과 내륙을 겸비한 태안은 전통적으로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태안은 삼한 시대 신소도국(臣蘇塗國)이었다. 삼한은 지금의 직산에 근거한 목지국(目支國)이 통괄했는데, 신소도국은 목지국의 제천행사인 소도를 주관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태안은 신성하고 종교적인 지역이었다. 고려시대 태안으로 이름을 고친 이후 일제강점기 한때 서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에 태안군으로 회복되었는데 그 이유는 동학농민혁명이 거세게 일어났던 곳으로 격하했기 때문이었다. 충청도 서부의 동학은 1880년 공주를 시작으로, 1883년에는 내포의 동학을 이끌었던 삽교의 박인호와 아산의 안교선 등이 입교해 포덕의 발판을 마련했다. 은밀하게 교세를 유지하던 태안을 포함한 내포 일대의 동학은 1890년 들어 급성장했다. 이때 서산의 최형순은 교주 해월이 서산을 방문했을 때 입도해 서산과 태안 일대에 동학을 전했다. 특히 교조신원운동이 한창이던 1893년 2월 박희인 대접주가 그릇 장수로 변장해 방갈리 가시내에서 조운삼을 입도시켰고, 이어 방갈리 갈머리 마을의 문장준, 문장로, 문구석 등을 입도시켜 태인 동학의 중심인물로 키웠다. 물산이 풍부한 태안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고 동학의 시천주와 유무상자의 정신은 태안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태안의 동학은 원북면 방갈리, 근흥면 수룡리, 이원면 포지리가 특히 강했다. 그 이유는 지리적 조건과 신망있는 지도자 등이 갖추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박희인은 방갈리 문구석, 가시내 조문필, 수룡리 문동하의 집에서 동학 교리를 가르쳤다. 태안의 동학도는 보은 장내리의 신원운동에 참여할 정도로 성장했다. 1892~3년 교조신원운동 시기를 거치면서 박인호는 덕의대접주, 박희인은 예산대접주로 임명되어 내포 일대에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다. 동학 세력이 커지자 태안부사 신백희는 충청감사 조병식과 공모해 태안 관내의 동학도로부터 속전(贖錢, 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 6만6천 냥을 강제징수하는 횡포를 부렸다. 조석헌과 문장준을 중심으로 태안의 동학은 2~3년 만에 급성장했다. 태안을 포함한 내포의 동학도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시천주를 가까이 했다. 1894년 1월 고부에서 전봉준이 기포(起包)하자 내포의 동학도는 2월 6일 전직 고관 출신 이정규의 팀힉과 수탈에 저항하는 덕산기포를 감행했다. 내포 최초의 동학농민혁명인 덕산기포는 4월 농민을 괴롭히던 토호 이진사의 응징을 위한 원벌기포로 이어졌다. 태안은 내포 동학의 핵심으로 전라도의 동학농민혁명과 호응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봉준이 전주화약으로 타협한 후 내포의 동학도는 시세를 관망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과 청일전쟁으로 상황이 급변하였고, 평양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군은 조선 정부에 동학군 탄압을 승인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어 전봉준을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삼례에 대도소를 설치했고, 교주 해월은 9월 18일 총기포령을 내렸다. 태안의 동학도는 해월의 총기포령을 기다려 분연히 일어났다. 10월 1일 내포의 동학군은 서산 관아를 점령해 군수 박정기를 처단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태안 관아를 공격해 부사 신백희와 안무사 김경재, 이방 송봉훈을 처단하고 사전에 붙잡힌 동학접주 30여 명을 구출했다. 이후 내포 동학군은 대흥군 관아를 점령하고 홍주성을 차지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홍주 목사 이승우는 예포 대도소를 습격해 어려움을 겪었다. 흩어졌던 태안의 동학군은 10월 15일 태안 경이정에서 재집결했다. 승기를 잡은 관군과 일본군은 내포 동학군을 추격했고, 동학군은 이들을 승전곡으로 유인해 크게 무찔렀다. 승전곡 전투 승리는 일본군에 대한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어 내포 동학군은 관작리 전투에서 승리하고 홍주성으로 향했으나 일본군의 우세한 무기와 전술로 인해 패배했다. 이후 동학군은 해미성, 매현에서 거듭 패했다. 태안의 동학군은 매현 전투 이후 백화산에서 최후의 항전에 돌입했다. 일본군과 관군은 백화산을 포위해 동학군을 고립시켜 몰살시키려 했다. 백화산의 동학군은 동짓달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을 견디며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치열하게 조・일 연합군과 항전했으나 끝내 새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산화했다. 백화산 동학군들은 비록 역부족이지만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태안에서는 대대적인 동학군 체포와 참혹한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지금의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이 있는 백화산의 교장(絞扙) 바위에서는 동학군 수백 명을 붙잡아 10여 명씩 포승으로 묶어 목을 조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백화산 북쪽의 모래기재, 태안여고 개울, 샘골 마을, 남문리 냇가, 정주내 등 여러 곳에서 동학군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근흥면 토성산에 숨어든 동학군은 총개머리로 잔인하게 때려죽였고, 작두로 머리를 잘랐다. 산 아래로 던져진 머리는 집 추녀에 매달았다. 산 사람을 집에 가두고 방화하는 만행도 저질러 토성산은 도살장을 방불케했다. 다소 장황하게 태안을 포함한 내포의 동학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에 대해 아는 이가 적고 한편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동학혁명에서 충청도의 서부 태안에서 전개된 동학혁명은 그에 못지않게 크게 전개되었다. 태안을 포함한 내포 지역에서만 대접주(大接主)가 박인호, 박희인, 최형순, 장세헌, 한영교 등 5명일 정도로 내포의 동학군 조직은 탄탄했다. 태안군에 한정해서 보면 수접주(首接主)가 11명, 차접주(次接主)가 1명, 접주(接主)가 55명, 접사(接司)가 28명, 접장(接長)이 1명이었고, 육임(六任)의 직책으로 도집(都執) 14명, 집강(執綱) 2명, 대정(大正) 3명, 중정(中正) 3명, 이밖에 다른 호칭의 직책 등 동학군을 이끌었던 지휘부만 121명에 달했다. 이처럼 태안의 동학혁명은 장엄했다. 태안의 동학혁명에 관한 내용이 잘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동학군의 기록과 이를 이은 후예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안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조석헌은 『조석헌역사』, 문장준은 『문장준역사』를 남겨 동학군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학혁명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태안은 해방 후 전국에서 대표적으로 동학혁명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곳이다. 1965년 천도교 태안교구 문원덕 교구장은 『갑오동학혁명 당시 순도한 순도자 명단』를 작성했다. 문 교구장과 교인들은 동학혁명 참여자의 후손을 일일이 찾아 당시의 기록을 정리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학정신선양회’를 조직해 태안의 동학혁명을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에 앞장섰다. 태안의 동학군 후예들은 힘을 모아 1977년 교장바위에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을 건립했다. 문 교구장은 토성산에서 동학군의 목을 자르던 작두를 발굴해 천안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이 작두는 동학군 학살의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동학농민혁명태안유족회’를 이끌었던 문영식 등의 노력으로 2015년에는 태안 동학의 중심지인 원북면 방갈리 태안 화력발전소 내에 “동학농민혁명기포지” 비를 건립했다. 60여 년간 꾸준하게 태안의 동학혁명 선양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21년 10월 22일 전국 지자체로는 3번째로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동학군이 순절한 백화산 아래 건립되었다. 그러나 태안의 동학혁명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여름 답사를 다녀보니 아직 태안 동학혁명 유적 가운데 제대로 정리된 곳은 교장바위와 방갈리, 태안 관아 정도 밖에는 없었다. 동학군이 학살된 토성산, 태안 동학군이 집결한 진벌, 동학군이 학살된 모래기재와 개구랑, 통개, 목네미샘, 정주내 등에는 이곳이 동학혁명의 유적임을 알리는 표식이 하나도 없다. 통개에는 고사리손으로 만든 작은 나무 팻말이 하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직 태안의 동학혁명은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안이 동학혁명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태안은 그 어느 곳보다 동학혁명의 역사를 지키려고 애쓴 곳이다. 이제 이에 대한 답을 우리들이 해야 하겠다. 태안 동학혁명 유적지를 연결하는 태안 동학길도 만들고, 백화산 항쟁이 벌어졌던 날 가운데 하루를 택해 “태안동학혁명 기억일”을 만들어 동학군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추모제도 이어 나가자. 다행히 이번에 『태안동학농민혁명사』가 간행되어 그 바탕이 마련되었다. 이번 기회에 태안의 동학혁명을 알리고 기리는 일에 나서자. 태안 동학혁명을 기억하는 일에 나서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던 동학군의 마음과 하나 되자. 그 힘으로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성강현(동의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강사) -
제131주년 제35회 태안동학농민혁명군 추모문화제오는 10월 29일(수) 오전 10시 20분, 충남 태안군 태안백화산 추모탑과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제131주년 제35회 태안동학농민혁명군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박인준 교령이 참석하여 추모사를 할 예정이며, 동학농민혁명 태안군유족회(회장 문영식)와 동학농민혁명 태안군기념사업회(회장 문태식)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행사는 1894년 10월 29일, 일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봉기한 태안 동학농민군의 항일무장투쟁정신을 기리고,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뜻깊은 자리로 마련된다. 특히 올해는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정신을 집대성한 『태안동학농민혁명사』 출판기념 행사가 함께 진행되어,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자주·평등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예정이다. 문영식 회장은 "돌아보니 우리 태안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일은 없었습니다. 동학의 종지 인내천 사인여천 정신을 바탕으로 싸우고 싸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태안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태안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동학농민혁명은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을 위한 투쟁이자, 평화적 삶을 향한 민중의 역사적 외침이었다”며 “131년이 지난 오늘, 그 정신을 다시 일깨워 미래세대에게 계승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일시: 2025년 10월 29일(수) 오전 10시 20분~12시 30분 장소: 태안백화산 추모탑 및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버스운행* 10월 29일(수) 출발시간 07시 30분 / 천도교중앙총부 수운회관 (10시 30분 태안동학기념관 도착) 문의 : 010-6432-5228 (문영식 동학농민혁명태안군유족회장) 이번 행사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다지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동학소년회 , 동학 7일학교 제3기 과정 성황리에 마무리동학소년회는 지난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어린이, 청소년 10명, 교사 6명 총 16명이 동학순례길을 떠났다. 1일차, 다시 만남, 우리는 동학소년회 전국 각지에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씩씩하게 대전역으로 모두 모였다. 작년에 이은 참가자 4명과 신규 참가자 6명은 태안 바닷가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연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는 아이들에게 금방 친해지는 물 놀이터가 되었다. 서로 소개와 청수모심, “나를 살리고 나를 나답게 하는 21자 소리”로 명한 주문하기, 십무천 “나와 세상을 소중히 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는 10가지 다짐”으로 한울님→내 이름 넣기로 명하여 처음 참석한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주문을 병송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합송21번과 묵송으로 번갈아가면서 40분 정도의 수련시간으로 진행하였으며 순례기간 동안 새벽 6시와 저녁 9시에 기도식으로 이루어졌다. 합송은 아이들의 기운을 모으기에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2일차, 횃불로 시작된 최후 항전지 오전 5시 40분 기상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얼굴 찌푸리지 않고 일어나는 신통한 아이들은 6시 기도식과 수련으로 시작하여 택견 몸 수련으로 이어진 아침을 열었다. 감사하게도 2기때 지도해 준 용인대학교 전통무예과 학생 교사가 몸수련 지도를 해주었다. 1기 때부터 몸수련으로 택견을 해왔지만 아이들의 흥미는 매우 높았다. 가장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좋다. 태안 교장바위 추모탑에서 묵념으로 시작한 태안 일정은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방문 기포지 → 통계 → 목넴이샘 → 토성산 순서로 이동하였다. 2기 때 전라도 지역 표지판 작업에 이어 이번 태안에서도 위 세 곳에 표지판 작업이 이루어졌다. 동학군들이 많은 희생이 있었던 장소들이지만 안내 표지판 하나 없는 것이 답사 때부터 안타까웠다. 이를 계기로 태안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문영식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관장님)과 연대하여 표지판 작업을 하기로 했다. 표지판 장소에 미리 풀을 깍고 마을에 허락을 받는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정성으로 표지판이 세워졌다. 우리 아이들은 땀을 흘리며 함께 땅을 파고 세우는 작업을 도왔다.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후일담으로 아이들은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이었다고 했다. 동학군에서 독립운동까지 이어진 선열들 덕분에 우리가 자유대한민국에 있는 것이다. 이 분들의 죽음과 희생을 생각하면서 잠시의 더위는 참고 해낼 수 있다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함께 해준 기특한 아이들... 땀흘리고 먹는 짜장면은 얼마나 달달했을까. 갯벌에서 맨발로 석양을 향해 힘껏 달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3일차, 평등세상을 꿈꾸다. 오늘은 서산을 시작으로 당진까지 이동하는 여정이다. 먼저 서산교구에 도착하여 서산교구 동덕님들의 따뜻한 환대는 우리 아이들의 두 손은 절로 모아지게 하였다. 교당에 어린 한울님들이 찾아온 것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정성을 다해 설명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챙겨주셨다. 너무나 감동스러운 방문이었다. 해미읍성-당진 승전곡전투지-춘암 박인호스승님 유허비-예산 동학혁명기념비 이 길에 함께 해주신 박돈서 공주 교구장님의 풍부한 설명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갔다. 청수를 봉전하고 주문병송으로 예를 다하는 의식도 함께 하였다. 이곳들은 태안에 비해 자세한 안내와 함께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아이들은 과연 이런 역사적인 곳까지 방문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우리 동학소년회가 가야 할길을 한번 더 다짐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순례를 하다보면 힐링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물놀이, 갯벌체험, 예산 출렁다리까지 놀이의 즐거움도 함께 말이다. 4일차, 동학(시민)혁명, 독립운동으로 바쁘게 시작된 마지막 날, 천안까지 이동한다. 천안독립기념관이 가까워지자 이슈화되고 있는 역사학계 사건들로 시위 현장이 펼쳐져 있다. 길게 늘어선 반대 현수막들, 피겟팅으로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 동학7일 학교의 마지막은 항상 8월15일 광복절로 맞추어져 있다. 그 의미는 동학순례와 독립운동의 길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쁘고 축하해야 할 날에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아이들은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독립기념관에서의 만세 삼창은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4일 동안 배운 택견 시범은 작년부터 익힌 아이들 중심으로 짧았지만 멋진 화합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우리가 역사다”라는 의식을 펼쳐보였다. 놀랍게도 10명의 아이들이 천안독립기념관이 처음 방문이었다고 한다. 입시교육에 밀려 역사를 배울 기회를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안타까움이 남기도 하였다. 재미와 즐거움만 있는 프로그램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성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종자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동학7일학교의 목적중에 하나이다. 왜 10명이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는 것에 따른 안전에 대한 염려와 교사와 아이들과의 깊은 소통, 소수의 아이들과 다같이 협력하는 친화력이 장점인 우리 프로그램의 목적은 분명하다. 갈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는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 순례 가운데 역사가 책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나와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와 연결된 의식을 깨우치고, 마음수련으로 나와 세상을 지키는 힘을 키우며, 미래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기회를 주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 2024년 동학7일 학교지만 7일을 다 하지 못했다. 2년동안 지원받던 사업 중단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7일의 일정을 4일로 줄어든 탓에 일정은 다소 빡빡했다. 시간 부족으로 동학혁명에서 민주시민으로 이어진 충분한 토론 활동이 적었던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준 아이들도 너무 고맙고 믿고 보내주신 부모님들, 그리고 현장에서 아낌없이 응원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여러 동덕님들이 있었기에 2024년 동학7일학교를 무사히 잘 마칠수 있었다. 4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발걸음도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우리 동학소년회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사진 및 기사제공 : 동학소년회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장흥 석대들에서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다시 외치다“우리 전국의 동학민주시민들은 마음을 모으고 기운을 합하여 다시 깃발을 세운다. 동학농민혁명을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갈길 잃은 세상에 새 빛을 비추고자 한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의 창립격문의 첫 문장이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동학농민혁명 관련 전국 39개 단체가 참여한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가 지난 12일 장흥군민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 대표자 등 1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에는 천도교 박상종 교령과 김성 장흥군수, 박형대·신민호 전남도의원 등이 참석해 축사와 함께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의 계승과 발전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총회에 앞서 장흥 공원묘지 ‘무명농민군 묘역’에서는 심고 청수봉전, 헌화, 서훈촉구 결의문 낭독을 하였다. 그동안 개별적인 참배는 있었지만, 전국차원의 추모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동학 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공설공원묘지 4묘역에 모였다. 장흥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으로 불리는 4묘역은 1894년 장흥 일대에서 숨진 동학농민군 묘지 1699기가 안장된 곳이다. 참가자들은 ‘남도장군 이방언’ ‘웅치대접주 구교철’ ‘고읍대접주 김학삼’ 등 동학지도자들의 이름이 적힌 만장과 함께 보국안민, 광제창생, 척왜양창의 등의 깃발을 들고 묘역 곳곳에 서 있었고 묘지마다 국화를 놔두며 동학군 영령을 추모하였다. 합동참배는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정의적 이사장의 집례로 이뤄졌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우심 이사의 청수봉전이 이어졌으며 허채봉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의 심고문 낭독을 통해 추모와 위로의 장을 열었다. “이곳 석대들 1700기 묘역의 성령들은 장흥, 순천, 여수, 광양, 무안, 함평, 고흥, 보성, 장성, 진주, 산청, 남해, 하동 등 각지의 고향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겨운 삶을 살았던 우리들의 아버지였고, 우리의 아들이었으며, 우리의 딸이었고, 우리의 어머니, 그 이름은 사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130년이 지난 지금, 이곳, 장흥 석대들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에서 함께하고 있는 ‘우리’가 이제 130년 전 ‘무명’의 그 이름, 동학농민혁명군의 성령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석대들 동학농민혁명군 묘역에서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하라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는 성명서에서 “장흥동학농민혁명군 묘역은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아 묘지라고 부르기도 부끄럽다”며 “정부는 동학과 같은 시기 일어난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 145명을 서훈했다. 똑같이 항일무장투쟁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서훈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촉구하며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지정 6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회에 상정된 2개의 동학서훈법률안이 아직도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동학농민혁명명예회복법(2004)의 규정대로 2개의 동학서훈법률안을 즉각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라”고 촉구했다. ‘소년 뱃사공’의 손자 윤병추 어른에게 듣는 살아남은 ‘동학군들’ ‘소년 뱃사공’ 윤성도(1878∼1965)의 손자 윤병추(92)선생은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쫓긴 동학군을 배에 태워 고금도, 청산도, 금일도 등으로 피신시켜 살렸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동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밤이면 손자에게 그날의 긴박했던 탈출기에 대해 말씀해주셨다는 윤병추 선생은 할아버지 윤성도에 대해 더 많은 동학군들을 살려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안타까워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밝히며 가슴에 품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창립총회 장흥군민회관에서는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창립총회를 열고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장흥 묘역 성역화, 전국적 기념행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단체는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두년 경북 예천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각 준비위원들(조기석, 김명재, 이하윤, 이현종, 고재국, 김봉승, 허채봉)은 2023년 7월부터 전국연대체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번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천도교 박상종 교령은 축하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고, 각종 학술 회의와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 함께 동학혁명의 선양사업에 온 힘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갑진년(20240)은 동학 창도주, 천도교 제1세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 탄신 200주년,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입니다. 이처럼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전국에서 추진하는 기념행사와 학술대회도 중요하지만,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독립유공자 서훈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성 장흥 군수, 전남 도의원 신민호 위원장의 축사와 함께 동학을 노래하는 가수 문진오 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창립총회에서는 정관을 채택하고 고재국 대표(장흥), 권대천 부대표(1871 영해), 사무국장 김명재(순천 영호도회소), 이사(중앙이사 권역 10인과 유족회 1인), 감사는 정효종(남해), 조용호(고창)등이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마지막으로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박홍규 화백의 특강으로 1박 2일 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장흥에서 다시 사람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꿈꾸며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깃발을 든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가 동학정신을 널리 펼쳐가기를 기대한다. 창립총회에 함께한 단체 1871영해동학혁명기념사업회,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고부농민봉기기념사업회,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광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기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남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당진동학농민혁명승전목기념사업회, (사)동대해문화연구소,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준)동학농민혁명선양사업회, 동학뉴스창간준비위원회, 동학농민혁명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 동학실천시민행동, (사)동학혁명북접사업회, (사)동학농민혁명아산기념사업회,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상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예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인시천영양동학해월최시형기념사업회, 옥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가)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장흥취회, 장성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정선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천도교중앙총부,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하동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
[속보]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 서훈 촉구 결의문 발표오늘(20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개최되는 전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워크숍 둘째날 참가자 일동은 다음과 같이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는 긴급 결의문을 채택하고 향후 전국 각 지역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하는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 서훈촉구 결의문에 전 국민의 서명을 받아 정부 관련부처에 전달 할 것을 결의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촉구 긴급 결의문>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제폭구민, 보국안민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복궁 침탈, 군대해산, 고종 억류, 친일정권수립에 대한 척양척왜의 기치로 일어났다. 이는 명백한 국권수호 독립운동에 해당 된다. 그러나 독립유공자 법에도 맞지않는, 독립운동의 기점을 1895년 을미의병으로 정한 보훈부 내규에 의하여, 일반적 독립유공자 서훈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한 서훈은 단 한 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작금의 현실에, 오늘 전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참가자 일동은 통탄한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2010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만들어지고 2023년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된 지금까지도 단 한명의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독립유공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을, 바로잡고자 전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참가자 일동은 다음과 같이 긴급 결의한다. 하나,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하루빨리 서훈하라 하나, 우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한다 하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을 위한 전 국민 서명 운동을 전개한다 2023년 7월 20일 전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참가자 일동 사단법인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 고부농민봉기기념사업회,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예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순천영호도회소기념사업회,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경남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고부관아복원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
문영식 동학농민혁명 태안군 유족회장이 박민식 보훈부장관에게 보낸 호소문 편지최근 문영식 동학농민혁명 태안군 유족회장(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명예관장·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집행위원)이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에게 호소문 편지를 보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문영식 회장은 지난 7.5일 박민식 장관에게 보낸 등기우편 호소문에서 본인의 생각을 여과 없이 솔직한 심정으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의 서훈을 건의하였다. 일명 ‘동학서훈편지’는 국가보훈부 관계부서에서 접수된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유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차동학농민혁명참여자 서훈국민연대와 천도교는 물론 전국의 동학농민혁명유족회·전국의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 관련단체 등 수많은 단체와 인사들에게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이에 이윤영 전주동학혁명기념관장(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공동대표)는 문영식 회장의 동의를 받아 동학서훈촉구호소문편지 전문을 공개하여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현재 국회 정무위와 문체위에서 개정입법 심사 중인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관련 ‘독립유공자예우법 개정안, 동학농민혁명 명예회복 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길 바라면서 또한 국가보훈부에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하는 바이다. 국가보훈부 장관님께 드리는 호소문 존경하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보훈부로 승격됨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으로서 마음 을 간절히 호소 드리고 싶어 장관님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희 증조부 백조부께서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되신 분의 증손 종손녀로서 현재 동학농 민혁명 태안군 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1894년 우리나라는 내우외환으로 인하여 심 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안으로 탐관오 리들의 횡포와 밖으로는 일본을 비롯한 외세 의 위협 속에서 무지렁이 백성들이 나라를 구 하기 위해 갑오동학혁명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보호받지도 못하고 무참히 학살당하고 역적으로 몰려 1960년대까지 산속으로 숲으로 떠돌며 변성명하고 숨어 살면서 모든 삶을 버려야 했습니다. 나라에서는 선열들을 반란을 일으킨 역적이라 국민에게 가르쳤습니다. 다행히 3공화국에서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반란에서 혁명으로 역사를 바꿔주었습니다. 그 후 저희들은 감히 처절하게 가신 선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가시 밭 길을 헤쳐 왔습니다. 70년을 헤매 왔지만 명예회복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1970년대 보릿고개 시절 외부 지원 없이 선열들의 추모비라도 세우자는 여론이 모아져 태안에서 내포지역 민간인들이 겉보리, 보리쌀, 등 모금으로 최초 추모탑을 세웠습니다. 그 추모 비문에는 갑오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되살리고자 한 바람을 담아 작성되었습니다. 태안은 갑오동학혁명 당시 기록한 ‟북접일지”가 있으며 언제 가는 이분들의 보국안민정신이 나라를 위하다 외세에 무참히 희생된 분들이기에 명예회복이 되리라는 예언하고 1960년대 ‟갑오동학혁명순도순국자명부”도작성되었습니다. 이 명부에는 선열들을 무참히 처형시킨 시대의 비극을 알 수 있습니다. 보훈부 장관님!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갑오동학혁명정신 선양하는 일에 빠져 있는 모습이 많이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를 돌아보니 저 역시 미쳐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척왜양창을 부르짖다 역적으로 몰려 희생된 분들을 생각하면 저 역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로서, 이제는 국가 기념일도 지정되고, 기록물로서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하지만 참여자들과 그 유족들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 생각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은 ‘봉건제도의 개혁과 일제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민족정기를 선양하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함을 목적으로 한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의 목적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이지만 명예회복 중 최종 명예회복은 서훈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서훈을 관장하는 보훈부에서 공적심사위원회라는 일개 위원회의 규정으로 적용기점을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만 독립유공자로 서훈 시점을 제한함 은 모순이라 생각합니다. ″일제의 국권침탈″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 침략이었습니다. 국권을 수호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외면하고 1895년 을미의병 참여자만 독립유공자로서훈 함은 불평등 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이에 대해 심사숙고 하여 적용 시점을 앞당기는 것을 건의하고자 합니다. 저는 후손으로서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의 처절한 보복과 희생을 겪은 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고난의 길을 60여 년 살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분들의 명예회복과 서훈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꼭 옳기 때문입니다. 신분 차별 없이 만인이 평등한 사회, 人乃天 事人如天(인내천·사인여천)의 사회는 영원한 정의사회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사회경험도 부족 하지만 감히 장관님께 분에 넘치는 글을 올립니다. 이해하여 주시면 감하겠습니다. 2023년 7월 5일 2차 동학농민혁명 독립유공자 서훈 국민연대 집행위원 -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창립대회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는 오는 7월 8일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창립대회를 열고 부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오후 3시, 인본사회연구소에서 개최되며 창립대회 2부는 특별순서로 '동학을 말하다'에서 오늘날 동학을 지역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낸 대표주자 고창 무장지역 동학기념사업회 진윤식 이사장, 태안동학유족회장으로서 민간인으로서는 처음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준공한 문영식 명예관장을 초청하여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설립되어 있지만 부산에는 존재하지 않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의 창립으로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혁명에 참가한 동학군들의 업적을 기리며 미래세대에 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