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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東學) 연구를 넘어서 천도교학(天道敎學) 정립으로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지구 행성은 급변하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물질문명의 극단적인 발달과 정신적 가치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를 ‘개벽세(開闢世)’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혼돈(混沌, chaos) 속에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류의 새로운 정신적 좌표를 제시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가치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도교의 근본 이념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천도교학(天道敎學) 정립은 시대적 요구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또 현재 모처럼 전국적으로 열기를 띠고 있는 동학 르네상스가 천도교에 대한 관심 혹은 연구(공부)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천도교의 미래와 인류의 활로를 열기 위해 천도교학 정립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대종정의(大宗正義)> 「오교의 신사상시대」를 보면 “우리 (천도)교의 본소(本素)는 가득히 차서 반푼의 더할 것을 요구치 아니하나, 이것을 발표하기는 사상문명으로 현대문명의 선구(先驅)를 지어야 하느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다시 개벽’의 시대, 문명대전환의 시대를 이끌어갈 ‘천도교학’을 정립하여 포덕광제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정립해야 할 천도교학이란 무엇인가? 천도교학이란, 수운대신사가 창명한 천도(天道)와 동학(東學) 그리고 의암성사에 의해 근대적 종교체제를 도입·구축한 천도교(天道敎)의 교리, 역사, 문화, 사상 및 그 실천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교의(敎義)를 넘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정신을 통해 현 시대의 문제에 대한 해법과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 현대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학문이다. 천도교학은 기독교학, 불교학, 도교학 등과 같이 종합학문적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 성과가 축적된다면 이를 다시 분야별로 세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도교학은 그동안의 동학농민혁명 역사 중심의 동학(東學) 연구와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제는 K-컬쳐(=문화)의 뿌리가 되는 K-사상 연구 흐름과 함께 기존의 동학 연구를 넘어서는 천도교학을 연구·정립해야 한다. 동학 연구가 천도교의 뿌리와 발생 배경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천도교학은 그 뿌리를 바탕으로 현대에 살아 숨 쉬는 종교로서의 천도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가치를 학문적으로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천도교학 정립은 천도교를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의 살아있는 종교'이자 '미래 문명의 대안'으로 확립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작업인 것이다. 물론 천도교학 정립 과정에는 기존의 동학 연구의 축적된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엄밀한 문헌비평을 바탕으로 해체(解體, deconstruction)하는 작업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천도교학 체계 정립의 기본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종교학을 핵심으로 하되, 철학,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학문적 방법을 통합하여 천도교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천도교의 핵심 교리(시천주, 사인여천, 후천개벽 등)와 역사(동학혁명, 3·1혁명 등), 조직(중앙총부, 교구), 수행/의례(주문, 시일식 등)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종합적 학문 분야로 정립한다. 마지막으로 천도교 사상이 현대 사회의 문제(환경, 평화, 인권 등)에 제시하는 의미를 찾아 실천적 역할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천도교학은 우선적으로 천도교의 다섯가지 핵심 교리를 중심으로 현대학문을 참조하여 그 내용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천주(侍天主)의 종교학·신학적 정립이다.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이 근본 교리의 신관(神觀)과 인간관(人間觀)을 현대 종교학·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심화해야 한다. 특히 한울님과 인간의 내재적 합일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서구 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보편성과 독창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윤리학적 정립이다.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가르침은 인류 평화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현대 윤리의 핵심 원리이다. 인간 존엄성을 극대화하는 이 사상을 생태 윤리, 사회 윤리 등에 확장하여 적용하는 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문명사적 해석이다. ‘다시 개벽(開闢)’을 통해 오는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의 비전은 시대적 변혁과 새로운 문명 건설의 동력을 제공한다. 이는 미래학, 사회 변동론 등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수양론적 정립이다.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수양법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영성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이는 심리학, 명상학 등의 학문과 연계하여 그 과학성과 실천성을 입증하고 보급해야 한다. 아울러 의암성사의 ‘이신환성(以身換性)’ 수행법과 비교분석하여 천도교 수행법의 변화발전 양상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이웃 종교의 수행법과 비교하여 그 독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궁극적 목표로서의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론이다. 천도교의 최종 목적인 '이 세상에 한울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여 구체적인 사회 개혁 모델과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도출해서 구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천도교의 역사를 철저한 고증(=실증)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 사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공정하게 기술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미흡했던 천도교 제도변천사의 연구·정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향후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천도교백년약사<상권> 이후 중단되었던 교사 편찬을 차근차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 천도교학 정립의 실제적인 방법론은 무엇일까? 우선 천도교 중앙총부 산하에 독립적인 (가칭)천도교학연구원이나 천도교학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대학교를 설립하여 천도교학과를 설치·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현재 운영 중인 천도교종학대학원과 연구소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를 위해 먼저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교단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종교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지원하여, 학문적 객관성과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경전의 현대적 해석(解釋) 및 교재 편찬이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등의 핵심 경전을 현대어로 풀이하고 주석을 달아 일반 대중과 학계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인과 일반인을 교육할 체계적인 천도교학 교재를 편찬해야 한다. 경전의 현대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교인들의 정성과 지혜를 모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높은 번역과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도래할 통일시대를 생각한다면 북한 천도교경전에 대한 비교 연구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천도교종학대학원의 교재로 우선은 ‘천도교학 개론’ 같은 것을 편찬하여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내외 학술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국내외 주요 대학 및 연구 기관과의 학술 교류를 통해 천도교 사상의 글로벌 보편성을 검증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천도교학 학회나 연구회 등 연구 네트워크를 조직·운영해야 한다. 물론 현재 운영 중인 동학학회와 연계하여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각 분야(교리, 교사, 의례, 사상사 등)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천도교학 총서'를 발간하여 학문적 권위를 확보하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이와 함께 천도교의 예복, 노래(천덕송과 송가), 건축 등 종교 예술과 문화적 표현을 분석하여 한국 종교 문화사 내에서의 위상도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천도교학 정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종교적 정체성 및 위상 강화이다. 학문적 기반 위에 교리가 정립되면, 천도교는 근대적 민족 종교라는 역사적 수식어를 넘어 현대 인류 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는 종교로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둘째, 대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정립된 학문적 논리를 바탕으로 교육, 윤리, 환경, 통일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천도교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참여와 영향력이 크게 증대될 것이다. 셋째, 천도교 세계화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인내천, 사인여천 등 천도교의 보편적 가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국제 학계에 소개함으로써 천도교의 세계화를 위한 단단한 발판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천도교학’ 정립으로 용시용활(用時用活)해야 할 시점이다. ‘다시 개벽(開闢)’의 정신은 단순히 과거의 구호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는 천도교의 생명력이다. 지금은 천도교학 정립을 통해 천도교의 빛나는 사상을 현대 학문 체계 안에서 새롭게 부활시켜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다시 개벽'의 시점이다. 교단과 학계, 그리고 모든 동덕들이 힘을 모아 천도교학 정립의 대업(大業)에 매진할 때, 천도교는 민족의 구심점을 넘어 인류의 정신 문명을 선도하는 종교(=인류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천도교학 정립,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요 우리의 소명이다. 글 박돈서(선도사, 공주교구장, 감사원장대행) -
[칼럼] 수운대신사 탄신 201주년의 다차원적(多次元的) 의미올해 10월 28일은 동학·천도교를 창명한 제1세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水雲 崔濟愚 大神師) 탄신 201주년을 맞는 매우 역사적인 날이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출현을 넘어, 혼란과 절망의 시대를 넘어 인류의 새로운 정신 문명을 열어젖힌 ‘다시 개벽(開闢)의 선언’이자 ‘시천주(侍天主) 시대의 서막’이었다. "사람의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진리는,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동양의 오랜 문화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우리 땅에서 꽃피운 ‘자생적 근대화의 원천’이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이 지닌 심오한 의미를 우주적, 지구문명적, 한국사적, 현대적, 미래적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깊이 있게 되새겨보고자 한다. 먼저 우주적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한마디로 ‘한울님의 강림과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선포’라고 말할 수 있다. 수운 대신사의 탄생은 우주적 차원의 거대한 전환을 예고한다. 1860년(경신년) 수운대신사가 상제(上帝,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은 것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와 진리가 인간 세상에 현현(顯現)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천명(天命)의 재확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유교적 이념 속에서 추상화되었던 '하늘'을 인격적인 한울님으로 재정립하고, 그분과의 직접적인 종교적 (신비) 체험을 통해 '천명'을 새롭게 받았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 영원히 존재하는 신성(神性)인 천주(天主), 즉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 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다시 개벽(開闢)’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운대신사는 우주의 순환이치에 의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도래를 예언하며, 낡은 질서와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도덕 문명이 열릴 것임을 선포하였다. 이는 단순한 서구적인 종말론이 아닌,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통해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는 능동적인 개벽 의지였다. 다음으로 지구문명적 차원에서는 ‘문명사적 위기를 극복할 동학(東學)·천도교의 창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은 서양 열강의 침탈이 극심해지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였다. 서양의 과학 문명과 천주교(=서학西學)가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들던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수운대신사는 동학(東學)·천도교를 창명하였다. 이는 서학에 대한 동학·천도교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동학·천도교는 서학에 대한 자주적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서학이 하늘의 권위를 교조적으로 강조했다면, 동학·천도교는 "그 도(道)는 같으나 이치(理)는 다르다"며 내재적 천(天) 사상인 시천주를 통해 민족적 자존을 지켜내고자 했다. 또한 이는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라고 설명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는 유(儒), 불(佛), 선(仙)의 삼교 회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존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드높이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제시했다. 이는 동양 정신 문명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지구적 차원의 정신 혁명이었다. 셋째, 한국사적 차원에서는 ‘민족 자주 정신의 고취(鼓吹)와 만민 평등의 기치(旗幟)’로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은 봉건 사회의 모순과 외세의 위협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자주와 평등의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것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운 것을 말한다. 수운대신사는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보국안민)", "널리 창생을 구제한다(광제창생)"는 기치를 내걸고 사회 변혁을 위한 종교적 실천을 시작하였다. 이는 당시 백성(=민중)과 유리된 봉건 지배층의 사상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진정한 민본주의 사상이었다. 또한 이는 신분 타파와 인간 존중을 의미한다. 시천주 사상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절대적인 만민 평등 사상으로 직결된다.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존엄한 존재임을 천명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신분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사회혁명(=사회개벽)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운동 등 근대 민족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넷째, 수운대신사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시천주, 다시 개벽, 인내천’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수운대신사가 선포한 사상은 1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시천주(侍天主)’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정신 문명의 회복과 마음의 평화’라고 표현할 수있다. 시천주는 외부에 존재하는 신이 아닌, 내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그분의 지혜와 덕을 스스로 실현해 나가는 내재적 신앙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하고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자주적인 정신 문명을 확립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구도의 길을 제시한다. 수운대신사가 가르친 주문(呪文)과 심신 수련법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증진과 인격 수양에 큰 도움을 준다. 시천주 주문을 통한 한울님과의 합일은 곧 참된 자아의 발견이며,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 다음으로 ‘다시 개벽(開闢)’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과 지속 가능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가 제시한 ‘다시 개벽’ 사상은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가 낳은 ‘인류세(人類世)’의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 살림의 철학을 내포한다. 하늘의 조화(造化)가 만물에 내재한다고 보았기에,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모심과 섬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생태적 세계관, 생명 살림의 철학을 제시한다. 동학·천도교의 핵심 교리인 모심(侍)은 한울님을 모시듯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며(養) 살리(生)는 ‘모심과 살림’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는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의 윤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인간 존엄과 민주주의 완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해월 신사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삼경(三敬)을 거쳐 의암 성사의 인내천(人乃天)으로 정립된 사상은 "사람이 곧 한울"임을 선언한다. 이는 모든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인 ‘인간 존엄성’을 종교적, 철학적 차원에서 최고 가치로 확립한 것이다. 이는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인내천은 국가의 주인은 백성임을 뜻하는 후천개벽 사상과 맥을 같이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참된 ‘국민 주권’의 가치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는 상생(相生)의 윤리를 요구한다. 다섯째, 수운대신사 탄생의 미래적 전망은 한마디로 ‘인류 보편의 도(道)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과 동학·천도교의 창명은 인류 미래 문명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동학·천도교는 더 이상 한국만의 종교가 아닌,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진리, ‘인류교(人類敎)’로서 그 가치를 확대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국가, 민족, 종교, 이념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 사상을 통해 인류는 근본적인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서구 물질문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지금, 수운대신사의 ‘다시 개벽’ 사상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후천의 새 문명, 즉 상생적 생태문명(=지상천국)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동학·천도교의 ‘모심과 살림’의 정신은 인류 공통의 위기인 기후 및 환경 문제, 빈곤,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구공동체(=지구행성)을 화합으로 이끄는 지혜의 보고로서 세계에 기여할 것이다. 동학·천도교는 인류가 한울님을 모시고(侍天主), 사람이 곧 한울임을 깨달아(人乃天), 이 세상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개벽세(開闢世)’의 비전을 제시하여 장차 인류의 정신을 인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운대신사 탄신의 의미는 ‘인류 희망의 등불’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수운대신사는 1824년 10월 28일,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동북아의 끝 조선 땅 경주에서 탄생하였다. 태어나는 날 구미산은 3일간 울어 세상에 신인(神人)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수운대신사 탄신의 의미는 어둠 속을 헤매던 인류에게 스스로 한울임을 깨닫고〔自天自覺〕, 새로운 세상〔後天, 지상천국〕을 열어가도록〔開闢〕 ‘희망의 등불’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천도(天道)에 대한 깊은 가르침은 우리 천도교인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나아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진리이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우주시대에 가장 적합한 종교(宇宙敎)인 것이다. 우리는 이 뜻깊은 수운대신사 탄신 201주년을 맞이하여 수운대신사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새기고, 시천주와 인내천의 참뜻을 각득(覺得)하여 새로운 상생적 생태문명(=지상천국)의 건설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공암 박돈서(선도사) -
[칼럼] 정치와 종교, 그 적정(適正)한 거리근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통일교의 정교유착(政敎癒着) 의혹은 앞으로 점점 그 실체가 드러나겠지만 종교계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를 계기로 정치와 종교의 적정한 거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 먼저 정치와 종교 간의 관계 유형을 분류해 보고,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나타난 정교유착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후에 동학·천도교 역사를 정교 관계의 시각에서 개관(槪觀)해 보고 천도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정치와 종교는 인류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 하나는 공동체의 질서와 안정을 책임지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이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조화롭게 기능할 때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이 둘의 관계가 늘 이상적이지는 않았음을 증명한다. 정치권력이 종교의 신성함을 이용하거나, 종교가 정치적 야심을 드러낼 때, 그 위험한 동거는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정교일치(政敎一致)’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종교 지도자가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이다. 중세 유럽의 교황청이나 이슬람 신정국가가 대표적인 예다. 둘째, ‘정교분리(政敎分離)’는 정치와 종교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여 서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셋째, ‘정교유착(政敎癒着)’은 공식적으로는 정교분리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치 권력이 종교를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특정 종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바로 이 세 번째 유형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정치와 종교가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종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11년 제정된 사찰령은 조선 불교를 통제하고 일본 불교의 영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제는 사찰의 주지 임명권을 갖는 등 불교계를 식민 통치의 하위 조직으로 편입시켰고, 일부 불교계는 이에 동조하여 친일 행각을 벌였다. 기독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사참배 강요는 민족의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일부 기독교 교단과 지도자들은 신사참배를 용인하거나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종교의 신념을 버리고 정치 권력에 굴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대일항전기(對日抗戰期)에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종교계가 ‘민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단 조직은 비밀 연락망이 되고, 종교 지도자들은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처럼 종교가 민족의 아픔과 함께하며 저항의 목소리를 낸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해방 이후, 특히 군부 독재 시절에는 ‘정치권력과 종교의 위험한 유착’이 본격화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운동과 같은 체제 동원 사업에 종교계를 적극 활용했다. 교회와 사찰은 정권의 정책을 홍보하고 국민의 정신 무장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1970년대 유신 체제 하에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유신 헌법을 '하늘의 뜻'이라며 찬양하는 등 정치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동시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개신교 민주화 운동 세력 등은 독재에 맞서 저항하며 종교의 사회 참여적 역할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정치와 종교의 유착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일해재단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과 함께 종교계가 막대한 기부금을 강요받았으며, 이것은 군부 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금을 모으는 데 종교가 동원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정경유착(政經癒着)과 함께 ‘정교유착(政敎癒着)’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침묵하거나 심지어 학살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며 종교의 윤리적 역할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1980년대 ‘오대양(五大洋) 사건’이나 ‘용산 참사’와 같은 종교 관련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정치 권력은 종교 단체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된 수사나 해결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종교는 단순히 정치에 동원되는 것을 넘어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특정 대형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의 집권 초기부터 '소망교회 인맥'이 주요 공직에 대거 등용되면서 정교유착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특정 종교에 편향된 정책을 추진하고, 불교계는 이에 반발하여 '종교 편향'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최순실 게이트'는 무속 신앙과 유사한 종교적 요소가 국정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이 창시한 영생교와 관련된 논란은 한국의 종교와 정치 유착이 단순한 제도적 관계를 넘어 개인적 신념과 사적 관계로까지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례였다. 이 사건은 정치와 종교의 건강한 분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요즘에도 특정 종교 단체는 선거 때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조직적 표몰이’에 나섰고,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특정 종교 시설을 찾아가거나 종교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종교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정치의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정치와 종교 간 적정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 단순히 “종교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사회 정의와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적정한 거리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첫째,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종교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를 넘어서,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평화·정의를 위해 사회적 발언을 해야 한다. 촛불집회와 같이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외침에 종교계가 함께하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이지만, 특정 정당의 선거 운동을 돕는 것은 종교의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특정 종교 지도자만을 만나거나 특정 종교 행사만을 참석할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공정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역대 정부에서 최고지도자의 행보가 특정 종교에 치우쳐서 비판 받은 사례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나라는 다종교 사회이다. 따라서 종교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공정한 종교정책을 펴는 것은 종교 간 갈등을 예방하고, 모든 시민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기본이다. 셋째, ‘비판적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 종교는 권력과 단순히 유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연대하여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종교의 본연적 역할이자 사회적 양심으로서의 의무이다. 종교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 혹은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조화롭게 상생(相生)해야 한다. 정치는 특정 종교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기보다, 모든 시민의 삶을 공정하게 보살피는 ‘보편적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정치적 권력을 탐하기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윤리적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지향하는 정교분리는 단순히 정치와 종교를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고유한 가치와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위험한 동거의 유혹을 경계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동학·천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교정일치(敎政一致)’라는 독특한 형태를 보여왔다. 동학·천도교인의 정치적 행위는 창명된 초기에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강했으나, 시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저항, 독립운동,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협력 등으로 변화해 왔다. 동학농민혁명기 (1894) : 혁명과 탄압 천도교의 전신인 동학(東學)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거대한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는 민족적 위기 속에서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 왜와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여 정의를 내세움)'를 외치며 사회 개혁을 요구한 종교적 혁명이자 정치적 투쟁이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동학을 반체제적인 '좌도(左道)'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시기의 관계는 '정교유착'이라기보다는 종교 조직에 기반한 정치적 항쟁과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의 양상으로 보아야 한다. 대일항전기 (1910-1945) : 독립운동의 구심점 대일항전기, 천도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적 정치 행보를 보였다. 1919년 3.1 혁명 당시, 천도교의 3대 교조 손병희(孫秉熙)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며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는 종교가 민족의 자주독립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시기 천도교의 정치 참여는 권력과의 유착이 아닌, 민족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다른 종교의 유착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해방과 남북 분단 이후 (1945-현재) : 극단적 운명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제3의 길(중도)을 걸은 천도교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남북한에서 극과 극으로 갈렸다. #북한에서의 '정치적 위장' : 천도교의 교세는 전통적으로 북한 지역에서 강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종교를 탄압하면서도 정치적 명분을 위해 1946년 '천도교청우당(天道敎靑友黨)'이라는 정당을 허용했다. 이 정당은 실제로는 조선노동당의 하부 조직으로, 북한 정권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다당제 국가'라는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위장(파사드facade)에 불과했다. 이는 종교가 생존을 위해 독재 정권에 종속된, '생존형 유착'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남한에서의 '정치적 소외' : 남한에서는 정권과 유착된 기독교와 불교가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천도교는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며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다. 정치인들의 선거 활동에서 천도교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천도교인들의 정치적 활동은 주로 남북통일 관련 학술대회나 시민단체 활동 등에 한정되었다. 이는 정치 권력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기반이 매우 취약하게 된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천도교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권에 대한 저항(동학농민혁명), 민족 운동의 리더십(3.1 혁명), 그리고 체제에 의한 흡수(북한 천도교청우당의 경우)와 소외(남한 천도교)라는 독특하고 극적인 과정을 거치며 정치와 얽혔다. 이는 권력과 상호 이익을 추구한 다른 종교의 유착과는 다른, 역사적 운명에 따라 형성된 특수한 정교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천도교는 교정일치를 지향하지만 용시용활(用時用活)하여 시대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현시대는 교정분리(敎政分離)가 대세이므로 이에 부응(副應)하면서 ‘개벽세(開闢世)’의 시운(時運)을 타고 최적의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시점에서는 정치계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도교의 4대 목적(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 달성을 위해 중도(中道) 실용주의적으로 지혜롭게 처변(處變)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공암 박돈서(선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