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6.02.26 (목)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직역하면 ‘다른 산의 돌’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다른 산에 있는 하찮은 돌일지라도, 그것을 나의 옥돌을 다듬는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비유적으로 확장하여, 남의 하찮은 언행이나 사소한 일에서라도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학문이나 인격 수양에 도움을 삼는 것을 의미한다.
타산지석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학명(鶴鳴)’이라는 시에서 유래하였다.
‘他山之石 可以爲金昔(타산지석 가이위차), 他山之石 可以攻玉(타산지석 가이공옥)’
해석하면 ‘다른 산의 돌이라도 나의 옥돌을 가는데 쓸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또한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가꾸로 된(부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즉,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 실패, 잘못된 행동 등을 보고 ‘저렇게 해서는 안되겠구나’라는 교훈을 얻어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배움을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배움의 재료가 주로 긍정적이면 타산지석, 부정적이면 반면교사라는 말을 쓰게 된다. 두 가지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타인의 삶에서 배움을 얻는 태도를 강조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근래에 필자는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될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두 권 모두 번역(해석)과 관련한 깊은 교훈을 담고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타산지석’이 될만한 책은 고광스님이 지은 《불교 도장 깨기》라는 책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 20여년간 북방불교를 배우고 다시 10여년간 남방불교를 배운 후에 이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특이한 경력의 고광스님이 지은 책이다.
이 책은 그동안 오랜 세월 철석같이 믿어온 불교 전통의 개념이 잘못되었고, 그 원인은 번역(해석)의 오류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 책인데 실로 전통을 고수하는 불교도들에게는 큰 충격을 줄 책으로 보인다. 그래서 책이름도 《불교 도장 깨기》로 지은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가 ‘의(義)’자에 대한 해석이다. 이 ‘의(義)’자는 지금은 ‘옳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본래 한역불경이 만들어지던 시기에는 ‘틀리다, 옳지 않다’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본래의 의미가 180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불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언어 역시 변천했기 때문인데, 현대인의 언어감각으로 고대인들이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당연히 이러한 오류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제대로 경전의 본래 의미를 해석하려면 고대인이 사용하던 원어의 의미를 추적 복원하여 이해해야만 한다. 이러한 연구방법론으로 어원(語源)을 추적하여 새롭게 경전의 본래 의미를 드러낸 책이 바로 고광스님의 책이다.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 중에서도 고광스님의 견해는 매우 독창적인 면이 있다.
우리 천도교인들에게도 경전 연구에 있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책이 바로 창비에서 펴낸 한국사상선 16, 박맹수 편저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 개벽 세상을 꿈꾸다》란 책이다. 이 책은 서문으로 ‘현대의 개벽을 위한 초석’이란 박맹수 교수의 글이 먼저 나온 후에 세 사람의 핵심저작을 소개하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해월 최시형신사님의 <해월선생문집> 번역문이 167쪽부터 181쪽까지 실려 있다.
그런데 이 책 175쪽에 보면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오역이 나온다. 먼저 그 부분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하여 이달 16일부터 49일 동안 주문 외우기를 백만번 하기로 정하고 주지 스님이 정해준 주문을 외기 시작한 지 35일이 되었다.’
이 번역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以本月十六日 爲始四十九日 誦呪百萬讀爲限 主僧誦準提呪 至五七日(이본월십육일 위시사십구일 송주백만독위한 주승송준제주 지오칠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주승송준제주(主僧誦準提呪)’ 부분이다.
‘주승송준제주(主僧誦準提呪)’를 직역하면 ‘주승(=주지승)은 준제주를 외웠다’가 된다. 준제주를 외운 주체가 바로 주지승이다. 그런데 박맹수 교수는 이 부분을 ‘주지 스님이 정해준 주문을 외운 것’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주지 스님이 동학 도인인 해월신사님과 강수 선생 등에게 주문을 정해주면서 외우라고 시킨 것이 된다. 이것이 맥락 상 올바른 것인가?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번역문이다.
왜 이런 번역 상의 차이가 생긴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열쇠는 바로 ‘준제주(準提呪)’ 석자에 있다. 본래 준제주는 불가에서 많이 외우던 주문 이름이다. 요즘도 《천수경》에 밀교계통의 준제진언이 실려 있다. 따라서 주지 스님이 준제주를 외우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동학도인은 당연히 동학의 주문을 외우고, 불승인 주지스님은 준제주를 외운 것으로 보아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박맹수 교수는 ‘준제주(準提呪)’를 ‘정해준 주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에 따라 뜻이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처럼 오역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필자는 한문으로 된 경전을 공부하면서 해석의 어려움을 느낀 경우가 많다. 한문 원전을 공부할 때는 우선 직역을 해보고 뜻이 잘 안통하게 되면 의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직역을 하려고 하면 먼저 한문 문법을 배워야 하고, 한자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한자는 한글과 다르고 문법 역시 매우 다르다. 또한 한자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뜻이나 용례가 변천해왔다. 따라서 그 시대의 언어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그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복원하여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오역이 나오고 엉뚱한 해석이 생겨서 그것이 그대로 굳어지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을 할 때에는 매우 신중하게 언어학, 역사학, 철학 등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경학(經學, 경전공부)’은 이치공부의 근본이 되는 학문이다. 유교의 경학발달사를 살펴봐도 수많은 학자들의 주석서가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그 이유가 바로 시대적 변천에 따른 재해석의 필요성과 번역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 ‘천도교학’의 정립을 위해서도 경학의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시대와 호흡하는 새로운 ‘해석학’이 절실히 필요다. 시대를 선도하던 소춘 선생이나 야뢰 선생 같은 인물이 나와야 한다.
또한 천도교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경전번역원》을 설립하여 다양한 언어로 경전을 번역하여 세계 포덕에 나서야 한다. 우리 천도교에서도 불교의 ‘구마라습’ 같은 위대한 역경가(譯經家)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 천도교단의 역사가 167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런 인물들이 다출(多出)할 때가 되었다.
해월신사님은 우리 도에서 요순공맹 같은 인물들이 다출한다고 이미 예언하셨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동덕님의 소식은 그런 조짐으로 생각된다.
우리들도 큰 뜻을 세우고 용맹정진하자!
공암 박돈서(선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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