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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탐색, 죽음으로 만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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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탐색, 죽음으로 만나는 삶

  • 전희식
  • 등록 2025.09.24 15:14
  • 조회수 16,203
  • 댓글수 0


나는 그즈음 지독히도 관념의 세계를 탐닉하는 기인 소설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죽음의 한 연구(박상륭. 문학과 지성사. 2020)』였다. 올해만 두 사람의 자살과 참으로 소중한 한 사람의 죽음을 맞았던 터여서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은 일진당 정홍숙 님이다. 내 평생 남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오열을 하고 장지까지 따라가서 통곡을 한 건 처음이다. 마지막이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내게 일진당은 각별하고 각별한 분이시다.


‘죽음의 한 연구’를 갈피마다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는 도중에 또 하나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내가 아는 20대 청년이었다. 그 부모도 잘 안다. 그 지역에 강의하러 가면 그 집에서 자기도 했고 청년과는 식사도 했다. 기가 막히고 숨이 막혔다. 사람의 죽음은 천지 순환의 한 과정이라느니, 소멸은 없고 형상이 바뀔 뿐이며 모든 존재는 형상이 있고 없음을 넘나드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이라고 들어왔다. 죽음에 대한 고담준론을 많이도 나눠봤다. 그러나 현실이 되면 다르다.


청년의 부모에게 위로 전화도 안 되었다. 전화를 꺼놓은 것이다. 새파란 자식을 자살로 보냈으니 전화나 문자마저 조심스러웠다. 며칠 지나서 연락이 닿았다. 또 며칠이 지나서 전화가 왔는데 나를 와 줄 수 있냐고 했다. 아파트로 들어가려는데 겁이 나고 울음이 바쳐서 못 가겠다는 것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목을 맸는데 같이 들어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날짜를 잡고는 먼 길을 네댓 번 차를 갈아타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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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가져간 쑥 ©전희식

 

나는 나름의 준비를 극진히 하고 출발했다. 말려뒀던 쑥을 양손으로 비벼가며 손질했다. ‘티베트 사자의 서’ 해당 페이지와 ‘성령출세설’ 전문을 인쇄했다. 향 대, 초, 쑥 차, 새 다기 세트도 챙겼다.


6시간여 가는 동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우연히 버스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분이 우리 어머니 49재 때 바라춤을 추신 분이셨다. 기차로 갈아타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그 순간에 죽은 청년의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와의 상담이 늦어져 약속 장소에 한 시간여 늦겠다는 것이다. 나는 여유 있게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아파트로 가는 동안에 쑥 향을 피울 라이터를 안 가져온 게 생각나서 다이소 매장에 들어 라이터를 샀는데 장작 아파트에 들어가서 내 짐을 풀자 준비한 각 성냥이 나왔다. 내가 깜빡하고 성냥 챙긴 것을 잊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냥으로 아무리 해도 불이 붙지 않았다. 그래서 사 간 라이터로 초와 쑥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성냥 챙긴 것을 알고 라이터를 사지 않았다면 진혼 의례가 차질을 빚을뻔한 것이다.


식구들은 미리 만나 식사와 차를 나누며 위로를 했고 동의를 구한 방식대로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진혼 의식을 했다. 모든 절차가 잘 끝났다. 청년의 흔적이 있는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엄마는 눈물로 아들을 떠나보냈다.


불교의 ‘광명진언’인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를 108독 했다. 부모가 절에 아들을 모시고 매일 1000독씩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준비한 ‘성령출세설’ 독송은 하지 않았다.


진혼 의식의 준비과정과 진행을 하는 동안 나는 죽음을 살았다. ‘성령출세설’에 대한 걸출한 연구서인 오문환 님 논문을 다시 읽었다. 중앙대교당에서 한 라명재 님의 죽음에 대한 설교도 동영상으로 보았다. (https://youtu.be/GiG7PNrbqlE?si=y6mkA2H2sa2Zz_h_)


내가 6~7년 전에 ‘오마이뉴스 10만 인 클럽’에서 한 죽음 강의 자료도 다시 보았고 어머니 49재 때 우리 집에서 내가 준비해서 내 나름대로 했던 자료와 영상도 다시 들추어봤다(https://cafe.naver.com/moboo/4039?tc=shared_link)


지난 4월에 전생 연구가 박진여, 한국죽음학회 회장 최준식, 서울 의대 교수 정현채, 하버드 의대 이븐 알렉산드 등 종교·예술·의료인 50여 명이 한 <2025년 인간의 사후 의식 존속에 관한 서울 선언>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재작년 동대문구청에서 6개월 동안 진행한 노화와 죽음 잘 맞기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했던 경험도 소환했다. 인하대 의대 학장 임종한 교수와 공저를 냈는데 그때 내가 쓴 글도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와 49재였다.


<죽음의 한 연구>는 바닷가 창녀의 아들인 ‘나’가 어느 선승에게 이끌리어 ‘유리’라는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살인을 하게 되고 그 살인으로 촌장이 되고, 이후 ‘유리’의 계율에 따라 다시 죽음에 이르는 길에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완성하는 이야기이다. 죽음에 대한 완전한 완성을 꿈꾸는 박상륭 작가의 시도가 엿보인다.


우리의 삶이란 크게 둘로 보인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밝게 할 것인가. 또 하나는 어떻게 하면 죽음에 맞선 영혼의 구제이다. 세상에 열과 성을 다하되, 세상 너머의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구원을 이룰 것인가. 박상륭 책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깊은 회의를 바탕으로 영적 구원에 집착한다. 

비운의 천재 작가 조선 중기의 김시습도 그랬다. 그는 꿈과 환상과 현실을 서정성과 역사성에 버무리는 신화 작품을 쓸 수밖엔 없었다.


우리는 오늘도 생과 사의 다리 위에서 몸부림친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 수도승 유리가 지독한 고행을 자처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작품에는 생명은, 녹색은, 영생마저도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 빛을 낸다는 철학의 대칭성이 있다.


일진당 님은 내가 어머니 모신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쌀독은 텅텅 비고 몸과 마음은 비렁뱅이처럼 너덜너덜해 있을 때 천사처럼 오셨다. 내가 사는 장계면 사무소와 동네 이장에게 떼를 써가며 내 집을 알아냈다.


경월당 님과 같이 바리바리 어머니 내의와 먹을거리와 돈 봉투를 들고 오셔서 나를 다른 방으로 가게 하고는 두 분이서 어머니랑 잤다. 밤 새 어머니 뒷수발을 다했고 나는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쪽잠을 벗어나 숙면을 했다. 

내가 만 8년을 어머니와 같이 살 수 있었던 힘이 되어 주셨다. 나는 그때 참 한울님을 만났다고 여긴다.


우리 어머니 49재 때 바라춤 추신 분이 청년의 49재 때도 같은 춤을 추기로했다. 한울의 삶은 죽음을 이기고, 죽음은 한울의 삶을 이어간다. 오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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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목암. 진주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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