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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직동 - 대인접물을 설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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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직동 - 대인접물을 설법하다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직동2리(돌배 마을). 직동로 822(추정)

  • 편집부
  • 등록 2026.01.16 16:32
  • 조회수 7,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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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윗대치에서 이필제와의 연계로 해월 신사는 다시 관에 쫓기는 몸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숨어다니다가, 태백산으로 들어가 14일을 추위와 굶주림으로 보내고 영월 직동(稷洞)의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내려와서 한겨울을 보낸다. 이와 같은 사실을 『도원기서』에서는 다음

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時則九月 序屬三秋 須以行之 登高下底越谷上壁 丹楓蕭瑟 黃葉飄飛 一以觀有水之處 一以擇容膝之巖 掃葉以爲席 結草以爲幕 宵以炮火 晝以伐木 歌唱採薇 飢不適首陽之跡 節比洗耳 羞不堪川之飮 月嫌淸宵 故遮思家之懷 雲蔽白日 空作憶弟之淚 飢眼昏迷 靑山共靜 短腔虛 碧泉盡渴 際虎嘯而起坐 如有勸於敬念 時猿啼而佇立 似有悲於懷人 有何節兮 絶飮不食飮者十日 鹽一掬而盡矣 醬數匙而空也 風蕭蕭而吹衣 露赤身而將何 聲在樹而氣肅 令人懷之 高秋憑念 无到携手上壁 而顧顧相謂曰 兩人之中 誰先誰後 抱落以死於意可也 洙對曰 兄言誰可 死地必

有生隅 吾之兩人 若爲一死 吾之日後之英名 置之十餘年 敬天爲師之道 孰能雪寃而顯名於世乎 姑爲保命不亦宜乎 將以爲行商之儀 飾裝以試之 忍不見其形也 爲其十三日 在民去于嶺南 兩人來于朴龍傑家 是夜三更 朴老見我謂曰 衣之薄着之餘 其間寒苦如何 答曰 如此如此 其老

曰 當此深冬 何往誰救 過冬於吾家如何 答曰 言雖好矣 若爲過冬則 此洞知我者多也 最甚難矣 其老曰掇其內房而在則 誰可知之 對曰 吾非親戚 掇在內房未安 若以老兄之言 則結義如何 其老樂爲結義 明爲始在於內房 而過冬 順興主翁之兄 來爲入道 當臘月主翁 擔一人之服 厥兄擔

一人之服也 明年壬申正月初五日 以悔過之意 作祝文告于天主 初六日主人及洙 自有感古之心 相謂曰 彼雖負我我何負乎 卽往師母氏之家 師母見曰 其間在何處而圖命乎 疇昔之括視尙今記念 兒之不敏 君不過念如何 對曰 過念則何以來之乎 師母氏時爲臥病 米穀艱乏 故送人於順興 

則負米送之矣 不違期日來之也 明日還于在處 而又去順興留之林生來之 故負米以送之 不過幾日 林生再來如有愁色 故主人問曰 去不過幾日 有何故而急來 林生默然良久 答曰 世貞方今捉囚於襄陽 故來也 主人及洙聞其言 驚駭不已 夜不能成寐 明日卽往師家 則師母之氣像 未安措

措慓慓 世淸亦爲惶惶 一室憧憧 全聖文適在其時也 師母曰 若在此則禍將及矣 避厄之道 只在於君等 將何以爲之也 洙曰 爲先家眷移于朴龍傑之家 爲可也

 

때는 9월이요, 절기는 가을이라. 모름지기 길을 떠나, 높은 곳은 오르고, 또 아래로 내려가 계곡을 건너고, 절벽을 오르니, 단풍이 소슬(蕭瑟)하고 누런 가을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한편으로는 물이 있는 곳을 찾고, 한편으로는 무릎이나마 간신히 펼 수 있는(쉴 수 있는) 바위를 찾아 이파리를 쓸어내고 자리를 만들고, 풀을 엮어 초막(草幕)을 지었다.

밤에는 불을 놓고 낮에는 나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고사리를 캐니, 그 굶주림이 수양(首陽)의 자취에 못지않고, 절개는 세이처사(洗耳處士)에 비길 수 있고, 부끄럽기는 영천(潁川)을 마시는 것에 감당할 수가 없다. 달은 맑은 밤을 시기하여 집 생각하는 회포를 막고, 구름은 빛나는 태양을 가려 공연히 동생들 생각을 하게 하여 눈물을 흘린다. 굶주려 눈이 혼미해지고, 청산(靑山)이 한가지로 고요하고, 짧은 창자는 비었고(먹은 것이 없고), 푸른 샘물도 다 말라 버렸다. 범 우는 소리 들릴 즈음에 일어나 앉으니 공경하는 생각을 권함이 있는 것과 같고, 원숭이 우는 소리 들릴 때에 멈추어 일어나니,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픔이 있는 것과 같다. 무슨 절개가 있는가? 마시지 않고 먹지도 못한 지가 열흘이요, 소금 한 움큼도 다 떨어지고 장(醬) 몇 술도 비어 버렸다. 바람은 소슬히 불어 옷깃을 흔들고, 아무것도 입지 못해 헐벗은 몸으로 장차 어떻게 할 것인가? 말소리는 나무에 걸려 있고 기운은 숙연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천고(天高)의 가을에, 생각을 기대어 이를 곳이 없으니, 손을 들어 절벽에 올라 돌아보고 돌아보며 서로 일컬어 말하기를,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하고, 누가 뒤에 할꼬. 끌어안고 떨어져 죽는 것이 좋겠구나.”

하니, 강수 대답해 말하기를,

“형의 말씀이 비록 옳으나, 죽을 곳에서도 반드시 사는 모퉁이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 두 사람이 만약 한가지로 죽어 버린다면, 우리의 일후(日後)의 이름을, 십 년에 두며 하늘을 공경하고 스승을 위하는 도리를 누가 알아 능히 설원(雪冤)을 하며, 세상에 이름을 나타내리오. 아직 목숨을 보조함이 역시 마땅치 않겠습니까?”

장차 행상(行商)을 할 생각으로 행장을 꾸리고 이를 시험해 보니, 그 형상을 차마 볼 수가 없다. 13일이 되어 재민은 영남(嶺南)으로 가고, 두 사람이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왔다. 이날 밤 삼경(三更)에 박 노인이 우리를 보고 말하기를,

“옷을 이렇듯 얇게 입었으니 그간의 추위와 고생이 어떠했겠습니까?”

대답하기를,

“이러이러했습니다.”

하니, 그 노인이 말하기를,

“이렇듯 깊은 겨울을 맞아 어디로 간들 누가 구해 주겠습니까? 우리 집에서 겨울을 보냄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말씀인즉 매우 고마우나, 만약 겨울을 넘기게 되면, 이 동네에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 매우 난처할 겁니다.”

그 노인이 말하기를,

“안의 방을 치우고 안에만 계시면 누가 알겠습니까?”

대답하기를,

“우리는 친척도 아닌데 방을 치우고 우리가 차지하고 있으면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만약 노형(老兄)의 말과 같이한다면, 결의(結義)를 맺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그 노인이 즐거이 결의를 하였다. 다음날부터 안방에서 지내며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순흥(順興)에 주인 노인의 형 되는 사람이 와서 입도(入道)를 하였다. 12월이 되어 노인은 한 사람의 옷을 맡고, 그 형 되는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옷을 맡았다.

다음 해인 임신년(壬申年, 1872년) 정월(正月) 5일에 허물을 뉘우치는 뜻으로 축문(祝文)을 지어 한울님께 고(告)했다. 

6월에 주인이 강수와 함께 스스로 옛날이 돌이켜 느껴지는 그러한 마음이 있어, 서로 일컬어 말하기를,

“저들이 비록 우리를 저버렸으나 우리가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하고 즉시 사모님 댁으로 가니, 사모님께서 보고 말하기를,

“그동안 어디에들 가 있어 목숨을 도모하였습니까? 지난날에 괄시한 것을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불민(不敏)하였으니 아이들을 과히 허물치 마시오.”

하니, 대답하기를,

“지나치다고 생각했으면 어찌 이렇듯 왔겠습니까?”

사모님은 그때 병환으로 누워계실 때였다. 쌀이 없는 까닭으로 날을 기약하고 사람을 순흥(順興)에 보내니, 쌀을 (사람에게) 지워서 보내주었다. 기약한 날을 어기지 않고 쌀이 왔다. 다음날 있던 곳으로 돌아가 또 순흥(順興)으로 가니, 이곳에 머물던 임생(林生)이 왔다. 쌀을 보내온 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임생(林生)이 다시 오고, 얼굴에 근심하는 빛이 있는 것 같아 주인이 물어 말하기를,

“돌아간 지 불과 며칠 만에 무슨 까닭이 있어 이렇듯 급하게 왔는고?”

하니, 임생(林生)이 한참 묵묵히 있다가 대답해 말하기를,

“세정(世貞)이가 방금 양양(襄陽)에서 붙잡혀 갔기 때문에 왔습니다.”

주인과 강수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마지않았다. 밤에 능히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사모님의 기상(氣象) 또한 편안하지를 못하여 초조하게 떨고 있었다. 세청(世淸)이 역시 황황하여 한 집안이 모두 슬픔에 차 있었다. 마침 그때에 전성문(全聖文)이 왔다. 사모님이 말하기를,

“만약 이곳에 있으면 화(禍)가 장차 미칠 것이라. 액(厄)을 피하는 도리가 다만 그대들에게 있으니 장차 어찌하겠소?”

강수가 말하기를,

“먼저 가족들을 박용걸(朴龍傑)의 집으로 옮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 『도원기서(道源記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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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접물기념비 -천도교서울교구여성회에서 세운 해월 신사 대인접물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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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동으로 들어가는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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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동 마을을 찾은 동학 유적지 답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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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신사가 관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던 호랑이 굴

 

한겨울을 난 해월 신사는 먼저 자신의 허물을 비는 참회의 기도식을 한다. 박용걸의 집 뒤를 기도소로 만들어 49일 기도를 하고, 이 기도가 끝나는 날, 한때 이필제의 꼬임에 속아 많은 동학 도인들을 잃고, 또 영양 윗대치의 마을이 풍비박산 난 것을 참회하고 한울님께 비는 참회식을 했던 것이다.

이어서 당시 영월 직동에 모인 동학 도인들을 향해 「대인접물」의 법설을 행한다. 영월 직동에서 행한 「대인접물」의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惡人莫如善待 吾道正則 彼必自正矣 奚暇較其曲直長短哉 謙讓立德之本也 仁有大人之仁小人之仁 正己和人大人之仁心也 以詐交者亂道者 悖道者逆理者也 待人接物 必隱惡揚善爲主 彼以暴惡對我則 我以仁恕待之 彼以狡詐飾辭則 我以正直順受之則 自然歸化矣 此言雖易 體用

至難矣 到此來頭 可見道力矣 或道力未充 率急遽難忍耐 率多相沖 當此時 用心用力順我處我則易 逆我處我則難矣 是故待人之時 忍辱寬恕自責內省爲主 非人勿直 吾非血塊 豈無是非之心 若生血氣傷道故 吾不爲此也 吾亦有五臟 豈無貪慾之心 吾不爲此者養天主之故也 

 

악한 사람은 선하게 대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나의 도가 바르면 저 사람이 반드시 스스로 바화하는 것은 대인의 어진 마음이니라.

거짓으로써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도를 어지럽게 하고 도를 사납게 하는 자요, 이치를 거역하는 자이니라.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접함에 반드시 악을 숨기고 선을 찬양하는 것으로 주를 삼으라. 저 사람 이 포악으로써 나를 대하면 나는 어질고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대하고, 저 사람이 교활하고 교사 하게 말을 꾸미거든 나는 정직하게 순히 받아들이면 자연히 돌아와 화하리라. 이 말은 비록 쉬 우나 몸소 행하기는 지극히 어려우니 이런 때에 이르러 가히 도력을 볼 수 있느니라.  혹 도력이 차지 못하여 경솔하고 급작스러워 인내가 어려워지고 경솔하여 상충되는 일이 많으니, 이런 때를 당하여 마음을 쓰고 힘을 쓰는데 나를 순히 하여 나를 처신하면 쉽고 나를 거슬려 나를 처신하면 어려우니라. 이러므로 사람을 대할 때에 욕을 참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스스로 자기 잘못을 책하면서 나 자신을 살피는 것을 주로 하고, 사람의 잘못을 그대로 말하지 말라. 

내 핏덩어리만이 아니러니 어찌 시비하는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만일 혈기를 내면 도를 상하므로 내 이를 하지 아니하노라. 나도 오장이 있거니 어찌 탐욕하는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내 이를 하지 않는 것은 한울님을 봉양하는 까닭이니라.

- 『해월신사 법설』 「대인접물」


해월 신사는 ‘내 핏덩어리만이 아니러니 어찌 시비하는 마음이 없으리오(吾非血塊 豈無是非之心).’라는 말을 통해 자신을 늘 경계하고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 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 만한 사람이면 스승으로 모신다(孰非我長 孰非我師 吾雖婦人小兒之語 可學而可師也).’라고 하므로 늘 자신을 낮추며 배우는 마음가짐을 중히 여기는 데에 사람을 맞이하고 사물을 접하는 ‘대인접물’의 정신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거짓으로써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도를 어지럽게 하고 도를 사납게 하는 자요, 이치를 거역하는 자이니라(以詐交者亂道者 悖道者逆理者也).’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필제의 교언(巧言)에 속아서 많은 도인을 잃은 사실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월 직동은 깊은 산간 마을이다. 이 산간 마을에서 한겨울을 지낸 해월 신사는 새로이 동학 교단을 일으킬 계획을 한다. 그러나 무작정 계획을 세우는 것만은 아니다. 계획에 앞서 먼저 행했던 일을 돌아보고 깊이 반성하며 한울님께 참회하므로, 이 참회를 통해 새로운 다짐을 한 것이다. 대신사의 가르침과 같이 ‘허물을 뉘우친 사람은 욕심이 중국 제일의 부자인 석숭의 재물이라고 해도 탐내지 않는[懺咎斯人 慾不及石氏之貲]’ 그런 마음의 참회를 먼저 했던 것이다. 

천도교 서울교구에서 세운 ‘대인접물(待人接物)’ 조형물이 직동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이곳이 그 옛날 해월 신사께서 대인접물의 설법을 한 곳이오, 하며 선언하듯 묵묵히 서 있다.

산간 마을이 대부분 그렇지만, 직동 역시 갈 때마다 마을이 조금씩 바뀐다. 그사이 길이 넓어지고, 전원주택이 들어서고 한다. 지금이야 도로가 넓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얼마나 깊은 오지였을까. 태백산 깊은 곳에서 매서운 바람과 추위, 굶주림과 싸우는 한편, 마음속에는 커다란 응어리를 안고 말로 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견디다, 이곳 직동으로 내려온 것이다. 풍비박산이 나고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직동으로 왔지만, 해월 신사는 그 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동학의 재건을 위해 또 한걸음 크게 내디딘, 참으로 뜻깊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대인접물」에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사물을 어떻게 접하느냐 하는 해월 신사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비단 동학의 가르침을 넘어 이 시대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 가르침.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오늘날, 그 가르침의 울림은 더욱더 크다. 

 

수암 염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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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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