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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나와 우리를 다시 찾는 길입니다" 성강현 교구장의 동학 연구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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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은 나와 우리를 다시 찾는 길입니다" 성강현 교구장의 동학 연구와 삶

책 『수운의 길을 걸어 동학을 만나다』 출간

  • 신채원
  • 등록 2025.12.10 20:09
  • 조회수 25
  • 댓글수 0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 어느 날, 성강현 대동교구장을 만났다. 최근 『수운의 길을 걸어 동학을 만나다』(선인)를 펴낸 그는, 출간 소감과 더불어 천도교인으로서, 동학 연구자로서, 그리고 역사 연구자로 살아가는 길에 대해 담담히 들려주었다. 아울러 오늘의 시대에 동학의 가르침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오래도록 품어온 생각들을 차분히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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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신인간사를 찾은 성강현 교구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 ©윤태원

 

문 : 반갑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그동안 포로수용소 내 천도교인들의 활동 연구, 동학과 천도교사 연구, 그리고 근현대사 전반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폭넓은 연구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무엇인가요? 특히 동학과 천도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 ‘수운 최제우의 길’을 따르는 연구를 책으로 묶어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답 : 2024년이 수운대신사 탄생 200주년이라 교단 안팎에서 기념식, 국제 콘퍼런스, 자료집 발간 등 여러 행사가 진행됐지만, 제게는 조금 ‘나와 떨어져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수운대신사 탄생 200주년에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인데, 여기에 나만의 의미를 하나 더 보탤 수는 없을까?” 동학과 천도교가 말하는 ‘인간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제 삶 속에서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고, 답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운대신사 200주년을 기념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수운대신사님의 집안 이야기(정무공, 근암공, 어머니와 가족사), 구도 과정, 동학 창도 이후의 삶, 그리고 이후 안타까운 가족들의 운명을 생애 전반과 유적지를 망라해 정리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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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강현 교구장이 출간한 책 <수운의 길을 걸어 동학을 만나다>를 소개하는 모습

 

문 :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주체적인 실천이 모여 수운대신사 탄생 200주년이 풍성해지고 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이번 신간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책 속에서 수운 대신사의 사상을 대신사의 발자취 따라가며, 오늘의 사회와 신앙 현실에 맞추어 재해석하셨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동학과 천도교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답 :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계기는 “나를 찾는 작업, 우리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역사는 늘 외세에 휘둘리고 간섭받아왔습니다. 그 굴레를 끊는 출발점이 동학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저는 동학을 ‘자주적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K-컬처, K-문화도 결국 200년 전 수운대신사가 이 땅에 와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의 의미를 새롭게 세운 것’에서 시작된 흐름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문제의식은 역사학적으로는 자주적 근대화, 동학과 천도교, 민족운동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또 하나의 계기는 아버지입니다. 아버님이 황해도 금천 출신 천도교인이셨고, 북한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셨습니다. 천도교 포로 연구는 곧 아버지 세대, 북한 천도교인들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서, 대학 진학 때 ‘정 붙일 데가 천도교밖에 없었다’는 아버님의 말이 마음에 남았고, “내가 대학에 가면 동학·천도교를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이후엔 교사생활을 하며 연구에서 멀어졌지만, 형님 성주현 상주전도사님의 “정신 차려라” 한마디에(웃음) 대학원에 진학해 다시 본격적인 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문 : 천도교 포로 연구와 학위 논문은 어떻게 연구하게 되셨되었나요?

답 : 대학원 시절 거제도 포로수용소 답사를 갔다가, 제가 발표에서 “이 포로수용소에 천도교인이 많았다, 활동도 활발했다.”고 말했더니 지도교수님이 크게 관심을 가지시며 “이걸 연구 주제로 삼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자료가 거의 없어서, 석사 논문은 아버님과 또 한 분, 두 분의 구술증언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이후 박사 과정에서는 구술자를 약 열 명으로 늘리고, 미군 측 문서(85포로수용소, 1951년 9월 17일 학살 사건)에 대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구술 증언 중에 “9월 17일에 천도교인들이 희생됐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미군 방첩대(CIC)의 조사 기록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했습니다. 마이크로필름 자료와 구술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역사적 가치가 입증됐다.”는 감각을 강하게 느꼈고, 연구자로서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문 : 선생님이 생각하는 ‘연구 방법론’, 특히 현장 답사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 : 역사 연구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주는 감응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 책에도 적멸굴에서의 경험이나 은적암에서 느낀 것, 손봉조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 등이 담겨 있는데, 현장에 가면 ‘대신사께서 여기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동학을 알고 싶은 분들께는 책에 적어둔 주소들을 따라 직접 답사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연구자의 시각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는 철학의 입장에서, 문학 연구자는 문학의 입장에서, 예술가는 예술의 감각으로 동학과 수운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수운대신사의 수난로, 동학 순례길을 걸어보며 내 삶의 문제의식과 수운대신사의 문제의식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저는 “수운대신사의 수난로를 동학 순례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문 :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연구하시다 보면, 사료가 부족하고 기록에 공백이 있을 때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답 :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적 상상력입니다. 사실과 사실 사이에 생기는 ‘틈’을 어떻게 메워갈 것인가, 그것이 역사 연구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저는 현장에 가서, 이렇게 스스로 묻습니다. “내가 수운대신사였다면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 예를 하나 들면, 대학 때 김개남 대접주의 손자를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모내기를 한창 하고 계셨는데, 그냥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죠. 그런데 “내가 따르는 선배였다면 여기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도왔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열리고, 점심까지 같이 먹으며 집안 이야기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깊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현장 속에서 몸으로 함께하는 행위가, 사료의 틈을 메우는 역사적 상상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문 : 오늘날 학계와 사회에서 동학과 수운대신사의 연구는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시나요?

답 : 많이 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동학은 아직도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정도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자주적 근대화를 이야기하면서 동학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시각의 편향입니다. 외부 학자들은 ‘객관화’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두고 멀리서만 조망하려 하고, 교단 연구자들은 교단의 틀 안에 갇혀 사회화·공론화에 미숙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부 학자들은 조금 안으로 들어오고, 교단 연구자들은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동학 연구가 살아있는 학문이 되고, 사회와도 소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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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 연구자로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동학의 이야기를 계속 정리하고 싶습니다." ©윤태원

 

문 : 여기서 조금 이야기를 넓혀서 여쭙고 싶습니다. 오늘의 시대에 ‘개벽’, ‘시천주·인내천’ 정신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답 : 우리 사회의 갈등은 결국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풀 수 있습니다. 동학의 시천주·인내천은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한가운데에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사 갈등, 환경 문제, 여러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들을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우주, ‘천지부모’라는 인식 속에서 새롭게 바라봐야 합니다.

동학의 가르침인 ‘유무상자’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모두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정신 위에서 삶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돈이 곧 권력이 되어 버렸지만, 동학의 사상으로 세상을 잘 설명해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동학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문 : 앞으로의 연구 계획과, 연구자로서의 다짐을 들려주신다면요?

답 : 저는 역사 연구자로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동학의 이야기를 계속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번 수운대신사 책에 이어, 해월신사, 의암성사, 춘암상사, 그리고 동학혁명, 3.1운동, 민족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자료집과 유적지 소개 형식으로 정리해, 동학을 더 쉽게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나아가 동학·천도교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서술하는 작업도 언젠가 해보고 싶습니다. 이 일은 혼자 할 수 없고, 여러 연구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

무엇보다도 후학으로서 수운대신사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 마음으로, 더 공부하고, 더 연구하고, 더 많은 자료를 찾으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문 :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터넷천도교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기억에 남는 현장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길 바랍니다.

답 : “이 책을 많이 읽어주시고, 널리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꼭 한 가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셔서 수운대신사님의 기운을 한번 느껴보십시오.”

제가 은적암에서 경험한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간 적이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온 다음 날이었는데, 눈을 쓰며 은적암으로 올라갔어요. 바람 한 점 없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은적암에 발을 딛는 순간, 강풍이 확 휘몰아치더니, 이내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아, 정말 이곳이 대신사님께서 공부하신 자리구나.”하는 현장감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책과 연구를 넘어, 우리가 역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강현 프로필사진.jpg
성강현 사진(본인제공)

 

덕암 성강현(역사학자, 대동교구장)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강릉 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의대학교 대학원에서 『6.25전쟁시기 천도교 포로의 전향과 종교 활동애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천고등학교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동의대학교와 예문여자고등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6.25전쟁시기 천도교 포로들의 일상생활』, 『태안 동학농민혁명사』(공저),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과정 1』(공저) 등 다수

 

 

인터뷰를 마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울림이 있었다. 성강현 교구장의 말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동학의 길과 포개지고 깊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고백처럼 들렸다. 동학의 사상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걸음과 질문, 그리고 끊임없는 성찰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성강현 교구장이 말하는 ‘나를 찾는 일, 우리를 찾는 일’은 수운 대신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일이 곧 오늘의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는 일이라는 것. 그 길이 청년들에게, 연구자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진하게 전해졌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뜻하게 남는 인터뷰였다. 앞으로 성강현 교구장이 이어갈 연구의 길과 그 길을 통해 다시 밝혀질 동학의 빛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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