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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릿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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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릿골

순도 이후 대신사께서 처음 묻힌 곳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490-1 (입구)

  • 편집부
  • 등록 2025.12.19 14:17
  • 조회수 60
  • 댓글수 0


대릿골01.jpg
대릿골 입구, 대릿골은 대신사 대묘로 올라가는 산기슭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대릿골02.jpg
수운대신사 묘

 

대신사의 시신을 모신 일행은 자인현에서 사흘을 머문 이후 길을 떠나 경주 현곡면 가정리에 이른다. 지금에 일컫는바 대신사 태묘로 올라가는 오른쪽 산기슭 아래로 작은 마을이 펼쳐져 있다. 이 오른쪽 산기슭 일대를 ‘대릿골’이라 부른다. 

대릿골에서 보면 대신사께서 태어나고 또 자랐던, 가정리 마을이 바라다 보인다. 가정리가 잘 내다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아 대신사의 시신을 모셨다. 국가대역죄인으로 참형을 당하셨기 때문에 봉분도 작고, 또 비석이나 표지 하나 없는 묘를 만들었다.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기록이 있다. “갑자년 3월 보름에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북등 아래 밭에 갔더니, 어떤 세 사람쯤이 북등 작은 밭 위에서 한 시체를 매장하되, 몇 삼태기의 흙으로(數簣土) 겨우 시체를 덮고 무덤의 모양도 다 만들지 못한 채 흩어져 가버리더라.”며 그곳에 사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이렇듯 남모르게 허술한 무덤을 만들어 임시로 매장을 하였던 것이다.

대릿골03.jpg
경주 현곡면 가정리에 있는 수운 대신사 태묘

 

 

이때의 기록이 『도원기서』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翌日發行 卽到龍潭 先生長侄孟倫 從後而來 到安窆于龍潭西原 嗚呼 龍潭亭兮 果爲平地 嗚呼 先生之室兮 子兮 去何疇依 嗚呼 龜尾之奇峯怪石 空帶傷心之色 嗚呼 龍湫之淸潭寶溪 如流涕淚之聲

다음날 길을 떠나 용담(龍潭)에 이르니, 선생의 장조카 맹륜(孟倫)이 뒤따라와 용담 서쪽 언덕에 안장하였다. 아아, 용담정(龍潭亭)이여, 과연 평지(平地)가 되었구나. 오오, 선생의 부인이여, 자식이여, 가서 누구를 의지하리오. 아아, 구미(龜尾)의 기봉(奇峯) 괴석(怪石)이여, 하늘이 상심(傷心)의 빛을 띠었구나. 아아, 용추(龍湫)의 맑은 못과 보계(寶溪)는 눈물 흐르는 것같이 소리 내어 흐르는구나.

- 『도원기서(道源記書)』

 

대릿골에 모신 대신사의 시신을 시천교(侍天敎)에서 포덕 48년(1907년) 오늘의 태묘 자리로 이장을 하였다. 그러나 4년 뒤인 포덕 52년(1911년) 의암 성사가 태묘 참배를 하려고 현지에 도착하자, 현지 주민인 김석현과 김석현이 내세운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증언하기를, 4년 전에 시천교에서 옮겨간 태묘는 남쪽 무덤(南塚)을 잘못 발굴하여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북쪽 무덤(北塚)이 진짜 대신사의 묘라는 증언을 한 바 있다.

이런 기사가 『천도교회월보』 11호[포덕 52(1911)년 5월 발행]에 「서지기사」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의암 성사가 종도들과 대릿골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춘암 상사를 비롯한 교회의 간부들과 찍은 사진도 함께 게재되었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교단이 현행 태묘 진위(眞僞)에 관하여 다툼과 어려움을 겪었다.

 

대릿골05.jpg
대릿골 전경

 

대릿골04.jpg
대신사께서 처음 묻힌 곳에서 의암 손병희 성사와 춘암 박인호 상사께서 여러 천도교 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상복을 입고 앉은 사람이 이 자리가 대신사께서 묻힌 자리임을 증명해준 김수영이다.

 

대신사의 시신이 처음 묻혔던 대릿골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 밖이 되었다. 그래서 경주 용담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용담에 들러 참배를 하고, 가정리에 새로 신축된 대신사 생가에 들려 이곳저곳을 돌아보고는 곧바로 대신사 태묘로 올라간다. 대신사 출세 200년 기념사업 추진위 태묘정비위원회에서 약 2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대신사 태묘를 정비한 결과, 봉분 둘레석이 새롭게 교체되었고 담장도 새로 설치하였다. 무엇보다 비포장이었던 진입로가 콘크리트 길로 정비되었고, 300여 평 규모로 주차장도 마련되어 방문객들이 편하게 참배를 다녀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김성환 연원회 의장의 정성이 많은 도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회를 빌려 대신사 태묘 정비에 애쓰신 모든 동덕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는 한편으로 처음 대신사 시신이 묻혔던 대릿골에 관해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대신사의 후학으로서 대신사께서 참형을 당하시고 처음 묻혔던 그 자리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 수 없다. 대릿골에 서서 대신사의 고난의 시간을 생각하고, 대신사께서 태어나고 성장했던 가정리를 바라보며 대신사 생각을 해보는 것 역시 천도교인들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수암 염상철(守菴 廉尙澈)

염상철.png

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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