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6.01.28 (수)
올해 1월 1일부터 49일기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각급 기관 내지 부문별 수련회가 잇달아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수련하는 시간이야말로 ‘한울사람’과 ‘지상천국’의 실체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은 겪어본 사람들만 아는 일일 것입니다. (주문)수련을 하다보면 강령과 같은 체험의 순간은 ‘뜻밖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시천주(侍天主)의 관점으로 보면, 그 모든 것이, ‘이미 준비된’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해월신사님은 「대인접물」 편에서 “일용행사가 도 아닌 것이 없다(日用行事莫非道).”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학자들은 ‘일상(日常)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성화’를 해월신사님의 대표적인, 그리고 신사님을 ‘평민철학자’로 부를 수 있게 하는 특징적인 철학사상으로 꼽습니다. 해월신사님과 관련된 교사(敎史)의 에피소드들은 해월신사님 얼마나 일상에서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소한 것에서 한울님을 찾아내어 밝혀 주셨는지 증언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베 짜는 며느리 이야기, 어린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이야기 등이 모두 그러한 예입니다. 일용행사막비도의 관점에서 보면 「대인접물」의 팔할(80%) 이상은 ‘일상생활에서 도(道)를 실천하는 것’에 관한 가르침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해월신사님의 다른 법설들도, 고담준론(高談峻論)보다는 일용행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법설의 의미가 ‘일상적인 것’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실상 ‘일상의 성화’는 일찍이 수운대신사님이 가장 강조하신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수덕문」에서 강조하신바 ‘한번 입도식을 지낸 것은 한울님을 길이 모시겠다는 맹세이니 마음을 옮기지 말라.’ ‘의관을 바로 갖추라.’ ‘길에서 먹으면서 뒷짐을 지지 마라.’ ‘네발짐승의 나쁜 고기를 먹지 마라.’ ‘찬물에 갑자기 앉지 마라.’ ‘유부녀를 범하지 말라.’ ‘누워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지 말라.’ 같은 것은 현학적인 종교 교리와는 거리가 먼, 일상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수운대신사님이 관념적으로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신유년에 포덕을 시작한 이후 용담 계곡을 오가는 사람들-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하나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열거한 일상의 사건들은 수운대신사님이 직접 목격한 일들도 있고, 또 대신사님에게 와서 도를 묻는 제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묻는 것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수운대신사 재세시에 제자들이 물었던 물음에는 ‘천령이 강림하셨다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주문을 누워서 외어도 됩니까?” “어제 저잣거리에서 도인 아무개가 웃통을 벗어던진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인 아무개가 ‘네발짐승’의 고기를 험하게 도살하여 먹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들도 많았다는 알 수 있습니다. 해월신사님의 ‘일용행사막비도’는 이러한 수운대신사님의 일상적인 모습과 언행을 용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수운대신사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동학(東學)을 가르쳐서 이루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우부우민(愚夫愚民)이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군자는 당연히 유교('논어')에서 본래 의미하는바 왕족이나 귀족, 또는 조선의 성리학에서 의미하는바 유학의 도학(道學) 풍부하게 수양한 인격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동학에서 군자는 ‘한울님(天主)을 마음속에 모심을 깨닫고(侍天主),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人乃天) 진리를 실천하는 도덕적 인간’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동학의 군자관(君子觀)에 대한 심각한 오인(誤認)을 불러올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 정도의 사람은 ‘도통군자’라고 하거나 ‘성인(聖人)’이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한울님을 모심을 깨닫고, 인내천을 실천하는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 의문입니다.
수운대신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삼년(三年)’ 내에 ‘도성입덕’이 되는 군자는 그보다는 훨씬 ‘일상적인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수운대신사님은 「도수사」에서 계속해서 노래하기를, “급급한 제군들은 인사(人事)는 아니 닦고 천명(天命)을 바라오니 졸부귀불상(卒富貴不祥: 갑자기 부귀하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함)이라 만고유전(萬古遺傳: 아주 옛날부터 전해오는 지혜) 아닐런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사(人事)를 닦는다’는 것은, 얼핏 이해하는 것과 같이 주문수련(만)이 아니라 ‘일용행사’에서 ‘군자지행(君子之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일용행사에서 군자지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문 공부를 통해 강령이나 강화 등의 체험을 거쳐서 ‘시천주’를 ‘깨달아야 한다.’”는 조언(助言)이 뒤따를 테지만, 그 말도 ‘반쯤만’ 맞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주문수련)이 유일한 경로라고 한다면 수운대신사님이 굳이 앞서 인용한 「수덕문」의 여러 계명(誡命)을 나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도교에 입문(입도)하면 마음공부(주문공부)와 이치공부(교리공부)를 겸전해야 한다는 것은 해월신사님이 「수도법」에서 일러주신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두 가지의 기본공부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이 바로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수덕문」의 계명들은 우리가 일용행사에서 지켜야 할 ‘군자지행’의 극히 일부분의 사례입니다. 일동일정(一動一靜), 일어일묵(一語一默), 기거동작(起居動作) 모두에서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서 한울님을 모신 존재들을 대함에 갖추어야 할 예법이 어찌 몇 가지 조항으로 한정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인간의 오만가지 언행에 일일이 규범의 잣대를 마련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교사에 따르면, 수운대신사님이 초창기에 도인들에게 강조한 것은 식고(食告)하는 법도와 출입필고(出入必告)하는 두 가지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해도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밥 먹는 것과 집안을 출입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행동들입니다. 도는 그렇게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 일상으로 귀결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비법이 바로 식고와 심고인 셈입니다. 입도식을 지내는 것은 “한울님을 모시겠다는 중한 맹세”란 것도, 입도식을 지낸 그날부터 ‘일용행사막비도’의 이치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맹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읽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주문수련을 통해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군자라야 주문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성화’는 천도교인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천도교인으로서 자격을 갖추는 출발지인 것입니다. <내가 이미 군자라는 것을 알고 군자>답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밥먹고 옷 입는 것, 절하는 것, 걷고 앉는 것이 ‘일상의 성화’입니다. 지극한 주문수련에 앞서야 하는 것이 ‘일상의 성화’입니다.일용행사가 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박길수 _신인간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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