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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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느낀다『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동학의 지혜를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일상의 삶 속에서 꽃피우는 동학의 길을 함께 사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길을 걸으며 느낀다 길은 덕이 있는 자의 소유이다. 길과 걸으며 대화하라. 넝쿨 같은 그대의 근심도 풀어지리니 건강은 시나브로 찾아온다. 등에 지고 가슴에 안은 자비로운 일, 법의 걸음이 능히 많은 사람을 건지리. <의암성사 : 시문> 나이가 든 요즘엔 걷기를 열심히 한다. 기적의 10cm도 의식하며 보폭을 넓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포덕 166년 10월 5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추석을 맞으며"정윤택 서울교구장, ‘맑고 투명한 한울님 마음’ 회복 강조 지난 10월 5일 천도교수운회관 907호에서 시일식을 봉행하였다. 이날 설교는 명암 정윤택 서울교구장이 맡아, 천도교의 핵심 수행법인 강령 주문과 본주문 수도를 통해 ‘맑고 투명한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정 교구장은 설교에서 “수도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실천이며, 그 마음이 곧 한울님과 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마음의 청정을 회복할 때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참된 신앙의 삶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설교에서는 올해 환원한 성심당 이민진 고문, 고암 한한숙 고문, 인성당 정은벽 고문을 언급하였다. 생전 가르침을 되새기며 일상 속에서 본래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과 대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영적 통찰을 함께 나누었다. 이번 시일식은 바쁜 세상 속에서 잊고 있던 내면의 평화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며, 참석자들은 “강령과 본주문 수도를 통해 한울님 마음을 닦는 삶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
천도교와 3 · 1운동(22) "3·1독립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암 손병희 성사에 의해 이루어졌다"『천도교와 3.1운동』은 천도교중앙총부 교화관에서 발행한 책으로, 3.1운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천도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이창번 선도사가 집필하였으며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상적·조직적 기여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3.1운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함께 천도교가 지닌 민족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로 제공하고자 저자의 동의를 얻어 천도교인터넷신문에서 연재한다. - 편집자 주 - 3.1운동의 정식명칭 3.1독립운동 90주년을 맞는 올해(2009년, 편집자)를 맞아 3.1운동의 이름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교과서에 3.1운동을 폭동이라 기술하였다하여 그 시정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일본은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 폭동이란 이름을 버리고 3.1독립운동이라 고쳤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는 아직도 3.1운동이라 하면서 '독립' 두 글자를 넣지 않고 있다. 남들에게는 독립운동이라 부르라 해놓고 자기는 독립운동이라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3.1운동은 우리 역사에 있어 무궁화 꽃이다. 3.1운동은 또 우리 민족사에 구심점으로서 그 어떤 다른 역사보다도 자랑스러운 거사로 믿고 있다. 우리 근대사에 3.1운동만큼 의미심장한 역사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 이름조차 제대로 붙이지 않았다면 타고르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 이는 3.1운동을 우리 역사의 여러 강줄기가 모여드는 커다란 호수라고 한다. 마치 백두산 천지 같은 깊은 물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의 결과 태어난 나라라고 명기하고 있다. 독립선언서를 잘 읽어보면 한국만이 아니라 동양 모든 나라의 복지와 평화를 위해 투쟁한 역사라 하겠다. 우리는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해 독립, 즉 자유를 외친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외친 것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 영국 미국 어떤 나라도 한국의 주권을 빼앗을 수 없으며, 빼앗는 날 세계평화는 깨지고 만다고 엄중히 선언한 것이다. 서울 종로 2가에는 3.1운동이 일어난 성지 탑골공원이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유적지는 사라지고 없다. 왜 서울시 당국은 길을 넓히고 빌딩을 짓는 데만 정신이 팔리고 동방의 등불을 밝히는 데는 관심이 없는가? 3.1운동 90주년을 맞이하면서 해가 갈수록 빛이 바래가고 있는 서울의 역사정신이 아쉽기만 하다. 3.1운동이 평양에서 1시간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3.1운동의 영광을 버리려하는가 잊지 말고 서서히 반성하라. 포덕 166년(2025)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3.1만세운동 재현 행사 3. 맺는 말 3·1독립운동은 일제의 10년간의 가혹한 무단통치로 인한 압제와 경제적 착취는 물론 민족의 자존심마저 유린한 극한적인 상황에서 이천만 민족의 분노가 폭발한 일대 항일운동이었다. 이에 전국적인 강력한 조직망과 300만의 교인을 포용한 천도교가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청사에 빛나는 민족사를 창출하였다. 이 3·1독립운동은 시종일관 이 운동을 영도하신 의암손병희 선생이 중심에 계셨기에 가능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은 천도교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특히 3·1독립운동의 초기단계에서의 천도교의 역할은 이 운동을 결정짓는 절대적 계기가 되었다. 우선 운동의 3대 기본방침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운동자금을 마련하는 일과 운동을 통일화·일원화 시키는 일, 그리고 독립선언서의 인쇄와 배포 등 거의 전반에 걸쳐 천도교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독립운동을 준비한 것이 천도교요, 독립운동 자금의 공급처도 천도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도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를 비롯한 40여개소의 지방 교구가 방화로 소실되었고, 중앙과 지방의 중요 교역자가 구속되고, 일백 수십만 원의 예금을 압수당하였다. 결국 3·1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3·1독립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암 손병희선생의 탁월한 지도력과 포용력, 그리고 현실과 미래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에 의해 이루어진 운동이다. 독립운동 자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대교당 건축을 추진한 것도, 기독교 측과의 연합을 위해 운동자금 지원을 결단한 것도,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를 해마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유지해온 것도 의암손병희 선생의 결단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 3·1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거나 심지어 천도교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마저 있음을 보게 되면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생명과 재산을 바쳐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면서 깊이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연재를 마칩니다. 끝. 글 지암 이창번 선도사 1934년 평안도 성천 출생 1975년 육군 소령으로 전역 1978년 천도교유지재단 사무국장 직을 시작으로 천도교종학대학원 원감, 천도교종학대학원 교수, 천도교당산교구장, 천도교동명포 도정, 상주선도사, 의창수도원장, 천도교중앙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
[칼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그리스·로마신화 속에 나오는 아리아드네의 이야기이다. 강대국이었던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대단한 정복 군주였다. 그의 위세에 많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고개 숙여야 했다. 아테네 역시 굴복한 국가 중 하나였다. 미노스 왕의 아내는 매우 음탕한 여인이었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다가 어느 날 잘생긴 황소를 보고 반했다. 욕정을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암소의 탈을 쓰고 그 황소와 만났다. 신화 속 이야기이니까 상상하고 들어 보자. 왕비가 임신을 하자 미노스는 매우 기뻐했지만 10달 뒤 태어난 아기는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황소의 모습이었다. 충격을 받은 왕은 왕자를 ‘미노타우로스’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숨겨서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성한 왕자 주변의 신하들이 한 명씩 사라져 갔다. 살펴보니 왕자가 식인의 습성이 있어서 신하들을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괴물을 키우고 있는 왕은 왕자를 깊숙한 미궁 속에 가두어 두기로 결정했다. 뛰어난 장인인 다이달로스가 동원되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아무도 빠져나올 수는 없는 미로의 궁을 만들게 했다. 미궁이 완성되고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그 안에 넣고는 약소국가인 아테네에 해마다 선남선녀 7명씩을 바치게 해 아들의 먹이가 되도록 했다. 아테네는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아테네의 왕자인 테세우스는 분개해 평민 복장을 하고 7명의 남자 속에 숨어 들었다. 크레타에 도착한 인간 먹이들 속의 테세우스를 발견한 아리아드네 공주는 한눈에 반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는 괴물의 먹이가 되기 위해 미궁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밤새 고민에 빠진 공주는 다음 날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한 뭉치의 얇은 끈을 쥐여주었다. 만약에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이 끈을 되짚고 미궁을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밖에서 실타래를 풀어주고 있겠다고 했다. 신화는 용감한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실 끈을 되짚어 나옴으로써 미궁을 탈출한다는 이야기이다.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는 아리아드네 (출처:위키미디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오늘도 나는 주변에 수없이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살고 있다. 특별히 나를 이끌어 주는 천도교의 진리는 그 깊은 맛을 알면 알수록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 도의 진리에 대한 해석과 설명의 차이 때문이다. 경전 해석에서부터 주문 수련법까지, 저마다 자신의 해법과 해석만이 진리라 하고 이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설명에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천도교 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진리의 깨달음을 인도해 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아닐까? 필자는 50대의 왕성할 때 6년간을 천도교종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재직하는 동안에 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부끄럽게도 2년 과정의 커리큘럼 하나 완비한 것 말고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어느덧 60대가 되어 다시 종학대학원에 돌아와 보니 그나마 행했던 나의 보잘것없는 성과에 더욱 고개 숙이게 된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지금껏 교단 밖의 학문의 세계에서만 보내왔던 삶이 여전히 부족하고 특별히 천도의 진리 앞에는 무지한 모습에 초라해지기까지 하다.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교단에 작은 기여라도 한다면 교육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교계에는 여전히 완강한 난법들이 난무하고 고답적인 논리들이 무성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올바른지 그릇된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고사하고 그저 앞세우기 일쑤인 모습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쩌다 우리 도는 이토록 깨달음을 얻은 선생님들이 많은 것인가. 진정한 선생님이라면 더욱더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차분히 동덕들을 대할 텐데. 분명한 사실은 우리 도는 교육의 역할이 부족했고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단의 유일한 교육기관이 천도교종학대학원에서 일익을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더욱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다. 마침 준암 박인준 교령 체제하에서 천도교종학대학원은 실질적이고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명실상부한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기로 했다. 이를 이끌 혁암 김혁태 원장은 새로운 개혁 방안을 만들어 제시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교단의 진리를 제대로 전수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년부터 원·주직 등 교역자들을 위한 특별 전문가 과정이 신설된다. 교역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도의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이어야 하거늘 아쉽게도 그동안 등한시해 왔던 점을 고려할 때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실시할 수 있게 되다니 천만다행이다. 이를 위한 교단의 전폭적인 지원 역시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이기에 본격적인 미로를 벗어날 수 있는 실타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교역자들을 전문 교역자 교육과 함께 기존의 일반 교인 또는 시민들을 상대로 해 오던 교육 과정도 그대로 진행된다. 이전부터 실시되었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전문 교역자 과정이나 일반 과정 모두 교단의 지원으로 진행되므로 한동안 유지되었던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사라지고 전액 무료 교육으로 실시된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함으로써 영웅으로 등장해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모험과 영웅담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가 미로 속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고 해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없었다면 그는 미궁에 갇혀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영웅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역시 미궁을 벗어가 위해서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필요하다. 진리 앞에는 누구도 오만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비록 나의 수준이 높고 오랜 수련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겸허하게 교육의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대신사님께서는 영남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결코 자신을 과시하거나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신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신년 4월 5일 무극대도를 받으셨지만 내세우지 않고 다시 정진하기를 1년 2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들 누구도 대신사님보다 뛰어나지 않음을 알기에 공부와 수련을 하루도 거스를 수는 없다. 천도교종학대학원이 모든 천도교인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되기를 바란다. 년암 임형진 경희대 교수 천도교종학대학원 부원장 -
포덕 166년 9월 28일 중앙대교당 시일설교 "실천하는 천도교인이 되자"혜원당 김춘성 선도사, “밥 한 그릇의 이치 속에 깃든 진리를 보라” 혜원당 김춘성 선도사는 지난 9월 28일 시일식 설교에서 ‘실천하는 천도교인’의 자세를 주제로 깊이 있는 설교를 전했다. 이번 설교는 신앙 지식의 축적을 넘어, 한울님을 생활 속에서 모시고 매 순간 감응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김춘성 선도사는 “한울님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밥 한 그릇을 먹는 그 이치 속에서도 한울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고 전하며, 일상 속 모든 만사에 깃든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천도교인의 참된 길임을 설파했다. 또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현대적 언어로 진리를 풀어내고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인이 될 것을 당부했다. 이어 “지식으로만 머무는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 삶 속에서 체험하고, 서로 감응하며 변화시킬 때 비로소 천도교의 길이 세상 속으로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설교는 지식과 삶이 하나 되는 실천의 신앙, 그리고 각자의 삶과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들어가는 영적 지혜를 일깨워 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