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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암 박인호 상사 승통 118주년 도일기념식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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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뉴스

춘암 박인호 상사 승통 118주년 도일기념식 봉행

“축성의 의암, 수성의 춘암… 교단을 굳건히 지켜낸 상사”

  • 박길수
  • 등록 2026.01.19 12:20
  • 조회수 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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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준 교령은 포덕 167년 1월 18일, 제118주년 도일기념일을 맞아 기념사를 발표하고, 춘암상사님이 평생 여일하게 그러하셨듯이 “하루빨리 천심을 회복하고 통일된 세상에서 평화롭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심고”한다고 밝혔다.

 

“의암성사와 춘암상사의 관계는 ‘축성(築城)’과 ‘수성(守城)’의 관계입니다. (동학)혁명 이후 흩어진 교단을 수습해 다시 세운 분이 의암성사라면, 그 교단을 성장시키고 굳건히 지켜낸 분은 바로 춘암상사라 하겠습니다.”

박인준 교령은 포덕 167년 1월 18일, 제118주년 도일기념일을 맞아 기념사를 발표하고, 춘암상사님이 평생 여일하게 그러하셨듯이 “하루빨리 천심을 회복하고 통일된 세상에서 평화롭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심고”한다고 밝혔다.(<기념사> 전문 하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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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녀 여성회본부 부회장이 청수봉전을 하는 모습

 

춘암 박인호 상사 승통일인 제118주년 도일기념일을 맞아 포덕 167년 1월 18일 오전 11시 서울과 전국 일원에서 기념식이 봉행됐다. 중앙총부 주관으로 중앙총부본관(다목적홀, 수운회관 지하1층)에서 서울 인근 교인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 도일기념식은 교회의식에 따라 개회하여(청수봉전 이정녀 여성회본부 부회장), 경전봉독(신앙통일과규모일치, 김명덕 여성회본부 회장), 천덕송합창(기념송1-3), 기념사, 천덕송합창(도일기념가1-2) 순으로 진행되었다. 식후에는 ‘샘'연합합창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천도교 4세 대도주 춘암 박인호 상사님은 포덕전 5년(1885) 충남 덕산군 양촌면 막동에서 탄신하여 포덕 24년(1883)에 목천으로 해월신사를 찾아뵙고 입도한 이후 해월신사의 명으로 의암성사와 함께 공주 가섭암에서 49일 기도를 한 이후10년 독공을 매진하셨다. 이후 광화문복합상소, 보은취회에 적극 참여하셨을 뿐 아니라 동학혁명 때는 덕의대접주로 수만의 동학군을 지휘하셨다. 의암성사님이 해월신사로부터 도통을 승계한 이후에는 “춘암은 내(의암) 사람”이라는 말씀을 들을 만큼 보필에 충실하였고, 포덕 49년(1908) 1월 18일 대도주직을 승통하고, 교단을 이끄셨다. 의암성사를 모시면서 각급 학교의 지원, 운영을 주도하였고, 교단 제도를 정비하여 안착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포덕 60년(1919)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48인으로 옥고를 치르시고, 이후 교단 분열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서도 굳건히 원칙을 지켜내시다가, 포덕 81년(1940)년 4월 3일 환원하셨다. 박인준 교령이 기념사에서 밝힌 대로 춘암상사는 스승님(해월, 의암) 재세시나 홀로 교단을 이끌 때나 스승님들의 가르침과 뜻을 올곧게 지켜, 일제강점기라는 암흑의 시기를 견디며 건너올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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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도일기념식은 시일인 덕분으로 예년에 비해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모처럼 풍성한 분위기 속에서 봉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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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공연은 ‘샘'연합합창단 외에 청년회(회장 이상미)와 대학생단(단장 조화정)의 회원 및 단원 8명이 함께하여 교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날 도일기념식은 시일인 덕분으로 예년에 비해 많은 교인들이 참석하여 모처럼 풍성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특히 식후공연은 ‘샘'연합합창단 외에 청년회(회장 이상미)와 대학생단(단장 조화정)의 회원 및 단원 8명이 함께하여 교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연곡은 ‘개벽행진곡’ ‘한울세상’ ‘주문의 노래’이었으며, 교인들의 앵콜 요청에 따라 ‘샘’을 선곡하여 모든 교인과 함께 부르며 대미를 장식하였다.  

 

 

다음은 이날 박인준 교령이 발표한 기념사의 전문이다. 

 

기 념 사

 

공경하는 국내외 동덕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춘암상사께서 의암성사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아 천도교 제4세 대도주가 되신 지 118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도일기념일입니다.

춘암상사의 아명은 용호(龍湖), 자는 도일(道一)이십니다. 포덕 전 5년(1855) 2월 1일 충남 예산군(당시 덕산군) 가야산 남쪽 막동리에서 부친 박명구와 모친 온양 방씨 사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상사께서는 10세의 늦은 나이에 한학에 입문하였으나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접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심신이 건강하고 근면했던 상사께서는 농사일은 물론 기골이 장대하여 씨름판에서도 이름을 날렸고, 걸음이 빨라 축지법을 쓴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천성이 순박하고 과묵하셨던 상사께서는 틈나는 대로 글을 읽고 사색하며 청년기를 보내셨습니다.

당시는 국내외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천도교는 인간 존엄과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민중의 정신을 일깨우고,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서 새 시대로 나아갈 희망의 길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상사께서는 천도교를 믿으면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질병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29세 되던 포덕 24년(1883) 3월, 목천에 계시는 해월신사를 찾아가 입도하셨습니다.

이후 포덕 25년(1884), 춘암상사는 해월신사, 의암성사와 함께 공주 가섭암에서 49일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때 해월신사께서 <강시(降詩)>와 <강서(降書)>를 받으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상사께서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음을 깊이 자각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상사께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어육주초를 끊는 등 지극한 정성으로 수도에 매진하셨습니다. 낫자루를 베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깨어 주문을 외우기를 10년이나 하셨고, 논밭을 갈 때도 갓과 망건을 풀지 않았습니다.

또한 매달 해월신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으면서 포덕에 정성을 다하여 내포 지방에 입도한 도인이 수천 명에 달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스승에 대한 예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농사짓는 사람의 옷차림이 어찌 그러한가?”라고 물었으나, 상사께서는 “한울님은 정성이 지극한 사람에게 가까우니, 몸의 불편함은 한울님 은혜에 비하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하시며 흔들림 없이 정진하셨습니다.

구한말, 정부의 무능과 외세의 침략이 거세지자 천도교는 민중 해방과 반식민지화를 위한 구국 운동으로 타올랐습니다. 춘암상사는 포덕 34년(1893) 광화문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시고, 보은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운동에서는 ‘덕의대접주’에 임명되어 내포 지역 동학도들을 이끌었습니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상사께서는 「천불변 도역불변(天不變道亦不變)」과 보국안민, 광제창생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대장기에 <덕의대접주 박인호>라 쓰고 지휘하니 수십만 동학군의 주문소리가 천지에 진동했습니다.

포덕 39년(1898) 1월, 상사께서 의암성사와 함께 해월신사께 신년 문후를 드렸을 때입니다. 신사께서 흰 꿩 한 마리로 의암성사와 겸상을 차려 주시며 ‘서로 일치(一致)하라’는 묵교(黙敎)를 내리셨습니다.

이를 깨달은 상사께서는 비록 연장자였지만, 즉시 의관을 정제하고 의암성사를 스승으로 모시는 배례를 올렸으며, 이후 의암성사 앞에서는 평소의 편한 말투를 높임말로 바꾸고 절대 담배도 피우지 않는 등 깍듯한 예우를 갖추셨습니다.

포덕 40년(1899) 3월 10일, 의암성사께서는 상사에게 ‘춘암(春菴)’이라는 도호를 내리십니다. 이는 의암성사가 내린 첫 번째 도호이자 교단 전체로는 네 번째 도호였습니다.

포덕 41년(1900) 5월 1일, 송파에 있던 해월신사의 묘소의 유골을 수습하여 칠흑같이 어둡고 비 내리는 밤을 틈타 운구하여 여주 원적산 천덕봉 기슭으로 이장하였습니다.

포덕 60년(1919) 3·1운동 당시, 춘암상사는 민족대표 48인의 한 분으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1년 9개월간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모든 재산권 행사가 금지되는 등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출옥 후 포덕 61년(1920)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준공하여 3·1운동 자금 조달의 구심점이자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삼으셨습니다. 나아가 6·10 만세운동과 신간회(新幹會) 등 항일 운동과 청년·출판·농민·여성 운동 등 신문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끄셨습니다.

포덕 78년(1937) 12월, 상사께서는 비몽사몽간에 왜병들이 울며 물러가는 환상을 보시고 “조선이 독립할 징조”라 하시며, 교인들에게 밀명으로 ‘무인멸왜기도운동’을 실시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이 운동이 발각되어 많은 교인이 검거되고 상사께서도 병상에서 고초를 겪으셨으나, 천도교 신앙을 통한 나라 사랑의 의지는 길이 남았습니다.

춘암상사께서는 포덕 81년(1940) 4월 3일, 분열되었던 교회가 합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향년 86세로 환원하셨습니다. 4월 7일 대교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고양군 은평면 갈현리 묘지에 안장되셨으며, 이때 최린이 친필로 쓴 지석(誌石)이 함께 묻혔습니다. 이후 현재 묘소가 있는 포천의 무봉산으로 이장하였습니다.

 

공경하는 동덕 여러분!

의암성사와 춘암상사의 관계는 ‘축성(築城)’과 ‘수성(守城)’의 관계입니다. 혁명 이후 흩어진 교단을 수습해 다시 세운 분이 의암성사라면, 그 교단을 성장시키고 굳건히 지켜낸 분은 바로 춘암상사라 하겠습니다. 상사께서는 교단 분열의 아픔 속에서도 “남을 비방할 시간이 있으면 주문을 더 생각하라” “참에 살고 거짓에 죽는다” 하시며 화합과 기도, 그리고 참신앙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라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우리 천도교에 달려 있으니 참신앙의 길로 나아가는 것만이 이 시대 우리가 실천할 일입니다. 실천궁행으로 대도를 수호하신 상사님의 뜻을 이어받아야 하겠습니다.

천도교 중흥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님들의 가르침 아래 하나로 뭉쳐 참신앙의 길로 나아갈 때, 분단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고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목적을 진실로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루빨리 천심을 회복하여 통일된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심고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67(2026)년 1월 18일

천도교 교령 박 인 준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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